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제 4 부
제7조 변별 능력
판단력에 대한 교제를 마쳤으니 이제 변별 능력에 대하여 얘기해 보자. 변별 능력이란 무엇을 말하느냐? 주로 사람과 일, 사물의 긍정과 부정, 맞고 틀림, 옳고 그름을 변별하는 능력을 말하며, 사람과 일, 사물을 규정하거나 분류하여 직면한 사람과 일, 사물을 유형별로 구분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변별의 본래 취지와 목적은 바로 사람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고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분류라는 것은 날짐승은 날짐승으로, 동물은 동물로, 식물은 식물로 분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별 능력은 그런 것을 변별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의 속성을 변별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너는 각 부류 사람들의 모습과 표출, 그리고 본질을 구분할 수 있느냐? 네가 만나는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의 속성을 정의할 수 있느냐? 불신파를 변별하는 경우, 너는 그가 불신파임을 명확히 식별할 수 있게 해 주는 표출이 어떤 것들인지 변별할 수 있느냐? 만약 불신파에게 어떤 특성과 특징이 있는지, 그가 어떤 인성을 드러내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어떤 사상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안다면, 너는 불신파를 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자질이 좋은 사람은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이 나타났을 때, 그것이 긍정적인 사물인지 부정적인 사물인지, 긍정적 인물인지 부정적 인물인지, 정의로운 것에 속하는지 사악한 것에 속하는지, 옳은 것에 속하는지 그릇된 것에 속하는지를 변별해 낼 수 있다. 그는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의 속성을 정의할 수 있고, 그것이 인성이나 진리에 부합하는지 변별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자질이 좋은 사람이다. 자질이 보통인 사람은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의 속성이 명백한 경우에는 변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어디 있어요? 어디에 계신가요? 저는 왜 확신이 안 서죠?” 그는 하나님을 명백하게 부정하는 이런 말은 어느 정도 분별할 줄 알고, 그 사람이 불신파이고 부정적 인물이라는 사실을 변별할 수 있다. 명백한 악, 명백하게 부정적이고 정의롭지 않고 사악한 사물은 변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싸한 것이나 사람들이 흔히 들어보지 못한 중간 지대, 회색 지대에 있는 일부 사물은 구분하지 못하고, 구별해서 대하지도 못한다. 그는 명백한 악행을 저지른 악인에 대해 분별 능력이 있다. 그 사람이 악인이며, 그런 악인이 리더가 되고 지위가 생기면 곧 적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인품은 좋지 않지만 아직 악을 행하지 않았다면, 그가 악인 부류로 구분될 수 있는지, 어떤 악한 일들을 저지를 수 있는지 변별하지 못하고, 그의 속성을 정의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보통 자질이다. 어떤 사람들은 음란한 짓을 하거나, 우상을 숭배하거나, 세속을 따르거나, 시비를 가리기 좋아하거나, 자주 사람을 억압하고 괴롭히거나 살인, 방화를 저지르는 등 비교적 명백한 행위를 한다. 그는 그런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하고, 구분해 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가 꽤 훌륭해서 항상 베풀고, 돕고, 인내하며 사람들과 무난히 어울리고, 겉으로 볼 때 인성이 아주 좋지만, 말과 행동이 진리에 어긋날 때가 많고, 자주 진리 원칙에 위배되는 일을 한다. 그는 그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대체 어느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지 분별하지 못한다. 명확하고 전형적인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해서는 맞고 틀림,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고, 정의로운지 사악한지, 긍정적인 사물인지 부정적인 사물인지 분별할 수 있다. 이런 표면적인 일은 구분할 줄 알지만, 비교적 원칙성이 강하고 진리와 관계된 사람과 일, 사물은 구분하지 못하며 어떤 것이 분명히 진리에 부합하고 어떤 것이 진리에 위배되는 것인지 분별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보통 자질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입은 옷의 원단이 비교적 좋아서 마치 세상의 고위층 인물이나 화이트칼라 엘리트처럼 품위 있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그는 이를 보고 “저 옷은 이방인이 좋아하는 옷이에요. 하나님을 믿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좋아해서는 안 되죠. 저건 긍정적인 사물이 아닙니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틀렸다. 