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제 5 부

권력에 아첨하는 것

또 다른 부류로는 권력에 아첨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이 좋겠느냐? (좋지 않습니다.) 무엇이 좋지 않으냐? 이런 부류의 사람은 너무 지위와 이익만 중시한다. 지위가 있는 사람을 보면 끊임없이 아첨하고, 먼저 말을 걸거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밥을 챙겨 주고 빨래와 청소를 해 주는 등 모든 일을 기꺼이 한다. 하지만 만약 네가 지위가 없으면, 그는 너를 보고도 못 본 척할 것이며, 네가 먼저 다가가면 이 부류는 너를 보고 바로 표정이 나빠질 것이다. 이런 사람이 좋겠느냐? 이런 문제는 어느 측면에 속하겠느냐? (이런 부류의 사람은 인격이 저열하고 인성이 나쁩니다.) 인성이 좋지 않고, 인격이 저열하다. 인성이 어느 정도로 나쁘겠느냐? (인격과 존엄이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권력에 아첨하는 이런 부류가 선량한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겠느냐? 권력에 아첨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인성과 인격은 어떻겠느냐? 같은 사람을 대할 때 전혀 다른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들이 알아차릴까 봐 두려워하지 않으며 태연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 염치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염치가 없는 이런 부류는 악인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왜 악인으로 분류할 수 있겠느냐? 사람을 대할 때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얼굴의 근원을 분석해 보자. 이런 부류는 유독 지위를 좋아하고, 신분과 권력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지위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입속의 혀처럼 굴고, 아무 거리낌없이 아부하고 아첨하며,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비위를 맞춘다.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중시하고 발탁하기를 바라는 속셈과 목적이 있든, 어쨌든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진리 원칙을 위배하는 것으로,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 이런 태도를 취하겠느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이는 그가 특히 지위를 좋아한다는 증거이다. 그 자신은 능력이 없거나 자격과 조건이 안 돼서, 또는 기회가 없어서 지위를 얻지 못하지만,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아첨하고 다가가는 것으로도 지위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없이 뻔뻔하게 상대방에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것이다. 이는 매우 저열한 인격이다. 그는 지위가 있는 사람이 누구든 상관하지 않으며, 그 사람의 인성이 좋은지 나쁜지, 악인인지 아닌지도 분별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위와 돈만 있으면, 설령 악인이라도 아첨한다. 이는 너무 원칙이 없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지위가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 다 옳고 좋으며, 어떤 말이든 다 괜찮다는 것이다. 그저 지위가 있는 사람이기만 하면 원칙이라고는 전혀 없이, 비정상적으로 잘해 준다. 그러니 염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개의치 않으며, 다른 사람의 평가도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또 그는 ‘나는 지위가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에게 잘해 주고 싶어. 지위가 있는 게 뭐가 나빠? 당신들은 지위가 없으니 내가 잘해 줄 이유도 없지!’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류는 원칙과 존엄이 없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평가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이는 인격이 저열한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하면서 양심의 지각도 없고, 이성에도 어떠한 판단 기준이 없으며, 마지노선도 없다. 사람이 물러서 지위 있는 자를 만나면 그 즉시 머리를 조아리며 노예가 되고 아랫사람이 되어 버리니, 누구라도 지위만 있으면 그의 상전이 될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 인격과 존엄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는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낯간지러운 말이라도 서슴없이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이 많아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위 있는 사람을 대하는 그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그 지위 있는 사람이 지위를 잃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는 또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가 어떻게 대하겠느냐? (바로 무시할 것입니다.) 