관념을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1) 제 3 부

다음으로, 성육신에 대한 사람의 관념을 교제하겠다. 사람은 성육신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관념을 가지고 있다. 성육신한 하나님을 보지 못했을 때 사람은 수많은 상상을 하지 않느냐? 예를 들어, 하나님이 성육신하면 무엇이든 알고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완벽해야 하며, 사람에게는 너무 높아 다가갈 수 없는 육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 사람이 가지는 이런 상상이 바로 관념인데, 그것은 사람의 일부 판단이나 지식, 종교 신앙, 전통문화 교육에 따라 생겨난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사람은 또 일부 새로운 관념을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생겼구나. 말씀은 이렇게 하시고 성격은 이러시구나. 어떻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지? 나의 하나님이 이런 분이실 리 없는데.’ 사실 하나님이 어때야 하는지는 사람 자신도 알지 못하고 명확히 말하지도 못한다. 사람은 계속 관념을 갖게 되는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을 부인하고 책망하며 관념과 상상을 가지는 것은 옳지 않고 하나님이 하는 일이 옳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관념이 끊임없이 밖으로 튀어나오며 마음속에서는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역시 하나님이 하신 게 옳아. 관념을 가지면 안 돼.’라고 생각하지만 관념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하고 여전히 불복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한다. ‘도대체 사람이야, 하나님이야? 하나님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 그렇다고 사람이라면 이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지 못하지.’ 여기에 딱 걸린 것이다. 다른 사람을 찾아 교제하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자신이 너무 우매하고 믿음이 없으며 치우치게 이해한다고 비웃을까 두려워 입을 열지 못하고 혼자 참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본 적 있든 없든,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가 생길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이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수많은 진리를 선포했고 사람이 완전히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이런 문제를 아주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교제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관념과 오해가 생긴다면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영적인 이해력이 없어서 관념을 갖게 되는 사람도 있고, 치우치게 이해하여 관념을 갖게 되는 사람도 있으며,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해 관념을 갖게 되는 사람도 있다. 어찌 됐든 사람의 생각과 견해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으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인식하며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는 데 방해가 되고, 혹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오해하며 부인하고 대적하는 생각과 관점이 생기게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관념이고 진리에 위배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교제하겠다. 아마 너희 중 많은 사람이 나에 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들어 봤을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막 믿기 시작했을 때나 특정한 환경에서 누군가 너에게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혹은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설날, 남들은 다 집에 돌아가 설을 쇠는데 그리스도는 눈보라 속에서 돌아갈 곳 없이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고 누군가 얘기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크게 감동하여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오신 뒤 고생을 참 많이 하시네요! 인간이 깊이 패괴되어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을 받으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 말이 사실인가 보네요.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어요.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위대하세요!” 그는 하나님의 위대함이 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었고 이 이야기에서 얻은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동시에 너희는 왜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왜 이런 이야기에 감동하겠느냐? 원래 사람은 하나님의 육신에 대해 관념과 요구, 그리고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 관념은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바로 만약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면 고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했는데, 만약 이 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인자의 생활 상태가 이렇지 않았다면, 그가 이런 고생을 하지 않고 복을 누렸다면 사람은 탄복하지도, 격려를 받지도 않을 것이며 본분을 이행하려 하지도 않고 조금만 고생을 해도 언짢아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은 응당 고생을 해야 하며 그래야만 모든 인간의 모범이 되고 귀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세상에 와서 부귀영화를 누려서는 안 된다고, 부귀영화는 세상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특별히 고생하러 세상에 오시는데, 고생을 다 겪고 나면 모든 인간이 할 말을 잃고, 그 일로 감동하고 탄복하여 하나님을 따르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원래부터 하나님에게 이런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에 아주 공감하고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럼 너희는 그 일이 과연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알고 싶으냐? 너희는 그 일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길 바라느냐, 아니면 있었던 일이 아니길 바라느냐? 