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4) 제 3 부

성육신 하나님은 삶 속에서 불가피하게 사람들과 교류하고 어울리게 되는데,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들과도 관련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과도 관련된다.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들과 교류할 때도 당연히 인성 측면의 처세 원칙들이 있다. 비록 성의를 주고받거나 인정세태를 따르는 일에 엄격하게 행동하지는 않지만, 인정상의 교류 측면에서도 남의 이익을 점하지 않고 특혜를 누리지 않으려 최선을 다한다. 어떤 형제자매가 내 사적인 일을 처리하느라 에너지와 시간을 들였다면, 나는 기회를 봐서 작은 선물을 주거나, 그를 찾아가 보거나, 밥을 한 끼 사 주는 등의 일을 한다. 이는 뇌물이 아니라, 성의를 주고받는 것이며, 남의 이익을 점하지 않는 것이다. 나와 사적인 교류가 없는 형제자매의 경우, 지위가 있거나 하나님 집에서 공헌을 했다고 해서 선물을 준 적은 없다. 또한, 누구를 중요하게 여기거나 누구와 사이가 좋다고 해서 그에게 물건을 주거나 특별한 배려를 해 준 적도 없다. 그런 일은 없다. 요컨대,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교류할 때, 남의 이익을 점하지 않고 특혜를 누리지 않으려 최선을 다한다. 나에게 특수한 신분이 있다고 해서 ‘내가 너를 어떻게 부리든 다 합당하고, 어떻게 부리든 너는 받아들여야 해. 그건 너를 높여 준 거니까.’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나 개인을 위해 일을 처리해 주었다면, 즉 교회 사역 이외의 일을 처리해 주었다면, 나는 그 인정을 기억했다가 네게 갚을 것이며, 그것을 기초로 너와 인정상의 교류를 할 것이다. 이방인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이 지난날 어떤 일을 처리해 주느라 돈을 얼마나 썼든 한편으로는 경제적으로 그들에게 빚지지 말고, 그들이 돈을 보태게 하지 말며, 줄 돈은 다 주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그 일에서 너를 위해 적잖이 신경을 쓰고, 적잖이 힘을 쓰며, 열심히 뛰어다녔으니, 예의상 작은 선물을 주어 인정적인 보상을 해 주어야지, 남의 이익을 점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너를 위해 일을 처리해 줌으로써 손해를 보거나 돈을 내게 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합당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일에서 특혜를 누리지 않는다. 물론, 이는 게임의 룰을 준수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인정세태와 성의 주고받기를 지켜야 하는 것이며,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 만약 남에게 일을 부탁하고도 돈을 주지 않고 늘 이익을 점하려 한다면, 이는 인격이 없는 모습이다. 이런 일에서 나의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일을 처리하려고 할 때, 그가 제시한 방안이 적합하거나 그가 요구하는 가격을 감당할 수 있으면 하고, 감당할 수 없으면 하지 않는 것이다.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아 처리하고, 가진 돈만큼만 일을 처리해야지, 무리를 해서는 안 되며, 남의 이익을 점하려고 궁리를 해서도 안 된다. 만약 그 일을 처리할 경제적 여건이 안 된다면, 돈을 빌리든, 대출을 받든, 아니면 돈을 충분히 번 후에 처리하든, 어쨌든 너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야지, 남의 이익을 점해서는 안 된다. 만약 상대가 그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그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면, 그가 네 일을 처리해 주었을 때, 너는 약속대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남의 이익을 점하지 않고, 남을 기만하지 않으며, 남에게 빚지지 않고, 억지를 부리지 않으며, 외상을 지지도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규범을 지켜 처신하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을 때 남에게 하소연하지 않고, 가난할 때도 남의 이익을 점하지 않으며, 부유할 때도 부를 과시하지 않고, 신분과 지위가 있어도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사람들과 교류하고 일을 처리하는 신조이다. 예를 들어, 때로는 내가 남에게 일을 부탁할 때, 정상적으로 처리하면 1천 위안이면 되는데, 상대가 5천 위안을 요구할 때가 있다. 내가 그 돈을 지불할 능력은 되지만, 그가 그렇게 나를 기만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나는 통상적으로 그 일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돈만큼 돈을 쓰지, 상대와 흥정하지 않는다. 