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4) 제 5 부

사례9. 위생에 신경 쓰지 않다

어떤 사람은 낙후된 국가나 환경, 혹은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나 생활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음식을 만들 때도 위생을 중시하지 않고 옷을 오래 입어도 빨지 않으며 옷에서 땀 냄새가 나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어느 측면의 모습이냐? (생활 습관입니다.) 이는 생활 습관으로, 위생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수건 한 장으로 얼굴과 발을 다 닦고 낮에 밖에 나가 일할 때도 그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어쩌다 누가 다친 걸 봐도 그 수건으로 상처를 감싸 준다. 이처럼 위생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이는 선천적인 가정 형편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어떤 사람은 가정 형편이 좋아서 한 사람당 여러 장의 수건과 목욕 타월을 가지고 있고 얼굴을 닦는 수건과 발을 닦는 수건도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매일매일 샤워하고 세수하며 목욕 타월과 수건도 날마다 세탁해서 상당히 위생에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습관은 어떻게 형성된 것이겠느냐? 가정에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과 여건이 갖춰져 있어서 여유 있는 생활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위생에 신경 쓰고 체면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생활 습관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무척 신경 쓰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선천적인 조건으로 인한 것이다. 그럼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왜 그렇겠느냐?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그런 것들에 신경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설사 여건이 되더라도 그런 것들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데,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어떤 사람은 가정 형편이나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된다. 한 집에서 수건 한 장으로 일고여덟 명이 세수하고 발을 씻으며, 한 사람이 쓰고 나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쓴다. 또 어떤 사람은 밤에 발을 씻지 않아도 잠만 잘 자며 일상생활이나 처신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위생에 신경 쓰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발에 세균이 있을 텐데 얼마나 더러워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발은 더럽지 않아요. 온종일 싸매고 있어서 외부와 접촉하지 않으니 땀이 좀 날 뿐 세균은 없죠. 사람은 관념적으로 발에 난 땀이 더럽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더럽지 않아요. 어떤 지역에서는 발로 음식을 만들기도 하죠. 어쩌면 마트에서 산 식품 중에도 발로 반죽해서 만든 게 있을지도 몰라요. 직접 보지 못했으니 그런 식품을 먹고도 자기는 꽤 위생에 신경 쓴다고 생각할 수 있죠!” 위생을 중시하든 중시하지 않든 모두 선천적인 조건에 의해 생겨난 일종의 생활 습관이나 생활 방식일 뿐 처신과는 무관하다. 그럼 어떤 모습이 처신과 관련 있겠느냐? 예를 들면, 위험한 환경이나 큰 붉은 용의 체포가 닥치면 사람들은 모두 긴장하고 두려워하며 일부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아무리 긴장되고 두려워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환경에 생긴 문제를 처리해야 해요. 우선 리더 일꾼과 외지의 형제자매들이 서둘러 떠날 수 있도록 엄호합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들을 엄호하라고? 그럼 나는? 결국 나는 도망가지 못하면 어떡해? 나 먼저 도망가야지! 먼저 도망가는 사람은 잡히지 않을 테니 형을 선고받거나 고문당하지도 않을 거야.’ 보아라, 위험이 닥쳤을 때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똑같지만 어떤 사람은 타인을 먼저 보호하고 자신의 생명과 안위는 뒤로 미룬다. 이런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선량하다. 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혼자 발을 빼 도망가며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게 바로 이기적인 것이다. 사실 인성과 양심의 지각 측면에서는 그도 리더 일꾼과 외지의 형제자매를 먼저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않겠느냐? 이런 도리는 알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똑같이 이런 도리를 알고 본능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사람마다 인성이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은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오로지 자신만 생각할 뿐 남은 신경 쓰지 않는다. 반면, 어떤 사람은 마음씨가 선량해서 자신을 버리고 남을 고려할 줄 알며 남을 먼저 보호하면서 이기적으로 굴지 않는다. 