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3) 제 3 부
(4) 발탁되거나 교체되었을 때의 태도
교회에서 자질도 좀 있고, 사역 능력도 좀 갖춘 어떤 사람들은 발탁되었을 때, 매우 열정적이고 본분 이행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 책임감을 갖고, 흔쾌히 대가를 치르려 하며, 충성심도 있다. 하지만 사역을 감당하지 못해 해임되고 지위가 없어지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지위가 있을 때 그는 하나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형제자매는 어떻습니다. 우리 그 집은 인테리어를 할 때가 됐고요. 우리 마당도 정리해야 하고요….” 뭐든 ‘우리’라고 한다. 발탁될 때, 그는 하나님 집 사람이다. 그럴 때 그는 마치 하나님과 한마음, 한집안 식구인 것처럼 호흡을 맞추고 어깨를 나란히 하여 하나님 집 사역을 처리하며, 하나님과 평등하게 지낼 수 있다. 발탁되고 중용될 때 그는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동시에 책임감을 느낀다. 또 나에게 말하든 아니면 형제자매에게 말하든 말끝마다 ‘우리’라고 한다. 언뜻 듣기에는 그 사람이 퍽이나 괜찮고, 마음씨도 좋으며, 따뜻한 것 같다. 하나님 집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어떤 일이든 그렇게 마음을 쓰며 책임지고, 모든 일에 앞장서려 하는 등 진리를 추구하며 열정적으로 대가를 치르는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체될 때도 그가 그렇게 말하겠느냐? 교체되자마자 그런 마음은 싹 사라지고, 그런 태도도 자취를 감추며, 더는 ‘우리’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또 무슨 일을 맡겨도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다. 그의 생각은 어떤 것이냐? ‘전에는 당신이 저를 발탁해서 지위도 있었고, 당신과 한마음이었는데, 이제는 지위가 없어져서 한집안 식구가 아니니 스스로 알아서 하세요. 어떻게 하든 저한테 상의하지 말고, 제가 알게 하지도 마세요. 이제 저랑은 상관없으니까요. 저야 당신 심부름이나 하고 말이나 전해 주면 그만이죠. 시키는 일은 하겠지만 당신과는 이제 한마음이 아닙니다.’ 그는 너를 외부인 취급한다. 일을 시키면 마치 삯일을 해 주는 것처럼 겉으로만 건성으로 할 뿐이다. 전에는 다섯 가지를 처리했다면 지금은 한두 가지만 처리하고, 형식적으로 대충대충, 표면적인 일만 좀 하고 끝이다. 왜 그렇겠느냐? 그는 말한다. “전에는 당신과 한마음이어서 이것저것 도와드렸습니다. 당신 일을 제 일이라고, 우리 공동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당신을 대신해서 처리했죠. 그런데 결국 당신은 말 한마디로 저를 교체시켰습니다. 제 체면도 생각 안 해 주고요! 그랬으면서 어떻게 저더러 당신 대신 일하라고 하십니까? 당신이 다시 저를 발탁해서 지위를 준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관두세요. 저한테 다시 일을 시키고 싶어도 전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저를 쓰려면 명예와 지위를 줘야 합니다. 지위도 안 주면서 말로만 무슨 일을 하라고 시키면 그건 무슨 명분입니까? 뭐라고 설명이라도 해 줘야죠!” 이제 그는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호락호락하지 않고, 일을 시켜도 전처럼 그렇게 열심히 마음과 뜻을 다하지 않는다. 태도가 변한 것이다. 내가, 혹은 하나님 집에서 어떤 일을 시켜도 그는 그것을 별도의 일, 외부인의 일로 치부한다. 만약 가서 한다면 그건 너의 체면을 크게 세워 준 것이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일을 안 하자니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어쨌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가서 하자니 마음이 내키지가 않아서 형식적으로만 하고 끝이다. 그는 왜 그렇게 하겠느냐? 그의 생각은 이렇다. ‘전에는 당신을 100퍼센트 신뢰했습니다. 당신의 일을 제 일로 생각하며 처리했죠. 그런데 당신은 안 쓰겠다고 하고는 바로 저를 교체시켰습니다. 그 일 때문에 저는 마음이 상하고 자존심이 상했어요. 당신은 저를 푸대접한 겁니다. 좋아요. 당신이 저에게 인을 베풀지 않았으니 저더러 의가 없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다시 저를 쓴다고 해도 저는 전과 같지 않을 겁니다. 우리 사이는 이미 끊어졌으니까요. 저는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그렇게 부려 먹기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누굽니까?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이렇게 남들에게 농락당하겠습니까?’ 적그리스도는 교체되어 지위를 잃을 때, 이렇게 태도가 확 달라진다. 지위가 있을 때, 그는 하나님 집을 우리 집이라고 하면서 ‘우리 집’을 입에 달고 살지만, 하나님 집 일을 자기 집 일로 생각하며 처리하지 않았다. 교체되어 지위를 잃고 난 뒤에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라고 시켜도 원하지 않으며, 그와 상의해야 하고, 심지어는 설명하고 명분을 줘야 한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에 당신은 저를 교체했죠. 쓰지 않겠다고 하고는 바로 교체하더군요. 이번에 저한테 뭘 시키려면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직접 와서 얘기하든가 성육신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말씀하셔야지, 그게 아니라면 얘기할 필요도 없어요!” 이 얼마나 대단한 허세냐! 