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3) 제 7 부
진정한 인류가 사랑하고 추구하는 것은 인성과 양심에 부합하고, 정상 인성의 사고와 현실 생활에 부합하고,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치우치거나 괴상하지 않고, 추상적이거나 공허하거나 초월적이지 않다. 이런 것을 사람이 애지중지하고 올바르게 대하며, 습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사물로 간주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현실 생활의 의식주나 행동과 됨됨이 등 다방면의 일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진리를 보면 업신여기고 무시하며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는 어떤 문제이냐? 이는 그 사람의 취향과 본성 본질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긍정적인 것일수록,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일수록, 하나님이 원하고 행하는 것일수록,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람이 하길 바라고, 사람이 받아들이길 바라는 것일수록 그는 더더욱 의심하고 연구하며 반대하고 정죄한다. 이것이 사악하지 않으냐? 너무나도 사악하다! 적그리스도는 이방인 가운데서 인기가 대단하다. 내가 만약 이방인 가운데 있다면 적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입은 육신 중에 어느 쪽이 이방인에게 더 받아들여지겠느냐? (적그리스도입니다.) 어째서냐? 이방인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느냐, 아니면 사악한 사람을 좋아하느냐? (사악한 사람입니다.) 아부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하느냐, 아니면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느냐? (아부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다. 그들은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네가 사람들 속에서 술수로 여러 인간관계를 다룰 줄 모르고 술수로 여러 사람을 희롱하거나 조종할 줄 모른다면 그 무리가 너를 받아주겠느냐? 네가 너무 바르고 모든 말을 직설적으로 한다면, 많은 문제의 본질을 간파하여 네가 간파하고 깨달은 진리를 전부 이야기한다면 받아들일 사람이 있겠느냐? 없다. 이 세상에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에서는 절대 진실한 말을 하지 말아라. 그러지 않는다면 골치를 썩을 것이고, 화를 입을지 모른다. 정직한 사람이 되면 살길이 없으니 절대 정직한 사람이 되지 말아라. 그렇다면 적그리스도의 경우는 어떠냐? 그들은 누구보다 거짓말과 위선, 자기 포장에 능한 자들이다. 남들이 숭배하게끔 자기를 위대하고 격조 높고 선량하며 정숙한 사람으로 포장한다. 그들은 이런 데 가장 능한 것이다. 또한 그들은 모두 똑같은 것을 좋아하는데 공허한 지식과 학문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은사나 수단을 비교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회사나 사람들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이나 학문의 수준이 아니다. 그것이 회사에서의 직위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는 아닌 것이다. 그럼 주요한 요소가 무엇이겠느냐? (술수와 재능입니다.) 그렇다. 술수와 재능이다. 이것이 없으면 학문이 아무리 높아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네가 국내파들 간 게임의 룰을 전혀 모르는 유학파인데 해외 기업의 규정이나 처신의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면 너는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것이다. 너는 술수를 가지고 충분히 사악해야 높은 자리를 도모할 수 있다. 남편이 돈을 벌어 오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출세해서 명예와 이익, 지위를 얻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첨하며, 필요하다면 ‘접대’도 마다하지 않는 여자처럼 말이다. 그녀는 아무런 미안함이나 가책도 없이 뻔뻔하게 남편과 가족을 대한다. 너는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듣기만 해도 역겨우니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그들 속에서 어찌 높은 자리를 도모할 수 있겠느냐? 어림도 없다. 그것은 다 영혼을 팔고, 온갖 사악한 수법을 동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는 이런 방식이 좋으냐? (싫습니다.) 지금은 싫다고 하지만 언젠가 네가 궁지에 몰리면 좋아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하루 종일 너를 괴롭히고 타박하며 곤란하게 만들면서 트집을 잡고 너를 쫓아내려 한다면 너는 네 밥벌이를 위해 육체를 팔아야 할 것이다. 그녀가 어떤 사악한 간계를 썼는지 보고 너도 배울 것인데, 결국 너는 그녀와 같아질 것이다. 지금 당장은 네가 “그런 건 싫습니다. 그런 사람들처럼 살긴 싫어요. 전 그 정도로 사악하지 않습니다. 제 육체를 팔기도 싫고, 돈도 싫습니다. 그저 먹고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해요.”라고 단호하게 말하지만 네가 어떤 사람이냐? 넌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사탄이 너를 패괴시키는 대로 생겨 먹은 사람일 뿐이다. 