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제 2 부

사람은 하나님 사역에 대한 온갖 관념과 상상으로 가득하다. 방금은 하나님의 사역 날짜에 관한 사람의 관념에 대해 교제하였다. 이 관념 외에도 다른 한 가지 측면의 관념과 상상이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이 실제 어려움이 닥칠 때면 종종 주관적인 바람 속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영감을 주어서 묘안이 떠오르게 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고 진리로 무장하거나 진리 원칙을 파악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서 닥치는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이 도와주어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사람은 하나님 사역을 너무 막연하고 공허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식에 대해서도 관념과 상상으로 가득하다. 사람은 하나님 사역에서 각 측면의 진리를 구해 진리 원칙에 따라 모든 일을 실제적으로 처리하려 하지는 않고, 오히려 각종 일이 닥쳤을 때, 마치 마법 세계에 사는 것처럼 하나님에게 기도해서 진리를 구하거나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아도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계시하듯 사람에게 빛 비춤과 계시를 주기 바란다. 그리하여 실제 생활에서 어떤 일이 닥치든 사람이 지혜와 능력, 각종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갖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람의 상상에 따르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똑똑해지고 영리해지는 줄 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아름다워지고, 육적인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문제가 없고, 패괴 성품의 방해도 없고, 실생활에서도 아무 어려움이 없는 줄 안다. 오히려 자신의 바람 중에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힘을 주고 좋은 환경과 우월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 이 모든 것이 현실이 되고 사람의 이상과 바람이 모두 실현되게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람이 자신의 자질이나 본능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에 부딪히면, 하나님은 더더욱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사람이 절묘하게 혹은 아주 수월하게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또 자질이 부족하고 각 측면의 업무 역량이 떨어지는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적과 기사를 보이면 사람의 자질이 단번에 좋아지고 사람이 단숨에 똑똑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에게는 어려운 일이 없으니 사람이 이룰 수 없는 일을 모두 해내도록 도울 수 있고, 사람이 극복하지 못하고 이르지 못하는 난제들도 사람이 전부 해결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많은 관념과 상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 사역의 시간에 대한 각종 상상이 가득하며 여러 행동을 하고 대가를 치르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직면한 각종 어려움과 문제, 심지어 자신의 패괴 성품에 대해서도 각종 관념과 상상을 가득 품는다. 이런 관념과 상상은 대부분 공허하고 막연하며 실제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더욱이 사람의 자질과 지능을 뛰어넘고 사람 본능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사람은 종종 하나님이 사람의 실제 어려움이나 사람의 자질, 지능, 본능에 따라 사역하지 않고, 사람이 이 모든 것을 뛰어넘고, 사람의 정상 인성과 자질, 본능을 뛰어넘어 일할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란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관념과 상상이 가득하며, 더군다나 그 상상은 무척 초자연적이다. 이런 관념과 상상들은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와 완전히 상호 모순되고 상호 대치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이런 초자연적인 일을 한다면, 왜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고 왜 이렇게 많은 진리를 공급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이토록 실제적인 이유는 하나님이 그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사람에게 공급하고 사람의 내면에 만들어 주어 사람이 그 말씀과 진리에 따라 살아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정상 인성과 사람의 본능을 뛰어넘으라는 것이 아니라 정상 인성을 바탕으로 진리 원칙을 지키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본분과 부탁을 지키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관념과 상상은 공교롭게도 하나님의 사역과 정반대라 하나님의 사역 방식에 조금도 부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실제적으로 사역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사람의 상상은 초자연적이고 공허하며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이 좀 더 특수한 방식으로 자기에게 계시해 주고, 공급해 주고, 붙잡아 주며 도와주고, 심지어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신이 구원받게 해 주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항상 일이 닥치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이나 실행의 길을 찾지 않고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도할 때도 문제에 대해 진리를 구한 후 상응하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주거나 혹은 한마디 말씀, 한 가지 뜻, 하나의 장면을 깨우쳐 주거나 혹은 자기에게 원동력을 주는 빛 비춤을 조금 얻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진리를 깨닫고 싶어 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좀 더 극단적인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즉, 문제에 봉착하면 하나님이 꿈속에서 한 단락 말씀의 계시를 통해 이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혹은 그곳에 가야 할지, 그 복음 대상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 알려 주기를 바란다. 