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제 3 부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에 관한 첫 번째 실행 ― 내려놓기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기
1.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 내려놓기 ― 하나님 사역에 대한 관념과 상상 내려놓기
6) 하나님은 사역으로 사람의 선천적인 조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킨다
⑥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의 여러 측면 모습
최근 우리는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 중 ‘내려놓기’라는 실행 원칙과 관련된 세부 주제,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에 대해 교제하였다. 이 주제를 여러 번 교제하였으니, 이제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이라는 이 세 측면과 관련된 일부 구체적인 모습과 표출을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느냐? (예전보다 좀 더 잘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늘 인품과 패괴 성품을 혼동했지만, 하나님께서 몇 번에 걸쳐 교제해 주신 덕분에 좀 더 잘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을 왜 구별해야겠느냐? (자신의 어떤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지, 어떤 문제는 올바르게 대하기만 하면 되는지 스스로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주 잘 말했다. 이렇게 세부 사항을 교제하면 선천적인 조건, 인성과 패괴 성품이라는 세 측면을 좀 더 명확하게 구별하게 되고, 인품이 형편없는 모습과 패괴 성품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특히 좋지 않은 인품, 패괴 성품과 선천적인 조건을 구분할 수 있게 되어 인성의 결함을 패괴 성품으로 여기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선천적인 조건의 부족함과 결함을 패괴 성품으로 여기지도 않게 될 것이다. 사람이 이런 분별력을 갖게 되면, 패괴 성품의 다양한 모습을 점점 더 명확히 알게 된다. 그러면 패괴 성품과 관련 없는 문제들 때문에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고, 동시에 패괴 성품이 대체 무엇인지 더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 그렇다면 패괴 성품이란 대체 무엇인지, 너희는 명확하게 말할 수 있겠느냐? 패괴 성품과 선천적인 조건은 관련이 있느냐? 패괴 성품이 선천적인 조건에 영향을 받느냐? (영향받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예쁘고 뽀얀 데다가 이목구비가 단정하다면, 외모가 훌륭하니 패괴 성품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의 인성이 그의 외모처럼 완벽하고 깨끗하며 전혀 교만하거나 사악하지도 않고 무척 성결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교제하니, 기본적으로 패괴 성품, 선천적 조건, 인성 이 세 측면의 차이점이 명확해지지 않았느냐? (명확해졌습니다.) 이는 분별하기 쉽다.
사업에 뛰어나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사업하기 좋아하는 것’까지 교제하였다. 사업하고 장사하기를 좋아하는 이런 모습은 어느 범주로 포함시켜야겠느냐? (선천적인 조건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어째서 선천적인 조건이라고 하겠느냐? (사람의 흥미와 기호이기 때문에 선천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흥미와 기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만약 어떤 사람이 사업하기 좋아하고 사업에 능통하며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어도 사업을 잘한다면, 다른 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고, 어떻게 해야 돈을 벌고 이익을 내며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 등을 안다면, 그는 선천적인 조건 중 사업 분야에 특기가 있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이 분야에 특기가 있다면, 이는 선천적인 조건이 분명하다. 선천적인 조건은 후천적인 영향과 그다지 관계가 없다. 보아라, 어떤 사람은 15, 16살에 학교 다닐 때부터 장사하는 걸 배운다. 좀 좋은 물건이 있으면 어떻게든 돈을 받고 팔려고 하고, 부모가 준 생일 선물도 팔아서 현금화하며, 자신의 용돈도 쓰지 않고 모두 모아 장사하는 데 사용한다. 