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6) 제 1 부

최근 우리는 성육신이라는 주제를 교제했다. 이는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 중 ‘내려놓기’의 실행과 관련된 주제로서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기’ 중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 내려놓기’에 대해 교제했다. 이 내용은 이미 몇 차례 교제한 바 있다. 주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관해 교제했는데, 이 측면의 내용을 우리는 두 가지 주제로 나누었다. 그 두 가지가 무엇이었는지 말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입으신 육신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두 가지 올바른 실행 원칙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하늘의 하나님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패괴된 인류와 견주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주제에 관해 구체적인 내용들을 교제했는데,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모습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중 성육신이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고 생존하며 처신하고 사역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원칙들을 준수하고 엄수하는지에 관해서도 교제했다. 이는 이런 내용에 관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지닌 사람이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면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사람이 알고 깨달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주로 성육신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측면이라는 주제에 관해 교제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많이 다루었다. 듣고 나서 효과가 어땠느냐? 성육신에 대한 관념과 상상이 줄었느냐? 아니면 새로운 관념이 더 생겼느냐? (성육신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이 줄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측면의 주제에 관해 교제하는 것이 사람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성육신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측면의 일부 구체적인 표출과 행동 방식을 위주로 교제했다. 이는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가진 사람을 사람이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성육신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측면을 알수록 그는 대단한 것이 없는 그저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느냐? 성육신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측면을 알수록 그에게서 하나님의 느낌을 받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느냐? (아닙니다. 성육신의 일부 실제적인 살아 냄과 표출에 대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 예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보이는 형상만 평범하고 정상적일 뿐, 저희 인간들은 미치지 못하는 훨씬 높은 수준의 정상 인성을 표출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정상 인성 속에는 패괴 성품이 없습니다. 교만함과 간사함이 없으시고, 사람의 거만함이나 방종함도 없습니다. 성육신은 겉으로는 평범하고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낮추심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들 중에 유명인이나 위인 그리고 업적을 이룬 거물이 자신의 여러 면을 소개할 때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평범하고 일반적인 면을 소개하겠느냐? (그러지 않습니다.) 패괴된 인류가 자기소개를 통해 남들에게 자신을 알릴 때는 절대 자기가 얼마나 평범하고 일반적이며 정상적인지 소개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그는 자기소개나 자신의 언사를 통해 자기가 남다르다고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비범하고 위대하며 초인적인 능력이 있다고 말이다. 더 나아가 그가 초능력자인 줄 아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더없이 기뻐할 것이다. 패괴된 인류가 자기를 어떻게 소개하는지 보아라. 먼저 그는 자기가 얼마나 완벽한 사람인지 소개하면서 자기에겐 아무런 결함이나 결점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정 환경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기 신분이 얼마나 고귀한지, 자기 학력이 어떻고, 외모의 어떤 점이 남보다 뛰어난지 뽐낼 것이다. 얼굴에 점만 하나 있어도 남다른 설명을 찾아낸다. “여기 좀 보시죠. 저는 점도 흔치 않은 곳에 납니다. 여기에 점이 있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면 귀인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그는 이목구비 중 어디가 되었든 자기 외모에 대해 언급할 때면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 관상학적으로 어떤 좋은 속설이 있는지 큰소리로 떠든다. 예를 들면, 귀인이 아니면 부자다, 출세할 수 있다, 싹수가 있다는 등의 속설 말이다. 또한, 그는 특정 분야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은사나 특기를 뽐내길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그의 사고와 생각이 얼마나 비범하고 남다른지, 자기가 어떤 집단에서 어떤 성과를 올렸는지, 그 분야의 대가에게 얼마나 칭찬받고, 높이 평가받고 부러움을 샀으며, 그가 얼마나 자기에게 탄복했는지, 혹은 자기가 어떤 업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상관에게 얼마나 인정받았는지 뽐내기를 좋아한다. 그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는 자신의 모든 측면을 남달라 보이도록 소개한다. 자기 같은 사람은 여러 사람 중 오직 하나뿐이고, 유일무이하며, 다른 모든 평범한 사람보다 출중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는 모든 사람을 내려다봐야 하는 미천한 서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는 누구보다 위대하고 존귀하며 비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학력을 물으면, 그는 명문대를 졸업해서 석박사 코스를 밟았다고 하는데, 사실 그는 평범한 대학 출신이다. 