너희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 집에서 이런 사람을 쓰겠느냐? (쓰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하나님 집에서는 이런 인간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네게 아무리 뛰어난 재주, 대단한 수완이 있더라도, 아무리 리더십이 있더라도 하나님 집에서는 너를 쓰지 않을 것이다. “악인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으시는 겁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게 아니다. 이는 하나님 집의 행정 법령이자 사람을 쓰는 원칙이다. 만약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집에서 권력을 손에 쥐게 한다면 형제자매와 교회에 좋은 일이겠느냐, 나쁜 일이겠느냐? (나쁜 일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이런 나쁜 일을 하겠느냐?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가 적그리스도로 드러나지 않았을 때는 무리해서라도 발탁해서 봉사하도록 쓸 수 있지만, 적그리스도로 드러난 뒤에도 하나님 집에서 그를 발탁하겠느냐? 그럴 리가 없는데도 그는 혼자 착각하고 김칫국부터 들이켠다. 일부 적그리스도들은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흥, 하나님 집은 내가 없으면 안 될걸. 내가 없으면 그 사역을 맡을 만한 사람이 없지. 누가 날 대신할 수 있겠어!’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도발하려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보여 줘야 한다. 하나님 집에 그런 적그리스도가 없으면 하나님 사역이 술술 풀리는지 아닌지, 완성될 수 있는지 없는지 말이다.
지금 하나님 집의 각종 사역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전개되는 것은 온갖 적그리스도, 악인들을 교회에서 제명하고 출교한 일과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 큰 관계가 있다! 적그리스도는 이 사실을 모른다. 그는 그들을 제명하고 출교하고 제한했기 때문에 하나님 집의 사역이 순조롭게 진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아직도 잘난 체하고 원망하고 있다! 뭐가 그리 원망스럽단 말이냐? 너는 자신이 재주 있고, 머리 좋고, 자질 있고, 사역 능력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네가 하나님 집에서 뭘 할 수 있겠느냐? 이들은 사탄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들이 없으면 하나님 선민들의 교회 생활, 본분 이행 생활, 일상생활은 더욱 안정되고, 순조로워지고, 평온해질 것이다. 그들은 이걸 모른다. 이 적그리스도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모른다. 하나님 집에 자기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나님 집에 자기가 없으면 사역이 전개되지 못하고, 각종 업무 사역이 진행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 집은 공의와 진리가 권세를 잡는다는 사실을 그는 모른다. 왜 모르겠느냐? 이런 간단한 일을 어째서 적그리스도는 깨닫지 못하겠느냐? 이건 적그리스도에게 진리를 싫어하고 적대시하는 본질이 있어서 그렇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진리를 싫어하고, 적대시하고, 진리가 뭔지 모르고, 긍정적인 사물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온갖 사악하고 악독한 모습이 좋고 옳은 것이라고, 별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만이 진리를 깨달았고 하나님에게 충성심이 있다고, 자신만이 하나님 집에서 권력을 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틀렸다! 하나님 집은 진리가 권세를 잡는 곳이며, 모든 적그리스도는 정죄되고 버림받고 도태될 대상이다. 하나님 집에 그들의 자리는 없을 것이며, 그들은 영원히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은사와 자질, 수완이 좀 있고 권모술수를 부리는 데 능한 적그리스도들이 있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 자신들이 당연히 발탁되고 중용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다. 이들은 정죄되고 제한되고 버려졌으며, 심지어 교회에서 이미 제명되고 출교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기처럼 ‘고귀한’ 인물, 이렇게 수완이 대단하고 재주도 뛰어난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곤두박질치고 하나님 집에서 버림받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며, 도무지 납득하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다시 그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럴 필요가 없다. 사탄에게 이치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 사탄에게 이치를 논하는 것은 쇠귀에 경 읽기와 같다. 사탄을 형용하는 말은 오직 한마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예컨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게 뭐가 좋습니까? 거짓말 좀 하고 사람을 속이는 게 뭐가 나쁘죠? 교활하고 간사한 게 뭐가 나쁩니까? 충성심이 없는 게 뭐가 나쁜가요? 