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조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7) 제 1 부

2. 적그리스도의 이익

4) 앞날과 운명

지난 시간에는 적그리스도의 이익 중 네 번째, ‘앞날과 운명’을 교제하면서 이 항목을 다시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이 다섯 가지를 복습해 보아라. (첫 번째는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가’였고, 두 번째는 ‘어떻게 본분을 대하는가’였으며, 세 번째는 ‘책망과 훈계를 어떻게 대하는가’였고, 네 번째는 ‘봉사자를 어떻게 대하는가’였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교회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어떻게 대하는가’였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첫 번째 항목인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관해 교제하였다. 우리는 먼저 ‘깊이 파고들다’라는 말로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주된 태도를 폭로했다. ‘깊이 파고들다’는 적그리스도 부류가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주로 보이는 기본적인 태도이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연구한다. 또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고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道)로 여겨 받아들이거나 대하지 않는다. 진리를 구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로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게 아니라 늘 자신의 욕망과 야심, 앞날과 운명을 목표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자신이 원하는 종착지와 앞날, 운명을 찾는다.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주된 태도는 항상 자신의 앞날, 운명과 연결 짓는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로 볼 때, 이 부류 사람의 본성 본질은 하나님 말씀을 진실로 믿고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분석하며, 하나님 말씀 속에서 축복과 이득을 찾고 크게 잇속을 차리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로 볼 때,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믿을 것 같으냐? 그들이 하나님에게 진실한 믿음이 있겠느냐? 본질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에게 진실한 믿음이 없다. 그럼 그들은 왜 하나님 말씀을 받들고 읽겠느냐? 그들의 본성 본질, 속셈, 욕망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진리를 얻고, 성품 변화의 길을 얻어 구원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을 찾겠느냐? 비밀과 천기(天機), 대단한 도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묘한 지식을 찾는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이 부류의 태도와 본성 본질로 볼 때, 그들은 부정할 여지 없는 불신파임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좋은 종착지와 앞날, 운명뿐임을,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갖가지 기회와 길을 찾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복받으려는 욕망과 야심을 충족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부류는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거나 그들이 지켜야 하는 도로 여기지 못한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이런 태도를 보인다. 그럼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이 인류에게 요구한 가장 기본적인 내용,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에 대해 그들은 또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오늘 우리는 두 번째 항목인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본분을 대하는가’에 관해 교제함으로써 적그리스도가 본분 이행 측면에서 어떤 모습과 태도를 보이는지 폭로하도록 하겠다.

(2)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본분을 대하는가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태도로 대하지 않기에 하나님 말씀 중 인류에게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라고 요구한 항목도 당연히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로 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부탁한 본분을 거부하면서 이행하지 않으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복받을 기회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렇게 일종의 거래가 생성된다. 어떤 거래겠느냐? 그들은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으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앞으로 천국에서의 복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복받을 기회를 잃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 그리고 여러 차례의 교제와 설교를 통해 이런 정보를 얻은 후, 마음속 깊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는 욕망과 관심을 갖는다. 이런 욕망과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있다는 의미겠느냐? 