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는 데 관한 말씀

433) 지금은 하나님나라시대로, 네가 이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는지를 알려면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들어갔는지, 하나님 말씀이 너의 생명 실제가 되었는지를 보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결국에는 모두를 말씀의 세계에서 살게 하고, 각자에게 깨우침과 빛 비춤을 준다. 만약 네가 이 기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읽고 말씀에 흥미를 느끼지도 못한다면, 그것은 네 내적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네가 말씀 시대에 들어가지 못하면 성령의 역사가 없을 것이고, 들어가면 성령의 역사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 시대의 출발점에서 어떻게 해야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이 시대에 너희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일을 이루고자 한다. 너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고, 진리를 실행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또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토대로 삼고 실제가 되게 하여 하나님께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말씀을 실행하여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사역이다. …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제어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좋다고 느껴지고, 먹고 마시지 않으면 행할 길을 잃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양식과 동력이 된 것이다. 예전에 성경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한 바 있다. 오늘날 하나님은 이 사역을 이룰 것이다. 그는 너희에게서 이 사실을 이루고자 한다. 과거에는 며칠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아도 밥도 잘 먹고 일도 잘 했었는데, 왜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이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을 받고 온전케 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에게 생명과 광명, 그리고 실행할 길을 줄 수 있다. 특히 하나님나라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떠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나라시대는 말씀 시대이다> 중에서

434) 하나님의 말씀에는 전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진리와 사람에게 아주 이롭고 도움이 되는 것들이 들어 있다. 그것은 너희에게 필요한 자양분이자 영양분으로, 정상 인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너희의 생명은 더 빨리 성장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진리는 더욱 명확해진다. 너희의 분량이 커지면 영계의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더욱 강력한 힘으로 사탄을 이길 수 있다. 너희가 깨닫지 못한 수많은 진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때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표면적 의미를 깨닫는 데 만족하고 도리적인 글귀를 채우는 데에만 집중할 뿐, 실행에서 더 깊이 들어가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것이 바리새인의 작태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아라”라는 말의 실제를 갖출 수 있겠느냐?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했을 때 생기는 것이지, 말씀을 보는 것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만 하면 생명과 분량이 생길 거라고 여겼다면, 네 인식은 치우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를 실행했을 때에야 참되게 깨닫는 것이다. 너는 ‘진리는 실행했을 때 깨닫는다’는 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오늘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본 후에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되었다고 할 정도는 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이는 진리를 실행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절반만 맞을 뿐, 100%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네가 어떤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있다면 너는 그 진리를 체험하지 못한 것이다. 설교를 들으면 언뜻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저 진리의 글귀를 갖췄을 뿐, 진리의 참뜻을 갖춘 것은 아니다. 진리의 겉껍데기를 안다고 해서 진리를 이해하고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다. 진리의 참뜻은 모두 체험 과정에서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체험해야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체험 과정에서 진리의 감춰진 부분을 찾아낼 수 있으며, 체험이 깊어져야 진리의 함의를 포착하고 진리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가 있어야 천하를 다닐 수 있다고 한다. 네게 진리가 없으면 많은 종교 인사들을 탄복시키기는커녕, 네 가족들조차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진리를 갖추지 못하면 바람에 흩날리는 눈송이 같겠지만, 진리를 갖추면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유유자적할 수 있다. 그때는 누구도 너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이론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진리를 무너뜨릴 순 없다. 진리가 있으면 천지를 뒤집어엎고 산을 밀고 바다를 뒤엎을 수 있지만, 진리가 없으면 한낱 버러지로 인해 무너지는 성처럼 허술할 것이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리를 깨달았다면 마땅히 실행해야 한다> 중에서

435) 하나님의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진정으로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자적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엄지를 치켜세우며 칭찬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다고 착각하지 말라.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빛 비춤을 얻고,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며 하나님이 하는 그 말씀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말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거두고자 하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밝히 알 수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표면적인 의미를 그럴싸하게 해석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할 수 없다. 표면적인 해석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의 상상과 생각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겠느냐?