이는 인성이 다른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그럼 이 두 가지 인성을 가진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겠느냐? (인성이 좋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패괴 성품을 쉽게 벗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럼 이기적인 사람은 어떻겠느냐? (쉽게 진리를 실행하지 못합니다. 그는 진리를 깨달아도 실행해 내지 못하기 때문에 패괴 성품도 쉽게 벗어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 따라서 똑같이 패괴 성품을 표출하더라도 인성이 다르다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는지 여부에서 차이가 난다. 인성이 다르면 같은 일을 대할 때도 서로 다른 태도와 방식을 보이는데, 이는 한 사람이 최종적으로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진리 추구의 길에 오를 수 있을지,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 인성은 아주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냐? 위험이 닥치면 모두가 어느 정도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다. 다들 두려워하고 당황하고 겁먹고 마음이 불안하며 죽음을 걱정하고 도망가려 한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인성이 좋고 선량한 사람은 리더 일꾼과 외지의 형제자매를 보호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타인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다. 비록 그도 본능적인 반응을 보이며, 두려워하고 당황하고 겁먹는 것은 물론,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도 가지고 있지만, 그가 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먼저 보호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인성이 선량한 사람의 처신 방식이다. 반면 이기적인 사람의 처신 방식은 무엇이냐? 그도 다른 사람이 생각날 수는 있지만 보호하지 않고 우선 자신을 보호한다. 그러므로 인성이 선량해 남을 이해하고 보호할 수 있는 부류는 진리를 받아들이기 쉽고, 그의 인성 안에 있는 양심과 이성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는 조건에 부합한다. 반면 이기적인 부류는 진리를 깨달아도 받아들이거나 실행하지 않는다. 또 그의 인성은 위험이 닥쳤을 때 스스로를 보호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그가 나타내는 인성으로 보아 그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진리를 실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의 양심과 이성은 기능을 잃고 그는 양심과 이성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다. 진리를 구해 자신이 해야 할 정의로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과 이성, 심지어 도의와 진리를 위배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과 이익의 필요를 충족시킴으로써 자신을 보전하고 자신의 모든 이익을 지키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부류는 진리 추구의 길과 구원받는 길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이 말의 뜻인즉슨 이 부류는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금 여지를 두고 말하자면, 이 부류는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없다기보다는 벗어 버리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보니 어떠하냐? 한 사람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을지, 구원받을 수 있을지가 오롯이 그의 선천적인 조건에 달려 있겠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에 달려 있겠느냐? (인성에 달려 있습니다.) 그의 인품에 달려 있고 다양한 사람, 일, 사물을 마주했을 때 그의 인성 속 양심과 이성이 발휘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즉, 일이 닥쳤을 때 그가 양심과 이성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양심과 이성에 지배받아 행동한다면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를 선택할 것이다. 반면 양심과 이성을 위배해 행동한다면 진리를 얼마나 깨달았든, 자질이 좋든 나쁘든 도의와 진리 원칙을 위배할 것이고 심지어 인성을 상실할 것이다. 이런 점을 통해 무엇을 확실히 알았느냐? 인성이 중요하지 않겠느냐? (중요합니다.) 만약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익과 관계되는 한, 양심과 이성, 도의를 위배해 행동한다면 그 순간 그는 인성을 상실할 것이고 자신의 이익을 얻고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도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일이 닥쳤을 때 양심과 이성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양심과 이성을 위배할 수 있으며 인격과 존엄을 상실하는 대가로 목적을 이룰 것이다. 평소에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이든 이런 측면만 봐도 이 부류는 오직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이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기 어렵다. 