그는 자신의 결함과 결점, 그리고 패괴 성품, 저급한 인격, 과거의 잘못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남한테 본인을 알리고자 자기를 소개할 때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기를 뽐내고 칭찬하며 포장한다. 자신을 무척 위대하고 출중하며 비범하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병에 걸려도 자기가 잘 먹고 잘살아서 걸린 병이라고 하면서 남들이 자기를 남다르고 귀한 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어쨌든 그는 절대 자기가 사람들 눈에 평범한 사람, 일반적인 사람으로 비치지 않게 한다. 오히려 어떻게든 사람들이 앙망하고 우러르며 탄복하게 한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고 그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지위가 생긴다면, 그는 더욱 흐뭇해할 것이다. 네가 그에게 평범하고 정상적이라고 한다면, 또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이라고 한다면 그는 체면이 깎이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모자라 죽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것이다. 그는 평생 남다름, 비범함을 추구한다. 패괴 성품과 이런 욕망을 지니고 있다 보니, 많은 사람이 늘 겉으로 보이는 자신의 이미지를 대단하고 품위 있게, 그리고 존귀하게 꾸미고, 겉모습이나 언행에서도 무척 거물의 풍모를 풍기려고 한다. 그는 어떤 집단에서든 자기에게 “사람들 속에서 당신이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당신의 눈빛과 이목구비, 기품을 통해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보았죠.”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그는 이 일을 한없이 부풀려 평생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여기저기서 자랑할 것이다. “무리 속에서 한눈에 알아보더라니까요. 제가 리더 감이고 싹수가 있다는 걸,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요!” 그는 이런 사람이 되는 걸 무척 좋아하고 자신을 출중한 사람, 범상치 않은 사람, 남다른 사람, 더 나아가 유일무이한 사람의 지위에 올려놓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또 많은 사람이 사회의 유명인이나 위인, 지위와 신분이 높은 사람을 주목하면서 그들의 소식이나 그들의 언행과 의식주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재미를 목적으로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모방하고 따르려고 주목하는 것이다. 그들이 먹고 입는 것, 그들 사이에 유행하는 것은 죄다 따라 하고, 그들의 이야기 주제도 따라 한다. 그것도 거의 실시간으로 말이다. 자기가 전반적인 사회 흐름에서 도태될까 봐 몹시 걱정하고, 자기가 뒤처져서 남들에게 무시당할까 봐 걱정한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걸출한 사람, 비범한 사람이 될 생각만 하고,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은 절대 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자질이 그저 그렇고 별다른 특기나 은사가 없으며, 각 측면의 선천적인 조건도 평범하고 일반적인데도 보통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척 대단하고 품위 있는 사람처럼 꾸미거나 자신을 범상치 않은 사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심지어 거물이나 능력 있고 역량 있는 사람, 재주가 월등한 사람을 따라 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다. 어떤 행동을 하고 무슨 말을 하며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살펴보고는 자기도 따라 한다. 평범한 보통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처럼 비범한 거물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측면에 관해 교제할 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모두 자기가 얼마나 남다르고 비범하며 위대한지 온 힘을 다해 자랑하고 포장하며 과시하기 바쁜데, 자기가 얼마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지에 대해서만 말씀하시니 조금 비상식적이지 않나요? 너무 바보 같은 거 아녜요? 성육신한 그리스도이시면 그 얼마나 존귀한 신분인가요? 또 머리 위에는 얼마나 큰 광채와 면류관이 있습니까? 어찌 스스로를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실제적인 사람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게다가 혹여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봐 자신이 얼마나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평범한지, 그렇게나 많은 예시를 들어 가며 증명하셨어요. 아무래도 사람으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사람의 관념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평범한 측면의 구체적인 표출인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니 날조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당신이 남다르고 비범한 사람으로 느껴지고, 신분과 이미지도 무척 대단하고 위엄있게 느껴질 만한 사례도 어느 정도는 들어 주셔야죠.” 내가 보니 너희에게 실망을 안길 것 같구나. 정말 그런 사례는 없다. 사실 내가 말한 생활과 사역에서의 처신과 일 처리에 관한 내용은 성육신의 진실한 표출이다. 이렇게나 객관적이고 전부 실제 상황인 것이다. 남다르고 비범하며 위대하거나, 이미지가 대단해 보이고 체구에서 위엄이 드러나는 사례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꾸며 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사람들의 마음속에 좀 더 좋은 인상을 남겨서 실망하지 않게 말이죠. 스스로 그렇게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라고 하면서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면, 대단하지 않은 이미지잖아요! 그럼 누가 숭배하고 우러르겠어요? 다들 당신을 우러르지도 않고 숭배하지도 않는데, 그들 마음속에 당신의 자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말하건대 나는 정말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 네가 날 우러르지 않고 숭배하지 않는다면 내겐 정말 좋은 일이다. 자유로울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을 우러르지도 않고 숭배하지도 않는다면, 그걸 하나님을 따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네가 나를 우러르든 말든 숭상하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정말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네가 나라는 사람을 우러르지 않고 숭배하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모든 말과 내가 교제하는 모든 측면의 진리를 마음을 다해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그 말에 따라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며, 사람과 일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내가 말한 보람이 있으니 말이다. 