그러다가 18, 19살이 되면 작은 장사를 하게 된다. 학교 성적은 그저 그렇지만, 사업적인 머리가 좋고 계산이 빠르며 장사도 요령 있게 잘한다. 이것이 바로 특기이다. 사업하기 좋아하는 측면은 선천적인 조건의 특기, 또는 흥미와 기호에 속한다. 어쨌든 이는 선천적인 조건 중 하나로, 사업하기 좋아하는 모습은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꼭 사업 분야에 기호와 특기가 있지는 않다. 그들은 주로 남을 해치거나 속이는 방식으로 사업을 한다. 자신의 노력과 정당한 경영 수단, 방식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남을 속이고 사취하거나 법의 허점을 이용해 이익을 내고 돈을 버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이 부류는 늘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하는데, 이는 인성의 본질과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인성이 좋겠느냐? (좋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이 좋지 않으냐? 종합적으로 봤을 때, 이런 부류의 인성은 인품이 좋지 않다. 사람이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하는 것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함이다. 만약 정당한 경영 방식으로 번 돈이라면 그것은 너의 능력이고, 하나님이 네게 준 특기가 가져다준 혜택일 것이다. 하지만 정당한 경영 방식으로 번 돈이나 얻은 이익이 아니라, 남을 속이고 사취해서 얻은 것이라면, 그런 부류는 인격이 형편없고 인품이 저열한 것이다. 그런 부류에게 양심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속된 말로, 이 부류는 양심이 아주 못돼 먹었고 양심이 없다. 어째서 양심이 없다고 하겠느냐? (일반적으로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을 해치고 속이는 짓을 한 다음, 양심에 참소를 받아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양심이 없는 사람은 이익을 얻기만 하면 되기에 양심에 어떠한 지각도 없이 계속해서 그런 짓을 합니다.) 그는 양심이 작용하지 않는데, 이는 양심이 없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양심이 있다면, 양심이 작용할 것이다. 남을 한 번 속이면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것이고, 비록 이익을 얻어도 마음이 괴로울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을 쓸 때는 낯 뜨겁고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고, 자신이 한 짓이 더럽고 저속하다고 느껴 앞으로 다시는 속이지 않을 것이다. 이윤이 아무리 커도 다시는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양심의 작용이다. 하지만 남을 해치고, 속이고, 기만하는 것에 능한 사람들은 매번 생각이 나면 바로 행동할 수 있으며, 성공한 후에 그 돈을 쓰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돈이 손에 들어오면 자신이 똑똑하고 대단하다고 느끼며, 남을 속이는 자신의 수법이 먹힌 것에 기뻐하면서 매우 의기양양해한다. 그들은 물건을 팔 때 무게를 속이고, 가짜 약, 가짜 인삼, 물 먹인 고기를 판매하며, 무엇을 팔든 가짜 상품을 섞어 팔고, 무엇을 팔든 부풀린다. 어떤 사업을 하든 그 안에는 전부 사기 수법과 함정이 숨어 있다. 그들은 항상 사기 수법을 통해 돈을 버는데, 어떤 사업을 하든 정직하게 제값을 받는 경우가 없다. 보아라, 어떤 사람은 사업을 할 때 주로 단골손님을 속인다. 예를 들어, 네가 늘 그 사람 가게에서 물건을 산다면, 그는 네가 돈이 있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10위안에 파는 물건을 너에게는 100위안에 팔 것이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한테는 이 물건을 팔지도 않아요. 다 당신을 위해 남겨 둔 거예요. 보세요, 우리가 이렇게 끈끈한 사이라니까요. 정말 사길 잘한 거죠!”라며 속은 사람이 오히려 고마워하게 만든다. 이 얼마나 능숙한 사기꾼이냐! 양심이 참소를 받지 않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으며 양심의 지각도 없다. 그러므로 이런 부류는 양심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이성이 어떻든 양심만 놓고 볼 때, 이런 부류는 인성이 없고 인격이 저열하다. 어느 정도까지 저열하겠느냐? 양심과 인성이 없다. 즉, 정상인이 갖춘 양심의 지각과 양심의 작용, 양심의 제약이 그에게는 모두 없다. 이런 제약이 없기 때문에 그는 어떤 일이든 다 저지를 수 있다. 사업을 하면 남을 해치고 속이며, 어떤 업무를 하든 몰래 속임수를 쓰고, 그곳의 규칙을 위반하며, 어떤 비도덕적인 짓도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면 전부 저급 자재를 사용하는 것이다. 