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7)
3.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다
계속해서 오늘은 적그리스도의 여러 모습 중 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에 관해 교제하도록 하겠다. 지난번에는 해당 주제의 세 번째 항목, 즉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해 교제했다. 이 항목을 세 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교제하고 해부했는데, 그 세 가지가 어떤 것이었느냐? (‘첫 번째,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마음대로 변조하고 해석한다. 두 번째, 적그리스도는 관념에 맞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부정한다. 세 번째,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질지 엿본다.’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의 전부이겠느냐? (몇 가지가 더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말이나 모습이 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불손하게 대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불손하게 대하는 것이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는 모습 중 하나이냐? 그건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는 모습에 대한 해석 중 하나가 아니냐? 여기서는 해석하라는 게 아니라 네가 보거나 접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네가 전해 들은 것 중에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는 여러 가지 모습과 행동을 말해 보라는 것이다. 보아하니 너희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는 여러 가지 모습을 그리 잘 인식하지는 못한 것 같구나. 전에 내가 교제한 세 가지 모습에 관해 너희가 문자 그대로 좀 인식하고 있지만,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는 모습에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는 생각해 내지 못한다. 그렇지 않으냐? 전에 교제한 세 가지 모습은 다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는 몇몇 행위와 모습은 떳떳한 것이냐? 올곧은 사람이 해야 할 행동이냐? (아닙니다.) 이런 것은 모두 정상 인성에 갖춰져야 할 모습도 아니고,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하나같이 부정적인 것이다. 이 몇 가지 행위의 본질의 이면이 가리키고 있는 대상은 사탄, 마귀이고 하나님의 원수이다.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는 순종, 수용, 체험이 아니다. 또한,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단순하게 마음을 열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사탄에게 속한,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온갖 태도를 형성한다. 적그리스도의 이 몇 가지 모습과 행위에서 표출되는 성품은 바로 영계의 사탄에게서 표출되는 것이다. 이 몇 가지 행위는 어떤 상황에서든, 어느 시대에서든, 어느 사람들 사이에서든 긍정적이지 않고 사악하고 부정적이며, 피조물이나 정상적인 사람이 갖추어야 할 모습과 행위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적그리스도의 모습이라고 규정한다. 이 세 가지를 교제하고 나서 대다수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기본적인 태도가 이 세 가지 모습으로 전부 요약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너희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방식은 이 세 가지에만 그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고 있음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모습, 행위가 하나 더 있다. 이 한 가지가 무엇이겠느냐? 바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만약 문자적 의미로 본다면 어떤 사람들은 속으로 아마 몇몇 사람을 가리키는 장면들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이고 진정한 모습에 대해서는 아직 모호하고 두루뭉술해서 그리 뚜렷하지 않다. 그럼 오늘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상품 취급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교제해 보기로 하자.
4)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한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한다. 또한,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상품으로 취급한다고도 할 수 있다. 상품으로 취급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입으로 떠들면서 으스대고, 그런 다음 남들을 속여 신임과 옹호, 동조를 얻고, 쉽게 명예와 이익, 지위를 얻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과 진리가 그의 디딤돌이 된다는 뜻이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이런 식으로 대한다. 그가 진리를 이용하고, 가지고 놀고, 짓밟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 진리가 과연 무엇이냐? 진리를 어떻게 정의해야 정확하겠느냐? 진리가 무엇인지 너희가 말해 보아라. (진리는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준칙입니다.) 이것이 진리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의이다. 너희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너희의 생활, 너희의 인생 속에서 이 말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느냐? 이 말을 어떻게 체험해야 하느냐? 너희가 떠오르는 대로, 이해한 대로, 여과나 가공하지 말고 즉시 말해 보아라. 너희가 체험한 말로 말해 보아라. 진리가 무엇이냐? 하나님 말씀이 무엇이냐? (진리는 한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바꿀 수 있고, 사람이 정상인의 모습으로 살 수 있게 해 줍니다.) 비록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진리에 대한 체험적 인식이고, 모두 일상생활에서 겪고 정리한 체험 소감이다. 누가 또 말해 보아라. (진리는 저희의 패괴 성품을 정결케 해서 저희가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고 하나님 뜻에 맞게 행동하게 해 줍니다.) 정말 훌륭하고 예리한 말이다. 또 말해 보아라. (진리는 생명이고 영생의 길입니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에 의지해 살아야만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진정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이 두 가지는 일상생활의 실행 원칙에 관계된다. 비교적 깊고 수준 높은 해석이지만 매우 실제적이다. (진리는 사람 내면의 패괴 성품을 폭로할 수 있고, 일을 바라보는 내면의 그릇된 관점을 바로잡아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몇 가지는 전부 실제적이고, 진리가 사람에게 지니는 가치와 의미, 진리가 사람에게서 이루는 성과와 관련된다. 너희가 말한 내용은 우리가 전에 자주 얘기했다. 비록 각자가 말한 요지는 다르지만 모두 예전에 진리를 해석하고 정의했던 ‘진리는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말과 관계가 있다. 진리는 하나님 말씀과 동일시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곧 진리이다. 너희가 교제한 체험적 인식에서 볼 때, 진리는 모든 긍정적 사물의 실제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진리는 모든 긍정적 사물의 실제이다. 진리는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고, 사람이 걸어가는 방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진리는 사람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 합격된 피조물, 하나님이 사랑하고 열납하는 사람이 되게 할 수 있다. 진리가 이렇게 소중하니 사람은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하나님 말씀을 대하고 진리를 대해야 하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분명 하나님 말씀이 생명줄이므로 마땅히 하나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먹고 마시고 누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사람의 생명, 사람이 걸어가는 방향, 사람의 항시적 도움과 공급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진리가 말하고 요구하는 대로 실행하고 체험하며, 진리가 사람에게 주는 갖가지 요구와 원칙에 순종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은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된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는 것이지 하나님 말씀을 연구, 분석, 추측,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사람의 항시적 도움이자 공급으로서,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사람은 진리를 가장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그 이유는 사람이 진리에 의지해 살아가고, 진리에 의지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하고, 진리에 의지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진리에 의지해 일상생활에서 실행의 길을 찾고 실행 원칙을 파악함으로써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진리에 의지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구원받는 사람이 되고 합격된 피조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관점, 어떤 방식으로 얘기하든 사람이 진리를 대할 때 가장 지양해야 할 태도는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물건으로 취급하고 심지어 상품으로 취급해서 제멋대로 판매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장 보기 싫어하는 모습이기도 하고, 진정한 피조물이 가장 지양해야 할 행위이자 모습이기도 하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는 목적과 의도는 무엇이냐? 그가 배후에서 하려는 짓, 그의 속셈은 무엇이냐? 상품을 손에 넣은 상인이 상품에 거는 기대는 그것이 자신에게 가져다줄 이익과 그가 원하는 넉넉한 돈이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가 하나님 말씀을 이익이나 돈으로 맞바꿀 수 있는 일종의 물질적인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겨 소중히 여기지도, 받아들이지도, 실행하지도, 체험하지도 않았고, 더욱이 하나님 말씀을 자신이 지켜야 할 생명의 도(道)로 여기지도 않았으며, 하나님 말씀을 자신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기 위해 반드시 실행해야 할 진리로 여기지도 않았다.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한 것이다. 상인에게 상품이 지니는 최고의 가치는 바로 그것으로 맞바꿀 수 있는 돈이나 원하는 이익이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는 것 역시 당연히 이런 속셈과 동기에 지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한다고 할 때, 상품으로 취급한다는 말은 먹고 마시고 누리거나, 체험하고 실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수중의 물건처럼 언제 어디서든 판매하고 팔아 버린다는 것이다. 그에게 득이 되는 사람에게 팔아 버리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는 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자면, 하나님 말씀을 물건처럼 거래해서 돈과 맞바꾸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매매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다. 글자 그대로 봐도 적그리스도의 이런 방식과 행위가 부끄러운 짓이고, 혐오스럽고 역겨운 짓이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느냐? 이것이 우리가 교제하려는 핵심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는 데는 사실 몇 가지 아주 명확한 모습이 있다. 너희가 좀 더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나씩 조목조목 얘기하겠다. 내가 왜 이렇게 얘기하겠느냐? 몇 년간 사역하고 말씀한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생각이 혼탁하고 문제를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이 부분을 감안해서 생각해 낸 가장 간단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어떤 문제이든, 어떤 주제이든 항목을 나누어 조목조목 해석하고 설명해서 너희가 생각하고 묵상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는 적절하지 않으냐? (적절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딱 좋은데요. 골치 아프고 마음 쓰이는 일은 좀 덜겠어요. 저희는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거든요! 저희 에너지와 마음은 큰일을 하는 데 써야지, 이렇게 자질구레한 일에 써선 안 되죠. 저희에게 이런 사소한 일을 고민해 보라고 하시는 건 저희를 너무 얕보시는 거고, 어찌 보면 인재를 썩히는 일입니다.”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저희는 자질이 너무 형편없어서 때로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세히 교제해 주시고 한 글자씩, 한 마디씩 교제해 주셔야 저희가 그나마 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본의 아니게 실상을 얘기해서 너희 약점을 들추게 됐구나. 허나 사실이 이렇다. 들추지 않아도 사실은 사실이니 이렇게 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만약 대주제를 간단히 대략적으로 훑기만 한다면 그것은 괜히 얘기해서 힘만 빼는 것이다. 시간 낭비나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으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한다는 내용을 소주제 몇 개로 나눠서 차근차근 해석하고 설명하겠다.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는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사실, 적그리스도에게 정말 이런 본질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 구체적인 모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 경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교제해 보자.