쉽게 답하기 어렵지 않으냐? 만약 그 일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면 사람은 관념에 아주 부합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면 너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영웅적 모범이 사라져 버리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너희는 충격을 받지 않겠느냐? 타격을 입지 않겠느냐? 사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 중요하겠느냐? 사람의 관념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해, 그의 생활과 생활 환경, 삶의 질, 그리고 그의 의식주와 이동에 대해 평가 기준과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 관념은 바로 하나님은 인간 세상에 와서 반드시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밖에,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는 반드시 영향력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사람이 숭배하고 존경하며 우러러볼 만해야 한다. 책 읽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으며 정상적인 사람은 갖지 못하는 일부 특이한 기능을 가지고 있고, 나아가 표적과 기사를 행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따를 가치가 있고 ‘능력이 뛰어난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어울린다는 것이다. 관념과 상상이 만약 현실이 되면 사람은 의욕이 넘치고 확신에 차 믿을 것이다. 만약 현실에서 발생하는 일이 사람의 관념, 상상과는 다르다면, 예를 들어, 그리스도가 집권자들에게 쫓기면 사람은 ‘하나님이 쫓기는 고통을 받다니 내가 상상했던 영웅이나 구세주가 아니잖아!’라고 생각하며 믿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람의 관념으로 초래된 것 아니겠느냐? 이런 관념은 어떻게 생긴 것이겠느냐? 한편으로는 사람의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유명 인사와 위인이 가진 형상의 영향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잘못 정의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은 유명 인사와 위인은 칫솔 하나를 이삼십 년 동안 쓰고 옷 한 벌을 수선해서 평생 입는 소박한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어떤 유명 인사나 위인은 음식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고 게다가 밥을 다 먹으면 그릇까지 싹싹 핥아 먹으며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기도 한다. 마음속에 위인은 비범하다는 인상이 심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은 이런 인상을 가지고 성육신한 하나님을 평가한다. 만약 하나님이 그 인상에 부합하지 않으면 관념을 가지게 되고, 그 인상에 완전히 일치하면 관념을 가지지 않게 된다. 사람이 이런 것들로 그리스도를 비춰 보는 것이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유명 인사와 위인들이 하는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그들의 본성 본질이 정말로 성인(聖人)이겠느냐? 사실 유명 인사와 위인은 모두 마귀이자 마왕으로, 그중에는 정상적인 인성 본질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 표면적으로 사람의 관념으로 평가하면 장점도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의 본성 본질과 행동거지로 보면 그들은 본질이 마귀요, 사탄이다. 너희가 마귀, 사탄의 형상을 성육신한 하나님과 대조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 아니겠느냐? 원래부터 사탄 마귀는 위장에 가장 능하다. 그들은 겉으로 말하고 행동할 때는 항상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따르고 듣기 좋은 말만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마음속으로 궁리하고 뒤에서 하는 일은 전부 떳떳하지 못한 마귀적인 짓거리이다. 만약 아무도 폭로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사탄과 마왕이 하는 말은 전부 외식하는 것이고 사람을 현혹하는 말이다.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은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늘 마귀와 위인의 형상을 성육신한 하나님과 대조하면서 맞지 않으면 언짢아하고 관념을 갖게 되며 관념을 계속 내려놓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많지 않겠느냐? 분명 많을 것이다. 방금 내가 했던 이야기가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아직까지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일을 처음 들었을 때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게 일어난 일인데 당사자인 나는 정작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참으로 우스운 일이고 사실이 아닌 엄청난 거짓말이다. 그때 그 환경에서 이 단계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인 형제자매는 많지 않았지만 일부는 하나님이 말씀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받아들였고, 게다가 그들 모두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이 단계의 사역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모두 사랑을 강조하고 절대로 그리스도를 문전박대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설을 쇨 때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이들도 있었다. 더구나 형제자매가 그렇게나 많은데 내가 어느 집에 간들 대접을 못 받았겠느냐? 그렇게 말하면 마치 형제자매가 모두 패역하여 나를 맞아 주는 이가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처럼 들린다. 그것은 형제자매를 모함하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근거 없는 일이고 저의가 불량한 사람들이 날조한 것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너희는 사실이라고 믿었다. 어째서 그 일이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었겠느냐? 그건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 자체에 일부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 욕망 또는 심리가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회를 틈타 이런 이야기를 날조한 다음 극성스럽게 홍보하고 퍼뜨리며 거짓말을 보태 추론하고 조작했다. 그 결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듣고 그 일을 사실로 여긴 것이다. 내가 그 일을 해명하지 않으면 너희는 평생 진실과 거짓을 구분해 내지 못할 것이다. 이제 깨달았느냐? 애초에 그런 일은 없었다.