네가 나라는 사람을 우러르지 않고 숭배하지 않더라도 내가 한 말과 내가 한 설교가 너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지, 일이 닥칠 때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인지 알게 해 준다면, 또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줄 알게 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것이고 어떻게 해야 기준에 맞게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준다면, 더불어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줄 알게 해서 마침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에게 얻어질 수 있게 한다면, 내 말이 헛되지 않고 목적을 이룬 것이 된다. 나를 대하는 것은 그저 올바로 대할 수 있고,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원칙에 따라 대할 수 있으면 된다. 너희에 대한 요구는 높지 않다. 예전에 우리가 함께 지내기 위한 세 가지 원칙에 관해 교제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를 솔직하게 대할 것, 그리스도를 존중할 것, 그리스도의 말을 잘 들을 것이 그것이다. 너희는 이 세 가지 원칙대로 실행할 수 있으면 된다. 나는 사람의 숭배가 필요 없고, 사람의 앙모나 우러름도 필요 없다. 그리고 사람이 마음에 내 형상을 품는 것도 필요 없다. 난 이런 것들에 흥미가 없다. 많은 사람이 대단한 이미지, 남다른 모습, 출중한 능력, 비범함을 겸비한 인물은 무척 숭배하면서 성육신은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평범한 인자일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본 적 없는 사람은 자연히 내가 보통 사람보다 대단하고 무척 위엄이 있는 이미지인 줄 안다. 이런 생각은 금물이다. 나는 전혀 위엄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체구도 작고 키도 꽤 작다. 일상에서 하는 말과 행동도 무척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옷차림, 의식주 등 여러 면에서 난 무척 평범하다. 하나뿐인 나, 유일무이한 나를 결코 추구하지 않는다. 오직 규범을 지켜 일을 처리하고, 분수에 맞게 처신하는 것, 제대로 사역하고 자신의 직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 해야 할 말을 설파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만을 추구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원칙이다. 나는 인간처럼 남다른 사람, 비범하고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 속에서도 남들이 한눈에 알아봐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네가 사람들 속에서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도 전혀 마음 아프거나 괴롭지 않고, 망신이라는 생각도 결코 들지 않는다. 물론 너더러 무례하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사역하며 너희와 접하면서 어떤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든, 또 어떤 측면의 문제를 교제하여 해결하든, 혹은 일상사나 어떤 일에 관해 얘기하든 나는 너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노력한다. 그리고 어떤 일에 관해 이야기하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힘쓴다. 물론, 교제가 진리 측면의 문제와 관련된다면, 더더욱 사람이 거기에서 진리를 실행하는 원칙을 얻게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게 해야 한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조금 나눈다면, 더 정상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상 인성이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정상 인성이 필요로 한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이겠느냐? 사람은 때로 일상에서 보고 들은 것을 다른 사람과 교류하며 나눠야 한다. 일상적인 일에 관해 얘기하고 한담하며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이 모든 것이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이런 나눔은 네게 세상, 사회, 인간을 좀 더 이해시키고, 사회와 인간 가운데 생기는 일들을 바라보는 법, 사악한 흐름과 각종 사물, 각 부류 사람을 인식하는 법에 대해 알려 주는 것일 때가 더 많다. 설사 한담이나 일상적인 대화라고 하더라도 사람과 일, 사물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를 이따금 혹은 가볍게 다루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이 나를 만나면서 보고 듣고 깨닫는 것은 전혀 비범하지 않다. 전부 정상적이며 실제적이고 평범하다. 이런 인성의 모습으로 사람과 함께 사니, 나는 무척 자유롭고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네가 만약 내가 어떤 비범하고 남다른 행동을 한다거나 내 이목구비나 다른 어떤 면에 무척 출중하고 남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자유롭지 못하고 불편할 것이다. 나는 그런 말도, 그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도 싫어한다. 특히 나를 처음 만나면 나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내 시선, 내 이목구비를 뜯어보고, 내 말의 단어나 어조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듣는다. 내가 자기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고 남다른지 살펴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말하건대 그럴 필요 없다. 관찰할 필요도 연구할 필요도 없다.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다. 나와 함께 있을 때는 편안하고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네가 항상 관찰하고 연구한다면, 연구할수록 지치고 막막해질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네 연구와 관찰의 대상이 되면, 나는 너를 점점 싫어하고 네게 반감을 가질 것이다. 네가 어떻게 연구하든,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여기에서 깨달아야 할 진리 원칙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연구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느냐? 