그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일수록, 사실이 닥쳐올 때일수록 더더욱 양심과 이성, 진리에 어긋나는 선택을 한다. 결정적인 순간일수록 그는 진리를 싫어하는 패괴 성품과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 부류는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기가 어렵다. 이제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기 위해서는 사람의 인성이 기본 조건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되지 않았느냐? 한 사람의 인성이 어떤지는 그가 최종적으로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는지, 진리 추구의 길에 오를 수 있는지,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사례10. 선천적으로 말수가 적다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말수가 적고 성격이 온화하고 너그러우며 남에게 따지거나 논쟁하는 일도 적다. 또한 소란을 피우거나 과장되게 말하지도 않고 목소리도 부드럽다. 겉보기에 특히 상냥하고, 일도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처리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수줍음을 타서 남과 언어적으로 지나치게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많이 어울리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어디에 가든 기본적으로 존재감이 거의 없다. 이런 모습은 어느 방면의 문제에 해당하느냐? (성격 방면의 문제입니다.) 이는 타고난 성격의 문제이다. 이런 부류는 표면적인 성격도 이와 같을 뿐 아니라 속마음도 아주 단순해서 남들에게 비교적 다정하고 대인 관계도 공평한 편이다. 남에게서 이익을 보려 하지 않고, 남에게서 은혜나 도움을 받으면 그것을 갚고 마음속으로도 타인의 은혜를 기억한다. 겉으로 보면 이런 부류는 인성이 좋고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무해하며 남에게 너그럽고 이해심도 깊다. 따지지 않고 시비도 별로 일으키지 않으며 이러쿵저러쿵 남의 흉을 보지도 않는다. 뒤에서 남을 판단하지도 않고 결코 남을 먼저 공격하거나 해치지 않는다. 누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도울 수만 있다면 결코 돕기를 거절하지 않는 데다가 보답을 바라지도 않는다. 대다수 사람은 이 사람을 보고 유순하다고 한다. 그럼 이런 부류는 겉보기에 인성이 좋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한번은 하나님 집에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당신네 교회 리더는 사역을 잘하나요? 형제자매는 그에 대해 뭐라고 하나요? 요즘 복음 사역에 성과는 있나요?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사람은 없나요?”라고 물으면 그는 고민한다. ‘이 일을 왜 나한테 묻지? 나한테 묻는 의도가 뭐지? 나보고 리더가 별로라고 말하라는 건가? 우리 리더를 교체하려고? 이건 나를 떠보는 거야. 나를 통해 확인하려는 거라고. 내가 어디 말하나 봐라. 만약 언젠가 리더가 파면되고 나서 내가 자신의 문제를 보고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내게 앙심을 품지 않겠어?’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리더가 요즘 사역을 꽤 잘하고 있어서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어요.” 이렇게 대답하고 끝이다. 또 “정말 아무런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나요?”라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 “아무개 자매에게 물어보세요. 리더와 자주 접촉하고 많이 왕래하니까 리더를 잘 알 거예요. 저는 잘 몰라요.” 사실 그는 속으로 생각한다. ‘알아도 말할 수 없어. 괜히 말했다가 나중에 리더가 파면되기라도 하면 내게 앙심을 품을 거 아니야? 파면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자신에 대해 나쁘게 말했다는 걸 알면 나를 못살게 굴지 않겠어? 나를 괴롭히지 않을까? 내 본분도 교체되지 않을까? 말하면 안 돼!’ 이는 어떤 모습이냐? (간사한 모습입니다.) 이는 어느 방면의 문제이냐? 패괴 성품이다. 이 사람은 겉보기에는 타고난 성격이 좋고 인성도 나쁘지 않지만 남을 평가하거나 문제를 보고하라고 하면 모른다고 한다. 자신은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 짧아서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어리석어서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고 한다. 누구의 문제를 발견하든 보고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누가 뒤에서 리더를 판단하거나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해도 못 본 척, 모른 척하며 결코 보고하지 않는다. 리더가 “당신은 아무개와 오래 접촉했는데, 그는 평소에 본분을 잘 이행하나요? 고생을 견디고 대가를 치를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 “어쨌든 아침에 꽤 일찍 일어났다가 밤에 아주 늦게 자요.” 사실 그는 그 사람이 늘 이방의 영상을 보고, 본분 이행을 위해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것을 진작에 발견했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누구와도 사이좋게 지내려고 한다. 겉보기에는 타고난 성격도 좋고, 인성도 좋아 보이지만, 좋은 인성의 허울 아래 감춰진 것은 무엇이냐? 무골호인이다.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며, 남에게서 이익을 취하지도 않고, 그 어떤 적도 만들지 않는 무골호인 말이다. 