적그리스도 부류의 본성 본질을 볼 때 그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럼 그들은 또 어떻게 자신의 본분을 다하겠느냐? 이와 관련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장부가 하나씩 있을 것이고, 그 장부 안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적혀 있을 것이다. 그럼 적그리스도는 마음속 장부에 어떻게 계산해 놓겠느냐? 그들은 아주 자세히, 정확하게, 제대로, 열심히 계산한다. 그것은 혼란스러운 장부가 아니다.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정할 때 그들은 먼저 이렇게 계산한다. ‘지금 내가 본분을 이행하려면 가정에서 가족들과 누리는 즐거움을 버려야 해. 속세에서의 앞날과 일자리도 버려야 하고. 내가 이러한 것들을 내려놓고 본분을 이행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말세에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마지막에 살아남는 사람들은 모두 큰 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어. 그렇게 말씀하신 이상,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행하고 이루실 거야. 이 밖에도 하나님은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약속을 하셨어!’ 하나님 말씀을 깊이 파고든 뒤, 그는 그 말씀 중 말세에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된 것들을 적잖이 분석하는데, 거기에 자신의 개인적인 상상과 그 말씀에 대한 분석, 연구를 통해 생긴 관념이 더해져 본분 이행에 깊은 관심과 충동을 느낀다. 그다음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겠노라고, 이 생을 하나님에게 바치겠노라고, 모든 육적인 즐거움과 앞날을 내려놓겠노라고 철석같이 맹세하고 다짐한다. 이렇게 기도했고 말만 봐서는 다 옳은 것 같지만, 그가 마음 깊은 곳에서 정말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오직 그와 하나님만이 알고 있다. 그의 다짐과 기도한 말을 들으면 불순물이 없는 것 같고, 오직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고 본분을 다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려는 생각뿐인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해야 본분 이행을 통해 복을 받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에게 자기가 치른 대가를 보여 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자기가 치른 대가와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하나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 그리하여 하나님이 그의 행동을 기억하고 마지막에 그가 원하는 앞날과 복을 줄지 계산하고 있다. 적그리스도는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앞날이나 복받는 것, 좋은 종착지, 나아가 면류관에 마음속 깊이 한껏 기대를 품고, 큰 믿음을 갖는다. 또 그들은 이런 속셈과 포부를 갖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한다. 그러니 그들이 이행하는 그 본분에 하나님이 바라는 진심과 참된 믿음, 충심이 있겠느냐? 이때는 참된 충심이나 믿음, 진심을 찾아볼 수 없다. 본분을 이행하기 전까지 그는 거래하겠다는 생각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익에 이끌리고 야심과 욕망으로 점철된 상황에서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정한다. 그럼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하는 속셈은 무엇이겠느냐? 거래와 교환을 하려는 것이다. 그가 본분을 이행하는 전제 조건은 ‘본분을 이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어야 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인류에게 예비된 모든 복과 이점들을 다 얻어야 한다고. 그것을 얻지 못한다면 나는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야.’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속셈과 야심, 욕망을 품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하는데, 얼마간 진심이 있는 것 같다. 물론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이제 막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열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는 진실한 믿음과 충심이 없다. 그저 그 정도의 열정이 있을 뿐, 진심을 이야기할 것은 못 된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본분 이행 태도를 통해 볼 때, 그의 내면은 거래 심리로 점철되어 있으며, 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고 면류관을 얻고 상을 받는 등 이점에 대한 욕망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많은 적그리스도가 출교되기 전까지 본분을 이행한다. 심지어는 그들이 버린 것, 고생한 것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많을 때도 있다. 그들의 헌신과 그들이 치른 대가, 그들이 뛰어다닌 길은 바울보다 부족하지 않다. 이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행위나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려는 다짐에 관해 논한다면 그들이 아무것도 얻지 못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표면적인 행위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과 성품, 그 사람이 표출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행한 모든 일의 성질과 본질에 근거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거나 대할 때, 상대의 표면적인 행위와 상대가 고생하고 대가를 치른 것이 얼마나 되는지에 근거하여 그를 규정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는 처음부터 이러했다. 