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2) 제 5 부
어떤 사람은 다른 이가 그의 사역에 개입하고 감독하려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감독하시는 건 괜찮습니다. 받아들일게요. 질문해도 상관없고요. 그런데 당신이 정말 감독하시겠다면 저는 이 사역을 진행할 수가 없어요. 손발이 묶인다고요. 결정은 늘 당신이 하면서 저한테는 지시만 따르라고만 하면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산 하나에 호랑이 두 마리가 살 수는 없잖아요.” 이는 일종의 이론이 아니겠느냐? 이는 적그리스도의 이론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성품은 어떻겠느냐?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아니겠느냐? 산 하나에 호랑이 두 마리가 살 수는 없다는 게 무슨 뜻이겠느냐? 상부에서 질문하는 것도 안 된다는 것이다. 상부에서 질문하지 않으면 네 행동이 진리에 위배되지 않는단 말이냐? 질문하면 네가 잘못을 저지를 것이라는 말이냐? 상부에서 사역을 망치겠느냐? 상부에서 사역을 지도하거나 사역에 대해 질문하고 감독하는 것이 사역을 더 잘하게 하기 위해서겠느냐, 아니면 더 못하게 하기 위해서겠느냐? (더 잘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어째서 더 좋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냐? (적그리스도의 성품에 지배받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그게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 때문인데,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가 책임지는 사역에 대해 질문하면 그는 자신의 이익과 지위, 권력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고 생각해서 언짢아하고 자신의 계획과 절차가 엉클어진다고 생각해서 불편해한다. 그래서야 되겠느냐? 상부에서 그와 협력할 사람을 발탁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난 저 사람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상부에서는 저 사람이 좋다고 우기면서 발탁해 버렸어. 마음이 불편한데 어떻게 그와 협력하고 함께 사역하지? 상부에서 그를 쓴다면 난 때려치울 거야!’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그가 정말 실제로 지위를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 그는 내려놓지 못하고 맞서는 것이다. 누군가의 사역이 그의 지위를 위협하고 그를 돋보이지 않게 하거나 방해한다면 그가 납득하겠느냐? 납득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상부에서 한 사람을 발탁하거나 교체하면 그는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내 체면을 너무 안 세워 주네. 내 동의를 구하지도 않다니.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도 직위라는 게 있는데 어떻게 내게 미리 말 한마디 안 할 수가 있지? 나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잖아!’ 네가 뭔데 그러느냐? 그게 네 사역이냐? 첫째, 그건 네 관할이 아니다. 둘째, 그 사람들은 너를 따르는 게 아닌데 왜 굳이 너를 신경 써야 하느냐? 그게 진리에 부합하느냐? 어느 진리에 부합하느냐? 상부에서 사람을 발탁하거나 교체할 때는 원칙이 있다. 왜 사람을 발탁하겠느냐? 사역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 교체하겠느냐?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가 그 사역을 못 하기 때문이다. 네가 교체하지 않으면서 상부도 교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억지 부리는 게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상부에서 한 사람을 교체한다면 제 체면이 말이 안 되잖아요. 교체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제가 교체할 테니 저한테 귀띔해 주세요. 그건 제 사역이고 제가 해야 할 일이에요. 제가 교체해서 모두에게 제가 사람을 간파할 수 있고 실제 사역을 할 줄 안다는 걸 보여 주면 얼마나 체면이 서겠어요!”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은 이렇게 체면을 차리고 논리를 따지는데 그게 통하겠느냐? 말이 되겠느냐? 하나님 집에서는 사역할 때 하나는 진리 원칙을 따르고 다른 하나는 실제 상황을 근거로 삼기 때문에 위계질서를 지켰는지 따질 일이 없다. 특히 상부에서 사람을 발탁하고 교체하거나 특정 사역을 지도하고 지시할 때는 더더욱 위계질서를 따질 일이 없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는 왜 이런 트집을 잡겠느냐?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으면서 사람의 머리와 세상의 절차로 하나님 집의 사역을 판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밖에 그의 주된 목적은 자신을 보호하고 체면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주도면밀해서 아랫사람이 그의 어떤 흠이나 결점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어느 정도로 포장하겠느냐? 그는 남들에게 아무런 패괴나 결점이 없고 흠잡을 데 없어서 상부에서 쓰거나 형제자매가 뽑기에 합당한,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그는 그러고 싶은 것 아니겠느냐? 이는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다.