지불할 능력이 안 되면,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지, 절대 억지를 부리지 않고, 가난한 척하며 깎아 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나는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 일을 처리하는 데 얼마가 필요하면 그만큼을 주고, 시세대로 비용을 지불하며, 규칙대로 일을 처리한다. 나는 이렇게 꼼꼼한 사람이다. 돈이 있으니, 유독 잘난 체하고, 거만하게 구는 사람이 있다. 온통 명품을 입고, 다이아몬드 반지와 목걸이를 차며, 온몸을 보석으로 휘감아서 보는 사람의 눈이 부실 지경이다. 게다가 어딜 가나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데, 소리가 나지 않으면 너무 존재감이 없다고 여겨 보통 카펫 위로는 걷지 않고, 일부러 대리석 바닥이나 나무 바닥으로만 걸어서 자신이 왔음을 알게 한다. 명품 선글라스를 끼고는 실내에 들어가도 벗지 않으며, 문가에서 방 안에 누가 있는지 한번 둘러보기까지 한다. 그 의미인즉슨, ‘이 몸의 행차를 보았느냐?’라는 것이다. 그들은 어딜 가나 먼저 폼부터 잡는다. 나는 여름에 외출할 때, 선글라스를 쓰더라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남들이 선글라스를 쓴 모습을 보고 폼을 잡는다고 여길까 봐 오해를 사지 않도록 얼른 미리 가방에 넣어 둔다. 내가 신는 신발은 대부분 고무 밑창이나 스펀지 밑창이며, 걸을 때 되도록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어떤 곳에 업무를 보러 갔을 때, 초인종을 눌러야 하면, 먼저 초인종을 누르고, 초인종을 누를 필요가 없으면, 문을 열고 들어가 먼저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내가 누구와 몇 시에 예약이 되어 있다고 말한 다음, 그곳에 앉아서 기다린다. 내가 보니, 어떤 사람들은 할 일이 없을 때, 앉아서 휴대전화를 보는데, 다리를 꼬고 웨이브 진 머리를 찰랑거리며 옆에는 명품 가방을 놓아둔 채 폼을 잔뜩 잡는다. 나는 어딜 가나 아주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한다. 구석 자리를 찾아 앉고, 나쁜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가방을 품에 꼭 안은 채 몹시 조심하고 신중하게 행동하지, 거드름 피우지 않는다. 내 차례가 되면, 늑장 부리지 않고, 얼른 가서 업무를 보며, 되도록 남들의 주의를 끌지 않는다. 또 일을 처리할 때는 규범을 따르고, 남에게 빚지지 않는다. 어디를 가나 행동거지의 폭을 작게 하여 그 누구의 주의도 끌지 않으려 한다. 즉, 어디를 가서 일을 처리하든 발걸음을 가볍게 하며, 사람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말소리부터 먼저 들리는 그런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또 이방인과 교류할 때, 그들이 일을 처리하는 데 통상적으로 어떤 규칙이 있다면, 나는 그 규칙대로 일을 처리한다. 예를 들어, 그 업계의 규칙이 일을 마친 후에 밥을 사야 하는 것이고, 거래 금액에 따른 대접 규모가 보통 15위안 정도라면, 나는 그들에게 15위안 정도의 밥을 산다. 어떤 사람은 “기왕 밥을 사는 김에 돈을 좀 더 써서 한번 보여 줘야죠.”라고 말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그들의 규칙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 규칙을 준수하면 된다. 튀지 말고, 과시하기 위해 헛돈을 쓰지 마라. 서양에서는 남에게 일을 부탁하거나, 시간제 근로자 혹은 노동자 등을 고용할 때, 통상적으로 팁을 주기도 하는데, 팁의 금액이 얼마인지 규정이 있는 업계도 있고, 규정이 없는 업계도 있다. 규정이 없는 경우, 나는 대부분 예의 차원에서,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그의 임금과 그가 한 일의 질 및 일 처리 태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팁을 준다. 그가 일을 잘했다면 5위안을 더 주고, 일을 그저 그렇게 해서 앞으로 다시 고용하고 싶지 않다면, 돈을 더 주지 않지만, 그가 받아야 할 돈을 덜 주지는 않는다. 팁을 주는 일에 관해서라면, 나는 나 자신을 큰 부자로 여겨 의도적으로 부를 과시하느라 돈을 한 움큼 꺼내어 세어 보지도 않고 함부로 남에게 주지 않는다. 나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으며, 그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의 임금에 맞춰 미리 돈을 준비해 두었다가 그가 갈 때 주는데, 그러면 대부분이 꽤 만족해한다. 이 역시 서양에서 일을 처리하는 일종의 규칙이라 할 수 있다. 규칙이라면 지켜야지, 깨뜨려서는 안 된다. 네가 처음 와서 규칙을 모른다면, 많이 알아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일단 알게 되었다면, 모르는 척하지 말고, 되도록 규칙대로 일을 처리해라. 