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병을 통해 얻게 된 복
2014년에 공산당이 맥도날드 살인 사건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모함하고 형제자매를 마구 잡아들였죠. 우리 동네서도 많은 리더가 잡혀갔고 어떤 새 신자들은 두려워 소극적이 됐었죠. 그런 상황에서 제가 여러 지교회 사역을 맡게 된 거예요. 그래도 위난 중에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됐으니 하나님을/ 실망케 해 드릴 순 없었죠. 그래서 잡혀갈 위험을 무릅쓰고 본분에 투입했어요. 이렇게 위험한 시국에 교회 사역을 지키는 건 하나님께 인정받는 거니 분명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에 갈 거라 믿었죠. 근데 하필 그 시점에 갑자기 병에 걸린 거예요.
그게 2014년 10월이었어요. 저녁을 먹고 있는데, 들고 있던 밥그릇이 떨어지길래 조심하지 않아 그런 줄 알고 다시 그릇을 들고 휴지로 손을 닦으려고 했어요. 근데 휴지를 못 잡겠는 거예요. 손이 말을 안 들었죠. 좀 있으니 양쪽 손발이 다 감각이 없어지고 의자에서 아예 움직이질 못했어요. 식구들이 바로 혈압을 쟀는데, 200이 넘었어요. 약을 먹었는데도 소용없었죠. 순간 멍해졌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혹시 큰 병에 걸린 건 아닐까?’ 그래도 그동안 (호흡) 하나님께 헌신하면서 열심히 본분을 했으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큰 병은 피할 줄 알았어요. 병에 걸려도 하나님이 고쳐 주실 거라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그렇게 긴장되진 않더라고요. 다음 날 깨어났을 때 손과 발을 조금씩 움직여 봤는데, 다행히 오른쪽 손발은 돌아왔더라고요. 근데 왼쪽 손발은 아직 저리고 감각이 좀 없었죠. 그러니 너무 걱정되더라고요. 왜 아직도 이런지, 반신불수가 되는 건 아닌지 이렇게 되면 본분도 못 하게 될 텐데, 그럼 전 도태될 것 같은 게 구원받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았죠. 그러다 생각을 바꿨어요. 전날 엄청 심했는데, 밤새 절반은 나았으니 이것도 축복이라고요. 하나님이 고쳐 주신다면, 이 정도는 일도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보호하시니 걱정 안 하기로 했죠.
그날 오전에 갔어요. CT를 찍고 의사가 심각하게 말하더라고요. 오른쪽 뇌출혈인데, 출혈량이 소량이긴 하지만, 출혈 부위가 조금만 더 위로 갔으면 거긴 언어중추라 말도 못 하고 식물인간이 됐을 거래요. 어젯밤에 발병해서 지금까지 버티다니 기적이라며 바로 입원 수속하라고 했죠. 그리고 일단은 수액 맞고 지켜보는데, 뇌의 혈전을 녹이지 못하면 수술해야 한다고 했어요. (호흡) 뇌출혈이란 말에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고요. 그런 병에 걸렸다는 게 정말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거든요. 아직 50도 안 됐는데, 치료가 안 돼서 반신불수나 마비라도 와서 눕게 되면 사는 게 더 고통이잖아요. 게다가 뇌수술은 위험도 커서 자칫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럼 구원받아 천국 갈 수 있을지... 제가 그동안 하나님께 헌신했는데, 왜 이런 중병에 걸린 건지... 하나님은 왜 안 지켜주시는지... 생각할수록 괴로워 점심도 안 먹었죠. 입원하고 닷새 정도 되던 날 옆에 있던 어르신이 상태가 심해져서 병원을 옮겼어요. 그걸 보고 나서 더 걱정이 되는 거예요. 입원할 때 같이 들어왔는데, 걸어서 왔던 사람이 이제는 들려나가는 걸 보고 저도 생사를 장담 못 하겠단 생각이 들었죠. 더 나빠지진 않을까 걱정도 더 들었고요.