방금 우리는 다른 이가 사역에 개입하고 관여하고 감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적그리스도의 주된 모습 중 한 가지를 교제했다.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사람을 배치해 그의 사역을 체크하고 파악하며 감독하든 그는 온갖 방식으로 저지하고 거부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상부에서 그에게 사역 하나를 맡기면 세월아 네월아 조금도 진전이 없다. 도대체 사역을 하고 있는지, 잘 되고는 있는지, 사역하는 과정에 어려움이나 문제는 없는지 상부에 말하지도 않고 아무런 피드백도 주지 않는다. 일부 사역은 지체 없이 급히 해야 하는데 그가 꾸물거리는 통에 시간이 한참 지나도 완수되지 못한다. 이럴 경우 상부에서 물어봐야 한다. 물어보면 그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반발한다. ‘맡긴 지 열흘 남짓밖에 안 돼서 갈피도 못 잡은 사역에 대해 벌써 물어보다니, 상부에서는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네!’ 이렇듯, 한번 물어보면 그는 트집까지 잡는다. 무엇이 문제겠느냐? 상부에서 물어보는 건 아주 정상이 아니겠느냐? 한 측면으로는 사역 진행 상황이 어떤지, 해결해야 할 어려움은 없는지 알아보려는 것이고, 다른 한 측면으로는 사역하는 사람의 자질이 어떤지, 과연 문제를 해결해 사역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상부에서는 실상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 질문하는데 그러면 안 된단 말이냐? 상부에서는 네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사역을 하지 못할까 봐 질문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질문에 반발심이나 반감을 품고 남이 질문하는 것을 싫어한다. 누가 질문하면 그는 반발하고 의심하면서 ‘왜 늘 질문하고 알아보려 하지? 내가 못 미덥고 마음에 안 드나? 나를 못 믿겠으면 쓰지를 말든가!’라는 생각만 한다. 그는 상부에서 질문하고 감독하면 이해하기는커녕 반발심만 갖는다. 이런 사람이 이성적이겠느냐? 왜 상부에서 질문하고 감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느냐? 왜 반발심을 갖고 반항하겠느냐? 무슨 문제겠느냐? 자신의 본분 이행에 성과가 있든 없든, 사역 진도에 지장을 주든 말든 그는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사역의 성과와 효율은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요구는 더더욱 고려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본분을 이행할 때 나만의 방법과 전략이 있으니 내게 너무 구체적이고 무리한 요구는 하지 마. 난 본분을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너무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건 질색이야.’ 그는 상부에서 사역에 대해 질문하고 알아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무엇이 부족해서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순종이 부족하지 않겠느냐? 책임감과 충성심이 부족하지 않겠느냐? 본분을 이행할 때 정말 책임질 수 있고 충성심이 있다면 상부에서 사역에 대해 질문할 때 그가 배척하겠느냐? (배척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그가 본분을 직업이나 밥벌이로 삼아 밑천을 챙길 뿐 아니라, 이행한 본분을 상을 받는 조건이나 카드로 여기면서 체면이 서는 일만 하고 상부를 건성으로 대하며 하나님의 부탁을 결코 자신의 본분이나 의무로 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상부에서 사역에 대해 질문하거나 감독하면 그는 반감이나 반발심이 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겠느냐?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겠느냐? 이 사역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잘못됐다. 그는 육적인 안락함과 편안함, 자신의 지위와 체면만 고려하고 사역 성과와 하나님 집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으며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기를 전혀 구하지 않는다. 만약 그에게 정말로 양심과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상부의 질문과 감독을 이해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상부에서 질문해 줘서 다행이야. 그러지 않았다면 난 계속 내 뜻대로 행동하다가 사역 성과에 지장을 줬을 거야. 어쩌면 사역을 망칠 수도 있겠지. 상부에서 교제도 하고 검사도 하니까 실제 문제가 진짜로 해결됐어. 정말 잘됐어!’ 이는 그가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이 혼자 사역을 맡았다가 만에 하나 실수나 허점이 생겨서 하나님 집 사역에 메울 수 없는 손실을 입혀 책임을 감당할 수 없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책임감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책임감이자 충성을 다하는 모습이다. 