너의 이런 연구는 더욱 역겨울 뿐이다. 예전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날 일정 기간 관찰한 것인지, 아니면 무심코 본 것인지는 몰라도 내 눈에 빛이 있다며 한눈에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봤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또 무엇을 알아보았느냐?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내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느냐? 내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는 것을 보았느냐? 내 몸 전체가 빛줄기처럼 빛나는 것을 보았느냐? 내 손에 철장이 들려 있는 것을 보았느냐? 내 눈에 빛이 있다는데, 네 말은 틀렸다. 성경에는 ‘눈은 불꽃 같고’라고 쓰여 있다. 네가 이해한 대로라면, 너는 내게서 불꽃 같은 두 눈을 보고 하나님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야 했다. 빛이 있는 것만 봤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다.” 말해 보아라, 이 사람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느냐? 이는 분량이 작은 모습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내가 알려 주겠다. 이런 것들을 관찰하거나 연구할 필요 없다. 내가 선포한 말씀만 들어도 충분히 진리 실제에 진입하여 구원받는 길에 오를 수 있다. 네가 굳이 관찰하려 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겠느냐? 아무런 결과도 없을뿐더러 하나님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데다가 하나님에 대한 관념도 점점 심해질 것이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말한 하나님의 본체, 하나님의 참모습, 그리고 계시록에서 하나님이 예언한 하나님의 형상이나 인류가 과거 기록을 통해 본 하나님의 형상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따라서 네가 아무리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관찰해 봤자 그는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는 네게 비범하고 남다른 면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관찰하지 말고 연구하지도 말라고 알려 주는 것이다. 네가 연구할수록 하나님은 네게서 멀어질 것이고, 네가 연구하지 않고 단순하게 순종하며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성령이 너를 깨우치고 네게 빛 비춰 주어 진리를 깨닫도록 인도할 것이다. 네가 항상 관찰하고 연구한다면 성령은 너를 버릴 것이다. 성령이 너를 버리면 너는 두 눈이 어두워져 아무것도 꿰뚫어 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고, 무슨 일이 닥쳐도 간파하지 못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또 다른 사람과 교제할 때도 어디서부터 운을 떼야 할지 모를 것이고, 예전에는 할 수 있었던 가장 간단한 일도 이젠 하려 하면 난감해지고 쩔쩔매게 될 것이다. 이러면 낭패다. 이것이 좋은 징조겠느냐? (아닙니다.) 그러니 이런 징조가 있으면, 당장 돌이키고 다시는 관찰하거나 연구하지 마라. 이런 징조가 없더라도 그래선 안 된다. 왜 그러면 안 되겠느냐? 그 길은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네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네가 하나님을 따르며 가야 할 길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관찰하거나 연구하고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경우, 네가 본 적이 없어 성육신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면, 처음 만나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정상이다. 그렇게 살펴보고 나서 어느 정도 인상이 생겨 설교 녹음으로 듣던 목소리와 대조해 보고는 ‘성육신 하나님은 이런 외모에 이런 체구, 이런 옷차림이었구나. 정말 정상적이고 실제적이고 평범하시네. 거짓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셔. 하나님 말씀과 똑같아.’라고 생각하는 건 괜찮다. 여기까지만 하고 더는 마음속으로 이 일에 대해 연구하려 애쓰지 마라.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무엇을 교제하고 있는지 경청하면서 하나님이 교제하는 내용이 어떤 측면의 진리와 관련되는지 생각해 보고 즉시 기록해 두어라. 그러고 나서는 마음을 들여 묵상하고, 깨달은 다음 실행해라. 이것이 그리스도, 즉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올바로 대하는 길이다. 내가 어떤 내용을 어떻게 교제하든 그 교제가 하나님이 입은 육신과 관련되면, 나는 늘 너희가 하나님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평범한 모습을 인식하게 하지, 비범하고 위대하며 독특하고 남다른 쪽으로 연상하거나 인식하게 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모든 일이나 사례는 전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평범한 측면이라는 주제와 관련이 있다. 절대 내가 남다르고 비범하며 위대하다거나, 지도자의 풍모, 위인의 도량이나 품격을 가졌다거나, 위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오해하도록 사실을 조작하지 않는다. 내가 알려 주겠다. 나는 무엇을 경지나 품격이라고 하는지 전혀 모르고, 그런 쪽으로는 고민하거나 마음을 쓰지도 않는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고민하겠느냐? 어떤 주제로 교제해야 너희를 진리 실제로 이끌 수 있을지, 어떤 주제로 교제하면 너희를 독려하고 인도하며 도와주고 지도해서 너희에게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겠다는 의지와 각오가 생길지, 너희가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는 늘 어떤 주제로 어떤 설교를 하면 사람이 구원받는 길을 걷고, 기준에 맞게 본분을 이행하여 진정한 피조물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어떤 측면의 주제에 관해 교제하든 너희가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힘쓴다는 말이다. 나는 결코 어떤 말을 해야 너희가 나를 우러르고 어떤 일을 해야 너희가 나에게 탄복해서 마음속으로 유명인이나 위인처럼 나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으로 여길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내 마음속에 없다.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투를 쓰며, 스스로를 어떻게 꾸며야 너희가 나를 대단하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범접하지 못할지, 그리고 너희가 무척 보잘것없고 무지하게 보일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또 나의 지위나 이미지, 신분을 지키기 위해 말하고 행동하지도 않는다. 오직 내 직분을 이행하는 데 전념할 뿐이다.