(1) 하나님의 말씀을 지위와 명예를 얻고 체면을 세우는 도구로 삼다
첫째,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한다. 이 항목과 관련해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바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도구로 삼아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얻고 체면을 세우는 것이다. 물질적인 즐거움과 맞바꾸는 경우는 더 흔하고, 돈과 맞바꾸기까지 한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접하면 이런 생각을 한다. ‘하나님 말씀은 훌륭하구나. 구구절절 일리가 있고 올바른 말씀이야. 이런 말씀은 사람이 할 수 없고,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 과거 두 시대에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지 않았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불문하고 이렇게 명문화되고 직설적인 말씀은 없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말씀 일부가 제한적으로 실렸지만, 지금 하나님이 하는 이런 말씀을 보면 내용이 무척이나 풍부하다. 적그리스도는 내심 질투가 나고 부러워서 속으로 궁리한다. ‘이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는데, 언제쯤 나도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언제쯤 저분처럼 하나님 말씀을 거침없이 쏟아 낼 수 있을까?’ 그의 마음에는 이런 충동과 욕망이 생겨난다. 그의 충동과 욕망으로 봤을 때 그가 속으로 하나님이 한 이 말씀들을 부러워하고 숭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부러움’, ‘숭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단어들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며 받아들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말씀의 풍부한 내용을 부러워하고, 방대한 편폭과 분량을 부러워하며, 말씀의 심오함,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그 깊이를 부러워한다는 점이다. 더욱 부러운 건, 자신은 할 수 없는 말씀이란 점이다. 이 몇 가지 ‘부러움’으로 볼 때,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신성의 선포나 진리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고 인류에게 공급하려는 생명, 진리로 여기지도 않는다. 적그리스도가 이런 말씀을 부러워한다는 건 분명 내심 그도 이런 말씀을 선포하는 그분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적그리스도 중에 많은 이들이 남몰래 얼마나 힘을 들였는지 모른다. 매일 기도하고, 매일 이런 말씀을 보면서 기록하고, 암기하고, 종합하고, 정리하는 등 하나님의 이런 말씀에 크게 공을 들인다. 얼마나 필기하고, 혼자 영적 생활을 할 때의 인식을 얼마나 적고, 이런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 몇 번을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가 한 이 모든 행동의 목적이 무엇이냐? 언젠가 갑자기 풍부한 상상력을 펼쳐 하나님이 하려는 말씀을 거침없이 내뱉기 위함이다. 그것도 봇물 터지듯 끊임없이 말이다. 또한, 하나님 말씀처럼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사람의 생명을 공급하며, 사람이 달성해야 할 것을 공급하고 사람에게 요구할 수 있기를 바라서다. 그도 성육신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관점,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의 말투, 하나님이 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 말씀과 똑같은 말씀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이를 위해 적잖이 공을 들인다. 심지어는 일부 사람들은 그가 속으로 하려는 말을 기록하고, 그가 기다리던 하나님이 그에게 주는 음성을 기록하기 위해 남몰래 노트를 꺼내 적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든 적그리스도의 이 욕망은 채워질 수 없고, 그의 바람은 실현될 수 없다.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기록하고 외우며 정리해도 다 소용없다. 하나님은 그를 빌어 말씀하지 않고, 그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지도 않는다. 그가 속으로 아무리 갈망하고, 애를 태워도 하나님 말씀을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다. 조바심이 나고 질투가 날수록, 또 도달하지 못할수록 그는 화가 치민다. 그는 뭣 때문에 화가 나고, 뭣 때문에 조바심이 나겠느냐? 눈앞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데, 정작 자기 아래, 자기 앞에는 자기를 숭배하고 앙모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조바심이 나고 화가 나는 것이다. 화가 나고 조바심이 난 나머지 그가 속으로 생각하고 궁리하게 되는 것은 역시 이런 것이다. ‘왜 이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을까? 하나님 집에 오면 왜 이방의 세상과는 다른 거지? 왜 대부분 사람이 하나님 집에 온 뒤로는 착실하게 행동하고 점점 나아지는 거지? 왜 대부분 사람이 아무런 보상 없이 하나님 집에서 헌신하고 대가를 치르면서 책망과 훈계를 받아도 떠나지 않고, 심지어 일부는 제명되고 출교되어도 떠나지 않는 거지? 그 원인을 살펴보면 한 가지밖에 없어. 바로 하나님의 그 말씀, 그러니까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이 책의 성과와 영향 때문이야.’ 이 점을 깨달은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더욱 부러워한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기를 써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출구로 변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 말씀으로 목표를 옮긴다. ‘비록 내가 하나님 말씀 이외의 말씀은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부합하는 말들은 할 수 있어. 설령 도리이고 공허한 말일지라도 사람들이 들었을 때 맞는 것 같고, 하나님 말씀에 부합하는 것 같으면,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한자리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 사이에서 굳게 설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종종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에 나오는 말씀들을 전하고 해석하고, 항상 이 말씀으로 사람들을 도울 때, 입으로 하는 말이나 전하는 말이 남들에게 하나님 말씀에서 비롯된 옳은 말씀으로 들리면 사람들 사이에서 내 지위가 점점 공고해지지 않을까?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위신이 서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적그리스도는 자신이 지위를 얻고, 더 높은 명성을 얻으려는 바람이 실현되기 위한 길이 생긴 것 같고,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희망을 본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다행스러워한다. ‘난 어쩜 이리 똑똑할까? 아무도 이를 알지 못했을 거야. 다른 사람들은 어째서 이 방법을 모를까? 난 너무 똑똑해! 근데 똑똑한 건 똑똑한 거고, 이 실상은 아무한테도 얘기할 수 없어. 혼자만 알고 있으면 돼.’ 이런 목표와 계획이 생긴 후,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하나님 말씀을 그저 대충대충 보고 들은 다음 아무렇게나 떠들었는데, 지금은 전략을 바꿔야겠어. 이런 식으로는 안 돼. 시간 낭비야. 전에 이렇게 해서 성과가 없었는데 지금도 계속 이러는 건 너무 멍청한 짓이야!’ 따라서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이고 실력을 발휘해 보려 한다. 어떤 일에 실력을 발휘하려 하느냐?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방식, 말투를 연구하고, 하나님이 각 단계, 각 시기에서 한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도 연구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그 말씀들을 어떻게 해석할지, 그 말씀들을 전할 때 어떻게 말하고 해석해야 사람들이 자기를 부러워하고 숭배할지 준비한다. 이런 식으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에 적잖이 공을 들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런 노력의 이면에 깔린 옳지 않은 의도와 못된 심보 때문에 그가 내뱉는 말은 아무리 들어도 도리에 지나지 않고, 아무리 들어도 하나님 말씀 구절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에 아무리 공을 들여도 적그리스도 본인에게는 수확이 없다. 수확이 없다는 건 무슨 뜻이냐?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생각하지 않고, 실행하지도 않으며, 그저 전하기만 한 탓에 그에게서는 어떤 변화도 찾아볼 수 없고, 잘못된 사상 관점이나 인생관에도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패괴 성품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하나님이 말씀한 사람의 여러 가지 내적 상태에 자신을 전혀 맞춰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연구해도 그에게서는 딱 두 가지 결과만을 볼 수 있다. 첫째, 비록 그의 입으로 말하는 하나님 말씀이 모두 옳고 심지어 해석도 틀리지 않지만, 그에게서 어떠한 변화도 볼 수 없는 것이다. 둘째, 그가 아무리 기를 써서 하나님 말씀을 추천하고 전해도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적그리스도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원인은 바로 그가 입으로는 늘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추천하고 전하지만 정작 본인은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자신부터가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이 말씀을 이용해 자신의 은밀한 목적을 이룰 생각뿐인 것이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전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지위와 이익을 얻고 싶어 한다. 만약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으로 여겨 대하고 경배한다면, 그로서는 그 이상 바랄 게 없다. 비록 지금은 이 목적과 성과를 이루지 못했지만, 이것이 모든 적그리스도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면, 어떤 이들에게는 이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럼 하나님 말씀에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다 적그리스도란 말인가?’ 네가 이렇게 받아들인다면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 (의도나 목적이 다릅니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자신의 이익과 지위를 위한 것이고, 개인의 야심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 자신의 관념에 맞는 하나님 말씀을 좀 외우고, 사람의 말로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는 법을 배우고, 영적인 기록이나 체험 소감을 좀 적고, 하나님의 여러 가지 말씀을 종합해서 정리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관념에 비교적 부합한다고 생각되는 일부 말씀,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 어투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일부 말씀, 비밀에 관련된 일부 말씀, 그리고 한동안 교회에서 비교적 성행하고 사람들이 종종 설교하는 일부 하나님 말씀을 말이다. 외우고 정리하고 종합하는 방법, 체험 소감을 기록하는 방법 말고도 물론 더 많은 방법이 있으며, 해괴망측한 방법도 좀 있다. 적그리스도는 지위를 얻고 자신의 야심을 채우고 교회를 통제하고 하나님이 되겠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어떤 대가도 마다치 않는다. 밤을 지새우고 꼭두새벽에 일어나길 밥 먹듯 하며 온갖 노력을 기울여 정신없이 바쁘게 설교 연습을 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말한 훌륭한 부분을 기록하는데, 바로 도리로 무장해 수준 높은 설교를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날마다 어떻게 수준 높은 설교를 할지를 고민하는데, 하나님 선민의 탄복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데에 가장 유용한 하나님 말씀을 골라 외운다. 그런 다음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해석해야 자신의 고명함과 높은 수준을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그들은 몇 번이고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 학생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듯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누가 설교를 잘하는지, 어떤 빛 비춤을 설교하고 어떤 이론을 설교하는지 그들은 모두 수집하고 정리해 자신의 설교로 바꿔 버린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노력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렇게 노력하는 이면에는 어떤 속셈과 동기가 있는 것이냐?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줄줄 외우고 자유자재로 적용하여 사람들에게 그들이 누구보다 더 영적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히 여기며,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사람들 가운데서 일부 사람들의 우러름과 숭배를 받을 수 있다.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며 어떤 고생을 한다 해도 다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이렇게 노력을 기울인 지 2년이 되고, 3년이 되고, 5년이 되다 보면,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내용, 어투에 점차 익숙해진다. 심지어 일부 적그리스도는 입만 열면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말하고 몇 마디는 외울 수도 있게 된다. 당연히 이것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겠느냐? 그들은 입만 열면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말하고 외우는 동시에 말하는 방식, 어투, 심지어 억양도 점점 하나님을 닮아 가고 그리스도를 닮아 간다.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기뻐한다. 어떤 부분이 기쁜 것이겠느냐? 그는 생각할수록 하나님이 되는 일이 정말 좋기만 하다.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숭배받고 둘러싸인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 그는 하나님 말씀에 이 모든 공을 돌린다. 자신이 기회를 얻고 깨우침을 얻은 건 다 하나님 말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하나님 말씀 덕분에 하나님 말씀을 모방하고, 하나님의 어투를 모방할 줄 알게 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이 점점 하나님을 닮아 가고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에 가까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이다.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어투를 모방하고, 또한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억양으로 말하고 살아가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에게는 그 순간이 가장 즐겁다. 적그리스도가 이 지경에 이른 건 위험한 일이 아니냐? (위험합니다.) 어떤 점이 위험하냐? (그가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한다면 위험한 일이다. 그건 곧 바울과 같아지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했는데,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은 구제 불능이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루트로 삼는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적그리스도는 무엇을 했느냐? 그는 하나님 말씀에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막대한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 부었다. 그 기간에 그는 하나님 말씀을 연구, 분석하고, 하나님 말씀을 뒤적이며 열독하고, 암기하고, 정리했다. 나아가 하나님 말씀을 열독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투와 말씀의 방식을 모방하고, 하나님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어휘도 모방했다. 이런 모든 행동의 본질은 무엇이냐? 여기서 나는 그것을 장사꾼이 도매가로 물건을 사들이는 본질에 비유하겠다. 즉, 적그리스도는 가장 저렴한 방식으로 하나님 말씀을 자신이 보유하는 물건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적그리스도는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람이 진입해야 할 길로도 받아들이거나 대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든 이 말씀을 기억하려고 했다. 이런 말씀의 방식과 어투를 기억하고, 자신이 이 말씀의 선포자가 되려고 시도했다. 자신이 하나님 말씀의 어투와 방식을 모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말씀의 방식과 어투를 충분히 활용해서 말하고 행동하면서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가 얻고자 했던 것은 충실하게 본분을 이행하거나, 원칙을 가지고 행동하거나, 하나님에게 충성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어투와 방식을 모방하고,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설교함으로써 그 자신이 사람들의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들의 숭배 대상이 되려고 했다. 그는 사람들 마음에서 보좌에 오르고 왕권을 잡아서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를 지배하고 싶어 했고, 이로써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목적을 이루고자 했다.
