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1) 제 1 부

오늘은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대화를 하나 들어 보자.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갑이 말했다. “제가 책망을 받으면 형제자매들이 다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을이 말했다.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대수인가요? 제가 교체되면 형제자매들이 모두 의기소침하고 연약해질 겁니다.” 갑은 을이 자기보다 앞선 것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우리 그곳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저와 함께 떠날 겁니다.” 이 말을 듣고 을이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저보다 대단하군요. 그런데 제가 제명된다면 우리 교회에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겁니다. 어때요? 당신보다 더 대단하지요?” 대화 내용을 알아들었느냐? 두 사람이 겨루는 것은 무엇이냐? (누가 더 사람 마음을 회유할 수 있는지, 누가 더 독립 왕국을 세울 수 있는지, 누구의 재주가 더 뛰어난지 겨루고 있습니다.) 누구의 재주가 더 뛰어난지, 누구의 능력이 더 큰지, 누구의 수완이 좋은지, 그리고 누가 사람을 더 많이 회유했는지 겨루고 있다. 그들이 누가 진리 실제가 더 있는지 겨루고 있느냐? 누가 인성이 더 뛰어난지 겨루고 있느냐? 누가 진리를 더 많이 깨달았는지 겨루고 있느냐? (아닙니다. 교체되거나 제명된 다음 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을 두둔하는지를 겨루고 있습니다.) 이는 어느 방면의 수완을 겨루는 것이냐? 그들은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농락하고, 미혹하는 능력을 겨루고 있다. 너희가 알아맞혀 보아라, 갑과 을은 어떤 사람이냐? (둘 다 적그리스도입니다.) 이 둘은 어떤 인간이냐? 한 쌍의 악인이자 악질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명백한 한 쌍의 악인이다. 그들은 누가 악행을 저지르는 능력이 더 큰지, 누가 사람을 더 잘 미혹하고 통제하는지, 누가 사람을 더 잘 회유하는지, 누가 하나님과 하나님 선민을 놓고 더 잘 다투는지를 대놓고 겨루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을 통제하는 사람이 능력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걸 두고 겨루고 있다. 너희가 볼 때 이렇게 겨루는 적그리스도가 있느냐? (있습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이렇게 겨루느냐, 아니면 암암리에 힘겨루기를 하느냐? (암암리에 힘겨루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 이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실제로 있는 이야기이고, 진실하지 않으냐? (실제로 있는 것이고 진실합니다.) 그들이 암암리에 힘겨루기를 할 때 대놓고 그렇게 말하겠느냐? 절대다수의 적그리스도는 교활하고 사악하다. 그는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고 공개적으로나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확실히 그렇게 행하기도 한다. 그가 아무리 자신을 가리고, 숨기고, 위장해도 그의 적그리스도 본성과 악독한 본성은 가릴 수가 없다. 그것은 틀림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비록 그는 말을 내뱉지 않아 다른 사람들 귀에 들린 명확한 말은 없지만,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숨기거나 감추거나 소홀히 하지 않고, 남모르게 하지도 않고, 타협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사람들을 농락하고, 미혹하고, 통제하여 독립 왕국을 세우는 그의 행위와 방법은 전혀 모호하거나 허술하지 않다. 그는 대놓고 하나님께 대항하고, 노골적으로 사람들을 농락하고 미혹한다. 그는 자기가 책망을 받으면 많은 형제자매가 자기를 두둔하고 하나님께 대항하고 하나님 집에 대항하며 사역에 소극적이고 태만해져 본분을 이행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매우 기뻐하고 만족할 것이다. 만약 그가 교체된다면 그는 많은 이가 소극적이 되어 뒤에서 자기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자기를 두둔하고, 자기를 위해 변명하고 설명해 주고, 자신의 공덕을 헤아려 주고, 자신의 타당성을 지켜 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 심지어 하나님 집의 안배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속으로 몰래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부인하고 하나님이 하는 말씀과 하나님이 하는 일이 모두 진리이고 긍정적 사물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를 바란다. 만약 그가 믿지 않는다면 그는 모든 사람이 다 그를 따라서 믿지 않고, 모두가 그를 따라 떠나고 그의 추종자가 되어 하나님이 진리임을 부인하는 한편, 그에게 진리가 있고 그가 하는 일은 다 옳고 그가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다고 믿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가 만약 악을 행하여 교회에서 제명되거나 출교된다면, 그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세상으로 돌아가 불신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되면 그는 기뻐할 것이다. 마음이 안정되고, 화가 풀릴 것이다. 그런 사탄 성품의 표출, 그런 모습, 그런 본질, 그리고 그런 구체적인 생각과 사상은 누구를 대표하느냐?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형제자매이냐?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있느냐?