사역하면서 질문을 못 하게 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차피 이 사역은 내게 맡겼으니 내 일이야. 내 일은 내가 결정해. 남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그는 혼자 생각하고 자기 성질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한다. 누구도 물어보거나 실상을 알려고 들지 못하게 한다. “그 일은 어떻게 됐어요?”라고 물으면 그는 “기다려 보세요.”라고 말하고 “진행 상황은 어때요?”라고 다시 물으면 그는 “거의 다 됐어요.”라고 답한다. 그는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만 대답한다. 짧게 한마디만 내뱉을 뿐 한 글자도 더 말하지 않으며 결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과 말하면 역겹지 않으냐? 대놓고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더 물으면 그는 짜증을 내며 이렇게 말한다. “고작 이런 일을 가지고 계속 물어보면 꼭 제가 재목이 아니어서 일을 완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는 남이 물어보는 걸 싫어한다. 계속 물으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를 당나귀나 말처럼 부려먹는 거예요? 저를 못 믿겠으면 쓰지 마시고 쓰실 거면 절 믿으세요. 믿으실 거면 자꾸 물어보지 마시고요!” 그는 이런 태도를 보인다. 그가 이 사역을 자신의 본분으로 삼아 이행하겠느냐? (그러지 않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사역을 본분으로 대하지 않고 복과 상을 받는 조건으로 여긴다. 그는 힘쓰는 데만 만족하면서 복을 얻고 싶어 하기 때문에 무성의한 태도로 사역한다. 그가 사역할 때 다른 이가 개입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존엄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는 그가 이행하는 본분과 사역이 모두 그 자신에게 귀속되는 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이가 개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 다른 이유는 만약 사역을 잘하면 공적을 명분으로 상을 기대할 수 있지만, 다른 이가 개입하면 공로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공로를 남에게 뺏길까 봐 걱정돼서 다른 이가 그의 사역에 개입하는 것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그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자신의 사적인 일을 처리하듯 한다. 그리고 자신이 잘하든 못하든 다른 이가 개입하거나 동참하는 것을 싫어해서 잘하면 공로를 독차지한다. 다른 이가 그의 공로나 사역 성과에 한 다리 걸치지 못하도록 말이다. 아주 골치 아프지 않으냐? 이는 어떤 성품이냐? 이것이 바로 사탄의 성품이다. 사탄은 일할 때 누구도 개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하든 다 자기가 결정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누가 감독하고 질문하는 것도 안 된다. 누가 개입하고 간섭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렇게 일한다. 자기가 어떻게 하든 남이 질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아무리 밀실 공작을 해도 누구도 간섭할 권리는 없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적그리스도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성품이 너무 교만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비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순종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다른 사람이 그를 감독하거나 자신의 사역을 검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이것은 진정 정상인의 행동과 아주 다른 마귀의 행동이다. 누구든 사역할 때 파트너가 필요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 조언, 협력이 필요하다. 누가 감독하고 관찰한다고 해도 이건 나쁜 일이 아니고, 꼭 필요한 일이다. 만에 하나 어떤 부분에서 실수가 생겼을 때 제삼자가 알아차려 문제를 바로 해결함으로써 사역의 손실을 피하게 된다면, 이는 큰 도움이 아니냐? 그래서 슬기로운 사람은 일할 때 누가 감독하고 지켜보고 질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만에 하나 자기가 실수했을 때 누가 지적해 주어 제때 바로잡을 수 있으면, 이는 바라 마지않을 일이 아니냐?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폐증이나 우울증을 앓는 사람만이 혼자 있길 좋아하고 다른 사람과 접하거나 소통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폐증이나 우울증에 걸리면 비정상이 되고, 자기 뜻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이 이성도 사고도 모두 정상이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길 싫어하고, 뭘 하든 남들에게 숨기고 싶어서 몰래 하고, 뒤에서 하고, 밀실 공작을 하고,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해도 듣지 않는다면, 이런 자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냐?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다.