만약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에 노력을 기울이는 일을 장사꾼이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며 싼값에 사들이려 하는 행위에 빗대서 말한다면,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모방하며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어투를 활용해 하나님 말씀을 설교하는 일은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해서 판매하는 행위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들인 물건을 팔지 않고 모셔 두는 장사꾼은 없다. 그가 물건을 사들이는 목적, 물건을 보유하는 목적은 바로 그 상품에서 더 많은 금전적 이익을 거두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에 이렇게 노력을 기울이고 하나님 말씀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단지 장사꾼처럼 하나님 말씀을 가장 저렴하고, 또 가장 싸고 빠른 방식으로 손에 넣어서 자신이 보유하는 부속물로 만들고, 그런 다음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해서 자신이 원하는 이익을 얻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바라는 이익이 무엇이냐? 사람들의 우러름과 숭배, 앙망, 나아가 사람들의 추종이다. 이 때문에 교회에서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현상이 있는데, 하나님 말씀을 전혀 실행하지 않고 자신을 인식할 줄 모르는 사람이 도리어 많은 이들로부터 추종을 받고, 많은 사람이 그를 의지하고 숭배하는 경우다. 그 원인이 무엇이냐? 바로 그 사람이 말주변이 좋아서 뛰어난 언변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 말씀도 실행하지 않고, 일 처리도 원칙대로 하지 않고, 교회 사역과 상부의 안배도 시행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일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냐? 그에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째서 많은 이들이 그를 비호하고 감싸는 것이냐? 어째서 그가 리더를 맡으면 일부 사람들이 그를 지켜 주는 것이냐? 어째서 그가 교체될 때는 일부 사람들이 반대하며 가로막는 것이냐? 문제투성이인 사람, 사탄의 패괴 성품으로 가득하고 진리를 전혀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교회에서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원인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언변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위장에 능하고 사람을 미혹하는 재주가 있다. 적그리스도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이 곧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다. 이런 사람은 100% 적그리스도이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외우고 설교하고,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 사람들을 꾸짖고 책망하고, 하나님의 위치, 하나님의 입장에서 사람들을 꾸짖어 그에게 고분고분하고, 그의 말을 두말없이 따르게 하고, 또한 그가 말하는 거창한 도리에 말문이 막히게 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인식하는 법도 없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법도 없는 사람이다. 그가 만약 리더를 맡는다면 그의 윗선 리더는 허수아비가 되고, 하부 교회 상황을 파악하고자 해도 불가능하다. 그가 있는 한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 하나님 집에서 하달한 원칙과 요구는 하나도 시행되지 못한다. 이런 자가 적그리스도가 아니겠느냐? 그가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생각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일에도 한바탕 노력을 기울이고 일부 말씀은 암기하기도 한다. 예배에서 교제할 때도 항상 하나님 말씀을 언급하고, 평소에도 틈만 나면 하나님 말씀 낭송 녹음을 듣는다.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할 때도 하나님 말씀만 따라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설교나 말 중에는 틀린 말이 없다. 겉보기에는 이렇게 완벽하고, 소위 옳은 사람인데,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 하나님 집의 요구와 원칙이 그에게만 가면 막히기 일쑤다. 그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이외에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그와 하늘의 막연한 하나님만을 숭배할 뿐,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런 자가 적그리스도가 아니냐? 그가 어떤 수단으로 이 모든 것을 이룬 것이냐?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이용했다. 흐리멍덩하게 믿고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우매하고 마음이 혼탁한 자들, 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자들, 불신파들, 맞장구나 치는 기회주의자들, 이들은 적그리스도 같은 자를 영적인 사람으로 여기고, 적그리스도가 설교하는 글귀와 도리를 진리 실제로 여기고, 적그리스도를 따라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따르는 대신 적그리스도를 따른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리더가 아직 얘기도 안 하고 교제도 안 했잖아요. 우리끼리는 하나님 말씀을 봐도 이해하지 못해요.”, “우리 리더가 집에 없으면 일이 생겨서 하나님께 기도해도 빛 비춤이 없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길을 깨닫지 못해요. 그러니까 리더가 올 때까지 기다립시다.”, “우리 리더는 요 며칠 바빠서 이 일을 해결해 줄 시간이 없어요.” 이 사람들은 자기 주인을 떠나면 스스로 기도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줄도 모른다. 하나님에게 구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는 방법도 배우지 않는다. 주인이 없으면 장님이나 마찬가지이고, 마치 심장이 도려내진 것 같다. 그의 주인은 그의 눈이고, 그의 심장이자 간이자 폐이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자기 주인만큼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는 주인이 집에 없으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생각도 없고, 주인이 돌아와서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고 풀이해 주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속으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자기 주인이 전달자가 되어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은 적그리스도의 마음속에서는 더없이 기뻐할 만한 일이다. ‘몇 년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고, 몇 년의 세월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됐어. 노력은 정말 배신하지 않는구나.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더니, 그만큼 노력한 보람이 있구나!’ 적그리스도는 자신이 없으면 못 산다는 추종자들의 말을 듣고 속으로 죄책감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남몰래 좋아했다. ‘하나님 말씀은 정말 좋은 거로구나. 그때가 옳은 결정이었고, 몇 년간의 노력도 옳았어. 이렇게 하길 잘했어. 성과를 얻었잖아.’ 그는 내심 기뻐했다. 자신의 악행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이나 후회, 증오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속으로 자기 행동 방식이 옳았다고 더욱 확신하고 긍정했다. 그러니 앞으로의 시간, 앞으로의 생활에서 그는 계속해서 더욱 열심히 하나님 말씀의 방식, 어투를 배우고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어휘 사용을 더 많이, 더 깊이 모방할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과 그의 속셈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과 정반대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방식이 어떻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진리 원칙이 무엇인지, 사람이 지키고 준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이런 것을 뒷전에 제쳐 두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심지어 이런 말에 반감을 품고, 속으로는 이런 말이나 어휘에 은근히 반발한다. 일정한 ‘성과’를 얻은 적그리스도는 과거의 행동 방식대로, 지속적이고 깊이 있게, 더욱 세밀하게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어투는 어떻고 세세한 톤은 어떤지, 어떤 어휘를 사용하는지 등을 연구한다. 심지어 하나님이 사용하는 세세하고 관용적인 어법도 놓치지 않는다. 자신이 이루려는 목표에 더욱 바짝 다가가기 위해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하나님 말씀을 더욱 열심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서, 더욱 깊이 연구하겠다고 다짐한다. 하나님 말씀의 의도를 연구하고, 하나님 말씀의 목표를 연구하고, 심지어 인류를 향해 말씀하고 전 우주를 향해 말씀하는 선포자인 하나님이 말씀하는 방식을 연구하겠다고 다짐한다. 적그리스도는 힘든 줄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의 온갖 측면을 연구하는 한편,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을 흉내 내려 하고, 자신이 마치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하나님의 성품을 갖춘 것처럼 보이려 한다. 이 모든 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순조롭게 발생하는 듯하다. 적그리스도 역시 당연하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행동하는 동시에 당연하게, 또 저도 모르게 자신을 하나님으로 둔갑시키고, 사람들이 앙모하고 따르는 대상으로 둔갑시킨다. 그는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지, 어떻게 사람의 패괴 성품을 폭로하는지 연구하고,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사람의 여러 가지 내적 상태를 폭로하는지 연구하고, 나아가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사람에게서 성과를 이루는지 연구한다. 그가 이 모든 걸 연구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사람의 내면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속사정을 파악하고, 사람의 속마음을 간파하는 동시에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사람의 패괴 성품을 폭로하며 정곡을 찌를 때, 적그리스도는 생각한다. ‘이런 말씀, 이런 방식은 정말 대단하고 훌륭해! 나도 이렇게 말해야겠어. 나도 이런 방식으로 말하고,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해야지.’ 하나님 말씀을 수년간 읽고 익히는 동안, 하나님이 되고 싶다는 적그리스도의 바람과 욕망은 그가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목표로 점점 자리 잡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무리 사람들에게 진리를 추구하고 일 처리를 원칙대로 하라고 말씀해도 적그리스도는 이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무시한다. 그는 안하무인격으로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고, 안하무인격으로 자신의 행동 동기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하나님 말씀은 단 한 마디도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단 한 마디도 그의 인생관과 처세 철학을 바꾸지 못한다. 나아가 어느 한 마디 말씀, 어느 한 편의 설교, 어느 한 차례의 말씀도 그가 회개의 마음을 갖도록 하지 못한다. 하나님 말씀이 무엇을 폭로하든, 어떤 패괴 성품을 폭로하든 적그리스도는 단지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어투, 하나님 말씀이 사람에게서 이루려는 성과 등 진리와 무관한 일만 연구한다. 이 때문에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접할수록 하나님이 되고 싶은 그의 마음속 욕망은 더욱 강렬해진다. 얼만큼 강렬해지겠느냐? 꿈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외우고, 늘 중얼거리면서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어투로 하나님 말씀을 설교하는 연습을 하는 등, 마치 마귀 들린 것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어투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하나님 말씀이 아무리 구체적이고 간절하고 진실해도, 사람에게 아무리 큰 도움과 깨우침을 주어도 적그리스도는 본체만체하고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그 말씀을 보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그는 어떡하면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따라 해서 사람들로부터 숭배를 받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욕망이 강렬할수록 그는 하나님 음성을 듣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하는 모든 말씀 이면의 목적과 바람, 뜻을 이해하고 심지어 하나님 내면 깊은 곳의 생각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욕망과 바람이 강렬할수록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의 방식을 모방하려 하고, 가급적 짧은 시간에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어투를 갖춤으로써 하나님을 더욱 닮아 가려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것도 모자라서 하나님이 일하는 스타일과 기질까지 갖추고 싶어 한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매일 이런 마음과 생각, 속셈과 동기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뭘 하고 있는 것이냐? 