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조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7) 제 3 부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대하는 주된 속셈과 태도는 바로 본분 이행의 기회를 이용해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자신이 원하는 이익을 얻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가정을 버리고, 세상에서의 앞날을 포기한 채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데 당연히 뭔가 얻고 받는 게 있어야지. 그래야 공평하고 합리적인 거야. 만약 본분을 이행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진리를 좀 얻었다고 할지라도 수지가 맞지 않아. 성품 변화를 이뤘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실속은 없고. 구원받는다고 하지만, 누가 확인할 수 있겠어!’ 이런 불신파들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본체만체하고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으며, 부정하는 태도를 취한다. 본분을 대하는 적그리스도 부류의 태도와 속셈을 볼 때, 그들은 분명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신파, 투기꾼이며, 사탄에 속하는 존재이다. 너희는 사탄이 충심을 다해 본분을 이행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만약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본분’을 다한다면, 그 본분에는 따옴표가 붙어 있을 것이다. 수동적으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고, 하나님에게 배치되고 이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 부류는 적그리스도 본질이 있고 진리를 좋아하지 않으며 싫어하기 때문에, 더욱이 사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피조물의 본분을 무상으로, 무조건 이행하지 않고, 또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추구할 수도 얻을 수도 없으며, 하나님 말씀의 요구대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이런 본성과 본분을 대하는 이런 태도, 그리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나타내는 갖가지 모습을 보면 적그리스도 부류는 본분을 소홀히 대하며, 본분 이행 과정에서 언제 어디서나 악을 저지를 수 있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본분 이행 기간에 보이는 두드러지고 주된 특징은 무엇이냐? 고집을 부리고 자기 멋대로 굴며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일을 할 때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며, 뒷일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본분 이행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더 많은 사람을 통제할지만 궁리한다. 또, 자신들이 본분 이행 과정에서 고생하고 대가를 치렀고, 자신들은 하나님에게 상과 면류관을 요구할 밑천과 자격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에게 알려 줄 생각뿐이다. 자신들의 야심과 욕망, 그리고 복받으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적그리스도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앞날과 운명을 위해 계산한다. 여태까지 자기가 몇 년 동안 본분을 이행하며 얼마나 고생했는지,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버리고 대가를 치렀는지, 얼마나 많은 정력을 소모하고 몇 해의 청춘을 바쳤는지, 이제 상과 면류관을 얻을 자격이 있는지 등을 계산하는 것이다. 또 지난 몇 년간 본분을 이행했는데 밑천을 충분히 쌓은 건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눈에 든 총아라고 할 수 있는지, 자신이 하나님에게 상과 면류관을 얻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는지 등을 계산한다. 그는 본분 이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그렇게 가늠하고 계산하고 계획하는 동시에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자신에 대한 형제자매의 평가와 말을 관찰한다. 물론, 그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상부에서 그라는 사람의 존재를 아는지, 그가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등이다. 이 밖에, 그가 더더욱 관심을 갖는 것이 있으니, 바로 그에 대한 상부의 시선과 말, 평가이며, 고생하고 대가를 치른 그의 ‘심혈’에 대해 상부에서 이해하는지, 그가 오랜 세월 따르면서 겪은 고통과 환난에 대해 모두 알고 파악하고 있는지, 그리고 하늘의 하나님은 그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등이다. 그들은 수중의 본분을 바쁘게 이행하는 한편,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계산하며, 이와 동시에 자신이 재난을 피할 수 있을지,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 미지의 그 면류관과 복을 얻을 수 있을지 다방면으로 정보를 얻어 가늠한다. 이는 그들이 마음속 깊이 늘 계산하는 것이자, 매일 매 순간 계산하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인지, 자신이 과연 얼마나 많은 진리를 이해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진리 가운데서 얼마나 실행할 수 있는지, 자신이 진실한 성품 변화를 이뤘는지, 하나님을 위한 모든 행동에 진심이 있는지, 불순물은 없는지, 거래하고 요구하는 마음은 없는지, 자신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얼마나 많은 패괴를 드러냈는지, 매일 이행하는 모든 본분과 하는 사역이 진리 원칙을 따른 것인지, 본분 이행이 합격 기준에 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했는지 등을 묵상하거나 돌아보는 법이 전혀 없다. 