중국의 그 ‘기우뚱 건물’이나 건물 붕괴가 어떻게 발생했겠느냐? 건축업자가 폭리를 취하기 위해 콘크리트 배합 비율과 철근 사용법을 기준에 미달되게 하였고, 그때부터 이미 품질에 지장이 생긴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이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건물은 무너졌다. 진도 5, 6의 지진만 나도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질 수 있으니,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악덕 건축업자들은 양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어서 사람이 죽은 것을 보면 서둘러 뒷배를 찾아 대응책을 마련한다. 만약 뒷배가 든든하고 대응책이 있다면, 이 일은 감쪽같이 숨기고 넘어갈 수 있다. 몇 명이 죽어도 장례비만 조금 쥐여 주면 그만이고, 누구도 그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된다. 악덕 건축업자의 양심은 아무런 지각도 없어서 몇 명이 죽든, 심지어 몇십 명, 몇백 명, 몇만 명이 죽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악덕 건축업자에게 사람의 목숨은 개미나 마찬가지라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이 양심이 있겠느냐? 양심이 없는 사람은 인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장사를 할 때 남을 해치고 속이는 모습과 표출은 패괴 성품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패괴 성품이 있다. 어떤 패괴 성품이겠느냐? (흉악함과 간사함입니다.) 특징적이고 대표적인 패괴 성품이 바로 간사함과 사악함이다. 남을 속이고 사취할 수 있는 사람은 특히 간사하다. 그가 남을 해치고 속이는 수법은 때로는 네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라서 속고도 그가 잘해 준다고 기뻐할 정도이다. 너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각성하고 자신이 속았음을 문득 깨달아 다시 그를 찾지만, 그는 이미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후다. 이러니 사람을 속이는 그의 수법이 얼마나 뛰어난 것이냐! 1980~1990년대에 중국 광둥(廣東) 지역은 상공업이 비교적 발달했는데, 몇몇 최신 가전제품은 아직 내륙으로 유통되지도 않아 일부 내지인(內地人)들이 유행에 발맞추기 위해 광둥에 가서 구매하곤 했다. 상인들은 그들이 내륙에서 온 것을 알고는 마음속으로 속여야 할 상대를 만났다고, 속일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내지인이 녹음기와 TV 등 전자제품을 구매하고 돈을 지불하면, 상인은 보증 기간을 알려 주며 만약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교환 가능하다고 했고, 이 말을 들은 구매자는 애프터서비스도 좋다고 느꼈다. 구매자가 떠날 때가 되자 판매자는 포장해야 한다며 전자제품을 뒤쪽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구매자가 집에 돌아가 포장을 풀어 보니, 그 안에는 전자제품이 아니라 벽돌과 돌멩이가 잔뜩 들어 있었다. 구매자는 그제야 판매자가 물건을 바꿔치기했고,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찾아가기에는 너무 멀고 교통비도 적잖이 들기에 그저 재수가 없었다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물건을 살 때는 물건을 받으면서 돈을 지불해야 하고, 그 자리에서 물건을 확인해야 확실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런 일은 일반적으로 출장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이 자주 겪었는데, 지금은 이런 일이 어떤 한 도시에서만 드물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속이고 사취하는 일도, 사업을 하면서 남을 속이는 사람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어째서 예전에는 이렇게 많지 않았겠느냐? 그 당시에는 일부 사람들이 아직 이런 속임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속임수가 사회에 유행하기 시작하자 상인들이 너도나도 따라 하고 모방하다가 다들 이렇게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이렇게 행동하는데, 그들의 양심이 나중에 패괴된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들은 본래 이렇다 할 양심이 없었다. 단지 예전에는 그들의 경험이나 식견으로 이렇게 남을 속이고 해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그러다가 사회 풍조가 패괴됨에 따라 사람이 이런 짓을 할 때 갈수록 가차 없어지고, 갈수록 악랄해지며, 그 성질이 갈수록 악질적으로 변한 것이다.