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하는 한 마디 말씀마다 그저 두리뭉실한 말 한마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틀림없이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 또한 분명 말씀에서 밝혔거나 다른 방식으로 언급했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진리를 선포하는 방식을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은 지극히 심오하여 사람의 사고방식으로는 측량하기 힘들다. 사람은 각 부분의 진리에 공을 들여야 완전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남은 세부적인 부분은 체험 과정에서 성령의 깨우침을 통해 구체적인 내적 상태를 깨달음으로써 부족한 점을 완전히 보완할 수 있다. 한 가지는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구체적인 내용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여 성령의 깨우침을 얻음으로써 하나님 말씀의 함의를 이해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면 주로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문자적으로 해석하거나 너의 생각과 상상을 바탕으로 해석한다면, 표면적인 의미를 아무리 그럴듯하게 해석해도 내면적인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했다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만 떼어 내 왜곡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진리는 문자적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대부분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는 것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성령의 깨우침을 얻을 필요가 없이 어느 정도의 지식만 갖추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면 지식이 없는 사람은 곤란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머리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 성령의 깨우침이 있어야 하며,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진리를 얻는 과정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436) 네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한 의도, 말씀으로 이루려는 목적과 효과를 모르고, 사람에게서 무엇을 이루려는지, 무엇을 온전케 하려는지를 모른다면 이는 네가 아직 진리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말씀했는지, 왜 그런 어조로 말씀했는지, 구구절절 왜 그리도 간절한지, 왜 그런 단어를 사용했는지, 너는 알고 있느냐?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이는 네가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너는 하나님이 말씀한 배경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진리를 얻으려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 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 자신의 실제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으로 깨닫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진리를 아는 것이다. 너는 글귀만 조금 알고는 자신이 진리를 깨달았고 실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또한 “우리는 정직한 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왜 사람에게 정직한 자가 되라고 요구하는지, 왜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요구하는지는 모른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모두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진리를 갈망하고, 구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리를 선포한다. 글귀를 중시하고 공리공론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은 진리를 얻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를 우롱하는 자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보는 관점이 옳지 않으며, 목이 비뚤어진 사람이 시계를 보듯 관점이 바르지 않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연구만 한다. 하나님이 복을 얻는 것이나 종착지에 대해 한 말씀이 자신의 관념에 맞지 않으면 소극적이 되고 추구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진리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맞는 진리만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열정이 있고, 갖은 방법을 다하여 좋은 일을 하고,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는데, 그것은 모두 앞으로 좋은 종착지를 얻기 위해서다. 이런 사람은 교회 생활을 하고, 남을 따라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기도 하지만,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거나 진리를 얻기가 쉽지 않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형식적으로 먹고 마시고, 글귀를 조금 알고는 진리를 얻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어리석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지만,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다 보았다고 해도 꼭 진리를 깨닫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네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셨는데도 진리를 얻지 못했다면, 네가 얻은 것은 글귀와 도리이다. 너는 진리를 얻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있지만 너는 말씀을 다 보고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글귀와 도리만을 얻었을 뿐이다. 너는 우선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몹시 심오하다. 네가 여러 해 동안 체험하지 않는다면 어찌 하나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는 사람이 평생 체험하기에도 부족하다. 네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의 의도와 근원, 그리고 그것으로 얻으려는 효과와 이루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어찌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 말씀을 여러 차례 읽어 많은 글귀를 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조금의 변화도 없고 성장도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예전처럼 소원하다. 또 하나님에 대해 예전처럼 거리감이 있고 의구심을 가지며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밖에도 너는 여전히 하나님께 이유를 따지고 관념을 가지며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심지어는 모독할 수도 있다. 이것을 어찌 진리를 얻었다고 하겠느냐?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가 있어야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다> 중에서