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순종이 있느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으로, 그가 바로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이 정확하지 않으냐? 진리가 아니냐? (정확하고, 진리입니다.) 100% 그렇다. 이 말은 진리이고,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도 그렇게 한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개인적인 야심과 욕망에 지배되고, 적그리스도의 본성에도 지배되고 부추김을 받는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는 사사건건 하나님께 적대적이고, 진리에 적대적이다. 그의 눈에 누가 그의 이익을 해치든, 누가 그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그의 욕망과 야심을 박탈하고, 복을 받으려는 그의 소망을 박탈하든 그 사람이 한 일이 옳든 그르든 관계없이 그는 일어나 대항하고 그 사람을 적으로 삼을 것이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본성이다. 따라서 적그리스도 부류는 아무리 잘못과 악한 일을 저질러도, 아무리 하나님 집 원칙에 어긋나고 하나님 집 사역지침에 어긋난 일을 저질러도 누구도 자신을 책망하고 훈계하지도 못하게 하고, 누구도 자신을 폭로하고 처리하지 못하게 한다. 일단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는 순종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되려 적반하장으로 남을 비난하고, 자기 체면을 만회하려고 온갖 궁리를 한다. 또 갖은 수를 써서 자기 죄와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자기는 털끝만큼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한다. 더 나아가 그의 최대 바람은 꾐에 빠지고 미혹된 누군가가 그의 악행을 변명해 주고 그 책임을 벗겨 줌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일어나 자기를 위해 입을 여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자. 너희들이 잘 알아맞혔듯이, 그 두 사람은 적그리스도가 맞다. 적그리스도만이 그런 대화가 가능하고, 그런 말을 내뱉고 그런 바람을 가질 수 있다. 정상적인, 패괴된 사람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구하고 기도하며 서서히 순종할 것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망과 훈계를 받거나 교체되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순종하는 태도와 순종하고자 하는 바람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하나님과 적이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패괴 성품이 있는 보통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이런 면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아무리 설교를 많이 들어도 마음속 욕망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을 통제하고 회유하고 미혹하려는 야심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야심과 욕망이 줄어드는 것은 고사하고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서, 또 여러 가지 상황이 변하면서 점점 더 심해지고 팽창된다. 이것이 바로 본성 본질에서 적그리스도가 평범한, 패괴된 사람과 전혀 다른 점이다.

적그리스도의 여러 가지 모습 중 제9조에 대한 교제를 마치고, 이번에는 제10조인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를 교제하기로 하자. 진리를 멸시하는 것,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는 것,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하는 것은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심각한 것이고, 모두 일반적인, 패괴 성품의 표출이 아니다. 이 중 어느 것을 보아도 여기에 요약된 적그리스도 부류의 본질은 흉악함과 사악함을 내포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분명하고도 심각하다. 여기에 교만함, 강퍅함, 간사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제 그런 단어들로는 이 방면의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확실하게 이야기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러니 흉악함과 사악함이라는 두 가지 성품으로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요약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하나씩 이야기해 보자. 진리를 멸시하는 것에서 멸시하다의 뜻은 무엇이냐? (안중에 없는 것입니다.) (얕보고, 업신여기고, 경시하는 것입니다.) (거들떠보지 않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얘기한 그 말들은 뜻이 다 비슷하다. 멸시한다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안중에 없고, 경시하고, 얕보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반발하고, 반감을 품고, 혐오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심지어 정죄하고, 악의적으로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희들이 말한 그 정도에 비해 어떠하냐? (세부적이고 구체적입니다.) 너희가 말한 것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너희가 말한 것은 대부분 멸시의 동의어이다. 내가 말한 것들은 ‘멸시하다’라는 동작과 행위에 대한 본질을 세분화한 것으로, 진리를 멸시하는 이 행위와 본질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설명이다. 