물론, 이는 남들이 뒤에서 판단하거나, 내가 규범을 지켜 처신하지 않는다고 말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그에게 10위안을 덜 주면, 밥을 한 끼 더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데, 셈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이다. 네가 그에게 10위안을 덜 주는 것은 그에게 돈 10위안의 이익을 점하는 것과 같다. 남의 이익을 점하고 얻은 돈을 너 자신을 위해 쓴다면, 그것은 양심을 저버린 것이다. 양심을 속이고 일을 처리하는 것은 인성에 맞지 않는 것이며, 인성이 없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셈을 한다면, 그것은 규범을 지켜 처신하는 것이 아니다. 규범을 지켜 처신하는 것은 최소한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이고, 하나면 하나고 둘이면 둘인 것이다. 가령 네가 서비스업에 종사하여 팁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누가 네게 팁을 주지 않고 네 이익을 점한다면, 어떤 기분이겠느냐? 이와 같은 이치이다. 네가 팁을 주지 않는 것이 어떤 업계에서는 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아무도 너를 추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양심에 찔리지 않겠느냐? 양심에 찔린다면, 너는 양심의 빚을 진 것이다. 네가 평생 진 양심의 빚이 많다면, 언제 다 갚을 수 있겠느냐? 그렇게 처신해서는 안 된다. 팁을 주지 않고 약간의 이익을 점할 수는 있겠지만, 너의 양심이 참소를 받지 않겠느냐? 만약 정말로 참소를 받지 않는다면, 너라는 사람은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 정도의 이득까지 취하는 너는 더 나쁜 짓도 저지를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마음가짐으로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겠느냐?

규범을 지켜 처신하는 측면에 대해 교제한 이 사례들은 사람이 살아가고 생존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접할 수 있다. 성육신 하나님 입장에서도 이 인류 가운데서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일을 피할 수 없고, 반드시 직면해야 한다. 성육신은 이런 일을 할 때, 기본적으로 규범을 지켜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하는 신조와 원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며, 나 자신은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너희와 교류하면서 교회 사역과 관련되거나, 네 개인적인 생활과 관련될 때, 만약 네가 내게 너와 교제해 달라고 하거나, 어떤 측면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문의한다면, 나는 엄격하게 내 처신의 신조대로 너와 교제할 것이다. 네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어쨌든 나의 관점, 내 처신의 방식과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절대 네게 법의 허점을 노려 잇속을 더 챙기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 적절하지 않다. 무슨 일이 닥치든 나는 먼저 너희에게 그 일이 법률이나 정책, 또는 어느 업계의 법규와 관련되는지 확실히 알아보게 할 것이다. 만약 그런 것들과 관련된다면, 나는 너희에게 정부 공직자나 변호사에게 문의하거나, 인터넷에서 관련 규정을 찾아보라고 알려 줄 것이며, 경제 문제와 관련된다면, 회계사에게 문의하라고 할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다 이렇게 실행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있으며, 절대 네가 그런 신조를 위반하도록 부추기지 않고, 오히려 네게 각국의 법률 법규를 엄격하게 준수하라고 요구한다. 여기에는 모든 공공장소, 모든 업계 내부 규정과 규칙도 포함된다. 모르는 상황에서는 주동적으로 알아보고 문의해야 하며, 아는 상황에서는 되도록 준수하고, 그들이 규정한 대로 행해야 한다. 설령 때로는 그 나라의 규정이나 법률이 네 본분 이행 시간에 지장을 주거나, 네 본분 이행의 일부 일에 지장을 주더라도 준수해야 할 것은 준수해야 한다. 우리는 방법을 생각하여 본분 이행 시간이나 환경을 조정함으로써 국가의 법률 법규와 충돌하는 것을 피하고, 국가의 법률 법규를 위반하는 행위나 사건이 발생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한 가지 측면이다. 다른 한 측면으로는 어느 나라의 법률 법규든, 그것이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정부가 명문으로 규정한 것이고, 나의 삶과 생존 범위 내에 나타난 것이라면, 나는 내가 준수해야 할 것을 최선을 다해 준수하고 협조한다. 정부의 법률 법규 중 불합리하거나 사람의 이익에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 절대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며, 정부에 어떤 규정이 있든 준수한다. 