얼렁뚱땅 넘기고 대충 하는 게 뭐가 나쁩니까? 하나님을 판단하는 게 뭐가 나쁜가요?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으면 어때서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뭐가 나쁘죠? 무슨 큰 죄를 짓는 건가요? 이건 무슨 원칙 문제라고도 할 수 없죠!”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수완 있는 사람이 독립 왕국을 세우는 건 정상적인 일이 아닌가요? 이 세상에서는 큰 물고기가 새우를 잡아먹고, 큰 새우가 물고기를 잡아먹습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죠. 수완이 있으면 독립 왕국을 세우는 게 당연한데, 이게 뭐가 나쁜가요? 수완이 좋은 만큼 권력도 큰 거고, 권력이 크면 그만큼 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죠!”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음란한 게 뭐가 나쁜가요? 음란한 게 어때서요? 사악한 흐름을 따르는 게 뭐가 나쁘죠?” 이런 말들을 들으니 너희는 어떤 느낌이 드느냐? (역겹습니다.) 단지 역겹기만 하냐? 이런 말을 들으면 사람은 이렇게 느낀다. ‘똑같이 인두겁을 쓰고 있는데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부정적인 사물을 혐오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는 걸까?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혐오하는 거지? 사람 간에 왜 이렇게 차이가 클까? 진리를 싫어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싫어하는 그 사람들은 왜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왜 부정적인 사물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보물처럼 생각하는 거지? 왜 그런 부정적인 사물의 사악함과 역겨움을 인식하지 못할까?’ 사람은 속으로 개탄한다. 적그리스도가 하는 그런 말을 들을 때, 사람은 한편으로는 역겨움을 느끼고 또 한편으로는 할 말을 잃는다. 그들의 본성은 정말 고치기 어렵고, 바뀌지도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귀와 사탄을 구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하는 것은 인류이지 짐승이나 마귀 부류가 아니다. 적그리스도 부류가 바로 하나님이 말하는 마귀요 짐승으로, 그들은 인류로 분류되지 못한다. 이제 이 일에 대해 분명히 이해가 되었느냐?
(5) 교회가 처한 각종 상황을 대하는 태도
적그리스도가 기분에 따라 그리스도를 대한다는 항목에서 방금 모두 몇 가지를 교제했느냐? 그중 하나가 사람이 책망과 훈계를 받을 때였다. 또 뭐가 있었느냐? (성육신 하나님께 관념이 생겼을 때, 발탁되거나 교체되었을 때, 그리고 그리스도가 쫓겨 다니는 것을 마주했을 때입니다.) 모두 네 가지였다. 교제를 계속해 보자.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진리를 얻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름의 계산과 의도, 그리고 목적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세력을 좋아하고 권세를 좋아한다. 따라서 그들은 관망적인 태도로 하나님을 믿는다. 어떻게 관망하느냐? 한편으로는 믿으면서 한편으로는 살피는 것이다. 하나님 집의 인원이 늘고 있는지, 복음 사역의 확장 상황은 어떤지, 순탄한지 그렇지 않은지, 하나님 집의 위세가 꾸준히 강화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힘쓰는 사람, 하나님 집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다음으로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사회적 배경과 교육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사회에서의 신분과 지위는 어떤지 살펴본다. 이렇게 관찰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하나님 집의 인원이 점점 많아지고, 게다가 더 많은 사람이 가정과 직장, 미래를 버리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일들을 목격하는 순간 그들은 나중에 복을 받을 때 자기도 몫을 챙기려면 더는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하나님 집 사역에 몸을 던지고, 본분 이행의 대열에 뛰어들어서 그중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 집에서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미래와 운명을 한 번도 포기한 적 없고, 여전히 마음속으로 저울질을 멈추지 않는다. 적그리스도의 무리는 이런 야심과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대하고 하나님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도 하나님 집의 지위와 명망이 계속 올라감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전력을 다하여 자기 미래와 운명을 위해 따져 보고, 저울질하고, 경영하는 한편, 하나님 집의 발전 상황이 어떤지, 국내외 위세가 어떤지, 인원은 점차 늘고 있는지, 교회 규모는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는지, 사회 유명 인사들과 연락이 되는지, 서양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지, 어느 정도 기반을 다졌는지 등을 관망한다. 