이런 부류는 사업을 할 때 남을 해치고 속이는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일을 할 때도 남을 해치고 속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의 사업 수단과 방식, 남을 해치고 속이는 일을 대하는 태도가 그의 인성을 대표한다. 그와 같은 인성은 무슨 일을 하든 설령 그것이 남을 해치고 속이는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남을 해치고 속이는 것보다 별로 나을 게 없다. 그는 이런 인성의 기초 위에서 그런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무슨 일을 하든 그 성질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즉, 양심의 지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공직자가 되어도 언행의 수법이 사업을 할 때와 동일하며 양심이 작용하지 않는다. 남을 곤경에 빠뜨리고 속이며, 사람을 해치고 죽이고 법을 어기는 등 인성, 도덕, 도의를 어기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사업을 해도 마찬가지이고, 정치를 해도 마찬가지이다. 과학 연구에 종사한다면, 다른 분야에 발 담그게 되었으니, 그의 인성에도 변화가 생기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만약 이런 부류가 교회에서 사무 사역을 한다면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이겠느냐? 어떤 사람은 “아무개는 사회에서 사장과 CEO를 역임한 바 있습니다. 사업 수완이 특히 뛰어나죠. 다만 떳떳하지 못한 면이 있는데, 간혹 남을 해치거나 속이곤 합니다. 이런 사람을 발탁해 교회 사무 사역을 맡기는 것이 적절한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겠느냐? 진정한 인재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늘 이들을 인재로 여기며, 사회에서 명망이 좀 있는 자들을 모두 추천해 올린다. 아무개는 기업의 사장, 임원이고, 아무개는 사회 10대 우수 청년, 모범 근로자이며, 또 어떤 이는 석사, 박사이고, 어떤 이는 변호사, 기자를 했으며, 어떤 이는 공무원, 관료를 지냈다고 말이다. 이런 사람들을 추천하는 자는 사실 영적인 이해력이 없고 진리도 깨닫지 못했다. 그저 하나님 집의 각종 사역은 다양한 업계의 인재와 엘리트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들을 하나님 집의 각종 사역 책임자로 삼도록 추천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책임자가 된 후 사역을 제대로 하기는커녕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교회 사역에 온갖 혼란을 초래하니,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이런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하고,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고, 겁 없이 함부로 굴며, 오만방자하게 일부 사역을 했을 뿐, 진정으로 진리 원칙에 따라 한 사역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무슨 일을 하든 전혀 진리를 구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책임자가 될 수 있었겠느냐?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온 엘리트이자 인재이고 기둥 같은 존재이니, 하나님 집에서 반드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중책을 맡고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며, 명망과 지위가 있어야 한다고, 하나님 집에 자신들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나서서 책임자가 되어 사역을 감당하려 한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 집에서도 그들에게 기회를 준다. 그들이 하기를 원하니 한번 해 보게 하는 것이다. 말인지 노새인지 일단 끌어내 봐야 아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진정한 재능과 실력이 없었다. 그들이 진리를 깨달았는지, 진리 원칙대로 행할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그들 본연의 자질, 재능, 식견, 그리고 각종 사물에 대한 이해 능력과 일을 바라보는 능력, 일을 처리하는 능력만 보더라도 대부분 진정한 재능과 실력이 없었다. 그들은 진정한 재능과 실력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중책을 맡고 사역을 담당하려 했겠느냐? 야심과 허영심이 작용한 데다 뻔뻔하고 자기 주제도 모르고 늘 실력을 과시하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사역을 제대로 하기는커녕 망신만 당했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그들이 사역을 맡은 다음 한 일들은 모두 두서가 없고 엉망진창이었는데, 두 글자로 표현하자면 바로 ‘혼란’이었다. 사람을 쓰는 데 원칙이 없었고, 일을 처리하는 데 원칙이 없었으며, 제물도 불합리하게 사용되었으며, 각종 사역도 적시에 점검하고 처리하지 않았고,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사무 사역도 대부분의 사람이 감당하지 못해서 엉망진창으로 해 버렸다. 농사짓기, 닭 사육, 양 사육 등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어떤 계절에 무엇을 심어야 하는지, 언제 땅을 갈고 비료를 주고 잡초를 뽑아야 하는지, 언제 수확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해 사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애초에 이런 사람들을 쓰지 않으면, 그들은 하나님 집에서 자신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더니, 결과가 어떠하였느냐? 