예전에 한 교회의 리더를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형제자매의 본분 이행 상황을 물었다. “아직도 교회 안에 교회 생활을 교란하는 사람이 있느냐?”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아느냐? “그저 그래요. 나쁘지 않아요.” 내가 “아무개 자매는 본분을 잘 이행하고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나쁘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내가 또 “그 자매는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이나 됐느냐?”라고 묻자 “그럭저럭요.”라고 했고, “이 책상은 여기랑 안 어울리는 것 같다. 다른 데로 옮겨야겠다.”라고 말하자 “생각해 볼게요.”라고 답했다. “이 밭에 물 좀 줘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더니 “얘기해 볼게요.”라고 했고 “이 밭에 올해는 이 작물을 심었는데 내년에도 이걸 심는 거냐?”라고 묻자 “우리 의사 결정팀에서 계획이 있어요.”라고 했다. 이게 그의 대답이다. 듣고 나니 어떤 느낌이 드느냐? 무엇을 이해했느냐? 무슨 정보를 얻었느냐?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들어 보면 너를 무성의하게 대하고 바보나 제삼자 취급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 누가 제삼자인지 그는 모르고 있다. 이방인은 이런 것을 두고 주객전도나 주제 파악도 못 한다고 한다. 내가 “여기에 사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방 안에 공기 순환이 잘 안 되는구나. 선풍기를 하나 설치해야겠다. 너무 더우면 더위 먹기 쉬우니 말이다.”라고 했더니 그는 “상의해 볼게요.”라고 답했다. 내가 그에게 무슨 일을 말하든 그는 항상 상의해 보고 얘기해 보고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무슨 일을 안배하고 무슨 말을 하든 그에게는 무의미하다. 내 말이 그에게는 안배도, 명령도 아니라서 그가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 그는 내 말을 무엇으로 간주했겠느냐? (참고할 제안으로 간주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참고할 제안을 했느냐? 아니다. 나는 그에게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설마 그가 알아듣지 못했겠느냐? 알아듣지 못했다면 그는 얼간이이고 자신의 신분이 무엇인지, 무슨 본분을 이행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방 안에 에어컨도 없고 통풍도 되지 않는데 선풍기마저 달지 않다니, 지능이 어찌 그 모양이냐? 당장 집으로 돌아가거라. 너는 폐물이다. 하나님 집에 폐물은 필요 없다. 사람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배울 수는 있다. 나는 모르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제안해 보라며 다른 사람과 상의한다. 누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하면 나는 “그래. 네 생각대로 하여라. 어차피 나도 어떻게 할지 생각해 놓은 것은 없으니 네 생각대로 하려무나.”라고 한다. 이것이 정상 인성의 사유가 아니겠느냐? 어울린다는 건 이런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릴 때는 우열을 가리거나 누구의 위신이 서는지, 누가 누구 말을 따르는지 따지지 마라. 그런 걸 따지지 말고 옳은 말,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 말을 따라야 한다. 너희는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 않으냐?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반드시 자기 말을 따르게 하고야 만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인간이란 말이냐? 다른 사람의 제안이면 안 된다. 아무리 합리적인 제안이라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옳고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다른 이가 한 제안이면 따르지 않고 반드시 자신이 제안해야만 만족한다. 고작 이런 일을 가지고도 누가 더 나은지 다투는 것은 무슨 성품이겠느냐?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다. 그는 지위와 명망, 체면을 지나치게 중시한다. 어느 정도로 중시하겠느냐?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신의 지위와 명망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무슨 사역을 하든 다른 사람이 개입하고, 관여하고, 감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허락하지 않는다’에도 몇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아예 “내 사역을 간섭하지도, 관여하지도, 감독하지도 마세요. 내가 무슨 사역을 하든 내가 책임져요. 나도 사리 분별이 있다고요. 다른 사람의 간섭 따위 필요 없어요!”라며 거절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직접적인 거절이다. 또 하나는 “좋아요, 사역을 어떻게 할지 우리 교제해 봅시다.”라고 말하며 겉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상대가 자기 사역에 관해 물으며 파악하려 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고 건의하려고 하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맞다. 