바로 표정이 굳어지며, 예전과 완전히 다른 태도로 대한다. ‘지위를 잃었는데도 내가 잘해 주기를 바라다니, 꿈도 꾸지 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 한 잔만 따라 달라고 해도 무시하고, 도움을 요청해도 무시하며, 그와 이야기하면서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도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습니까? 저와 이야기할 자격이 있냐고요. 당신이 누군데요?” 이 얼마나 흉악한 성품이냐! 지위 없는 게 죄라도 되느냐? 그 직함을 잃었다고 사람이 바뀌기라도 하느냐? 여전히 같은 사람 아니냐? 어째서 자기와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냐? 어째서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냐? 동물도 어떤 어려움이 있어 도움을 필요로 하면, 사람은 양심상 도와주고 챙겨 주고 보살펴 줘야 한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느냐? 하지만 그는 이런 인정미조차 없다. 이러한 모습 외에도 더 심한 사람도 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예전에는 당신이 지위가 있었으니까 잘해 준 거지. 이제 지위가 없어졌는데도 여전히 내가 당신을 존중하고, 체면을 봐주고, 말할 때도 여지를 두고, 또 예전처럼 시키는 대로 할 거라고 생각해? 어림도 없지! 당신을 짓밟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 이는 어떤 작자냐? 사람이 어려움에 부닥쳤는데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뒤에서 짓밟으려 하고, 괴롭히고 억누를 기회를 엿보다니, 이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악인입니다.) 악인의 본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느냐?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는 아랫사람처럼 예의 바르고 착실하게 굴며 웃는 얼굴로 마주한다. 말을 할 때도 비위를 잘 맞춰서 지위가 있는 사람이 달에도 감자를 심을 수 있다고 하면 “달에서 키운 감자가 정말 맛있다죠!”라고 한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지위를 잃으면 태도가 180도 변해 그가 하는 어떤 말이 옳을지라도 듣지 않으며, 아무리 참된 인식을 가지고 있어도 거들떠보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저 못마땅해하기만 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이 지위가 없으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옳은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야? 진리 실제가 있다고 해도 난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 난 지위가 없는 사람을 짓밟는 게 좋아. 짓밟을 기회를 놓치면 안 되지!’ 이는 어떤 작자냐! 네가 지위가 없으면 너를 못마땅하게 보는데, 아무리 잘해 줘도 소용이 없고, 아무리 그와 동등한 입장에서 원칙대로 대해 줘도 너에 대한 그의 태도는 바뀌지 않는다. 이런 부류에게 인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인성이 없는 모습은 무엇이냐? 흉악함 아니냐? (그렇습니다.) 권력에 아첨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성품이 극도로 흉악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역겹다. 그런 사람은 너에게 지위가 생기면 너의 결점과 결함을 모두 장점과 강점으로 보고, 네가 지위를 잃으면 너의 강점과 장점을 모두 결점과 결함으로 본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고, 너의 모든 것을 못마땅해하며, 늘 너를 괴롭히고 짓밟고 억누르고 싶어 한다. 이는 흉악한 성품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지위가 없는 사람을 마음대로 괴롭힌다. 착한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것은 죄라고 느끼고, 네가 그를 건드리지 않아도 먼저 트집을 잡아 너를 괴롭히고 짓밟으며, 너를 몹시 멸시할 것이다. 마치 지위가 없는 게 죄이니 살아갈 자격도, 그의 앞에 있을 자격도 없으며, 지위가 없으니 화를 당하고 재수가 없어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이는 어떤 작자냐? 이런 사람이 교회에 남아 있어야겠느냐? (그래서는 안 됩니다.) 유달리 권력에 아첨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리더로 뽑을 수 있겠느냐? (뽑을 수 없습니다.) 왜 안 되겠느냐? 그는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대하는데, 만약 그 자신이 정말 지위를 갖게 된다면 독재를 하고 유아독존식으로 굴지 않겠느냐? 그럼 정말 큰 일이다! 그는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 교회의 행정 법령, 형제자매들의 건의를 전혀 듣지 않으며, 심지어 지위가 없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든 모두 억누를 것이다. 