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제 4 부

하나님 사역에 대한 사람의 이런 관념과 상상을 교제하고 해부하고 나니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난을 겪는지, 대가를 치르는지, 구속을 받는지, 좋은 것을 먹거나 입는 것을 좋아하는지 등에 관한 모습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리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원칙은 무엇인지, 하나님 사역이 사람에게서 이루려는 성과가 과연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이루려는 성과는 사역에 대한 네 열의를 시시각각 보려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네 열심, 혹은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네 의지를 보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기에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그런 모습들은 그저 일시적인 충동일 뿐이다. 바꿔 말하면, 네 열심인 것이다. 열심의 본질이 무엇이냐? 네 혈기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열심, 사람의 감정적인 일 처리, 사람의 일시적인 충동이나 사람의 그런 열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최소한 네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깨달아 각종 일이 닥쳤을 때 오로지 일종의 규례나 형식, 혹은 행위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진리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네가 이행하는 본분이나 모든 일에서 진리 원칙을 구하고 진리 원칙대로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너의 실제로 만드는 것이 바로 하나님 사역이 거두고자 하는 성과이다. 개인적인 생활에서 네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고 하든, 아니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려고 하든, 네게 어떤 은사나 언변이 있든 하나님에게는 상관없다. 네가 고난을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든 없든, 혹은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하나님은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하나님을 믿기 위해 3, 5년 동안 좋은 옷을 사 본 적이 없어요. 미장원을 안 간 지도 10년이 넘었다고요.”라고 한다. 설령 네가 평생 좋은 것을 안 먹고 안 입으며 수많은 고난을 감내했다고 한들 그래서 어쩌겠느냐?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이 수많은 진리를 설교하고 교제하며 사람에게 공급하는 최종 목적이 너를 수도승으로 만드는 것이겠느냐? 너를 불쌍한 사람, 거지나 성난 젊은이로 만드는 것이겠느냐? 아니다. 하나님이 하려는 것은 그의 말씀과 진리 원칙을 사람의 내면에 심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사람이 많은 고난을 감내하고 많은 대가를 치르는 모습, 일상생활에서 특히나 알뜰한 모습, 고생하며 검소하게 지내는 모습, 의지와 이상, 열의가 충만한 모습, 혹은 특히 신중하고 분수를 지키며 무척 올바르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모두 하나님 사역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다. 설령 네가 평생 오랫동안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 세 시간만 자며, 오랫동안 좋은 것을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며, 긴 세월 네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하면서 수없이 고난을 감내하고 의지를 다지더라도, 너희 말대로 “항상 초심을 잃지 말자.”라면서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감내하고 헌신하며 하나님에게 평생을 바치더라도 네가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전혀 공을 들이지 않고 매사에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결국 버려지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네가 고난을 감내하고 대가를 치르며 자신의 초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평생 헌신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침으로써 구원에 이르려 한다면, 그것은 일장춘몽이고 헛된 망상일 뿐이다. 네가 평생 옥수수 면이나 옥수수빵만 먹으면서 좋은 음식은 전혀 먹지 않고, 좋은 것을 전혀 누리지 않는다고 해도 소용없다. 하나님은 결코 한 사람의 행위가 어떤지, 그가 겉으로 어떤 규범을 지키는지, 겉보기에 소박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떤 길을 걷는지, 직면한 모든 일에서 준수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문제를 처리할 때 진리 원칙을 준수하는지를 본다. 네가 진리 원칙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각종 규칙과 규범을 아무리 잘 지켜 봤자 소용없다. 그것은 네가 관념과 상상 속에 사는 사람이고, 혼자만의 장밋빛 꿈속에 사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역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구원 사역의 그 어떤 방식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하나님 사역을 멀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니 하나님 사역에서 수확을 얻고 싶다면 먼저 진리에 공을 들이고, 자기 관념과 상상에는 관심을 끄고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말아라. 쓸데없는 짓이다. “제가 긴 머리를 하는 게 단정한가요? 아니면 단발머리를 하는 게 단정한가요?”라고 내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너는 긴 머리가 좋으냐, 단발머리가 좋으냐?”라고 되묻는다. 그녀가 “전 긴 머리가 좋지만, 단정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것 같아요.”라고 답하면, 나는 “하나님이 언제 그렇게 말하더냐? 그것이 진리와 관련이 있느냐?”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간식을 먹어도 될까요?”라고 묻는다. “네가 간식을 먹는 것이 정상 인성에 필요한 것이냐? 하나님이 먹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더냐? 하나님이 정죄하더냐?”라고 내가 물으면, 그는 “하나님께서 정죄하실 것 같습니다. 간식을 먹는 것은 방탕한 짓이니까요.”라고 답한다. 무엇을 두고 방탕하다고 하느냐? 네가 만약 간식을 먹는 것이 방탕하다고 생각한다면, 간식을 먹지 않으면 방탕하지 않은 것이겠느냐? 간식을 먹지 않는 것이 네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실행한다는 것을 의미하느냐?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관념과 상상은 진리가 아니며 진리와 무관하다. 