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조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본질을 부정한다(2) 제 1 부
오늘은 계속해서 적그리스도의 여러 가지 모습 중 제15조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본질을 부정한다’는 것에 대해 교제해 보기로 하자. 지난번 이 주제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교제했는데, 첫 번째 부분인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적그리스도의 여러 가지 모습을 또 두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가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부정한다’이고, 둘째가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것을 부정한다’이다. 지난번에는 주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한 일이 진리이고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대표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한 모든 일의 이면에 존재하는 의의와 진리는 더더욱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교제했다. 적그리스도는 사탄을 숭배하고 사탄을 하나님으로 간주하며, 사탄의 모든 견해와 관점을 근거로 삼고 기준으로 삼아 하나님의 신분,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이 한 모든 것을 저울질한다. 그래서 속으로 계속해서 사탄이 한 일을 높이 받들고 숭배하고, 급기야는 칭송하고 찬미함으로써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그것으로 대체하려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사탄이 한 모든 일을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대해 의문을 품고, 관념을 가지고, 판단하여 결국에는 정죄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 자신의 생명과 진리, 자신의 인생 방향과 목표로 삼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에게 맞서고, 언제나 관념과 상상, 사탄의 사고와 논리, 사탄의 성품과 방법 등으로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가늠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심하고, 추측하고, 관망한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판단하고, 끊임없이 속으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정죄하고, 부정한다. 적그리스도의 이 모든 행위와 그의 갖가지 모습은 그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도, 진정한 신자도 아니고,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고, 대신 진리를 적대하고 하나님을 적대하는 부류의 사람이라는 확실한 증거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집, 교회에 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으로 삼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교회에 오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그자들이 하나님 집에 오는 것은 첫째, 최소한 호기심을 채우려는 것이고, 둘째, 유행을 따르려는 것이고, 셋째, 복을 받고 싶어서이다. 그들의 의도와 목적은 이런 것에 불과하다.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에서 볼 때,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으로 삼을 계획이 전혀 없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 원칙으로 삼고, 인생의 방향과 목표로 삼을 계획도 전혀 없다. 또한 자신의 관점과 관념을 바꾸거나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와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일 계획도 전혀 없다. 그에게는 그런 계획이 없다.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얼마나 유능한지, 얼마나 능력과 은사와 재주가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 집의 기둥과 대들보가 될 수 있는지 등을 자랑한다. 그리하여 하나님 집에서 우러름을 받고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하나님 집에서 발탁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어 자신들의 야심과 욕망을 채우고자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현세에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는다’는 이런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시키고 계획을 이루려 한다. 그들이 이런 야심과 욕망, 계획을 내려놓은 적이 있느냐? 그들이 주관적으로 이 문제들을 인식하고 내려놓고 해결하기를 바라겠느냐? 그들은 결코 그럴 계획이 없다. 하나님 말씀에서 어떻게 얘기하고 어떻게 폭로하든 관계없이, 설령 그가 맞춰볼 수 있더라도, 설령 그가 자신의 계획과 생각, 자신의 속셈이 하나님 말씀과 대립하는 것이고, 하나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이며, 진리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고,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그들은 자신의 관점,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굳게 고수한다. 또한 자신을 바꾸고 자신의 관점을 돌이키고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폭로,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일 계획이 전혀 없다. 이런 사람들은 내면이 강퍅할 뿐만 아니라 교만하고 잘난 체하는데 어처구니없이 교만하다. 아울러 그들은 속으로 하나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깊이 싫어하고 증오하고, 하나님이 패괴된 인류의 본성 본질과 각종 패괴 성품에 대해 폭로한 것을 증오한다. 그들은 아무 까닭 없이 하나님과 진리를 증오하며, 심지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도 증오한다. 이것은 적그리스도 부류의 성품이 확실히 사악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도 남는다. 