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6) 제 2 부
지난번에는 성육신에 대한 관념과 상상 내려놓기의 또 다른 주제인 ‘성육신 하나님을 패괴된 인류와 견주지 말 것’에 관해 교제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인성 측면에서 처신하고 일 처리하는 구체적인 모습들을 열거했다. 그리고 기만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싸우지 않고,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으며, 공격하지 않고, 보복하지 않으며, 꾀지 않는 등 성품 본질에 관한 모습들도 열거했다. 그중 기만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싸우지 않는 것에 관해서는 지난번에 일부 교제했다. 이번에는 어떤 모습을 교제할 차례냐?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기만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싸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는 평범한 사람이 처신하고 일 처리할 때의 한 가지 원칙이다. 물론, 이 원칙도 그의 인성 본질 및 성품과 관련된다.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는 평범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한 측면의 구체적인 성품 본질 혹은 처신의 한 측면의 모습이기도 하다.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쉽게 이해되느냐? 다 이해했느냐? (그렇습니다.)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는 음모나 술수, 계략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사역에서든 아니면 생활에서든 나는 너희와 진실하게 접촉하고 교류한다. 술수나 계략을 쓰지 않고, 음모도 꾸미지 않으며,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말하며, 일을 있는 그대로 너희에게 알려 준다. 너희를 계산적으로 대하지도 기만하지도 않는다. 너희가 기꺼이 헌신하고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도록 감언이설로 너희를 속여 신뢰를 얻지 않는다. 내가 그런 적이 있었느냐? (없습니다.) 너희에게 대답해 보라고 하면, 분명히 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서 이를 설명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모두 예를 하나씩 들 수 있다면, 이 사실의 근거가 명확해지고,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는 모습을 너희가 진정으로 인식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기가 사회에서 기술을 배워서 한 분야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마침 하나님 집에 그가 배운 분야와 관련된 사역 또는 일이 있어서 내가 그에게 말했다. “네가 이 분야의 업무를 좀 안다고 하고, 마침 하나님 집에도 그 분야의 사역이 있으니, 네가 할 줄 아는 업무를 토대로 너희 업계의 규칙이나 원칙에 따라 그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원한다면 그 사역을 네게 맡기겠다.” 여기에 사람을 계산적으로 대하고 이용하는 말이 한마디라도 있느냐? 음모가 깔린 말이 한마디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확실히 없느냐? (확실히 없습니다.) 네가 그 분야의 업무를 잘 안다며 자신을 추천했고, 내가 너의 상황을 파악했으니, 네게 그 사역을 맡기는 것이다. 만약 네가 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사역, 이 본분을 받아들이겠습니다.”라며 자원한 것이라면 잘 해내라. 만약 원치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내게 그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된다. 내가 강요하겠느냐? (그러지 않으십니다.) 사람을 대하는 나의 원칙에 따라 네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절대 소에게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하는 식으로 반드시 내 개인의 뜻대로 하라고, 하기 싫어도 하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신분을 가지고 있으니 내 말에 그 정도의 무게가 있어야 하고, 황제의 말처럼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천금과 같아서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관용을 베풀고,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준다. 나는 하나님 집 사역의 필요에 따라 사역을 안배한다. 만약 업계 관계자나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이 하고 싶어 하고 해당 사역을 더 잘할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좋을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없다면, 우리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다는 게 나의 원칙이다. 만약 어떤 사역에 너를 안배했는데, 네가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아요. 저는 남한테 이용당하고 하나님 집의 안배를 받는 게 싫거든요. 제가 알아서 선택할래요.”라고 한다면 그래, 하나님 집은 너를 쓰지 않겠다. 본분은 기꺼이 원해서 이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후 본분을 이행하고자 해야 교회가 사역을 안배해 줄 수 있다. 