너희가 성육신과 그리스도에 대한 관념이 무엇인지 인식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일을 더 이야기해 주겠다. 하나님이 이 단계의 새로운 사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교회에서는 찬양을 어느 정도 만들어야 했는데, 그때 나도 한 곡 만들었다. 당시 이미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증거된 상태였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만든 찬양을 보고 훌륭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주 이상한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찬양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만드셨어요? 단어를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고 계신 거죠?” 이 말을 들은 나는 상당히 답답했다. ‘가사를 쓰는 데 단어가 필요한가? 지식이 필요한가? 그럼 그의 눈에는 내가 선포한 말이 다 무엇으로 보인단 말인가?’ 그는 관념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마음속으로 성육신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은 전부 단어요, 문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것이 진리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성육신 하나님의 행사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이방인의 말로 해석했는데, 그의 말을 듣고 사람은 거북해하고 역겨워했다. 이는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지금도 존재한다. 그럼 이 일은 어느 측면의 관념과 관련이 있겠느냐? 그도 성육신이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관념으로 이 일을 평가한다. 그는 그리스도라면 지식과 소양을 갖춰야 하고,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 그들이 믿고 따르게 해야 한다고, 설사 공부는 많이 하지 않았더라도 자질과 재능, 능력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반드시 특출나거나 남다른 부분이 어느 정도 있어야만 하나님이나 그리스도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자격만 있으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리스도의 본질을 갖춰야만 그리스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관념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생명 진입을 하는 것을 어떻게 가로막겠느냐? 사람은 늘 머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분석하고 하나님의 육신을 분석하며 연구한다. 사람은 늘 다음과 같은 것들을 연구한다. ‘이 사람이 한 말이 과연 논리에 부합할까? 정상적인 사고에 부합할까? 어법에 부합할까? 저런 말은 어디에서 배웠을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관점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저 머리와 지식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며 의심한다. 어떤 관점이나 관념으로 이 사람을 평가하고 대하든,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하겠느냐? (진리를 얻지 못합니다.) 진리를 얻지 못할 게 뻔하다. 네가 간파하지 못한 측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사람은 그가 과연 성육신 하나님이 맞는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요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설교와 그가 폭로한 비밀을 통해 그가 하나님이라고 확신하고, 그의 말은 모두 진리이자 생명이며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늘 관념을 가지고 하나님을 연구하고 그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하겠느냐? 그 사람의 신분과 본질, 그리고 그의 사역을 항상 의심할 것이다. 즉, 그 사람이 도대체 사람인지 아니면 하나님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그는 아마 하나님이 보낸 사자나 선지자일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이 하지 못하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자의 내면에는 이 육신과는 맞지 않는 틀과 관념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맞지 않는데도 그는 진리를 구하지 않고 그대로 관념을 고수하여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제대로 믿어 보라고 해도 내려놓지 못하는 관념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떠나라고 하면 그는 또 복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이런 사람이 있지 않으냐? 너희는 이런 사람이냐, 아니냐? 비록 너희 중 대부분은 성육신 하나님임을 확신하지만, 사실 80~90%만 확신할 뿐 여전히 10~20%의 의혹과 의심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라도 기본적으로는 확신한다고 할 수 있고, 얼마 되지 않는 나머지 의혹과 의심은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그 정도의 관념은 해결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정도의 관념이나 의심도 만약 제때 해결하지 않으면 아주 골치 아파진다. 너희의 관념으로 볼 때 내가 너희를 어떻게 대해야 만족하겠느냐? 어떻게 대해야 그것이 하나님의 행사이며 하나님이 사람을 대해야 하는 방식이라고 느끼겠느냐? 속삭이듯 부드럽게 말하고 모든 면에서 너희에게 관심을 갖고 너희를 보살펴 주어야 하는 것이냐? 언젠가 내가 너희 중에 황당한 행동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호되게 꾸짖고 따끔하게 폭로하고 심판하여 너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너희는 또 내가 하나님 같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너희는 하나님이 누구보다 부드럽고 자애롭다고, 자애로움이 가득해야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너희의 관념과 상상 속 하나님에 부합하겠느냐? 아직까지도 하나님에게 이렇게 요구한다면 너희는 몹시 이성적이지 않은 것이고 하나님을 너무도 모르는 것이다.