그러면 그 교회는 그에 의해 파괴될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권력욕이 극도로 강하며, 일단 뜻을 이루면 그 결과는 상상할 수도 없다. 권력에 아첨하는 이 부류는 특히 흉악하고 인격이 저열하다. 그가 지닌 패괴 성품의 주요 특징은 무엇이겠느냐? (흉악함입니다.) 사악하고 흉악하며, 진리를 싫어한다. 특히 사악한 점은, 같은 사람을 두 가지 얼굴로 대하며, 얼굴을 바꾸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악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지위가 없는 사람이 자신을 건드리지 않아도 먼저 공격하고 괴롭히고 짓밟는다. 이는 흉악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이 지위가 있든 없든, 그는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지 못한다. 네가 그에게 “하나님 집은 진리가 권세를 잡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합니다.”라고 하면, 그가 받아들이겠느냐?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사람을 공평하게 대한다니요? 사람은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의 구분이 있습니다. 지위가 있는 사람은 고귀하고, 지위가 없는 사람은 천하죠!”라고 한다. 이것이 그가 사람을 보고 대하는 논리이자 원칙이다. 그는 진리 원칙을 받아들이지는 않고 자신의 그릇된 논리를 늘어놓는다. 이는 진리를 싫어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세 논리, 처세 원칙, 관점으로 지위와 권력을 대하며, 또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처세 원칙과 방식으로 이런 일들을 처리하여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대하는 요구와 원칙을 대체한다. 이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에 공개적으로 대항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는 마음속으로 ‘당신에게 지위가 생기면, 그때는 당신이 바로 내 마음속 대장이야.’라고 생각하며, 하나님과 진리는 그의 마음속에서 더 이상 지위를 가지지 못한다. 이는 어떤 성품이냐? 이렇게 무지막지하며 우매하고 완고하다니, 이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 진리를 싫어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성품이다. 인성만 따진다면, 이런 사람은 인격이 저열하며 매우 역겹고 상종할 가치가 없다. 하지만 만약 성품을 따진다면, 이는 단순히 상종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부류는 성품이 흉악하고 사악해서 구원받는 대상이 아니며 모두 징벌받아 죽어야 한다. 이는 죽을죄이다. 이런 부류는 무작정 권력에 아첨하며, 똥개처럼 아첨하는 얼굴을 하고 있어 보는 이를 역겹게 한다. 이런 부류가 교회 리더가 되면 위험인물이 된다. 만약 너희가 이런 부류의 사람을 교회 리더로 선출한다면, 재앙을 겪게 될 것이다. 어떤 지역 리더는 어리석어서 사람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이런 부류를 교회 리더 후보자로 지정하는데, 그 결과 형제자매들이 기만당하게 된다. 이렇듯 아부하고 권력에 아첨하는 데 능하며, 겉으로 보기에 매우 열심이고, 리더의 말을 무조건 따르는 사람은 후보로 선출되기가 쉽다. 이는 일부 리더 일꾼이 아부하고 알랑거리는 사람을 좋아하며, 이 외식하는 사람들이 리더가 되는 순간 교회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흔히 이 부류는 선출되어 지위가 생기는 순간, 바로 흉악한 모습을 드러내며 교회를 교란하기 시작한다. 그 리더는 자신이 뽑은 사람이 악인임을 깨닫고 후회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교회에 초래한 결과를 만회하지는 못한다. 이는 전부 리더 일꾼이 패괴 성품이 있고 원칙 없이 일을 처리한 데서 비롯된 결과이다. 지위와 권력을 숭상하는 자들은 모두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들은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 아첨하고, 리더 일꾼을 보면 만면에 웃음을 띤다. 어떤 리더는 이러한 시험을 이겨 내지 못한 채, 상대가 만면에 웃음을 띠면 몹시 기뻐하면서 그를 발탁하여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려 한다. 사실 그가 아부하고 만면에 웃음을 띠는 것은 간악한 속셈이 있기 때문이지만, 그 리더는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막상 리더가 되면 그는 아무도 따르지 않고, 자신을 발탁해 준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리더는 그제야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자신이 사람을 잘못 발탁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만회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떻게 만회해야겠느냐? (빨리 그 사람을 폭로하고 교체해야 합니다.) 그는 실질적인 사역을 할 수 없으며, 그저 권력에 아첨하고 아부할 줄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니, 빨리 교체해야 한다. 당시 눈이 멀어 사람을 분별하지 못한 탓에 잘못된 사람을 썼다고 후회하겠지만, 지금이라도 빨리 만회하면 늦지 않는다. 권력에 아첨하는 이 부류에 대해 꿰뚫어 보았느냐? (꿰뚫어 보았습니다.) 이 부류는 좋은 작자가 아니다.