사역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바람에 결국에는 하나님 집에서 나서서 그 난장판을 수습해야 했다. 어떤 사역이든 모두 상부에서 지도하고 검토해야 했고, 심지어 실내외 환경의 청결 유지와 같은 사소한 일조차 상부에서 지도해야 했다. 결국, 상부가 엄격하게 감독, 계획, 총괄하고 처음부터 조금씩 지도하고 지휘하였으며, 이제야 비로소 정상 궤도에 어느 정도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농장에 존재하는 문제만 보더라도 청결 관리를 해 줄 적합한 사람이 없으면 안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야생 동물처럼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렸으며, 말할 때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었다. 정말이지 이방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구체적인 사무에 직면했을 때, 이 소위 인재 중에는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며, 심지어 청결과 환경 관리 같은 사소한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런 표면적인 일들은 진리와는 관련이 없으며, 그저 약간의 자질과 양심만 있다면 제대로 해낼 수 있다. 이런 표면적인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폐물이다. 그들은 양심과 이성도 갖추지 못하고 자질과 재능도 없으면서 직책을 갖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려 했고, 직책을 갖지 못하게 하면 반항하고 따지며 그 누구에게도 승복하지 않았다. 이는 마귀 아니겠느냐? 하나님 집에서 이 마귀들을 폭로하여 도태시킨 다음, 합당한 사람을 뽑아 농장을 관리하게 하였다. 상부의 지도와 계획을 거쳐 지금 농장은 무척 훌륭하게 건설되었고, 모두가 좋아하며, 현지인들도 몹시 부러워하고 칭찬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농장이 이렇게 깨끗하고 예쁘게 관리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10년이 걸려도 이렇게 바꾸지 못하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관리를 잘할 수 있었나요? 이렇게 바꾸는 데 몇 년이 걸렸나요?” 사실 일 년 만에 그렇게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폐허를 형제자매들 눈에 공원과 화원으로 보이도록 바꾼 것이다. 심지어 그곳이 파라다이스나 그림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계획적으로 건설하니 다른 것이다. 그곳은 원래 사방에 흙과 진흙이 드러나 있고 쓰레기와 난장판으로 가득했었다. 하지만 추후 정리하고 관리하면서 점점 좋아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이런 생활 환경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조금만 더러워지거나 난장판이 되면, 오히려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보아라, 이렇게 관리한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이 유익을 얻게 되었고, 좋은 생활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상부에서 직접 지도했기 때문에 이렇게 건설된 것이다. 반면, 소위 인재라는 이들 중에는 사실 실제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 그들은 가장 기본적인 청소 작업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방 안을 어떻게 배치해야 적합해 보이는지도 알지 못하며, 누구에게 어떤 본분이 적합한지도 꿰뚫어 보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무슨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어떤 사역도 하지 못한다. 자신의 생활 환경도 관리할 줄 모르는데, 그런 그들이 무슨 인재겠느냐? 그들은 그 정도의 지능조차 없고, 말도 명확히 하지 못하며, 일을 정확하게 바라보지도 못하고, 주관이라고 할 게 전혀 없다. 이렇게 볼 때, 이 ‘인재’에는 따옴표가 붙은 것이며, 그들은 진정한 재능과 실력을 갖춘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재라면 먼저 인성에 감식력, 감상 능력, 식견 등 몇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만약 이런 것들도 갖추지 못했으며, 구체적인 일을 할 때 망신만 당한다면, 정원이나 한두 마지기 땅조차 관리하고 계획할 줄 모르고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한다면, 이는 인재가 아니다. 너에게 지구 전체를 관리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몇 마지기의 땅만 잘 관리하라는 것이다. 예쁘고 깨끗하게 정리하여 아름다운 환경을 조성하면, 그 안에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워지겠느냐! 새들조차 그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소위 인재라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니며, 구체적인 일은 전혀 하지 못한다. 이는 인재가 아니라, 인성에 무언가가 결여된 것이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자신을 드러내 리더 일꾼이 되고 싶어 하고, 책임자가 되어 중추적인 역할을 맡으려 하니, 이는 어떤 성품이냐? 이는 교만한 성품이다.
