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9) 제 4 부

의심이 많다

이번에는 의심이 많은 것에 대해 얘기해 보자. 의심이 많은 것은 방금 언급했던 모습 중 어떤 것과 조금 유사하냐? (민감한 것과 유사합니다.) 민감한 것은 어느 측면의 문제였느냐? (인성의 결함입니다.) 의심이 많은 것은 민감한 것보다 한 단계 더 심각한 문제이다. 민감한 것은 단지 인성이 다소 미성숙해서 어린아이 같은 것에 불과하지만, 의심이 많은 것은 어느 정도 구체적인 사상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속되게 말하자면 꿍꿍이가 많은 것이고, 이는 인품이 나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그에게 10위안짜리 물건을 사다 달라며 “10위안이 넘는 물건은 절대 사면 안 돼요. 너무 비싸면 사지 마세요.”라고 특히 강조해도 그는 듣고 나서 이렇게 고민한다. ‘예의상 빈말하는 거 아니야? 사실은 100위안짜리 물건을 갖고 싶은데 말하기가 민망한 거지. 그러니까 내가 사다 주면 좋아할 거야. 내게 호감도 가질 테고.’ 정작 물건을 사 오면 상대는 말한다. “너무 비싸요. 저는 10위안밖에 없는걸요. 그렇게 많은 돈은 없다고요.” 그렇다면 100위안짜리 물건을 사다 준 것은 상대를 곤란하게 한 것 아니겠느냐? 그러나 그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사람이 돈을 더 내기 싫어서 자신을 등쳐 먹으려 한다고 의심한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렇게 의심이 많은 사람은 아주 골치 아프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어떤 점에서 골치 아프냐? (그는 생각이 너무 복잡합니다.) 생각이 너무 복잡한 사람과는 어울리기가 어렵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성격이 솔직한 사람이 이런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 하겠느냐?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너는 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느 측면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없고, 그에게 어떤 속셈이 있는지, 그가 너를 어떻게 의심하는지도 꿰뚫어 볼 수 없다. 그래서 그에게 일을 처리하라고 맡기면 분명 아주 간단하고 사소한 일도 몹시 복잡하고 번거로워진다. 일을 처리하다 보면 너는 아주 피곤하다고 느끼고 차라리 직접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그런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고 피하고 싶어진다. 예를 들어, 쓰지 않는 물건이 하나 있는데 그냥 놀리자니 낭비 같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그에게 주면 그는 고맙게 여기기는커녕 속으로 의심한다. ‘왜 이 물건을 나한테 주지? 분명 속셈이 있을 거야. 내가 자기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해서 신세를 지게 만들려는 건가? 아니면 내게 무슨 일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려는 건가?’ 너는 그가 이토록 사소한 일에 대해 이렇게 생각이 많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물건을 좀 줬을 뿐인데 그는 이렇게나 많은 의심을 품는다. 그의 의심을 해소하려면 수많은 말을 해야 하니 아주 골치 아프지 않겠느냐? 결국 너는 그 사람에게 반감이 생겨서 나중에 또 필요 없는 물건이 생겨도 차라리 버릴지언정 그에게 주지는 않게 된다. 왜 주지 않겠느냐? 야박한 게 아니라 골치 아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전에 어떤 사람이 막 세 들어 살기 시작했을 때 집 안에 청소 도구가 하나도 없길래 내가 집에 있던 청소 용품을 좀 가져다준 적이 있다. 한 병 가득 차 있는 세제도 있었고 절반만 차 있는 세제도 있었는데 세입자는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거저 주는 물건이지만 고맙지 않네요. 전부 쓰던 물건이잖아요. 좋은 물건이면 왜 제게 주겠어요?” 상당히 상처가 되는 말 아니냐? (그렇습니다.) 왜 상처가 된다고 하겠느냐? (그가 호의를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호의를 악의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고마워하라고 하지도, 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집에 청소 용품이 하나도 없고 나가서 사기도 불편하니 쓰기 편하도록 내게 있던 것을 가져다준 것뿐이지, 잘 보이려고 물건을 준 것이 아니다. 나는 그에게 빚진 것도 없고 내게 신세를 지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이토록 단순한 일인데 그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흥! 별것도 아닌데 물건 좀 가져다주고는 인심 쓴다고 생각하다니! 좋은 물건을 가져다준 것도 아니고 말이야. 거저 주는데 좋은 물건일 리 있어?’ 참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나는 그것을 뭐 엄청난 보물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청소 용품일 뿐인데 쓰기 싫으면 안 쓰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 만드느냐? 나는 그 사람이 어울리기 힘들고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럼 내가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으면 아무 일 없었겠느냐? 꼭 그렇지도 않다.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아도 골칫거리가 생기기 쉽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세 들어 사는데 청소 용품 하나 안 가져다주다니 이게 무슨 형제자매야.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네!’ 