그들은 오직 자기가 미래에 복을 받을 수 있을지, 어떤 종착지를 맞이할지만 계산하고, 자신의 이익과 득실만 계산할 뿐, 진리와 성품 변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데에는 어떤 정력이나 공도 들이지 않는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패괴 성품과 자신이 걷는 그릇된 길을 결코 반성하거나 인식하거나 해부하지 않으며, 또 어떻게 자신의 그릇된 관점을 바꿀지 고민하는 일도 없다. 그들은 자신이 진리를 위배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숱한 악행을 저지른 것 때문에 증오를 느끼지 않고, 패괴 성품으로 사는 것 때문에 스스로를 증오하지도 않으며, 자기가 지난날 걸었던 잘못된 길과 행했던 방해와 교란 때문에 후회하는 법도 없다. 그들은 본분 이행 과정에서 자신의 결점과 연약한 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부분, 패괴 성품을 극력으로 감추는 것 외에, 온 힘을 다해 스스로를 과시함으로써 두각을 드러내려고 하고, 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 선민들에게 그의 재능과 은사, 능력을 보여 준다. 그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기는 면류관과 상을 얻을 수 있는 밑천과 자신이 있다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 부류의 이성은 건전하지 않다.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 주어도, 아무리 분명하게 진리를 교제해 주어도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바른길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사악한 성품과 본성, 그리고 이 부류의 본성 본질 때문에 그들은 마음속 깊이 도대체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인지, 도대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분별해 내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죽어라 붙잡고, 이러한 것들을 진리로,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가장 정의로운 사업으로 여긴다. 그들은 사람이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하면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진리를 알지 못하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복은 어떤 것인지 모른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을 대할 때는 그의 자질이나 은사, 재능, 밑천을 보는 게 아니라 그가 얼마나 많은 진리를 실행하고 얻었는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를 본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는 진리로, 적그리스도는 절대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가장 어리석은 면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분을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는 무엇이냐? 그들은 본분 이행을 하나의 거래로 여긴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많은 대가를 치르고, 하나님 집을 위해 큰 기여를 하며, 하나님 집에서 오래 고생한 사람은 마지막에 복과 면류관을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논리이다. 이 논리가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을 바로잡기가 쉽겠느냐? 쉽지 않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전혀 구하지 않으며, 그릇된 길을 걷는다. 그래서 하나님과 거래하는 그의 관점은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결국,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진리임을 믿지 않는다. 그는 불신파이고, 복을 받으려고 투기하는 자이다. 불신파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데, 이는 황당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위해 고생하고 대가를 치름으로써 하나님과 거래하여 복을 얻어 내려고 하니, 더더욱 황당한 일이다.
적그리스도는 오직 복과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그가 이런 길을 걷는 것은 누가 압박해서도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 말씀이 그를 잘못 이끌어서도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약속을 주었지만, 이와 동시에 많은 진리도 베풀어 주고 많은 요구도 했다.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상 인성과 이성을 지닌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이런 복을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동하고 올바른 길을 걸어야지, 바울의 길을 걸어선 안 돼. 사람이 바울의 길을 걷는다면 철저히 끝난 거야.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종해야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모든 약속과 축복, 앞날, 운명과 관련이 있는 거야. 하나님의 이 말씀들을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거기에 순종하지도 않는다면,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축복은 사람과 무관한 거라고.’ 정상 인성과 이성을 지닌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는 왜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사탄이고 마귀이며, 정상 인성의 이성이 없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로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싫어하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지 않는다. 그는 긍정적인 사물을 싫어한다.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에 따라 실행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는 늑대더러 양처럼 풀을 뜯어 먹으라는 것과 같다. 