입원한 지 일주일 되는데도 왼쪽 다리는 아무런 감각도 없으니 하나님이 왜 나 몰라라 하실까 생각했죠. 중요한 시기에 아무런 본분도 하지 못하니 구원받을 기회가 없어질 것 같았어요. 그러니 저는 완전히 실의에 빠졌고 하염없이 눈물만 났어요. 지난 9년간 계속 헌신한 게 떠오르고 이런 생각이 들었죠. '교회에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든 내가 먼저 짊어지고 잡혀갈 위험한 상황에도 본분을 안 버리고 굳게 지키기도 했어 또 리더를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보다 고난도 많이 받고 신경도 많이 썼으니 나처럼 노력하고 추구한 사람은 축복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이런 병에 걸리게 되는 건지… 하나님은 왜 나 몰라라 하실까? 이걸 못 고치면 본분도 못 하는데, 구원받을 순 있을지… 구원을 못 받으면 그동안 다 버리고 헌신한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랬으면 그렇게 안 했을 텐데.’ 생각할수록 너무 괴롭고 말씀도 보기 싫고 기도도 하기 싫었어요. 속에 짜증만 가득했죠. 저도 모르게 바늘 꽂은 손을 베고 있었더니 바늘이 움직여 손이 다 부었죠. 그걸 보고 마음이 쓰라리더라고요. 형제자매들은 즐겁게 복음 전하며 본분하고 있는데, 저는 병원에 누워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으니 폐물 같은 거예요. 한창 하나님 나라 복음이 확장되는 때에 형제자매들은 선행을 예비하고 있는데, 저는 도태된 것 같았죠. 그러니 구원 대상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날은 밤새 뒤척이며 잠을 자지 못했어요.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우니 하나님께 와서 울면서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하나님, 너무 괴롭습니다. 이 병도 당신의 허락이 있으니 오해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뜻을 알고 주재에 순종할 수 있게 저를 이끌어 주세요.”
그러다가 한 자매가 PMP 플레이어를 가져다줬어요. 전 다른 사람들이 다 잘 때 이어폰을 끼고 말씀을 들었죠. 그때 들었던 말씀이 너무 도움이 됐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연단은 모든 사람에게 상당히 고통스럽고 상당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자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여 주고, 연단 속에서 자신의 요구를 공개하는 한편,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깨우침을 주고, 더 많이 실질적으로 책망하며 훈계한다. 이렇게 사실과 진리를 대조함으로써 사람이 자신을 더 잘 알고,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게 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을 더 참되고 순수하게 사랑하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연단의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미가 있다. 그는 무의미한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그의 앞에서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을 멸하여 지옥에 보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사람에게 연단은 실제적인 검증이자 실제적인 훈련이다. 오직 연단 속에서만이 사람의 사랑이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에서) 이 말씀을 통해 깨달았어요. 하나님이 연단을 주시는 건 도태시키려는 게 아니라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시려는 거죠. 근데 전 하나님 뜻도 구하지 않고 하나님 사역도 몰라서 병에 걸리게 되니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어요. 너무 어리석었어요. 그래서 다시 기도했죠. 순종하는 자세로 임하고 말씀을 보면서 반성하고 공과를 배우겠다고요.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슬픈 일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 속에서 자기 경영을 하면서 하나님의 경영을 등한시하는 것이고, 가장 크게 실패한 일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꿈꾸는 종착지를 구상하고, 가장 큰 복과 좋은 종착지를 얻을 방법을 계산하는 것이다. 설령 모두가 비참하고 가증스럽고 가련한 자신의 모습을 알았다 해도, 자신의 꿈과 소망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고 더는 자신을 위해 계산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그의 경영을 완성하는 데 긴밀하게 협력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몸과 마음을 쏟아붓는 사람이다. 날마다 두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고, 하나님께 조금 헌신하고 빚 독촉하는 자는 더더욱 필요하지 않다. 조금 바치고는 그것으로 유세 떠는 자를 하나님은 증오하고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늘의 복에만 관심 있는 냉혈 인간을 증오한다.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기회를 틈타 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은 더더욱 증오한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이 경영 사역을 통해 이루려는 것과 얻으려는 것에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사역하는 틈을 타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채 자기 앞날과 운명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반감을 품으며, 하나님의 인류 구원 방식과 하나님의 뜻에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 사역 밖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기억하지도, 칭찬하지도 않으며, 더욱이 좋아하지도 않는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3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바로 저를 놓고 하신 말씀이었어요. 갓 믿었을 때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 헌신하고 잘만 추구하면 하나님 나라에 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비 오나 눈 오나 열심히 본분했었죠. 형제자매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서둘러 붙들어 줬고 잡혀갈 위험도 무릅쓰고 본분을 계속 한 거고요. 그렇게 헌신하면 하나님이 분명 지켜주시고 축복하실 거고 천국에 자리가 있을 줄 알았죠. 근데 병이 생겨 반신불수도 될 수 있다니까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신 것 같고 전망도 없어진 것 같아서 불만으로 가득 찼고, 그동안 했던 걸 꺼내서 공로를 따지고 지난날의 헌신을 들먹이면서 하나님과 따지고 대항하고 맞서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반항했던 거예요. 제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죠. “하나님께 조금 헌신하고 빚 독촉하는 자, 조금 바치고는 그것으로 유세 떠는 자”요. 병이 생기니 그동안 저의 헌신 속에 숨겨 뒀던 복을 바라면서 거래했던 속셈이 다 드러난 거예요. 제 목적은 진리를 추구해 패괴를 벗으려는 게 아니라 표면적인 헌신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얻고 천국의 복을 얻으려 한 거죠. 하나님과 거래한 거고 하나님을 이용하고 속인 거예요. 저 같은 투기자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겠어요? 병이 생기지 않았다면 저도 표면적인 헌신에 완전히 속아서 복을 바라는 비열한 속셈과 불순물을 알지 못했을 거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줄도 몰랐을 거예요.