하나님이 되고 그리스도가 되는 길을 걷도록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의 생각에는 그 길이 정정당당한 길이고, 밝은 길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거나 여럿이 모였을 때,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식 및 하나님 말씀을 체험한 소감을 교제한다 해도 그의 마음은 동하지 않고, 그의 목표와 바람도 바뀌지 않는다. 그는 마귀 들린 것처럼,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통제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족쇄를 찬 것처럼 그리스도가 되고 하나님이 되는 길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간다. 그건 어떤 정신이냐? 요상한 정신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의 온갖 측면을 흡수해서 자신의 부속물로 삼고, 자신에게 더 높은 이익과 더 많은 금전을 가져다주는 상품으로 취급한다. 이 상품을 팔고 난 뒤, 그것들을 실컷 과시할 때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이익을 취하게 된다. 이렇게 할수록 그는 속으로 만족을 얻고, 이렇게 할수록 하나님이 되려는 그의 욕망은 더 커지고 강렬해진다. 이것은 어떤 태도, 어떤 상황이냐? 하나님이 되려는 적그리스도의 욕망은 어째서 그토록 큰 것이냐? 누군가가 가르쳤느냐? 누가 부추긴 것이냐? 누가 지도한 것이냐? 하나님 말씀에서 그렇게 하라고 요구했느냐? (아닙니다.) 그건 적그리스도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이렇게 큰 힘을 쏟을 수 있는 건 어찌 된 일이냐? 그건 바로 본성 본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외부의 조력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꾸준히, 주저함 없이, 전혀 후회 없이 이런 길을 간다. 그를 아무리 정죄해도 소용없고, 아무리 해부해도 귀담아듣지 않고, 알아듣지도 못하고, 끝내 나쁜 길에 빠져든다. 이것은 바로 본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는 겉으로 보면 대적하거나 폄훼하지 않고,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도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만약 그가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가 가는 길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겉으로 본다면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갈망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적어도 이 단어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겉모습에서 사람의 본질을 알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알 수 있겠느냐? 겉모습을 볼 때 그는 하나님 말씀을 무척 갈망하고 하나님 말씀을 항상 읽고, 경청하고, 또한 외우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런 표면적인 행동 방식을 볼 때 그는 적그리스도로 규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겠느냐? (실행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읽은 하나님 말씀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가 일이 닥쳤을 때 그중에서 한 단락을 인용하거나 두어 마디 외우기도 하는데, 때로는 아주 정확하게 인용한다. 하지만 말씀을 인용하고 난 다음 그가 어떻게 하는지, 어떤 길을 가는지, 일이 닥쳤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아라. 만약 자신의 지위에 관련되거나 자신의 명예와 이미지에 흠이 가는 일이라면 그는 절대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고 자신의 지위를 지키느라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감추고 회피하려고 그 일을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설령 남에게 화를 전가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일에 무척 공을 들이고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 일에 무척 공을 들인다. 하지만 정말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자기 이익을 내려놓아야 하고 자기 육이 고통받아야 한다면,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아라. 만약 그에게 원칙대로 일하라고 한다면, 누구의 심기를 건드리든 어느 사람의 미움을 사든 상관 말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라고 한다면 그가 그렇게 하겠느냐?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우선 자신을 보전하는 쪽을 택한다. 설령 누구의 잘못인지 알고, 누구의 악행인지 알더라도 그는 폭로하지 않고 속으로는 은근히 기뻐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 악인을 폭로한다면 그는 악인을 보호하고 악인을 위해 변명할 것이다. 여기서 적그리스도가 남의 재앙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일이 닥치든 그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 보아라. 그가 만약 진리 원칙대로 일하는 쪽을 택한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신 성과이다. 만약 진리 원칙대로 일하지 않는다면, 그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셔도,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달달 외워도 소용없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적그리스도가 자신을 인식하겠느냐? (인식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적그리스도 역시 자신이 교만하고 독선적이라고 하고, 자신이 마귀 사탄이라고 하던데요.” 그는 말만 하고 끝이다. 정말 일이 닥치면 그는 어떻게 하느냐? 만약 그와 어떤 사람이 협력할 때 그가 한 말이 틀리고, 다른 사람이 한 말이 옳고 진리 원칙에 부합한다면, 다른 사람이 그의 말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체면이 깎이고 지위를 보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말을 따르는 쪽을 택하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겠느냐? 100% 불가능하다. 그러면 그가 그 옳은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냐? 그것이 그의 실제이냐? 그의 실제 분량이냐? 그의 선택이냐? 그가 가는 길이냐? 아니다. 그것은 그가 체험한 게 아니라 배운 것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죄다 도리이고 사람을 속이는 말이다. 지위에 관계되고 이익에 관계된 일에서 적그리스도의 첫 번째 선택은 자신을 보전하고 지키며, 다른 사람을 마비시키고 미혹하며,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어떤 과오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본질을 볼 때 그가 진리를 추구하느냐? 그가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실행하기 위한 것이냐? 아니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읽는 속셈과 목적을 보면, 그는 영원히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그가 하나님 말씀을 읽는 이유가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겨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하나의 매개체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가 비록 “나는 하나님이 되고 그리스도가 될 거야.”라고 정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행동하는 본질과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본질을 볼 때, 그리스도가 되고자 하는 그의 목표는 아주 분명하다.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이용하고, 자신이 보았던, 하나님이 나타낸 소유와 어떠함 등 이 모든 것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데,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 우매한 사람, 분량이 작은 사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 불신파를 미혹하고, 심지어 악인들도 미혹한다. 이로써 그들이 자신을 진리가 있는 사람, 옳은 사람, 앙망하고 의지할 만한 대상으로 여기고, 자신에게 어느 정도 의탁하고 구하면 그는 속으로 만족해한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유일무이한 분이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이며, 하나님만이 진리를 선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영원히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 하나님 말씀에 쏟는 노력, 하나님이 되고 그리스도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볼 때, 적그리스도는 한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을 쉬운 일, 사람이 이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말한다. “성육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건 하나님 말씀을 조금 할 수 있어서 그런 거잖아요? 하나님 말씀의 대변인이라서 그런 거 아닌가요? 따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만약 사람들 사이에서 똑같은 지위와 명망을 지니고, 그를 숭배하고 앙망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리스도처럼 대우받고 하나님처럼 대우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리스도처럼 대우받고, 하나님의 신분 본질을 지닌 그분처럼 대우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이 될 수 있지 않겠어요? 어려울 게 뭐 있나요?”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천성이며, 사탄과 똑같은 야심과 본질을 지니고 있다. 그는 적그리스도요,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지녔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이런 모습을 보인다. 적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이 성육신해서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를 볼 수 있다는 사실, 그가 사람이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더없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평범하고, 보잘것없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고 하나님으로 불리는 덕분에 하나님이 되고 싶은 적그리스도에게 마침내 기회가 온 것이다. 만약 이 평범한 사람이 말씀을 하지 않았다면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되고 그리스도가 되려는 희망이 매우 희박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하나님을 대표해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을 구원하고 있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는 이것이 자신에게는 기회이고, 자신이 노릴 만한 틈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 말씀, 하나님 말투와 말씀의 방식은 물론, 하나님의 성품까지 흉내 내어 점점 하나님처럼, 그리스도처럼 보일 수 있는 단서가 더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자신이 점점 하나님처럼 보이고 점점 하나님에 근접해진다고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숭배하고, 따르고, 무슨 일이든 의지하고, 무슨 일이든 구하며 앙망하는 하나님은 정말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분, 그리스도의 지위가 부러운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 어떤 것이냐? 적그리스도의 내면 깊은 곳은 어둡고 사악하지 않으냐? 떳떳하지 못하고 비열하며 더럽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역겹기 그지없구나!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 말씀을 한참 들어 보았습니다만, 저희는 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을까요? 지금 하신 말씀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가요? 실제와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 아닌가요?” 너희가 볼 때 이런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있습니다.) 몇 명이나 보았느냐? 너희 자신은 해당하지 않느냐? (저희에게도 이런 측면의 내적 상태나 표출이 있습니다. 비록 적그리스도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같은 본성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너희 생각에는 이런 내적 상태가 위험하냐, 그렇지 않으냐? (위험합니다.) 위험한 줄 알면 고쳐야 한다. 그렇다면 쉽게 고칠 수 있겠느냐? 이는 사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다. 네가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겨 지킨다면, 예수가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라고 한 것처럼 간단한 일이니, 정말로 회개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너희에게 어떤 일 한 가지를 시행하라고 했다. “식사가 끝나면 그릇을 씻은 듯 깨끗하게 핥아라. 그게 식량을 아끼는 거고, 또 위생적이다.” 이것이 간단한 말이 아니냐? 시행하기가 어려우냐? (시행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고충이나 내적 상태, 패괴 성품은 언급하지 않고, 여러 상황을 구별하지도 않고, 그저 이렇게 몇 마디로만 요구하면, 너는 이 일을 어떻게 시행하고 어떻게 실행하겠느냐? 너에게 이 몇 마디는 곧 하나님 말씀이고 진리이자 네가 지켜야 할 말이다. 