온갖 이유와 핑계를 대며 다른 사람의 건의를 거부하고, 틀린 것은 옳다고, 옳은 것은 틀리다고 말하며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실 속으로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억지고, 허풍이고, 이론이며, 상대가 말한 것만큼 실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 지위를 지키기 위해 자기가 틀리고 상대가 옳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상대의 옳은 것을 틀린 것으로, 자기의 틀린 것을 옳은 것으로 바꾸어 계속 실행한다. 그런 자는 옳은 것, 진리에 부합하는 것이 자기 선에서 관철되고 실행되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교회 사역을 어린애 장난이나 농담으로 여기는 것 아니겠느냐? 이는 관여와 감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 그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 사역에 개입하지 마세요.”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겉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그의 마음가짐은 그렇다. 그는 겉으로는 꽤나 경건해 보이도록 수완을 발휘해서 “저희도 마침 도움이 필요했는데 기왕 오셨으니 저희에게 교제 좀 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윗선 리더는 그가 진심인 줄 알고 그에게 교제하며 실상을 말한다. 그는 듣고 나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은 그렇게 보는군. 당신과 논쟁을 벌여서 당신의 그런 견해를 반박하고 부정하겠어. 어디 창피 한번 당해 보시지.’ 이게 받아들이는 태도겠느냐? (아닙니다.) 이것은 무슨 태도이냐? 이는 다른 이가 그가 하는 사역에 개입하고 관여하고 감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기왕 그렇게 할 수 있으면서도 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며 허상을 보여 주겠느냐? 그렇게 사람을 속일 수 있는 것은 그가 몹시 교활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남이 그를 간파할까 봐 두려워한다. 특히 이제는 어느 정도 분별력을 갖춘 사람들도 있어서 그가 다른 이의 감독이나 도움을 직접적으로 거절한다면 사람들이 그를 분별하고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러면 그는 체면과 지위를 잃게 되고 앞으로도 리더 일꾼으로 뽑히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윗선 리더가 사역을 검사할 때 그는 받아들이는 척하고 듣기 좋거나 비위 맞추는 말을 해서 모두가 ‘우리 리더는 정말 경건한 데다가 진리도 열심히 구한다니까! 우리의 생명과 교회 사역을 고려하고 본분도 책임감 있게 이행한다고. 그러니까 다음에도 그를 뽑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윗선 리더가 가고 나면 적그리스도는 또 이런 말을 한다. “사역을 검사하는 사람이 한 말은 다 옳지만 우리 교회의 상황에는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교회마다 상황이 다르니까 우리는 그 사람 말을 완전히 따를 수는 없어요. 우리는 실제 상황에 맞게 그 사람 말을 참고해야지 무작정 규례에 맞춰서는 안 돼요!” 다들 듣고 나서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는 미혹된 것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듣기 좋은 말을 하며 다른 이의 감독을 받아들이는 척하지만 곧이어 내부에서 미혹하고 세뇌하는 일을 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한다. 그는 수완이 좋지 않으냐? 수완이 매우 뛰어나다! 그는 겉으로는 듣기 좋게 말하고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사람들이 그가 꽤나 책임감 있게 사역을 한다고, 자세를 낮추고 지위를 내려놓을 줄 안다고,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상부나 다른 사람의 감독을 받아들일 줄 안다고 생각하게 한다. 또한 그는 형제자매에게 이해관계나 여러 상황에 대해 ‘분명히 얘기’한다. 그의 목적은 무엇이냐? 다른 사람의 개입과 관여, 감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또한, 형제자매들에게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이유가 있고, 옳은 것이고,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에 부합하는 것이며, 일하는 원칙에 부합하기도 하니 리더로서 원칙을 지켰다고 여기게 하려는 것이다. 교회에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결국 소수다. 대다수는 확실히 분별력이 없어 그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미혹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특수한 이유로 잠을 못 이루고 밤을 샌다. 똑같이 잠을 못 이뤄도 두 부류의 사람은 서로 다른 두 모습을 보인다. 한 부류의 사람은 자신이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다는 사실을 남이 알지 못하도록 낮에 황급히 기회를 엿봐 잠깐 눈을 붙인다. 그건 하나의 상황이자 실제 사정이고 거기에는 별다른 속셈이 없다. 