그는 또 불평을 할 것이다. 이런 부류의 인품은 몹시 형편없어서 늘 자신의 기호나 기준으로 남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고, 까다로운 시선으로 남을 살피고 판단한다. 자신은 높은 위치에 있고 남은 다 음흉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남은 어떻게 행동하든 다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오직 자신만이 패괴가 없고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의심이 많은 사람은 인품이 좋지 않다. 인품이 좋지 않으니 필연적으로 그런 인품에 지배되어 일을 하게 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전부 패괴 성품만 표출한다. 그가 표출하는 것이 정상 인성일 리 없다. 정상 인성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느냐? 이는 패괴 성품과 관련이 있다. 의심이 많다는 점에서 보면 이 부류가 행동하거나 남과 교류하고 어울릴 때 표출하는 대표적인 패괴 성품은 분명 사악함과 간사함일 것이다. 그의 생각은 이토록 복잡하며 사악하고 음험하다. 그는 자기가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네가 그런 부류가 아니더라도 그는 믿지 않고 네가 해명해도 소용없다. 그는 너를 그렇게 바라본다. 그는 사악한 방식과 성품으로 만사 만물과 모든 사람을 바라보고, 설사 네 행동이 정당하고 인성의 필요에 부합하더라도, 인성의 이성, 혹은 진리 원칙에 부합한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며 이렇게 물을 것이다. “왜 그렇게 행동하죠? 속셈이 뭔가요?” 네가 “아무 속셈도 없어요.”라고 말해도 그는 결코 믿지 않고 기어코 네게 어떤 속셈이 있다고 덮어씌운 후 네가 인정하게 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은 골치 아프지 않으냐? (골치 아픕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은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이 부류는 분명 단순하고 솔직한 사람이 아니고, 당연히 정직한 사람도 아니다. 그의 인품 안에는 기본적으로 정직함, 선량함, 이성 같은 요소가 없다. 그럼 그의 인품 안에는 주로 어떤 것이 있겠느냐? 의심이 많고 간사하고 사악하며 순수하지도 정직하지도 않다. 그는 모든 사람과 모든 문제를 아주 복잡하게 바라본다. 네가 그에게 솔직하게 말해도 그는 네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분석하고 고민한다. 설사 그가 너와 오랫동안 어울려서 네 인품을 안다고 해도 그는 너와 대화하고 일을 처리하고 왕래할 때 늘 의심하는 태도로 너를 대한다. 그래서 이런 부류는 아주 골치 아프다. 그와 어울리다 보면 너는 부담이 늘고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며 해야 할 일도 많아진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좋아하지 않는지, 무엇을 하기 싫어하고 말하기 싫어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하다 그에게 미움을 사거나 그가 상처받았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그가 하나님은 어떻게 대하겠느냐?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그에게 한 가지 본분을 이행하도록 안배하면 그는 고민한다. ‘내가 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실까? 기억하실까? 얼마나 애써야 그럭저럭 봐줄 만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억될 수 있을까?’ 한동안 본분을 이행하고 나서 그는 리더 일꾼이 그를 어떻게 보는지, 나쁘게 평가하지는 않는지 알아보려 한다. 이는 어떤 인성이냐? 일을 처리하는 태도에서 드러나는 인성으로 보아 이런 부류는 아주 골치 아프고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 그렇겠느냐? 그는 정직한 사람이 되기가 쉽지 않다. 또 그는 양심 안에 정의감이 없고 이성 부분도 온전하지 않으며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판단한다. 왜 비이성적이라고 하겠느냐? 극단적이고 한 가지에 집착하는 편이며 꽤 이상하기 때문이다. 그는 정상 인성의 사고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지 않고 떳떳하지도 않으며 유독 음흉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이 음흉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남보다 똑똑하며, 세련되고 섬세하게 살아간다고 여긴다. 게다가 자신의 영리함에 특히 도취되어 있는데, 이것이 곧 스스로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인성의 이성 측면에 결여된 것이 많고 양심 안에도 정의감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 부류는 인성이 나쁘고 모두가 그와 접촉하기 싫어한다. 그는 누구의 말 한마디를 듣든 다 트집을 잡을 수 있다. 그가 이해하는 것은 모두 치우친 것, 혈기에 속하는 것, 사탄에 속하는 것, 감정에 휘둘린 편집적인 것이다. 이는 전부 음흉하고 부정적이며 진리에 위배되고 진리를 대적하는 것들로, 결코 사람이 바른길에 오르도록 이끌 수 없다. 따라서 이런 부류는 반감과 혐오감을 일으킨다. 그들은 어두운 구석이나 자신의 좁은 세계에서 살면서 특히 자기애가 넘치고 자아도취에 빠져 있으며, 자신은 남보다 섬세하고 고상하고 존귀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니, 남들이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이런 부류는 인격이 아주 천박하고 진정한 존엄이 없다. 소위 진정한 존엄이 없다는 것은 인품이 특히 형편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인성 안에서 생겨난 것들은 모두 어둡고 공개 석상에 놓을 수 없는 떳떳하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에 이 부류에게는 존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사람에게 의심이 많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기 쉽겠느냐? 