하나님에 대한, 진리에 대한 그들의 근거 없는 미움과 적대시, 반발, 판단, 부정 또한 적그리스도 부류가 확실히 흉악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적그리스도의 각종 성품은 패괴된 인간 사이에서는 전형적인 것이며, 그의 여러 성품은 그 어떤 보통의 패괴된 인간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하나님이 인류의 패괴 성품을 아무리 깊고 자세하게 폭로해도 적그리스도는 그저 부정하고 거부하며, 그것이 진리이고 하나님이 한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사람이 충분히 악하고, 모질고, 사악하고, 독하고, 악랄해야만 마지막에는 굳게 설 수 있고, 이 사회와 사악한 조류 속에서 독자적인 자리에 서며 끝까지 설 수 있다고 인정하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논리이다. 따라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한 본질, 하나님의 신실함, 하나님의 전능함과 같은 이런 긍정적인 사물을 적대시하고 증오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 하나님이 한 모든 일을 증거해도, 그 증거가 아무리 구체적이고 진실해도 적그리스도는 그것을 하나님이 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그 안에 구할 만한 진리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고, 그것이 인류가 하나님을 인식하는 최고의 교재, 최고의 증거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탄이 알게 모르게 하는 사소한 일에도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 사탄이 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인류 사이에서 존귀하게 여겨지든 비천하게 여겨지든 적그리스도는 무조건 받아들이고, 믿고, 숭배하고, 추종한다. 그런데 유독 적그리스도 부류에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부처가 자신이 사람을 극락세계로 제도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에 적그리스도는 생각한다. ‘이 극락세계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이나 천당보다 한 단계 낮아서 그다지 이상적인 것 같지 않군. 비록 사탄은 만능이어서 사람에게 무한한 이익을 가져다주고 사람의 온갖 야심과 욕망을 채워 줄 수 있다지만, 유독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가 영생을 얻게 해 주겠다는 약속은 줄 수 없단 말이야. 사탄은 감히 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이런 일도 하지 못해.’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그것이 참 알 수 없는 일이고, 또 가장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마지못해 하나님을 따르면서 동시에 여전히 자신이 어떻게 하면 더 큰 복을 얻을 수 있을지, 자신의 욕망과 야심을 채워 줄 수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고민한다. 그는 계속해서 저울질하다가 어쩔 수 없이 타협해 하나님 집에 몸을 의탁한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은 과연 무엇이냐? 참된 믿음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느냐? 하나님에게 참된 믿음이 있느냐? 하나님의 행사를 조금이라도 인정하느냐? 하나님 말씀이 진리요 생명이요 길이라는 점에 대해 그가 속으로 아멘 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서 이렇게 큰 사역을 했는데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하나님의 큰 능력,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찬미할 수 있느냐? (할 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부정하고 하나님이 한 모든 일을 부정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높이 받들고 증거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포섭하고 농락한다. 심지어는 사람들의 마음을 통제하고 우롱하며 하나님 선민을 두고 하나님과 다투려고 한다. 이와 같은 모습들은 모두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결코 인정하지 않고, 또한 인류, 만물이 창조주의 주재 아래에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이런 것들은 지난번에 해부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관점, 그가 지니고 있는 모습과 표출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이런 관점과 모습을 보인다면, 성육신 하나님인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태도는 과연 무엇이겠느냐? 그가 참되게 믿고, 인정하고, 따르고, 순종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존재를 대하는 일에서 볼 때 그가 하나님의 영에 대해 이런 태도를 지니고 있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하나님의 영을 대하는 태도에 비해 더욱 가증스러울 수밖에 없고, 더 뚜렷하고 심각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2.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본질을 부정한다
오늘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하는지 교제해 보겠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렇게 교제하고 폭로하고 해부한 후 너희는 적그리스도 부류의 성품과 모습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느냐? 적그리스도 부류가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한 사역 혹은 하나님이 성육신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말고를 떠나, 그는 사실상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렇다면 이들 부류는 과연 어떤 사람이냐? 정확히 말하면 투기하러 온 불신파이자 바리새인이다. 어떤 이는 겉보기에도 악인이 분명하고, 어떤 이는 겉으로 볼 때는 겸손하고 행동거지도 우아하고 단정하고 고상한데, 이런 자는 전형적인 바리새인이다. 외형적으로 악한 부류, 외형적으로는 악하지 않고 경건한 부류, 이 두 부류가 만약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는다면 그들이 바로 불신파라고 할 수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불신파의 경우 그들이 그리스도를 대하는 관점과 태도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스도의 여러 가지 면을 대하는 모습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런 모습 가운데서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교제하려는 내용이다.