즉, 어떤 사람이 진리를 멸시할 때,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일상생활에서 진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진리와 관계되고 긍정적인 사물과 관계된 일에 대해 마음속에 어떤 태도를 품고 있는지를 보면, 거기에서 진리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곧 받아들이지 않고 반발하고 귀찮아하며, 심지어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방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진리를 멸시한다는 말의 구체적인 모습이자 표출이다. 이것은 진리를 대하는 그의 태도와 행동의 면면을 포함할 정도로 구체적이다. 즉, 그가 진리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긍정적인 사물에 대해 반감을 품고,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반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면면을 말이다. 네가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라고 말하면 그가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무슨 또 하나님 말씀이니, 진리니 그러세요! 뭐든지 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로 대신하는데, 우리 삶에는 하나님의 말씀 말고 다른 것도 있잖아요? 우리가 그 많은 책을 읽고 그렇게 다양한 지식을 배운 것이 다 헛수고란 말입니까? 사람은 머리가 있고, 생각이 있고, 스스로 문제를 사고하는 능력이 있는데,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진리에 근거한다면 너무 교조적인 것 아닌가요?”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는 너의 말에 그가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읽긴 뭘 읽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우리 문제예요. 사람의 문제가 하나님과 무슨 상관입니까? 진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안에 모든 게 다 들어 있는 줄 아나 본데, 말씀이 무슨 백과사전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모든 걸 다 언급하는 건 아닙니다. 사람의 문제는 사람이 스스로 처리하고, 구체적인 문제는 구체적으로 해결해야죠. 아니면 인터넷에서 자료도 찾아보고 전문가에게 물어 자문을 구해보기라도 해야죠. 우리 교회에 교수도 있지 않습니까? 형제자매 중에 대학생도 많고요. 우리 모두를 다 합치면 진리를 못 당하겠습니까?” 네가 하나님께 구하고 진리를 구한다고 한다든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고 하면 그는 속으로 너를 무시하고 그렇게 실행하기 싫어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실행하면 너무 위신이 떨어지고, 창피하고, 무능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이는 일종의 멸시가 아니냐? 이것이 진리를 멸시하는 실제적인 모습, 실제적인 행위다. 이런 사람이 적지 않다. 비록 그들이 설교도 자주 듣고, 손에는 하나님 말씀 서적도 들고 있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도 이행하고 있지만, 무슨 일이 생길 때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라는 말에 대해서는 가소롭게 여기고, 귀찮아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지어 반감을 품는다. 그래서 일이 생기면 그들은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면서 이같이 주장한다. “구체적인 일은 구체적으로 해결하고, 사람의 일은 사람 스스로 해결해야지,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뭐든 다 관여하실 필요가 없지요. 게다가 어떤 일은 하나님도 관여하실 수 없어요. 이건 우리의 사적인 일로,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고, 진리와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체 자유를 간섭하시면 안 되고, 우리 사생활에도 간섭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선택할 권리가 있고, 어떻게 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말을 할지 선택할 권리가 있어요. 진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필요할 때,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필요할 때, 사람이 해결하기 힘든 어려움을 만나 전혀 방법이 없을 때 꺼내 읽어서 마음을 시원하게 푸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들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 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현실 생활에서 부딪히는 모든 일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으며, 더욱이 사람의 모든 것이 하나님 수중에 장악되어 있다는 사실도 믿지 않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멸시한다는 것이 아우를 수 있는 범위는 좀 넓다.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멸시한다는 건 어떤 뜻이냐? 그 범위는 어떻게 되느냐? 우린 세 가지로 나누어 해부해 보자. 그러면 너희가 조금은 명확히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멸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은 진리를 대표하지 않느냐? (대표합니다.) 그다음으로는 성육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 하나님이 한 사역은 진리가 아니냐? (진리입니다.) 그밖에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멸시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것이라고 줄여서 말할 수도 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 몇 가지를 각각 해부해 보기로 하자.