성육신에 대한 관념에 관하여 너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20년 전 중국에 있을 때 일어났던 일이다. 그때 나는 스무 살도 되지 않았다. 그 나이대에는 사람들이 말과 행동이 노련하지도, 성숙하지도 못하고 젊은 사람 같은데, 이는 정상이다. 만약 늙은이 같다면 그게 비정상이다. 나이대에 맞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정상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했고 인류에게 정상적인 성장 법칙을 정해 주었다. 물론 하나님 자신이 성육신해도 예외는 아니다. 그 역시 이 법칙에 따라 생존하고 인생을 체험한다. 이 법칙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하나님은 이 법칙을 위배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성육신 하나님이 스무 살이 되지 않은 나이에는 그의 일부 행위가 젊은 사람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전에 한번 이사할 때 일부 형제자매가 떠나면서 일부 필기구와 공책을 놓고 갔는데, 나는 버리기도 아깝고 다른 형제자매가 필기할 때 쓸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정리해 두었다가 몇몇 자매에게 쓰라고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은 관념이 생겨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건 원하는 사람이 직접 가져가게 두면 되죠. 뭐 하러 나눠 주는 거예요?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요!” 그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사소한 일이겠느냐, 아니면 큰일이겠느냐? 만약 보통 사람을 어린애 같다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정상이다. 그건 하나의 말일 뿐, 아무도 관심을 갖거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도 이런 말이 관념이나 관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것은 어떤 행동 방식이겠느냐? 그 성질은 무엇이겠느냐? 그의 관념과 상상 속 성육신 하나님은 설사 나이가 스무 살이 되지 않았더라도 늙은이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매일 엄숙하게 앉아서 앞을 바라보고, 농담이나 잡담도 하지 않고 아주 점잖고 침착한, 지혜롭고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이처럼 보여야 한다. 내가 필기구와 공책을 나눠 준 것처럼, 일단 늙은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위나 행동 방식을 보이면, 그렇게 하는 게 그리스도답지 않고 어린애 같다고, 그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 같지 않다고 정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육신 하나님은 절대로 어린애 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내린 정의가 아니겠느냐? 이런 정의는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겠느냐, 아니면 높이 평가하고 인정하는 것이겠느냐?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정죄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느냐? 설마 성육신 하나님을 두고 어린애 같다고 말하는 게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겠느냐? 그의 이 말은 무엇이 잘못되었겠느냐? 그에게 이런 관념이 생기게 된 핵심은 무엇이겠느냐? (그는 성육신 하나님의 정상 인성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면을 부인합니다. 방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육신 하나님은 창조된 인간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성장 법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아주 초자연적인 존재로 생각하여 성육신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 성질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정죄하는 것이자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그가 이렇게 부인하는 것이 바로 문제의 본질이다. 그는 왜 이렇게 부인하겠느냐?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한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님이시니 정상적인 나이에 맞는 정상 인성을 드러내선 안 돼요. 당신은 스무 살도 되지 않았지만 쉰 살처럼 성숙하고 노련해야 해요. 당신은 하나님이시니 정상 인성의 성장 법칙을 위배하여 살아가야 해요. 당신은 초자연적이어야 하고 남달라야 해요. 그래야만 당신은 그리스도이고 우리 마음속의 하나님이에요.’ 그는 이런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런 관념은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했느냐? 이 일이 없었다면 그의 관념이 드러났겠느냐?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바로 이 일을 계기로 그가 드러난 것이다. 그가 이 일에 관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람은 하나님의 행사를 간파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면 여기에는 구할 여지가 있고 용서할 만한 점이 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많은 일을 간파하지 못한다. 그러나 똑같이 간파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판단하고 정죄하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고 기다리며 진리를 구한다. 이는 성질이 다른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이 사람은 간파하지 못했을 때 어떤 성질을 보인 것이겠느냐? 그는 바로 정죄해 버렸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관념이 생기면 사람은 하나님의 성육신을 의심하고 심한 경우 정죄하며 부인하기까지 한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방금 성육신에 대한 관념의 예시를 세 가지 들었다. 이 세 가지 예시는 몇 가지 문제를 보여 주고 있는데 여기에 담긴 진리가 무엇인지 구해야 한다. 첫 번째 관념은 무엇이냐? (사람이 위인에 대한 정의로 성육신한 하나님을 규정한 것인데, 하나님은 응당 고생을 하여 전 인류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관념이다. 