1)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출신을 어떻게 대하는가
그리스도라는 이 특수한 신분을 지닌 보통 사람에 대해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이냐? 우선 많은 이들이 그의 출신은 과연 어떻게 되는지에 관심을 보이지 않겠느냐? 이것이 사람들 관심의 초점이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출신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부터 교제해 보자. 이 방면에 대한 교제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성육신할 때 육신 출신의 여러 면을 어떻게 계획했는지, 이것부터 교제해 보겠다. 다들 알다시피 은혜시대에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가정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가정이었는데, 지금 말로 하면 평범한 서민 가정이었다. 부잣집이나 관리 집안, 배경 좋은 가문도 아니었다. 심지어 예수는 말 구유에서 태어났는데, 이 점은 너무나 뜬금없고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첫 번째로 성육신한 하나님의 출신에 관계된 여러 면을 보면 성육신 하나님이 태어난 가정은 매우 평범했다. 어머니 마리아 역시 평범한 사람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출중한 인물도 아니었고, 특별한 능력이 있다든가 비범하고 특수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얘기할 가치가 있는 것은, 그녀가 불신파나 이방인이 아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며,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목수였다. 목수는 수공업자로 수입은 보통이었으나 부자가 아니었기에 여윳돈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생활은 가난하다고는 할 수 없고 그럭저럭 사는 정도였다. 예수가 태어난 이런 가정은 지금 사람의 수입과 생활 수준으로 가늠해 보면 간신히 중산 계급에 들어갈 수 있겠다. 이런 가정은 인류 사이에서 고귀한 편이냐, 미천한 편이냐? (미천한 편입니다.) 그러니 예수가 태어난 가정은 명문가나 부유하고 이름 높은 집안도 아니었고, 요즘 말하는 럭셔리하고 고급스러운 집안이라고는 더더욱 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부잣집이나 지위 있는 집안 아이는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주위를 에워싸며 옹위해 주지만 예수가 태어난 가정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사치스러운 생활, 높은 지위와는 거리가 먼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무도 주목하거나 거들떠보지 않고, 아무도 떠받들거나 옹위해 주지 않는 아주 평범한 서민 가정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그런 배경이나 사회적 환경에서, 그리스도가 고등 교육을 받고 상류 사회의 각종 생활이나 사상 관점 등에 영향을 받거나 물들 조건이 되었겠느냐? 당연히 그럴 조건이 되지 않았다. 그가 받은 것은 서민 교육이었다. 그는 집에서 성경을 읽고 부모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여러 가지로 볼 때 예수의 출신과 성장 배경은 대단할 것이 없고, 사람들이 상상하듯 고귀한 배경도 아니었다. 그의 성장 환경은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단순하고 일반적인 생활에 의식주도 평범한 사람과 똑같아서 특별할 것이 없었으며, 상류 사회의 특별하고 우월한 생활 조건은 전혀 갖추지 않았다. 이것이 첫 번째로 성육신한 하나님의 출생 배경과 성장 환경이었다.
