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7) 제 2 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과 그의 속셈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과 정반대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방식이 어떻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진리 원칙이 무엇인지, 사람이 지키고 준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이런 것을 뒷전에 제쳐 두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심지어 이런 말에 반감을 품고, 속으로는 이런 말이나 어휘에 은근히 반발한다. 일정한 ‘성과’를 얻은 적그리스도는 과거의 행동 방식대로, 지속적이고 깊이 있게, 더욱 세밀하게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어투는 어떻고 세세한 톤은 어떤지, 어떤 어휘를 사용하는지 등을 연구한다. 심지어 하나님이 사용하는 세세하고 관용적인 어법도 놓치지 않는다. 자신이 이루려는 목표에 더욱 바짝 다가가기 위해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하나님 말씀을 더욱 열심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서, 더욱 깊이 연구하겠다고 다짐한다. 하나님 말씀의 의도를 연구하고, 하나님 말씀의 목표를 연구하고, 심지어 인류를 향해 말씀하고 전 우주를 향해 말씀하는 선포자인 하나님이 말씀하는 방식을 연구하겠다고 다짐한다. 적그리스도는 힘든 줄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의 온갖 측면을 연구하는 한편,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을 흉내 내려 하고, 자신이 마치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하나님의 성품을 갖춘 것처럼 보이려 한다. 이 모든 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순조롭게 발생하는 듯하다. 적그리스도 역시 당연하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행동하는 동시에 당연하게, 또 저도 모르게 자신을 하나님으로 둔갑시키고, 사람들이 앙모하고 따르는 대상으로 둔갑시킨다. 그는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지, 어떻게 사람의 패괴 성품을 폭로하는지 연구하고,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사람의 여러 가지 내적 상태를 폭로하는지 연구하고, 나아가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사람에게서 성과를 이루는지 연구한다. 그가 이 모든 걸 연구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사람의 내면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속사정을 파악하고, 사람의 속마음을 간파하는 동시에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사람의 패괴 성품을 폭로하며 정곡을 찌를 때, 적그리스도는 생각한다. ‘이런 말씀, 이런 방식은 정말 대단하고 훌륭해! 나도 이렇게 말해야겠어. 나도 이런 방식으로 말하고,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해야지.’ 하나님 말씀을 수년간 읽고 익히는 동안, 하나님이 되고 싶다는 적그리스도의 바람과 욕망은 그가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목표로 점점 자리 잡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무리 사람들에게 진리를 추구하고 일 처리를 원칙대로 하라고 말씀해도 적그리스도는 이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무시한다. 그는 안하무인격으로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고, 안하무인격으로 자신의 행동 동기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하나님 말씀은 단 한 마디도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단 한 마디도 그의 인생관과 처세 철학을 바꾸지 못한다. 나아가 어느 한 마디 말씀, 어느 한 편의 설교, 어느 한 차례의 말씀도 그가 회개의 마음을 갖도록 하지 못한다. 하나님 말씀이 무엇을 폭로하든, 어떤 패괴 성품을 폭로하든 적그리스도는 단지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어투, 하나님 말씀이 사람에게서 이루려는 성과 등 진리와 무관한 일만 연구한다. 이 때문에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접할수록 하나님이 되고 싶은 그의 마음속 욕망은 더욱 강렬해진다. 얼마큼 강렬해지겠느냐? 꿈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외우고, 늘 중얼거리면서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어투로 하나님 말씀을 설교하는 연습을 하는 등, 마치 마귀 들린 것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어투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하나님 말씀이 아무리 구체적이고 간절하고 진실해도, 사람에게 아무리 큰 도움과 깨우침을 주어도 적그리스도는 본체만체하고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그 말씀을 보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그는 어떡하면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따라 해서 사람들로부터 숭배를 받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욕망이 강렬할수록 그는 하나님 음성을 듣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하는 모든 말씀 이면의 목적과 바람, 뜻을 이해하고 심지어 하나님 내면 깊은 곳의 생각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욕망과 바람이 강렬할수록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의 방식을 모방하려 하고, 가급적 짧은 시간에 하나님 말씀의 방식과 어투를 갖춤으로써 하나님을 더욱 닮아 가려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것도 모자라서 하나님이 일하는 스타일과 기질까지 갖추고 싶어 한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매일 이런 마음과 생각, 속셈과 동기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뭘 하고 있는 것이냐? 