기억력이 매우 뛰어난 것

계속해서 선천적인 조건과 관련된 모습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기억력이 매우 뛰어난 것, 이는 어느 측면의 모습이겠느냐? (선천적인 조건입니다.) 기억력이 특히 좋고,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며, 문장과 하나님 말씀 단락을 외우고, 찬양을 외우거나 어떤 사역지침을 특히 뚜렷하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어느 측면에 속하겠느냐? (선천적인 조건의 자질이 좋은 것입니다.) 이는 선천적인 조건이다. 구체적으로 선천적인 조건의 어느 항목에 속하는가를 본다면, 나는 자질에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단순히 기억력이 좋아 일을 기억할 수 있다고 해도, 많이, 정확히, 확실히 기억한다고 해도 이는 기껏해야 선천적인 특기, 재주, 능력이라는 범주에 속할 뿐, 자질이 좋은지 여부는 그의 이해 능력을 봐야 한다. 만약 기억력이 특히 좋아서 노래 가사, 지식과 도리, 어떤 업무 기능을 특히 잘, 그리고 빠르고 확실하게 외운다 해도 외운 것이 단순히 규례적인 죽은 내용에 불과하고, 진리 원칙과 관련되지 않으며, 실생활이나 사역에서 활용되거나 시행될 수 없다면, 단순히 기억력이 좋은 것에 불과하다면, 이는 그저 선천적인 조건의 특기와 능력에 속할 뿐, 자질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 방금 말했듯이 자질이란 무엇이냐? (일 처리의 효율과 성과입니다.) 만약 기억력이 좋은데 자질도 좋다면, 어떤 측면의 모습과 특징이 있겠느냐? 들은 내용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핵심을 파악하고 원칙을 찾아낼 수 있으며, 실행의 길과 시행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런 다음에는 실생활과 사역에서 실제로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즉, 네가 기억하는 하나님의 말씀들과 진리 원칙이 이론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시행되어 진리 실제가 됨으로써, 사람들이 사역 성과를 보게 되고, 네 사역 효율도 높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억력은 물론이고 자질도 좋은 것이다. 기억력이 좋다고 해서 자질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해 능력이 있고,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구할 줄 알며, 진리 실행 원칙을 찾을 수 있고, 사역을 시행할 때 편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정확하고 빠르며 성과가 있어야 한다. 이래야 자질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자질이 좋다는 것은 일부 도리를 알아서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 원칙을 얼마간 깨닫고 파악한 후, 사역과 본분 이행 과정에 유연하게 활용하여 그것을 네 실생활의 일부로 만들고, 이론에서 실제로 바꾸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성과를 이루며, 사람들이 혜택과 유익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있는 것이다. 글귀와 도리를 아는 데만 머무를 뿐 사역을 시행하지 못하고 원칙과 방향을 찾지 못한다면, 즉 그 측면의 진리 원칙이 네게 영원히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고, 너에게는 그것을 실제로 바꿀 방법도, 방식도, 길도 없다면, 그것은 곧 자질이 없는 것이자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네 기억력이 아무리 좋아도, 심지어 보통 사람을 뛰어넘어 거의 초능력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너의 자질이 좋다는 의미는 될 수 없다. 자질이 좋다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자질은 무엇으로 가늠하겠느냐? (사역의 원칙을 이해할 수 있는지, 원칙을 제대로 적용해 성과에 이를 수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즉, 효율과 성과를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역지침을 빨리, 정확하게 외우고, 이론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시행할 때 “이 사역은 어떻게 하나요? 생각과 방안이 있습니까? 단계가 있나요?”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없습니다. 할 줄 몰라요.”라고 대답한다면, 이는 자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한 측면의 특기에 불과하다. 내가 처음 이 주제를 두고 교제할 때 이 측면의 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너희는 잊어버린 것 같구나. 이번에 또 기억력이 매우 뛰어난 것을 자질의 범주에 포함시켰으니 말이다. 너희는 늘 사람의 특기와 재주를 잘못 이해하고, 한 측면의 특기와 재주를 좋은 자질의 범주에 포함시키는데, 이는 틀려도 단단히 틀린 것이다. 만약 이 문제가 해결되어 너희가 특기란 무엇인지, 재주와 능력이란 무엇인지, 진정한 자질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이는 사람을 분별하는 것과 자신의 생명 성장에 유익이 될 것이다. 적어도 사람의 교만한 성품을 어느 정도는 억제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노래나 춤에 뛰어나다고 해서 자신의 자질이 매우 훌륭하다고 착각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가늠할 수 있겠느냐? (아니요.) 그렇다면 노래하는 사람은 무엇을 갖춰야 자질이 좋은 것이겠느냐? (이해 능력이 있고, 어떻게 불러야 원칙에 부합하는지 알며, 깨닫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깨닫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보아라, 똑같이 얼마간 음악 이론을 알아도 노래를 할 때의 결과는 다르다. 어떤 사람은 노래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찾는다. 다양한 노래와 멜로디를 듣고, 또 다양한 사람들의 각기 다른 창법을 들으면서 어떤 창법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즐거움을 주는지 스스로 그 속에서 느낌을 찾아 그 느낌대로 모색하고 연습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자기 노래 실력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고, 사람들도 듣고 싶어 하면, 또 천천히 이론과 대조해 보면서 그 실행의 길이 맞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는 실행의 길을 더듬어 가며 자신이 노래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으며, 과거 자신의 잘못된 창법을 바꿀 수 있다. 