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의식을 행하는 것이란?

2019.09.12

관련된 하나님 말씀:

『정상적인 영 생활이란 생생하고 활기찬 영 생활을 하는 것으로서 기도와 찬양, 교회 생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 등등의 방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즉, 방식이 아니라 효과가 중요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거나 묵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 성과가 있든 없든, 참된 인식이 있든 없든, 겉으로 보이는 과정만 중시할 뿐, 그 성과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종교 의식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지 교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나라의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와 찬양,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은 모두 규례를 지키는 것에 속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혹은 주변 분위기에 따라서 하는 것이지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아무리 많이 기도하고 찬송해도 성과를 얻을 수 없다. 그들이 실행하는 것은 종교적인 규례와 의식일 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법만 중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규례 삼아 지키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육체를 만족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해 행동할 뿐이다. 그러한 종교적 의식과 규례는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되었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규례도 율법도 지키지 않으며, 날마다 새로운 일과 실제적인 사역을 한다. 삼자교회의 사람들처럼 매일 새벽 기도와 저녁 기도, 식전 기도를 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등의 제한적인 것만 실행한다면, 그런 실행은 아무리 많이, 또 아무리 오래 해도 성령의 역사가 임하지 않는다. 사람이 규례 속에서 살면서 행위에만 마음을 쏟는다면 성령은 역사할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이 규례와 관념에 점령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역사할 수가 없고, 사람은 계속 율법의 통제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정상적인 영 생활에 관하여>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진리를 규례로 적용시켜 행한다면 쉽게 종교 의식을 행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한다면 기독교적인 신앙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어쩌면 교리적으로 신구(新舊)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내용상 그들의 것보다 깊이가 있고 좀 더 앞설 수 있다. 하지만 그 교리가 사람에게서 의식이나 규례로 굳어지는 이론에 그칠 뿐, 사람들이 그 속에서 진리를 얻지 못하고 실제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독교적인 신앙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겠느냐? 너희들의 일 처리나 본분 이행을 놓고 볼 때,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과 같거나 비슷한 관점은 어떤 것이 있느냐? 겉으로 보기에 좋은 행동을 하는 것, 어떻게든 영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 영적인 사람으로 행세하고 말과 행동으로 영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 사람의 관념과 생각에 맞는 것 같은 일을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영적인 척 보이려고 하는 것이며, 외식하는 것이다. 높은 위치에서 글귀나 도리를 말하는 한편, 남에게는 선을 행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진리 추구를 중시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일을 처리하거나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진리를 찾지도, 진리의 원칙에 따라 행하지도 않는다. 또한, 진리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런 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법이 없고, 일이 닥치면 오로지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며,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다. 이 같은 외적 행동과 내적 상태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으로 볼 수 있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믿어도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없다. 그럼 그런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가게 되겠느냐? 늘 무엇으로 자신을 채우겠느냐? 글귀나 도리로 자신을 채우지 않겠느냐? 늘 글귀나 도리로 자신을 무장하고 포장하며, 바리새인이나 이른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행하는 것은 어떤 행실이냐?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을 내세워 종교 의식을 행하면서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일 뿐,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결국 교회당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사람을 따르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이냐?』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만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중에서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하는 이들은 형제자매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얘기하지만, 뒤에서는 진리를 실천하지 않고 다른 꿍꿍이를 부린다. 이들이 종교 바리새인과 다를 바 있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들은 어떤 일에 맞닥뜨렸을 때 기꺼이 진리를 실천하며, 양심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모든 일을 지혜로이 해결하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원칙 있게 일한다. 이런 자들이 바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말로만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얘기하면서 온종일 울상을 짓고, 능청스럽게 불쌍한 척 연기를 하니 정말 못 봐줄 노릇이다! “왜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합니까?”라고 물어보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한 마디도 못 하면서 말이다. 네가 하나님께 충성한다면 겉으로 말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보여 줘야 하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무성의하게 말로만 하나님을 대하는 자들은 모두 위선자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말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기도하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며, 성령의 감동이 없음에도 울음을 터뜨리려 한다. 이들은 종교 의식과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그것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라고 여기며, 하나님이 겉으로 보이는 경건함이나 슬픔의 눈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그릇된 자들이 발전성이 있겠느냐? 어떤 자는 겸손해 보이려고 사람들 앞에서 얌전한 척 말한다. 또 어떤 자는 순한 양처럼 자신을 한없이 낮춰 아무 힘도 없는 양 행동한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정말 그렇단 말이냐?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활발하고 자유로우며, 순수하게 마음을 열어 놓는다. 또한, 정직하고 사랑스러우며, 자유로운 상태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인격과 존엄성을 갖추어 어디서든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수 있기에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새 신자들은 형식적인 것이 너무 많아 한동안 훈계와 깨뜨림을 받아야 한다. 반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겉으로는 티 나지 않지만,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는 사람이다. 네가 매일 여기저기 복음만 전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데에만 급급해하면서 정작 자신은 규례와 도리 속에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종교 인사에 속하며 외식하는 사람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종교 의식이 아닌 실제를 중요시해야 한다> 중에서