네가 지혜롭다면 당장 자기에게 어떤 관념과 상상, 그리고 바리새인의 어떤 작태와 사상 관점이 있는지 성찰해 보고 바로 내려놓아라. 내려놓으라고 하는 목적은 너더러 방탕하게 제멋대로 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와 진리 원칙을 구하여 진리를 얻어 생명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거지가 되어 수도승의 삶을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거지가 되는 것을 싫어하시니 부자가 되는 것은 좋아하시지 않을까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육적으로 고난을 겪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은 사람의 관념과 상상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사람이 고난을 겪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것은 사람이 복을 누리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게 아닐까요?” 틀렸다. 그것 역시 네 관념과 상상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맞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무슨 일에 직면하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진리 원칙을 구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언제든 진리 원칙을 잊어선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의지를 다지고 고난을 감내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을 좋아하십니다.”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감내하려 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시지 않아요.”라고 한다. 이것이 맞는 말이냐? 어떤 말이 맞고, 어떤 말이 틀리냐? (모두 틀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와 명예, 이익을 위해 고난을 감내하는데, 그 의지가 대단하다. 이런 모습들을 하나님이 좋아하겠느냐?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적인 일을 위해서는 고난을 감내하려 하지 않지만, 본분 이행과 진리를 위해서는 고난을 감내하려 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하기 위해서는 고난을 감내하려 한다. 어떤 모습이 좋으냐? (진리 원칙을 위해 고난을 감내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일들에서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 진리 원칙에 따라 일 처리하고 진리를 실행해야 옳다는 것이다. 본분 이행에 관련된 일이든, 개인 생활에 관한 일이든 고난을 겪었는지는 기준이나 원칙이 아니다.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원칙은 하나님의 요구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이다. 네가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했다면, 설령 그 일로 고난을 겪지 않았어도 네가 한 것은 옳은 것이고 하나님에게 칭찬받을 것이다. 반면 네가 진리 원칙에 따라 하지 않았다면, 설령 그 일로 네가 극심한 고난을 겪고 곤욕을 치렀더라도 헛수고일 뿐이며 하나님에게 칭찬받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의 말을 한마디 듣고 나서 그의 말을 따르고 적그리스도의 기호대로 사역을 시행하면서 많은 말을 했고, 많은 고난을 겪었다 한들, 정신없이 바쁘고, 몸이 매우 고단하며, 피로로 몸이 망가졌다 한들 하나님이 칭찬하겠느냐? 하나님이 기억하겠느냐? (칭찬하시지도, 기억하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태도를 취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혐오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했더냐? “악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가라”, 이것이 하나님의 태도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얼마나 고난을 감내했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지를 드러내어 자신의 공로를 치켜세우든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살펴보지 않고, 오직 네가 이런 일들을 처리할 때 진리 원칙에 따라 했는지, 하나님 말씀을 준행했는지만 살펴본다. 이를 원칙으로 판단한다. 하나님 말씀을 준행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했다면, 네가 고난을 얼마나 감내했고 대가를 얼마나 치렀든 다 헛수고이다.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정죄할 것이다. 이는 제 무덤을 파는 꼴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도태되는 것이 자업자득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셀 수 없이 많은 말씀으로 네게 진리 원칙을 알려 줬건만 너는 듣지 않고 계속 개인적인 뜻을 품은 채 자신의 관념과 상상으로 진리를 대체하여 하나님의 칭찬을 받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복과 상을 받으려는 헛된 생각을 하니, 이는 스스로 죽을 길을 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바울의 부류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으려면 사람은 하나님 사역을 정확하게 인식해야지,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을 짐작하고 하나님 사역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또한 관념과 상상으로 자신의 행위나 행동 방식을 판단하고 모든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아무 성과도 없이 헛수고만 한 꼴이 될 것이고, 심각할 경우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할 것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역을 대할 때,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각종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아야 한다. 즉,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성찰하고 해부한 다음 내려놓음으로써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구해야 하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 그리고 잘못된 원칙과 행동 방식 대신 진리 원칙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너는 구원받는 길에 오를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네가 구원받으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더 논할 가치도 없다!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 사역에 대해 품은 한 측면의 관념과 상상이다. 이 내용은 여기까지 교제하자.