1.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멸시한다

우선,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에 대해 지니는 태도에 대해 교제해 보겠다. 이는 그가 이 방면에서 진리를 멸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신분과 하나님의 본질을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는 무엇이냐? 그는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어떻게 정의 내리고, 이 일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나님의 본질에는 무엇이 포함되느냐? 하나님의 공의 성품, 하나님의 전능, 하나님의 거룩함, 그리고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이다. 하나님 자신의 신분은 바로 창조주라는 사실과 하나님이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적그리스도는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이냐? (적그리스도는 매일 부딪히는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일을 따질 줄밖에 모르고,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그것을 대합니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대한다는 것이냐? 네가 말한 앞부분은 맞다. 즉, 적그리스도는 일이 생기면 오로지 그 일을 따질 줄밖에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뒷부분에서 그가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그것을 대한다고 했는데, 그건 보통의 패괴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모습들이다. 여기서 우리가 교제하고 폭로하는 것은,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멸시하고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멸시하는 점이다. 네가 그런 증거를 찾으려면 적그리스도의 그런 방식과 모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사실 입으로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고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권세 아래 순종해야 합니다.”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막상 일이 생기면 이렇게 받아들이겠느냐? 입으로는 아주 듣기 좋고 옳게 말을 내뱉지만, 일이 생기면 그렇게 실행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가 취하는 방법과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가 한 말은 구호이지 진실한 인식이 아님이 드러난다. 일을 맞닥뜨렸을 때 그의 어떤 관점과 생각, 어떤 말과 태도가 그에게 적그리스도의 본질이 있음을 보여 주느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적그리스도가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냐? 좋든 나쁘든, 자기에게 이익이 되든 안 되든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그에게 있느냐? 분명히 그에게는 그런 태도가 없다. 일이 생기면 그는 자신의 이익과 지위가 어떻게 될지를 먼저 생각한다. 그런 다음 거기서 벗어나고 출구를 찾고 회피할 궁리만 하고, 책임을 짊어지기 싫어한다. 게다가 다른 측면에서 이유를 찾고 핑계를 대며 사람의 방법으로 그 일을 해결하고, 자기 머리로 그 일을 분석하고 대한다. 심지어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이 사람이 틀렸다느니, 저 사람이 말을 듣지 않았다느니 하며 원망하고, 애초에 자기가 부주의했다느니, 소홀히 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면서 후회까지 한다. 그는 자신이 마주한 환경,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에 대해 명백히 반발하고, 회피하고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갖고 있다. 그의 첫 번째 반응은 닥친 이 환경에 저항하려는 것이고, 두 번째 반응은 사람의 방법으로 그것을 무마하고 사람의 방법으로 난관을 넘기려 하고, 심지어 사람의 방법으로 그 사실을 감추고, 교회 사역과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 입힌 손해를 감추려 하는 것이다. 그는 머리를 쥐어짜 사람의 방법으로 자신의 악행을 덮고 감추고, 자신이 한 나쁜 짓이 어떤 성질이고, 어떤 진리 원칙을 위배했는지 인정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당부한다. “누구도 이 일을 입 밖에 내면 안 됩니다. 우리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몰라요.” 그는 순종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적반하장이 되어 기만하고 숨기려 하고, 사실과 진상을 덮으려 한다. 그리고 발생한 일을 축소하거나 없는 일로 만들어 상부 리더나 하나님이 모르게 하려 시도한다. 자신에게 닥친 일을 마주하면 적그리스도는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 그가 이렇게 처리하는 것은 그가 외치는 구호와 일치하느냐? 그가 외치는 구호와 일을 마주하는 태도 중에 어느 것이 그의 본성 본질의 표출이겠느냐? (일을 마주하는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태도는 과연 무엇이냐? 순종하는 태도가 있느냐? 겸허하게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 징계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느냐?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느냐? 어떤 일을 마주하든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것을 주재하는 그분임을 진실로 믿는 태도, 그런 진실한 모습이 있느냐? (없습니다.) 눈곱만큼도 없다. 그렇다면 그의 태도는 무엇이냐? 그의 태도는 명백히 거절하고, 감추고, 기만하고, 끝까지 대항해서 하나님이 행사하거나 주재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이 모든 것을 무마할 재주와 능력이 있으므로 그 누구도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의 사역에 개입하거나 관여해서는 안 되며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가 믿는 하나님은 그 순간에도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는데 빈 껍데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순간 그의 믿음은 무엇이냐? 막연하고 텅 빈 것이고, 기만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진실한 믿음이 없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을 때는 적그리스도도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찬양을 배우고, 교회 생활에 참여하고, 교회의 여러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의 주재를 믿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손안에 있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좋은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항상 남에게 가르친다.