네가 본분 이행을 원하지 않으면, 하나님 집도 네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더더욱 내 신분이나 지위로 사람에게 교회 사역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이 본분을 이행하고 사역하는 것은 전적으로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하나님 집은 본분을 이행하라고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사람에게 완전히 내 뜻대로 하라고 하는 일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어떤 일을 네게 시키고 싶을 때 나는 직설적으로 말할 것이다. 절대 술수를 쓰거나, 돌려 말하거나, 모호한 말로 내 의도를 유추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만약 네게 분량이 있고 하나님 집을 위해 사역하겠다는 부담이 있다면, 나는 곧바로 네게 물을 것이다. “너는 이 사역을 담당하길 원하느냐?” 혹은 좀 더 직설적으로 “네가 이 사역을 맡거라.”라고 할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평이하고 알기 쉽게 말한다. 네가 사람이기만 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이 과연 무슨 뜻인지, 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고민하고 유추하느라 굳이 머리를 쥐어짤 필요가 없다. 내 말의 뜻을 유추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게 만들지 않고 직설적으로 알려 줄 것이다. 내 말의 의미는 글자 그대로이다. 또한, 내가 왜 그 사역을 네게 시키겠느냐? 네가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일원이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나님 집에 네 협력이 필요한 사역이 있다면, 너는 그것을 감당해야 할 의무가 있다. 네게 어떤 사역이나 일을 부탁하든 그건 내가 너를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여기기에 부탁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그것을 책임, 의무, 본분으로 여기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바람직하다. 네게 사역을 부탁하든, 일을 맡기든 이는 모두 네가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구하고 얻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거래 관계가 없다. 너를 어르고 속이는 것도 아니다. 네게 한 말, 네게 맡긴 일은 모두 긍정적이고 공개된 것이며 비밀이 없다. 그 안에는 금전이나 물질, 이익의 관계는 물론,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도 없다. 하나님 집이 네 특기나 기술, 업무상의 지식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게 절대 아니다. 하나님 집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본분은 기꺼이 하고자 하는 사람이 이행하는 것으로, 하나님 집은 결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네가 그 본분을 받아들이는 것은 피조물로서 해야 할 일이다. 그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여 구원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 본분 이행을 통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진리를 얻게 되면, 하나님에게 열납되고 기억되며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또한 네가 대가를 치르고 나서 얻어야 할 수확이다. 그러니 너는 그 사역을 본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그 어떤 우려나 의심도 품지 말아야 한다. 네가 어떻게 하기를 바란다면, 나는 사실 그대로 말할 것이다. 나는 평이하고 알기 쉽게 말하는 게 좋다. 너를 세 살 아이 달래듯 어를 필요가 없고, 돌려 말하거나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다. 또 네게 듣기 좋은 말을 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네가 노래할 줄 알거나 춤출 줄 알고, 그런 측면의 선천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네게 그 본분이 안배됐을 때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네가 만약 “제 선천적인 조건으로는 이 측면의 본분을 그다지 기준에 맞게 이행하지 못할 것 같아요. 이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라고 한다면, 괜찮다. 그건 네 자유이니 강요하지 않겠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너희에게 무슨 일을 요구하든 거기에는 계산적으로 대하는 것이 없다. 내가 리더 일꾼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교회 생활이 어떠냐? 새 신자가 교회 생활을 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느냐? 해결되었느냐? 하나님 집의 체험 간증이나 영화를 보고 난 그들의 소감이 어떻더냐?”라고 물으면, 대답을 못 하는 리더 일꾼들이 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내 실상을 알아보려 나를 떠보시는 거 아닐까? 내가 실질적인 사역을 했는지 검사하시려는 거 아냐? 신중하게 대답해야겠어. 방심은 금물이야! 제대로 한 사역은 말해도 되겠지만, 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안 한 사역은 절대 말해선 안 돼. 말하는 순간 문제가 탄로 날 테니까!’ 그래서 그는 사역 상황을 보고할 때 늘 말을 아끼려 한다. 문제가 탄로 날까 봐 몹시 걱정하는 것이다. 이런 부류는 마음과 생각이 복잡하다. 내 질문을 받으면 사실 대답이 입가에 맴돌지만, 그대로 말하지 않고 꼭 속으로 고민하고 가공한다. ‘왜 이런 걸 물어보시지? 어떻게 적절히 대답해야 하나님께 실상을 숨기는 동시에 흡족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사실 내가 한 말 중엔 머리를 굴려서 가공된 말은 한마디도 없다. 내가 어떤 상태에서 물어보겠느냐? 