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8) 제 1 부

사람의 자질을 분별하는 원칙

요즘 우리는 ‘각 측면의 자질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에 관해 교제하였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자질의 각 측면, 각 단계의 구체적인 모습을 교제함으로써 너희는 자질이 좋은 것이란 무엇인지, 자질이 평범한 것이란 무엇인지, 자질이 부족하거나 없는 것이란 무엇인지를 정리할 줄 알게 되었느냐? 이 측면의 내용을 꽤 많이 교제했으니, 정리할 줄 알아야 하고, 그런 다음 일상생활에서 자신과 대조해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자신과 타인을 가늠할 수 있다. 이것을 정리할 줄 모르면,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을 때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각 측면 모습과 표출도 분별하지 못한다. 그러면 헛들은 것 아니겠느냐? 정리를 잘해야 한다. 정리란 무엇이냐? 바로 이 다양한 측면의 구체적인 내용 속에서 각종 사물을 분별하거나 인식하는 원칙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면 정리하는 목적을 이룬 것이다. 원칙을 찾게 되면, 진리 원칙으로 사람과 일을 바라볼 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도 분별할 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네가 진리를 깨달았다는 증거이다. 네가 이 측면의 진리를 깨닫고 또 적용할 줄 알게 되면, 이 측면의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그러니 자질과 관련된 여러 측면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자질과 관련된 진리 원칙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진리 원칙으로 사람의 자질 가늠하기

1. 자질이 좋은 모습

자질이 좋은 사람을 전반적으로 어떻게 가늠할지, 그 원칙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부적인 측면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많이 교제했는데, 그 구체적인 모습들로 사람의 자질이 어떠한지를 가늠한다. 그렇다면 자질이 좋은 사람은 전반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그의 마음속에는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구체적인 원칙이 어느 정도 있다. 진리를 깨닫지 못했거나 아직 진리를 듣지 못한 상황에서도 그는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즉, 처신에 마지노선이 있는 것이다. 이 처신의 마지노선은 어느 정도 상대적으로 진리 원칙에 부합하거나 근접하며, 최소한 인성의 양심과 이성 기준에 근접한다. 그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받아들여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은 후에는 많은 일이나 특별한 환경을 겪지 않았음에도 마음속으로 진리 원칙을 어느 정도 깨닫고 파악할 수 있으며, 실생활에서도 이런 원칙을 적용해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처리할 수 있다. 물론, 그가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처리할 때는 간단한 한 가지 문제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복잡다단한 사람과 일, 사물을 마주할 때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을 적용해 대하고 처리한다. 자질이 좋은 사람은 원칙과 관련된 문제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 그는 자질이 좋아서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통해 스스로 하나님 말씀 속에서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바라보고 처리하는 원칙을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자질이 좋은 사람은 독립적으로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고, 독립적으로 각 사역을 완수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좋은 모습이다. 주로 어떤 모습이 있느냐? (주로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통해 하나님 말씀 속에서 스스로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바라보고 처리하는 원칙을 찾아낼 수 있으며, 독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독립적으로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맞다.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써 진리를 깨닫고,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바라보고 처리하는 원칙을 찾을 수 있으며, 독립적으로 사역을 맡을 수 있어야 자질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앞서 독립적으로 사역을 맡으려면 각종 능력을 두루 갖춰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그리고 지금 진리 원칙으로 가늠하니, 자질이 좋은 사람이 바로 이런 모습을 갖추고 있다.

