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진리를 실행할 때의 걱정
2021년 9월, 저는 교회의 사역 한 가지를 담당하고 있었고, 당시 팀장은 자오팅(趙婷) 자매였습니다. 다 같이 사역에 관해 토론할 때면 자오팅 자매는 늘 자신의 관점을 고수하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착 상태에 머무는 바람에 사역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자오팅 자매에게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과거 자오팅 자매도 제가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제 의견을 고집한다고 종종 폭로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오팅 자매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부터 반감이 들었습니다. 자오팅 자매의 지적이 마치 제 상처를 들춰내는 것처럼 느껴졌고, 자매가 좀 그만 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자오팅 자매의 문제를 지적한다면, 자매도 똑같이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저는 말을 아끼는 편이 모두가 좀 마음 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저도 다른 사람에게 지적받거나 폭로 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별로 바뀌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달라지라고 하면 제가 너무 비이성적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만약 자매가 저한테 오히려 “자매님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저한테 뭐라고 하시네요.”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을 테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평소 잘 지내왔고 대화할 때도 화기애애했는데, 이제 와서 제가 자매의 문제를 지적했다가 자매가 저에게 편견이 생겨서 앞으로 제 사역에 협조해 주지 않으면 어쩐단 말입니까? 생각 끝에 저는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저희 팀에는 우신(吳欣) 자매가 새로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저는 우신 자매가 본분을 이행할 때 발전이 없고, 줄곧 남들과 비교하면서 본인이 밀리면 소극적으로 변해서 사역을 게을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자매의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교제해 주고, 원칙과 결부시켜서 자매를 지도하고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자매는 자신의 문제를 반성하지 않았고, 심지어 본인이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 성과가 없는 것은 저희가 원칙을 제대로 교제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자매의 모습을 보니 교제를 통해 자매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성질, 그리고 이를 계속 추구했을 때의 결과를 교제하고 분석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배 때 자매가 자신의 패괴 표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지적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속으로 ‘나도 명예와 지위를 생각하는 마음이 강해. 그래서 나도 다른 형제자매가 내 문제를 폭로하지 않고, 스스로 천천히 구하고 진입하길 바랐어. 내가 강하게 말한다면 자매는 분명 기분 나빠할 거야. 우선 교제로 자매를 도와주자. 아마 자매가 원칙을 파악해서 본분을 이행할 때 성과가 어느 정도 나타난다면, 그땐 체면이나 지위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이렇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이상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우신 자매의 인성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늘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 얘기해서 속박받게 만들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공격하고 배척하기도 했습니다. 사역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를 반성하기는커녕 책임을 떠넘기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성과가 없어서 원칙에 따라 자매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자매에게 미움을 살 것 같다는 생각에 저는 자매의 상황을 리더에게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리더는 일이 있어서 올 수가 없어서 저에게 우신 자매를 교체하라고 했습니다. 우신 자매를 마주쳤는데, 저는 자매가 줄곧 명예와 지위만 추구하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배척하면서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모습을 해부해 주고, 이 일의 성질과 이로 인해 발생할 결과를 알려 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려던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았고, 전 또다시 그 말을 삼켜 버렸습니다. 속으로 ‘우신 자매는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사람은 굉장히 연약해. 내가 자매의 문제를 폭로하고 해부했다가 자매가 못 받아들이고, 나한테 편견이 생기면 어쩌지? 말을 아끼는 편이 좋겠어.’ 그래서 저는 그저 자매의 본분 이행에 성과가 없어서 자매를 교체한다고 하며 스스로를 잘 반성하라고 위로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그 후 리더는 제가 우신 자매의 모습을 해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저를 책망하며 말했습니다. “우신 자매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데, 그걸 폭로하고 해부하지 않았다니요. 무골호인이 되려는 마음이 너무 강하시네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제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았지만, 당시 스스로 반성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저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자오팅 자매의 팀은 출교된 사람들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는데,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실수는 나오지 않는 게 정상이었습니다. 전 형제자매들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자오팅 자매가 자신의 의견만 내세우며 남들이 제안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바람에 형제자매들이 자오팅 자매의 속박을 받아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전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자오팅 자매의 문제를 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움을 살 것이 두려워 자오팅 자매의 문제를 내내 폭로하지 않았고, 결국 사역이 지체되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진리를 구하며 스스로를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성에 갖춰야 할 것은 바로 양심과 이성이다. 이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다. 