그러고 나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모색한 좋은 것, 옳은 것, 긍정적인 것을 자기 노래에 실천하고 적용할 수 있다. 그는 어떻게 노래하는 게 맞고 틀리는지, 어떻게 노래하는 게 좋은 느낌이고 나쁜 느낌인지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좋은 것이다. 이론상으로만 알고 있을 뿐, 이론을 적용해 노래하지 못하고, 또 치우치게 이해한다면, 이는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노래하는 사람 중 일부는 다른 사람이 그가 노래할 때 가성을 사용한다고 하면, 바로 그 말을 받아들이고 1, 2년 정도 연습해서 교정하고, 그다지 능숙하지는 않아도 진성으로 부르게 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분명 남들이 듣기에는 가성으로 노래하고 있는데도 그 자신은 진성으로 부르고 있다고, 진성으로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듯 분별하지 못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질과 깨닫는 능력이 없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이 차이는 곧 자질과 특기에서 비롯된다. 네가 노래에 능하다면, 이는 너의 특기이자 선천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노래를 잘할 수 있는지, 그 분야나 업계에서 정수, 원칙, 요령을 깨달을 수 있는지는 자질의 문제이다. 만약 네가 정수, 요령, 원칙을 깨달을 수 있다면 가수나 성악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빨리 배우며 멜로디, 박자, 음정을 정확히 파악하는 정도라면, 이는 선천적인 특기이며, 이 측면의 업무 기능에 능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자질은 지극히 평범하거나 제한적이기 때문에 영원히 ‘능하다’는 범주에만 머무를 뿐, 요령을 파악할 수 없으며, 진정한 가수나 성악가는 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자질에서 생긴 제약이다. 자질이 좋은 사람은 잠재력이 있고 발전 가능성이 있지만, 자질이 평범하거나 부족한 사람은 잠재력이 없고 발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떤 분야의 특기가 있든, 자질이 부족하면 반드시 자질로 인해 제약이 생긴다. 어떤 측면에서 네가 아무리 뛰어나고 좋아하고 흥미가 많더라도 자질이 부족하기에 발전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너는 자신의 자질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해했느냐? (이해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는 않겠느냐? 나는 사실에 근거해 말하는 것이다. 자질과 특기의 차이점에 대해 교제하면서 너희의 한 측면 특기를 예로 들기는 했지만, 하나님 집에서는 너희에게 진정한 성악가가 되라고, 노래를 어느 수준 이상 정확하게 부르라고, 어떤 스타일로 부르라고, 노래로 큰 성공을 거두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수준에 도달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고유한 자질과 특기에 맞춰 그것을 잘 발휘하기만 하면 된다.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고 진심이 담겨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가 너희 중 일부는 자질이 부족하거나 매우 평범해서 별로 발전이 없다고 말했다고 해서 기죽거나 포기하지 마라. 그럴 필요 없다. 너희는 기죽을 것이냐? (아닙니다.) 이 일을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내가 너희의 일로 예를 들지 않으면, 너희는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말해도 너희 마음에는 와닿지 않으니, 너희가 제대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예를 들어 모두가 더 명확히 이해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너희가 자질과 특기의 차이점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교제해도 괜찮겠느냐? (괜찮습니다.) 괜찮다면 됐다. 올바르게 대하고, 해야 하는 연습을 해라. 마음을 들여 연습하고 좋은 목표와 방향을 향해 연습하는 것이 그래도 제자리걸음 하는 것보다는 낫고, 발전하지 않고 답보하는 것보다는 낫다. 자질에 한계가 있고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연습해 자신의 제한된 자질 내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에 도달해야 한다. 마음과 힘을 다해 본분을 책임지고 본분에 충성을 다하는 태도로 이 본분을 이행하고 이 사역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너희가 가져야 할 실행 원칙이다. 자신의 특기가 발전 잠재력이 없다고, 앞으로 남들 앞에 얼굴을 드러낼 수 없다고 해서 소극적으로 변하거나 포기하면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분명 이 일을 대할 때 가져야 하는 진리 원칙이 아니다. 이해하였느냐? (이해했습니다.)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 이 세 가지 측면에는 알아야 할 구체적인 내용이 많다. 이런 것들을 교제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많은 측면의 내용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알 뿐,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특기가 조금 있다고 해서 자기는 인격이 고상하다고, 존귀하고 패괴 성품이 없다고, 인성이 좋고 자질도 좋다고 여기는데, 이는 전부 이러한 각 측면의 문제를 명확히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야기된 일이다. 이런 문제는 세부 사항과 관련될수록 교제해야 할 내용이 많아지며, 한두 번으로는 다 말할 수 없어서 여러 번 교제해야 한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다음에 보자!

2023년 10월 14일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