네가 스스로를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하고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기에 명예와 이익, 지위, 돈, 그리고 온갖 시험을 너는 결코 이겨 낼 수 없다. 만약 네가 그런 환경에 놓인다면 너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방인의 무대는 고기 분쇄기 같아서 사람이 일단 말려 들어가면 살아 나올 수 없다. 지금 네가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누구의 괴롭힘도 없이 하나님 앞에서 평안하게 사는 것은 더없이 큰 복이다. 몰래 기뻐하여라! 네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책망과 훈계를 조금 받는다고 해서 억울해해서는 안 된다. 너는 큰 복을 받았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이방인이 ‘고기 분쇄기’에 있으면 어떤 기분이겠느냐? 죽을 맛이다. 네가 하나님 집에서 고생하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고생이다. 그렇게 큰 고통도 아닌데도 사람은 자족할 줄 모르고 아무리 책망하고 훈계해도 회개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집으로 돌려보내면 이방인에게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이방인은 너무 악하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막상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은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들 목숨에 연연하는 것이다. 사람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을 신봉해서 관만 보면 울며불며 통곡한다. 이방인들 속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안다. 존엄하게 살고 싶고 능력껏 먹고살고 싶겠지만 어림도 없다. 능력만으로는 안 되고 충분히 사악하고 악하며 독해야만 통할 수 있다. 너는 무엇을 갖추었느냐?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제가 좀 사악하긴 한데 충분히 악하진 않아요.”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고기 분쇄기’에 들어가면 한 달도 안 돼서 악해질 것이다. 네가 좋은 사람이 되면 그가 널 죽이려 들 것이다. 네가 그를 내버려둬도 그는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너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와 싸울 수밖에 없다. 일단 악해지면 돌이킬 수 없고, 너도 마귀가 된다. 그렇게 사악해지는 것이다. 이방인의 세상은 이렇게 어둡고 이렇게 사악하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어둡고 사악한 사탄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진리를 깨달아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는 네가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며 많은 일을 꿰뚫어 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행동 원칙의 한 면으로는 지혜가 있어야 하고, 다른 한 면으로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명예와 이익을 좇거나 지위에서 오는 복을 누리려고만 하지 말아라.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입에 풀칠만 하면 된다. 하나님에게 이런 은혜를 부어 달라고 기도해야만 보호받을 수 있다. 사치스러운 욕망만 품으면 이성이 사라질 것이고, 하나님도 네 기도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성에 관해 오늘은 주로 세 번째 모습인 적그리스도가 숭배하는 것에 관해 교제하겠다. 적그리스도는 무엇을 숭배하느냐? (지식과 학문입니다.) 지식, 학문 그리고 하나가 더 있으니 은사이다. 지식과 학문에는 무엇이 있느냐? 세상에서 배운 책의 내용, 지식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면서 얻은 경험, 그리고 사회에서 가르치는 윤리, 인성, 행위 등 다방면의 잡다한 규율과 속박이 있으며 그 밖에 각 분야의 과학적 지식도 포함된다. 예를 들면 하나님 말씀 중에 사람이 윤회한다는 말을 내내 믿지 않다가 어느 날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나서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죽고 나면 무언가 빠져나가서 체중이 몇 그램 주는데 이것이 아마도 영혼의 무게일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다가 과학자가 체중으로 측정하니 믿는다. 그는 과학만 믿는 것이다. 국가와 정부, 관련 자료나 학설, 유명인의 주장만 믿는 사람도 있다. 그는 이런 것만 믿는다. 하나님이 아무리 말하고, 알리며, 가르치고 말씀을 선포해도 거들떠보지 않다가 유명인이 하는 말은 곧장 받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숭배하고 전파하기까지 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매일 사람에게 만나를 내려 주되 오늘 거둔 것은 내일이 되면 신선하지 않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된다고 해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만에 하나 하나님이 내려 주지 않으면 굶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그것을 비축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튿날 하나님이 또 내려 주면 계속해서 비축해 두었다. 