그 후에 왜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하는지 반성해 봤어요. 그러다 이런 말씀을 보게 됐어요. 『패괴된 인류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라는 말은 사람의 본성을 요약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다 버리고 헌신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도 자신을 위해서이다. 결론적으로 전부 복을 받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서도 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고, 하나님을 믿는 것도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복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많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사람의 패괴 본성을 입증하는 증거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외적인 변화와 성품 변화의 차이> 중에서)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거래하게 된 근원을 찾게 됐어요.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손해 보지 말라.” 이런 사탄의 사상이 제 안에 뿌리내려서 제 생존법칙으로 자리 잡은 거였죠. 그래서 항상 제 이익이 먼저였고 뭘 하면 대가를 바라고 심지어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도 거래를 했던 거예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복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게 여겼죠. 그러니 제가 그렇게 헌신했는데 뇌출혈에 걸리고 죽을지도 모르고 구원받을 가망이나 좋은 종착지가 없을 것 같으니 바로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원망했고 자기 공로를 내세우며 하나님과 따졌던 거예요. 이렇게 사탄 독소에 따라 사니 사람의 모습이 없는 거죠. 회개하지 않으면 도태돼 벌을 받을 수밖에 없죠.
그 후에 또 말씀을 통해서 저의 잘못된 추구 관점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사람이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기여도를 따지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할 때는 사람의 본성을 기준으로 한다. 바울은 생명을 추구한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본질을 알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결코 겸손히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신의 본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세부적으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면과 연약한 면, 피조물의 패괴 성품에 대해 모두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성품의 변화를 위한 실행의 길도 있었다. 그는 이론만 있고 실제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변화한 사람은 구원받은 새사람이자 합당한 자격을 가진,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변화하지 않는 사람은 천연적인 모습 그대로인 옛 사람이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자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이다. 그가 아무리 큰 사역을 했다고 해도 하나님께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너 자신의 추구와 비교해 보면, 네가 베드로 같은 사람인지 바울 같은 사람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너 자신의 추구와 비교해 보면 네가 베드로 같은 사람인지 바울 같은 사람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네가 추구하는 것이 진리이고 실행하는 것이 진리이며 얻은 것이 성품의 변화라면, 너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네가 추구하는 것이 육적인 복이고, 실행하는 것이 자신의 관념 속 진리이며, 성품에 어떤 변화도 없고 육신의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 않은 채 여전히 막연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면, 네가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너를 지옥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것은 네가 실패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온전케 될지, 도태될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이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이 너무 밝아졌어요. 하나님은 표면적인 헌신을 보시는 게 아니라 일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와 관점, 입장을 보시고 진리 실행과 순종을 보세요. 근데 전 작은 헌신만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거고 좋은 종착지를 주실 줄 알았죠. 그건 말씀과 완전히 안 맞아요. 은혜시대의 바울도 유럽의 반을 돌면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고난 많이 받고, 일도 많이 하고, 교회도 많이 세웠지만 그렇게 했던 수고는 다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본분을 다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자기가 받을 복과 상을 위한 거였어요. 그래서 열심히 달리며 헌신하고 사역한 후에 그런 말을 했죠.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요. (딤후 4:7~8) 바울은 대놓고 하나님께 면류관을 요구했어요. 바울의 헌신은 하나님에 대한 진심과 순종이 아니었죠. 결국 천국에도 못 가고 그저 벌만 받았잖아요. 저도 하나님 말씀의 진리와 원칙에 근거하지 않고 사탄의 논리와 거래하는 관점으로 하나님의 일을 가늠했으니 그게 얼마나 그릇됐어요. 하나님이 그러셨죠. 『네가 추구하는 것이 진리이고 실행하는 것이 진리이며 얻은 것이 성품의 변화라면, 너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그때 알았어요. 본분하는 과정에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을 알아 가면서 잘못된 관점과 패괴 성품을 뿌리뽑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는 게 진짜 구원받는 길이더라고요. 이걸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제 병이 어떻게 되든 순종하겠다고요. 살아서 퇴원한다면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며 본분하겠다고요.