늑대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먹잇감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일 때 어쩔 수 없이 한두 입 풀을 뜯어 먹을 수는 있겠지만, 먹잇감이 생기는 순간 늑대의 첫 번째 선택지는 분명 고기가 될 것이다. 이는 늑대의 본성이 결정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이익에 휘둘려 일부 좋은 행위를 보이고 대가를 치르며 좋은 태도를 취하기도 하지만, 이익에 대한 추구와 욕망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본분 이행 과정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개인적인 이익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본분 이행을 복받는 밑천으로 삼는 방법이다. 일단 그 희망이 사라지고 그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순간, 그들은 언제 어디에서든 본분을 포기할 수 있다. 그럴 때 네가 그에게 본분 이행이 얼마나 좋은 일이고, 얼마나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라고 말해도 그가 듣겠느냐?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포기하고 떠나기로 결정할 때, 사람들은 그에게 “떠나지 마세요. 본분을 이행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세상으로 돌아가면 고통스러워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요. 괴롭힘과 고통만 받게 되고 진리를 얻을 수 없어요. 구원받을 기회도 사라지고요.”라고 권유한다. 이 말에 그는 떠날 뿐만 아니라 난처함에 울기까지 했다. 왜 울겠느냐? (억울한 것입니다.) 그건 사실이다. 그럼 무엇이 억울하겠느냐? (자기가 무척 많이 고생하고 무척 많은 대가를 치렀는데도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억울한 것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억울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이 이렇게 큰 사역을 행했는데도 그는 한 번도 감동받은 적이 없고, 그것 때문에 눈물 흘려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권유를 듣고 울기 시작한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왜 말하지 않겠느냐? 똑바로 말하면 되지 않겠느냐? 왜 울겠느냐? 왜 솔직하게 말하지 않겠느냐? 그의 생각은 입에 올리기 민망하며, 그 자신조차도 부끄러워서 차마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날, 그가 하나님에게 한 맹세는 경천동지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하냐? ‘그때 그러지 말걸. 나는 왜 그렇게 바보 같았을까? 진작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러지 않는 건데!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게 좋다고 하니까 믿었지. 게다가 가정과 일자리까지 버리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숱한 고생을 했어. 핍박받기도 하고 잡히기도 하면서 말이야. 그렇게 몇 년간 본분을 이행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 그는 억울하고 괴로운 마음이 들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었다고, 사기당하고 기만당했다고, 속아 넘어갔다고 말이다.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은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한시바삐 내보내야 합니다.) 더 권유해야겠느냐? (아닙니다.) 더 권유했다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떼를 쓰며 행패를 부릴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절대 권유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집은 아름다운 가나안 땅이고, 깨끗한 땅이다. 사람은 하나님 집에 와서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말씀의 심판,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공급과 도움, 인도와 축복을 받아들인다. 하나님은 친히 사역하고 목양하며, 사람이 대가를 좀 치르고 고생을 좀 한다고 할지라도 가치가 있다. 이 사악한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품 변화를 이루고 구원받기 위해 사람이 행하는 그 모든 일은 다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볼 때, 만약 복과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 면류관과 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은 무가치하고 어리석은 행위이자 속아넘어간 모습이다. 지난날 얼마나 큰 다짐을 하고 얼마나 대단한 맹세를 했든 전부 무효이며, 소용이 없다. 이렇게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며 본분을 이행했는데 마지막에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일찌감치 이 ‘분쟁의 땅’을 떠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을 부득이한 일, 밑천을 얻어 내고 면류관과 상을 받아 낼 조건으로 여긴다. 출발점 자체가 잘못되었으니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흐지부지되고, 힘을 써도 끝까지 쓰지 못한다. 이와 동시에 이 부류의 본성 본질 때문에 그들은 본분 이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진리 원칙을 위배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며,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만 저지른다. 그럼 그들이 이행하는 본분은 무엇이 되겠느냐? 하나님의 눈에 그것은 선행이 아니라 악행, 심지어 끝없는 악행이다. 이런 결과에는 근본 원인이 있다.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결코 믿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을 뽐내고, 권력을 잡으며, 사람들을 통제하고 사람들의 행위와 생각을 통제하고 심지어 사람들의 모든 것을 통제해 이용할 기회를 찾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 부류 중 일부는 숱한 악행을 저질러 출교되었지만, 비교적 간사하고 위장에 능한 일부는 여전히 하나님 집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들이 하나님 집에 머물고 있다고 하겠느냐? 