다음 날도 내려 주면 또 비축했다. 하나님이 매일 같은 말씀을 해도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당부를 어기는 일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믿지 않고 따르지도 않은 것이다. 어느 날 한 과학자가 연구를 통해 “이 만나라는 것은 당일 다 먹지 않고 다음 날까지 두면 겉으로는 신선해 보여도 속에는 세균이 번식해서 먹으면 위장병을 일으킬 수 있어요.”라고 하니 그때부터 다시는 비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과학자의 말 한 마디가 하나님의 열 마디 말씀보다 중요하니 사악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인정하고, 또 하나님을 인정하고 따르며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얻기를 바랐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이 내려 주는 은혜와 축복, 보살핌과 보호를 누리고 있었지만 이것 외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당부와 분부, 부탁은 한 마디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지식과 학문을 갖추고 또 권세와 지위가 있는 사람의 말이나 엉터리 논리라면 덮어놓고 주저 없이 받아들인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이냐? 이것을 사악이라고 한다. 너무나도 사악하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중독되기 쉬우니 고구마와 달걀을 같이 먹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말한 근거가 무엇이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두 가지를 같이 먹다가 중독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듣고 나서 정상인은 어떻게 반응하겠느냐?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고구마를 먹을 때 달걀은 안 먹어야겠어. 최소한 두세 시간 안에는 달걀을 먹지 말아야지.’ 그는 진지하게 듣고 두 번 다시 그렇게 먹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믿지 않고 뭐라고 하느냐? “달걀이랑 고구마를 같이 먹으면 중독된다고? 말도 안 돼. 중독되는지 안 되는지 내가 같이 먹어 주겠어!” 이는 어떤 사람이냐? (사악한 사람입니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비정상인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기어이 같이 먹겠다고 하니 비정상이 아니겠느냐? 바르고 옳으며 긍정적인 사물에만 맞서고 따지며 대항하는 것이 사악함이다. 패괴된 인류는 사악함과 권세를 숭상하고 사탄, 마귀가 어떤 엉터리 주장을 내세우든 주저 없이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이 선포하는 수많은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모자라 많은 관념을 갖는다. 사례를 더 들어 보겠다. 미국의 많은 지방 도시는 원시림 지대라 야생 동물이 자주 출몰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혼자 다니지 않는다. 저녁이 되면 되도록 외출을 삼가고,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만일에 대비해 무리를 짓거나 호신용 무기를 챙기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괜찮아요.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게 아니냐? 그 조치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조치다. 네게 머리가 있고 마음과 영이 있는데 어째서 굳이 하나님에게 지켜 달라 하느냐?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 만에 하나 네댓 명으로도 못 당할 포악한 야생 동물을 만나도 죽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호이다. 어떤 사람이 확실히 늑대를 보고 늑대나 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야생 동물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내가 저녁엔 야생 동물과 쉽게 마주칠 수 있으니 나가지 말라고 한 것은 내가 상상한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겁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조심해야겠어요. 만에 하나 야생 동물을 만날 수 있으니 앞으로 나갈 땐 일행을 구하거나 호신용 무기를 챙겨야겠어요.” 이 말을 진지하게 들은 사람은 믿고 받아들인 다음 내 말대로 실행한다. 이것이 바로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 하지만 내 말을 듣지 않는 부류의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어째서 저는 야생 동물을 본 적이 없을까요? 어디 있는데요? 올 테면 오라지요.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고요. 야생 동물이 뭐가 무서워요? 당신들은 소심하고 믿음이 작아요. 곰도 무섭지 않은 제 믿음을 보시라고요!” 그는 일부러 혼자 나간다. 툭하면 나가서 어슬렁거리고 밥을 먹고 나면 꼭 산책하는데 기어코 혼자 나가는 것이다. 