한 사람을 만나 그가 어떤 사역을 책임지고 있는지 안다면, 그 즉시 마음속에서 그가 어떤 구체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지, 그가 사역하면서 어떤 문제가 나타나기 쉽고, 어떤 난관에 봉착할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이런 생각이 들면 나는 바로 물어본다. “요즘 네가 책임지고 있는 몇 군데 교회의 교회 생활은 어떠냐? 교회 리더나 집사는 적임자들이냐? 형제자매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아느냐? 대다수 사람이 영 생활을 하고 있느냐? 여가 시간엔 찬양과 춤을 배우느냐? 복음 전도 사역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 내 모든 질문은 단도직입적이다. 그 어떤 시험도 다른 속셈도 없다. 그저 사역과 사람의 생명 진입만 고려할 뿐이다. 어떻게 대답하든 너는 시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나는 너의 꼬투리를 잡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이 탄로 나거나 꼬투리 잡힐 일은 없다. 나는 그저 사역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아볼 뿐, 어떤 사람의 실태를 일부러 캐묻고 알아보려 하거나, 특정인을 콕 집어 처리 또는 교체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계급 투쟁이나 당파 싸움을 하지 않는다. 그저 실질적인 사역만 할 뿐이다. 나는 형제자매나 리더 일꾼을 만나면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속 이야기를 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때로는 교회 사역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이렇게 하는 말은 모두 생활 언어이고 솔직한 말이다. 예를 들면, 내가 너희에게 “요즘 교회 생활은 어떠냐? 형제자매들이 매번 예배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느냐? 교회 생활을 하면서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라고 물으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요즘 교회 생활이 좋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큰 수확이 없고, 근본적인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묻는다.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 대다수 사람이 대답하지 못한다. 너희가 보기에 내 말에 함정이 있느냐? 음모가 있느냐? 전혀 없다. 사역에 관해 알아보고 상황을 파악해서 너희에게 진리를 교제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것이다. 너희는 어떻게 대답하든 시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일부 순수한 사람들은 사실대로 말할 수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 “형제자매가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인 지 얼마 안 됐고, 아직 체험이 없어서 예배 시간에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읽는 게 길어지면 깨닫지 못하는 데다가 졸면서 듣지도 않더라고요. 저희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내가 말한다. “그건 어렵지 않다. 다 같이 찬양을 먼저 부른 다음, 춤을 추고 나서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인식이 있는 사람은 인식을 이야기하고, 체험이 있는 사람은 체험을 이야기해라. 인식이나 체험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실제 어려움을 이야기해서 체험이 있는 형제자매에게 도움을 받아 해결해도 된다. 그러면 예배에 수확이 생기지 않겠느냐? 분량이 작은 사람도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보아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느냐?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한담하다가 질문할 때가 있는데, 일부 마음과 생각이 복잡한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한다. ‘굉장히 직설적으로 물어보시네. 어떤 의도로 물어보시는지 모르겠어. 신중하게 대답해야겠군!’ 내가 말하건대 너는 잘못 생각했다. 내가 누구와 한담하든, 혹은 어떤 질문을 하든 그 궁극적인 목적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것으로, 너희에게 도움을 주고 너희를 지도하며 너희가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다. 첫째, 너의 추한 모습을 들춰내어 망신을 주는 게 아니다. 둘째, 네가 사실대로 말하는지, 솔직한 사람인지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셋째, 네 실상을 알아보려 떠보는 것도 아니다. 넷째, 네가 사역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지, 실질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실 내가 어떤 내용의 한담을 하든 그것은 네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사역을 잘하며,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고 지도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 단순한 물음을 아주 복잡하게 생각하고는 그 안에 어떤 의도가 섞여 있을까 봐 걱정한다. 심지어 자기를 계산적으로 대하는 거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분명 네가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우려는 것인데 계산적으로 대한다고 오해하다니, 이는 나를 억울하게 하는 게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것은 어떤 문제냐?