이번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비록 성별은 지난번과 완전히 다르지만 그 출신은 마찬가지로 아주 평범하고 내세울 만한 지위도 없는 가정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로 평범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지금 이 시대에 평범함은 곧 대중화된 생활 환경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즉, 급여로 생활하며 그럭저럭 사는 수준이었고, 부잣집처럼 그렇게 여유 있는 집은 아니었다. 그리스도가 접한 이들은 평범한 서민들이었고, 그리스도가 접한 생활 역시 평범한 서민들의 생활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별로 특별한 게 없었다. 일반적으로 노동자 가정의 자녀가 악기나 바둑, 서예, 그림을 배울 조건이 되느냐? 상류 사회에서 유행하는 여러 가지 관점을 접할 기회가 있느냐? (없습니다.) 여러 가지 기예를 배울 조건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류 사회의 사람과 일, 사물을 접할 기회는 더더욱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번에 성육신한 하나님이 출생한 가정은 매우 평범하다. 부모는 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직장에 나가 일해서 생계를 유지했고, 생활 조건은 보통이었다. 이런 조건은 현대 사회에서는 가장 평범한 조건이다. 그리스도가 출생한 환경은 이방인들이 볼 때 우월한 조건도 없었고, 가정 배경에서 삶의 질에 이르기까지 내세울 만한 게 없었다. 어떤 명인은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선조들이 모두 교육자에다 고급 지식인들이었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저절로 학자 집안의 기질과 기품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도 이런 가정 배경을 선택했느냐? 아니다. 이번에 성육신한 하나님은 마찬가지로 내세울 만한 가정 배경이나 사회적 지위도 없고, 우월한 생활 환경은 더더욱 없었는데,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다. 왜 성육신 하나님이 굳이 이런 가정, 이런 생활 환경과 성장 배경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얘기는 잠시 제쳐 두고, 이 방면의 의미는 우선 접어 두자. 그리스도가 대학을 다녔는지, 여기에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지 않으냐? 내가 너희에게 내막을 알려 주겠다. 나는 대입을 치르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고 열일곱 살에 집을 떠났다. 내가 대학을 진학했겠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소식이냐, 좋은 소식이냐?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이 옳은 관점이다. 이 일은 내가 지금까지 너희에게 얘기한 적이 없는데, 뭘 감추거나 숨기려고 그런 게 아니라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며, 그런 건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따르는 것과 조금도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비록 성육신 하나님의 출생 배경, 가정 환경, 성장 환경 등 이 몇 가지 요소가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성육신을 인식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크게 관계도 없지만 어째서 여기서 이 몇 가지 문제를 설명하겠느냐? 그건 바로 오늘 해부하려는,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를 대하는 관점 중 하나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성육신 하나님은 내세울 만한 지위나 존귀한 신분, 내세울 만한 가문, 사회적 배경을 선택하지 않았고, 우월한 성장 환경, 걱정 없고 풍족하고 사치스러운 성장 환경은 더더욱 선택하지 않았다. 아울러 고등 교육을 받고 상류 사회를 접할 수 있는 그런 가정 배경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성육신 하나님이 선택한 이 몇 가지 측면을 볼 때, 그것이 그리스도가 하려는 사역에 영향을 주겠느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후기 사역의 과정, 사역의 성질과 성과로 볼 때 하나님 사역의 계획과 절차, 사역 성과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이런 출생 환경을 선택한 것이 하나님 선민이 구원받는 데 더욱 유리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택한 99%가 모두 같은 배경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이 인식해야 할 성육신 하나님의 출신에 담긴 한 측면의 의의이다.
앞서 그리스도의 출생 배경과 환경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해서 사람들이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 계속해서 적그리스도가 성육신 하나님의 출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해부해 보자. 먼저,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출생 환경과 배경을 속으로 은근히 멸시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이냐? 속으로 생각과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관점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최고로 높으신 분이야. 하늘보다 높고 인류를 비롯한 모든 피조물보다 높으시지. 만약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사람들 사이에서 지극히 높으셔야 해.’ 지극히 높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모든 이의 머리를 밟고 서야 한다는 말이다. 지위가 높고 존귀한 대갓집에서 의식주 걱정 없이 살아야 하고, 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야 하고, 절대적인 권위, 권병과 세력이 있어야 하고, 게다가 무척 부유한 재력가여야 하고, 동시에 고등 교육을 받아야 하고, 이 세상에서 인간이 배워야 할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황태자처럼 일대일로 공부하고 귀족 학교도 다니면서 귀족 같은 삶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자식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성육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높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공부하는 교재도 보통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왕이 되기 위해 왔기에 제왕술을 배워야 한다. 