437) 너희는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자신의 내적 상태와 결부시킬 수 있느냐? 너는 실생활에서 먼저 자신이 경험한 사람, 일, 사물이 어떤 진리와 관련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진리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과 결부시킬 수 있다. 너에게 임한 일이 어느 측면의 진리와 관련되는지도 모른 채 곧장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면, 그것은 비교적 맹목적인 행동에 속하며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우선 너에게 닥친 일들이 어떤 유형의 일인지, 어느 측면의 진리와 관련되는지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네 체험에 상응하는 진리를 찾은 다음에 그 상응하는 진리에서 자신이 실행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너는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는 것은 어떤 규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거나 어떤 공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공식 같은 것이 아니며, 규칙도 아니다. 진리는 죽은 것이 아니고, 생명이며, 살아 있는 것이다. 또한 피조물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칙이자, 사람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법칙이다. 너는 체험 과정에서 이러한 것을 많이 체득해야 한다. 너는 어느 정도까지 체험하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고 진리를 떠날 수 없다. 네가 알게 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현된 것이고, 진리와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자체가 바로 진리이다. 다만 진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이 나타내는 것을 진실되게 구현한 것일 뿐이다. 진리는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전부 구체화하고 명문화했으며,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하나님이 네게 무엇을 하게 하고 무엇을 하지 못하게 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증오하고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더욱 직설적으로 알려 준다. 하나님이 선포한 이런 진리의 이면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희로애락과 하나님의 본질을 보게 된다. 이러한 것이 바로 하나님 성품의 발현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체험을 통해서도 그 효과에 도달해야 한다. 사람이 실생활 밖에서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약간의 인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도리와 문자적 의미에 국한될 뿐, 진정한 하나님 자신과는 거리가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438) 진입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든 자세히 살피고,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해 그 일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뜻에 완전히 부합할 수 있는지 알면, 스스로의 뜻에서 나온 것들을 버릴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는지 알았다면 마땅히 그렇게 행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 매우 수월하고 쉬워진다. 진리가 있는 사람은 일을 할 때 다음과 같다. 사람들에게 정말로 네 성품 변화를 보여 줄 수 있고, 네가 확실히 선행을 갖추고 일 처리에 원칙이 있으며 모든 것이 적절하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진리를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확실히 사람의 모습이 있고 하나님 말씀이 정말 사람에게서 효과를 낸 것이다.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알게 되면 자신의 다양한 내적 상태를 전부 분별할 수 있고, 복잡한 일들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며, 자신이 어떻게 해야 적절한지 알게 된다. 그러나 진리를 알지 못하면 자신의 내적 상태를 분별할 수 없다. 너는 자신을 저버리려고 해도 어떻게 저버려야 할지, 또는 무엇을 저버려야 할지 알지 못하며, 자신의 뜻을 내려놓으려고 해도 너는 자신의 뜻이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느냐? 어쩌면 그것을 성령의 깨우침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어떻게 해도 내려놓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람에게 진리가 없을 때는 자신의 뜻에서 비롯된 사람의 불순물, 호의, 어리석은 사랑, 행위를 옳은 것으로 보고 진리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니 그것들을 어떻게 저버릴 수 있겠느냐? 네가 진리를 알지 못하면 진리 실행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 갈피를 잡지도 못한다. 그저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행동하니, 결과적으로 어떤 일들을 치우치고 그릇되게 행하게 된다. 어떤 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고 어떤 것은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어떤 것은 바로 사탄에게서 나온 교란이다.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일을 할 때 이렇다. 비틀비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올바르게 행했다가 그릇되게 행했다가 하며, 정확도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진리가 없으면 일을 판단하는 것도 엉터리가 된다. 그러니 어떻게 일을 잘할 수 있겠느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깨닫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은 진리 이해의 기초 위에 세워진다.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진리 또한 한계가 있기에 사람은 평생 하나님을 믿어도 말씀에 대한 인식이 한정적이다. 어느 정도 체험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 봤자 눈에 띄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고, 악행을 하지 않으며, 모두에게 해가 되는 일을 행하지 않는 데 그칠 뿐이다. 자신의 뜻이나 불순물을 전부 없애고 싶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에게는 정상적인 사유가 있고 사람의 생각 중 일부는 하나님 말씀에 부합하는, 한 측면의 깨달음에 속하므로 자신의 뜻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핵심은, 하나님 말씀과 진리, 성령의 깨우침에 위배되는, 자신의 뜻에서 비롯된 것들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진리를 알아야만 분별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439) 만약 너희가 하나님의 수많은 말씀을 보고도 그 말씀을 글귀상으로만 이해할 뿐, 실제 체험 속에서 경험하지 못한다면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없으며, 너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 아니라 죽은 글귀만 될 뿐이다. 네가 죽은 글귀만을 붙잡고 있다면, 너는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종잡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네가 실제 체험으로 경험한다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영적인 뜻이 너에게 활짝 열릴 것이다. 오직 체험으로만 수많은 진리의 영적인 뜻을 찾아낼 수 있고, 체험으로만 하나님 말씀의 비밀을 풀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아무리 명확하게 말씀하더라도 네게는 그저 공허한 글귀나 도리에 불과하며, 너의 종교 규례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의 작태가 아니겠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에게 실제가 되겠지만, 실행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는 셋째 하늘에서 온 전설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사실상,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은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과정이자, 하나님께 얻어지는 과정이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이해하고 체험하고 살아 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실제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믿어 영생을 얻을 생각만 하고 오히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것은 잔치에 가서 잔칫상에 어떤 맛난 음식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마음속에 담아 두기만 할 뿐, 직접 맛보지는 않는 것과 같다. 그러니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리를 깨달았다면 마땅히 실행해야 한다> 중에서