하나님이 되고 그리스도가 되는 길을 걷도록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의 생각에는 그 길이 정정당당한 길이고, 밝은 길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거나 여럿이 모였을 때,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식 및 하나님 말씀을 체험한 소감을 교제한다 해도 그의 마음은 동하지 않고, 그의 목표와 바람도 바뀌지 않는다. 그는 마귀 들린 것처럼,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통제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족쇄를 찬 것처럼 그리스도가 되고 하나님이 되는 길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간다. 그건 어떤 정신이냐? 요상한 정신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의 온갖 측면을 흡수해서 자신의 부속물로 삼고, 자신에게 더 높은 이익과 더 많은 금전을 가져다주는 상품으로 취급한다. 이 상품을 팔고 난 뒤, 그것들을 실컷 과시할 때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이익을 취하게 된다. 이렇게 할수록 그는 속으로 만족을 얻고, 이렇게 할수록 하나님이 되려는 그의 욕망은 더 커지고 강렬해진다. 이것은 어떤 태도, 어떤 상황이냐? 하나님이 되려는 적그리스도의 욕망은 어째서 그토록 큰 것이냐? 누군가가 가르쳤느냐? 누가 부추긴 것이냐? 누가 지도한 것이냐? 하나님 말씀에서 그렇게 하라고 요구했느냐? (아닙니다.) 그건 적그리스도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이렇게 큰 힘을 쏟을 수 있는 건 어찌 된 일이냐? 그건 바로 본성 본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외부의 조력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꾸준히, 주저함 없이, 전혀 후회 없이 이런 길을 간다. 그를 아무리 정죄해도 소용없고, 아무리 해부해도 귀담아듣지 않고, 알아듣지도 못하고, 끝내 나쁜 길에 빠져든다. 이것은 바로 본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는 겉으로 보면 대적하거나 폄훼하지 않고,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도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만약 그가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가 가는 길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겉으로 본다면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갈망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적어도 이 단어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겉모습에서 사람의 본질을 알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알 수 있겠느냐? 겉모습을 볼 때 그는 하나님 말씀을 무척 갈망하고 하나님 말씀을 항상 읽고, 경청하고, 또한 외우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런 표면적인 행동 방식을 볼 때 그는 적그리스도로 규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겠느냐? (실행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읽은 하나님 말씀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가 일이 닥쳤을 때 그중에서 한 단락을 인용하거나 두어 마디 외우기도 하는데, 때로는 아주 정확하게 인용한다. 하지만 말씀을 인용하고 난 다음 그가 어떻게 하는지, 어떤 길을 가는지, 일이 닥쳤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아라. 만약 자신의 지위에 관련되거나 자신의 명예와 이미지에 흠이 가는 일이라면 그는 절대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고 자신의 지위를 지키느라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감추고 회피하려고 그 일을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설령 남에게 화를 전가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일에 무척 공을 들이고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 일에 무척 공을 들인다. 하지만 정말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자기 이익을 내려놓아야 하고 자기 육이 고통받아야 한다면,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아라. 만약 그에게 원칙대로 일하라고 한다면, 누구의 심기를 건드리든 어느 사람의 미움을 사든 상관 말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라고 한다면 그가 그렇게 하겠느냐?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우선 자신을 보전하는 쪽을 택한다. 설령 누구의 잘못인지 알고, 누구의 악행인지 알더라도 그는 폭로하지 않고 속으로는 은근히 기뻐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 악인을 폭로한다면 그는 악인을 보호하고 악인을 위해 변명할 것이다. 여기서 적그리스도가 남의 재앙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일이 닥치든 그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 보아라. 그가 만약 진리 원칙대로 일하는 쪽을 택한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신 성과이다. 만약 진리 원칙대로 일하지 않는다면, 그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셔도,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달달 외워도 소용없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적그리스도가 자신을 인식하겠느냐? (인식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적그리스도 역시 자신이 교만하고 독선적이라고 하고, 자신이 마귀 사탄이라고 하던데요.” 그는 말만 하고 끝이다. 정말 일이 닥치면 그는 어떻게 하느냐? 