그들은 이런 것을 계속해서 관망하며 알아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교회 사역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본분도 이행하지 않으면서 속으로 늘 자기 미래와 운명을 저울질하며 교회의 발전 상황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해한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 홈페이지에서 이런 정보들을 찾는 한편, 교회 안에서는 이런 소식들을 알아보고 다니는 것이다. 하나님 집의 해외 사역이 순조롭게 확장되어 전망이 점차 밝아지고, 서양에서의 사역이 점차 크게 확장되고 추세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안심이 된다. 안심한다고 해서 그들이 진정으로 변화되었다는 뜻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들이 안심하면서 성육신인 그리스도를 약간 더 ‘존중’하고 우러러보게 되었을 뿐, 진심으로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가 중국에서 사역할 때,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성육신 하나님은 잡혀갈까? 집권당의 손아귀에 넘어갈까?’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할 때 속으로 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얼마간 멸시했다. 성육신 하나님이 머물 만한 곳이나 머리 둘 곳 없을 때도 많고, 쫓기느라 여기저기 숨어 지낼 때도 많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그들의 마음속에 있었던 성육신 하나님에 대한 일말의 호기심과 억지 ‘존중’은 철저히 무너졌다. 그런데 성육신 하나님, 즉 그리스도가 인류가 동경하는 자유로운 나라 미국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성육신 하나님을 내심 부러워했다. 여기서는 존중이 아닌 부러움이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이 서양에서 인간들에게 버림받고, 비방당하고, 정죄되고, 판단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적그리스도의 내면이 다시 동요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하나님인데 어째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나요? 당신은 하나님인데 어째서 교계가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당신에 대한 그 많은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건가요? 당신은 왜 나서서 해명하지 않습니까? 변호인단이라도 꾸려야지요! 인터넷상의 당신을 모욕하고 비방하는 말, 교계에서 퍼트리는 당신에 대한 유언비어는 듣기 거북할 지경이라고요! 당신을 따르는 우리가 다 부끄럽고 그런 일을 입에 올리기도 민망해요. 당신은 동양에서 정죄되고, 서양에서도 정죄되고, 교계와 인류, 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우리가 다 창피해요.’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마음가짐이다.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창피함을 느끼는 동시에 자기 눈에 보이는, 속으로 생각하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멸시와 동정심도 생긴다. 이 동정심은 억지로 갖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해서 동정심이 생겼겠느냐?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런 큰 사역을 하면서 당신은 사사로운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으시니, 사심 없이 바치는 것이겠죠.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큰 고통과 굴욕을 당하시는 겁니까? 이치대로라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죠.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큰 굴욕과 고통을 견딜 수 있겠어요? 정말 딱하세요. 어려운 일이죠. 속으로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그는 그리스도에게 이 정도의 동정심을 갖는다. 그는 곰곰이 생각한다. ‘저라면 그렇게 큰 고통은 감당 못 할 것 같아요. 변호해 줄 사람들을 찾아야죠. 변호인단을 꾸려서 인터넷에 떠도는, 사실과 다른 소문은 없애고, 또 교계를 찾아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서 과연 누가 하나님인지,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지 보여 줄 겁니다. 비방과 정죄를 일삼는 그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징벌받게 해서 본때를 보여 줘야죠. 그러면 그들도 감히 그런 짓을 못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겁니까? 어째서 지금껏 자신을 위해 해명 한마디 없습니까? 그럴 능력이 없고 그럴 배짱이 없는 겁니까, 아니면 그럴 용기가 없는 겁니까?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설마 겁쟁이인가요? 아, 당신은 너무 많은 일을 가슴에 묻으시는 것 같아요. 이런 큰 억울함을 당해도 꾹 참으면서 사역을 확장하고, 또 노파심에 교회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공급하시지만 그들은 관념이나 품고 거역하기만 합니다. 속으로 얼마나 괴로우시겠어요! 이 모든 걸 견디다니 당신은 참 괜찮은 사람이고 동정할 만한 사람이군요.’ 그의 동정심은 이런 식으로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동정심이다. 