이들은 눈에 띄는 악을 저지르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는 자기 분수를 지키며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 시키는 대로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볼 때,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본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허비하고 때우고 있다. 그러면서 끝까지 시간을 때우면 이기는 거라고, 마지막에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어떤 부류겠느냐? 이는 투기꾼이지,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서 악을 행했지만, 하나님 집 행정 법령에 따라 제명되고 출교될 정도는 아니다. 그들은 계속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데, 사실 그들 자신도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다. 하나님 집에서 그들을 제명하거나 출교시키지 않은 이유가 하나님 집에서 그들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그들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여러 이유 때문에 출교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출교되지 않은 이들 중 일부는 적그리스도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이 사람들은 아직 기회가 없었을 뿐, 그 본성 본질을 볼 때 지위와 권력이 생기는 순간 바로 수많은 악을 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 하나님 집에서 제명되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이 이행하는 본분은 항상 득보다 실이 많다. 그들은 수시로 나쁜 짓, 하나님 집의 이익에 피해를 주는 짓을 저지른다. 이 사실은 그들 자신도 알고 있지만, 결코 뉘우치지 않고, 자신이 틀렸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후회하는 건 고사하고, 마음속으로 어떤 내적 상태가 생기겠느냐? ‘하나님 집에서 출교시키지 않는 한 나는 여기 눌어붙어 있을 거야. 마지막까지 되는대로 살아가야지.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을 거야. 나한테 뭘 시키든 나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거야. 기분이 좋으면 좀 더 하고 기분이 안 좋으면 좀 적게 해야지. 그리고 남들의 발목을 잡고, 소극적인 것과 관념, 판단하는 말을 유포할 거야. 언젠가 내가 제명되고 출교되면 복을 받을 수 없을 테니, 희생양 몇 명을 찾아서 물고 늘어져야지.’ 이는 악인 아니겠느냐? 그는 분별력이 없는 사람, 수시로 연약해지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는 사람,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 음란한 짓을 좋아하는 사람, 이방인 같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끌어들이고, 뒤에서 소극적인 것을 퍼뜨린다. 이런 행동이 어떤 성질인지 그가 모르겠느냐?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겠느냐? (본성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성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은 표면적인 현상이다. 실질적으로 그는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그는 물귀신 작전을 펴서 다른 사람들과 동귀어진함으로써 하나님께 복수하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악독한 심리를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날이 길지 않음을, 언젠가는 제명될 것임을 알고 있으며,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자신이 저지른 일들의 성질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돌이키거나 회개하거나 손으로 행하는 악을 내려놓기는커녕 갈수록 더 심해져서 더 많은 악인을 끌어들여 함께 악을 행하려 한다. 심지어는 소극적인 것과 관념을 유포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본분을 포기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끼치게 한다. 이것은 복수의 성질을 띠고 있다. 그 의미인즉슨, ‘나는 더 이상 못 하겠어. 언젠가 하나님 집에서 제명될 거야. 그러니 당신들만 잘 살게 둘 수는 없지. 하나님 집이 잘되게 둘 수도 없고!’라는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그에 대한 어떤 결단도 내리지 않았는데 그는 먼저 선수를 치기 시작한다. 이는 악인이 하는 짓 아니겠느냐? 그는 ‘나는 복받으려는 희망을 잃었어. 예전에 내가 한 일들에 대해 당신들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고. 당신들이 출교시키지 않아도 나는 알아서 포기할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하는 게 자기 객관화가 되는 것이고 이성적인 행동이며 현명한 처사라고 여긴다. 그는 “제가 복을 받게 해 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제가 복을 얻지 못한다면, 저는 회개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뒤에서 당신의 발목을 잡고 소극적인 것과 관념, 궤변을 퍼뜨릴 거예요. 내가 복을 받지 못했으니 다른 누구도 복받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겁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악독하지 않으냐? 어떤 적그리스도는 심지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다 하나님 집에서 이용당하는 대상입니다. 우리는 너무 어리석었어요!”라는 말을 퍼뜨리기도 한다. 자신이 복을 받지 못할 것 같자 소극적이고 어리석으며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만 찾아 이런 것들을 퍼뜨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란하는 성질이 들어 있지 않겠느냐?