양심과 정상 인성의 이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개괄적으로 말하면, 인성이 없는 사람, 인성이 몹시 나쁜 사람이다. 자세히 말해서 이런 부류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겠느냐? 인성을 상실한 구체적인 모습에는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이기적이고 비열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은 일할 때 건성으로 하고, 자기와 무관한 일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생각하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않는다. 본분 이행과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아무런 부담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 또 어떤 사람들은 무슨 본분을 이행하든 책임감이 없고, 문제를 발견해도 제때에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다. 누군가 방해하고 교란해도 내버려두고, 악인이 악을 행해도 막지 않는다. 하나님 집 이익도 전혀 지키지 않고, 자신의 본분과 직책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실질적인 사역은 조금도 하지 않고, 편안함만 탐하고, 무골호인이 되어 그저 자신의 허영과 체면, 지위, 이익만을 위해 말하고 행동한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노력을 기울이고, 힘을 쏟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이 폭로한 것이 바로 제 내적 상태였습니다. 자오팅 자매의 성품이 교만하고, 형제자매들을 옭아매 사역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책임자로서 자오팅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고 폭로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 자오팅 자매가 받아들이지 않고 절 안 좋게 볼 것을 걱정해서 매번 문제를 지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목구멍에 뭐가 막힌 듯 매번 그 말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역 핑계를 대며 관계가 어색해지면 앞으로 자매가 제 사역에 협력해 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겉으로는 사역을 걱정했지만, 사실 저는 자매와 사이좋고 화기애애한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고, 형제자매들의 마음에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게다가 전 우신 자매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분명 알면서도 자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폭로하면 자매가 저를 안 좋게 바라볼 것이 두려워 계속 자매의 문제점을 폭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매는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하고 패괴 성품도 계속 바뀌지 않아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했으며, 형제자매들도 우신 자매의 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사적인 이익, 다른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지위를 신경 쓰며 형제자매가 패괴 성품으로 본분을 이행하여 교회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것을 보고도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교회의 사역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다니 정말 너무 이기적이었고 조금의 양심과 이성도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람을 지배한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너는 왜 이기적으로 구는지,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하는지, 왜 그렇게 정에 치우치는지, 왜 그 불의한 것과 악을 좋아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그것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너는 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지 등이 있다. 너희는 그것이 주로 사람의 내면에 사탄의 독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사탄의 독소는 무엇이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에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고도 지적하려고 하지 않고, 늘 눈감아 주려 했던 주된 원인은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들추더라도 남의 약점은 들추지 말라.”와 같은 사탄의 철학으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일을 할 때 스스로에게 이득이 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해서 폭로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사는 것으로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하기 싫었습니다. 매우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교활하고, 간사했습니다. 자오팅 자매의 교만함과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태도가 이미 사역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면서도 자오팅 자매와의 관계를 지키고자 자매의 문제를 폭로하고 해부하지 않았고, 미움을 살 것이 두려워 자매 앞에서 늘 비위를 맞춰 주었습니다. 저는 사람에게 미움 살 것은 두려워하면서도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교회의 이익은 생각하지 않고 매우 비굴하고 비열하게 살면서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은 형제자매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면, 진리를 교제하여 붙잡아 주고 도와줄 수 있습니다.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사람을 보면 일어나서 폭로하고 제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책임자로서 더욱 부담과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형제자매가 내적 상태든 업무 방면에서든 문제가 있는 것을 보면 교제를 통해 도와줘야 합니다. 누군가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면 책망하고 훈계하며 폭로하고 해부해서 즉시 제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책임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본연의 사역입니다. 하지만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책임도 다하지 않았고, 사역에도 책임지지 않았으며,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도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늘 무골호인이 되려고 했던 것은 결국 음흉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인성이 악독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를 받습니다. 계속 이렇게 하다가는 결국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깨닫자 마음이 너무 힘들었고,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진리를 실행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의 패괴 성품이 너무 심각합니다. 부디 저에게 깨우침과 빛 비춤을 주시어 제가 자신을 인식하고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게 해 주세요.”