440) 너희가 가장 기본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서 성과를 거두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행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참된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너희는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면 하나님이 그 부족함을 메워 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수많은 진리를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 이는 핵심 중의 핵심이므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는 33년 반의 삶 속에서 온갖 모욕과 고통을 받았다. 그가 진리를 실행하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으며, 하나님의 마음만 헤아렸기 때문에 수많은 고초를 겪은 것이다. 그가 진리를 알기만 할 뿐 실행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고초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예수가 유대인의 교훈을 따르고 바리새인들을 따랐다면 고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너는 예수의 사례를 통해 사람에게 행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성과를 거두려면 사람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부분은 너희가 꼭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수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았다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겪었겠느냐?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면 슬퍼하며 기도를 했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마땅히 진리 실행을 위해 고난을 겪어야 하는데, 이 고난은 사람이 응당 받아야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리를 깨달았다면 마땅히 실행해야 한다> 중에서

441)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사람은 여러 가지 잘못된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진리를 실행하지 않을 때는 네 마음가짐이 옳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일에 부딪히면 네 내면의 여러 가지 잘못된 마음가짐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온전케 할 때,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내면에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을 가로막는 관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네가 자신의 마음가짐이 잘못됐음을 깨달았을 때, 네 관념이나 마음가짐에 따라 행하지 않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며 입장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은 육을 저버렸다는 것을 증명한다. 육을 저버리려 할 때 네 내면에서는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사탄은 사람에게 자기를 따르고 육의 관념대로 육적인 이익을 지키라고 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사람 안에서 빛을 비추고 깨우쳐 줄 것이다. 그때는 네가 하나님을 따를지, 아니면 사탄을 따를지를 봐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리를 실행하라 할 때는 주로 사람 내면의 것,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사람의 생각과 관념을 다스리려는 것이다. 성령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또한 깨우침과 빛 비춤을 준다. 그래서 모든 일의 이면에는 싸움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진리를 실행할 때마다, 하나님을 사랑하길 실천할 때마다 큰 싸움이 벌어진다. 사람의 육이 평온무사한 듯 보여도 사실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생사를 건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 차례 격렬한 싸움과 이런저런 고민 끝에 겨우 승패가 나뉘니 참으로 웃지도 울지도 못할 노릇이다. 사람의 내면에 잘못된 마음가짐이 많기 때문에, 혹은 하나님의 많은 사역이 사람의 고정 관념에 맞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때면 늘 이면에 큰 싸움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은 진리를 실행할 때 뒤에서 많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만, 결국에는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게 된다. 싸움이 있기에 사람은 고통받고 연단을 받는다. 이것이 진정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다. 싸움이 임했을 때, 네가 참으로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다면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 진리를 실행하면서 내적으로 고통받는 것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진리를 실행할 때 사람 내면의 것이 모두 옳다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필요가 없고, 싸움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도 고통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내면에 하나님이 쓰기에 부적합한 구석이 많이 있고, 육적인 패역 성품도 많기 때문에 육을 저버리는 공과를 더 깊이 배울 필요가 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한,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받게 된다는 그 ‘고통’과 관련되어 있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는 빨리 하나님께 기도해라. ‘하나님, 저는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길 원합니다. 온갖 고통을 끝까지 견뎌 당신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리길 원합니다. 아무리 큰 좌절을 겪어도 저는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릴 것입니다!’ 네가 이런 의지를 갖고 이렇게 기도한다면 굳게 설 수 있다. 진리를 실행할 때마다, 연단과 시련, 하나님의 사역이 임할 때마다 사람은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런 것들이 사람에게는 전부 검증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의 내면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실제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분주히 다니는 것 등도 얼마간 대가를 치르는 것이긴 하나 그것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사람의 본분이자 응당 이행해야 할 책임이다. 