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 집에서 발붙이지 못하고 복을 받지 못하며 언젠가 제명될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손으로 행하는 악을 버리고 하나님에게 죄를 자백하며 회개하거나 진심으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함으로써 지난 과오를 메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심하게 하나님 집에서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고 다른 사람들의 본분 이행을 교란하며, 하나님 집 사역을 망치고 교란한다.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그처럼 악을 행하고 소극적으로 변해 물러나며 본분 이행을 포기하게 함으로써 복수하려는 목적을 달성한다. 이는 악인이 하는 짓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하늘의 막연한 하나님이다. 그는 사람의 눈에 보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사역하는 지상의 하나님을 사람으로 여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늘 막연한 하나님을 믿지만, 결국에는 그가 숭배하는 사람을 하나님으로 여겨 순종한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그 사람에게 순종한다. 하나님을 사람으로 여긴다는 말은 무슨 의미겠느냐? 막연한 하나님을 믿을 때, 그는 그 막연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줄 수 있다고, 그를 다음 시대로 이끌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그에게 상과 면류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지상에 있는 실제의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봐도 하나님 같지가 않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오직 하늘의 하나님만이 참하나님이라고 믿고, 눈에 보이는 이 실제의 하나님은 너무 보잘것없고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믿을 만한 대상으로 보이지 않기에 이런 하나님을 사람으로 취급한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사람으로 여기면서 어려움이 생겨난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와 약속을 주는 것 말고 또 뭘 할 수 있지? 아무리 봐도 하나님 같지가 않단 말이야. 또 아무리 봐도 사람에게 뭔가 이득이나 이익을 가져다줄 것 같지가 않고. 그는 사람이야. 이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얼마간 기대하는 바가 있고,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부분도 있지. 하지만 만약 사람을 믿는다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이득과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겠어? 사람의 기대와 의지가 그에게서 이루어질까?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그는 한 명의 사람이니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그의 앞에서 나는 해야 할 말과 해야 할 일을 모두 할 수 있다고.’ 악인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대한다.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때, 그는 마음속으로 더없이 위대하고 신성하고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을 상상한다. 하지만 지상의 하나님을 볼 때, 그의 상상과 관념은 무너진다. 그럴 때 그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을 사람으로 대한다. 그리고 그 후,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일말의 존중마저 사라진다. 그러니 두려움이나 경외심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다 없어지면 간이 커진다. 악인의 마음속 방어선, 경계심까지 사라지니, 어떤 일이든 다 저지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끝까지 믿어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적그리스도는 하늘의 하나님을 믿기는 쉬워도 땅의 하나님을 믿기는 무척 힘들다. 바울이 그 산증인이다. 그리스도를 끝까지 믿은 그는 어떤 결과를 맞이했느냐? 그가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추구한 목표는 마지막에 무엇으로 변했느냐? 그는 그리스도가 되고자 하고 그리스도를 대신하고자 했다. 또 지상의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면류관과 복을 얻고자 했다. 그 적그리스도들은 바울과 완전히 똑같다. 그들은 지상의 하나님을 사람으로 여기는 한편, 하늘의 보이지 않는 막연한 하나님은 기만해도 되는 존재, 함부로 우롱하고 해석하고 관념을 갖고 대적해도 되는, 마음속 가장 위대한 하나님으로 여긴다. 이것이 바로 불신파, 적그리스도가 하늘의 하나님과 지상의 하나님을 대하는 차이이다. 그들은 지상의 하나님에게 이런 태도를 취하기에 본분을 대할 때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 이 모습에는 그들이 지상의 하나님을 바라볼 때, 본분 이행의 흥미가 점점 줄어들고,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는 염원도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 포함된다. 이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데 흥미를 잃고, 소극적인 생각과 모습을 갖게 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 부류는 마지막에 굳게 서지 못한다. 교회에서 그들을 제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떠나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가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본 적그리스도는 무척 제멋대로였고, 진리를 추구하지도, 실행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충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참답게 대하지 않고, 업무에 몰입하지도 않는 등 매우 게으르게 굴었지요. 