2. 자질이 평범한 모습

자질이 평범한 사람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분명 자질이 좋은 사람보다는 많이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자질이 좋든 평범하든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받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올바른 처신의 원칙을 지닐 수 없다. 처신의 원칙을 파악하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받아 진리를 깨달아야 하며, 그 기초 위에서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서야 점차 처신의 원칙을 알 수 있다. 자질이 평범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 말씀의 기본적인 뜻과 요구 기준만 이해할 수 있다. 도리로는 이해하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진리 원칙을 적용할 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지도와 공급을 받거나 많은 일을 겪은 후에야 기본적인 진리 원칙을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다. 여기서 ‘기본’이란 무슨 뜻이냐? 그가 깨닫고 파악한 원칙들이 기본적으로 단일하고 단순한 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문제는 처리하고 해결할 수 있지만, 복잡한 상황이나 배경에 직면하면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몰라 반드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야만 복잡한 문제나 여러 사역에 대처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다. 자질이 평범한 사람은 어떤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느냐? 스스로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깨달아 실행 원칙을 찾지 못하며,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 과연 무엇인지 정확하게 깨닫지 못한다. 누가 교제하고 붙들어 주며, 검토해 주고, 분명하게 알려 주고, 일깨워 줘야 비로소 ‘이게 진리 원칙이니까 기억해야 해. 이대로 실행하고, 이 사역지침대로 시행해야 해.’라고 알게 된다. 이는 이해하는 측면에서 본 것이다. 다음으로 사역하는 측면에서 보면, 사역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각 부류의 사람과 일, 사물을 바라보거나 처리하는 데 진리 원칙을 빨리 적용하지 못한다. 그저 일부 기본적인 진리 원칙만 깨달은 상태에서 단일 사역만 처리할 수 있을 뿐이다. 여러 진리 원칙과 관련된 복잡한 사역에 직면하면 누군가가 검토해 주고 붙들어 주며 공급해 줘야 한다. 이것이 자질이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다. 개인적인 이해 측면에서 보면 누군가가 교제해 주고 검토해 줘야 한다. 또 많이 들어야 하는데, 그것도 한 가지 측면의 진리만 들어서는 안 되고 여러 측면의 진리를 들어야 한다. 결국 누군가가 각 측면 진리의 기본 원칙이 무엇인지 알려 줘야 조금이나마 깨닫는데, 복잡한 상황이 닥치면 또다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또 구해야 한다. 이는 이해하는 측면에서 본 것이다. 사역이나 실생활에서 갖가지 일을 처리할 때도 그의 문제 처리 능력은 진리 원칙을 지켜 단일 사역을 처리하는 정도에 그친다. 여러 가지 진리 원칙과 관련된 복잡한 사역을 마주하면 힘에 부쳐서 구해야 하고 누군가가 검토해 줘야 한다. 그 자신도 일을 잘 해낼 자신이 없고, 자신이 한 사역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니 때때로 편차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그런 편차는 그저 편차일 뿐, 치우침은 아니다. 만약 치우침이라면 그것은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편차와 치우침은 차이가 있다. 편차란 진리 원칙에 그다지 부합하지 않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하지만 방향은 맞다. 다만 사역 경험이 부족하거나 진리를 너무 얕게 깨달아서, 혹은 진리 원칙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서 기준에 미치지 못했을 뿐이다. 기준에 근접했을 수는 있으나, 완전히 기준에 맞으려면 더 보완해야 한다. 이것이 자질이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다. 이런 부류의 주된 특징은 무엇이겠느냐? (한 가지 사역을 독립적으로 해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도와주고 붙들어 주어야 어느 정도 사역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이해 측면이든 본분 이행 측면이든 전부 상대적으로 부족하며, 기본적으로 혼자서는 한 가지 사역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누가 붙들어 주고, 검토해 주고, 일깨워 줘야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자질이 평범한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이성은 일할 때 많이 구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얼른 겸허히 구하거나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 원칙의 근거를 찾거나 윗선에 구해야지, 혼자서 맹목적으로 무턱대고 처리해서는 안 된다. 한동안 사역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부분이 많다면 즉시 정리해서 기록하고 윗선에 구해야 한다. 목적은 그 기간 동안 네가 한 사역에 편차나 허점이 있는지 윗선에서 검토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사역 경험이 있다고 해서 너무 독선적으로 굴지 마라. 또한 주제 파악을 해야지 스스로 잘났다고 착각하지 마라. 평범한 자질의 모습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평범한 자질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무엇이냐? (독립적으로 사역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붙들어 주고 도와주며 검토해 줘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측면에서의 특징은 무엇이냐?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일부 기본적인 원칙만 이해할 수 있을 뿐, 아직은 사역에 실제로 적용하지 못합니다.) 사역 능력 측면에서의 특징은 무엇이냐? (사역 능력 측면에서 볼 때, 평범한 자질을 가진 사람은 각종 문제를 바라보거나 처리할 때 진리 원칙을 빨리 적용하지 못합니다. 또한 단일 사역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역이 관련되면 원칙을 파악하지 못하고, 각 사역의 경중과 완급을 따져서 잘하지 못하며, 합리적인 사역 배치는 더더욱 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누가 방향을 잡아 주고 수시로 도와주며 붙들어 줘야 합니다.) 