다른 부류의 사람은 식사 때 계속 졸면서 사람들에게 말한다.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어요!” 남들이 “왜 못 잤어요?”라고 물으면 그는 “온라인 예배 때 사역에 문제가 좀 있는 걸 발견했는데 문제를 해결하느라 한숨도 못 잤어요.”라고 말하며 자신이 밤을 새웠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퍼뜨린다. 그가 마지못해 밤을 새웠느냐? 그는 왜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는 것이겠느냐? 그 설명 안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그의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그는 혹시라도 남들이 알지 못할까 봐 그 일을 만천하에 알리려 한다. 모든 사람에게 그가 밤새 잠도 못 자고 고생했다고,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꺼이 대가를 치르며 안일을 누리지 않는다고 알려서 형제자매의 동정과 인정을 받으려는 것이다. 그는 이 정도 겉치레만으로도 인심을 사서 남들이 그를 우러러보게 할 수 있고 사람의 마음속에서 위신을 세울 수 있다. 일단 지위가 생기면 말에 권위가 생기는데, 말에 권위가 생기면 지위가 가져오는 특별한 대우를 누릴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그 기회를 잘 잡지 않았느냐? 너희는 밤새 잠을 못 이루거나 밤을 새우면 남에게 말하느냐?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무심결에 말했느냐, 아니면 속셈을 품고 말했느냐? 몇몇 사람에게만 얼떨결에 말했느냐, 아니면 여기저기 떠벌리고 널리 알렸느냐? (얼떨결에 말했습니다.) 얼떨결에 말하는 것에는 속셈이 없고 그것은 성품 문제와도 관련이 없다. 일부러 말하는 것과 무심결에 말하는 것은 분명 그 성질에 차이가 있다. 적그리스도가 행동할 때 다른 이의 개입과 관여를 표면적으로 받아들이든 아니면 직접적으로 거절하든, 결국 방식이 어떻든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동기는 무엇이겠느냐? 지위와 권력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이다. 이런 동기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 가까스로 얻은 권력과 지위, 위신을 결코 아무렇게나 무심코 사라지게 할 수 없고, 누가 그의 사역에 개입하고 관여하여 그의 세력과 권력을 약화시키게 둘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본분 하나를 이행하거나 사역 하나를 받아들이는 건 별다른 본분도 아니고 별다른 의무를 다할 필요도 없어. 그저 어느 정도 권력을 갖추고 수하에 사람을 좀 두는 거지. 권력이 있으면 누구에게 의견을 구할 필요 없이 스스로에게 결정할 수 있는 기회와 권력이 있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런 태도로 본분을 바라본다.
또 어떤 사람은 사역할 때 상부에서 문의하면 형식적으로 겉치레만 하고 건성으로 몇 가지 일만 물으면서 진리를 구하는 사람인 척한다. 예를 들어, 누가 눈에 띄게 방해하고 교란하는 행동을 하면 그는 그런 사람을 처리해야 하는지 상부에 묻는다. 이는 그의 본분에 속하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가 상부에 묻는다는 건 무슨 뜻이겠느냐? 허상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그런 일조차도 묻는다는 것은 자신이 빈둥거리지 않고 사역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이는 그저 허상을 만들어 미혹하는 것일 뿐이다. 사실 그의 마음속에도 어떻게 진리를 교제해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실제 문제들이 있고, 어떤 원칙을 실행해야 할지 모르거나 사람을 처리하는 측면과 사무를 처리하는 측면에서 모두 간파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는 절대 묻지도, 구하지도 않는다. 그가 마음속으로도 그런 일들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상부에 물어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확실히 파악하지 못하고 간파하지 못했으면서 무작정 하면 결과가 어떻겠느냐? 그가 예측할 수 있겠느냐? 그가 그 책임을 짊어질 수 있겠느냐? 짊어질 수 없다. 그럼 그는 왜 묻지 않겠느냐? 그가 묻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나는 상부에서 발견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고작 이런 일도 처리하지 못하고 물어보면 자질이 형편없는 거야. 그러면 상부에서 나를 간파하지 않겠어?’ 또 다른 이유는 만약 물어봤을 때 상부의 결정이 그의 관점과 충돌하거나 다르면 취사선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부를 따르지 않으면 상부에서 그가 사역 원칙을 위배한다고 할 것이고, 상부를 따르면 그 개인의 이익이 손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에 그는 묻지 않는다. 그가 묻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있습니다.) 이유가 있다. 그런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적그리스도입니다.) 적그리스도이다. 그가 묻는 것이든 묻지 않는 것이든, 말하는 것이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든 그는 진리를 구해 원칙대로 대하지 않고 모든 일에서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시한다. 