거드름을 피우기도 했고요. 매일 먹는 것, 입는 것만 신경 쓰고, 음란한 짓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출교될 때, 그는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후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본분 이행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나아가 자신의 본분을 존중하지도, 아끼지도 않은 채 대충 건성으로 일하고 시간만 때운다. 그럼 그에게 그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면 안 된다고 교제해 준 사람은 없었느냐? (있었습니다. 저도 그에게 교제한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는 듣지 않았고,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더 말해 보아라. (예전에 계속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한 감독이 있었습니다. 촬영한 장면 대부분이 적절하지 않았지요. 게다가 교란하고 방해하기까지 했습니다. 얼마 후, B팀으로 보내진 그는 본분을 이행하지는 않고 매일 일해서 돈을 버느라 바빴고 이방인들과 몰려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제명되었지요. 사실, 교회에서 그를 제명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가 알아서 나갔을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마지막에 발붙이고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 적그리스도들의 성품 본질은 동일하다. 모두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싫어하고 불의를 좋아하며 야심과 욕망이 무척 크고, 본분을 놀이처럼 대하면서 건성으로 임한다. 또 행동이나 품행이 부정하고 바르지 않으며 본성이 사악하고 흉악하다. 그들이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복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을 믿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이방인과 전혀 다른 점이 없는, 영락없는 불신파이자 이방인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본질이다. 그로 하여금 이방인처럼 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하면 그는 매일 형벌이라도 받는 양 괴롭게 살아갈 것이다. 그는 성실하고 착실하게 하나님 집에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그러느니 속세에서 이방인들과 어울려 다니며 자유롭게 사는 게 낫다고, 그런 삶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득이한 결정이다. 그것은 복받으려는 속셈에 지배된 것이고,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본성 본질을 볼 때, 그들은 결코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지 않으며, 나아가 하나님이 이룰 수 있는 일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부정할 여지 없는 불신파이자 투기꾼이다. 그들이 어디 본분을 이행하러 온 자들이겠느냐. 그들은 악을 행하고 교란하며 거래하러 온 자들이다. 그러니, 적그리스도의 이런 모습을 종합해 볼 때, 이들이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 집 사역에 이롭겠느냐, 아니면 해롭겠느냐? (해롭습니다.) 적그리스도 본질을 지닌 사람이 약간의 은사와 재능을 갖추고, 하나님 집에서 나쁜 짓을 저지르거나 방해하지 않으며 착실히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만약 네가 적그리스도에게 “당신같이 예전에 악을 저지른 사람은 향후 반드시 앞날과 운명을 얻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도 당신에게는 은사가 있으니 하나님 집에서 열심히 힘쓰십시오!”라고 말한다면, 그가 화복을 따지지 않고 기꺼운 마음으로 힘을 쓰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인성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그런 인성을 지녔겠느냐? (아닙니다.) 그들의 성품은 흉악하다. 그는 ‘나한테 이득과 약속, 허락을 주지 않는데 내가 당신을 위해 힘을 쓸 것 같아? 꿈도 꾸지 마. 어림도 없으니까!’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흉악한 성품이다. 이는 적그리스도 부류가 본분과 하나님, 하나님의 요구를 대할 때의 종합적인 모습이다. 말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저를 높여 주셔서 이 은사를 주셨으니 저는 하나님을 위해 바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적그리스도가 있느냐? (없습니다.) 그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저를 이용하고 싶나요? 제 은사와 재능이 마음에 들었겠죠. 당신이 저에게서 잇속을 차리겠다면 저한테 이득 되는 것을 줘야 합니다. 저를 이용할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높여 줌이고 하나님이 준 기회이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이용하는 거라고 여긴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한때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방해하고 교란하며 나쁜 일을 좀 저지른 후 격리되어 반성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한동안 반성한 후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겁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순종하는 법,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법,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법을 배우고, 악을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후 교회에서 본분을 안배하면 그는 통곡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마음속 깊이 하나님이 준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긴다. 