속된 말로 하자면 이 부류는 속이 시커멓다. 의심이 많은 사람은 모두 꿍꿍이속이 많다. 보아라, 마왕이 하나님 선민을 탄압하고 체포하는 것은 꿍꿍이속이 몹시 많은 것으로, 결국 사람을 패가망신시키며 가족과 뿔뿔이 흩어놓는다. 그것이 바로 마귀와 마왕이 하는 짓이다. 따라서 의심이 많은 사람은 모두 좋은 작자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사람과 일을 바라볼 때 마땅히 진리 원칙을 근거로 해야지, 함부로 의심해서는 안 되며 말할 때도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이나 한 가지 일을 바라볼 때 떠올리는 생각은 최소한 긍정적이고 인정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진리 원칙에 부합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며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의심이 많은 부류가 떠올리는 사상 관점은 모두 진리에 부합하지 않으며, 적어도 긍정적인 사물은 아니다. 즉, 그가 문제를 사고하는 각도나 떠올리는 사상, 생각은 결코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부류는 어두운 구석에서 살며 인격과 존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의 사상 속에서 파생되는 것들은 모두 음흉하고 사악하며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의 생활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의 의심으로 생겨난 온갖 사상 관점을 받아들이면 너는 해를 입고 그를 따라 나쁜 길로 빠질 것이다. 이는 사탄에게 패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네가 그를 분별하고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부정적인 사물을 인식하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성장하고 분별력을 가질 수 있다. 의심이 많은 것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말하겠다.

무능하다

이어서 무능한 것에 대해 말해 보자. 무능한 것이 무슨 뜻인지는 다들 알 것이다. 사람들이 늘 “당신은 왜 그렇게 무능해요? 정말 못났네요!”라고 말하듯 어떤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능력 없어 보이는 것이다. 무능한 것이 좋겠느냐? (좋지 않습니다.) 그럼 그것을 분류해 보자. 그것은 무엇에 속하느냐? (인성의 결함에 속합니다.) 무능한 것은 분명한 인성의 결함이다. 무능한 것은 사람이 일을 처리할 때 지능이 무척 낮고 생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를 두고 무능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할 때 말주변이 없어서 표현을 잘 못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수줍음을 많이 타고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말하거나 나설 때면 주눅이 들고 겁을 먹은 채 말을 잘 못하고 늘 괴롭힘을 당한다. 어떤 악인은 이런 부류를 괴롭히는 게 당연하다고, 아주 재밌고 즐겁다고 생각해서 매일같이 이런 부류를 비웃고 놀린다. 무능한 사람은 일 처리 능력이 떨어지고, 그중 일부는 생존 능력도 떨어져서 돈을 벌 줄 모르며 무리에서 늘 움츠러들고 소심하게 행동한다. 또 기가 센 사람을 보면 숨어서 말도 못 하고 괴롭힘을 당해도 미움을 살까 봐 감히 반항하지 못한다. 이 부류의 인성이 무능한 모습을 보면 이는 단지 인성에 있는 한 측면의 결함일 뿐임을 알 수 있다. 무능하기 때문에 잘못된 사상 관점을 가지거나 자신과 남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무능한 것은 인성의 결함에 불과하다. 그럼 무능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무능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왜 그렇겠느냐? 무능한 사람은 괴롭힘을 당하고 모두에게 무시받는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만약 악한 것과 무능한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너는 악한 것을 선택할지언정 무능한 것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이렇게 생각한다. ‘무능한 사람은 되지 않겠어! 무능한 사람은 이 사회에서 구박받고 괴롭힘을 당하고 환영받지 못한다고. 어디를 가든 무시당하고 짓밟히지. 존재감도 없는 데다가 생존권마저 박탈당할 수도 있어. 하지만 악인이 되면 다르지. 악인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공손하게 대해.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고. 어디를 가든 특권을 갖고, 심지어 남의 머리 꼭대기에 서서 위세를 부릴 수도 있어. 악인은 이 세상 어디서든 잘나가.’ 그러니 지금 선택하라고 하면 너희는 무능한 사람이 아니라 악인이 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이 관점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왜 옳지 않으냐? 이는 어느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느냐? 무능한 것은 인성의 결함으로, 가장 흔히 보이는 모습은 바로 아무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며 남에게 차별받고 배척당하는 것이다. 괴롭힘당하고 사회에서 짓밟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무능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한다. 