사업을 하면서 남을 해치고 속이기를 좋아한다는 주제로 돌아가 보자. 남을 해치고 속이는 것은 어떤 문제에 속하겠느냐?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인성이 나쁘고 양심과 이성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행위를 봤을 때, 그가 표출하는 것은 어떤 패괴 성품이겠느냐? 우선 이런 부류는 성품이 간사하고 사악하며, 그다음으로는 진리를 싫어하고 강퍅한데, 사람을 해칠 때의 그 독기가 바로 흉악함이다. 그는 남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돈이 있든 없든 똑같이 속이며 가차 없이 군다. 이런 부류는 어느 측면의 패괴 성품이든 모두 매우 심각하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런 부류가 쉽게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패괴 성품을 보면, 구원받기 쉽지 않다. 그럼 인성을 본다면, 어떤 측면이 그들이 구원받는 것을 어렵게 하겠느냐? 한 가지 근원이 있지 않으냐? (양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맞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구원받기 쉽지 않다. 양심이라는 기능이 이미 없어지고 존재하지 않으며 양심의 작용이 없다면,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기본 조건을 갖추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구원받기 아주 어렵다. 또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부류가 힘쓰기를 원하고, 또 어느 정도 힘쓸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기준에 맞게 힘씀으로써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여 충성스러운 봉사자가 되고 살아남을 수도 있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은총이다. 비록 충성스러운 봉사자가 살아남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구원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남는 것과 구원받는 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 개념으로, 그 둘 사이에는 격차와 차이가 있다. 또한, 사람의 일 처리 원칙과 마지노선, 일 처리 방향과 목표는 인성의 좋고 나쁨과 큰 관계가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거나 약간의 정의감이 있다면, 이는 양심의 지각이 있다는 의미이며, 그래도 약간의 양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사람됨 자체가 정의감이 별로 없고, 이렇다 할 긍정적인 선택도 하지 않으며, 사악한 일 하기를 좋아하고, 긍정적인 사물에 큰 반감을 갖는다. 특히 누가 긍정적인 행동 방식을 이야기하거나, 사람이라면 인성, 양심, 도덕적 마지노선을 갖고 있어야 하고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설교한다고 생각한다. 좋게 말해 설교라는 거지, 사실은 멸시하고 비웃는 것이다. 그는 네 그런 처신이 실패했다고 여기며, ‘당신 사는 꼴이 얼마나 비참한지 좀 봐! 당신은 속이고 사취할 줄 모르고, 교활한 수단으로 이익을 볼 줄도 모르지. 늘 그렇게 착실하고 소심하게 처신한단 말이야. 요즘은 간 큰 놈은 배불러 죽고, 간 작은 놈은 굶어 죽는 세상이야. 겁내면 안 돼!’라고 생각한다. 그는 너처럼 양심과 원칙에 따라 처신하는 것을 겁이 많다고, 자신처럼 속이고 사취하는 것을 대담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대담해서 그렇겠느냐? 어떤 사람은 큰 붉은 용 국가에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박해를 받고 체포를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다. 이것이 대담하거나 겁이 많은 것과 관계가 있겠느냐? (관계없습니다.) 이는 사람의 추구와 관계가 있다. 그는 인성 속에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필요와 동경이 있으며, 이는 대담하거나 겁이 많은 것과는 무관하다. 어떤 사람들은 장사를 하면서 남을 속이고 사취하는데, 체포되거나 재산을 몰수당할 위험, 또는 파산과 도산의 위험에 여러 번 직면해도 속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의 사기로 인해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사업을 해 남들을 속이려고 유령 회사를 차리기도 한다. 사실 그 회사는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런 실체도 없고 제품도 생산하지 않는다. 그저 말발로 여기저기서 주문을 받고는 상대방이 계약금을 내면 도망쳐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한 건씩 속이고, 속여서 번 돈으로 온 가족이 호의호식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속이겠느냐? 어떤 고위 기관, 부서도 가리지 않고 가서 속인다. 때로는 일촉즉발의 위험한 순간에 직면하기도 하는데, 누가 그의 간계를 간파하고 그를 폭로할 수도 있다. 사실 그는 자기처럼 행동하면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지만 개의치 않는다. 