물론, 내가 말하는 정부의 법률 법규 준수에는 종교 신앙을 반대하는 법률이나,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는 법률은 포함되지 않는다. 내가 가리키는 것은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 질서를 지키며, 공평을 촉진하는 법률 법규로, 이는 사람이 마땅히 준수해야 하는 것들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있든 법률 법규를 준수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국가의 법률을 존중하고, 어떤 업계의 규정과 규칙이든 존중해야 한다. 만약 적응하지 못하겠거나 그것이 싫다면, 그 업계를 피하거나 그 나라를 떠나면 된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말해서 네가 그 나라에서 살아가고, 그 업계 사람들과 교류한다면, 마땅히 그 나라의 법률을 준수해야 하고, 그 업계나 일부 특수한 상황 및 환경의 규칙과 기율, 나아가 일부 도덕규범까지도 준수해야 한다. 나는 인류의 법률과 법규, 규칙, 그리고 공공장소의 몇몇 특수한 규정, 기율, 또 인성의 기본적인 도덕과 행동 준칙을 모두 엄격하게 준수하려 최선을 다한다. 절대 내게 특수한 신분과 특수한 지위가 있다고 자처하지 않고, 그 어떤 법률이나 법규, 기율, 규칙 등과도 맞서지 않으며, 그것에 도전하거나 고의로 파괴하고 딴 길로 가는 일 없이 엄격하게 준수한다.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의 이면에는 그들의 법률, 법규, 규칙, 규정을 존중하는 것이 있다. 이 역시 규범을 지켜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 실제적으로 실행하고 준수하는 원칙이다. 어떤 이들은 내가 이런 일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 건지 잘 모르고, 어떤 이들은 실제에 맞지 않는 어떤 생각들을 품거나, 내가 이런 일을 하는 원칙과 신조에 대해 공허한 관념과 상상을 어느 정도 가질 수도 있다. 이렇게 교제하니, 너희가 보기에 여기에 공허한 것이 있느냐? (없습니다.) 이른바 공허한 것이 없다는 것은 내가 이런 일을 대할 때, 인성의 관점에서 이성적으로 대하지, 높은 자리에 서거나, 셋째 하늘의 위치에 서거나, 하나님의 신분이라는 특수한 지위에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매우 인성적으로 이성적인 관점에서 이런 일들을 대하지, 절대 성육신 하나님의 신분을 자처하며 이런 일들을 대하지 않는다. 또한 절대 성육신 하나님의 신분으로 안하무인의 방식을 써서 이런 일들을 바라보지 않고, 절대 이런 일들에 도전하지 않으며, 국가의 법률 법규 및 그 어떤 업계의 규정도 교란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실하고 충실하게 이런 법률 법규, 규칙 등을 엄격하게 준수한다. 나아가 더 실제적인 것은 사람과 교류하는 일에서도 매우 인성적인 원칙을 준수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육신 하나님이 규범을 지켜 처신하는 몇 가지 모습에 관해 교제했다. 어쩌면 이는 너희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너희가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던 일일 수도 있다. 혹은 이런 일을 아주 공허한 것으로 생각했거나, 이런 일을 보고 접하고 들었을 때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나타내는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면 및 낮춤과 감춤의 한 측면 표출이다. 이 밖에도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 와서 가장 정상적이고 가장 실제적으로 처신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모습을 통해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의 하나님이 처신하는 것과 인류의 일원이 되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처리하는지 더 잘 알게 하는 것이다. 이런 처신의 신조와 원칙은 하나님이 매사에 있어 공허하지 않고, 실제적으로 하고, 실제적으로 원칙에 따라 실행하며, 인류의 법률 법규를 준수하고, 인류의 각 분야 규칙을 준수한다는 것을 인류가 보고 인식하게 한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이런 법률 법규를 준수하는 동시에 그의 직분을 다하고, 그가 하고자 하는 사역을 행한다. 정상 인성을 살아 내는 것이든, 신성의 사역을 하는 것이든 서로 충돌하지도, 서로 모순되지도 않는다. 정상 인성의 삶에서 나타나는, 처신하는 신조와 원칙은 성육신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면을 보여 준다. 이것이 한 가지 측면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영이 한 사람이 되거나 육신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서 마땅히 갖춰야 할, 양심과 이성이 있는 정상 인성을 살아 낸다. 