그의 처신 원칙은 무엇이냐?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거나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고, 오직 자기를 보호하려고만 한다. 이는 교활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남이 진심을 다해 그와 교제하며 “우리 둘이 같이 본분을 이행한 시간이 가장 기네요. 제게 무슨 문제가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반드시 받아들이고 고칠게요. 이 방면의 실행 원칙도 더 교제해 주세요.”라고 말해도, 설사 상대방이 이렇게 간절해도 그는 솔직히 말하지 않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당신이 저보다 훨씬 낫죠. 사실 다들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저는 아주 연약한 데다가 소극적이고 패역하기도 해요.” 남이 아무리 간절하게 요구해도 그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절대 어느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결코 한 마디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할 말이 있으면 마음속에 묻어 둔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는 마음속에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는 로봇이 아니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지도 않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과 일에 대해 나름의 생각이 있지만, 결코 겉으로 밝히지도, 공유하거나 표현하지도 않고 마음속에 묻어 둘 뿐이다. 한편으로는 남이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그의 처신 원칙은 무엇이냐? 원칙이 없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원칙이 없다. 즉, 결코 진리를 구하거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자신을 지키고 보전하기만 하며, 자신이 다치지만 않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요구하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처신할 때 원칙도, 최소한의 기준도 없고 아무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 무골호인이다. 따라서 사람들 눈에는 이런 부류도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와 접촉하는 사람은 늘 그에게 도움을 받고, 남이 그에게 무엇을 요구했을 때도 그는 결코 거절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처신 원칙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부류는 처신에 원칙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럼 패괴 성품에 관한 문제의 경우 그가 진리를 구해 해결하겠느냐? 진리 원칙대로 실행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답은 ‘결코 그럴 리 없다’이다. 이런 부류는 자신의 주관적 인식을 고집한다. 자신은 인성이 좋고 마음씨가 선량하다고, 남에게 결코 악의가 없고 최소한 먼저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남의 이익에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남이 무엇을 요구하거나 필요로 하면 요구대로 다 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의 인식 속에서 그는 아무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적도 만들지 않는다면 자신은 어떤 위험한 처지에도 놓이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자신을 적으로 삼지 않을 테니 자신은 다치지 않고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류의 처신 목적은 무엇이냐? 오직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가장 안락하고 안전하다고 여기는 안식처나 안전지대에서 살아가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처신 원칙이나 처신의 최소 기준, 혹은 처신의 방향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이런 부류가 바로 무골호인, 두루뭉술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진리 원칙과 처신의 최소 기준, 처신 원칙을 교제해도 그는 자신의 처신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 그럼 이런 부류는 인성이 좋겠느냐? (좋지 않습니다.) 이런 부류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원칙을 지킬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왜 진리 원칙을 지킬 수 없겠느냐? 그의 마음속 처신 기준은 무골호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관점과 입장을 가져야 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그는 침묵과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고 외면하며, 남의 일처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는 처신하고 일을 처리할 때 마치 매끈한 돌처럼 전혀 날을 세우지 않는다. 