만약 요행히 위기를 넘기면 다음번에 또 속이는데, 돈을 사취하기만 하면 이긴 것, ‘성공하고 명성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속이고 사취하는 것은 위험해질까 봐, 체포될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 엄두를 내지 못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정부가 정죄하고 체포하잖아요. 전 무서워서 못 믿어요!” 만약 네가 예배드리러 가면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정말 간도 크네요. 지금 국가에서 미친 듯이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박해하는데, 어떻게 예배드리러 갈 수 있습니까?” 네가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바른길을 가니, 체포되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유령 회사를 차리고 사기 치는 것이야말로 너무 위험한 일인데, 당신은 어째서 두려워하지 않나요?”라고 말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돈을 벌려고 장사하는 거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죠. 무슨 일이 생겨도 기껏해야 벌금이나 좀 물면 그만인걸요. 하지만 하나님을 믿다가 체포되면, 맞아 죽거나 가죽이 벗겨질 테고, 감옥살이를 몇 년이나 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당신들은 간도 참 큽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 체포되는 것을 보고 겁나서 믿지 못하면서 사업을 하며 사기 치는 것은 체포될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는 어떤 작자겠느냐! 이는 인성에 차이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 패괴 성품은 모두 똑같고, 다 그 몇 가지 패괴 성품이지만, 인성의 차이 측면에서 볼 때, 어떤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 집의 사람이 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설령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구원받을 수 없다. 어떤 측면에서 알 수 있겠느냐? 바로 인성에서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아내가 하나님 믿는 것을 지지하면서도 막상 아내가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너무 위험해서 못 믿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사를 할 때는 속이고 사취하며, 아무리 큰 위험에 직면해도 개의치 않는다. 어떤 위법 행위든 다 저지를 수 있고, 어떤 수단이든 겁 없이 동원하며, 정부가 아무리 철저히 감시하고 법으로 어떻게 정죄하고 판결하든 개의치 않는다. 그는 처신하는 데 최소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없고, 일을 처리할 때 결과를 생각하지 않으며, 이익만 얻을 수 있다면 그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얻을 수 없고 구원받지 못한다. 그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며, 오직 재물만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는 장사만 했다 하면 남을 해치고 속이고 몰래 속임수를 쓰며, 검은 속내를 드러낸다. 이런 인품을 가졌다면 완전히 끝난 것이며,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럼 이런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서 하나님 집에 헌금한다면요?”라고 말하는데, 하나님 집은 이런 돈을 받지 않는다. 바른길에서 번 돈이 아니라면, 하나님 집은 받지 않는다. 사업만 했다 하면 속이고 사취하는 이런 사람은 인성이 매우 나쁘다. 어느 정도로 나쁘겠느냐? 네가 그에게 양심에 손을 얹어 보라고 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아무 느낌이 없어요. 양심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양심이 뭔지도, 양심이 한 근에 얼마인지도 모르겠어요.” 이 말을 듣고 너는 깨닫게 된다. ‘어쩐지 같은 사업을 해도 다른 사람보다 돈을 빨리 벌더라니. 어쩐지 손님들이 다들 그의 물건을 사더라니. 이 사람은 수단이 있어. 사업에 흑막도 있고, 사기 행위도 심각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보세요. 당신들은 정직하게 사업하죠. 사람을 한 번 속이기만 해도 놀라서 심장이 계속 뛰잖아요. 하지만 저는 두렵지 않아요. 공상국(工商局)과 경찰이 증거를 찾지 못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요. 절 고소하고 싶다고요? 증거가 없잖아요! 제가 얼마나 기막히게 속였는지 보세요! 당신은 저처럼 할 수 있나요? 못 할걸요! 당신은 속이기만 하면 바로 들통이 나잖아요. 당신은 그런 수단도 없고 자질도 부족하죠!”라며 뽐내고 자랑한다. 이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악인이다. 이런 부류에게 구제받을 희망이 있겠느냐? 그들은 구제 불능이다. 이런 사람은 패괴 성품이 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이 너무 형편없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점이 나쁘겠느냐? 인성과 양심이 없으며, 양심을 잃어버린 점이 나쁘다. 양심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바로 일 처리에 양심의 마지노선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마지노선은 양심의 기초 위에 세워지며, 양심이 바로 그 마지노선이다. 