이런 살아 냄은 성육신이 신성 안에서 다하는 직분과 연결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하나님이 인성 안에서의 살아 냄에서 준수하는 신조와 원칙은 신성으로 사역하며 선포하는 진리, 하나님의 성품, 인류에 대한 요구와 그 본질이 같다. 성육신이 인성의 생활 측면에서 준수하는 처신의 원칙은 ‘규범을 지켜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한다.’이다. 그렇다면 신성 안에서 사역할 때 준수하는 사역 원칙 역시 기본적으로 이 한 가지, 즉 ‘규범을 지켜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한다.’이며,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육신에 관해 말하자면, 그의 인성과 신성, 이 둘은 영원히 나뉠 수 없고, 완전히 합일되어 있으며, 신성은 인성을 통해 발현될 수 있고, 인성은 또 신성의 일부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인류 가운데서 생활하는 이 기간에 인류가 볼 수 있는 인성과 신성, 이 두 가지는 서로 어긋나거나 나뉘지 않고 합한다. 인성의 살아 냄과 처신하는 신조, 원칙은 어느 정도 하나님의 영에 의해 검토받고 영향받고 지배받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양심과 이성을 갖춘 정상 인성을 살아 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인성이 있어야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신성의 온전한 사역, 신성이 해야 할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또 이런 인성이 있어야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자신의 직분을 다할 수 있고, 자신의 직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다. 이것이 한 가지 이해 방식이다. 다른 한 가지 이해 방식은 성육신이 다하는 직분이 이런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인성을 갖춤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됐든 성육신의 인성 본질과 신성, 이 두 가지가 성육신 하나님, 즉 그리스도라는 이 특수한 신분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네가 본 성육신의 이 인성이 처신하는 신조와 원칙,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가 매사를 처리하는 모습이나, 매사를 처리하는 태도와 관점은 인성의 일부이기도 하고, 당연히 신성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둘은 나뉠 수 없다. 다시 말해, 네가 성육신에게 이런 인성이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가 하나님이 입은 육신임을 확신해야 한다. 물론, 너는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를 접할 때, 성육신에게 신성이 있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의 인성 역시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 특수한 신분의 일부임을 인정해야 한다. 어떻게 말하든 결국에는 성육신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이 측면과 성육신이 살아 내는 처신 신조 및 원칙을 사람들에게 보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육신의 생존 및 삶 속의 많은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인성 생활 측면의 이 실제적인 모습들이 그가 다하는 직분이나, 인류에 대한 진리, 길, 생명의 공급으로까지 격상될 수는 없지만, 이 처신 원칙과 신조는 성육신 안의 신성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 육신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고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기에 성육신의 정상 인성이 그런 처신하는 신조와 원칙을 가질 수 있다. 그 함의인즉슨, 패괴된 인류 중 어떤 사람이든, 패괴된 인류 가운데 배경이 있고 신분이 있으며 몸값이 있고 지위가 고귀한 어떤 사람이든 규범을 지켜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하기란 매우 어려우며, 이는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이 일면은 하나님 성육신이 지닌 인성의 소유와 어떠함이기도 하고, 당연히 성육신이 지닌 신성의 소유와 어떠함의 일부이기도 하다. 단지 그가 인성을 통해 표현하고 나타낸 것일 뿐이다. 