다시금 본분 이행의 기회를 얻은 데 대해 영광이라고, 소중히 여기겠다고, 다시는 그것을 잃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예전보다 더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인식하고 얼마간 변화를 이룬다. 비록 또다시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수 있고, 소극적 상태에 빠지고 연약해지며 본분을 팽개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마음가짐과 태도를 볼 때, 그는 이미 변화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일들을 증오하고, 그 일에서 얼마간 인식을 얻었으며, 진리를 받아들이고 또 어느 정도 순종하게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집에서 다시 그에게 본분을 이행하라고 했을 때 거부하거나 미루거나 반항하지 않고, 더욱이 안 좋은 말을 하지도 않고,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하나님이 그를 버리지 않았다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다시 생겼으니 소중히 해야 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는 태도 면에서 이미 큰 변화를 이뤘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는 대상이다.
적그리스도는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과 어떤 차이가 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려고 한다. 그는 권력과 이익을 얻으려고 추구하고, 자기 뜻대로 하고자 한다. 만약 권력과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본분을 이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 후 하나님 집에서 교체되고 격리되거나 제명되면 그가 진실로 회개하겠느냐? 그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저를 회개시키면 이용하기 좋은가 보죠? 이용할 수 있으면 데려가고, 이용할 수 없으면 차 버리는 거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차 버린다니? 네가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면 하나님 집에서 네게 처분을 내리겠느냐? 네가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하는데, 하나님 집에서 함부로 네게 처분을 내리겠느냐? 방해하고 교란하며 악을 행해 교회 사역에 손실을 주었기에 하나님 집에서 처분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받아들이거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식하기는커녕 원한을 가득 품은 채 자기는 이득을 못 보고 권력을 얻지도 못했다고, 괴롭힘당하고 학대받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본분 이행의 기회를 주면, 그는 마음속으로 감격하고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기는 고사하고 하나님 집이 자신을 이용한다고 반박한다. 하나님 집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기는커녕 사람들이 자기를 괴롭히고 차 버렸다고, 학대했다고 여기며 원한으로 가득 차 더는 본분을 이행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더는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려 한다. 또 그는 본분을 이행하는 모두가 하나님 집에서 이용당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그릇된 말이냐! 여기에 진리와 인성, 이성에 부합하는 말이 한 마디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의 마음은 혈기와 흉악함, 원망, 거래 심리, 나아가 개인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그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나님 집이 그에게 내리는 모든 처분과 하나님이 그에게 배치한 모든 환경에 대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혈기로 대한다. 그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태도로, 또 사탄의 방식과 논리로 이 모든 것을 대하기에 마지막에 진리를 얻지 못하고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체되거나 본분이 조정되고, 심지어 격리되거나 제명된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진정으로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소행을 통한하지만,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적그리스도 부류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기는커녕 마음이 증오로 가득 찬다. 이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원한과 비방, 판단, 정죄가 생겨나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모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결말의 근원으로, 그들의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깨닫는 것,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는 것을 다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이번 생에는 하나님 집에서 제명될 테고 내세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너희는 이런 일을 간파할 수 있겠느냐?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발견한다면, 내가 한 말에 근거하여 대조할 수 있겠느냐? 적그리스도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무엇이냐? 그들은 진리를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지 않는다. 또 어떤 일이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인정하거나 회개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분명 사탄에게 속하는 자, 멸망의 대상이다.