3) 하나님이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방법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상상

하나님 사역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는 또 한 가지 측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상생활에서 연약해질 때, 하나님에 대한 각종 패역이 생길 때, 혹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일을 했을 때 사람은 징계와 채찍질, 심지어 징벌과 저주 등을 받아야 한다는 관념과 상상을 갖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틀린 말을 하거나 관념을 표출하거나 특정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불복할 때가 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내가 이런 패역과 배신을 표출했는데, 왜 징계받지 않았을까? 혀에 물집이 생기지도 않고, 밤에 악몽을 꾸지도 않아. 그렇다고 마음이 불편한 것도 아니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성령의 역사가 느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관념과 상상 속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러 온 것이라면 사람을 정복하는 것 말고도 사람을 변화시키고 정결케 하며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여러 가지 사상 관점을 바로잡아 주는 사역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람은 사람의 생각 속에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나 더럽고 추하며 사악한 것들이 있으면, 징계나 책망, 심지어는 징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사람이 자주 징계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변화하고 성결해지겠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의 관념과 상상은 무엇이냐? 사람은 징계와 책망, 채찍질, 징벌, 심지어 형벌과 심판을 빈번하게 받아야 하고, 그래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사람은 이런 더러움, 사악함, 패괴를 아주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표출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으며, 그렇게 살아도 평안하다고 느끼는데, 징계나 징벌을 받는 느낌이 없으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람은 패괴를 표출하면, 최소한 책망을 받는 것이 느껴지거나 혹은 병이 나거나 입이 부르트고 밥을 먹을 때 목이 메거나 혀를 깨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면, 눈이 빨개지고 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답해 보아라, 하나님이 이런 일들을 하겠느냐? (하지 않으십니다.) 절대 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할 때는 자신을 반성하여 진리에 진입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의 분량에 따라 사람을 징계하고 책망하십니다. 하지만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자기 행동이 잘못됐음을 속으로 분명히 아는 경우라면, 절대 사람을 징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과 진리로 자신의 행동을 가늠하길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아주 잘 교제했다. 사람은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사람이 패괴와 패역을 표출할 때 하나님이 징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악인이 악을 행하면, 하나님이 곧장 징벌을 내려 반드시 악인을 징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생활 속에서 이렇게 징벌받는 일들을 보는 경우는 드물다. 한편으로는 사람이 각종 패괴와 패역을 표출해도 징계나 채찍질을 받지 않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악인이 악을 행해도 징벌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마음속 깊이 하나님 사역에 대해 관념을 갖게 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잃어버리거나 이렇게 겉으로 보이는 일들로 하나님 사역을 가늠하고 판단하게 된다. 이는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아니냐? 사람이 패괴와 패역을 표출하면, 하나님이 꼭 징계하거나 형벌하고 심판해야 하느냐? (아닙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려면 철저히 구원하셔야 해요. 하나님께서 사역하시는 목적이 무엇이겠어요? 사람을 정결케 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사람이 패괴와 패역을 표출할 때, 하나님께서 징계하고 책망하셔야죠. 이것이 사람을 책임지시는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거고,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시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깨달아야 할 진리는 무엇이냐? 징계, 채찍질, 징벌이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필연적인 과정이냐?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수단과 방식이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시고 하나님 사역의 목적이 사람을 구원하는 거라면, 사람이 패괴를 표출하거나 하나님을 거역할 때 하나님께서는 왜 징계하지 않으시지? 악인이 악을 행할 때 왜 징벌하지 않으실까?’라며 의아해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징계하지 않거나 악인이 악을 행해도 징벌받지 않는다면,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나 하나님 사역의 성과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겠느냐? 만약 빈번한 징계와 징벌이 사람이 진리를 구하는 것을 대신할 수 있거나 사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할 수 있다면, 징계와 징벌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주된 사역 방식이자 필수적인 수단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현재 패괴 정도나 사람의 사탄 본성이 하나님의 징계와 징벌로 즉시 변화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즉시 진실로 회개할 수 있겠느냐? 즉시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지 못한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동시에 성령의 역사로 사람을 깨우치고 인도하는 것 외에는 초자연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채찍질이나 징계, 혹은 징벌조차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런 채찍질과 징계, 징벌은 하나님 사역에서 주된 부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있긴 있다. 