그들은 야심과 욕망, 거래 심리를 품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한다. 이는 그들이 본분 이행 전에 마음속 깊이 계산하고 계획한 것이다. 그들의 계획은 무엇이겠느냐? 그들이 계산한 핵심과 중점은 무엇이겠느냐? 복받는 것과 좋은 종착지에 목적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재난을 피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그들의 속셈이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저렇게 연구하는데, 아무리 연구해도 하나님 말씀이 진리이고 하나님 말씀 가운데 실행의 길이 있으며, 하나님 말씀은 사람을 정결케 하여 성품 변화를 이루고 구원받게 한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들은 도무지 이러한 것들을 보지 못한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읽든 그들이 가장 관심 갖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은 그저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복과 약속을 준다는 것뿐이다. 하나님 말씀 속에서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중점적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을 찾은 후, 그들은 구명줄을 찾은 것 같고, 또 자기가 큰 복을 받을 것 같아 스스로 이 시대의 가장 복받은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몰래 기뻐한다. ‘나는 때를 잘 맞춰 태어났어. 역대의 사도나 선지자들도 말세 그리스도를 뵙지는 못했잖아. 하지만 지금 나는 말세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지. 나는 큰 복을 얻을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이건 상을 받고 면류관을 얻을 기회라고! 이방인들한테는 이런 복이 없어. 그들이 이번 생에 아무리 잘 누리고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라도 대재난이 닥치면 모두 사라지겠지. 그러니까 반드시 속세의 육적인 누림을 내려놓아야 해. 그런 것들은 아무리 잘 누려 봤자 잠깐이고, 뜬구름 같은 거니까. 멀리 보자고. 앞으로 더 큰 축복과 상, 면류관을 얻어야지!’ 그래서 그들은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경고한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아무리 많은 고생을 하고 아무리 많은 길을 뛰어다닐지라도, 설령 감옥살이를 하거나 고문을 받을지라도, 어떤 난관에 부딪힐지라도 반드시 버티고 버티고 버텨야 해! 낙담하지 말자. 큰일을 위해 치욕을 참는 거야.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면 ‘끝까지 따르는 자는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하나님 말씀이 반드시 내게서 이루어질 거야.’ 그들이 마음속으로 품고 믿는 모든 견해와 생각 중에 진리에 부합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겠느냐? (없습니다.) 진리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뜻과 부합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전부 개인의 앞날과 운명을 위해 계산하고 계획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하나님 말씀이 인류에게 어떤 요구를 하는지 관심이 없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또 인류에 대한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요구에 대해서는 마음속 깊이 반감과 거부감을 느끼며, 심지어는 관념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말씀을 볼 때 마음속으로 반발하고 괴로워하다가 보지 않고 넘겨 버린다. 또 인류를 권면하고 위로하고 드러내고 긍휼히 여기고 이해하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는 지겨워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 말씀들이 너무 거짓되다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심판과 형벌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사람들 사이에서 행한 시련 사역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 반감과 거부감을 느끼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며 회피한다. 그들은 오로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나 축복과 관련된 말씀에만 큰 관심을 보인다. 심지어는 그것을 수시로 들고 다니며 읽으면서 한시바삐 복받으려는 욕망을 만족시키고, 지금 당장 천국으로 들림 받아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그들은 본분 이행 과정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자기가 복을 받을 수 있을지 의심을 품으며 ‘믿음’이 흔들리는데, 의지가 약해져서 움츠러들려고 할 때면 이 말씀들을 꺼내 읽으면서 본분 이행의 동력으로 삼는다. 어떤 편, 어떤 단락의 말씀이든 그들은 하나님 말씀 속 진리를 묵상하는 법이 없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체험하려는 마음도 전혀 없으며, 나아가 인류의 패괴 본질을 폭로한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깊이 패괴된 인류의 진상을 꿰뚫어 보고자 하지도 않는다. 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 요구, 권면을 모두 흘려들으면서 개의치 않고, 경시하고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로 대한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이런 말씀과 행사는 형식에 불과해. 이걸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어?