상부에 질문하거나 알릴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상부에 전혀 알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 무엇인지 그는 스스로 마음속에 계획을 세우고 범위를 정해서 두 부류로 나눠 놨다. 눈에 띄지 않고 그의 지위를 위협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건성건성 말하며 상부에 무성의하게 대응하고, 그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일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만약 상부에서 물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몇 마디 말로 적당히 둘러댄다. “좋아요, 저희가 상의해 볼게요. … 더 찾아볼게요.”라며 두말없이 동의하고 조금도 반항하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겉으로는 꽤나 순종적이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다른 궁리를 하고 있다. 상부에서 결정권을 가지게 할 생각도, 상부의 의견을 구해 상부에서 결정하게 하거나 상부에 어떤 길을 구할 생각도 없다. 그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상부에서 개입하거나 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럼 상부에서 알게 되는 순간 그에게 어떤 위협이 가해지겠느냐? (지위가 위태로워집니다.) 지위가 위태로워질 뿐 아니라 그의 계획과 목적이 실현되지 못한다. 그럼 그는 더 이상 당당하게 악을 행할 수 없게 되고, 공개적으로, 노골적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계획에 따라 행하지 못하게 된다. 그는 이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에게 유리한지 그가 알아차릴 수 있겠느냐? 그에게는 분명 생각과 계획이 있다. 너희도 이런 일들에 직면하지 않느냐? 그럼 너희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느냐?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리더를 맡고 나면 우쭐거리면서 남이 그를 우러러보도록 늘 남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그가 잘 아는 이방인이 그에게 돈을 빌리려고 자신에 대해 몹시 불쌍하게 말하면 그는 얼떨결에 흥분해서 동의한다. 동의하고 나서 마음 편히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교회 리더니까 교회의 돈에 대해서는 내게 결정권이 있어. 하나님 집의 것, 교회의 것, 제물 같은 것 모두 관직에 오른 내게 결정권이 있다고. 재무도, 인사도 다 내 소관이야. 전부 내게 결정권이 있어!’ 그래서 하나님 집의 돈을 이방인에게 빌려준다. 그는 그 일을 다 처리하고 나서 마음속으로 조금 불안해서 상부에 말해야 할지 말지 고민한다. 상부에 말하면 그 일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는 거짓말을 꾸미고 핑계를 대며 상부를 속인다. 상부에서 그에게 진리 원칙을 교제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제물을 사사로이 유용하는 악행을 저지른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감히 제물에 손댈 궁리를 했겠느냐? 고작 교회 리더가 제물을 관리할 권력을 가지고 있겠느냐? 제물이나 재무에 관한 일에 결정권을 가질 수 있겠느냐? 정상적인 인성과 이성을 가지고 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제물을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제물에 관한 일은 상부에 보고해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결정하는지 봐야 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큰 문제에 대해 상부에서도 알 권리가 있지 않겠느냐? 있다. 이는 네가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자 네가 갖춰야 할 이성이다. 재무 측면의 일은 크든 작든 상부에서 알 권리가 있다. 묻지 않는다면 모를까 묻는다면 반드시 사실대로 답해야 하고 상부에서 어떻게 결정하든 순종해야 한다. 이런 이성을 갖춰야 하지 않겠느냐?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지 못합니다.) 그게 바로 적그리스도와 정상인의 차이다. 만약 상부에서 그 일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확률이 100%이고, 자신의 체면이 깎인다는 생각이 들면 그는 상부에서 알지 못하게 갖은 방법을 동원해 숨기고, 아래에서 하는 사역까지 다 처리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이 일을 폭로하는 사람은 저를 못살게 구는 거니까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반드시 혼쭐을 낼 거라고요!” 이렇게 모진 말을 내뱉고 나면 아무도 감히 상부에 보고하지 못한다. 그는 왜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건 내 권력 범위 내의 일이야. 내 관할 안의 사람과 돈, 물질을 배치하고 분배할 권리는 내게 있어!’ 그가 배치하고 분배하는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그는 제멋대로 안배하고 남용하고 남발하며 아무 원칙 없이 임의로 헤프게 쓰고 낭비하며 누구에게도 간섭할 권리가 없고 모두 그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느냐? 