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 그리스도의 발표(선집)

목차

두 차례의 도성육신은 도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였다

하나님이 하는 각 단계 사역에는 다 실제적인 의의가 있다. 당시에 예수는 남성으로 왔고, 이번에는 여성으로 왔다. 여기에서 너는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고 여자를 만든 것은 모두 그의 사역을 위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은 와서 임의로 육신을 입을 수 있는데, 그 육신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다. 성별이 남자든 여자든 일단 말씀으로 된 그의 육신이기만 하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다. 가령 예수가 여성의 신분으로 나타났다면, 다시 말해, 당시에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 단계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면, 지금 이 단계의 사역은 남성으로 바꾸어 해야 하는데, 여전히 사역을 완성할 수 있다. 어느 단계에 한 것이든 다 의의가 있고, 두 단계 사역은 중복되지도 않고 모순되지도 않는다. 당시에 예수가 역사할 때, 독생자라고 칭했는데, ‘자(子)’라면 남성을 말한다. 이 단계에는 왜 독생자라고 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역의 필요에 따라 예수와 다른 성별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는 사역을 할 때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아주 자유롭게 한다. 하지만 어느 단계든 다 실제적인 의의가 있다. 하나님은 두 번 도성육신(역주: 성육신)하였는데, 말세가 마지막 한 번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사를 나타내려고 온 것이다. 가령 이 단계에서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역사하여 사람에게 직접 보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관념으로 영원히 하나님은 오직 남성이지 여성은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그전에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은 남성일 수밖에 없고, 여성은 하나님으로 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 남자를 여자의 권병(역주: 권세)으로 여겨 남자만이 권병을 담당해야지 여자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또한 남자를 여자의 머리라고 하면서 여자는 남자에게 순복해야지 남자를 넘어서면 안 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전에 남자를 여자의 머리라고 한 것은, 뱀에게 유혹된 아담과 하와를 놓고 말한 것이지, 여호와가 태초에 만든 남자와 여자를 놓고 말한 것이 아니다. 물론 여자로서는 반드시 자신의 남편에게 순복해야 하고 자신의 남편을 사랑해야 하며, 남편으로서는 반드시 식구를 먹여 살릴 줄 알아야 했다. 이것은 인류가 땅에서 생활할 때, 반드시 준수해야 할 여호와가 정해 준 율례와 법도이다. 여호와는 여자에게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였다. 이렇게 말씀한 것은 다만 인류(즉, 남자와 여자)가 여호와의 권세 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인류가 질서 정연하게 생활하며, 일상적인 규칙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남자와 여자가 각각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두 적당히 규정하였다. 이것은 땅에서 생활하는 모든 피조물에게 말씀한 것일 뿐, 하나님의 도성육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님이 어찌 피조물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가 말씀한 것은 단지 피조된 인류에게 한 것으로, 피조된 인류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남자와 여자에게 규정해 준 것이다. 여호와는 태초에 인류를 남성과 여성, 두 부류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의 도성육신도 남성과 여성에 따라 구분하였다. 그는 결코 아담과 하와에게 한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사역을 정한 것이 아니다. 그가 두 차례 도성육신한 것은 완전히 태초에 그가 인류를 만들 때의 생각에 근거해 정한 것이다. 바로 패괴되지 않은 남성과 여성을 근거로 그의 두 차례 도성육신의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약 여호와가 당시에 ‘뱀에게 유혹된 하와와 아담’에게 한 말씀을 하나님이 도성육신한 사역에 적용한다면 예수도 당연히 ‘연모해야 할 아내를 연모’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여전히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다면 그가 자신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여성으로 도성육신한 것이 착오라면 하나님이 여자를 만든 것도 크나큰 착오가 아닌가? 