하루는 영 생활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굳게 서서 나를 증거하고 진리를 견지하며, 옳은 것은 옳다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해야지, 옳고 그름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사탄과는 싸워야 하고, 그것을 철저히 물리쳐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해야 한다. 나에 대한 증거는 모든 것을 내걸고 지켜라. 이것이 너희가 일을 하는 근본 취지이니 잊어서는 안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41편>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저에게 실행의 길을 주었습니다. 그건 바로 모든 일에 있어서 진리 원칙을 견지하며 교회의 이익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오팅 자매는 패괴 성품으로 본분을 이행하여 이미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했습니다. 저는 자오팅 자매와 교제하여 폭로하고 해부해서 자오팅 자매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도 자오팅 자매가 반성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즉시 조정하거나 교체해야 합니다. 그 후 저는 자오팅 자매에게 문제점을 지적해 주었고, 하나님께서 교만한 성품에 대해 폭로하신 말씀 몇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자오팅 자매는 자신의 교만한 성품에 대해 약간의 인식이 생겼고, 그 후 조금 돌이키고 변화했습니다. 다 같이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해도 자오팅 자매는 이를 구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줄 알게 되었으며 예전처럼 그렇게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 간의 관계를 지키는 대신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늘 무골호인이 되려고 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하는 것 외에 또 어떤 것에 구속받고 얽매이기 때문일까요? 하루는 예배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의 의미는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나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좋아하라고, 하라고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말만 보면 꽤 이성적이고 사리에 밝은 것 같으며, 이런 말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이 말이 정말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정말 진리 원칙에 이르겠느냐? 너희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 사탄 철학대로 행동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잘못을 저지르게 되지 않겠느냐?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 오도하며 심지어 해치게 되지 않겠느냐? 먼저 이 말에 원칙이 있는지부터 말해 보자. 이 말은 원칙이 없다. 100% 자기 취향대로 규정하는 것이지, 진리에 근거해서 일을 바라보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모는 공부를 좋아하지 않지만 자녀에게는 많이 공부하라고 시키기를 좋아하며, 늘 자녀에게 도리를 말하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권한다. 이런 상황은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과 어긋난다. 이 말대로 따른다면, 그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권해서는 안 된다. 자신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인생의 바른길임을 알고 있기에 자식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바른길을 걷지 않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한다. 자기 자신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지만, 자식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복을 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을 따른다면 자식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사탄의 철학은 지킬지 몰라도 자식들이 구원받을 기회를 망치게 된다. 이 결과는 어떻게 초래된 것이겠느냐?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전통적인 덕행의 말이 사람을 해한 것 아니겠느냐? … 예를 들어, 진리를 싫어하고, 육적인 안일을 탐하기를 좋아하며, 본분을 이행할 때는 몸을 사리면서 고난을 겪거나 대가를 치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그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속담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알려 준다. “삶을 즐기는 법을 배우십시오. 열심히 본분을 이행할 필요도, 고생하며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습니다. 게으름을 피울 수 있다면 피우고, 대충 넘어갈 수 있다면 넘어가세요.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란 말입니다. 보세요, 저는 이런데도 멀쩡히 잘 살아가지 않습니까? 얼마나 즐겁게 삽니까! 그런데 여러분처럼 사는 건 얼마나 힘든가요. 저를 따라 배우십시오!” 이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요구에 이른 것 아니겠느냐? 이렇게 한다면, 그가 양심과 이성을 갖춘 사람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양심과 이성을 잃은 사람은 부도덕한 자 아니겠느냐? 이를 가리켜 부도덕하다고 한다. 어째서 부도덕하다고 말하겠느냐? 그는 안일을 탐하며 대충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데다가 다른 사람들까지 그와 같이 대충 건성으로 임하고 안일을 탐하도록 선동하고 종용한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대충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무책임하게 구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고 대적하는 행위이다. 계속 대충 건성으로 임하면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드러나 도태될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0)> 중에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은 문제가 너무도 크며, 허점과 맹점이 너무도 명확하므로 해부하고 분별할 가치가 없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그 말의 문제점과 황당한 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 중 많은 이가 이 말에 쉽게 설복되어 영향을 받고, 전혀 분별하지 않은 채 그것을 받아들인다. 남들과 함께 지낼 때 수시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한편, 다른 사람들에게 충고까지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고상한 인격을 드러내고 아주 이성적으로 처신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 말은 네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네 처신의 원칙과 입장을 팔아넘기는 한편, 다른 사람들까지 미혹하고 오도하여 네 관점과 입장으로 사람들과 일을 대하게 한다. 