누구나 재능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심지어 두각을 나타내고 권력과 세력을 얻고 위세를 부리면서 어느 무리에서든 특권과 위신을 가지기를, 괴롭힘당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함부로 남을 괴롭힐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사상 관점이 옳겠느냐?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부합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이토록 많이 들었는데도 여전히 악인에게 찬성한다면 너희도 성품이 상당히 사악한 것이다. 악인을 보면 부러워하고 탄복하며, 속으로 악인이 나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악인을 추종하는 데다가 악인을 따르면 기댈 곳이 생기고 괴롭힘당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무능한 사람을 보면 반감을 품고 무시하며 짓밟으려 한다. 하지만 악인을 따르면 얼마나 많은 악을 행하게 되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악인을 따르면 구원받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 악인을 따르는데 악을 행하지 않겠느냐? 악인을 추종해 그의 수족이 된다면 그에게서 약간의 이득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너는 그를 따르며 위세를 부리고 호의호식할 것이고, 평생 좋은 것을 누리며 괴롭힘도 당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지위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악을 행해야겠느냐!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 얼마나 무거운 징벌을 받아야 하는지 아느냐? 그것이 바른길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런데도 무능한 사람이 되지 않고 괴롭힘당하지 않기 위해 악을 행하고 징벌받는 것까지 불사하며, 자신의 종착지와 운명을 대가로 이번 생의 즐거움을 얻고 싶으냐? 너희는 이런 사상 관점을 갖고 있지 않느냐? 사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다. 악인이 되기를 선택할지언정 무능한 사람이 되어 괴롭힘당하지는 않으려는 것이다. 이는 악인의 길을 걸으려는 것 아니냐? 무능한 것은 단지 인성의 결함일 뿐인데 나쁠 게 뭐 있느냐? 기어코 남을 괴롭히고 악을 행해야만 하겠느냐? 하나님이 네가 굶어 죽지 않도록 네게 먹을 것을 준다면 네가 굶어 죽을 리 있겠느냐? 하나님이 네가 즐겁고 자유롭게, 행복하고 기쁘고 평안하게 살도록 한다면 너는 이런 것들 중 부족한 게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남이 너를 괴롭힌들 어쩔 수 있겠느냐? 이런 것들은 누구도 빼앗지 못한다. 하나님이 네게 베풀어 준 것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네가 악인을 따라 악인의 길을 걷는다면 네가 누리는 즐거움은 모두 죄 속의 즐거움일 것이다. 그리고 네가 악을 행하는 수단을 통해 얻는 금전과 물질적 향유는 모두 강제로 빼앗는 방식으로 얻은 것이 된다. 너는 이번 생에 하나님이 네게 준 것보다 많은 것을 누렸으니 앞으로 여러 생에 걸쳐 갚아야 한다. 징벌받는 대가로 이번 생의 육체적 쾌락을 얻는 것은 바른길을 걷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 너희는 악인이 되는 것을 선택할지언정 괴롭힘은 당하지 않으려 한다. 이는 너희의 영혼 깊은 곳 악에 대한 인식이자 사랑이다. 그렇다면 무능한 것이 왜 나쁘냐? 인성이라는 각도에서 보면 이는 한 측면의 결함이지만 동시에 선천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이는 사람이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무능한 사람들도 그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무능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측면의 결함이지만 패괴 성품이나 인품의 문제는 아니다. 이게 무엇이 나쁘냐? 무능하고 지위가 낮으며 늘 괴롭힘을 당해 세상의 불공평함과 사악함, 이 사회의 어두움을 깊이 느끼고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기꺼이 하나님의 권세 아래 순종하고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하며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이 결정하게 할 수 있다면, 이 무능함은 너를 보호해 주는 것 아니겠느냐? 무능한 것은 부정적인 사물이 아니라 단지 인성에 있는 한 측면의 결함일 뿐이다. 결함이란 무엇이냐? 부족함이자 작은 문제, 흠이다. 단지 완벽하거나 완전하지 않고, 마음에 완전히 들지는 않으며, 이상적이지 않을 뿐이지, 인품이 형편없거나 악랄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너희는 왜 이런 작은 결함을 용인하지 못하는 것이냐? 게다가 이 정도의 결함은 생명 진입에도 큰 유익을 준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인성에 이런 측면의 결함이 있고 이런 선천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기에 더더욱 굳게 결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가면서 결국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구원받게 되는 거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는 복이니, 무능한 사람이 되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무능한 것이 뭐가 나쁘냐? 사람이 무능하다고 해서 패괴 성품이 더 심각해지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이 무시하거나 구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또한 무능한 것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구원받는 데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그러니 너희의 사상 관점은 바뀌어야 한다. 