남들이 일행을 붙여 주겠다고 해도 그는 “안 돼요. 무슨 일행을 찾고 그러세요? 일행이 있으면 얼마나 못나 보여요! 혼자 갈게요!”라고 한다. 기어이 그렇게 해보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사람이냐? 그가 야생 동물을 만났는지는 둘째 치고 이런 일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문제가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어떤 문제냐? (이런 사람의 성품은 사악합니다.) 그에게 올바른 일에 대해 말해도 그는 농담으로 치부한다. 이런 사람에게 무슨 말을 더 하겠느냐? 이런 부류의 사람은 짐승보다 못하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방금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지식, 학문, 은사, 그리고 특별한 재능에 몹시 민감하다고 했다. 그들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감탄하고 그 사람을 우러러보고, 그 사람의 말에 탄복해 머리를 조아리며 고분고분해진다. 사람에게 유익한 것, 정상 인성이 갖춰야 할 상식이나 식견, 진정한 학문, 정상 인성의 사고로 이해하는 긍정적이고 실제적인 것에는 그들이 어떤 태도를 갖느냐? 업신여기고 거들떠보지 않는다. 예배 때마다 말씀과 진리를 교제하면 그들은 무엇을 하느냐? 귀나 턱을 만지면서 눈이 풀리고 넋이 나가는 사람이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이 안 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 집에서 올바른 일에 대해 말할수록 흥미를 잃고, 진리를 교제할수록 꾸벅꾸벅 존다. 이를 통해 그들에게는 진리에 대한 흥미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불신파들은 구제불능이 아니냐? 어떤 사람은 종교에서 방언 듣기를 좋아하고 기이한 일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신기한 일을 보면 이내 정신을 차린다. 어떤 사람은 나만 보면 이런 말을 즐겨 한다. “저는 대학 본과생인데 철학을 배우고 있어요. 당신은 무엇을 전공하셨나요?” 그러자 내가 어떤 전공도 배운 적이 없고, 그저 글만 조금 알아서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하니 그가 말한다. “그럼 안 되죠.” 그래서 내가 “이런 건 비교해 봤자 쓸데없으니 교제해 보자. 네게 지금 어떤 어려움이 있느냐?”라고 하니 그가 어떻게 말하겠느냐? “참나, 어떤 어려움이 있냐고요? 어려움 따윈 없습니다. 본분 잘 이행하고 있다고요!” 그와 진리를 교제하면 그는 흥미를 잃고 귀신 들린 것처럼 하품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계속해서 그의 패괴 성품을 폭로하면 그는 잔을 들고 가 버린다. 듣기 싫은 것이다. 그와 동등하게 지내면서 대화할수록 그는 더 무시하니 이것이 은혜도 모르는 것이 아니겠느냐?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그에게 운전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한 지 2년 만에 차를 샀습니다.” 나는 “차를 몬 지 꽤 오래되었구나. 나는 아직 운전을 할 줄 모른다.”라고 말했다. 내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동등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정상 인성에서의 대화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내 말을 들은 그가 “어? 운전 못 하세요? 그럼 뭘 할 줄 아시나요?”라고 묻자 나는 “차를 탈 줄만 알지 아무것도 못 한다.”라고 답했다. 그러고 나서 지금 어떤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지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저는 재무와 회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 머릿속은 온통 숫자뿐입니다. 대학 시절에 수학을 제일 잘했어요. 이과 쪽으로 제일 뛰어났어요. 청화대나 북경대 감이죠.” 내가 말했다. “나는 수학을 가장 못한다. 숫자만 보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지. 나는 단어 공부 같은 글 배우기를 좋아한다.” 그가 말했다. “그런 건 배워 봤자 쓸모없어요. 일반적으로 인문계에 진학한 사람들은 전망이 좋지 않더라고요.” 그의 말을 들어보면 정상 인성의 이성이 있는 것 같으냐? (없습니다.) 그와 이렇게 소탈하게 대화하고 함께 지내는데 그는 이것을 올바로 대하지 않고 무시하고 얕잡아 본다. 그가 만약 지위가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사뭇 다를 것이다. 이렇게 어느 정도 같이 지내고 나면 그는 자기가 하나님과 수다도 떨고, 왕래도 하고, 하나님과 친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에게 자격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말투도 바뀐다. 한번은 그에게 물었다. “본분을 이행하기 싫어서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그가 집에 돌아갔느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 사람이요? 그 사람은 집에 갈 생각이 없었어요!” 이것이 무슨 말투냐? 변하지 않았느냐? 처음 만날 때는 잘 몰라서 일단 공손하고 겸손하게 꼬리를 내리며 처신하더니 이제 좀 친해졌다고 꼬리를 세우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투냐? 대드는 뉘앙스로, 대수롭지 않고 귀찮다는 듯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로 대화한다. 