너는 부정할 여지 없이, 두루뭉술한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너는 무슨 일을 하든 참답게 대하지 않고, 너 자신도, 다른 사람도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 너는 남을 곤란하게 하는 것은 곧 자신을 곤란하게 하는 것이고, 남에게 잘해 주는 것은 곧 자신에게 잘해 주는 것이며, 남을 괴롭히는 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가 고수하는 것은 바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사상 관점으로, 이는 너 자신에 대한 최고의 포상이자 관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는 모든 일을 참답게 대하지 않는 태도이다. 즉, 어떤 일에 대해서도 정확한 입장과 관점이 없고, 어떤 사물을 바라보든 참답게 대하기는커녕 흐리멍덩하며, 본체만체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평생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사상 관점을 고수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너는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진리 원칙을 견지하지 않으며, 조금의 진리 실제도 갖추지 못할 것이다. 왜 그렇겠느냐? 너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의 영향을 받아서 이미 큰 문제와 골칫거리를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네가 많은 일에서 명확한 관점과 입장을 가질 수 없게 하며,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이루어야 할 성과가 무엇인지 알 수도, 확정할 수도 없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바로 네가 어떤 사물에 대해서든 진리를 구하지 않고, 사탄 철학의 관점을 고수하여 초래된 것이다.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것이 사람이 말하고 일할 때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옳은 것 같고 고상하고 선한 이론 같지만, 그런 이론은 결코 긍정적인 사물이 아니다. 물론 사람이 지켜야 할 진리 원칙은 더더욱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0)>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와 같은 말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미혹하여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이나 실행할 수 없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하고, 그래야만 이성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폭로하셨습니다. 제가 바로 이런 사상 관점으로 살았습니다. 자오팅 자매의 교만하고 독선적인 태도가 사역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오팅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고 폭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저 자신도 늘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고 다른 형제자매들이 지적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 떠올라 제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하며 자오팅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신 자매가 본분을 이행할 때 오로지 명예와 지위를 위해 사역하고, 교만하게 굴고 사람들을 구속해서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했기 때문에 이를 폭로하고 책망해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명예욕과 지위욕이 강하고, 지적받거나 폭로 당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와 같은 관점으로 우신 자매를 폭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폭로 당하고 지적받는 일은 매우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에 다른 사람의 책망과 지적을 듣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저 역시 다른 사람을 지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건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체면과 지위를 지키면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른 사람을 방임하고 타협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면서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그 본질은 모두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받지 않게 하려는 바람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비열하고 비양심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고, 사탄의 성품으로 가득 찼습니다. 본성은 모두 교만하고 거만하며 이기적이고 간사하여 명예와 지위를 좇고자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 책망과 훈계가 없고, 형제자매의 지적과 도움이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교회 사역을 방해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자오팅 자매와 우신 자매가 패괴 성품을 드러내고 그릇된 길을 갈 때 아무도 이를 지적하여 폭로하지 않는다면 교회 사역을 방해하게 됩니다. 가볍게는 교체지만, 심각할 경우 교회에서 출교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사탄의 철학으로 살며 문제를 보고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형제자매들이 사탄 패괴 성품에 따라 행동하게 방임한 것과 다름없고, 결국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 모두에게 해가 될 뿐입니다. 제가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와 같은 사탄의 독소로 사느라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탄의 공범이 되어 교회 사역을 방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깨닫자 저는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하나님께 자백하고 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요구를 하지 않고, 갖가지 일을 대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이 과연 무엇인지 분명히 알라고 했다. 만약 옳은 것,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견지해야 한다. 자기 자신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일깨워 주고 권하며 교제하여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 진리 원칙은 과연 무엇인지 알게 해야 한다. 이는 네 책임이자 의무이다. 하나님은 네게 사탄 철학을 지키며 중용의 길을 가라고 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네 아량이 얼마나 큰지 보여 주라고 하지도 않았다. 네가 지켜야 할 것은 하나님 말씀이 일깨워 준 요구 기준과 진리 원칙이다. 그 진리 원칙들을 영원히 지키고, 솔선수범하여 실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너처럼 그 진리 원칙들을 견지하고 준수하고 실행하도록 권면하고 감독하고 도와주고 지도해야 한다. 이는 너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자 부탁이다. 