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발췌문 74)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할 때, 하나님의 육신이 받은 고난은 어떤 것이었겠느냐? 진정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자가 있겠느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그의 본질을 몰라 항상 그를 사람처럼 대함으로써 서글프고 억울하게 만들었으니 그 고통이 실로 너무 크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하나님은 무고하고 죄가 없음에도 사람과 똑같이 고통받고, 사람과 함께 박해와 비방, 수모를 당하며, 아울러 그를 따르는 자들의 오해와 패역도 참아 내야 했으니 그 고통은 정말이지 헤아릴 수도 없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너희는 하나님에 대해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 너희가 말하는 이러한 고통은 하나님께 있어서 진정한 고통이라고 할 수 없다. 그에게는 그보다 더한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자신에게 진정한 고통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입은 육신에 무엇이 진정한 고통이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있어 고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에게는 고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종종 하나님이 마치 아주 큰 억울함을 당한 것처럼 생각한다. 또한, 하나님이 성육신한 기간에 인류에게 본체를 나타내 자신의 위대함을 보이지 못하고, 늘 이렇게 자신을 낮춰 보잘것없는 육신에 은밀히 거하니 매우 괴로우리라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선에서 하나님의 고통을 생각하고, 하나님에게 깊은 동정심을 보인다. 심지어는 종종 이를 소소하게 찬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상, 사람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고통은 하나님이 진정으로 느끼는 고통과 다르고 거리가 멀다. 너희에게 사실을 말해 주겠다. 하나님의 영이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든, 하나님에게 있어 위에서 말한 것들은 다 진정한 고통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받은 고통은 도대체 무엇이겠느냐? 단지 성육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이 받은 고통을 말해 보자.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평범한 정상인이 되었을 때,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함께 생활한다. 그럼 사람의 생존 방식, 법칙, 이념을 보고 느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는 그러한 생존 방식과 법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혐오감을 느끼지 않겠느냐? 왜 혐오하겠느냐? 인류의 생존 방식, 법칙은 무엇이더냐? 어떤 원칙을 바탕으로 세워졌더냐? 무엇을 근거로 삼았더냐? 인류의 생존 방식, 생존 법칙 등 모든 것은 사탄의 논리와 지식, 철학을 바탕으로 생겨났다. 이러한 생존 법칙 아래 있는 인류에게는 인성도, 진리도 없으며, 전부 진리에 위배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뿐이다. 이제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 살펴보자. 하나님의 본질은 사탄의 논리, 지식, 철학과 정반대이다. 그의 본질에는 공의, 진리, 거룩함 등 모든 긍정적인 것들의 실제가 충만하다. 이러한 본질을 갖춘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서 살아가니 그 심정이 어떠하겠느냐? 고통으로 가득하지 않겠느냐? 고통스러운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이해하거나 느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가 보고 듣고 접하고 체험하며 대면한 것들은 모두 인류의 패괴와 사악함, 진리에 대한 거역과 대적이다. 사람에게서 오는 모든 것이 그에게는 고통의 근원이 된다. 즉, 그는 패괴된 인류와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인류의 패괴가 그에게는 가장 큰 고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했을 때, 그와 공통된 언어를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있었겠느냐? 인류 가운데서는 찾지 못했다.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과 의사소통이 되고 교류할 사람을 찾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을 것 같으냐? 게다가 사람이 말하는 것, 좋아하는 것,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은 모두 죄, 그리고 사악한 시류와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대할 때, 가슴이 미어지지 않겠느냐? 이러한 일을 대하는데 마음이 즐거울 수 있겠느냐? 위안을 받을 수 있겠느냐? 그와 함께 생활하는 자들은 패역과 사악으로 가득 찬 인류인데, 그의 마음이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느냐? 이러한 고통이 대체 얼마나 큰지, 누가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있느냐? 누가 신경을 쓴 적이 있느냐? 누가 또 그것을 체험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고통은 더욱 체험할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의 냉대와 무감각은 하나님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다.

어떤 이들은 늘 그리스도의 처지를 동정한다. 성경에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집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는 말이 있어 사람은 이 말씀을 마음에 두고, 이것이 하나님이 받은 가장 큰 고통이자 그리스도가 받은 가장 큰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정말 그러하더냐? 하나님은 이를 고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단 한 번도 육신이 받은 고통 때문에 불평이나 억울함을 토로한 적이 없으며, 사람에게 무언가 보답하고 갚으라고 한 적도 없다. 사람의 모든 것, 즉 패괴된 삶과 사악함, 사탄에게 통제받고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죄 가운데 살면서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는 모습을 목도했을 때, 하나님은 사람의 이 모든 죄악을 용납할 수 없었고 인류에 대한 혐오는 날로 커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을 참아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받은 크나큰 고통이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 하나님의 희로애락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완전히 발현되지 못했고, 따르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자가 없었다. 또한, 그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위로해 보려고 하는 자도 없었다. 그는 하루 또 하루, 한 해 또 한 해 계속해서 이러한 마음의 고통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인류에게 지불한 것에 대해 어떤 보답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본질 때문에 인류의 사악함과 패괴와 죄악을 절대 용납하지 못하고, 게다가 극도로 혐오하고 증오한다. 하나님의 마음과 육신은 이로 인해 끊임없는 고통을 받는다. 이러한 것들을 너희는 보았느냐? 분명 너희 중 그 누구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너희는 누구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천천히 체험해 보아라!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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