하지만 사람 내면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은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지 못한다면 외적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받든,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니든 모두 헛수고이다! 다시 말해, 내적 변화야말로 외적 고통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적 성품이 변화되고 진리를 실행했다면 외적으로 받은 고통 역시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이다. 하지만 내적 성품에 변화가 없다면 외적으로 받은 고통이 아무리 크고,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녔다 해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받은 고통에 하나님의 확증이 없다면 모두 허사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너의 대가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는 네게 변화가 있는지에 달렸고, 네가 진리를 실행하고 자신의 속셈과 관념을 저버려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충성했는지에 달렸다. 네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녔다 해도, 단 한 번도 자기 속셈을 저버린 적이 없고 외적인 행위와 외적인 열정만 추구하며 늘 생명을 중요시하지 않았다면, 그런 고통은 전부 허사가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442) 사람의 생각은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대가를 치르고 외적 행위가 아주 좋아 사람에게서 존경을 받고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외적 행위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한다고 확정할 수 있느냐? 왜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보면 흔히 그가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길을 가고,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있다고 여기느냐? 왜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진리의 실제가 있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등의 문제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종종 겉으로 보았을 때 영적이고 고상해 보이는 사람, 이미지가 괜찮은 사람에게 미혹된다. 사람들은 글귀 도리를 말하고,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그런 사람들의 일을 하는 본질과 원칙, 일을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또 그런 사람들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지는 살피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인성 본질을 전혀 분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탄복하고 우러러보다가 나중에는 그 사람들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는다. 게다가 일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숭상하는 우상,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가정과 직장을 내려놓고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사람, 참으로 좋은 결말과 좋은 종착지가 있을 사람,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존재하는 이런 ‘생각’은 어떤 원인으로 초래된 것이냐? 이 일의 본질은 무엇이냐? 이 일로 초래된 결과는 무엇이냐? 먼저 이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앞에서 언급한 사람의 관점과 실행법, 사람이 스스로 취한 실행 원칙, 그리고 사람들이 평소에 중시하는 것들은 본질적으로 모두 하나님의 요구와 무관하다. 사람이 중요시하는 것이 깊든 얕든, 글귀의 이치이든 실제이든,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람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했고,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했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사람이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 원칙을 찾아 실행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도리어 지름길로 가면서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있고 알고 있는 좋은 행위와 방법을 종합해 그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아 추구하고, 진리로 삼아 실행하고 있다. 이렇게 했을 때 직접적으로 초래되는 결과는 바로 사람이 인위적인 좋은 행위로 진리 실행을 대체하게 되고, 동시에 하나님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에게는 진리에 대항하는 밑천,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맞서는 밑천이 생기게 된다. 그와 동시에 사람은 서슴없이 하나님을 한쪽에 제쳐 놓고 자신의 마음속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놓는다. 사람에게 이런 미련한 행위와 우매한 사고방식, 혹은 단편적인 사고방식과 실행법이 생기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을 오늘 알려 주겠다. 그 원인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면서 날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있어도 사실상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한 데에 있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혐오하는지, 무엇을 얻으려고 하고 무엇을 버리려고 하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사람에게 요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를 안다면, 사람에게 자신만의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멋대로 다른 사람을 숭상할 수 있겠느냐? 또 일반 사람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을 수 있겠느냐? 만약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사람의 견해는 다소 이성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패괴된 사람을 함부로 자신의 우상으로 삼지 않을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는 길에서 제멋대로 몇 가지 간단한 규례나 원칙을 지키는 것을 진리 실행으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443) 너는 네 몸과 마음, 그리고 너의 모든 참된 사랑을 하나님께 바치고 내놓으며,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또한, 육적인 것이나 가정,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위해야 하며, 모든 것에 있어 하나님 말씀을 원칙과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올바른 마음가짐과 관점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에게 절대적인 사람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충성하는 사람을 기뻐하고, 그에게 딴마음을 품거나 거역하는 사람을 혐오한다. 또한, 하나님은 그를 믿으면서 늘 그를 누리려고만 하고 그를 위해 온전히 헌신하지 않는 사람을 혐오하며, 입으로만 그를 사랑한다 말하고 마음으로는 거역하는 사람을 혐오하고, 감언이설로 기만 행위를 하는 사람을 혐오한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헌신과 순종이 없는 사람은 대역무도한 사람이고, 천성적으로 몹시 교만한 사람이다. 특히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지 못하는 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교만한 사람이자, 천사장의 충실한 후계자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진심으로 순종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토대로 삼으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할 부분을 진심으로 찾는다. 