이것이 어떤 성품이냐? 사악함이다. 이것이 정상 인성이겠느냐? (아닙니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너와 정상적으로 교류하고 대화하는 것은 더없이 정상적인 일이다. 그가 만약 너를 괴롭히고 압박하며 얕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느냐? 그가 너를 이렇게 대하는 건 정상 인성이 있는 것이냐? 생각해 보아라. 이런 부류의 사람이 세상의 유명인이나 지위와 명망이 있는 사람, 또는 자신의 사장이나 상사를 만난다면 감히 이렇게 대하겠느냐? 그럴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그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자신을 비직(卑職), 수하(屬下), 노재(奴才), 소인(小人), 천민(賤民), 초민(草民) 등과 같은 칭호로 지칭하며 그들과 대화하기를 바라 마지않을 것이다. 이방인 속에서는 계급이 깡패다. 누가 너 같은 소인배와 소탈하게 얘기하겠느냐? 간혹 기분 좋게 네게 몇 마디 했다고 해도 너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너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틈만 나면 공 다루듯 차고 놀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사람들과 소탈하게 이야기하고 대화하는데도 긍정적인 반응은커녕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얕보이며 업신여겨지고 조롱당하기만 하는 것은 내 방식이 잘못된 것이냐, 아니면 사람의 성품에 문제가 있는 것이냐? (사람의 성품이 너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다. 나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데 어째서 올바르게 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이냐?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인성이 있어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엇인지,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사악하고 교만하여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자이다. 말해 보아라. 인간의 탈을 쓰고 자기 주제도 모르는 게 무엇이겠느냐? 이성이 없는 짐승이다. 또 한번은 내가 그에게 “얼마 전에 네게 부탁한 일은 어찌 되었느냐? 그것들을 잘 정리했느냐?”라고 물으니 그는 “뭐라고 하셨는데요?”라고 되물었다. “몇 가지 물건들 말이다. 잘 보관하고 있느냐? 정리했느냐?” 두 번이나 상기시키고 나서야 생각났다. “아, 그거요? 진작에 정리했죠.” 맨 처음 ‘아’는 무슨 말투냐? 또다시 무시하는 말투다. 마귀의 본성이 또 튀어나왔다. 그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계속해서 어떻게 정리했냐고 묻자 그는 “어떤 사람들이 보고는 그렇게 정리하더라고요.” 그러고 끝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에게 부탁한 일에 대해 내게 알 권리가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책임은 무엇이냐? 그에게 부탁한 일을 그가 수락한 후에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내게 보고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는 보고하지 않았고, 나는 계속 그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사람을 보내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을 수밖에 없었지만 역시 답을 듣지 못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좋다. 널 기억해 두겠다. 너란 사람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네게 부탁하지 않을 것이다. 너란 사람은 너무나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는 어떤 마귀이냐? 이런 부류 사람의 성품은 어떠하냐? 사악하다. 그와 다정하게 상의도 하면서 동등하게 지냈는데 그는 이 일을 어떻게 보았느냐? 무능하고 연약하며 얕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사악함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보다 사악할 수 없다. 이 정도로 사악한 사람은 자주 보이진 않아도 교회마다 있다. 이들은 마음이 강퍅하고 교만하며 진리를 싫어하고 성품이 흉악하다. 그들이 이런 모습과 성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류의 사람이 사악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정상 인성의 선함, 관용, 인내, 사랑 등 긍정적인 것을 사랑하기는커녕 오히려 속으로 경시하고 업신여기니 이들의 마음 깊은 곳이 어떻겠느냐? 사악해도 너무 사악하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의 또 다른 하나의 모습이다.