물론 입으로는 그리 명확히 말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분명 그렇게 생각한다. ‘관직에 뭐 하러 오르겠어? 돈 벌고 먹고 입으려고 오르는 거잖아! 이제 나도 관직에 올라 지위가 생겼는데 권력을 이용해 마음껏 해 먹지 않으면 바보 아니겠어?’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그런 성품을 가져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어떤 결과도 고려하지 않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그 일을 숨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그 일이 옳은지 그른지, 어떻게 해야 적합한지, 원칙이 무엇인지는 따져보지 않는다. 그는 그런 것들은 고려하지 않고 누가 그의 이익을 보장할지만 고려한다. 적그리스도는 음험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어느 정도로 비열하겠느냐? 한 마디로 표현하면 뻔뻔하다! 사람도, 물건도 네 것이 아니고 재산은 더더욱 네 것이 아닌데 너는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지배하려 한다. 게다가 남들은 알 권리조차 없고 심지어 네가 마음대로 헤프게 쓰고 낭비해도 남들은 관여할 권리도 없으니 이는 어느 정도에 이른 것이겠느냐? 뻔뻔하다! 뻔뻔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재산에 관해 보통 사람 마음속에 있는,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은 무엇이겠느냐? 이건 하나님의 제물이고, 제물은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에게 바친 것이니 하나님에게 속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유 재산이라고 하며 하나님에게 속하지 공공이나 어느 개인에게 속하지 않는다. 하나님 집의 주인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그렇다. 하나님이다. 그럼 하나님 집에는 무엇이 포함되겠느냐? 여러 교회의 하나님 선민과 모든 교회 용품, 재물이 포함된다.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에게 속하지 절대 개인에게 속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점유할 권리가 없다. 적그리스도가 과연 그렇게 생각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제물은 관리하는 사람 것이자 손에 넣을 기회가 있는 사람 것이며 리더에게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줄곧 있는 힘을 다해 지위를 추구했고, 지위를 얻고 나서 드디어 소원을 성취했다. 그는 왜 지위를 추구하겠느냐? 만약 그에게 착실하게 하나님 선민을 이끌고 무슨 일을 하든 원칙을 지키되 교회의 재물과 하나님의 제물에는 손대지 말라고 한다면 그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지위의 상승에 매달릴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는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흘러가는 대로 두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난 뽑히면 할 거야. 본분을 잘 이행할 거라고. 하지만 날 뽑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을 거고 그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거야.’ 적그리스도는 리더가 되면 교회의 모든 재물을 지배하고 누릴 권리가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위를 얻고 지위가 가져오는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 뻔뻔할 정도로 골머리 썩이며 지위의 상승에 매달린다. 뻔뻔한 건 무엇이겠느냐? 파렴치한 일을 하는 게 바로 뻔뻔한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는 건 너무 파렴치해요!”라고 해도 그는 신경 쓰지 않고 속으로 생각한다. ‘뭐가 파렴치해. 지위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지위를 가진 기분이 어떤지 당신이 알아? 돈을 통제하는 기분이 어떤지 당신이 알아? 그게 얼마나 즐거운지 당신이 알아? 그런 우월감을 당신이 알아? 직접 느껴 봤어?’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 마음속 지위에 대한 견해이다. 적그리스도는 지위를 가지는 순간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한다. 그는 하나님의 제물도 자신의 손에 쥐고 통제하려 하고 교회 사역의 어느 부분에 돈을 쓸지도 자신이 결정하려 한다. 그는 절대 상부에 문의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집 재산의 주인이 되고 하나님 집은 그의 집이 되어 그에게 결정하고 지배할 권리, 마음대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주고 모든 지출을 지배할 권리가 생긴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물을 대할 때 결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돈을 물 쓰듯 쓰며 자기 마음대로 결정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전형적인 적그리스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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