나는 고단할 때면 형제자매가 지내는 곳을 둘러보곤 한다. 때로는 농장을 산책하면서 채소밭을 둘러보거나 돼지와 양을 살펴보기도 한다. 또 고양이가 보이면 쓰다듬거나 안아 주면서 말을 걸기도 하고, 강아지가 보이면 너무 귀여워서 안아 주기도 한다. 새끼를 열 마리 넘게 낳은 암캐 한 마리가 있었는데, 공이라도 세운 것처럼 사람 앞에서 무척 신났길래 칭찬해 주었다. “좋겠구나. 네가 낳은 아가들 좀 보려무나. 이렇게나 많단다. 네 공이 크구나. 훌륭해, 수고했다!” 그러고는 개를 쓰다듬고 목을 끌어안아 주었다. 개집도 살펴보고, 농사짓는 곳도 살펴보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참 좋았다. 말해 보아라, 거물들이 이런 더럽고 냄새나고 어수선한 곳에 가겠느냐? 가지 않는다. 특히 개집이나 돼지우리같이 악취가 나는 곳은 보통 사람이 가기 꺼린다. 나 역시 구린내나 악취를 싫어하지만, 강아지가 풍기는 냄새는 참을 만하다. 때때로 강아지가 나한테 몸을 문대고 얼굴에 뽀뽀하거나 얼굴을 핥으면 안아 준다. 동물은 단순해서 주인을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주인과 마음껏 놀고 교감한다. 동물의 삶은 이렇게 단순하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 개와 작은 동물을 좋아하고 아낀다고 늘 이야기하면서 막상 강아지를 안아 보라고 하면 꺼린다. 그가 “개는 더럽고 냄새나요. 바이러스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라고 말하길래 나는 “넌 문제가 많구나. 작은 동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느냐? 이러는 건 정말 좋아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실로 거짓된 사람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는 자기를 보통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가 존귀하고 신분 높은 거물인 줄 안다. 그러니 어찌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작은 동물과 같이 있을 수 있겠느냐? 손으로 한번 쓰다듬기만 해도 재빨리 손을 씻고 소독하는 것도 모자라 옷을 다 갈아입고 집에 가면 샤워부터 한다. 이 정도로 깔끔을 떤다. 말해 보아라, 이상한 사람이 아니냐? 네가 작은 동물을 정말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그런 척하지 마라. 네 가식을 본 사람들은 네가 너무나도 거짓되고 진실하지 않음을 알 것이고, 보기 역겨워할 것이다. 그리고 너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이 마음속에 생길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좋아하는 척하거나 자기를 미화하지 마라. 네가 너를 미화할수록 사람들은 너를 더 추하고 저급하게 여길 것이다. 솔직하면 얼마나 좋으냐. 네가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은 네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쨌든, 성육신이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라는 것은 사실이며, 평범하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측면은 많은 사람이 접하며 보았고, 그것이 사실임을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너희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 그가 일하면서 패괴된 인류처럼 대소사를 막론하고 자기가 남다르다며 뽐낼 뿐 아니라 독보적인 존재가 되려고 한다면, 이 경우에는 사람의 관념에 맞을 것이다. 이러한 패괴된 인류의 온갖 모습과 성육신 하나님이 많은 진리를 선포해도 평범한 사람처럼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모습 중에 어느 쪽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겠느냐? 또 어느 쪽이 부정적인 사물이고 사람에게 혐오당하고 내쳐지는 것이겠느냐? 너희는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럼 더 구체적으로 교제할 필요는 없겠다. 저번 주제를 이어서 교제해 보자.

성경은 ‘개역한글’을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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