또 어떤 사람들은 큰 어려움이 닥치면 기이한 꿈을 꾸거나 꿈속에서 답을 찾고 싶어 하고, 형제자매나 교회 리더와 함께 자신의 꿈을 분석하고 풀이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제게 이런 기이한 꿈을 꾸게 하신 건 무슨 뜻일까요? 저보고 어떻게 하란 거죠? 가라는 건가요, 말라는 건가요?” 그는 하나님이 사역할 때 이런 특수한 방식으로 사람에게 계시해 주고 이끌고 공급함으로써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관념과 상상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또 일부 사람들은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나님께 기도했는데도 답을 얻지 못하면 동전 던지기로 결정한다. 예를 들면, 어떤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때,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나님께 기도해도 답을 얻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 동전 던지기로 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동전이 앞면으로 땅에 떨어지면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뜻이고, 뒷면으로 떨어지면 가지 말라는 뜻이다. 세 번 던져서 앞면이 한 번, 뒷면이 두 번 나오면 ‘2대1이네. 이건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이야.’라면서 가지 않는다. 그는 가지 않으면서 속 편하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거야. 이건 내가 정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야.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한다면 가지 말아야 해.’ 도대체 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정확하겠느냐? 절대 정확하지 않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원칙에 따라, 그리고 환경이 허락하느냐에 따라 정해야 정확하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네 본분이고 네 임무이며 네가 오늘 해야 할 사역이니, 넌 가야 하고 가는 것이 옳다. 하지만 사람은 늘 이런 실제 상황에 따라 이해하거나 행하지 않고 관념과 상상에 따라 이 일들을 대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수단과 방식으로 이 일들을 평가하고 판단하여 끝내 황당하고 치우친 결정을 내리고 만다. 이는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각각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각종 일에서 어떤 원칙을 준수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분명한 말씀으로 알려 주지 않을 경우,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따르고 현실 환경에서 하나님이 이끄는 바를 따라야 하고, 또한 당연히 형제자매와 함께 상의하거나 기도로 구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실제 상황에 따라 이 일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역에서 하나님이 분명한 말씀과 지시로 사람에게 각종 일에 대한 실행 원칙을 알려 줄 경우에는 기존의 형식적인 행동 방식은 폐지해도 되고 준수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그 행동 방식들을 계속 지킨다면 일을 지체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일이 닥쳐서 네가 가서 해야 하는데도 계속 ‘하나님, 제가 가야 합니까? 가지 말아야 한다면 환경을 만들어 막아 주시고, 가게 하시려거든 우리에게 모든 게 순조롭게 해 주세요.’라며 무릎 꿇고 기도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바가 아닌 형식에 얽매이는 행동 방식이다. 요구와 준칙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이 있을 경우, 사람은 형식적으로 구하고 기도하며 모색하는 행동 방식을 취할 필요가 없다. 한편으로는 실제 상황과 현실의 환경을 따라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무엇보다 주요한 것은 진리 원칙에 따라 해야 한다. 그렇게 실행하면 옳다. 매일 정해진 대로 해야 할 일이라면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말아라.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처리하고, 나중에 해도 될 일은 천천히 해도 된다. 급한 일부터 처리해라. 이것이 원칙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원칙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모색하고자 구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수한 상황, 즉 하나님이 분명한 말씀으로 지시하지 않은 경우에도 사람은 하나님이 각종 일에 분명한 말씀과 실행 원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예전에 사람에게 알려 준 각종 진리 원칙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 사역에 대한 황당하고 기이하며 초자연적인 관념과 상상이 많이 생기니, 하나님의 말씀, 각종 진리 원칙이 장식품이나 공허한 도리로 전락하여 사람이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의 행동 준칙이나 실행의 길이 되지 못한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람에게 하나님 사역에 대한 관념과 상상이 대단히 많이 생긴 탓에 벌어진 일이다.