입원하고 12일 후에, 퇴원을 신청했어요. 의사가 검사를 해 보더니 출혈은 없는데, 아직 어혈이 다 풀리지 않았다고 했죠. 그래도 12일 만에 이 정도면 정말 양호하다고 했어요. 그 결과를 듣고 감사했어요. 하나님이 지켜 주신 거죠. 의사는 퇴원하면 절대 무리하지 말고 푹 쉬랬어요. 또 뇌혈관이 약하니 넘어지면 안 되고 괜히 재출혈하게 되면 큰일 난다고 했어요. 근데 그날 밤에 연락을 받았어요. 동역자 장 자매가 나흘 전에 나갔는데,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걸 봐선 잡혀간 것 같다는 거예요. 속이 다 타들어갔죠. 그럼 자매가 들렸던 예배소랑 제물을 보관하는 집들이 위험해지니까 빨리 조치를 취할 수 있게 알려야 했거든요. 근데 이제 막 퇴원한 상황에 그렇게 넓은 지역을 다니기가 겁이 나더라고요. 왜 하필이면 정말 이럴 때 이런 사고가 생기는 건가 싶고, 만일 또 출혈하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은 거예요. 게다가 제가 다니면서 알리는 것도 위험해 보였죠. 제가 잡혀가면 이 몸으로 어떻게 고문을 견디겠어요? 그냥 죽을 게 뻔한 거죠. 근데 형제자매들의 집은 저랑 장자매만 아니 제가 알리지 않아 형제자매들이 잡히거나 제물을 경찰에 뺏기면 손실이 막대하잖아요. 갈등 속에서 퇴원 전에 했던 기도가 생각났어요. 살아서 퇴원하게 된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며 본분하겠다 했는데, 정작 일이 생기니 제가 한 맹세를 까맣게 잊었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어요. “하나님, 저의 태도를 보시고 저를 살피시는 줄 압니다. 어떻게든 교회 사역을 지키면서 제 본분을 다할게요.”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모습이 생각나 마음에 감동이 됐어요. 주님은 인류 구속을 위해 망설임 없이 골고다 언덕을 오르셔서 모진 수모를 당하셨죠. 그 얼마나 큰 사랑이에요. 하나님은 목숨까지 버리셨는데 난 왜 자기 이익도 못 버리고 하나님 사랑에 보답도 못 하나 싶더라고요. 일개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만 받아 누릴 게 아니라 자기 본분을 다해야죠. 안 그럼 사람도 아니에요. 하나님 말씀에 힘입어 일을 잘 처리했어요. 다행히 두 번째 섬김의 집에 알리러 갔을 때 자매가 안 잡힌 걸 알고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어요. 한편으론 마음을 바로잡고 진리를 실행하니까 마음도 편하더라고요.
벌써 6년이 지났네요. 아직 완치된 건 아니에요. 왼쪽이 좀 저리긴 한데, 그래도 다 하나님께 달렸단 걸 믿어요. 완치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보호더라고요. 복을 위해서 헌신하는 바울 같은 잘못된 길을 가지 말라고 일깨우시는 거죠. 이 병으로 고생은 좀 했어도 제 패괴함과 불순물에 대해 좀 알게 됐고, 복을 바라는 관점도 조금 바로잡게 됐어요. 또 하나님을 믿으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도 깨달았죠. 올바른 추구 목표가 생겼어요. 이건 병을 통해 얻은 복이죠. 안락한 상황이었다면 이런 걸 얻지 못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