『진입하는 과정에 있는 삶은 언제나 무미건조하다.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거나 예배하는 등 몇 가지의 단조로운 영 생활뿐이다. 그래서 사람은 늘 하나님을 믿는 것에 이렇다 할 즐거움이 없다고 느끼곤 한다. 이런 영적인 활동은 사람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사탄의 패괴 성품을 기초로 이뤄지고 있다. 사람이 때로 성령의 깨우침을 얻기도 한다지만, 기존의 사상과 성품, 생활 방식, 습관이 여전히 내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천성은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의 미신 활동을 가장 증오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놓지 못한 채 그러한 미신 활동을 하나님이 정해 준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날까지 말끔히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치르는 결혼 피로연이나 혼수, 그리고 축의금, 축하 파티 등 결혼과 관련된 허례허식과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말, 죽은 이를 위한 장례식에서 이뤄지는 모든 무의미한 미신 활동들을 하나님은 더욱 혐오한다. 그건 예배일(종교계에서 지키는 안식일 포함)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 주고받는 인정이나 세속적인 교류는 더욱 혐오한다. 모두가 아는 ‘설날’이나 ‘크리스마스’ 역시 하나님이 정한 것이 아닐진대, 명절 기간 동안 하게 되는 여러 가지 것들(대련(對聯), 떡, 폭죽, 크리스마스 선물, 등불, 크리스마스 파티, 성찬)은 더욱 사람들의 우상이 아니겠느냐? 안식일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고, 세마포를 입는 것은 한층 더 우상 같다.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용대두(2월 2일)’, ‘단오절’, ‘중추절’, ‘납팔’, ‘양력설’, 종교계의 ‘부활절’, ‘세례일’, ‘예수 탄생일’ 등 근본을 알 수 없는 명절들은 전부 예전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 전통이 된 것으로,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와는 통 어울리지 않는다. 이것들은 사람의 풍부한 상상력과 ‘교묘한 구상’으로 인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어떤 문제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전부 사람을 희롱하는 사탄의 장난 도구이다. 사탄이 떼를 지어 거하는 곳일수록 진부적이고 낙후하며, 봉건적이고 고루한 풍속이 심하다. 또한,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을 더욱 꽁꽁 얽어매고 있어 옴짝달싹할 여지조차 없다. 언뜻 독창적으로 보이는 종교계의 수많은 기념일이 하나님의 사역에 다리를 놓아 줄 것 같지만, 이는 전부 사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속박하는 무형의 밧줄이자 사탄의 간계라는 걸 어찌 모른단 말이냐? 사실, 하나님의 한 단계의 사역이 끝나면, 당시 사용한 도구나 ‘특색’은 모두 없어져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경건한 신도’들은 여전히 유형의 물질에 경배하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은 뇌리 한쪽으로 치워 살펴보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을 문밖으로 내쫓고 ‘사탄’을 집 안에 모신 것임은 알지 못한다. ‘예수의 초상화’, ‘십자가’, ‘마리아’에서부터 ‘예수의 세례’, ‘예수의 만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천주’로 여기며 경배하고 말끝마다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짖으니 가소로운 일이 아니겠느냐? …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일 먼저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뼛속까지 중독된 것들을 바로잡음으로써 사상과 도덕관을 바꿔 놓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하나님이 종교 의식, 종교 활동, 연월, 절기 등을 증오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하며, 이러한 봉건사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농후한 미신 색채를 깨끗이 씻어 내야 한다. 이러한 것도 다 사람이 진입해야 하는 것에 포함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과 진입 3> 중에서

참고 설교:

『정상적인 영 생활은 정상적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나누며 본분을 이행하고 찬송하고 찬미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실행은 진리에 진입하고 성품을 변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반면 종교 의식은 말만 앞서는 형식적인 절차로,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고 기만하는 외식입니다. 즉, 종교 의식은 실질적인 알맹이가 빠진, 현실과 동떨어진 보여 주기식 행위에 불과하며 효과가 전혀 없습니다. 정상적인 영 생활은 온전히 현실에 기반하고, 실제에서 비롯됩니다. 또한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기에 굉장히 효과적이며, 하나님도 이를 기뻐 받으십니다. 예를 들어 정상적인 기도는 자신의 실질적인 어려움과 생명에 필요한 것에서 비롯되며, 내면의 간절함과 절실함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 의식에 속하는 기도는 이러한 원칙에 위배됩니다. 아무 때나 별 생각없이 대충 몇 마디를 던지기 때문에 본인도 귀찮고 힘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기도할 마음이 없음에도 억지로 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내적 상태라고 해서 계속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를 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가지고 교제하면 됩니다. 영 생활은 임의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상황과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감안하여 정해야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참된 영 생활은 정상적이며,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규례를 지키거나 의식을 행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종교 의식은 하나님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규례와 가식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를 외식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상적인 영 생활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사람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영 생활은 규례나 의식이 존재하지 않으며, 실질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 의식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영 생활로 들어서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부의 교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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