하나님 사역에 대해 사람은 또한 황당하고 기이하며 괴상한 관념과 상상들이 일상생활에 가득하다. 예를 들면, 사람이 가장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서 하려 할 때 사람이 생각하기에 일어나서는 안 될 일, 가령 네가 일을 처리하러 가는 길에 휴대 전화를 빼앗긴다든가, 차가 고장 난다든가, 혹은 넘어진다든가, 그 밖에 다른 순조롭지 않은 일이 생긴다면, 이것이 무슨 의미겠느냐?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을 하나님이 막는다는 의미겠느냐?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겠느냐? 이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겠느냐? 이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겠느냐? (아닙니다.) 그 일이 지금 네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서 그 일을 하러 갔다면, 설사 그 일을 하는 도중에 걸림돌이나 난관을 만나고, 심지어 사람이 생각하기에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네가 이행하는 본분, 네가 하는 사역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거나 네가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다. 하나님이 너를 막고자 한다면, 이런 식으로 할 필요 없이 바로 상황을 마련해서 네가 자연스럽게 그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만들 것이다. 다시 말해, 네가 오늘 처리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은 2, 3순위로 미뤄 두고 나중에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하나님이 네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게 해 줄 것이다. 실제 상황에 따라 네가 어떻게 짐작하든 그 일을 오늘 완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막은 것이다. 하지만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네가 이 일을 처리하는 도중에 어떤 걸림돌이나 어려움이 생기든 어쨌든 오늘 해야 할 일이라면 가서 하도록 해라. 만약 하나님이 막는다면, 가장 적절하고 타당한 방식으로 네가 자연스럽게 그 일을 포기하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역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방식은 사람이 인성 본능의 범위 안에서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것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태도이고, 또 한편으로 여기에는 객관적인 환경의 요소가 있다. 만약 환경이 허락한다면 그 일을 해야 하지만,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면 사람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목적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안배해 주는 적절한 시기와 환경을 기다리기 위한 것이다. 만약 계속 적절한 환경이 주어지지 않고 이 일이 계속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어떤 측면과 관련된 일이든, 중대한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교회의 일이든 그 일을 처리할 때 영적인 느낌을 찾을 필요는 없다. 만약 네가 오늘 영적으로 가라앉아서 그 일을 처리하기 싫다면, 너와 같이 일하는 사람도 영적으로 가라앉는지 물어보아라. 만약 다른 사람은 영적으로 가라앉지 않아서 그 일을 하기 원하는데, 네가 자기 느낌대로 그 일을 처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단정 짓는다면, 이는 너무 주관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일을 처리할 때는 최소한 매사에 느낌을 찾으려 하거나 느낌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네가 한 가지 일을 처리하려는데 그때 마음이 조금 불안하고, 눈이 계속 떨리고,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너는 “제 오른쪽 눈꺼풀이 떨리는데, 화가 있지 않을까요? 이 일을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대답한다. “왼쪽 눈꺼풀이 떨리면 재물이 들어오고, 오른쪽 눈꺼풀이 떨리면 재앙이 닥친대요.” 이 말을 들은 너는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느 쪽 눈이 떨리든 상관없이 그것이 이미 약속한 일이고, 그 일을 처리하는 것과 관련된 각 측면의 요소가 적절하며, 시기와 환경까지 모두 적절하다면 그 일은 반드시 가서 해야 한다. 네가 만약 오른쪽 눈꺼풀이 떨리면 재앙이 닥칠 거라는 한 사람의 말만 듣고 가지 않는다면, 이것이 적절하겠느냐? (부적절합니다.) 어째서 부적절하냐? 만약 네 직책, 네 본분이고, 오늘 객관적 환경과 각 측면의 조건이 모두 허락한다면, 더구나 그 일의 처리가 시급하다면 가야 한다. 오른쪽 눈꺼풀이 떨리면 또 어떠냐? 사소한 문제가 생겨 그리 순조롭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은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막고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라야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오른쪽 눈꺼풀이 떨리면 분명 문제가 생길 거예요.”