너희의 사상 관점은 아직 한참 멀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차라리 악인이 될지언정 무능한 사람은 되지 않을 거예요. 무능한 사람은 못나서 남들이 다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도 자기를 무시하죠. 무능한 사람이 되면 힘이 없지만 악인이 되면 얼마나 힘이 센데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데다가 만만해 보이는 사람을 괴롭혀도 아무도 감히 반항하지 못하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폼 나게 살 수 있어요!” 폼 나는 게 뭐가 좋으냐? 세상에서 잘나가고 폼이 나면 네 앞날과 종착지가 망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되며 하나님을 그리워하지 않게 된다. 또 하나님과 하나님 집의 생활 환경, 사역 환경에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되어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고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생활 환경을 찾게 된다. 하나님 집에서는 사람의 악행을 제한하기 때문에 어떤 악인도 하나님 집에서는 날뛸 수 없고 굳게 설 수 없다. 네가 악인을 좋아하고 악인이 되려 한다면 하나님 집에서 머물 수 있겠느냐? 너는 언젠가 정리되어서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자신이 행한 악으로 인해 징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무능한 것은 인성에 있는 한 측면의 결함이긴 해도 패괴 성품에는 속하지 않으며 인성이 악하다는 뜻도 아니다. 결점이 전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무능한 것은 어떤 사람이 선천적으로 말을 더듬거나 못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선천적인 결함이다. 인류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지고 있어서 선천적으로 백인인 사람도 있고 황인이거나 흑인인 사람도 있다. 이는 한 측면의 선천적인 조건이다. 황인종은 몸이 별로 건강하지 않고 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이는 한 가지 결함이다. 흑인종은 몸이 좀 건장해 보이지만 아무도 검은 피부를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백인종은 다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중에는 너무 하야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햇볕을 쬐며 구릿빛으로 피부를 그을리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야 건강해 보이고 피부도 윤기 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보아라, 무능한 것은 사람에게 있는 여러 측면의 선천적인 조건과 마찬가지로, 단지 한 측면의 결함일 뿐이다. 그게 큰 문제가 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측면의 문제가 설사 인성의 결함이라 해도 진리를 받아들이고 깨닫는 데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너희는 여전히 무능한 사람이 되는 것에 거부감이 드느냐? (이제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무능한 사람을 보면 괴롭히겠느냐?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원래는 많이 괴롭히지 않았느냐? 앞으로도 무능한 사람을 보면 무시하고 비하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너 자신이 무능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자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무능하면 무능한 대로 받아들여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한 사람이 되면 된다. 무능하더라도 정직하고 간사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좋아한다. 하나님은 무엇을 좋아하느냐? 네 무능함이 아니라 네가 무능하기 때문에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 남에게 무시당하고 호감을 사지 못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정직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고 흡족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려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처럼 무능함은 이득이 되기도 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이제 너희의 관점은 변하지 않았느냐? (변했습니다.) 물론 모든 무능한 사람이 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사람은 무능함이라는 인성의 결함 이외에 인품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논할 수는 없다. 무능함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의 인품이 어떤지도 살펴야 한다. 간사하거나 인품이 악랄하다면, 뻔뻔하고 의심이 많고 민감하고 편집적이며 심지어 성품이 흉악하다면 그 사람은 좋은 작자가 아니다. 따라서 무능한 사람도 반드시 인품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상으로 무능한 측면에 대한 교제를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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