만약 그와 어떤 사람이 협력할 때 그가 한 말이 틀리고, 다른 사람이 한 말이 옳고 진리 원칙에 부합한다면, 다른 사람이 그의 말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체면이 깎이고 지위를 보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말을 따르는 쪽을 택하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겠느냐? 100% 불가능하다. 그러면 그가 그 옳은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냐? 그것이 그의 실제이냐? 그의 실제 분량이냐? 그의 선택이냐? 그가 가는 길이냐? 아니다. 그것은 그가 체험한 게 아니라 배운 것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죄다 도리이고 사람을 속이는 말이다. 지위에 관계되고 이익에 관계된 일에서 적그리스도의 첫 번째 선택은 자신을 보전하고 지키며, 다른 사람을 마비시키고 미혹하며,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어떤 과오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본질을 볼 때 그가 진리를 추구하느냐? 그가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실행하기 위한 것이냐? 아니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읽는 속셈과 목적을 보면, 그는 영원히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그가 하나님 말씀을 읽는 이유가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겨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하나의 매개체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가 비록 “나는 하나님이 되고 그리스도가 될 거야.”라고 정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행동하는 본질과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본질을 볼 때, 그리스도가 되고자 하는 그의 목표는 아주 분명하다.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이용하고, 자신이 보았던, 하나님이 나타낸 소유와 어떠함 등 이 모든 것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데,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 우매한 사람, 분량이 작은 사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 불신파를 미혹하고, 심지어 악인들도 미혹한다. 이로써 그들이 자신을 진리가 있는 사람, 옳은 사람, 앙망하고 의지할 만한 대상으로 여기고, 자신에게 어느 정도 의탁하고 구하면 그는 속으로 만족해한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유일무이한 분이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이며, 하나님만이 진리를 선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영원히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 하나님 말씀에 쏟는 노력, 하나님이 되고 그리스도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볼 때, 적그리스도는 한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을 쉬운 일, 사람이 이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말한다. “성육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건 하나님 말씀을 조금 할 수 있어서 그런 거잖아요? 하나님 말씀의 대변인이라서 그런 거 아닌가요? 따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만약 사람들 사이에서 똑같은 지위와 명망을 지니고, 그를 숭배하고 앙망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리스도처럼 대우받고 하나님처럼 대우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리스도처럼 대우받고, 하나님의 신분 본질을 지닌 그분처럼 대우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이 될 수 있지 않겠어요? 어려울 게 뭐 있나요?”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천성이며, 사탄과 똑같은 야심과 본질을 지니고 있다. 그는 적그리스도요,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지녔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이런 모습을 보인다. 적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이 성육신해서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를 볼 수 있다는 사실, 그가 사람이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더없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평범하고, 보잘것없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고 하나님으로 불리는 덕분에 하나님이 되고 싶은 적그리스도에게 마침내 기회가 온 것이다. 만약 이 평범한 사람이 말씀을 하지 않았다면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되고 그리스도가 되려는 희망이 매우 희박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하나님을 대표해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을 구원하고 있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는 이것이 자신에게는 기회이고, 자신이 노릴 만한 틈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 말씀, 하나님 말투와 말씀의 방식은 물론, 하나님의 성품까지 흉내 내어 점점 하나님처럼, 그리스도처럼 보일 수 있는 단서가 더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자신이 점점 하나님처럼 보이고 점점 하나님에 근접해진다고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숭배하고, 따르고, 무슨 일이든 의지하고, 무슨 일이든 구하며 앙망하는 하나님은 정말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분, 그리스도의 지위가 부러운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 어떤 것이냐? 