주위의 사람과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어떤 환경에서든, 누구에게 얼마나 큰 문제가 발생하든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고, 알아보려 하거나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와 관계만 없으면 된다고,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이 있지 않으냐? “공은 바라지도 않고 잘못만 없기를 바란다.” 이 또한 무골호인의 처신 원칙이다. 이런 부류의 패괴 성품은 어떤 특징을 보이느냐? 간사하고, 사악하고, 강퍅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패괴 성품의 특징을 거의 다 가지고 있다. 겉보기에는 악을 행하지도 않고 과오도 거의 저지르지 않지만 그의 처신 원칙과 처신 방식을 관찰해 보면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진리 원칙을 결코 지키지 않고 처신에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이 없는 것이다. 누가 그를 욕하고 그의 존엄성을 해쳐도 그는 포용하고 웃어넘길 수 있고,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꽤 너그럽고 인성도 상당히 선량하며 남을 공격하거나 보복하려는 뜻이 없는 것 같지만, 그가 속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속으로 너를 기억해 두었다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나서서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며 너에게 반격할 것이고, 그것도 네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는 진리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그가 처신하는 원칙과 최소한의 기준은 단지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과 안전, 체면을 지키는 것뿐이다. 이런 부류는 사악하다고 해도 맞고, 강퍅하고 간사하며 진리를 싫어한다고 해도 맞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 사람은 남의 이익을 해치지도 않고 악을 행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이는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그의 사상 관점과 태도를 근거로 알아차린 것이다. 너희도 알아차리지 않았느냐? (이제는 알아차렸습니다.) 예전에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느냐? 그의 어떤 부분에 미혹되었느냐? (그는 말하고 행동할 때, 남과 접촉하고 협력할 때 꽤 유순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인성이 괜찮다고 생각했죠. 그의 표면적인 허상에 미혹된 것입니다.) 겉보기에 성격이 온화하고, 결코 남을 공격하거나 짐승을 해치지 않는다고 해서 인성이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인성의 표출이 정말로 인성이 좋은 것이냐? (한편으로는 남을 해치거나 남에게서 이익을 취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이 닥쳤을 때, 우선 리더 일꾼과 진리를 추구하는 형제자매를 보호할 생각을 하고, 자신의 안위는 고려하지 않으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중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좋은 인성의 모습입니다.) 마음씨가 선량하며 사랑이 있고, 인내와 관용을 베풀며 남을 존중할 줄 알고, 기꺼이 남을 위하며 남의 이익을 차지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정직한 데다가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취하며 건방을 떨지 않는 등의 인성 특징을 갖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진리 원칙을 견지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성이 좋은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겉보기에는 너그럽고, 인내심 있고, 선량하고, 남에게서 이익을 취하지 않고, 이해심도 깊고, 남을 돌볼 줄 아는 등의 인성 특징을 갖추었지만, 하나님 집의 이익과 관련이 되었을 때 순순히 양보하고 자진해서 팔아먹는다면, 이게 인성이 좋은 것이냐? (아닙니다.) 이게 바로 인성이 나쁜 것이다. 인성이 좋은지는 어떻게 판단하느냐? 최소한 무엇을 갖추어야 하느냐? (최소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토대로 남과 조화롭게 협력할 줄 알아야 한다. 선량하고 너그러우며 남의 이익을 차지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인내할 줄 알고, 타인의 연약함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하며, 이해심도 깊어야 한다. 남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고, 도와주고 붙들어 줄 수 있어야 하고, 연약한 사람을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 모두 좋은 인성의 특징이다. 반면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탐욕스러운 것, 남에게 야박하게 굴고 쩨쩨하게 따지는 것, 툭하면 시비를 가리고 남을 억누르기 좋아하는 것, 제멋대로 굴고 수시로 자신을 과시하는 것, 허영심이 가득하고 사악하며 방탕한 것, 부끄러움을 모르고 염치가 없는 것, 이런 것들은 어떤 모습이냐? (인성이 나쁜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겠느냐? (지킬 수 없습니다.) 인성이 좋은 모습을 갖춘 데다가 하나님 집의 이익도 지킬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인성이 좋은 것이다.

사례11. 겉보기에는 선량하지만 제물을 함부로 쓴다