바로 특수한 사람이나 일의 경우, 특수한 환경에서 특수한 성과를 위해서, 혹은 특수한 이유로 인해 하나님은 징계나 채찍질, 혹은 징벌의 사역을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이번 사역에서 주로 말씀하고 진리를 선포하는 방식으로 사람에게 진리 추구의 길에서 필요한 것을 공급한다. 그 목적은 사람이 진리 원칙을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진리를 선포한 뒤로 하나님은 예전에 했던 징계나 채찍질, 심지어 징벌의 사역은 거의 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이 더 중시해야 할 것은 일상생활 중 마주치는 일에서 실행해야 하는 각 진리 원칙이지, 그 일에서 하나님이 너를 징계하고 가로막는지, 너를 순조롭게 하는지와 같은 방식이나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이 징계나 채찍질, 징벌의 방식을 거의 취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거의 취하지 않는다 뿐이지, 전혀 취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거의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느냐? 가끔 특수한 상황에서는 징계, 채찍질, 또는 징벌의 방식으로 가볍게 혹은 대표적이거나 상징적으로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도록 거들어 주는 이런 사역을 한다는 뜻이다. 즉, 이런 방식으로 사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보조해 줄 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째서 사역할 때 이런 방식을 아주 많이 취하지 않겠느냐? 왜 이런 방식 위주로 사역하지 않겠느냐?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이 단계 사역에서 사람이 깨달아야 할 각 항목의 진리를 알려 주고 공급해 주어서 사람이 이미 그 진리들을 들었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모두 이해하고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 측면의 원인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사람의 주관적인 이유 때문이다. 사람은 정상 인성의 양심이 있어서 양심의 작용으로 자기가 표출한 패괴 성품이나 자신의 행동 방식, 사상 관점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가늠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최소한 이 모든 것을 가늠할 수 있는 양심의 기준이 있는 것이다. 만약 네 양심에 따라 가늠했을 때 긍정적인 일이라면, 너는 가서 해야 한다. 조금 느리거나 늦었다고 해도 자책할 필요는 없다. 반면, 네 양심에 따라 가늠했을 때 하지 말아야 할 부정적인 일이라면, 너는 자제해야 한다. 말하지도 말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런데 만약 네가 양심과 이성의 감각이 없다면, 너는 인간도 아니다. 네게 양심과 이성조차 없다면 너는 어떤 일이 옳은지 그른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니, 하나님이 너를 징계하거나 징벌해 봤자 무의미하다. 바꿔 말하면, 양심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며, 이런 사람을 구원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구원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무엇이 포함되느냐? 징계조차 하고 싶지 않아서 징계도, 채찍질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만약 악을 행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징벌하실까요, 징벌하지 않으실까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직접 징벌하지 않는다. 교회에 행정 법령이 있기 때문에 교란하고 방해하는 악인에 속할 경우 제명하거나 출교시키면 그만이다. 설령 제명이나 출교의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해도 B팀으로 보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제물을 마구 낭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심각하다. 돌려받을 것은 돌려받고 돌려받은 후에도 합당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역하는 원칙이며 사람을 대하는 원칙이다. 간단하지 않으냐? (간단합니다.) 너는 하나님이 너를 택하면 반드시 너를 온전케 해야 하고, 온전케 될 때까지 그만두지 않는 줄 알았느냐? 그것은 양심과 이성이 있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사람, 구원할 만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양심의 지각조차 없는 사람은 교회의 행정 법령에 따라 대하고 처리하기만 하면 되니, 하나님은 징계하지 않는다. 징계해서 뭐 하겠느냐? 정상 인성과 양심이 없는 사람을 징계하는 것은 오리 보고 홰를 타고, 소를 보고 나무에 오르라는 것과 같으며,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는 것과 같고, 거룩한 것을 부정한 것에 먹이로 주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일에서 사람은 ‘나는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양이야. 내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악을 행해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버리지 않으실 거야.’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네가 양인지 이리인지 모를 일이지 않으냐. 네가 하나님의 양인지 어떻게 가늠하느냐? 그것은 네가 인성이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 나서 그것을 지각하는지, 양심의 가책을 받는지, 죄책감을 느끼는지에 달려 있다. 만약 죄책감이 든다면 너는 뉘우칠 것이고, 진리를 깨닫지 못해도 양심의 기준에 따라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정상 인성에 부합하게 행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네게 이런 모습이 있다면, 너는 하나님의 양이다. 그런데 만약 정상 인성의 양심과 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마주쳤는데, 네게 일말의 정의감조차 없어서 자기가 행한 악이나 악인의 교란을 혐오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양심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의 양이 아니라 이리이고 짐승이며 마귀이다. 네가 하나님의 양인지, 이리인지는 이 기준으로 가늠한다. 너는 하나님의 양이 아닌데 ‘내가 패괴와 패역을 표출해도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지 않으시네. 징계하셔야 하는데.’라는 생각이나 관념과 상상으로 늘 하나님 사역을 가늠한다면, 너는 어리석은 자이다. 너는 결코 하나님의 양이 아니며 하나님도 너를 구원할 계획이 없는데, 네게 하나님 사역을 가늠하고 판단할 자격이 있겠느냐? 네가 어리석은 자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이 일을 가늠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젠 가늠할 수 있습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