만약 성육신이 어딜 가나 허풍을 떨고, 늘 지위에 서서 큰소리치며, 자신이 존귀하다고 여기고, 안하무인으로 굴면서 고고한 척하고, 항상 모든 사람을 발밑에 짓밟으려 하며, 엎드려 절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저주하고, 사람을 한 줌의 재로 만들려 하고, 순식간에 죽이려 하며, 예리한 눈빛으로 치려 한다면, 그의 안에 과연 신성 본질이 있는지 장담하기 어렵다.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성육신에게는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이 있어 그 육신의 모든 생활과 언행을 지킨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의 신성 역시 그 안에서 작용한다. 어쨌든 신성은 그의 진정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인성이 패괴된 인류처럼 교만하고 독선적이라면, 그가 하나님의 성육신이겠느냐? (아닙니다.) 만약 그가 늘 초자연적인 모습을 보이고, 언제나 스스로 신선이 세상에 내려온 존재라고 생각하며, 항상 그런 느낌을 갖는다면, 사람들과 말할 때 늘 고고하게 굴며, 늘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려는 언행을 하고, 마음속에 늘 어떤 초자연적이고 탈속적인 생각이 있다면, 사람을 한 번 보기만 해도 그의 전생의 일, 즉 그가 어떤 악행을 저지르고 어떤 일을 행했으며 몇 번이나 사람으로 윤회하고 몇 번이나 동물로 윤회했는지 다 알아챌 수 있다면, 게다가 늘 자신이 몹시 존귀하다고 여기고, 말할 때 초자연적인 모습을 보이며, 이적과 기사까지 따르고, 사람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준다면, 그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내면의 생명 성품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내면의 생명이 신성의 생명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드러내고 살아 내는 것은 그것이 처신의 신조든, 일 처리 원칙이든 모두 매우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다. 보아라, 내가 말한 이런 일들, 내가 삶 속에서 행한 이런 일 중 어느 하나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 있느냐? 어느 하나 초자연적이거나 별난 것이 있느냐? (없습니다.) 어떤 일을 처리하든 너는 내게서 기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나는 기인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다. 또한, 내가 매사를 처리할 때의 사상 관점과 사고 논리는 치우치거나 극단적이거나 초자연적이지 않으며,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교류할 때도 평온하다. 상대가 나와 교류하고 싶어 하면 나도 그에게 다가가고, 상대가 나에게 다가오고 싶어 하지 않으면 나도 억지로 친해지려 하지 않는다. 보아라, 내가 사람들과 교류하고, 일을 처리하고, 갖가지 일을 해결하고, 처신하는 이런 각 측면의 사고가 정상적이지 않으냐? (정상적입니다.) 모두 정상적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너희에게 어느 국가의 정부와 맞서라고 호소하거나 부추긴 적이 없다. 또한, 단 한 번도 너희에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고, 셋째 하늘에서 온 사람이니, 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 세상을 발밑에 짓밟아라! 너희는 모두 이기는 아들이니, 철장을 들고 이 세상을 다스리고 이 인류를 다스려라. 만물이 우리 발밑에 있다!”라는 식의 말을 한 적도 없다.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더냐?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말하더냐? 너희는 무슨 일을 하든 규범을 지켜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든 법을 지켜야 하고, 정부의 규정대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절대 제멋대로 하지 말고, 신중히 행동해야 하며, 방탕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정부의 법률 법규를 위반하여 신고를 당한다면, 본분 이행에 지장을 줄 것이다. 나는 늘 이렇게 잔소리를 한다. 비록 속되게 들릴지라도 아주 실제적이다. 너희는 경험이 너무 적고, 식견이 부족하여 쉽게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각국에 가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함이지, 어느 국가나 집권당과 맞서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본분을 이행하는 피조물일 뿐이고, 무엇이든 창조주의 권세 아래 순종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지배하고 안배하든 순종해야 한다. 어느 나라에 가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든, 어느 형제자매의 집에 머물든 규범을 지키고, 할 수 있는 일은 되도록 많이 해라. 