어떤 사람은 겉보기에 특히 선량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내와 관용을 베푸는 등 좋은 인성의 특징들을 다 갖추고 있지만 교회의 사역, 하나님의 제물, 하나님 집의 이익과 관련되면 팔아먹을 수 있다. 너희가 보기에 이런 사람의 인성이 좋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형제자매에게는 품질 좋고 가격도 저렴하고 실용적인 물건을 사 주지만, 제물을 써서 물건을 살 때는 꼭 비싼 것을 사려고 한다. 트랙터를 사더라도 내비게이션이 달린 트랙터를 사려 하고, 무엇을 사든 가장 좋은 것, 가장 비싼 것, 첨단 기술이 탑재된 것을 사려 하지 싼 것은 사지 않는다. 평소에 보면 그는 남들과 정상적으로 잘 지내고, 남에게서 이익을 취하지도 않고, 아주 너그럽고, 남들에게 모든 면에서 괜찮다. 그러나 제물을 쓰는 것과 관련되었다 하면 독기를 품고 흉악한 낯짝을 드러낸다. 이를 인성이 좋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의 좋은 인성이 진정 좋은 인성이냐? 그건 겉으로 위장하고 꾸민 것이고, 전부 포장해 낸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 집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 닥치면, 특히 제물을 써야 할 때는 탐욕이 드러나고, 흉악한 낯짝과 흉한 마귀 몰골이 드러난다. 이게 인성이 좋은 것이냐? (아닙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라는 책의 판권을 신청할 때 이렇게 말한다. “교회라는 기구의 명의로 신청하면 돈을 많이 아낄 수 있지만, 성육신 그리스도의 명의로 신청하면 돈이 많이 들어요. 돈을 아껴 가며 일을 처리해야죠. 제물을 함부로 쓸 수는 없다고요!” 이 말이 옳으냐? 이렇게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 그에게 원칙이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선포한 것이냐, 아니면 교회가 선포한 것이냐?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럼 이 판권은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에게 귀속되는 게 적절하겠느냐, 아니면 교회에 귀속되는 게 적절하겠느냐? (하나님께 귀속되는 게 적절합니다.) 이는 중요한 문제인데, 이 중요한 문제에서 돈을 아끼려고 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느냐? 어떤 문제가 생기겠느냐?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단지 돈을 아끼느라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냐? 이런 자에게 양심이 있느냐? 인성이 있느냐? (인성이 없습니다.) 겉보기에 아무리 선량하고 남에게 아무리 너그럽다 한들 이런 자에게 정말로 인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 쓰는 비용은 전부 하나님의 제물로 지출하는데, 그걸 가지고 너희에게 따진 적이 있느냐? 너희에게 낭비하지 말라고 할 뿐이지 정상적인 비용을 가지고 너희에게 따진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언제나 너희를 위했고 따진 적도 없는데 너희는 오히려 나에게 기어오르며 따지는구나. 이는 인성이 없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인성이 없는 사람은 남에게 아무리 선량하고 너그러워도 다 겉모습일 뿐, 정말로 양심과 이성이 역할을 발휘해야 할 때가 되면 인성이 조금도 없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자가 사람이냐? (아닙니다.) 이런 자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다. 나도 물건을 살 때 언제 세일을 하는지, 어떻게 사야 적절한지 알뜰살뜰 계획한다. 실용적이고, 적절하고, 가격도 합리적인 물건이라면 구매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함부로 사지 않고 쓸데없는 돈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비용은 아낄 수 없고 반드시 써야만 한다면, 원칙에 따라 쓴다. 나 자신의 생활비도 최대한 아끼고, 사고 싶다고 다 사는 게 아니라 신중하게 생각한다. 보다시피 나는 옷도 평범하고 단정하고 격식에 맞게 입는다. 나는 씀씀이에 원칙이 있다. 꼭 사야 하는 것이나 실용적인 것은 사지만, 사지 말아야 하는 것이나 실용적이지 않은 것은 사지 않는다. 흥청망청 낭비하지도 않고 쓰면 안 되는 돈은 쓰지 않으며 절약해야 할 때는 절약하고 불필요하게 지출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원칙이다. 그러나 일부 인성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제물을 쓸 기회만 보이면 혈안이 되고, 의식주와 관련되기만 하면 시행하지 못해 안달이다. 특히 남에게 옷을 사 주거나 생활비를 지급할 때는 유독 통 크고 후하게 굴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니잖아. 하나님의 돈을 쓰면서 좋은 명성도 챙길 수 있으니 안 쓸 이유가 없지!’ 그는 이 틈을 타 돈을 펑펑 쓴다. 속으로 나쁜 마음을 품고, 하나님 집에 해를 끼쳐야 직성이 풀린다! 그에게 돈을 내라고 하면 바로 계산을 하면서 한 푼도 더 쓰지 않으려 한다. 이런 사람은 평소에 아무리 선량한 모습을 보여도 인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하나님의 제물을 대하는 그의 태도만 봐도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제물을 함부로 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그가 선량하지 않고 비열하며 인성이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에는 여러 방면의 모습이 있는데 우리는 일부분만 대략적으로 다루었다. 아직 일부 모습이 더 있을 텐데 나중에 이어서 교제하기로 하자. 오늘 교제는 여기에서 마치겠다. 또 보자!

2023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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