네가 해야 할 일은 매일 매번 밥을 다 먹고 난 다음 하나님 요구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고, 네가 지켜야 할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또한, 너는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으로, 이 가장 간단한 일에서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벗어 버리게 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 말씀을 들은 후 너는 입으로 알았다고 하고 잊어버리지도 않았지만, 결국에는 다 먹은 그릇에 밥알 몇 톨이 남아 있는 걸 보고도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릇을 그대로 두고 자리를 떠났고, 다음번 식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하나님이 한 이 말씀을 기억했지만 언제 실행할지 모를 일이고, 오랜 시간이 흘러 그 말씀을 잊어버렸다. 실행은 고사하고 하나님 말씀을 내팽개친 것이다. 넌 대체 어떤 사람이냐? 그 말씀이 너에게서 시행되지 않았다면, 너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도를 준행할 수 있는 사람이겠느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겠느냐? 분명 아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면 적그리스도로 규정되는 것이냐?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실행하지도 않는다. 별생각도 없이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자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밥을 다 먹고 그릇을 핥으라고? 모양 빠지게! 거지도 아니고 말이야. 게다가 당장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니잖아. 난 그렇게는 못 해! 핥고 싶은 사람이나 핥으라지.’ 누군가 “이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일입니다.”라고 하자 그가 대꾸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거라 해도 안 돼요. 이런 요구를 하시면 안 되죠. 이 말씀은 진리가 아니라고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도 시원찮은 말씀이 있고, 논리에 안 맞는 말씀도 있고, 별로인 말씀도 있어요.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시는 요구가 다 진리라고 할 수는 없죠. 이 말씀은 진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이야말로 진리죠! 밥 먹고 난 다음 그릇을 깨끗이 핥는 게 위생적인 겁니까? 그냥 씻으면 될 것을 왜 핥으라는 거죠? 그릇을 핥는다는 건 제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고, 어디서도 통하지 않는다고요. 저보고 핥으라니, 어림도 없죠! 위생적이라는 걸 이렇게 정의합니까? 전 물로 씻을 때도 소독물을 씁니다. 이런 게 바로 위생적인 거죠!” 이런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생각을 가지고 속으로 반발하고 비웃고 헐뜯는다. 하나님이 한 말씀이라 감히 그 자리에서 판단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가 그 말씀에 견해나 관념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가 견해와 관념을 가졌다는 것은 어느 부분에서 드러나느냐? 그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도 않고 실행하지도 않으며, 이 말씀에 대해 생각을 가지고, 판단하고, 관념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 밥을 다 먹고 나서 누군가 그릇을 핥는 것을 보고도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는 사람을 속으로 경멸한다. 그리고 겉으로 늘 빈정대고 조롱하는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의 이런 행동을 교정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는 동시에 역행해서 그와 반대되는 일을 하려 한다. 그는 자신의 행동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부정하고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는 동시에 자신의 행동으로 더 많은 이의 시선을 끌고 싶어 한다. 이로써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은 옳지 않고 그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게 하고, 그와 함께 하나님 말씀에 반발하고 하나님 말씀을 정죄하게 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고 매번 밥을 먹고 나면 그릇을 물로 헹구는 것도 모자라 소독물과 세제로 여러 번 씻고, 다시 소독기에 넣어 소독한다. 그렇게 하는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견해를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알린다. “사실 핥는 것으로는 균을 없앨 수 없어요. 물로 씻어도 균은 없어지지 않죠. 소독물에다 고온으로 처리해야 철저하게 소독이 되고, 그래야 위생적인 거라고요.” 그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실행하지 않는다. 동시에 자신의 언행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대적하고 정죄하며 판단하는가 하면, 한술 더 떠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견해를 이용해 더 많은 사람이 자기처럼 하나님의 요구를 정죄하고 대적하며 판단하도록 부추기고 미혹하기까지 한다. 그는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하게 하거나, 사람들에게 관념이 생길 때 그 관념을 해결해 주거나,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 갈등을 해결하고 사람들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판단하고 그와 함께 하나님 말씀의 옳고 그름을 분석하고 연구하도록 부추기고 미혹한다. 겉으로는 마치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하며 정당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정당함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갖춰져야 하는 것이냐? 그것이 사람의 정의감이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런 자의 행위 이면에 있는 본질은 과연 무엇이겠느냐? (적그리스도, 마귀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는 것은 고사하고, 더 부끄러운 건 영적인 사람인 체하고 늘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식으로 자신을 미화하고 남들로부터 우러름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 자신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겨 체험하거나 시행하지도 않으면서 언제나 사람들에게 입바른 소리만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밥을 다 먹으면 그릇을 깨끗하게 핥는 것은 좋은 습관이고 식량을 아끼는 것이라고요.” 그는 말끝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이건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건 진리입니다.”라고 하면서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 자신은 전혀 받아들이지도 않고 실행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 말씀에 대해 온갖 판단과 그릇된 해석을 내놓는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하는 짓이다.
방금 분석한 세 가지 유형 사람의 모습을 볼 때 가장 심각한 건 어느 것이냐?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는 본인부터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대해 온갖 대적과 판단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 다른 사람을 미혹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한다. 이런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어느 측면의 하나님 말씀이든, 설령 자기 관념에 맞더라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생각하지 않는데 하물며 인간의 관념은 물론, 인간의 전통문화와 철학에도 전혀 맞지 않는 말씀은 오죽하겠느냐? 이런 말씀은 더더욱 적그리스도의 안중에도 없다. 하나님 말씀은 안중에도 없는 그가 어째서 설교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유형의 사람 중 가장 위험한 사람은 마지막 유형이다. 첫 번째 유형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너희가 볼 때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실행하는 사람은 모두 골 빈 사람이냐? 하나님이 뭐라고 하든, 사람에게 무얼 시키든 그대로 따르는 사람은 좀 바보 같아 보이느냐?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은 가장 슬기로운 사람이다. 두 번째 유형의 사람은 행동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만 일하고 힘만 쓴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 말씀의 요구와 기준을 따르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마음의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행동하는 것만 중요하게 여긴다. 그의 생각은 이런 것이다. ‘당신이 저희를 위하시고, 당신이 하시는 말씀은 다 맞으니 우리는 순종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냥 말씀하십시오. 우리는 당신 말씀만 따르면 됩니다.’ 사실 하나님이 뭐라고 하든, 하나님이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든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마구잡이로 행한다. 마구잡이로 하다 보면 때로는 함부로 행동하고 방해와 교란을 일으키며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도가 심하면 큰 화를 자초하고 멸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맞이하는 가장 심각한 결과이며, 이 지경에 이르는 사람들도 있다. 세 번째 유형의 사람인 적그리스도의 부류는 사탄의 도당으로, 죽어도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네가 한 말이 옳아도 그는 듣지 않으며, 관념을 갖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하나님의 철천지원수요, 진리의 철천지원수이다. 겉보기에 가장 교활하고 가장 영리한 부류도 이들이다. 무슨 일이든 분별하고 연구하려 하고, 무슨 일이든 신경 쓰고 공들여서 알아내고자 한다. 결국,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다가 하나님을 연구하기에 이르면 그는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의견을 갖게 된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그는 자신에게 통하지 않으면 모조리 정죄하고, 자기한테 불리할까 봐 실행하지 않는다. 반면 겉으로 볼 때 무척이나 바보 같아 보이는 유형의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는 듯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 겉보기에 무척 단순하고 정직해 보인다. 터놓지 말아야 할 것도 터놓고, 보고하지 말아야 할 것도 보고하며, 심지어 일부 모습에는 유치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느냐?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닫혀 있거나 잠겨 있지 않고 열려 있다는 뜻이다. 이 간단한 예를 들어 이야기한 목적은 과연 무엇이 적그리스도인지, 적그리스도가 어떤 태도로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지 알게 하고, 어떤 부류가 적그리스도이고 어떤 부류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지만 적그리스도가 아닌지 분별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분별력을 갖추게 하려는 것이다. 그냥 무심코 이런 예를 들었는데, 이건 너희가 오늘 교제하는 주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정말 밥을 다 먹고 나서 그릇을 깔끔히 핥으라는 말이 아니다. 또한, 그릇 핥는 행위를 위생적이고, 식량을 낭비하지 않는 행위라고 정의하지 않았으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 너희는 절대로 오해하지 마라.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지와 관련하여 오늘 또 한 가지,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한다’는 내용에 대해 추가적으로 교제해 보았다. 상품이라고 하면 판매와 거래, 이익, 금전과 관련이 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한다’, 이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극악무도한 짓이다. 왜 그런 것이냐? 방금 예배 드릴 때 각자가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대한 이해를 자신의 말로 교제하고, 가장 간결한 말로 요약해 보았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하나님 말씀은 곧 진리이고, 진리는 인류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진리는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고, 사람이 구원받아 죽음에서 부활하게 할 수 있으며, 사람이 합격된 피조물이 되게 할 수 있다. 인류에 대한 진리의 가치는 말이나 물질, 금전으로 가늠할 수 없다. 그 진리는 사람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고, 또한 그 진리를 행동과 됨됨이, 생활, 인생 등의 지침과 방향, 목표로 삼을 가치가 있다. 사람은 진리에서 실행의 길,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 등을 얻어야 한다. 진리는 사람에게 생명과 같기에 그 어떤 물질이나 부도 진리에 견줄 수 없다. 이 물질세계에서, 혹은 우주 세계 전체를 통틀어 진리에 비견될 만한 것은 없고, 진리와 동일시될 수 있는 것도 없다. 이로써 진리는 구원이 필요한 인류에게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을 상품 취급해서 판매하고 거래하며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런 사람은 마귀, 사탄으로 규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고도 남는다! 이런 사람은 영계에서는 마귀이자 사탄이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적그리스도이다.