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어? 누가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할 수 있겠냐고. 하나님의 이 말씀들은 쓸데없는 것들이야. 사람이 본분 이행을 통해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이 가장 실질적이지. 그 무엇도 이것만큼 실질적이지는 않다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말씀 속에서 이리저리 찾다가 그 길을 찾은 후, 본분 이행을 복받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여긴다. 이것이 적그리스도 부류가 본분을 이행하는 속셈이자 목적이며, 그들이 본분을 이행할 때 마음속으로 계산하는 내용이다. 그럼 그들의 본분 이행 과정에서 또 어떤 모습과 표출을 통해 이 부류의 본질이 부정할 여지 없는 적그리스도 본질임을 알 수 있겠느냐?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순전히 자기만의 속셈과 목적, 복받으려는 욕망을 갖고 본분을 이행한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들의 목적과 태도는 당연히 그들이 밤낮으로 생각하는 복받는 것, 좋은 종착지, 좋은 앞날과 운명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장사하는 상인과 딱 세 마디만 해 봐도 직업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일을 하든 다 명리나 지위와 연관되며, 복받는 것, 앞날, 운명과 관계가 있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은 이러한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 부류의 본성 본질이다. 그들이 이런 본성 본질을 지니고 있기에 사람들은 그들이 도태되는 최후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있고, 각 부류의 본분과 사역에도 요구와 명확한 가르침이 있다. 이러한 말씀은 전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며, 이 요구들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 실행하고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과 요구에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그들이 순종하는 태도를 보이겠느냐?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겠느냐?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볼 때 그들이 하나님 집에 와서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 집의 안배대로 본분을 잘 이행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그러지 못한다.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본분 이행에 어떤 원칙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인지, 하나님 집의 규정은 무엇인지 등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먼저 그 본분을 이행하면서 복과 상을 얻을 수 있는지 알아본다. 만약 복과 상을 얻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면, 그들은 그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설령 이행할지라도 대충 건성으로 임한다. 적그리스도는 복을 받기 위해 억지로 얼마간 본분을 이행한다. 또 그 본분을 이행하면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지,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을 수 있는지, 상부와 하나님이 알고 있는지를 알아보려 한다.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신경 쓰는 것은 전부 이런 것들이다. 그들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먼저 어떤 이득을 볼 수 있는지, 복을 받을 수 있는지를 확실히 해 두려고 한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함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 행복할 수 있을지 등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진리를 깨달으려고, 패괴 성품을 해결해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려고 구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런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복을 받고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교회에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어떻게 지위를 얻고 남들의 우러름을 받을 수 있을지, 어떻게 두각을 드러내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만 생각할 뿐이다. 그들은 결코 평범하게 따르는 자가 되는 데 만족하지 못한다. 반면 그들은 늘 교회에서 첫자리를 차지하여 무엇이든 자기가 결정하려고 하고, 지도자가 되어 남들이 자기 말을 듣게 하려 한다. 그래야 만족한다. 너희들이 보아라. 적그리스도의 마음에는 오직 이런 것뿐이다. 그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느냐? 진심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려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감투를 쓰는 것입니다.) 그렇다. 그들은 ‘나는 세상에 있을 때부터 승부욕이 강했지.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든 첫 번째가 될 거라고. 나는 두 번째를 원하지 않아. 누구든 나를 부하가 되게 하려는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어떤 사람들 속에 있든 대장이 되고 싶어. 뭐든 내가 결정하고 싶다고.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설득시켜 나를 우러러보게 만들고, 나를 리더로 뽑게 할 거야. 지위가 생기면 뭐든 내가 결정할 거야. 모두 내 말을 듣고 내 뜻을 따라야 할 거고. 모두 내가 통제할 거야.’