적그리스도의 내면 깊은 곳은 어둡고 사악하지 않으냐? 떳떳하지 못하고 비열하며 더럽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역겹기 그지없구나!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 말씀을 한참 들어 보았습니다만, 저희는 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을까요? 지금 하신 말씀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가요? 실제와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 아닌가요?” 너희가 볼 때 이런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있습니다.) 몇 명이나 보았느냐? 너희 자신은 해당하지 않느냐? (저희에게도 이런 측면의 내적 상태나 표출이 있습니다. 비록 적그리스도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같은 본성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너희 생각에는 이런 내적 상태가 위험하냐, 그렇지 않으냐? (위험합니다.) 위험한 줄 알면 고쳐야 한다. 그렇다면 쉽게 고칠 수 있겠느냐? 이는 사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다. 네가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겨 지킨다면, 예수가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라고 한 것처럼 간단한 일이니, 정말로 회개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너희에게 어떤 일 한 가지를 시행하라고 했다. “식사가 끝나면 그릇을 씻은 듯 깨끗하게 핥아라. 그게 식량을 아끼는 거고, 또 위생적이다.” 이것이 간단한 말이 아니냐? 시행하기가 어려우냐? (시행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고충이나 내적 상태, 패괴 성품은 언급하지 않고, 여러 상황을 구별하지도 않고, 그저 이렇게 몇 마디로만 요구하면, 너는 이 일을 어떻게 시행하고 어떻게 실행하겠느냐? 너에게 이 몇 마디는 곧 하나님 말씀이고 진리이자 네가 지켜야 할 말이다. 네가 해야 할 일은 매일 매번 밥을 다 먹고 난 다음 하나님 요구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고, 네가 지켜야 할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또한, 너는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으로, 이 가장 간단한 일에서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벗어 버리게 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 말씀을 들은 후 너는 입으로 알았다고 하고 잊어버리지도 않았지만, 결국에는 다 먹은 그릇에 밥알 몇 톨이 남아 있는 걸 보고도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릇을 그대로 두고 자리를 떠났고, 다음번 식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하나님이 한 이 말씀을 기억했지만 언제 실행할지 모를 일이고, 오랜 시간이 흘러 그 말씀을 잊어버렸다. 실행은 고사하고 하나님 말씀을 내팽개친 것이다. 넌 대체 어떤 사람이냐? 그 말씀이 너에게서 시행되지 않았다면, 너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도를 준행할 수 있는 사람이겠느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겠느냐? 분명 아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면 적그리스도로 규정되는 것이냐?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실행하지도 않는다. 별생각도 없이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자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밥을 다 먹고 그릇을 핥으라고? 모양 빠지게! 거지도 아니고 말이야. 게다가 당장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니잖아. 난 그렇게는 못 해! 핥고 싶은 사람이나 핥으라지.’ 누군가 “이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일입니다.”라고 하자 그가 대꾸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거라 해도 안 돼요. 이런 요구를 하시면 안 되죠. 이 말씀은 진리가 아니라고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도 시원찮은 말씀이 있고, 논리에 안 맞는 말씀도 있고, 별로인 말씀도 있어요.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시는 요구가 다 진리라고 할 수는 없죠. 이 말씀은 진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이야말로 진리죠! 밥 먹고 난 다음 그릇을 깨끗이 핥는 게 위생적인 겁니까? 그냥 씻으면 될 것을 왜 핥으라는 거죠? 그릇을 핥는다는 건 제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고, 어디서도 통하지 않는다고요. 저보고 핥으라니, 어림도 없죠! 위생적이라는 걸 이렇게 정의합니까? 전 물로 씻을 때도 소독물을 씁니다. 이런 게 바로 위생적인 거죠!” 이런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생각을 가지고 속으로 반발하고 비웃고 헐뜯는다. 하나님이 한 말씀이라 감히 그 자리에서 판단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가 그 말씀에 견해나 관념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가 견해와 관념을 가졌다는 것은 어느 부분에서 드러나느냐? 그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도 않고 실행하지도 않으며, 이 말씀에 대해 생각을 가지고, 판단하고, 관념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 밥을 다 먹고 나서 누군가 그릇을 핥는 것을 보고도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는 사람을 속으로 경멸한다. 그리고 겉으로 늘 빈정대고 조롱하는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의 이런 행동을 교정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는 동시에 역행해서 그와 반대되는 일을 하려 한다. 