지금까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며 팔아 사익을 챙기는 모습에 대해 교제했다. 물론 이것은 특정한 의미에서 말한 것이지 글자 그대로의 의미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다. 즉, 그가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해서 판매한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실 그의 행위와 행동 방식 나아가 그의 본질에서 볼 때 그는 이미, 또는 확실히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고 소유할 수 있는 물질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하나님 말씀을 소유한 다음 자기 가게에서 파는 물건으로 취급하고, 적당한 시기에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팔아 이익을 얻는다. 적그리스도가 거기서 얻는 이익은 무엇이냐? 바로 그의 명망, 사람들의 우러름과 숭배, 그리고 사람들이 보내는 찬사의 눈길이다. 또한, 사람들이 그를 지켜 주고 그의 지위와 체면을 지켜 주며, 심지어 그가 교체되고 도태되었을 때 그를 위해 변호하고 해명해 주기까지 한다. 이것이 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취한 이익이다. 이런 이익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바라는 것이자 추구하는 것이며, 그가 속으로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질이다. 그의 모든 행위는 그의 본성에 의해 촉발된 것이고, 그의 본성에 지배를 받은 것이다. 이런 측면의 모습에서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알 수 있다.
(2) 하나님 말씀 책을 팔아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다
이어서 교제하는 두 번째 방면은 진정한 의미에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는 행위와 행동 방식이다. 이 행동 방식은 바로 적그리스도가 각종 하나님 말씀 책을 상품 취급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말씀 책을 손에 넣은 후 돈을 벌 밑천이 생기고 본전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인쇄된 하나님 말씀 책들은 그의 본전이자 그가 판매하려는 상품이며, 그가 폭리를 취하는 수단이다. 적그리스도는 이 책들을 자기 손에 쥔 채 하나님 집에서 요구한 원칙에 따라 배포하지 않고 자기 의도에 따라 거기서 이익을 취한다. 하나님 집에서 책자를 배포하는 원칙은 무엇이냐? 하나님 말씀 읽는 것을 좋아하고 진리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배포하는 것이고, 그것도 무료로 배포하는 것이다. 몇 명에게 배포하든, 몇 권을 배포하든 모두 무료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성경이 무료가 아니며, 반드시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의 이 말씀, 이 책들은 하나님 집에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이 책들을 손에 넣은 다음 무료로 배포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데, 이것이 문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원칙에 따라 무료로 나눠 주지, 돈을 받거나 거기서 폭리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적그리스도 부류만이 이 책을 얻은 다음 그것을 사업 기회로 생각한다. 그러면 그의 야심과 욕심이 고개를 든다. ‘이렇게 두껍고 좋은 책을 공짜로 나눠 주면 손해 보는 거 아닌가? 이걸로 돈을 못 만지면 바보 아닌가? 게다가 이 책은 다른 데서는 사지도 못해.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이걸 읽고 싶어서 얼마를 주더라도 손에 넣으려 한다고.’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파악한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돈 벌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좀처럼 만나기 힘든 기회잖아. 책을 나눠 줄 때 차등을 두어서 돈 있는 사람에게는 돈을 많이 받고, 보통 사람에게는 중간 가격,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조금 받거나 아니면 주지 말아야지. 나한테 잘 보이려는 사람에게는 가격 혜택을 주고, 나랑 안 맞는 사람에게는 좀 더 받아야지.’ 이것이 하나님 집에서 정한 대로 책을 나눠 주는 것이냐? (아닙니다.) 이건 장사를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이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그가 하나님 집의 규정과 원칙에 따라 시행했느냐는 차치하고, 우선은 그가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부터 얘기해 보자. 하나님 말씀 책을 손에 넣은 그가 그것을 소중히 여기겠느냐?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에서 다루는 생명의 도, 진리에는 관심 없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아무렇게나 휙휙 넘기며 훑어볼 뿐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사역을 하시고 사람들을 정복해서 좋은 종착지를 주신다고는 하는데 인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자세히 안 나와 있군. 그러니 이 책도 별로 재미가 없어. 재미없긴 해도 보려는 사람이 많으니 잘됐지 뭐. 여기서 이익을 좀 얻을 수 있겠어.’ 하나님 말씀 책은 그의 손에 떨어지는 순간 상품으로 전락한다. 이 말은 곧 이 책을 돈을 주고 사려는 사람들이 많거나 적어도 일부 있다는 뜻이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분으로, 하나님 집의 사역을 한다는 명분으로, 하나님 말씀 책 배포를 담당한다는 명분으로 거기에 끼어들어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 말씀 책을 무료로 나눠 주는 일을 하나의 거래, 장사로 변질시켰다.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이 한 말씀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는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이고, 돈을 받지 않는다. 사람이 다른 무언가와 바꿀 필요가 없다. 사람이 해야 할 건 그저 받아들이고, 실행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말씀을 한 보람이 있고,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바람이고, 또한 하나님 6천 년 경영 사역이 사람에게 행해지는 근본 취지이자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가장 아름다운 소망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의 말씀, 그의 소유와 어떠함, 그의 뜻을 무상으로 끊임없이 공급하는 것이 얼마나 깨끗하고 성결한 일이고, 얼마나 위대한 일이냐! 그 안에 거래는 없다. 하나님 말씀을 세심하게 귀담아듣고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하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진리와 하나님 말씀을 무료로 얻었다면 속으로 하나님에게 보답하고, 하나님 마음을 흡족게 해야 한다. 이로써 하나님이 위안을 얻고, 하나님의 대업이 하루빨리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창조주와 피조된 인류 사이에 맺어져야 할 묵계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이 일을 거래로 변질시켰다. 그는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사역을 기회 삼아,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의 공급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용해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 하고, 그 가운데서 얻어서는 안 될 금전과 이익을 얻으려 했다. 이런 행위는 저주받을 짓이 아니냐? 너는 하나님 말씀 중 하나님이 인류에게 말씀하면서 사례를 요구한다는 내용을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느냐? 한 마디에 얼마, 한 단락에 얼마, 설교 한 번에 얼마, 책 한 권에 얼마, 책망과 훈계 한 번에 얼마, 심판과 형벌 한 번에 얼마, 연단 한 번에 얼마, 생명 공급 한 번에 얼마라고, 하나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더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하나님 말씀의 모든 구문과 단락, 편 중에서, 사람이 받아들이는,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책망과 훈계, 형벌과 심판, 시련과 연단, 하나님 말씀의 공급, 양육 중에서 돈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그중 사람이 돈으로, 물질로, 육의 대가와 맞바꿀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하는 이 모든 일, 하나님이 선포한 이 모든 진리는 모두 값을 매길 수 없다. 값을 매길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돈이나 그 어떤 물질로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등가 교환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해 준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등 이 모든 것의 진귀함과 소중함을 모르고 도리어 거기서 폭리를 취하려고 한다.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냐!