그 옷은 관능적이거나 요염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품위 있고, 단정하고, 점잖아 보여서 사람을 고귀해 보이게 한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사람을 고귀하고 품위 있어 보이게 하면서도 현재 유행하는 옷을 부정적인 사물로 간주하며 그것을 사악하다고 한다. 이것은 변별할 줄 모르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변별 능력은 어떠냐? 기껏해야 보통이다. 이것이 바로 보통 자질이다. 그는 이방인들도 구분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 자질이 좋은 이방인들도 인성의 좋고 나쁨을 분별할 수 있는데, 그는 분별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은 뒤 도리를 좀 깨달아도 긍정적, 부정적 두 가지 사물을 구분할 수 없다. 명백한 것은 분별할 수 있지만, 명백하지 않은 것은 분별하지 못한다. 명백한 악인, 명백한 방해와 교란, 명백한 원칙 위배는 그래도 분별할 수 있지만, 비교적 특수하고, 기이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일부 사람과 일, 사물은 변별할 줄 모른다. 다른 사람이 교제하거나 일깨워 줘야, 또는 사람들이 명백한 일을 저질러야 비로소 변별해 낼 수 있고, 그러지 않으면 변별할 줄 모른다. 이런 것이 보통의 변별 능력에 속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그 어떤 사람과 일, 사물도 변별할 줄 모르고, 그 속성을 정의할 줄 모른다. 예를 들어 어떤 부류 사람들의 속성이 과연 무엇인지, 즉 진정으로 믿는 사람에 속하는지 아니면 불신파에 속하는지, 이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양성할 만한 대상인지 판단해야 하는데도 그는 전혀 모르고 구분해 내지 못한다. 설령 그 사람들이 많은 모습이나 명백한 문제를 드러내도 그는 변별해 내지 못하고, 그 속성을 정의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변별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는 흔히 볼 수 있고 쉽게 분별할 수 있는 사람과 일, 사물이 나타나도 그 사람이 과연 좋은 사람인지 아니면 악인인지, 그 일이 정의로운 일에 속하는지 아니면 사악한 일에 속하는지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 그런 것을 어떻게 구분하고 어떤 부류로 분류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분류할 줄도 모른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사람들과 교제해도 변별할 줄 몰라서 결국 남에게 확정해 달라고 한다. “당신이 그를 뭐라고 정의하든 그게 맞아요. 당신이 정의롭다고 하면 정의로운 사람이고, 사악하다고 하면 사악한 사람이죠.” 어쨌든 그 스스로는 정의도, 결론도 내릴 줄 모른다. 무슨 일이든 결론을 내린다는 얘기만 하면 그는 멍해지고 할 말을 잃는다. 이것이 변별 능력이 없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가장 간단한 표면적인 현상을 두고 그것의 성질과 속성이 어떤지 한번 변별해 보라고 해도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는 누가 어떤 말과 일을 했는지 너에게 시시콜콜 알려 준다. 네가 “이 사람은 과연 진정으로 믿는 사람인가요? 간절히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인가요?”라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쨌든 그는 믿은 지 10년이 넘었고, 가정과 일을 버렸어요. 자기 아이가 3, 4살 때 형제자매에게 맡기고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했죠.” 그는 이렇게 잔머리를 굴리며 직접 결론을 내지 않고 네가 판단하게 한다. 네가 다시 “그렇다면 이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인가요?”라고 물으면 그는 “어쨌든 그는 교회 리더를 맡은 뒤로는 계속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들어요.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인지 얘기하자면, 아무튼 한번은 형제자매가 의견을 제시했는데, 그때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죄스럽고 자기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라고 대꾸한다. “그럼 나중에 회개는 했나요?” “아무튼 당시 태도는 아주 좋았어요.” 그는 너에게 많은 정보를 알려 주면서 자기에게 뭔가가 있음을 네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자기는 무엇이든 다 알고 사람도 볼 줄 아니까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그는 사람도 분별할 줄 모르고 결론도 내릴 줄 모른다. 네 앞에서 그저 현상과 정보만 잔뜩 늘어놓은 다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변별하게 하고, 네가 결론을 내려 그 사람의 속성을 정의하게 만든다.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편이네요. 하나님도 열심히 믿는 걸 보니 진정으로 믿는 사람인데, 다만 자질이 부족해서 받아들이는 능력이 없어요. 진리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만 언제나 실행 원칙을 찾지 못하고, 진리를 실행할 줄 모르는군요.” 네가 이렇게 말하면 그는 대답한다. “제가 볼 때 그는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얘기만 하면 울죠. 