그렇다. 평범한 자질을 가진 사람은 혼자서 단일 사역을 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 사역 경험이 있는 상태에서는 간단한 사역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문제, 특히 여러 가지 진리 원칙이 관련된 사역을 마주하면 머리가 멍해져서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모른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돌아서면 또 저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지 모르고, 일을 마친 후에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도 가늠하지 못하니, 이런 상황에서는 길이 없는 것이다. 평범한 자질을 가진 사람은 단일 사역은 감당할 수 있어도 여러 가지 사역이나 조금 복잡한 사역을 마주하면 머리가 멍해진다. 너희 중 일부 리더 일꾼이 한 가지 사역을 맡으면 그럭저럭 감당하지만, 두세 가지 사역을 맡으면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으로는 잘하고 싶어도 이르지 못한다. 사역으로 바쁜 와중에 누가 이런저런 문제를 제기하면 머리가 멍해져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결국 어떤 사역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이것이 평범한 자질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다. 자질이 평범한 사람은 두세 가지 사역을 동시에 감당하지 못하며, 특히 복잡한 상황이나 특수한 상황이 닥치면 바로 머리가 멍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원래 잘할 수 있던 사역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가 맡은 사역은 문제가 생기고 지체된다. 그러므로 자질이 평범한 사람은 두세 가지 사역을 맡아서는 안 되며, 단순한 사역 한 가지만 하는 것이 적합하다. 어떤 리더 일꾼은 항상 사역을 단순하게 생각해 다른 사람들이 무슨 문제를 제기해도 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상대의 머리가 이상해서 일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라고 여긴다. 결국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윗선에 보고한다. 이런 리더 일꾼은 체험이 너무 적고 식견이 없어서 사역을 할 때면 모든 일이 순조로울 거라고만 생각해 일부 규례만 지키면서 앞만 보고 달린다. 아무리 큰 문제가 생겨도 의식하지 못하고,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전체 사역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은 더더욱 의식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자질이 평범한 사람이 인성의 여러 측면에서 모두 기준에 맞는다면, 기본적으로 단일 사역은 감당할 수 있다. 그가 전반적인 사역을 독립적으로 완수하지 못한다고 하는 이유는, 그의 자질로는 단일 사역만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기 취미와 관심사, 특기와 관련된 사역은 그의 자질로 보아 감당할 수 있지만, 여러 사역과 관련된 복잡한 상황이 오면 갈피를 못 잡는다. 설령 실제적인 체험이 있다 해도 그의 자질로는 부족하다. 혹자는 “제가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건가요?”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질이 평범한 사람은 마흔이나 쉰이 넘어도 여러 사역을 감당하지 못한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설령 네가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여 일부 단일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어도 여전히 지도하고 검토하고 점검해 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만 독립적으로 사역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지, 결코 독립적으로 여러 사역을 감당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평범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다년간의 체험을 통해 어느 정도 경험도 쌓고 진리 원칙도 어느 정도 깨달았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여러 사역, 특히 한 분야의 사역을 혼자 맡지는 못한다. 복잡한 상황이 닥치면 머리가 멍해지고, 일의 경중과 완급을 구분하지도 못하니, 이런 사람의 자질은 분명 평범한 것이다. 사역 경험은 한 사람의 사역 능력의 일부일 뿐,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자질과 각 측면의 능력이야말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사역 경험은 단지 참고가 될 뿐이다. 물론 그것도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가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적인 사역 경험이 있다고 해서 여러 사역의 원칙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네가 자질이 좋고 진리 원칙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사역 경험이 없거나 경력이 그리 많지 않더라도 전체 사역을 독립적으로 감당할 수 있으며, 한 분야를 혼자 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질이 평범한 사람은 전체 사역을 독립적으로 완수하지 못한다. 오직 단일 사역만 완수할 수 있으며, 그마저도 늘 누가 알려 주고 검토해 주고 도와주고 지도해 줘야 한다. 그러니 자질이 평범한 사람은 어떤 단일 사역을 잘할 수 있다고 해서 여러 사역을 감당할 수 있고 한 분야를 혼자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착각이고 잘못된 인식이다. 네가 단일 사역을 독립적으로 완수하는 것과 여러 사역을 독립적으로 완수하여 한 분야를 전적으로 맡는 것은 차이가 있다. 이는 너희가 천천히 체험해 보면 알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년간 리더 일꾼으로 있으면서 실제적인 체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이해가 되지, 평범한 형제자매들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여러 사역을 맡아 본 리더 일꾼은 실제적인 체험이 있어 그 차이를 알고 있기에 사역을 할 때 원칙이 있지만, 자질이 평범한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 자질이 평범한 사람의 모습은 이것으로 정리를 마치겠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