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려고 하지 말고, 무슨 일이 생기면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게 하나님 손안에 있으니까요.” 구호를 높이 외치는 그의 태도는 매우 확고하고 절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이 닥쳤을 때 사실의 진상, 그에게서 진실로 표출된 모든 것이 철저하게 그의 실제 분량과 그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점은 그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가 창조주의 신분과 본질에 대한 사실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는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하고 더더욱 인정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그가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완고하게 대항한다는 점이다. 일이 생기면 그는 이것저것 원망만 한다. 착실하게 고분고분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고분고분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주재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며, 고분고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그는 사람의 수단과 음모, 사람의 방법을 이용해 그 일을 무마하려 한다. 즉, 그 일을 덮어 사람을 기만하고 하나님을 기만하려는 것이다. 일을 무마하기만 하면 그 일이 다 끝난 셈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무마해 자신의 잘못과 패괴 성품이 가려져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그의 잘못을 눈치채지 못하고 더 이상 추궁하는 사람이 없으면 목적을 이룬 것이고, 그로 인해 편안해질 것이다. 어떤 일에 맞닥뜨렸을 때 적그리스도의 모든 언행, 일거수일투족, 그의 행위와 모습의 본질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주재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끝까지 완고하게 대항하는 것이다. 자기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하나님이 책망과 훈계를 하거나 환경을 마련하여 징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하나님이 드러내고 폭로하는 것은 더더욱 용납하지 않는다. 일단 폭로되거나 일이 드러나면 그는 당황하고 몹시 허둥댄다. 심지어는 적반하장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보호하지 않고 축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똑같이 일이 닥쳤을 때 왜 다른 사람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기는 드러내고, 똑같이 일이 닥쳤을 때 왜 다른 사람은 징계하지 않으면서 자기는 징계하느냐며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으시니 저는 사람의 방법,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는 자신이 잘못해도 하나님이 징계하거나 드러내서는 안 되고, 자기를 감싸 주고, 곳곳에서 자기를 위해 길을 내주고, 편의를 봐주고, 자기가 어떠한 잘못을 하더라도 용인해 주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를 드러내고, 일이 닥쳤을 때 그에게 특별한 은총과 이상(異象)을 주거나 그를 인도해 주지 않는다면, 이런 하나님은 사랑스럽지도 않고, 그의 운명을 주재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는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봉사해야 하고, 항상 도움을 주어야 하고, 심지어 자신이 저지른 과오, 자신이 드러낸 패괴와 패역이나 대적에 대해 질책이나 징계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갖가지 행위와 모습을 보면,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다. 이른바 그의 그 진실한 믿음이란 이익을 얻고 덕을 보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지배하려 하고,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모든 것을 해 주고, 길을 내주도록 하나님을 이용하려 한다. 그는 패괴된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크나큰 은덕이니 하나님은 이를 기억하고 마땅히 자기를 보호하고, 무조건 축복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가 어떤 나쁜 짓을 저질러도 하나님이 모두 용서하고 사정을 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그야말로 악인이고, 염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이 닥치면 노골적으로 이유와 핑계를 대고, 변명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사실을 숨기며, 자신이 드러나거나 남에게 약점을 보이면 지위와 명성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 하나님께 끝까지 대항한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입에만 머물 뿐,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진정한 순종도 없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분이라는 사실을 대함에 있어 적그리스도의 본질에서 보면, 그들은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반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운명을 주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재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데 그는 누가 주재하기를 바라느냐? 그는 자신이 결정하기를 원한다. 그 말은 곧 사탄이 지배하게 한다는 것이고, 패괴 성품과 사탄의 패괴된 본질이 생명이 되어 그의 내면에서 왕권을 잡게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이라는 면을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대하느냐? 하나님의 본질에 포함된 이 몇 가지 방면에 대해 적그리스도는 의심을 품고 있다. 그들은 불신하고, 의심하고, 심지어 사사건건 관념을 품고, 정죄하기까지 한다. 때로는 상상과 사람의 지식과 두뇌로 이 방면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일부 어리석은 자들은 또 자기의 해석이 매우 뛰어나고, 영적이고, 정당하고, 실제적이라고 여기는데, 그것은 더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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