하나님이 네게 요구하는 것은 올바른 입장을 갖고 하나님 말씀의 준칙과 진리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설령 지금 당장은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네 마음이 원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으며 관념과 반발심이 생긴다고 해도 너는 그것을 일종의 책임이자 의무로 여겨야 한다. 진리 원칙과 하나님에게서 온 긍정적인 사물을 다른 사람에게 교제하여 도와주고 지도하며, 상대가 그 속에서 유익을 얻고 도움을 받아 올바른 인생길을 걷게 하는 것, 이는 너의 책임이지, 사탄이 주입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보기에 일종의 처세 철학에 불과하며, 사탄의 간계를 담고 있는 일종의 사상 관점으로서 근본적으로 바른길이 아니고, 긍정적인 사물도 아니다. 하나님이 네게 요구하는 것은 정정당당하게 처신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너에게 무골호인이나 두루뭉술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중용의 길을 걷게 하는 것도 아니다. 너는 진리 원칙을 지키고 올바른 입장을 가져야 한다. 해야 할 말은 반드시 하고, 깨달아야 할 것은 반드시 깨달으며,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그들을 많이 지도하고 도와주어라. 반드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지, 수수방관하거나, 더욱이 사탄이 주입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사탄 철학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이해했느냐? (이해했습니다.) 설령 네가 옳은 것,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고 실행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이를 수도 도달할 수도 없을지라도, 반발심과 관념을 품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옳은 것이고 긍정적인 사물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는 사람의 패괴 성품이나 정서, 감정, 바람, 관념으로 인해 그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의 본질과 진리의 본질은 영원히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알고 깨닫고 체험하고 얻게 되면, 너에게는 의무가 생긴다. 너는 그 체험 간증을 다른 이에게 교제하여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한편, 더 많은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얻으며,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 무엇인지, 진리 원칙은 무엇인지 깨닫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부류의 일이 닥쳤을 때 멍해지지도, 사탄의 각종 사상 관점에 제한되지도 않고 실행할 길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덕행의 말은 그야말로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는 사탄의 간계 중 하나이다. 언제까지고 그것을 신봉한다면, 너는 사탄 철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전적으로 사탄 성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지 않는다면, 너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요,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어떤 일이 닥치든 네가 지켜야 할 원칙과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최선을 다해 다른 이를 돕는 것이지,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사탄의 말처럼 ‘영리한’ 무골호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다른 이를 도우라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네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네가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라는 것을 알았다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교제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깨닫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0)>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일에 닥쳤을 때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을 견지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형제자매들이 함께 협력하여 본분을 이행할 때, 상대방이 원칙을 위배하거나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것을 보면 이를 지적하고 도와줄 수 있고,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수 있어야 본분을 점점 더 잘 이행할 수 있게 됩니다. 원칙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살 것이나 다른 사람이 받을 감정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원칙에 따라 대해야 하고, 교회의 사역을 지키고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과는 관계없이 진리를 실행하여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저는 책임자로서 문제를 발견하면 제때 교제를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이 저의 책임입니다. 문제를 보고도 해결하지 않고 무골호인만 되려 하며 중용의 길을 걸으려 한다면 이는 직무 유기이자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입니다. 또한 제게서 패괴가 드러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드러낸 패괴는 제가 진리를 구하며 반성해야 하는 것으로 제 개인의 문제입니다. 형제자매들이 일을 할 때 원칙을 위배하여 교회 사역에 손해를 끼치는 것을 보면 그건 교제하고 폭로하여 제지해야 합니다. 이건 교회 사역을 지키는 것이자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으로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명예욕과 지위욕이 강하고 성품이 교만한 것은 스스로 반성하고 진리를 구하여 해결해야 하는 것이며, 스스로에게 관대하거나 다른 사람을 방임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 저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사탄의 철학으로 살며 제가 하기 싫거나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진리를 실행할 기회를 번번이 놓쳤습니다. 제 관점이 너무 황당하고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다시 형제자매들이 일을 하며 원칙을 위배하여 교회 사역에 영향을 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저는 그들의 문제를 교제하고 폭로하고 해부했습니다. 물론, 형제자매들이 저를 안 좋게 볼까 봐 걱정했지만, 예전처럼 걱정에 앞서 이것저것 고려하지 않고 그저 어떻게 하면 형제자매를 도와줄 수 있고, 교회의 사역을 지킬 수 있는지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며 형제자매들이 본분 이행에 발전이 있자 저는 속으로 매우 기뻤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저는 스스로 더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과거 인식하지 못했던 패괴 성품을 발견했고, 더욱이 스스로 진리를 추구하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가까워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할 때가 많아졌고, 이렇게 살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