사람의 관념은 바로 성육신 하나님은 응당 고생을 많이 하여 전 인류에게 모범과 귀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관념은 무엇이냐? (그리스도라면 응당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지식과 소양을 갖추어야 하고 그래야만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은 지식이나 은사, 또는 파악하고 있고 깨달은 것들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적지 않은데, 이 역시 관념이다. 세 번째 관념은 무엇이냐? (그리스도라면 정상 인성을 표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육신 하나님은 초자연적이어야 하고 남보다 뛰어나야 하며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어느 측면에서 보든 평범하고 정상적이라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의욕이 없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심한 경우 부인할 것이다. 사람은 모두 초자연적인 하나님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너희가 진리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도움이 됩니다.)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만약 근거 없이 이 방면의 진리를 교제하면 아마 너희에게는 아주 추상적으로 들릴 것이고 너희는 실제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야기했으니 너희는 듣고 나서 실제적이고 이해하기 쉽다고 느낄 것이고, 이런 일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일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다른 일이 닥친다면 너희는 진리로 평가하고 대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활용할 줄 안다면 너희는 영적인 이해력이 있는 것이고 그 속에 담긴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활용할 줄 모른다면 너희는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것이고 그 속에 담긴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의 줄거리에서 그 속에 담긴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사람이 인식하고 분석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입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하고 얻어야 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너는 영적인 이해력이 있는 것이다. 반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서도 그 일 자체에만 흥미를 느끼고 그 일은 기억하지만 진리는 내팽개친다면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것이다. 너희가 그 속에 담긴 진리를 정말로 깨달을 수 있다면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보람이 있는 것이다. 너희가 진리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실제 사례를 들려줄 것이고 어떤 일이든 다 끄집어내어 분석할 것이다. 너희에게 인식을 가지게 할 수만 있다면, 너희가 진리를 깨달아 일을 간파하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잘잘못을 논하는 일을 얘기하는 것을 무엇보다 꺼린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너희가 진리에 진입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나는 얘기할 것이다. 너희가 진리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나는 말을 좀 많이 해야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러나 내가 귀찮게 잔소리한다고 너희가 싫어한다면 나도 말을 줄일 수밖에 없다.

내가 했던 이야기 가운데 사람이 해결해야 할 관념은 무엇이겠느냐? 우선 너희는 하나님이 성육신할 때 하나님이 이 육신의 인성 본질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평범하고 정상적이고, 패괴된 인류 가운데서 정상 인성의 모든 활동에 종사할 수 있고 다른 부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돕고 인도하며 이끌 수 있다. 그의 정상 인성이든 신성이든, 아니면 성격이든, 어느 방면에서든 그는 반드시 그가 맡은 사역과 그가 이행하는 직분을 능히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리스도, 성육신을 평가하는 기준이자 그가 사역하는 기준, 정의하는 기준이다. 예수가 사역할 때 그의 인성은 이번의 성육신 하나님과 비교하면 초자연적인 부분이 좀 있었다. 이적을 나타내는 것,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것, 바다를 꾸짖어 풍랑을 잠재우는 것, 병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 불리는 것 등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 그의 정상 인성과 의식주는 사람이 보기에 모두 특별히 정상적이고 실제적이었다. 그는 서른세 살 반의 나이로 태어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니다. 그는 서른세 살 반까지 사는 동안 매일, 매년을 일 분 일 초씩 살아가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수한 것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이 세상에서 삼십삼 년 반을 살고 나서야 이 사역을 완수한 것이다. 이것이 실제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것은 실제적이다. 하나님이 지금 하고 있는 이 단계의 사역은, 너희에게 말하는 일과 교제하는 진리는 모두 너희의 분량, 너희의 생명 성장 정도, 그리고 하나님이 마련한 전체적인 환경을 근거로 한 것이기에 나는 어떤 진리를 교제하는 게 가장 적절할지, 너희에게 어떤 진리를 깨닫도록 할지 곰곰이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육신이 혼자 이런 일들을 사색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영도 함께 행사하고 있다. 또한 이 사람이 협력할 때 하나님의 영이 이 모든 것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이 육신의 본질과 그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행하는 것,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 영의 모든 경륜과 영원히 충돌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나아가며 방향도 같고 상호 보조적이다. 