늘 똑같은 태도예요.” 보아라, 자기는 변별 능력도 없으면서 이때다 하고 묻어가려 하니 골치 아프지 않으냐? 변별 능력이 없는 사람의 가장 흔한 모습은 바로 현상과 정보, 난제, 일의 경과를 잔뜩 늘어놓거나, 자기가 본 그 일의 광경을 모조리 얘기한 다음, 네가 정의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네가 정의를 내리면 자기도 그게 좋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인 후에도 네가 왜 그렇게 정의하는지, 네가 내린 결론의 근거와 원칙이 무엇인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처리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는 이런 것들을 하나도 모르고, 교제하고 공부해도 여전히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변별 능력이 없는 것이고, 자질이 없는 모습이다. 그는 또한 자주 사실을 왜곡하고 착각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어떤 문제를 논하든 문제의 근원과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표면적인 현상을 근거로 결론을 내린다. 예를 들어, 그는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한 것을 과오라고 하면서 적그리스도가 그것을 인식하기만 하면 고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을 한 마디 하면 간사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을 보면 악인으로 규정한다. 이것이 바로 변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자주 저지르는 잘못이다. 누구에게나 변별 능력은 생활에서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마주할 때 마땅히 갖추어야 할 한 측면의 자질이다. 변별 능력은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의 본질을 변별하는 것은 물론, 그 속성을 규정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규정할수록 변별 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만약 네가 내린 판단이 별로 정확하지 않고 사물의 본질이나 근원과 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네 변별 능력이 보통이라는 뜻이다. 사람과 일, 사물의 속성을 규정할 줄 모르고 간파할 수도 없다면, 그것은 너에게 변별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너는 어떤 사람의 모습과 표출은 얼마든지 얘기할 줄 알면서 정작 그의 본질은 간파하지 못한다고 해 보자. 그러니까 그 사람이 쉽게 소극적으로 변한다거나 어떤 특기가 있다는 얘기만 할 줄 알고, 그에게 발생한 많은 일만 얘기할 줄 알 뿐, 정작 그 사람의 인품, 자질, 그리고 진리를 대하는 태도는 모르고,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도 간파하지 못하며, 그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해 어떤 정의도 내리지 못한다. 이런 일들이 옳은지 그른지, 정의로운지 사악한지, 긍정적인 사물인지 부정적인 사물인지, 좋은 인성의 표현인지 악한 인성의 표현인지 등을 하나도 간파할 줄 모르고 분별할 줄 모른다. 또한 아무리 많은 진리를 듣고 아무리 많은 체험 간증을 들어도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변별하거나 구분할 줄 모르고, 속으로 각종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해 아무런 정의도 내리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변별 능력이 없는 것이고, 자질 없는 모습 중 하나이다.
변별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자기 주제도 모르고 교만하고 독선적일 경우 가장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 무엇이냐? 다른 사람이 어떤 모습을 약간 드러내면 그것을 빌미로 죄를 덮어씌우고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어떤 사람들이 조금만 제멋대로 굴어도 그것을 보고 악인 같다고 하고, 마귀라고 한다. 이것은 틀려도 한참 틀리지 않았느냐? 사람이 조금 제멋대로 구는 것은 가정 형편이나 성장 환경으로 인해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이 형성되었거나 나쁜 습관, 나쁜 버릇이 길러진 것이다. 전반적으로 보아 인품이 비록 선량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악한 것도 아니라면 그 사람을 악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변별 능력이 없는 사람은 한두 마디 말이나 한두 가지 행동을 가지고 맹목적으로 정의를 내린다. “이 사람은 성격이 유별나고, 사교성이 부족하고, 제멋대로군요. 악인이네요.” 이것은 정의를 잘못 내린 것이다. 진정한 악인은 듣기 좋은 말을 하며 사람을 구슬릴 줄 안다. 수완이 있고, 감추거나 속이며 다른 사람을 가지고 놀 줄 안다. 어떤 악인은 베풀 줄도 알고, 남을 도울 줄도 알고, 인내할 줄도 안다. 그러면 변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저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죠.”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다. 