네가 장사를 하면서 속이고 사취한 대상이 누구든, 그들이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결국 그 행위는 도덕과 양심, 인성에 어긋나므로 그 일을 하는 순간 영원히 양심의 참소를 받게 된다. 이는 평생의 오점이니,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누구를 속였든, 네가 속인 금액이 얼마든 설령 네가 속인 대상이 악인과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 또한 속인 것이다. 그러니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사람도 속이지 마라. 이것이 바로 양심의 마지노선을 갖고 처신하는 것이자, 양심이 작용해 너를 제약하는 것이다. 양심의 작용이 있으면 일을 처리할 때 마지노선이 있지만, 양심의 작용이 없으면 마지노선을 넘어 어떤 일이든 다 저지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고, 짐승만도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표현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말로 해 보겠다. 이성이 전혀 없는 사람은 짐승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인성이 없는 사람은 짐승 아니겠느냐? 사람인데 인성이 없다면, 그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짐승 아니겠느냐?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은 사람은 직립 보행할 수 있고 언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짐승은 인류와 같은 언어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너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식으로 속이고 사취하는데, 짐승은 이런 수단이 없으니, 이런 부류를 짐승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실 이런 부류는 정말 짐승만도 못하다.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그들은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돈만 좋아하는데, 이는 사람 본성의 문제라서 아무도 바꿀 수 없다. 이런 부류가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수탉이 알을 낳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 중에서 살인하고 강도질하며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제외하면, 이렇게 속이고 사취하는 자들의 인성이 가장 형편없다. 그들은 인류 중의 쓰레기이자, 인간 말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경제가 무척 발달한 시대에는 사업을 하며 속이고 사취하는 이런 부류가 특히 많다. 하지만 이 부류가 얼마나 많든 결국 이런 모습은 인성 한 측면의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한 사람의 양심이 어떤지, 양심의 마지노선이 있는지는 인성을 가늠하는 한 가지 지표이다. 인성조차 없는 사람이 무슨 구원을 논한단 말이냐? 최소한 너의 인성에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속이고 사취할 수 있는 부류의 인성에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조건이 아예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러니 네가 그에게 진리를 받아들여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이는 그의 양심에 어느 정도 지각이 있어서 처신하고 일을 처리할 때 양심이 얼마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에게 진리를 교제하고, 어떻게 진리에 진입해야 하는지, 어떻게 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하는지, 어떤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고 어떤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면,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에게 진리를 교제하는 것은 적절하며, 그들은 교제 대상이 맞다. 하지만 남을 해치고 속이는 것을 사업의 주요 수단으로 삼는 부류와 진리를 교제한다면, 그것은 쇠귀에 경 읽기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사업을 하는 이런 부류는, 그가 장사를 하거나 남과 거래하며 왕래할 때 사용하는 수단이 정당한지, 양심의 마지노선이 있는지, 양심의 제약이 있는지, 남과 거래하며 왕래할 때 양심이 작용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양심이 작용하고 제약하는 힘이 있다면, 그 사람은 괜찮은 편이니 사귈 만하다. 그런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해도 되고 진리를 교제해 줄 수 있으며, 만약 그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구원에 이를 희망이 있다. 사업하기 좋아하는 측면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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