그는 자신의 행동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부정하고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는 동시에 자신의 행동으로 더 많은 이의 시선을 끌고 싶어 한다. 이로써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은 옳지 않고 그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게 하고, 그와 함께 하나님 말씀에 반발하고 하나님 말씀을 정죄하게 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고 매번 밥을 먹고 나면 그릇을 물로 헹구는 것도 모자라 소독물과 세제로 여러 번 씻고, 다시 소독기에 넣어 소독한다. 그렇게 하는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견해를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알린다. “사실 핥는 것으로는 균을 없앨 수 없어요. 물로 씻어도 균은 없어지지 않죠. 소독물에다 고온으로 처리해야 철저하게 소독이 되고, 그래야 위생적인 거라고요.” 그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실행하지 않는다. 동시에 자신의 언행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대적하고 정죄하며 판단하는가 하면, 한술 더 떠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견해를 이용해 더 많은 사람이 자기처럼 하나님의 요구를 정죄하고 대적하며 판단하도록 부추기고 미혹하기까지 한다. 그는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하게 하거나, 사람들에게 관념이 생길 때 그 관념을 해결해 주거나,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 갈등을 해결하고 사람들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판단하고 그와 함께 하나님 말씀의 옳고 그름을 분석하고 연구하도록 부추기고 미혹한다. 겉으로는 마치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하며 정당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정당함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갖춰져야 하는 것이냐? 그것이 사람의 정의감이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런 자의 행위 이면에 있는 본질은 과연 무엇이겠느냐? (적그리스도, 마귀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는 것은 고사하고, 더 부끄러운 건 영적인 사람인 체하고 늘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식으로 자신을 미화하고 남들로부터 우러름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 자신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겨 체험하거나 시행하지도 않으면서 언제나 사람들에게 입바른 소리만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밥을 다 먹으면 그릇을 깨끗하게 핥는 것은 좋은 습관이고 식량을 아끼는 것이라고요.” 그는 말끝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이건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건 진리입니다.”라고 하면서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 자신은 전혀 받아들이지도 않고 실행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 말씀에 대해 온갖 판단과 그릇된 해석을 내놓는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하는 짓이다.
방금 분석한 세 가지 유형 사람의 모습을 볼 때 가장 심각한 건 어느 것이냐?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는 본인부터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대해 온갖 대적과 판단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 다른 사람을 미혹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한다. 이런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어느 측면의 하나님 말씀이든, 설령 자기 관념에 맞더라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생각하지 않는데 하물며 인간의 관념은 물론, 인간의 전통문화와 철학에도 전혀 맞지 않는 말씀은 오죽하겠느냐? 이런 말씀은 더더욱 적그리스도의 안중에도 없다. 하나님 말씀은 안중에도 없는 그가 어째서 설교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유형의 사람 중 가장 위험한 사람은 마지막 유형이다. 첫 번째 유형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너희가 볼 때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실행하는 사람은 모두 골 빈 사람이냐? 하나님이 뭐라고 하든, 사람에게 무얼 시키든 그대로 따르는 사람은 좀 바보 같아 보이느냐?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은 가장 슬기로운 사람이다. 두 번째 유형의 사람은 행동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만 일하고 힘만 쓴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 말씀의 요구와 기준을 따르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마음의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행동하는 것만 중요하게 여긴다. 그의 생각은 이런 것이다. ‘당신이 저희를 위하시고, 당신이 하시는 말씀은 다 맞으니 우리는 순종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냥 말씀하십시오. 우리는 당신 말씀만 따르면 됩니다.’ 사실 하나님이 뭐라고 하든, 하나님이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든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마구잡이로 행한다. 마구잡이로 하다 보면 때로는 함부로 행동하고 방해와 교란을 일으키며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도가 심하면 큰 화를 자초하고 멸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맞이하는 가장 심각한 결과이며, 이 지경에 이르는 사람들도 있다. 