또 어떤 적그리스도들은 사람들을 혼내 주려고, 자신의 위신과 명망을 세우려고,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그의 권세를 느끼게 하려고 하나님 말씀을 손에 쥔 채 아래 형제자매들에게 배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런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권력 잡고 있는 교회에서 형제자매들이 읽을 하나님 말씀이 없고, 들을 하나님 설교가 없다. 이런 자들은 저주받아 마땅하지 않겠느냐? 그는 하나님 말씀을 무엇으로 취급하느냐? 자신의 사유 재산으로 취급한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에게만 베풀어 주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한 사람의 사유 재산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 말씀은 인류를 향해 하는 말씀으로, 어느 누가 그 어떤 이유나 구실로도 하나님 말씀을 자기 손에 쥐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적그리스도가 바로 이런 역할을 충당하고 있으며, 그는 관례를 깨고 이런 짓을 벌이려 한다. 어떤 적그리스도들은 최신 설교 녹음을 받은 뒤 자기가 먼저 들어 보고, 그 안에서 어떤 새로운 빛 비춤이나 자기가 모르는 내용을 발견하면 해당 설교를 배포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설교 녹음을 자기 손에 쥐고 있다. 그 목적이 무엇이겠느냐? 바로 예배 시간에 으스대려는 것이다. 이렇게 으스대는 것이 바로 판매하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으스대자 아래 사람들은 지금까지 못 들어 봤던 새로운 내용이기에 그를 우러러본다. 그러면 적그리스도의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각지 교회에 설교 교제와 녹음을 제때에 온전히 배포하지 않는 사람들이 꼭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또 일부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 책을 배포할 때 상대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를 본다. 자기를 가까이하고 자기에게 아첨하는 자에게 배포한다. 무료로 받을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마음대로 받지 못한다. 무료로 제때 배포하는 원칙은 그에게 가면 에누리의 대상이 되어 상황에 따라 다르게 취급된다. 그와 함께 있는 사람,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은 겨우 받을 수는 있지만 꼭 제때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자기와 관점이 다르고 심지어 대립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골라서 배포하거나 아예 배포해 주지 않는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 책을 배포하는 일에서 폭리를 취하는 것도 모자라 그것으로 사람들을 구워삶고 매수하기도 하고, 억압하고 혼내기도 하는 등 못된 짓은 뭐든 저지를 수 있다. 심지어 사람들을 위협할 수도 있다. 자신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한 사람이나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은 사람, 반대표를 던진 사람이라면, 그는 아마 하나님 말씀을 배포해 주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혼낼 것이다. 따라서 제때 하나님 말씀 책이나 설교 녹음을 받을 수 없을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이런 적그리스도들을 두려워한다. 설령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고 자기가 불공평한 대우를 받더라도 감히 보고하지 못한다. 적그리스도에게 억압과 괴롭힘을 당할까 봐, 상부와 연락이 끊길까 봐, 상부의 양육이나 공급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이런 사람이 없겠느냐? 100% 있고, 반드시 있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다. 권력과 이익을 다투고 패거리를 결성하고 독립 왕국을 세우는 일 외에, 하나님 말씀을 배포하는 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가 이익을 취하고 지위와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그의 이용 대상이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포함해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 너희가 있는 교회에서, 너희 주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적이 있지 않으냐? 어떤 적그리스도는 아랫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선거에서 저를 뽑지 않거나, 상부에 저를 고발하거나, 저를 무시하거나, 저를 고자질했다가 들키면 앞으로 녹음 설교는 없습니다. 공급을 중단해서 양식을 끊어 놓겠습니다. 배고픔과 갈증으로 견딜 수 없게 할 겁니다!”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흉악하지 않으냐? 너무나 흉악하다! 온갖 못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이런 적그리스도를 발견하면 너희는 어떻게 처리하느냐? 상부에 보고할 수 있겠느냐? 다 같이 연합해서 그를 버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막상 맞닥뜨리면 너는 엄두가 나지 않아 잔뜩 움츠러들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난 분량이 작아. 난 나이가 많지 않아. 난 힘이 미미해. 적그리스도가 자기들끼리 결탁해서 괴롭히기라도 하면 난 끝장나지 않겠어? 하나님은 어디 계시지? 누가 내 하소연을 들어 주겠어? 누가 내 억울함을 풀어 주겠어? 누가 날 위해 나서 주겠어?’ 너는 어찌 그다지도 믿음이 작단 말이냐? 적그리스도를 맞닥뜨리고도 겁을 집어먹는데, 사탄이 눈앞에서 위협하면 더는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이냐? 적그리스도가 네게 하나님 말씀을 나눠 주지 않으면 어쩔 셈이냐? 하나님 말씀 책을 돈 내고 사라고 하면 그때는 어쩔 셈이냐? 하나님 말씀 책을 나눠 줄 때마다 적그리스도가 너를 곤란하게 하고 거북한 소리를 해 대면 어쩔 셈이냐? 이 일이 다루기 쉬운 일이냐? 너에게 좋은 수를 알려 주겠다. 책이 배포될 즈음 적그리스도 편에 서서 듣기 좋은 소리를 많이 하고, 그를 칭찬하고 추켜세워서 신임을 얻는 것이다. 그러다 그가 하나님 말씀 책과 설교 녹음을 너에게 나눠 주면, 그런 다음에 상부에 보고할 기회를 찾아라. 만약 상부에 보고할 길이 없다면, 기회를 봐서 분별 있는 형제자매들과 힘을 합쳐 적그리스도를 제한하고 결박하여라. 이게 바로 교회를 위해 화근을 없애는 것이고, 하나님 뜻에 가장 합하는 방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다 적그리스도에게 들키면 어떡합니까?” 만약 이번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다음에 하도록 해라. 언제 네게 용기가 생기고 조건이 무르익으면, 그때 다시 시도해도 된다. 어쨌든 적그리스도가 네 양식을 끊어 버릴 것이 두렵다면 우선은 객기 부리지 말고, 드러내지 말고, 그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해라. 언제 네게 분량이 생기고, 알맞은 사람, 옳은 사람, 더 많은 사람이 네 편에 서서 함께 적그리스도에게 저항하고, 적그리스도를 분별해서 내칠 수 있으면, 그때 다시 그를 끊어 내도록 해라. 이 방법이 어떠냐? (훌륭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이건 사람을 속이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이건 정직한 게 아닌데요.” 이것이 사람을 속이는 것이냐? (아닙니다.) 이런 걸 두고 마귀를 농락하는 것이라고 한다. 적그리스도, 이 마귀는 어떻게 대해도 괜찮다.
너희는 적그리스도가 두려우냐? 정말 적그리스도가 네 주변에 있다고 해 보자. 바로 너희 교회에서 적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권력과 지위를 가지고 있고, 또 옹호하는 사람이 많다. 패거리가 있고 아주 가까운 자들이 몇몇 있다. 너는 두렵겠느냐? 두렵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두려워하는 게 맞느냐? 이 두려움 안에는 적어도 좋은 것, 옳은 것이 하나 있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그를 두려워한다는 건 최소한 네가 속으로 그를 악하다고 생각하고, 그가 너를 혼내고 괴롭힐 수 있고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너는 속으로 최소한 그를 이렇게 이해하고 분별한다. 비록 그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하거나 분별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가 좋은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올바르고 선량한 사람,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니 네가 그를 두려워할 수 있는 것이다. 착실한 사람, 정상적인 보통 사람은 일반적으로 마귀 외에 또 어떤 사람을 두려워하느냐? (악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악인을 두려워한다. 적어도 너는 속으로 그가 악인임을 알고 있다. 이런 바탕 위에 그가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그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면, 그의 여러 행위를 분별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행위를 통해 그의 본질을 인식하고 분별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네가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할 수 있으면, 너의 그 두려움 안에 몇몇 요소가 더 추가되어 그에 대해 분별이 생긴다. 비록 속으로 그가 두렵지만 그와 한편이 될 수 없고, 속으로 그를 버릴 수 있게 된다. 이건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좋은 일입니다.) 그가 만약 너에게 자기와 같이 악을 행할 것을 요구한다면 너는 동의하겠느냐? 너는 속으로 분별할 수 있겠느냐? 그가 너에게 자기와 함께 하나님을 욕하고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면 너는 동의하겠느냐? 그가 너에게 자기와 한편이 되어 사람들을 혼내고 괴롭히자고 한다면, 누구누구에게 하나님 말씀 책을 주지 말자고 한다면 동의하겠느냐? 비록 동의하지 않겠다고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너는 속으로 그가 한 일에 대해 분별이 생기게 될 것이다. 만약 네가 억지로, 강요에 못 이겨 그와 어떤 일을 했다 해도 너는 단지 강요에 못 이겨 한 것이지 주동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최소한 주범이 아니고 기껏해야 종범 정도이다. 비록 그 앞에서 네가 그를 폭로하거나 격노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추종자나 공범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적그리스도를 버린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악인이 두렵고 적그리스도가 두려워서 양보하며 보전을 꾀할 수밖에 없다. 궁여지책으로 이만큼 한 것도 잘한 것이다. 하지만 이만큼 한 것을 가지고 굳게 섰다고 할 수 있겠느냐? 진리 원칙을 지켰다고 할 수 있겠느냐? 사탄을 이겼다고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굳게 설 수 있느냐? 너희는 길이 없으면 그저 양보하며 보전을 꾀하는 수밖에 없다. ‘그가 악을 행할 때 난 감히 가담할 수 없어. 난 징벌이 두려워. 그는 악인이라 나쁜 짓을 저지르며 사람을 혼내고 괴롭히지만, 어쨌든 난 안 그랬으니 됐어. 그 악행이 나한테 돌아오지는 않을 거야.’ 너희는 이 정도라도 해내면 잘한 것이다. 단지 무골호인이 되어 중용의 길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증거했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증거하는 수준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이론적으로 말하면 악인을 버려야 하고, 적그리스도를 버리고 폭로해야 한다. 또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집에서 횡포를 부려 하나님 집에 손해를 입히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느냐? (고발하고 상부에 보고해야 합니다.) 너희가 다할 수 있는 책임과 의무가 겨우 그 정도이냐? 너희는 겨우 그 정도밖에 증거하지 못하고, 그 정도 분량밖에 없는 것이냐? 보고하는 것 말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먼저 적그리스도의 일관된 모습과 악행의 사실을 수집하고, 그다음에 사실에 근거해서 형제자매와 교제하고 분별합니다. 형제자매들에게 그에 대한 분별이 생긴 다음에는 폭로하고, 그런 다음 그를 교회에서 내보냅니다.) 절차도 옳고 과정도 옳다. 그렇다면 특수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너는 리더의 지위에서 그 일을 얘기한 것이다. 만약 일반 신도가 적그리스도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아니겠느냐? 이런 상황에서 너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장부 기재와 장부 보고에 관계된 이야기이다. 