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이다! 비록 입으로는 “하나님이시잖아요! 저는 사실대로 말하고, 당신을 솔직하게 대해야 합니다. 저는 당신을 따르고 믿습니다!”라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일상적이고 단순한 질문을 던져도 사람은 과민하게 해석하기 일쑤다. 추측을 통해, 또 연구를 통해 빙빙 돌아서 자기가 최종적인 답을 찾은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내가 말한 본래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분명 간단한 질문인데, 그는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신경이 과민한 게 아니겠느냐? 내가 어떤 질문을 하든 그는 들으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왜 그런 걸 물어보시지? 내가 뭐라고 답해야 흡족해하시고 내 허점을 못 알아보실까? 어떤 것부터 말하고, 어떤 걸 나중에 말해야 하지?’ 불과 몇 초 만에 조금의 지체도 없이 대답이 나온다. 머리 돌아가는 게 컴퓨터보다 빠르다. 왜 그렇게 빠르겠느냐? 사실 그 과정이 사람에게 너무 익숙한 것이다. 이는 그가 남들과 교류하고 일을 처리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이자 방식이다. 누구를 상대로든 계산적으로 대한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단순하게 물어봐도 그는 복잡하게 생각하고, 내가 어떤 속셈과 목적을 가지고 있는 줄 안다. 그러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만약 사실대로 답하면, 내 실상을 까발리는 게 아니겠어? 내가 나를 팔아먹는 꼴이야. 내 실상을 손에 쥐여 드릴 수는 없지. 그럼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까? 어떻게 해야 당신이 기뻐하고 흡족해하시면서 나한테 좋은 인상을 가지고 계속해서 나를 쓰시게 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보아라! 사람의 마음은 너무 복잡하다. 그에게 어떻게 말하든 그는 의심하고 연구하려 든다. 이런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마음과 생각이 전혀 단순하지 않고,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를 접한 시간이 긴 사람이면, 모두 알아차릴 것이다. 사람은 계산적으로 대하는 데 도가 텄지만,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소통할 때 너희를 계산적으로 대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네 개인적인 내적 상태를 알아보든, 네 사역 상황을 알아보든 이는 모두 너를 도와주고 사역 중에 생기는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함이다. 설령 네가 잘못해서 책망 훈계를 받거나 교체되더라도 너를 계산적으로 대하거나 괴롭히지는 않는다. 문제만 해결되면 그만이다. 하나님 집에서 너를 계산적으로 대하거나 괴롭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네 꼬투리를 잡고 물고 늘어지거나, 어떻게든 네 평판을 떨어뜨려서 사람들이 너를 따돌리고 내치게 하거나, 너 스스로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사임하게 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나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네가 리더 일꾼을 맡기에 부적합하더라도 기껏해야 “너는 자질이 형편없고, 영적인 이해력이 없으니, 리더 일꾼을 맡기에 적합하지 않다. 리더 일꾼으로 뽑히더라도 실질적인 사역을 못 할 것이다.”라고 할 뿐이다. 하나님 집은 절대 이를 이유로 너를 괴롭히거나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하나님 집에는 어떤 사람을 발탁해서 쓰고, 어떤 사람을 쓰지 않는지, 어떤 사람을 양성하고, 어떤 사람을 양성하지 않는지에 관한 원칙이 있다. 이는 모두 하나님 집 사역의 필요에 근거한다. 어떤 사람을 발탁하여 쓰든 모두 사람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수 있고, 사역을 감당할 수 있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또 어떤 문제를 해결하든 이는 모두 사람이 진리를 더 많이 깨닫고, 자신이 직면한 각종 사람과 일, 사물에서 공과를 배우고 분별력을 키우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각 측면의 진리 실제에 쉽게 진입할 것이다. 너를 이용해 봉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적격자를 찾지 못한 공백을 너로 메웠다가 적격자가 생기면 너를 차 버리려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사실 이는 네게 훈련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네가 진리를 추구한다면 굳게 설 것이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굳게 서지 못할 것이다. 네가 눈에 거슬린다고 꼬투리를 잡아 때를 봐서 도태시키려는 게 절대 아니다. 하나님 집에서 너를 양성하고 발탁하겠다고 하는 것은 확실하게 너를 양성하겠다는 말이다. 나머지는 네가 진리를 향해 어떻게 힘쓰느냐에 달렸다. 네가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 집에서도 너를 포기하고 양성하지 않을 것이다. 한동안 양성되다가 자질이 부족해서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못해 교체되는 사람이 있고, 양성되는 동안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제멋대로 굴면서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여 교체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면서 항상 명예와 이익, 지위를 위해 사역하다가 교체되고 도태되기도 한다. 