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다른 누군가가 “이건 약속된 일이에요. 가서 처리해야 합니다.”라고 해서 결국 모두가 출발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도중에 차가 고장 났다. 너희 생각에는 출발할 때 누군가의 오른쪽 눈꺼풀이 떨렸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가야 하느냐, 가지 말아야 하느냐? 너희가 과연 진리를 깨달았는지 보자. 우선 가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옳은지부터 대답해 보아라. (옳습니다.) 그건 분명하다. 오른쪽 눈꺼풀이 떨리거나 왼쪽 눈꺼풀이 떨리는 것으로 가고 말고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선은 가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왜 중간에 차가 고장 났겠느냐? 이것이 하나님의 허락이겠느냐? 확실하게 말할 수 없지 않으냐? (중간에 차가 고장 난 것은 사람이 초래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차량에 문제가 없는지 사전에 점검하지 않은 탓입니다.) 이것은 한 측면의 원인이다. 만약 이 원인을 제외한다면, 중간에 차가 고장 난 것이 정상적인 상황이겠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중고 국산 차를 사서 원래부터 품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데다 적절히 손질하고 정비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차를 몰았으니, 결국 중간에 고장 나고 만 것이다. 중간에 차가 고장 나면, 그 일이 절대로 완수되지 못하느냐?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차가 고장 나서 한두 시간 걸려 수리를 마치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그곳의 형제자매가 이런 말을 한다. “이 시간에 오셔서 다행입니다. 감시하는 사람들이 방금 갔거든요. 두 시간 일찍 오셨으면, 분명 큰 붉은 용에게 잡혀갔을 거예요. 정말 위험했습니다!” 보아라, 전화위복이 되었다. 일을 처리하러 가는 것이 옳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차가 고장 난 것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오른쪽 눈꺼풀이 떨리는 것이 화이냐 복이냐? (그 무엇도 아닙니다.) 실제로 들어맞은 말이 없다. 이 일이 만약 차가 고장 난 것으로 끝이라면, 오른쪽 눈꺼풀이 떨리면 재앙이 닥친다는 말이 정말 확실한 것처럼 보인다. 차가 고장 난 것은 사고가 일어난 것이 아니냐?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차가 고장 난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차가 고장 나지 않았더라면, 모두가 오늘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봉변을 당해 일을 완수하기는커녕 모두 붙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차가 중간에 고장 나서 두 시간 동안 수리한 후 그곳에 도착했는데, 위험이 막 지나간 뒤라서 사람들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지켜 준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차가 고장 난 일로 보면 하나님이 못 가게 막은 것 같지만, 사실 차를 고쳐서 순조롭게 가고 나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전체 과정에서 너희는 이 일을 하는 하나님의 원칙과 방식을 어떻게 보느냐?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겠느냐? 정리해 보아라, 여기에 구해야 하는 진리가 있는데, 너희가 구할 줄 아는지 보자. (하나님, 저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닥치든, 나쁜 일이 닥치든 거기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측면이다. (또 하나의 측면은 하나님의 사역이 초자연적이지 않고 막연하지도 않으며 지극히 실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 그 점을 잘 인식하였구나. 하나님의 사역은 실제적이다. 막연하지도 않고 초자연적이지도 않다.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느낄 수 있고 체득할 수 있으며 이를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할 때, 사람이 가져야 할 인식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측면의 인식 외에도 사람은 어떤 인식을 갖춰야 하겠느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하나님이 하는 모든 구체적인 일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역이 무척 실제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람이 출발하기 직전에 갈지 말지 의논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막지 않았고, 네가 속이 거북하거나 토하거나 배탈이 나게 만들지도 않았다. 너를 막지도 않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아주 실제적이지 않으냐? 다 같이 상의하게 했는데, 누구는 오른쪽 눈꺼풀이 떨린다고 하고 누구는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너는 느낌을 따르든, 기분을 따르든, 아니면 초자연적인 상상을 따르든 결국 가야 하는 일이니 갔고, 하나님은 전혀 막지 않았다. 