하나님이 여성으로 도성육신한 것을 사람이 여전히 착오라고 여긴다면, 예수는 아내를 얻지도 않았고 자기 아내를 연모하는 일도 없었는데, 사람의 말대로라면, 예수와 오늘의 도성육신은 마찬가지로 착오가 아닌가? 네가 여호와가 하와에게 한 말씀으로 오늘 하나님이 도성육신한 이 사실을 판단한 이상, 너는 여호와가 아담에게 한 말씀으로 은혜시대에 도성육신한 주 예수를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모두 같은 일이 아닌가? 네가 주 예수를 뱀에게 유혹되지 않은 남성으로 판단한 이상, 오늘 도성육신한 이 사실을 뱀에게 유혹된 여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불공정한 것이다! 네가 이렇게 판단한다면, 너에게 이지(理智)가 없음을 증명한다. 여호와가 두 차례 말씀으로 된 육신의 성별은 뱀에게 유혹되지 않은 남성과 여성에 연결되는 것이고, 뱀에게 유혹되지 않은 남성과 여성에 따라 두 차례로 도성육신한 것이다. 너는 예수의 남성을 뱀에게 유혹된 후의 아담의 남성으로 여기지 말라. 예수와 아담은 성질이 다른 두 남성으로, 전혀 관련이 없다. 설마 예수가 남성이라고 하여 모든 여자의 머리이고 모든 남자의 머리는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는 (남자와 여자를 포함한) 모든 유대인의 왕이 아닌가? 그는 하나님 자신이고, 여자의 머리일 뿐만 아니라 남자의 머리이기도 하며, 모든 피조물의 주님이자 모든 피조물의 머리인데, 네가 어찌 예수의 남성을 여자의 머리의 상징이라고만 정하겠는가? 이것은 모독이 아닌가? 예수는 패괴되지 않은 남성이다. 그는 하나님이고 그리스도이고 주인데, 그가 어찌 패괴된 후의 아담의 남성일 수 있겠는가? 예수는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인데, 네가 어찌 그를 아담의 남성을 갖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하나님의 사역이 다 잘못된 것이 아닌가? 여호와가 유혹된 아담의 남성을 예수 안에 더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의 도성육신은 예수와 다른 성별이면서도 성질이 같은 도성육신의 다른 한 차례 역사가 아닌가? 네가 또 여자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았기에 하나님 도성육신은 여성일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네가 또 여자는 가장 더러운 존재이고, 인류가 패괴된 기원이어서 하나님 도성육신은 여성으로 될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네가 또 감히 “여자는 영원히 남자에게 순복해야 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창현(彰顯)할 수 없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네가 이전에는 깨닫지 못하였지만 지금에 와서까지 하나님의 사역을, 특히 하나님의 도성육신을 모독할 수 있겠는가? 네가 꿰뚫어 보지 못하였다면,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다. 너의 무지몽매함이 드러나지 않고 너의 그 추한 몰골이 드러나지 않도록 말이다. 너는 네가 뭐든 다 안다고 여기지 말라. 내가 너에게 알려 주겠다. 지금 네가 본 것과 경력(역주: 체험)한 것은 아직 내 경영 계획의 천분의 일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네가 거만할 것이 뭐가 있는가? 너에게 조금밖에 없는 그 재능과 인식은 너무나 부족하여 예수의 역사에 1초도 이용할 수 없다! 너의 경력이 고작 얼마나 되는가? 네가 본 것에다 네가 평생 들은 것과 너 자신의 상상을 합쳐도 내가 잠깐 동안 한 사역보다 적다! 그러므로 너는 트집 잡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네가 아무리 교만할지라도 개미보다 못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네 뱃속에 있는 모든 것이 개미 뱃속에 든 것보다도 많지 않다! 너는 자신에게 경력이 많고 관록이 있다고 하여 손을 휘두르며 큰소리칠 수 있다고 여기지 말라. 너에게 경력이 많고 관록이 있게 된 것은 내가 한 말 때문이 아닌가? 너는 너 자신이 부지런히 일해 바꿔 온 것이라고 여기는가? 오늘 내가 도성육신하여 너에게 보여 주었기에 그렇게 많은 풍부한 구상이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 관념이 가득하게 된 것이다. 만일 내가 도성육신하지 않았다면, 너의 재능이 출중할지라도 그렇게 많은 구상이 없었을 것이다. 너의 관념은 바로 여기에서 온 것이 아닌가? 예수가 처음 도성육신하지 않았다면, 네가 도성육신에 대한 일을 알기나 하겠는가? 너에게 첫 번째 도성육신을 알게 해 주었더니, 감히 방자하게 두 번째 도성육신을 가늠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순복하고 따르는 사람이 되지 않고 또 무엇을 연구하는가? 네가 이 흐름에 들어와 도성육신한 하나님 앞에 왔는데, 너로 연구하게 하겠는가? 네가 너의 가족사를 연구하는 것은 괜찮지만 하나님의 ‘가족사’를 연구한다면, 오늘의 하나님이 너로 그렇게 연구하게 하겠는가? 너는 눈먼 것이 아닌가? 