인류를 어떻게 다스리고 지배하는지 공부하고, 삼십육계를 배우고, 또한 여러 가지 언어와 악기, 바둑, 서예, 그림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사역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고, 여러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만이 존귀하고 위대하고, 또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데, 그건 그가 충분한 지식과 재능을 갖추고, 또한 사람을 다스릴 독심술(讀心術)을 충분히 갖추었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성육신 하나님의 출신에 대해 이런 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관념을 품은 채 성육신 하나님을 받아들인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한 일을 다시 인식하고 이해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관념과 관점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점을 인식하지 않고, 진리에 순종하는 태도와 원칙으로 그리스도, 성육신 하나님을 인식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관점과 관념으로 그리스도가 하는 모든 말씀을 판단한다. ‘그리스도가 한 이 말씀은 논리에 맞지 않고, 저 말씀은 단어 사용이 부적절하고 문법상으로도 잘못됐어. 딱 보니 그리스도는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아. 저렇게 얘기하는 것은 평범한 백성들이 하는 말 아닌가? 그리스도가 어떻게 저렇게 말씀하실 수 있지? 그리스도를 탓할 수도 없지. 사실 그분도 존귀하고 싶고,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싶지만 방법이 없는 거야. 태어난 가정이 좋지 않으니까. 부모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인데, 아무래도 부모의 영향을 받겠지. 하나님이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지? 그리스도의 말과 행동은 보기에 왜 그다지 우아하고 고귀하지 않지? 어째서 사회의 지적이고 고상한 사람들, 상류 사회의 공주나 왕자와 같은 언행이 없지? 그리스도의 말과 행동이 어쩜 그의 신분과 이렇게 맞지 않아 보이지?’ 적그리스도는 이런 관점과 관망적인 시선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가 하는 말, 그리스도가 하는 모든 일을 바라보고, 그리스도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그리스도의 언행을 바라본다. 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관념이 생겨서 그리스도에게 순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하는 말씀도 바르게 대하지 못한다. 그는 말한다. “이렇게 평범한 분, 이렇게 보잘것없는 분이 제 구세주가 되실 수 있을까요? 저를 축복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이분에게서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제 바람과 소망이 실현될 수 있을까요? 이분은 너무 평범해서 하찮게 보일 정도예요.”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가 평범하고 일반적이라고 느껴질수록, 그리스도가 너무 정상적이라고 느껴질수록 속으로 자신이 높고 크고 존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몇몇 적그리스도들은 비교하기 시작한다. ‘보아하니 나이도 어리고 잘 꾸밀 줄도 모르시네. 사람들이랑 얘기할 줄도 모르고. 남들하고 말할 때 넘겨짚는 말도 할 줄 모르고 왜 곧이곧대로 말하지? 당신이 말씀하는 것이 왜 하나님답지가 않지? 어떤 점이 당신이 하나님임을 보여 주지? 당신이 하는 일, 당신의 언행, 당신의 차림새가 어디가 하나님다운가? 내가 볼 땐 닮은 데가 전혀 없어. 그리스도는 당연히 고등 교육을 받아야 하고, 성경을 줄줄 외우고, 언변이 뛰어나야 하는데, 당신은 늘 했던 말을 반복하고, 어떤 때는 단어 사용도 부적절해.’ 적그리스도 부류는 그리스도를 수년간 따르고도 속으로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물론, 그리스도가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이는 곧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성육신 하나님인 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을 속으로 더욱 멸시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에게서 어떤 특별한 점을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또한 그리스도의 출신이 아주 평범하고 일반적이어서 사회에서나 인류 가운데서 자신에게 어떤 혜택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자신이 아무런 이익도 누리게 해 줄 것 같지 않다는 이유로, 이들은 거리낌 없이, 공개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누구누구 집 자식이잖아요? 내가 당신을 판단하는 게 어때서요? 당신이 나를 어쩔 건데요? 당신 집이 대단한 집이고, 부모가 고위직이라도 되면 내가 그래도 당신을 두려워하겠지만 당신이 이런데 내가 당신을 겁낼 필요가 있나요? 그러니 당신이 그리스도라고 해도 하나님이 증거하는 성육신 하나님이라고 해도 나는 겁 안 나요! 나는 계속 뒤에서 당신을 판단하고 당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멋대로 평가할 거고, 할 일 없으면 당신 가정, 출생 지역을 연구할 겁니다.” 이런 건 다 적그리스도가 트집을 잡기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들은 결코 진리를 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으면 계속해서 판단하고 반발한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가 선포한 것이 모두 진리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냐?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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