변별 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선거할 때 악인에게 투표해서 리더로 선출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무엇이나 다름없느냐? 악인을 도와 악을 행한 것이다. 어떤 악인은 자신의 악을 행위로 표현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으며 마음속에 담아 둔다. 그가 하는 행동은 모두 목적성을 띠고, 그의 속셈은 모두 은폐되어 있다. 네가 볼 수 있는 그의 행동은 사실 모두 그의 본뜻이 아니며, 그의 진정한 속셈과 목적, 그의 사악함은 모두 마음속에 숨겨져 있다. 변별 능력이 없어서 그를 분별할 줄 모르면 그런 사람을 좋은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여기기 쉽다. 어떤 사람들은 성격이 솔직하다. 사람들과 사귈 때 수완이 없고, 말도 직설적으로 한다. 성격이나 성질은 조금 거칠어도 인성에는 사실 큰 문제가 없고, 단지 가끔씩 퉁명스러운 말투로 얘기할 뿐이다. 하지만 그가 드러내는 것은 그의 마음속 생각으로, 그의 속에 있는 생각이 고스란히 겉으로 드러난다. 사람들은 종종 그가 사람들과 어울릴 줄 모르고 사교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그가 말하는 방식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는 상당히 퉁명스럽고 직설적으로 말해서 무의식적으로 늘 남에게 상처를 주며, 그러다 보면 다들 상처를 받아서 아무도 그에게 호감을 갖지 않는다. 일부 분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악하다고 하는데, 사실 그는 악하지 않다. 그가 악하다고 하려면, 그가 사람들을 괴롭힌 증거를 가져와라. 그가 누구를 괴롭히고 누구를 억압하였느냐? 누구를 해치고 누구를 속였느냐? 만약 정말 그 사람이 악인이라는 것을 입증할 사실적 근거가 있다면, 그가 단지 말로만 남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라 내면에 악이 있고 정말 사람들을 해치는 인간이라면, 그를 악인으로 규정해도 된다. 만약 남에게 상처를 주려는 저의가 없다면, 그는 악인이 아니라 그저 성격이 솔직하고 말투가 퉁명스러운 것이고, 그것은 천성이다. 말을 퉁명스럽게 하는 것은 기껏해야 인성의 결점이나 결함에 불과하다. 그는 말하는 방식에 신경 써 가며 사람들과 대등하게 얘기할 줄 모르고, 포용하고 맞춰 주고 인내하고 양보할 줄도 모르며, 다른 사람의 기분을 배려할 줄도 모른다. 그는 이런 것을 모르고 인성 안에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분별할 줄 몰라서 이런 부류의 사람을 악인으로 간주한다. 사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행동할 때 그래도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록 말투는 조금 퉁명스럽지만 남을 해한 적도 없고 남을 해하려는 마음도 없다. 다만 말할 때 요령이 없고 장소를 가리지 않을 뿐이다. 인성의 일부 결함이나 결점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악인으로 오해하지만 그가 악을 행한 사실은 제시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판단 실수이고, 이런 부류의 사람을 정확히 변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한 악인은 겉으로는 남에게 상처 주지 않고, 베풀고, 도와주며, 말할 때도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보살피고, 양보하는 데다가 심지어 포용하고, 사랑하는 등 말과 행동은 매우 훌륭하지만 특수한 상황이나 특수한 일, 자신의 이익이 걸린 일에서는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곤경에 빠뜨리고 뒤에서 몰래 해를 입힐 수 있으며, 심지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 설령 자기 이익과 관계가 없더라도, 또는 손쉬운 일이더라도 그는 지키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는 아주 훌륭하게 살고, 인성에 어떤 결점이나 결함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바로 전형적인 악인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사람을 분별하지 못해서 그의 수완과 처세 철학, 음모와 계략에 속아 넘어간다. 누가 이런 사람이 악을 행한 사실과 본성 본질을 폭로해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하나님 집에서 양성하고 중용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이런 부류를 분별할 줄 모른다. 그가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을 근거로 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느냐는 둘째 치고, 그의 자질만 가지고 얘기하자면, 이렇게 명백한 악인도 그는 좋은 사람으로 간주하고, 설사 악을 행한 사실이 있어도 이 악인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니,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다. 변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지적 장애인, 백치일 뿐만 아니라 머저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악인은 전에 사람들을 억압하고, 괴롭히고, 각종 수단으로 사람들을 농락했다. 