너는 스스로 수치를 자초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예수의 그 단계 사역만 하고 말세에 이 단계를 보충하여 완전하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관념으로 영원히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의 독생자이고, 즉 하나님은 아들이 하나뿐이기에 나중에 또 다른 이름으로 오면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 자신도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사람은 관념으로 무릇 속죄제가 되는 분이라면 하나님의 독생자이고, 무릇 하나님을 위해 정권을 담당하는 분, 온 인류를 구속하는 분이라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남성으로 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즉,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여긴다. 심지어 또 어떤 사람은 예수를 여호와의 아들, 그의 독생자라고 한다. 이것은 사람의 크나큰 관념이 아닌가? 마지막 시대에 이 단계 사역을 하러 오지 않는다면 온 인류는 하나님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남자는 스스로 여자보다 높다고 여기고, 여자는 영원히 머리도 들지 못하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여성은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남자라고 여기고, 또한 하나님이 항상 여자를 혐오하기에 여자를 구원하지도 않는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여호와가 만든, 또 마찬가지로 패괴된 모든 여자는 영원히 구원받을 기회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면 여호와가 여자, 즉 하와를 만든 것도 역시 의의 없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그럼 여자는 영원히 멸망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말세의 이 단계 사역은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여자만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전 인류를 위한 사역이지 여자만 위한 것이 아니다. 만일 사람이 이렇게 여긴다면 더욱 어리석은 것이다!

지금 하는 사역은 은혜시대의 사역이 앞으로 나아온 것이고, 또한 전체 6천년 경영 계획 사역이 앞으로 발전한 것이다. 비록 은혜시대는 끝났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더욱 앞으로 나아가고 심화되었다. 왜 이 단계 사역을 은혜시대와 율법시대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하겠는가? 말하자면, 오늘의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의 계속이자 또한 율법시대 사역보다 높아진 것이다. 3단계 사역은 모두 밀접히 연결되어 고리에 고리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왜 또 이 단계 사역을 예수의 그 단계 사역의 기초에서 한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예수의 그 단계 역사의 기초에서가 아니라면 이 단계에 또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고, 또 앞 단계의 구속 사역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의의가 없다. 그러므로 사역이 철저히 끝난 것이 아니라 시대가 앞으로 나아간 것이고, 이전의 사역보다 더 높아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단계 사역은 율법시대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자 또한 예수가 한 사역의 반석 위에 세워진 것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세워진 것이지 이 단계 사역이 따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3단계 사역을 종합해야 비로소 6천년 경영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다. 이 두 단계 사역이 관계가 없다면, 이 단계에 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가? 왜 사람의 죄를 담당하지 않는가? 성령으로 잉태되지도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죄를 담당하지도 않고 직접 사람을 형벌하는데, 만일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사람을 형벌하는 사역을 하거나 또 현재에 와서 성령으로 잉태되지도 않는다면 사람을 형벌할 자격이 없겠지만, 나는 예수와 하나이기 때문에 직접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이 단계 사역은 모두 이전 단계 사역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역이어야 사람을 조금씩 구원할 수 있다. 예수와 나는 하나의 영에서 왔다. 비록 육신은 관계가 없지만 영은 하나이다. 역사한 내용이 다르고 담당한 사역도 다르지만 실질은 같다. 육신이 취한 형상이 다른 것은 시대가 같지 않음으로 인해, 사역의 필요로 인해 다른 것이다. 직분이 다르므로 가져온 사역도 다르고 사람에게 나타낸 성품도 다르다. 그러므로 사람이 오늘 본 것과 터득한 것은 이전과 다른데, 이것은 모두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있게 된 것이다. 비록 그들 육신의 성별은 전혀 다르고 형상도 다르며, 같은 가문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더욱이 동일한 시기에 태어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영은 하나이다. 