하나님이 이렇게 사역하는 것이 실제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조금도 공허하지 않다. 사람의 여러 모습을 허락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눈꺼풀이 떨리기도 한다. 말해 보아라, 사람의 눈꺼풀이 떨리는 것을 하나님이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 통제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이것을 통제하는 것은 너무 쉽지 않겠느냐?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러지 않는다. 네 자유에 맡기고 관여하지 않는다. 네 눈꺼풀이 떨리면 떨리는 대로 내버려두었고, 결국 사람은 출발했다. 이 모든 것이 이토록 실제적이다. 그런데 목적지에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너희가 거기에 가려 한다고 해서 그 위험을 제거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가지 절묘한 일을 했다. 네 차를 중간에 고장 나게 만든 것이다. 너희가 차를 고치고 거기 도착했을 때는 위험이 이미 지나간 뒤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호다. 보아라, 이 시간차 덕분에 네가 그 위험을 절묘하게 비켜 갈 수 있었다.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이 정말 실제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는 일은 조금도 공허하지 않고 초자연적이지도 않으며 모든 일이 자연스럽고 필연적으로 일어나는데, 그 속에 하나님의 전능이 담겨 있다는 것을 너에게 실제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일 전체를 통틀어 사람이 어떤 상상을 하든, 사람의 어려움, 약점, 문제가 무엇이든, 사람이 함께 의논하는 관점이 옳든 옳지 않든 최종적으로 일이 일어나는 것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그 일의 필연적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일어나야 할 일은 모두 빠짐없이 일어났다.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고 고장 나야 할 차도 고장 났으며 사람의 관점도 드러났지만, 그래도 일의 최종 결과는 하나님이 정한 방식에 따라 하나님이 정하고 주재한 대로 일어났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토록 실제적이고 정상적으로 일어났다. 마치 일상생활에서 사람이 매일 겪는 모든 일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초자연적이지도 않고, 막연하지도 않으며, 공허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 일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이 실제적이라는 것,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먼저 어떤 일이 닥치든 사람이 준수해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느낌에만 의지한다면 그것은 믿을 수 없으니, 초자연적인 느낌이나 공허한 상상으로 무언가를 억측하지 말고, 실제 환경과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에 따라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또한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쉽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니 어떤 문제에 봉착하든, 하나님의 사역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든 너는 느낌대로 할 필요도 없고, 날짜를 계산할 필요도 없다. 물론 기상이 어떤지 살피거나 어떤 예언을 들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냥 네 할 일을 하여라. 기상을 살피거나 날짜 계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내일은 좋지 않은 날인데, 밖에 나가면 일이 하나도 안 풀리지 않을까요? 큰 붉은 용에게 체포되지는 않을까요? 오늘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데 웬 까마귀가 문 앞에서 울고 있데요? 어젯밤에 나갔다가 검은 고양이를 본 사람이 있다더라고요. 다 불길한 징조예요! 어쩌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걸까요?” 어떤 환경이 위험하고, 어떤 환경이 상대적으로 안전한지는 네가 정상 인성과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추고 있다면 판단할 수 있을 것이고, 실제 상황에 따라 대응하고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 것은 따져 볼 필요가 없다. 매일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하나님 말씀을 진리 원칙으로 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이 정상 인성과 양심, 이성을 가지고 있으니, 현실적인 환경의 안배와 인도를 바탕으로 정상 인성의 실제적인 필요와 자신의 책임, 의무에 따라 매일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사람이 매일의 일상생활을 이렇게 대한다면, 훨씬 간단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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