지금까지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면서 그가 한 ‘좋은 일’이란 이게 전부다. 고작 이 정도의 ‘좋은 일’을 어떻게 했느냐? 제대로 하긴 했느냐? (그러지 않았습니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오랫동안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받아들였지만, 자신이 현생에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영광스럽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와 이런 고통을 함께 겪고,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세상으로부터 정죄받고 버림받는 일을 영광스럽게 생각한 적도 없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가 받는 이 모든 고통을 그가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부정하기 위한 빌미와 증거로 삼았다. 그에게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모든 고통을 겪고자 하는 염원과 태도가 없고, 방관자의 입장에서 그리스도가 받는 이 모든 고통을 관찰하고 이 인류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관찰하면서 그에 따라 그리스도를 대하려 한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복음 사역이 차츰 온 인류에게 확장되어 전망이 밝을 땐, 조금씩 성육신 하나님에게 다가가며, 성육신 하나님에 대해 일말의 존경과 부러움을 갖는다. 동시에 그는 전력을 다해 하나님 집에 접근하고자 하며, 하나님 집의 일원, 하나님 사역을 확장하는 일원이 되고자 한다. 그뿐이겠느냐? 이렇게 간단하겠느냐? 아니다. 그는 하나님 집의 각종 사역이 확장되는 상황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 집과 그리스도를 대하는 태도를 바꿀 것이다. 만약 인류 사이에서, 특히 서양의 민족 중에서 “이 말씀들은 정말 권병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군요!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의 본질이 보이니 이 평범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이 도(道)가 바로 참도인 게 틀림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은근히 기뻐한다. ‘다행히 난 떠나지 않았는데, 정말 참도가 맞구나! 봐, 서양인들도 성육신 하나님이 어디 계신다고 하잖아. 그분 말씀을 많이 듣고, 당장 가서 설교를 들어야겠어!’ 그 순간 적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이 너무나 아름답게 들리고, 자신의 심령을 깨끗이 씻어 주는 것만 같아서 소중히 여겨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외에서, 그리고 인류 사이에서 하나님 집의 확장 사역이 이따금 좌초될 때, 혹은 하나님 집의 사역이 교란이나 지장을 받고 외부 세력의 간섭을 받을 때, 나아가 하나님 집이 곤경에 부딪힐 때 적그리스도의 마음에 또다시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성육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지? 말씀하셨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거지?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까? 하나님 선민들 중 겁먹은 사람은 없나? 하나님 집을 떠난 사람은 없나? 바깥세상의 유명 인사, 원로 인사 중에 하나님 집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고, 팔 걷고 나서 주는 사람은 없나? 없다고 하던데, 그럼 어떡하나? 하나님의 교회가 곧 끝나는 건 아닐까? 나도 얼른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 크게 파문이 일고 있지 않느냐? 이럴 때 그가 하나님 설교를 다시 들으면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런 공허한 말이나 고상한 말은 이제 그만 하세요. 당신 말은 듣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집이 언제든지 이 세상에 점령당하는 마당에 당신이 하는 그 말씀들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게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집의 위세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수 있으니 하나님 집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흩어지겠죠.’ 내 말도 듣기 싫어하는데 나를 존경할 리가 있겠느냐? 동정할 리가 있겠느냐? (그럴 리 없습니다.) 남은 게 무엇이냐? 조롱하는 것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뒤에서 험담하고 헐뜯으며, 하나님 집을 조롱한다. “보니까 곧 큰일 나겠네. 당신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것 같은데, 당신의 그 진리들이 소용이 있나요? 당신의 말이 무슨 소용이죠? 어떤가요? 일이 닥치지 않았나요?” 마귀의 모습이 튀어나온다. 적그리스도가 하는 짓은 하나같이 마귀가 하는 짓이 아니냐? 인성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도 없이 사악하기 짝이 없다. 뒤통수를 친다! 하나님 집의 밥을 먹고, 하나님 말씀을 공급받아 누리고,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누리면서 일만 생기면 팔이 밖으로 굽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먹고 하나님 집을 조롱한다. 