비록 그들의 육신은 어떤 혈통 관계나 육체 관계도 없지만, 이런 것으로는 결코 그들이 서로 다른 두 시기의 하나님의 도성육신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이 도성육신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들은 전혀 같은 혈통이 아니고 인류의 공통된 언어도 없다(하나는 유대어를 하는 남성이고, 하나는 중국어만 하는 여성이다). 이런 것으로 인해 그들은 서로 다른 국가에 분포되어 서로 다른 시기에 각자가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은 하나의 영, 즉 같은 실질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들 육신의 외형은 비슷한 데가 전혀 없으며, 단지 같은 인성이 있을 뿐, 육신의 생김새나 출생은 전혀 다르다. 이런 것은 각자의 사역에 결코 영향을 주지 않고, 사람이 그들을 인식하는 데에도 결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쨌든 하나의 영이기에 누구도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혈연관계는 없지만, 그들의 영이 그들의 온 몸과 마음을 지배하여 서로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사역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게다가 그들의 육신도 결코 같은 혈통이 아니다. 여호와의 영이 예수의 영의 아버지가 아니듯이, 또한 예수의 영이 전혀 여호와의 영의 아들이 아니듯이, 그들은 하나의 영이다. 마치 오늘날 도성육신한 하나님과 예수가 혈통은 서로 연결되지 않았으나 그들은 본래 하나인 것과 같다. 이것은 바로 그들의 영이 원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긍휼, 자비의 사역과 공의로운 심판의 사역도 하고, 사람을 형벌하는 사역과 저주하는 사역도 하며, 최종에는 또 세상을 멸하고 악인을 징벌하는 사역도 한다. 이것은 모두 그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이 아닌가? 그는 사람에게 율법을 반포할 뿐만 아니라 계명을 반포하였고, 또한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을 인도하여 땅에서 생활하게 하고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게 하였으며,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다 그의 권세 아래에 장악하였다.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그는 이스라엘 사람과 땅에서 2천년 동안 생활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감히 거역하지 못하였으며,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였고 계명을 준수하였다. 그것은 모두 그의 권병과 그의 전능으로 인해 한 사역이다. 은혜시대에 이르러 예수가 와서는 (단지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닌) 타락된 전 인류를 구속하였다. 그가 사람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었으므로 사람들이 본 은혜시대의 예수는 자비가 충만하였고 항상 사람을 사랑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와서 사람을 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었는데, 십자가에 올라 인류를 죄에서 철저히 구속하기까지였다. 그 시기에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었다. 즉, 속죄제가 되어 사람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죄를 영원히 용서해 준 것이다. 그에게는 긍휼과 자비가 있었고, 또한 인내와 사랑도 있었다. 무릇 예수를 따랐던 은혜시대의 사람은 모두 매사에서 인내하고 사랑이 있었고, 그저 고난을 받았으며, 다른 사람이 때리고 욕하고 돌로 쳐도 반항하지 않았다. 마지막의 이 단계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마치 예수와 여호와의 영은 비록 하나이지만 하는 사역이 똑같지 않은 것과 같다. 여호와의 역사는 시대를 끝마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이끄는 것이고 인류가 땅에서 사는 삶을 전개하는 것이지만, 오늘날은 이방 중에서 깊이 패괴된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다. 또한 지금은 중국 족속만 이끄는 것이 아니라 전 우주를 이끄는 것이다. 네가 보기엔 지금 중국에서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국외에서도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왜 외국 사람들이 계속 참 도를 찾는가? 그것은 영이 역사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지금 말씀하는 것은 전 우주의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공사의 절반을 진행한 것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영은 이처럼 큰 공사를 하였는데, 각기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사역을 하였으며, 또한 서로 다른 국가에서 역사하였다. 