라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높은 지위와 첫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평범하게 따르는 자가 될 마음은 절대 가질 수 없다. 그들이 가장 열중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사람들 앞에 나서서 명령을 내리고 훈계하여 자기 말을 듣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할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나아가 본분을 이행하는 일에서 진리 원칙을 구하여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두각을 나타내 리더에게 우러름을 받고 발탁될 것인지에 대해 머리를 쥐어짜며 궁리한다. 리더 일꾼이 되어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이 그가 종일 생각하며 바라는 것이다. 그는 남의 지도를 받거나 평범하게 따르는 자가 되기를 원치 않으며, 묵묵히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더더욱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두각을 나타내거나 사람들 위에서 그들을 지도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며, 소극적으로 변하고 태만해진다. 아무도 그를 칭찬하거나 숭배하지 않으면 더더욱 의미가 없다고 느끼고, 본분을 더더욱 이행하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본분을 이행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뭐든 자기가 결정할 수 있다면, 그는 기운이 넘치고 어떤 고생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개인의 속셈을 갖고 사람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승부욕과 자신의 욕망, 야심을 충족시키려 한다. 그는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항상 남을 이기려고 하며 매사에 자신을 내세우고 남들 앞에 나서고 남들 위에 서려고 한다. 이 밖에도 어떻게 해야 지금의 지위와 명예, 명성을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의 지위나 명망을 위협하는 자가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차없이 상대를 무너뜨리고 제거하며, 심지어는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 이행에 충성심과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을 비열한 수단으로 억누른다. 본분 이행에서 남다른 성과를 보이는 형제자매들한테는 질투와 증오를 가득 품는다. 특히 형제자매들의 옹호와 지지를 받는 사람들은 더더욱 증오한다. 그는 이들이 자기의 추구와 명예, 지위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맹세한다. ‘네가 있는 한 내가 없고, 내가 있는 한 네가 없어야 한다. 우리는 공존할 수 없다. 맹세컨대 너를 쓰러뜨리고 제거하지 못하면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고 자신을 폭로하거나 자기 지위에 위협이 되는 형제자매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의 약점을 잡아 판단하고 정죄하여 철저히 꺾어 놓고 쓰러뜨린 후에야 손을 멈춘다. 누구를 대하든 그들은 똑같은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기만 하면 상대를 무너뜨리고 제거하려 한다. 그들에게 아첨하고 알랑거리는 사람은 다 그들의 골수 지지자들이다. 그 사람들이 어떤 악행을 저지르든, 교회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에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오든 그들은 전부 감싸고 보호해 준다. 적그리스도는 본분 이행 과정에서 늘 자신의 명리와 지위를 경영하고, 자신의 독립 왕국을 경영한다. 적그리스도의 본분 이행의 본질은 자신의 독립 왕국과 앞날, 운명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다.

어떤 적그리스도는 한 팀에서 십여 명을 이끌고, 어떤 적그리스도는 한 교회나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끌든, 그들은 본분을 이행할 때 이미 그 사람들을 통제하며, 그들 사이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런 일을 어떻게 정죄하고 혐오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손안의 권력을 단단히 움켜쥐고 자기 수하의 통제 가능한 사람들을 철저히 통제하는 데 신경 쓸 뿐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하는 속셈이나 동기를 통해, 그들의 본질이 흉악하고 사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에서 보면 그들은 어떤 성품을 표출하느냐? 마찬가지로 흉악한 성품을 표출한다. 이 흉악한 성품은 어떻게 규정된 것이냐? 그들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생을 하고 대가를 치르기는 하지만, 그들이 이행하는 본분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그들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역지침을 전혀 실시하지 않으며, 더욱이 하나님 집이 각 사역에 정해 놓은 원칙을 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의 개인적인 기호와 권력욕, 뭔가를 하고자 하는 그들의 개인적 바람을 충족시킬 뿐이다. 이 모든 것들은 적그리스도의 부류가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조건이다. 그들은 ‘내가 이렇게 하기만 하면, 이렇게 대가를 치르고 버리고 헌신하기만 하면 마지막에 하나님은 반드시 나한테 면류관을 주시고 상을 주실 거야!’라고 일방적으로 생각한다. 하나님 말씀이 강조하고 인류에게 거듭 제시하는 요구와 원칙에 대해 그들은 신경 쓰는 법도, 중요하게 여기는 법도 없다. 그들은 그것을 그저 하나의 수식어로 여기고, 이런 마음을 가질 뿐이다. ‘당신이 어떻게 요구하시든 저는 제 권력이나 제가 추구하는 바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고, 제 소원이나 야심을 내려놓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본분을 이행할 맛이 나겠습니까? 