하나님의 영이 만약 이 육신을 입지 않는다면 얼굴을 맞대고 너희에게 말할 수 없을 것이고, 너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도, 그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육신만 있고 그 내면에 하나님의 영이 없다면 과연 사역을 할 수 있겠느냐? 사역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만약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더라면 이 사역을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이 정상적인 육신은 반드시 매일, 매월, 매년 이렇게 조금씩 살아가야 한다. 그의 인성은 계속해서 성숙해지고 있고 경험도 끊임없이 늘고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경륜에서 해야 하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 단계의 사역을 할 때, 나는 스무 살도 되지 않았을 때부터 교회에서 사역을 하며 형제자매와 어울리기 시작했고 예배하고 교제하고 교회들을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을 접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나의 문장 구성 능력과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능력이 계속해서 성장해 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성장이 너희와는 어떻게 다르겠느냐? 너희는 내가 한 말과 내가 교제한 진리를 통해 다시 체험해야 하고, 체험하는 과정에서 내가 한 말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진리이며 옳다는 사실을, 너희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고 너희를 구원받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점차 확증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어떻겠느냐? 너희가 성장하는 동안 나 역시 끊임없이 깊이 성장하고 있다. 계속해서 너희를 알아가면서 나도 내가 교제하려는 말이 너희의 필요를 점진적으로 공급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신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고, 우리가 분량이 점점 자라고, 구원받는 길에서 점점 변화하고 성장하며 하나님과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게 하려고 하시는데 당신은 이런 것들을 어떻게 이루시죠?” 사람은 이를 근심할 필요 없다. 나는 절대 구하지 않고, 금식 기도도 할 필요 없고, 혹은 비를 내려 달라고 구하듯 너희에게 공급할 말을 어서 공급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구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이 육신 자체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그는 이 직분을 이행하는 자이기 때문에 진리를 선포해 사람에게 공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과 패괴된 인류의 차이이다. 그러니 너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나는 특별히 알아볼 필요 없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무언가를 공급하고 무언가를 교제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너희에게 꼭 필요한 것임이 틀림없다. 나의 말과 사역에 따라 나아가면 너희의 내적 상태는 갈수록 좋아지기 시작할 것이고 생명도 이에 따라 점점 성장할 것이다. 동시에, 내가 너희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이 협력하는 일을 하는데, 사실 이는 하나님의 영이 인성에 협력하는 동시에 인성이 신성에 협력하는 것으로, 모두가 동시에 행사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너희를 양육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영은 너희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너희를 깨우치고 너희에게 빛 비춤을 준다. 그다음 너희가 여러 진리에 진입할 수 있도록 너희에게 환경과 여건을 마련해 준다. 인성과 신성은 이런 식으로 협력한다. 그렇다면 육신과 영의 이런 협력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겠느냐?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네가 만약 이 방면의 진리로 하나님의 경영 전체를 인식하지도 이 육신을 대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영영 이 육신의 본질이 대체 무엇인지, 이 육신이 어떤 존재인지, 그는 대체 어떻게 사역하는지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것들을 인식하지 못하면 너는 영원히 그가 사람인지 하나님인지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이 면을 간파하거나 이 면을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의 육신인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사역하는 동시에 성령도 협력하며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 인류 가운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영이 일하는 동시에 육신도 영의 일에 협력한다. 그들은 서로 보완하고 협력하며 하나가 되어 영원히 충돌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가끔 시련이 닥치면 제가 공과를 배우도록 성령이 저를 깨우쳐 주십니다. 그러나 당신은 다른 진리를 선포하시니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는 전혀 모순되지도, 충돌하지도 않는다. 그리스도는 점차 심화하면서 진리를 선포한다. 성령이 사람의 체험을 인도할 때도 각기 달리 한다. 이는 획일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리스도는 설교할 때 하나님 선민의 현실에 존재하는 핵심적인 문제에 근거해 진리를 교제하고, 성령은 사람을 인도할 때 개인의 상황을 근거로 한다. 여기에는 모순이나 충돌하는 부분이 없다. 사람마다 시기와 단계별로 분량도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은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진리, 즉 하나님이 말씀한 진리, 길, 생명에 있다. 그의 사역은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모두 진리이다. 성령이 너에게 깨우쳐 주는 진리와 깨닫게 하는 빛 비춤은 무엇을 근거로 하겠느냐? 바로 지금 그리스도가 선포하는 진리들, 그러니까 지금 너희에게 깨닫게 하는 이런 진리와 길, 생명을 근거로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저희에게 당신의 육신은 필요 없어요. 