각 시대마다 사람은 그의 서로 다른 성품을 보게 되는데, 물론 이것은 모두 그가 한 서로 다른 사역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하나님이며, 사람의 속죄제이고 사람의 목자이다. 하지만 그는 또 사람에게 심판이고, 형벌이고, 저주이다. 그는 사람을 땅에서 2천년 동안 생활하도록 인도하였고, 또 패괴된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내었다. 오늘에 와서 그는 다시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 인류를 그의 권세 아래로 정복하여 모두 그에게 완전히 순복하게 한다. 최종에 전 우주의 사람 안에 있는 부정한 것들과 불의한 것들을 다 남김없이 불살라 사람에게 그는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고, 지혜롭고 기묘한 하나님이며, 또 거룩한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사람을 심판하는 하나님임을 보게 한다. 그는 전 인류의 악한 자에게는 불사름, 심판, 징벌이고, 온전케 되는 사람에게는 환난, 연단, 시련, 그리고 위안, 부축, 말씀 공급, 훈계, 책망이며, 도태되는 사람에게는 징벌이자 보응이다. 네가 말해 봐라, 하나님은 전능하지 않은가? 그는 어떤 사역이든 다 할 수 있다. 너의 상상대로 그가 단지 십자가에 못 박힐 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하나님을 너무나 낮게 보았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온 인류를 구속하기만 하면 일이 끝난 것인가? 그러면 네가 그를 따라 천당에 가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생명수를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그렇게 간단하겠는가? 말해 봐라, 네가 한 게 무엇이 있는가? 너에게 예수의 생명이 있는가? 너는 확실히 그에게 구속되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일은 예수 자신이 한 사역이다. 너는 사람으로서 어떤 책임을 다하였는가? 네가 오직 겉면의 경건만 있고 오히려 그의 도를 깨닫지 못했다면, 그를 창현하는 것이겠는가? 네가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하고 그의 공의로운 성품의 전부를 보지 못했다면, 너는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 불릴 수 없고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영일 뿐만 아니라 육신이 될 수도 있고, 또한 영광의 몸이기도 하다. 비록 너희는 예수를 보지 못하였지만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 즉 유대인은 보았다. 그가 처음에는 육신이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는 영광의 몸이 되었다. 그는 만유를 포함한 영이므로 곳곳에서 역사한다. 그는 여호와일 수도 있고, 예수일 수도 있고, 또 메시아일 수도 있으며, 최종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될 수도 있다. 그는 공의, 심판, 형벌이고, 저주, 진노이며, 또한 긍휼, 자비이다. 무릇 그가 한 사역이면 그를 대표할 수 있다. 네가 말해 봐라, 오늘날,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가? 너는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너는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지, 저도 명확하게 말할 수 없어요.”라고 할 수밖에 없다. 너는 하나님이 구속 사역을 하였다고 하여 하나님을 영원히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규정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을 단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감히 단정할 수 있는가? 그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면 왜 말세에 또 시대를 끝마치려고 하겠는가? 왜 또 그렇게 많은 재앙을 내리려고 하겠는가? 너의 생각대로, 그가 사람을 끝까지, 또 마지막 시대까지 긍휼히 여기고 사랑한다면, 왜 또 하늘로부터 재앙을 내리려고 하겠는가? 그가 사람을 자기 몸같이, 또 자신의 독생자같이 사랑한다면, 왜 하늘로부터 온역을 내리고 우박을 내리려고 하겠는가? 왜 사람에게 기근과 온역이 닥치게 하는가? 왜 이런 재난과 화가 닥치게 하겠는가?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지, 너희는 누구도 감히 말하지 못하고, 또한 누구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너는 그가 확실히 영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너는 그가 바로 예수의 육신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너는 그가 바로 영원히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하나님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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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직역하면 “어두운 그림자를 한층 드리우게 된다”.

③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