이런 사람이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네가 행하는 것이 너의 생명에 유익하고,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써 내면에 필요한 것과 부족한 것을 채워 생명 성품이 변화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는 일이다. 또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그의 마음을 흡족게 하고 육을 만족시키지 않는다면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것이다. 더 실제적으로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은 너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실제 행동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것이다. 네가 이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면 진리를 얻게 될 것이다. 이는 실제에 진입하는 시작이다. 먼저 이 훈련을 해야 나중에 더 깊이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실제’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중에서

444) 실제에 진입하려면 모든 것을 실생활로 향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실생활에 진입해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실생활 속에서 정상 인성으로 살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은 실패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은 모두 실생활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이고, 하는 말은 인간성이 있어 보이나 귀신의 성품으로 사는 사람이며, 입술에만 진리가 있을 뿐 이론으로 사는 사람이다. 실생활 속에서 진리를 살아 내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께 혐오받고 버림받은 사람이다. 너는 실생활 속에서 진입하는 훈련을 하고, 자신의 부족함과 패역, 어리석음, 비정상적인 인성, 연약한 면 등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너의 실제 상태와 실제 어려움에 결부해야 한다. 그래야 너의 인식이 실제적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의 상태를 잘 파악할 수 있어 성품 변화까지 가져올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교회 생활과 실생활에 관하여> 중에서

445) 하나님이 훈련시키는 하나님나라의 정예병은 실제를 말하기만 하는 사람도 아니고, 큰소리만 치는 사람도 아니라 언제 어느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낼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좌절이 와도 굽히거나 쓰러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으며 세상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말씀한 실제이며,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말씀한 실제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령의 깨우침이 있다고 해서 실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분량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대한 것이다. 거기에는 사람이 이룬 성과가 없다. 누구나 베드로가 받은 고난을 받아야 하고, 더구나 베드로의 영광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역사를 얻어 살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실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를 말할 수 있다고 해서 실제가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것은 궤변이며,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말로, 실제적인 의의가 없다! 앞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말고 그런 말을 없애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릇되게 깨닫는 사람은 모두 ‘이방인’으로서, 실제적인 인식은 물론, 실제 분량도 없다. 그런 자는 식견과 실제가 없는 사람에 속한다. 즉, 하나님 말씀의 본질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이방인’에 속한다. 사람이 생각하는 이방인은 하나님께 짐승 취급을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이방인은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의 실제가 없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지 못하는 자는 모두 ‘이방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두가 실제를 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모두가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 내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리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실제가 있는 것이다> 중에서

446) 하나님은 실제의 하나님이며, 그의 모든 사역 역시 실제적이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진리는 실제적이다. 하나님 말씀 이외의 것은 모두 헛되고, 존재하지 않으며, 확고하지 못하다. 지금 성령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진입하도록 인도한다. 사람이 실제에 진입하려면 실제를 찾고 인식한 다음, 실제를 체험하고 살아 내야 한다. 실제에 대해 알면 알수록 다른 사람의 말이 실제적인지 더 잘 분별할 수 있으며, 사람의 관념은 줄어든다. 실제를 체험할수록 실제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더 쉽게 벗어날 수 있다. 또 실제를 갖출수록 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되며, 육을 더 증오하고 진리를 더 사랑하게 된다. 사람은 실제를 갖출수록 하나님이 요구한 기준에 가까워진다. 하나님께 얻어지는 사람은 바로 실제가 있는 사람이자 실제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며, 실제를 체험하여 하나님의 실제적인 행사에 대해 인식을 갖게 된 사람이다.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협력하며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킬수록 성령 역사를 더 얻게 되고, 실제를 더 갖추게 되며, 하나님의 깨우침을 더 얻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실제적인 행사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현재의 성령의 빛 속에서 살 수 있으면, 지금 실행해야 하는 길에 대해 더욱 명확히 알게 되고, 기존의 종교 관념과 낡은 관행을 더 잘 벗어 버릴 수 있다. 지금은 현실적인 것만 이야기하겠다. 사람은 실제가 있을수록 진리를 더 명확히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실제는 모든 글귀와 이치, 나아가 모든 이론과 지식을 압도한다. 실제를 중시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 진실하게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갈급해하는 법이다. 네가 언제나 실제를 중시한다면, 너의 처세술과 종교 관념, 그리고 타고난 개성은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를 추구하지 않고 실제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초자연적인 것을 추구하고 속임수에 넘어가기 쉽다. 성령은 그런 자에게 역사할 수 없으므로 사람은 이내 공허함을 느끼고, 삶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제’에 대해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447) 진리를 실행할수록 진리를 갖추게 되고, 진리를 실행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며, 진리를 실행할수록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 항상 이렇게 실행한다면 하나님은 네게 그의 사랑을 조금씩 보게 할 것이다. 