저희는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만 있으면 돼요. 당신이 없어도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고 새로운 시대에 들어설 수 있어요. 구원도 받을 수 있고요.” 이 말이 성립하겠느냐? (성립하지 않습니다.) 종교인은 예수를 이천 년간 믿어 왔다. 성령이 그들을 인도한 이천 년 동안 그들은 무엇을 얻었느냐? 구속의 복음을 얻고 하나님으로부터 수많은 은혜를 입었을 뿐 하나님이 말세에 선포하려는 진리는 얻지 못했다. 그러니 만약 말세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이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하지 않았더라면 너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었겠느냐? 종교를 믿는 사람처럼 아무리 큰 성령의 깨우침을 얻고 아무리 많은 은혜를 입었다 하더라도, 혹은 하나님이 너를 선택하고 사용한다 하더라도 너는 선지자나 사도는 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말세에 성육신하여 선포한 진리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온전케 되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며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

이제 너희는 성육신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성육신의 본질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념을 가지고 있고 성육신 하나님이 바로 실제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전혀 확신하지 못한다. 지금 너희가 나와 어울리다가 내가 일부 외부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면 너희는 관념이 생기지 않겠느냐? 어떤 사람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당신도 모르시는군요. 그러면 안 되죠. 당신은 성육신 하나님이시니까 뭐든지 다 아셔야 하고 전지전능하셔야 해요. 어디에나 존재하시지는 못하더라도 모르시는 게 있어서는 안 되죠!’ 이는 사람의 관념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역시 관념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정상 인성이란 어떤 개념이냐? 성육신 하나님의 사고방식은 초자연적이지도 막연하지도 공허하지도 않고, 정상인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상 인성의 사고로 닿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도 깊이 연구하여 닿을 수 있지만 이 방면에 특기가 있는 사람보다 더 뛰어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이는 정상이다. 이 밖에 그의 말과 행사 역시 정상 인성의 논리와 사고에 따르고 초자연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그의 사고 역시 정상 인성의 사고와 마찬가지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그의 정상 인성은 왜 이런 것이겠느냐? 이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합리적입니다.) 이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이냐? 정상인은 계단을 오를 때 한 걸음에 몇 계단을 오르느냐? (한 계단을 오릅니다.) 한 걸음에 한 계단을 오른다. 이는 정상적으로 계단을 오르는 것이다. 내가 만약 한 걸음에 계단 여러 개를 올라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간다면 너희도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지 못합니다.) 너희는 그럴 수 없는데 내가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면 너희는 어떻겠느냐?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지 못합니다.) 너희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이는 사역 대상의 필요에 따르는 것이다. 나는 진리를 교제할 때 하나의 주제와 중심을 가지고 최대한 구체적이고 완벽하게 말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례를 들어가며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한다. 그럼에도 알아듣지 못하고 닿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만약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가장 심오한 것과 가장 큰 틀의 것만 얘기한다면 너희는 아무것도 얻지도 깨닫지도 못할 것이다. 그럼 이 사역은 공허하고 현실적이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한 걸음에 한 계단을 오르듯 성장할 수 있으니 나도 한 걸음에 한 계단을 오르듯 너희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너희는 나를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한 걸음에 네 계단을 오른다면 결과는 어떻겠느냐? 너희는 영영 나를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나의 사고가 앞서 나가고 비약적이라면 너희는 전혀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무 의미도 없어진다. 그러니 이 육신이 아무리 정상적이고 실제적이어도, 나아가 하나님의 영처럼 능력이 있어 보이지 않더라도 그 모든 것은 인류의 필요 때문이다. 지금 하나님이 공급하는 대상은 사탄에 의해 패괴된, 아무 진리도 깨닫지 못한,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성육신하면 반드시 정상 인성의 가장 기본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사고란 무엇이겠느냐? 그가 한 말을 설사 자질이 평범하거나 심지어 조금 떨어지는 사람이라도 다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고가 정상적이기만 하면 그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다 알아들을 수 있고, 그가 교제하는 진리를 깨달은 다음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하는 모든 단계의 사역, 하나님이 하는 모든 말씀이 결실을 이룰 수 있고 결과를 볼 수 있다. 이것이 현실적인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만약 관념을 껴안은 채 내려놓지 못하면서 “예전에는 한 번 보면 잊지 않을 만큼 기억력이 좋고 책 읽는 속도도 아주 빠른 제왕도 있었는데, 하나님도 그래야 하시는 거 아닌가요? 당신이 만약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시다면 우리는 당신을 따를 수 없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너무 평범하시니까요. 