그는 그것을 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것이 악이라는 점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또한, 악인이 가진 명백한 모습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 집의 이익을 결코, 단 한 번도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령 말 한 마디면 되는 일이거나 손쉬운 일이더라도 지키지 않는다. 더군다나 자신의 신변 안전, 혹은 지위나 명예와 관계된 일이라면 더더욱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처럼 명백한 악인도 간파하지 못하는데, 네가 볼 때 이런 사람들에게 자질이 있겠느냐? 악인은 악한 본질을 가지고 있고, 누구든 억압할 수 있다. 자신의 지위나 이익과 관련이 있다면 그는 누구든지 억압한다. 분별이 없는 사람은 이런 것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분별이 없는 사람은 머저리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는 악인이 자신을 억압할지 안 할지조차 모르니, 이 사람들은 어느 정도로 멍청한 것이냐? 멍청하기 짝이 없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아무런 변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심지어 어떤 악인들이 교체된 뒤에도 그 악인이 하나님을 오래 믿었고 은사가 있고 말을 잘한다는 이유로, 또 수완이 있고 겉보기에 버리고 헌신하고 고생도 견딜 줄 안다는 이유로 직접 나서서 그를 변호하고 두둔하며 그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들은 그 악인이 얼마나 많은 악을 행했는지는 얘기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그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딴마음을 품지 않았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심지어 큰 붉은 용에게 잡혀서 고문당하고 수감된 적도 있고, 아무개 형제자매를 도운 적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것만 보고 그 사람의 악행은 보지 않으며, 그 사람이 악을 얼마나 많이 행했는지는 얘기하지 않는다. 너무 멍청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사람은 구제할 방법도 없고 약도 없다. 변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질이 없는 부류이고, 아무런 능력도 없다. 즉 이런 부류는 어떤 일이 옳은지 그른지, 혹은 어떤 사람이 긍정적 인물인지 부정적 인물인지 전혀 모르고 변별하지 못한다. 한 사람의 행위와 모습, 패괴 표출, 그리고 그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사실을 통해서도 그의 본질과 본성을 명확히 보지 못하고, 그의 속성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그가 교회에 있는 한 그를 형제자매로 대하고, 진정 사랑으로 대하는 등 어느 누구에게도 분별이 없고 원칙대로 대할 줄 모른다. 이런 사람은 변별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는 각종 일에 대해 그것이 정의로운지 사악한지, 사람에 대한 영향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옳은 일로 여겨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그릇된 일로 여겨 분별하고, 거부하고, 배척해야 할지, 이런 것들을 전혀 모르고 변별할 줄 모른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면 그런 일이 좋은 일이 아니고,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하나님 집에서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다음에 또 그런 일을 만나면 여전히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고 원칙을 적용하지 못해서 또다시 예를 들어 주어야 이해한다. 즉, 일일이 얘기해 주고 어린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식으로 가르쳐야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변별 능력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것이 정의로운지 사악한지, 옳은지 그른지, 긍정적인 사물인지 부정적인 사물인지, 과연 진리에 부합하는지, 인성의 필요에 부합하는지, 하나님 믿는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는 하나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변별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변별 능력이 좋은지 나쁜지는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느냐? 그것은 각종 사물의 속성에 대해 내리는 정의가 정확한지에 달려 있다. 정의가 정확하면 변별 능력이 있는 것이다. 만약 각종 사물의 속성에 대한 정의의 정확도가 50% 이상이면 변별 능력이 보통이거나 보통 이상이고, 50% 미만이면 변별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정확도가 1%도 되지 않으면 변별 능력이 없는 것이고, 자질이 없는 사람이다. 변별 능력이 있고 없고는 이렇게 구분한다. 이 부분은 더 이상 예를 들지 않겠다. 이야깃거리를 남겨둘 테니 너희끼리 교제하도록 해라.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