베드로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께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지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실제 사역을 행하시는 지혜가 있나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하나이다. 더욱이 사람을 창조하고 구원하며 온전케 하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실 수 있어 사람이 사랑하나이다. 하나님께는 사람이 사랑할 만한 면이 아주 많나이다.” 베드로는 예수에게 “당신이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실 만한 것이 어찌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만이겠나이까? 당신께는 사랑스러운 면이 더 많이 있나이다. 실생활에서 일을 처리하시는 것, 행동하시는 것과 당신의 영이 제 안에서 감동시키고 저를 징계하고 책망하시는 이런 것들은 더욱 사랑할 가치가 있나이다.”라고 했다. 네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체험하려면, 실생활에서 모색하고 구해야 하며 기꺼이 육을 버리려는 이런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의지 있는 사람이 되어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나태하지 않고 육적인 즐거움을 탐하지 않으며, 육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번에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니, 다음번에는 힘을 좀 쓰더라도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지, 육을 충족시켜서는 안 된다. 이렇게 체험하는 과정에서 너는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할 수 있고, 성육신하여 사람들이 실제로 보고 실제로 접할 수 있게 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영은 실생활에서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그의 사랑스러운 면을 보게 하고, 그의 징계와 채찍질, 그리고 축복을 체험하게 한다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늘 이렇게 체험한다면 실생활에서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게 된다. 어느 날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이 된다면, 너는 가책을 받고 자신을 뉘우치게 될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다면 너는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 하나님이 너를 버린다고 말하면,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께 버림받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할 것이다. 이런 느낌이 있으면 너는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기초가 생긴 것이고,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것이다> 중에서

448) 실행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이 한두 마디 정도 개인의 느낌을 이야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도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얻은 빛 비춤일 뿐, 본인이 직접 실행한 부분이 없고, 본인이 체험해서 얻은 깨달음도 없다. 나는 일찍이 이러한 문제를 분석했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라.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네가 어찌 사탄에 대한 승리를 운운하겠느냐? 어찌 이겼다는 간증을 입에 담느냐? 어찌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 낸다고 하느냐? 전부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오늘날 하나님이 감상이나 하라고 너희에게 그렇게 많은 말씀을 했다고 생각하느냐? 입으로는 옛 자아를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하겠다고 하면서 손으로는 다른 일을 하고, 마음으로는 다른 타산을 하고 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어째서 마음과 손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냐? 그렇게 많이 교통해 줬는데도 공허한 글귀가 되었으니, 비통한 일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이는 네가 성령 역사의 방식에 진입하지 못했으며, 성령 역사와 성령의 인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했다고만 말하고 그것을 실행하지는 못한다면, 너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너 같은 사람을 구속하러 온 것이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극도의 고통을 받은 것은 죄인과 가난한 사람 그리고 비천한 사람을 구속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속죄 제물이 되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겠다면, 하나님 집에 눌러앉아 공짜 밥을 얻어먹지 말고 속히 나가라. 뚜렷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자제하기 어려워한다. 이는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러면서 무슨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운운하느냐? 무슨 낯짝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겠다는 것이냐? 하나님이 준 밥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수작을 부리니, 음험하고 악랄하며 몹시 간교하다. 설령 하나님이 네게 축복을 내릴지라도 그것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 때 부끄럽지 않겠느냐? 낯이 뜨겁지 않겠느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고 ‘홀로 딴 살림을 차리는’ 수작을 부리면서도 두렵지 않더냐? 이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앞날을 입에 올릴 수 있겠느냐? 네게 앞날은 진작부터 존재하지 않았거늘 무슨 더 큰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냐? 뻔뻔하기 그지없는 말을 하고도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마음에 어떤 느낌도 없다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니겠느냐?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네 본성이 되었는데, 그 상태로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겠느냐? 천하를 두루 누빌 수 있겠느냐? 누가 너에게 탄복하겠느냐? 네 진상을 아는 사람은 모두 너를 멀리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겠느냐? 결과적으로 말해, 말만 하고 실행을 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말할 때는 성령 역사가 있지만 실행하지 않을 때는 성령 역사가 없는 이런 상황을 반복하면서 어찌 앞날을 논할 것이며, 어찌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말하기만 했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바치지 않았다. 따라서 하나님이 너에게서 얻은 것은 말뿐인 마음이지 진리를 실행한 마음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이 너의 실제 분량이 될 수 있겠느냐? 이렇게 해서 언제 하나님께 온전케 되겠느냐? 네 앞날이 암담한데 초조하지 않으냐? 하나님이 네게 이미 실망했다고 느껴지지 않느냐? 너는 하나님이 더 많고 새로운 사람들을 온전케 하려 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낡아 빠진 것들이 굳게 설 수 있겠느냐?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중시하지 않으면서 내일을 기다리겠단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구원받는 사람은 기꺼이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다> 중에서