무슨 힘이 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할 때 보이는 태도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상부에서 각 유형의 사역에 어떤 요구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있든, 적그리스도는 듣지 않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또 상부에서 아무리 구체적으로 말해도, 그 부분의 사역에 대해 아무리 엄격하게 요구해도, 그는 듣지 못한 척, 못 알아들은 척하며, 아래에서 여전히 제멋대로 굴면서 나쁜 짓을 저지르며 자기 뜻대로 행동한다. 그는 하나님의 요구나 상부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행동하면 자신의 지위가 없어질 것이고, 손에 쥔 권력도 내려놓게 될 거고, 권력이 산산조각 날 거라고 생각한다. 또 진리와 하나님 말씀의 요구대로 행동하는 것은 은연중에 자신의 권력을 공격하고 박탈하는 것이며 자신의 명성을 타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만약 내가 당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나라는 사람이 무능하고 리더십이 부족해 보이지 않겠어? 만약 당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내 잘못을 인정한다면 형제자매들이 앞으로 내 말을 듣겠어? 위신이 서겠어? 상부의 요구대로 행동한다면 나를 뽐낼 기회가 사라지겠지. 그래도 형제자매들이 나를 숭배할까? 내 말을 들을까? 사람들이 모두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본분을 이행하는 의미가 있나? 이 사역은 또 어떻게 하겠어? 사람들 사이에서 내 권위가 사라지고 위신이 땅에 떨어질 거야.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진리 원칙대로 실행하면, 나라는 리더는 실권을 잃게 되지 않겠어? 허수아비가 되지 않겠냐고. 그럼 내가 일할 맛이 나겠어? 나라는 리더가 실권을 잃고 뭘 하든 의미가 없다면 그런 나한테 앞날이 있을까?’ 적그리스도가 원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든 모두의 위에 서서 훗날의 면류관과 상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선민들 사이에서 뛰어난 사람, 남들의 지도자가 되기만 하면 훗날의 면류관과 큰 복을 얻을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언제든 손안의 권력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자칫 잘못했다가 자신의 손에 쥔 권력을 빼앗기거나 권력이 약해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들은 본분을 이행할 때 본연의 위치에서 자기 능력을 다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원칙과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거나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틈타 자신이 곧 얻으리라 생각하는 면류관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설사 몇몇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집의 요구를 규례로 여겨 지킨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임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일부 적그리스도는 본분 이행 과정에서 늘 권력을 잡고 권력에 대한 욕망을 충족하려고 하며, 지위를 가지고 그 지위에 올라서서 사람들을 꾸짖고 호령하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적그리스도도 있다. 그들은 이런 걱정을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앞에 나서다 잘못하면 화를 입는 법이야. 나는 그런 멍청이가 될 수 없어. 내 능력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3할만 보여 주는 거야. 나머지 7할은 뒷일을 위해 남겨 두자고. 하나님 집에서 뭐라 하든, 어떤 요구를 하든, 겉으로는 다 그러겠노라 하고, 방해하거나 교란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 누가 이끌든 따르고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찬성하는 거야. 상부에서 준 규례를 지키면서 거스르지 않으면 돼.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고 해봤자 소용없어. 본분은 힘만 좀 쓰고 어지간하게만 이행하면 되지. 바보가 되지는 말자고. 무슨 일을 하든 여지를 남겨 둬야 아무것도 못 얻고 게도 구럭도 다 잃는 신세를 면할 수 있지.’ 이런 부류의 적그리스도는 책임감 있게 본분을 이행하고 늘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자기는 그런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마음속으로는 지위를 추구하고 자신의 권력을 경영하면 언젠가는 폭로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진리를 실행하려면 대가를 치르고 공을 들여야 하며 진심을 바치고 충성을 다해야 한다. 그럼 많은 고생을 해야 하기에 그들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절충안을 찾아 앞에 나서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 중용의 길을 걸으며 이렇게 생각한다. ‘하라는 대로 하자. 형식적으로만 하면 그만이지. 더 잘 하라고 하면 안 할 거야. 더 잘 하려면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자료도 많이 찾아야 하는데, 얼마나 피곤하겠어!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추가로 상을 주신다면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추가로 상을 준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는 것 같단 말이야. 그렇다면 굳이 고생할 필요는 없잖아. 쉬엄쉬엄 하면 그만이지.’ 이런 사람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를 향해 노력하지는 않고 오히려 건성으로 임하거나 소극적으로 태만하게 구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