또 그 나라에 어떤 법률 법규가 있든 우리는 준수해야 한다. 나는 너희에게 규칙을 어기지 말고, 민원이 들어오게 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한다. 만약 민원이 들어왔다면, 이번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무슨 법규를 위반했는지, 무엇 때문에 남에게 민원이 들어왔는지 확실히 알아보고, 교훈을 얻어 앞으로 다시는 민원이 들어오게 하지 말아야 한다. 교훈을 얻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민원이 들어올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다 실정에 근거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며, 네게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어떻게 규칙을 지켜야 하는지 알려 줌으로써 네 생활과 생존에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초래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나라에 가든 본분을 이행하러 가는 것이다. 그러니 우선 그 나라에 융화되어야 하고, 그 나라의 법률 법규를 준수해야 하며, 그들의 기존 질서를 교란하지 말고, 그들에게 어떤 번거로움도 끼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너를 받아들이고, 그 나라의 일원으로 여길 것이며, 그래야 너도 마음 편히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현지의 규칙조차 지키지 않고, 규범을 지키지 않는 짓을 해서 늘 민원이 들어오고 트집이 잡힌다면, 심지어 사람들이 너를 싫어해서 네가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네가 무슨 본분 이행을 운운할 수 있겠느냐! 어디에서 생활하든 현지의 법률 법규를 준수해야 한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렇게 실행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너희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유익이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는 것은 아주 실제적이다. 법률 법규를 준수하는 것은 실생활에서 최소한의 상식이다. 이는 호들갑을 떠는 것도 아니고, 신경과민은 더더욱 아니며, 실생활에서 반드시 준수해야 할 원칙이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거나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어떻게 교훈을 얻어 앞으로 잘못을 덜 저지르거나 안 저지르게 될지 노력하고 토론하여 규범을 지키고 분수에 맞게 처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어딜 가나 규범을 지키지 않고,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며, 때때로 큰 소리로 떠들어 이웃의 휴식을 방해한다. 마치 야생 동물이 마을에 들어온 것처럼 지역 사회의 환경에 영향과 교란을 주어 어디를 가나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미움을 산다. 나는 이들에게 현지의 법률 법규를 엄격하게 준수하고 규범을 알아야 한다고, 그렇게 처신해야 정상 인성이 있는 것이라고 알려 준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내가 이런 일을 처리하는 사고방식과 출발점이 옳지 않으냐? (옳습니다.) 고급스럽고 격조 있고 세련된 것을 내세우지 않고, 추상적이지 않으며, 초자연적이고 탈속적이지도, 별나지도 않다. 그저 사람의 삶 속 이런 사소한 일들, 삶 속에 나타나는 이런 잘못과 결점을 바로잡고 지도해 주며, 지적하고 일깨워 주는 것이다. 성육신으로서 이렇게 처신하는 것이 실제적이지 않겠느냐? (실제적입니다.) 너무나 실제적이다! 이런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전혀 공허하지 않고, 실생활과 조금도 동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성육신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처신하고 일 처리하는 신조와 원칙 측면에서 보든, 성육신이 직분을 다하며 교제하는 진리 측면에서 보든 각각의 측면이 다 더없이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각각의 측면 모두 정상적인 사고가 있고,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며,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고 깨닫고 받아들이고 해낼 수 있는 것들이며, 어느 하나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없다. 이것이 바로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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