이런 게 마귀가 아니면 무엇이냐? 영락없는 마귀다! 그는 하나님 집이 득세하는 것을 보면 성육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털썩’ 꿇으면서 마치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처럼 군다. 하나님 집이 사탄에게 둘러싸여 정죄당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절하지 않는다. 하늘을 받치고 우뚝 선 사나이가 발아래 황금이 있다고 어찌 남에게 무릎을 꿇겠느냐? 그는 조롱하려고 기다리는 것이다. 목청과 어조를 높여 얘기하며 관리처럼 굴기 시작한다. 정상이 아니다. 마귀 모습이 튀어나오면서 순식간에 변한다. 너희가 볼 때 이런 사람들은 언제면 하나님을 경외하겠느냐? (영원히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 너무나 진실한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사탄의 족속이다. 그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탄에게 속하는 자이기 때문에 영원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에게 속하는 본성 본질이고, 사탄에게 속하는 적그리스도 부류의 추악한 민낯이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집을 비웃고 성육신 하나님을 조롱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본질을 부정할 거리를 준비하고 수집하며, 언제 어디서나 팔을 밖으로 굽혀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먹으려 한다. 하나님 집에 문제가 생길 때가 바로 그에게는 가장 기쁘고 즐거운 순간이다. 반면 형제자매들이 모두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 집 사역의 모든 질서가 바로 서 있으면 그는 괴롭고 속이 쓰리다. 하나님 집에 어서 일이 터지기를, 그리고 하나님 집의 사역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암초를 만나 좌초되기를 바라 마지않는 것이다. 요컨대, 하나님 집에서 형제자매들이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모두가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등, 모든 게 순조로울 때 적그리스도는 심기가 불편해진다. 형제자매들이 모두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실행할 때, 모두가 하나님을 크게 높이고 그리스도를 크게 높일 때,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높일 때, 그때가 적그리스도의 마음이 가장 괴로울 때이고, 그가 가장 크게 심판받고 고통받는 때이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에서 온갖 소식을 알아보고 다닌다. 그런데 만약 오랫동안 하나님 집의 복음 사역 확장이 어떤지, 하나님 집의 각종 업무 사역이 어떻게 진전되고 순조롭게 진행되는지, 해외 인원이 늘고 있는지, 교회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지, 각국에 교회가 세워졌는지 등 소식을 듣지 못하고, 또한 뜻이 있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 집에 더 많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면, 그들은 속으로 성육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의미하고 흥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성육신 하나님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하고, 심지어 시끌벅적하고 세력이 큰 종파가 있으면 거기로 가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이따금 하나님 집에 관한 좋은 소식, 이를테면 형제자매들의 간증 영상이 어떤 인권단체의 눈에 띄어 크게 주목받는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그는 속으로 좋아하고, 희망과 기쁨에 휩싸인다. 예를 들어 하나님 집이 어느 유명 단체에 주목을 받아 보도가 되면 그는 더욱 좋아하고 동요하기 시작한다. “이 평범한 사람이 대단한가 봐. 일이 이루어지려나 보군!” 만약 운 좋게 교회 이름이 어느 큰 인물, 심지어 지도자에 의해 거론되기라도 하면 적그리스도는 더욱 동요하기 시작한다. ‘이번 생에 내가 내린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선택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기로 한 일이야. 이제부터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거야. 그분을 하나님으로 대하고 속으로 그분을 받들어 모실 거야. 모 지도자가 이 하나님을 존경하니까 말이야. 그 사람이 존경하는데 나도 존경해야지. 이 하나님은 지도자의 입에 오르내리고 인정받았어. 그럼 내가 그분을 믿고 따르는 데 무슨 유감이 있을까? 더더욱 그분을 끝까지 따라야 하지 않겠어? 이제부터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떠날 생각은 절대 하지 말고 좋은 태도를 보여야지. 고생도 많이 하고, 대가도 많이 치르고, 무슨 일이든 형제자매들과 많이 의논하고, 시키는 일은 무조건 해야지. 나중에 교회가 확대되고 명성이 높아지면 높은 직함을 얻고 출세할 수 있을지도 몰라!’ 생각할수록 흐뭇하기만 하다. ‘너무나 탁월하고 확실한 선택이야! 난 어쩜 이리 똑똑할까? 전에는 떠나고 싶었는데, 그때는 왜 그리 바보 같았는지! 젊어서 충동적이고 잘못된 선택과 판단을 내리기가 쉬웠지.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온건해지고 숨길 줄도 알다 보니 드디어 희망이 보이는구나. 