이는 모두 사람을 쓰는 하나님 집의 원칙에 따라 처리된 것이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다가가려 힘쓰는 사람은 설사 잘못을 좀 저지르거나 과오를 범하더라도 하나님 집에서는 양성할 것이다. 반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책망 훈계를 받아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바로 교체하고 도태시켜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토사구팽 아닌가요? 사람을 이용한 게 아니냐고요.” 말해 보아라, 한 사람이 교체되거나 도태되거나 더 이상 하나님 집에서 양성되지 않는 이유가 그의 이용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겠느냐? 그런 적이 있었느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집에서는 어떤 경우에 사람을 교체하고 도태시키느냐? (사람이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방해하고 교란하며 악행을 저질렀기에 하나님 집에서 그를 교체하고 도태시킨 것입니다.) 한 사람이 교체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자질이 부족해서 구체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어느 정도 자질은 갖췄지만 구체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도 않으며, 할 수 있는 사역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마음 쓰거나 힘든 게 싫고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기도, 남한테 미움을 사기도 싫은 것이다. 이런 사람은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니 도태시켜야 한다. 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교회 사역을 그르칠뿐더러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도 지장을 줄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실질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해당 사역을 맡을 수 있게 주제를 알고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실질적인 사역은 하지 않으면서 지위의 복을 누리는 것도 모자라 방해하고 교란하기까지 한다. 그는 항상 상부에 자신의 문제가 탄로나 교체될 걱정을 해서 사역에 관해 보고할 때, 문제를 제기해 진리를 구하는 척하면서 무척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상부에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자기가 진리를 구하는 사람, 실질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상부는 말주변이 좋은지, 문제를 제기할 줄 아는지, 사고가 유연한지를 근거로 사람을 발탁하여 쓰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는지, 진리를 추구하는지,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지를 근거로 사람을 뽑고 양성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체적인 사역을 하거나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기는커녕 교란하고 방해하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기까지 한다. 그리고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에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이 명시되어 있는데도 그들은 하나도 실행하지 않고 제멋대로 나쁜 짓을 일삼는다. 이런 사람도 적지 않은데 전부 교체되었다. 어떤 경우든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발탁할 때는 모두 사람을 양성하고, 그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이끌고, 교회 사역을 제대로 하며 이행해야 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네가 어리석고 식견이 없어서, 혹은 자질이 부족해서 할 줄 모르는 사역이 있을지라도 네가 진리 원칙에 다가가려 힘쓰고, 그 사역을 잘해 보겠다는 책임감이 있으며, 교회 사역을 지킬 수만 있다면, 예전에 어리석은 짓을 좀 했더라도 하나님 집에서는 너를 양성할 것이다. 자질은 조금 부족해도 간단한 사역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그는 진리를 교제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면에서는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지만, 교회 사역을 지킬 수는 있다. 예배 때마다 어떤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든 그는 받아들이고 청종할 수 있고, 제대로 하지 못한 사역이 있으면 거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비록 자질은 부족하지만, 그의 마음은 진리에 다가가려 힘쓰기에 어느 정도 사역하면, 성장하고 성과도 점점 좋아진다. 내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사람에게는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 자질이 좋은 사람이 쉽게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내 관점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해야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자질도 본분 이행의 성과도 그저 그렇지만, 몇 년간 하나님 집의 양육과 공급을 통해 진리에 마음을 들이기 시작하더니, 정말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게 되고, 실제 체험도 어느 정도 생긴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정도 일을 꿰뚫어 보고, 일부 문제들을 해결할 수도 있게 되었으며, 교회 사역에서도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잘된 일이다. 