장부 기록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외용 장부와 내부 장부를 따로 기록하다가 결국 내부 장부에서 200위안의 금액 차이가 발생했다. 그 후 책임자가 와서 장부를 대조해 보다가 금액 차이를 발견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부용은 폐기하고 대외용만 남겨 두죠. 그러면 아무도 증거를 못 잡을 겁니다.” 그중 한 사람이 반대했다. “이건 제물입니다. 금액이 얼마가 됐든 하나님 돈인데 그러면 안 되죠.” 책임자가 잠자코 있으니 다른 사람이 말했다. “200위안이 별건가요? 적그리스도는 횡령했다 하면 몇만 위안인데.”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얼마 후,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이 일을 윗선에 보고했다. 의사 결정팀에 보고가 들어갔는데, 거기서도 200위안은 별거 아니라며, 바빠서 그 건을 처리할 시간이 없다 했고, 교회 리더에게 보고해도 역시 처리가 안 되었다. 다들 그 일을 나 몰라라 했다. 문제를 보고한 그 사람은 속이 상했다. ‘사람들이 어쩜 저럴까? 하나님 제물을 대하는데 어쩜 저리 무책임할 수 있지? 대놓고 속임수를 쓰다니!’ 그는 이 일로 괴로워했다. 어느 날 내가 거기를 방문했더니 그가 이 일을 나에게 보고했다. 장부 기록자 장부를 적을 때 이것저것 빠뜨려서 장부를 엉망으로 기록하는 바람에 결국 금액이 맞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이 건이 큰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소위 책임자나 리더라고 하는 자들은 누구도 처리해 주지 않았고, 장부 기록자를 내보내기는커녕 핑계를 대며 보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제를 보고한 사람은 계속 보고를 하다가 결국 이 일 때문에 여러 사람으로부터 배척을 당했다. 너희가 볼 때 이 사람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일을 보고한 것이냐? “200위안에 왜 그리 집착하세요? 적그리스도는 횡령했다 하면 몇만 위안인데.” 만약 그가 그들 중 이런 말을 한 사람과 같은 태도였다면 그래도 보고를 했겠느냐? 보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가 “내 돈도 아닌데 누가 횡령하든 그 사람이 책임지면 되지. 어쨌든 나는 횡령하지 않았으니 이런 책임도 질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거나 “난 의사 결정팀이랑 교회 리더한테 보고했어. 그 사람들은 나 몰라라 하지만, 그래도 난 책임을 다한 거야. 이젠 신경 쓸 필요 없어.”라고 말한다면, 그가 이런 태도를 지녔다면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보고할 수 있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 일반 사람들은 기껏해야 의사 결정팀에 보고한 다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람이 의사 결정팀에 보고할 당시는 마침 내가 교제한 노아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고, 그는 교제를 듣고 감동을 받은 터였다. ‘노아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오랜 세월을 굳게 지키면서 번복하지 않았어. 내가 이 정도 어려움에 버티지 못한다면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그래서 그는 계속 보고를 했고, 마지막에는 상부에 보고해서 상부에서 이 일을 처리했다. 너희가 보기에 사람들 가운데 이런 사람이 많으냐, 적으냐? 만약 너희가 이런 상황을 만난다면 이렇게 끝까지 버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너희도 역시 200위안은 큰돈이 아니고 별일 아니니 그렇게까지 원칙을 고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대할 필요 없다고, 차액이 커지면 그때 보고하면 된다고 생각하겠느냐? 너희는 이렇게 여기겠느냐? ‘아무튼 난 책임을 다했고, 처리하고 말고는 리더의 일이야. 난 그저 보통 신도이고 내가 가진 역량으로 그에 걸맞은 기능을 발휘했어. 난 보고했고 내 의무를 다했으니 나머지는 내 소관이 아니야.’ 너희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만약 누군가 너를 억압한다면 너는 보고하지 못한다는 말이냐? 이 사람은 문제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억압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삿대질하며 그를 정죄하고 항상 그를 혼내 주려 했다. 이 얼마나 악독한 자들이냐! 나는 그 몇 명을 기억하고 있다. 왜 기억하겠느냐? 그들은 하나님 집 밥을 먹고, 하나님이 공급한 모든 진리를 누리면서 정작 하나님의 제물을 그런 태도로 대했다. 그런데도 하나님 집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는 자격이 없다! 너에게 굳게 서서 증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그런 인품도 없다. 자기가 해야 할 것도 못하는 네가 하나님 집에 머물 자격이 있겠느냐? 이런 사람은 기억해야 하지 않겠느냐? 너희는 이런 사람을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느냐?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입니다. 끝까지 고수하며 하나님 집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독한 사람을 보면 겁내고, 착실한 사람을 보면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그 못난 인간들이 역겹다. 나는 그런 배은망덕한 자들이 역겹고, 진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자들이 역겹다. 특히 설교를 몇 년을 듣든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전혀 변화가 없는 자들, 속으로 아직도 하나님에게 반발하고 하나님을 경계하는 자들이 역겹다. 이런 자들은 만약 악행을 저지른 명확한 사례가 없으면 적그리스도로 정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이런 자들이 역겹다. 얼마나 역겹겠느냐? 적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역겹다. 왜 그렇겠느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해서 판매하고 거래하고 매매함으로써 거기서 이익을 취한다. 이런 자들은 거기서 어떤 이익도 취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 하나만 봐도 열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지 않고, 하나님 제물을 대할 때 지녀야 할 간단하고 가장 기본적인 태도조차 갖추지 못했다. 하나같이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다. 이런 자는 어떤 인간이냐? 바로 주님과 동료들을 팔아넘긴 유다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소감이 어떠냐? 유사한 상황을 만나면 너희는 원칙을 고수하고 입장을 지킬 수 있겠느냐? 네가 만약 못난 인간이라서 항상 움츠러들고 적그리스도 세력을 두려워한다면, 적그리스도가 너를 괴롭히고 혼낼까 봐 겁내고, 적그리스도 세력이 너를 해할까 봐 겁낸다면, 늘 겁에 질려서 지혜롭게 대처하지도 못하고 언제나 적그리스도와 타협한다면, 감히 보고하거나 폭로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힘을 합쳐 그를 저버리지도 못한다면, 너는 굳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그야말로 못난 인간, 배은망덕한 인간이다.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너를 위협하고, 너의 양식을 끊어 버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를 버리지 못한다면 그러고도 네가 이긴 자겠느냐?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될 자격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너에게 거저 베풀어 준 말씀과 영의 양식을 스스로가 가져올 능력도 없고, 그걸 먹고 마시며 향유할 능력도 없다면 너는 얼마나 못난 것이냐!
지금까지 교제한 사실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상품으로 대하는 모습들이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지 주마간산 격으로 쓱 보고 스스로를 꾸밀 뿐이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부속물, 자신의 사유 재산으로 취급하고, 거래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금전과 이익을 얻는다. 그리고 하나님 선민들이 하나님 말씀을 열독하거나 먹고 마실 자유를 통제한다. 이런 적그리스도는 악인이자 마귀, 불신파, 이방인 족속이다! 하나님 집에서 보이는 족족 영원히 출교해야 한다! 너희가 이런 사람을 만나면 저버릴 수 있겠느냐? 다 같이 힘을 합해서 그를 폭로할 수 있겠느냐? 마땅히 폭로하고 저버려야 한다. 하나님 집은 진리가 권세 잡는 곳이다. 네가 만약 이런 분량을 갖추지 못했다면 하나님 말씀이나 진리가 네 내면에서 아직 생명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네가 겁을 먹고 사탄과 악인을 무서워한 나머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고 얻지 못하더라도 양보해서 자신을 보전하려 하고 적그리스도와 싸우지 않는다면, 너는 굶어 죽어도 싸다. 그래도 아무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만약 이런 일을 만나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느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폭로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상품이 아니다. 모든 하나님 선민들에게 공급되는 것으로, 어느 한 사람의 사유 재산이 아니기에 누구도 말씀을 압류하거나 점유할 권리가 없다. 하나님 말씀은 마땅히 모든 하나님을 따르는 선민들에게 무상으로, 무료로 배포되어야 한다. 누군가 그것을 압류해서 배포하거나, 누군가 거기서 폭리를 취하거나, 누군가 하나님 말씀에 대해 개인적인 계획을 품는다면 모두 저주받아 마땅하다. 그런 자는 모두 하나님 선민들이 일어나 폭로하고 버려야 할 대상이고, 제명하고 잘라 내야 할 대상이다.
오늘 교제한 이 두 가지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태도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긴 적이 없고, 하나님 말씀을 창조주의 말씀으로 여겨 아끼거나 소중히 대한 적이 없다. 반면 차마 말 못 할 비열하고 지저분한 속셈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서 자신의 은밀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물질적으로나 비물질적으로나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고자 한다. 금전과 물질적인 것을 얻으려 하기도 하고, 혹은 그것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추켜세움과 앙망, 숭배, 추종을 받는, 그런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그런 건 모두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이고, 사람이 저버려야 하는 것이다. 누구든 이런 사람, 이런 일을 발견하면 일어나서 폭로하고 저버려서 그가 하나님 선민들 사이에서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이런 일을 만나면 그냥 상부에 보고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너는 너무 수동적이고 무신경한 것이다. 단지 상부에 보고하기만 한다면, 너는 지지리도 못난 인간이다! 그렇게 많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설교를 들었으면서 보고할 줄밖에 모르니, 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분량이냐! 설마 적그리스도를 상대할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이냐? 상부에 보고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다. 어쩔 수 없을 때 취하는 방법이다. 세력도 약하고 분별도 별로 없어서 그가 적그리스도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의 각종 모습과 행동을 폭로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적그리스도라고 확신하는데도 일어나서 그와 싸우지 못하고, 그를 저버리거나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그건 너무 못난 게 아니냐? 네가 깨달은 그만한 진리가 아무런 작용도 못 한 것이다. 너는 네가 깨닫고 들은 것이 진리임을 확신할 수 있느냐? 만약 진리라면, 어째서 정정당당하게 일어나 적그리스도와 싸우지 못하는 것이냐? 적그리스도가 집권당이 된 것도 아닌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다만 한 가지 상황, 만약 무모하게 그를 폭로했다가 그가 너를 집권당의 손에 넘기는 상황이라면 좀 조심해야 하고 그를 격분시켜서는 안 된다. 지혜로운 방식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적그리스도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서서히 그를 도태시켜야 한다. 소리 소문 없이 그를 도태시킨다면 더욱 대단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좋다. 오늘 교제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안녕!
2020년 9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