세 번째 유형의 사람인 적그리스도의 부류는 사탄의 도당으로, 죽어도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네가 한 말이 옳아도 그는 듣지 않으며, 관념을 갖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하나님의 철천지원수요, 진리의 철천지원수이다. 겉보기에 가장 교활하고 가장 영리한 부류도 이들이다. 무슨 일이든 분별하고 연구하려 하고, 무슨 일이든 신경 쓰고 공들여서 알아내고자 한다. 결국,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다가 하나님을 연구하기에 이르면 그는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의견을 갖게 된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그는 자신에게 통하지 않으면 모조리 정죄하고, 자기한테 불리할까 봐 실행하지 않는다. 반면 겉으로 볼 때 무척이나 바보 같아 보이는 유형의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는 듯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 겉보기에 무척 단순하고 정직해 보인다. 터놓지 말아야 할 것도 터놓고, 보고하지 말아야 할 것도 보고하며, 심지어 일부 모습에는 유치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느냐?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닫혀 있거나 잠겨 있지 않고 열려 있다는 뜻이다. 이 간단한 예를 들어 이야기한 목적은 과연 무엇이 적그리스도인지, 적그리스도가 어떤 태도로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지 알게 하고, 어떤 부류가 적그리스도이고 어떤 부류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지만 적그리스도가 아닌지 분별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분별력을 갖추게 하려는 것이다. 그냥 무심코 이런 예를 들었는데, 이건 너희가 오늘 교제하는 주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정말 밥을 다 먹고 나서 그릇을 깔끔히 핥으라는 말이 아니다. 또한, 그릇 핥는 행위를 위생적이고, 식량을 낭비하지 않는 행위라고 정의하지 않았으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 너희는 절대로 오해하지 마라.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지와 관련하여 오늘 또 한 가지,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한다’는 내용에 대해 추가적으로 교제해 보았다. 상품이라고 하면 판매와 거래, 이익, 금전과 관련이 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한다’, 이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극악무도한 짓이다. 왜 그런 것이냐? 방금 예배 드릴 때 각자가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대한 이해를 자신의 말로 교제하고, 가장 간결한 말로 요약해 보았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하나님 말씀은 곧 진리이고, 진리는 인류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진리는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고, 사람이 구원받아 죽음에서 부활하게 할 수 있으며, 사람이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게 할 수 있다. 인류에 대한 진리의 가치는 말이나 물질, 금전으로 가늠할 수 없다. 그 진리는 사람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고, 또한 그 진리를 행동과 됨됨이, 생활, 인생 등의 지침과 방향, 목표로 삼을 가치가 있다. 사람은 진리에서 실행의 길,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 등을 얻어야 한다. 진리는 사람에게 생명과 같기에 그 어떤 물질이나 부도 진리에 견줄 수 없다. 이 물질세계에서, 혹은 우주 세계 전체를 통틀어 진리에 비견될 만한 것은 없고, 진리와 동일시될 수 있는 것도 없다. 이로써 진리는 구원이 필요한 인류에게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을 상품 취급해서 판매하고 거래하며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런 사람은 마귀, 사탄으로 규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고도 남는다! 이런 사람은 영계에서는 마귀이자 사탄이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적그리스도이다.
지금까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며 팔아 사익을 챙기는 모습에 대해 교제했다. 물론 이것은 특정한 의미에서 말한 것이지 글자 그대로의 의미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다. 즉, 그가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해서 판매한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실 그의 행위와 행동 방식 나아가 그의 본질에서 볼 때 그는 이미, 또는 확실히 하나님 말씀을 상품 취급하고 소유할 수 있는 물질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하나님 말씀을 소유한 다음 자기 가게에서 파는 물건으로 취급하고, 적당한 시기에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팔아 이익을 얻는다. 적그리스도가 거기서 얻는 이익은 무엇이냐? 바로 그의 명망, 사람들의 우러름과 숭배, 그리고 사람들이 보내는 찬사의 눈길이다. 또한, 사람들이 그를 지켜 주고 그의 지위와 체면을 지켜 주며, 심지어 그가 교체되고 도태되었을 때 그를 위해 변호하고 해명해 주기까지 한다. 이것이 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취한 이익이다. 이런 이익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바라는 것이자 추구하는 것이며, 그가 속으로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질이다. 그의 모든 행위는 그의 본성에 의해 촉발된 것이고, 그의 본성에 지배를 받은 것이다. 이런 측면의 모습에서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알 수 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