떠나지 않기를 잘했고, 그 소문들을 믿지 않기를 잘했어. 소문에 미혹되거나 좌지우지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너무 위험했어! 이제는 좀 조심해야지. 이분이 보통이 아닌 것 같으니 잘해 드리자!’ 그는 순간적인 흥분과 충동으로 건강식품이나 좋은 물건들을 사서 바쳤다. 윗면에는 “사랑하는 하나님께 바칩니다. 물건을 몇 가지 넣었습니다.”라고 적혀 있고, 밑면에는 “이에 삼가 바칩니다. OOO 올림, OOOO년 OO월 OO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은 특별한 선물로 무척 귀하지만, 그 이면에는 숨은 뜻이 있고, 사연이 있다. 너희는 이 말을 듣고 “이제 보니 하나님은 사람이 바친 제물을 이렇게 이해하시는구나.”라고 말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다 그런 것도 아니다. 모든 물건이 이런 식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건, 일부 사람들이 물건을 바치는 데는 이면에 바로 이런 속셈, 이런 배경의 영향과 부추김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객관적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모든 일을 저울질할 때 ‘이익’이라는 단어를 가장 우선시한다.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무슨 일이든 나름대로 저울질을 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각각의 일반 신도들은 대부분 하나님 집 각종 사역의 진전 상황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알아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사무적인 일들을 알아보는 것은 진리 추구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네가 알아도 소용이 없다. 알았다고 해서 네가 생명과 진리를 갖추었다는 의미도 아니고, 모른다고 해서 네가 분량이 작다는 의미도 아니다. 이런 일들은 진리와 무관하고, 네가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건 이성이 있는 사람들이 이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이런 일을 물고 늘어진다. 그들은 이런 일을 최고의 진리로 생각하며 알아보고 수집하는데, 수집한 다음에는 자기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사방에 퍼트린다. 그는 형제자매라면 누구나 그런 일을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나는 여간해서 그런 일을 알아보지 않는다. 관계자를 만날 경우 얘기는 좀 나누겠지만, 일부러 그런 일을 알아보러 다니지는 않는다. 다만 몇몇 사역이 대체 어떻게 진행되고, 사역의 진전 상황은 어떤지, 무슨 문제나 빈틈은 없는지 알아야 할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만 가서 알아본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궁금하거나 관심이 간다고 해서 그런 일을 알아보지 않는다. 내가 그런 상황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단지 사역과 관계가 있어서 그런 것이고, 소식의 출처, 호기심과는 관계가 없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에 그런 일을 파고들기를 좋아하며, 그가 이런 일을 파고드는 데는 목적이 있다. 그들은 겉면의 이런 형편, 환경을 이용해, 그리고 교회가 각각의 시기에, 또 각 종파에서, 각 종족 집단에서 처한 상황을 이용해 하나님이 한 사역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고, 그리스도가 하나님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이는 어떤 작자냐? 이런 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냐? 분명히 이런 자는 불신파이다. 진리를 아무리 교제해도 그는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외부에서 교회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교회가 각국에서 어떤 지위에 있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자세히 알아보고 있다. 이런 자는 엄연히 불신파이다. 딴생각을 품고 있는 불신파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다. 너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느냐? 아마 다들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예배에서 적그리스도의 각종 본질을 폭로할 때마다 일부 사람들을 정죄한다. 이들은 폭로당하면 꼬리를 감추고 감히 얼굴을 내밀지 못한다. 특히 이번에 이렇게 교제하면 몇몇은 더 이상 알아보러 다닐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공개적으로는 알아보지 못하지만, 뒤에서는 여전히 떠도는 소문을 알아볼 것이다.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묻고 다니지는 않지만 인터넷에서 몰래 알아볼 것이다. 그 밖에도 우리 교회에 대한 이방인이나 종파, 그리고 서방 국가들의 평가나 의견을 알아보려고 머리를 짜낼 것이다. 미친 사람처럼 말이다. 정신이 좀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 이것이 바로 눈이 뒤집혀서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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