너희는 내가 폭로한 적그리스도의 각종 표출, 특징, 행동을 대조해 보아야 한다. 본분 이행 과정에서 너희 또한 당연히 이런 특징이나 표출, 행동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적그리스도와 다른 부분은 무엇이냐? 너희는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느냐? (그렇습니다.)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은 가장 귀한 점이다. 너희는 길을 잘못 가고, 그릇된 일, 어리석은 일을 했을 때, 과오를 뉘우칠 수 있느냐? 회개할 수 있느냐? (그렇습니다.) 회개하고 뉘우칠 수 있는 것은 가장 소중하고 귀한 점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하필 이 점을 갖추지 못했다. 오직 하나님에게 구원받는 사람만이 이런 점을 갖추고 있다. 어떤 점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느냐? 첫째, 하나님이 진리임을 믿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너희는 이렇게 할 수 있느냐? (네.) 이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적그리스도는 갖추지 못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너희는 여기에서부터 어려워질 것이다. 넷째, 모든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되, 논쟁하거나 변명하거나 변호하지 않고 이유를 대지 않으며 원망하지 않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절대 이렇게 할 수 없다. 다섯째, 거역하거나 과오를 저지른 후 회개하는 것이다. 너희에게 이 항목은 약간의 난이도만 있을 뿐이다. 사람은 과오를 저지른 후 한동안 반성하고 구하며, 괴로워하고 소극적 상태에 빠지고 연약해진 후에 자신의 패괴 성품을 조금씩 인식하게 된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1~2년이 걸릴 수도 있고,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사람은 마음속으로 철저히 인식하고 신복해야 진실로 회개할 수 있다. 이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회개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이 점을 갖추지 못했다. 악행을 저지르고 3~5년, 10~20년이 지난 후 옛날 일을 들먹이지 않는 적그리스도가 있더냐?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네가 그를 만난 이후로 그는 항상 자신의 논리를 펼 것이다. 그는 늘 자신의 악행을 인식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심지어 전혀 뉘우치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와 패괴된 보통 사람의 차이이다. 적그리스도는 왜 뉘우치지 않겠느냐? 그 근원은 어디에 있겠느냐? 그는 하나님이 진리임을 믿지 않기에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이는 구제할 수가 없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질로 결정되는 것이다. 내가 적그리스도의 갖가지 모습을 해부하는 것을 듣고 ‘끝장이야. 나한테도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잖아. 그럼 나도 적그리스도인 것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분별력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 너에게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네가 적그리스도와 다른 점은 너에게는 그래도 긍정적인 것이 있다는 것이다. 너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수 있으며, 변화할 수 있다. 이렇게 긍정적인 것들이 너로 하여금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벗어 버리고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어 구원받게 한다. 이는 희망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 희망이 있는 것이다!
너희는 체험 간증문을 쓰면서 무척 힘들어하고, 제대로 써내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체험한 후에야 체험 간증문 한 편을 써내고, 어떤 사람은 10~20년간 믿은 후에야 체험 간증문 한 편을 써내는데, 그것도 그간 겪은 일들의 정수를 종합한다. 한편, 하나님을 30년 동안 믿고도 어떤 진실한 체험적 인식도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야겠느냐? 내가 입이 닳도록 여러 번 말하고 이야기하고 되풀이하면 너희는 인내심을 갖고 내 교제를 많이, 열심히 듣고 분별력을 키우며, 각 진리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여라.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는 사람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적그리스도 본질이 있는 사람은 또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이 둘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면 실행의 길이 생길 것이며, 이와 동시에 분별력이 생길 것이다. 자신의 패괴 성품을 분별하고 적그리스도 본질을 분별할 수 있으면, 적그리스도 부류를 만났을 때 바로 분별하여 폭로하는 한편, 함부로 구는 행위와 행동을 제지하고 제약할 수 있으며, 적그리스도의 악행이 교회 사역에 주는 손실을 피하거나 줄일 수 있다. 그러지 않고, 이해 능력이 떨어지고 분별력이 없다면, 진리를 참답게 대하지 않고 늘 도리만 이해할 뿐 사람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주변의 적그리스도를 분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좋은 리더로 여겨 따를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자세히 따져 보아라. 적그리스도의 행동이 하나님 집에 가져다준 것은 이익이 크냐, 아니면 피해가 크냐? 자세히 따져 보아라. 그 적그리스도들이 하나님 집에서 일하면서 표면적으로 몇 가지 좋은 일도 했겠지만, 전부 피해가 이익보다 많고 득보다 실이 크다. 그들이 한 좋은 일은 사실 더 큰 우환으로 이어지며, 이는 교회 사역에 득보다 실이 된다. 이들은 하나님 집에서 사탄의 심부름꾼 역할을 맡는다.
2020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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