대단한 인물 같은 모습을 갖추셨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한다면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겠느냐?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이미 구제 불능일 정도로 무지해진 것이다. 정상인의 사고와 자질을 조금 가지고 있는 것 외에, 하나님의 택함과 하나님의 사역 아래 하나님을 따를 마음이 있고 양심과 이성이 조금 있는 것 외에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어떤 진리도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무엇이 정상 인성이고 패괴 성품인지, 관념과 상상은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사람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최소한 어떤 양심과 이성을 갖추어야 하는지 등과 같은 것조차 사람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이 아무리 알기 쉽게 말해도 사람은 잘 알아듣지 못하고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너희가 보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패괴된 인류,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인류를 마주하여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어떤 본질과 인성, 어떤 정상인의 사고를 갖추어야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데려올 수 있겠느냐? 너희 생각에 하나님은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거 아니었어요? 어째서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내어 사람을 정복하지 않으시는 거죠?” 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관념이다. 여기에는 사람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것으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패괴 성품이 드러나고 해결될 수 있겠느냐?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사람 내면에 만들어 넣어 줄 수 있겠느냐? 사탄이 과연 굴복하겠느냐? (굴복하지 않습니다.) 지금 너희가 “굴복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아마 도리일 수 있다. 그러나 체험하다 보면 언젠가 너희도 사람이 얼마나 무감각하고 우둔한지, 얼마나 패역하고 강퍅하며 사악한지, 얼마나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지 알게 될 것이다. 체험하다 보면 언젠가 너희도 하나님이 입은 육신, 정상 인성을 가진 이 육신이 전 인류가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네가 여전히 갖은 상상과 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너 자신에게는 무책임한 태도이고, 하나님에게는 일종의 모독이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고심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네가 ‘우리는 지식과 소양, 생각을 가지고 있어. 우리는 말세에 태어났고 우리 중 일부는 세상에서 고등 교육도 받았지. 집안도 나름 좋고. 우리는 현대인이고 문화인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사람들이 무시하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그리스도를 거부할 이유가 있어. 당신에게 관념을 가질 이유가 있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무엇이 문제겠느냐? 이는 패역하고 사리 분별을 못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관념이 생기면 해결할 수 있지만 관념이 해결되고 나서도 목을 뻣뻣이 세우고 하나님의 성육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의 일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골치 아픈 일이다. 이러면 구원받을 수 없다. 체험을 하다 보면 언젠가 너도 하나님의 성육신과 하나님의 정상 인성, 그가 가진 모든 것과 그의 표출이 정상적일수록 우리에게는 더 큰 구원이고,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초자연적이라면 지상에 사는 사람 중 구원받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바로 하나님의 낮춤과 감춤으로 인해, 사람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면으로 인해 인류는 구원받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사람에게는 패역과 사탄의 패괴 성품, 패괴 본질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온갖 관념과 오해, 반발심이 생긴다. 나아가 이런 관념으로 인해 사람은 득의양양하게, 혹은 떳떳하게 이 그리스도와 그의 정상 인성을 부인한다. 이는 완전히 잘못됐다. 네가 구원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우선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에 대한 여러 관념과 상상, 옳지 않은 정의, 그리스도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관점을 내려놓아야 한다. 너는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서 비롯된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한 말, 그가 선포한 진리가 조금씩 너의 마음속에 들어가 너의 생명이 될 수 있다. 네가 만약 그를 따르고자 한다면 너는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의 영이든, 그의 말씀이든 아니면 그의 육신이든 전부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네가 정말로 그를 받아들였다면 너는 그의 반대편에 서서 자신의 관념에 기댄 채 계속 그를 오해하고 거역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관념을 고수한 채 계속 그를 의심하거나 심지어 그에게 반항하고 대항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이런 태도는 너 자신을 곤경에 빠뜨릴 뿐이고 너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을 너희는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럼 서둘러 진리를 구해 해결해라. 이는 패괴 성품에 속하는 문제인데, 해결하지 못한다면 너는 패괴 성품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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