449)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그리 높지 않다. 사람이 조금만 노력하면 ‘합격’할 수 있다. 사실,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일이다. 먼저 진리를 실행한 후에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 성령 역사의 절차이자 방식인데, 네가 순종하지 않으면 되겠느냐? 너 스스로의 힘으로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성령이 너의 뜻에 따라 역사하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너의 부족한 부분에 맞춰 역사하겠느냐? 이것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면 전부 헛수고이다. 어째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데에 힘을 적잖게 들였는데도 인식만 있을 뿐 실제적인 길을 말하지 못하겠느냐? 너는 인식이 있으면 진리도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어리석은 견해가 아니냐? 네가 백사장의 모래만큼 많은 인식을 말할 수 있다 한들, 그 안에 실제적인 길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은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허세가 아니겠느냐? 전부 남을 해하는 수작에 불과하다! 이론이 고매할수록 실제가 없기에 사람을 실제 속으로 인도하지 못하며, 이론이 고매할수록 하나님을 더욱 거역하고 대적하게 된다. 고매한 이론을 보배처럼 여기지 말라. 그것은 화근일 뿐, 아무런 쓸모도 없다! 어떤 이가 최고의 이론을 말할 수 있을지라도 그 안에는 실제가 조금도 없을 수도 있다. 그 자신이 아직 체험하지 못했기에 실행의 길도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다른 이를 잘못된 길로 이끌 뿐, 정상 궤도로 인도할 수 없다. 그러니 이것이 사람을 해하는 일이 아니겠느냐? 너는 적어도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해 줌으로써 다른 사람이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네가 봉헌한다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일할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늘 비현실적인 큰소리만 치면서 합당하지 못한 수작으로 다른 이를 속박하여 네게 복종시키려 하지 말라.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점점 더 흐리멍덩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다 보면 수많은 규례가 생겨 사람들이 너를 증오하게 될 것이다. 이는 전부 사람의 부족한 면인데, 실로 골치 아픈 문제이다. 그러므로 현재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 많이 말하되, 타인의 체험을 ‘자신의 소유물’인 양 가져다 다른 사람에게 공급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실행해야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제를 좀 더 중시하여라> 중에서

450)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가장 큰 병폐는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실생활 속에 하나님이 전혀 없는 것이다. 사람은 분명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서 사람의 실생활 속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입으로는 하나님께 적잖게 기도하지만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는 매우 하찮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사람에게 시련을 준다. 이는 사람이 정결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사람에게 시련을 주는 것인데, 사람들이 시련 속에서 부끄러움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인식하게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모두 천사장의 후예가 되어 날이 갈수록 패괴될 것이다. 사람마다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끊임없는 정결 과정을 거쳐 개인의 많은 속셈과 목적을 제거하게 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어느 한 사람도 전혀 쓸 수 없으며, 하나님이 해야 할 사역을 사람에게 전혀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정결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스스로를 알게 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런 다음에야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의 내면에 만들어 지고,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일이 사람들이 말하듯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네가 그저 인식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으며, 자신의 인식에만 머물러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을 뜻하고, 네 마음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최종 목적이고 사람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너는 살아 내는 면에서 노력을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네가 그저 도리만 안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야말로 공허한 일일 뿐이다. 네가 여기서 더 나아가 실행하고 살아 내야만 완전한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많은 인식을 말할 수 있지만 죽을 때는 오히려 눈물을 글썽거리며 자신이 한평생 헛되이 살았다고, 부질없이 살았다고 한탄한다. 그저 도리만 알았을 뿐, 진리를 실행함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줄 몰랐고, 외적으로 동분서주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진실로 증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 왜 오늘의 기회에 자신이 좋아하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느냐? 왜 꼭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느냐? 생전에 진리를 위해 고통받으려 하지 않고 진리를 얻으려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설마 죽을 때 평생의 여한이라도 남기기 위해서란 말이냐?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사실 사람은 조금만 노력하면 수많은 일에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하나님을 흡족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줄곧 엉뚱한 데 마음이 쏠려 하나님을 위해 일하지는 않고, 언제나 육체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녀 결국에는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한다. 그리하여 고뇌와 어려움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의 괴롭힘이 아니겠느냐? 육체의 패괴가 아니겠느냐? 너는 그저 입만 놀리면서 불성실하게 하나님을 대하지 말고 뭔가 실제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를 농락하지 마라.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자신의 육체를 위해 살아가고, 명예와 이익을 다툰들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는다면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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