이런 사람은 양성할 가치가 있다. 네가 그 사역을 완벽하게 감당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상부에서는 네가 사역하는 것에 있어서 널 긍정적으로 볼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에게 본분을 안배하는 것이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네가 할 수 있는 사역이 얼마나 되든, 네 자질이 어떻든 너를 발탁하여 쓰는 것은 너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회 삼아 네가 사역하는 것을 훈련하게 하고,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고생하며 중임을 맡는 것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하려는 것이다. 이는 너 개인을 온전케 하는 것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집 사역을 성사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너는 선행도 예비하고 개인의 생명 진입에도 수확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드러나서 도태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를 이용해서 하나님 집에 봉사하게 하고 싶은 모양인데, 어림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아십니까!” 이런 말까지 내뱉을 수 있다니, 이런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겠느냐? 이런 사람이 진리를 깨달았겠느냐? 사람에게 본분을 안배하는 것이 어찌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란 말이냐? 네가 정말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창조주의 뜻을 깨닫고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이런 양심과 이성조차 없으면서 네게 피조물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겠느냐? 네가 정말 양심과 이성을 지녔다면 본분을 올바로 대해야 하고, 네가 이런 자질을 갖췄다면 진리에 다가가려 힘써야 한다. 네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협력하고자 한다면, 하나님 집에서는 네게 사역 하나를 안배하거나 책임을 하나 맡길 것이다. 이는 너를 계산적으로 대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것이고, 너를 훈련하는 것이며, 너를 이끌어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저는 나이도 많고 의욕이 부족한 데다가 체력도 형편없습니다. 이 책임을 맡고 싶지 않아요. 사양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럼 나는 괜찮다고 말해 준다. 하지만 사양하기 전에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정말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라, 네 개인적인 생각에 변화가 생기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든 것이라면, 고생하고 힘들까 봐 걱정되고, 높이 올라갈수록 추락할 때의 충격이 클까 봐 걱정되며, ‘높은 곳은 그만큼 추운 법’이라는 사상 관점을 늘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신중해야 한다. 그 부탁과 특수한 본분을 사양하지 말고 잘 고려해 봐야 한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네가 한사코 “말릴 필요 없어요. 오랫동안 숙고해서 이미 마음을 굳혔으니, 말려도 소용없습니다. 이런 고생을 하고 싶지 않거든요. 남들은 다 편하게 지내는데, 무엇 때문에 저만 힘들어야 하죠? 저는 고생할 팔자라는 건가요? 이렇게 고생하는 건 내키지 않습니다! 이런 운명을 받아들이는 게 달갑지 않아요! 교회는 저를 계산적으로 대하지 마세요. 전 교회의 노예가 아닙니다. 제가 교회에 팔려 오기라도 했습니까?”라고 할 거라면, 이런 듣기 거북한 말은 계속할 필요 없다. 계속한다면 너는 너무 많은 죄를 짓게 될 것이고, 네가 했던 말과 선택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다. 첫째, 네가 하나님을 믿은 것은 복을 받기 위해서였지, 하나님 집에 팔려 온 것이 아니다. 둘째, 네가 하나님 집에 팔려 오기를 바란다면, 하나님 집도 네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너를 사서 쓸모가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니 하나님 집에서 너를 계산적으로 대하고 너를 이용해 봉사하게 하려 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왜냐하면 사람을 검증하는 하나님 집의 기준은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지, 진리를 사랑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는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런 몇 가지 기준으로 사람을 뽑고 양성한다. 네가 만약 하나님 집을 그토록 나쁘게 생각한다면, 너는 양심과 이성이 없는 것이고 일말의 가치도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너를 본분 이행에 쓰지 않을뿐더러 너 같은 불신파는 당장 도태시킬 것이다. 너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니, 하나님 집에서 시간 떼우지 말고 당장 하나님 집을 떠나라. 너는 하나님 집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 집에 이런 사람은 필요 없다. 당장 떠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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