오늘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모습에 관해 교제한 이런 내용은 지난번 두 차례에 걸쳐 교제한 두 가지 부분과 약간 다르다. 제각각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말해 보아라. 적그리스도는 마음속 깊이 지식과 학문, 은사, 그리고 특별한 재능을 숭상한다. 그들이 속으로 이것들을 숭상하는데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들도 변할 거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변하겠느냐? 그럴 리 없다. 그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속으로 하나님의 낮춤과 감춤,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 하나님의 신실함, 그리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 돌봄을 무시한다. 또 무엇이 있느냐?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면을 무시하고 지식, 학문, 과학, 은사와 전혀 무관한 모든 진리는 더더욱 무시한다. 그렇다면 이런 부류의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왜 구원받을 수 없느냐? 이는 특정 측면의 패괴 성품이 잠깐 표출된 것이 아니라 본성 본질이 표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아무리 권면하고 진리를 교제해 주어도 그는 변하지 않는다. 이는 그의 일시적인 취미가 아니라 그의 내면이 이것들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식, 학문, 은사, 특별한 재능을 원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숭상하는 것이다. 숭상한다는 게 무슨 뜻이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들을 따르고 얻으려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숭상의 뜻이다. 그는 이것들을 얻기 위해 따르는 고통과 모든 대가를 불사하고서라도 얻으려 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숭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사람도 있다. “하나님께서 제게 뭘 시키든 다 괜찮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흡족하게 해 드릴 수 있어요. 다만 저한테 진리를 추구하라고만 하지 않으면 돼요.” 이것이 그들의 바람이다.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거기에 앉아서 차분히 설교를 듣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는 있지만 그런다고 진리를 얻지는 않는다. 그들은 늘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 말씀을 판단하고 신학적 지식으로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기 때문에 진리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서 지식과 학문, 그 어떤 정보나 비밀, 자기가 속으로 동경하고 탐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학문을 얻길 바란다. 그렇게 그들은 남들이 모르는 그런 학문을 얻고 나면 자랑하러 간다. 그 학문과 지식으로 자기를 무장하고 포장하여 좀 더 품위 있고 충실한 삶을 살면서 사람들로부터 위신과 지위를 더 얻고 남들의 신뢰와 숭배를 더 받을 수 있다고 망상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업적이나 휘황찬란하다고 생각되는 일, 그리고 훌륭하고 내세울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 자기를 능력자, 출중한 사람으로 치켜세워 줄 만한 것들을 여기저기 부지런히 떠벌리고 다닌다. 어딜 가든 그들이 하는 말은 항상 똑같은 이론들이다. 이들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읽고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들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설사 진리를 조금 깨닫는다고 해도 절대 실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런 부류의 본질이다. 이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그들의 사악한 본질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치명적인 점이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울의 길을 가며, 진리와 하나님에게 끝까지 대항할 수밖에 없다. 이유가 무엇이냐?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영원히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에 대해 겪어 보았느냐? 너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느냐? 이런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있느냐? 우리가 왜 몇 차례의 예배 시간을 할애하여 이 주제를 다루겠느냐? 평소 사람들이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간사한 성품은 자주 언급하지만 사악함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금 이렇게 사악한 성품에 관해 교제하니 아무개의 성품이 사악하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너희가 정말 조금은 깨달은 것 같구나. 예전에 사람이 자기에 대한 인식을 얘기하면서 늘 교만하다고 했는데 이제는 교만함과 사악함 중 어느 성품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느냐? (사악함입니다.) 그렇다. 예전에는 사악함이라는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사실 사악함이라는 성품과 본질은 교만보다 더 심각하다. 만약 성품과 본성 본질이 대단히 사악한 사람이 있다면,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절대 그와 접촉하지 말고, 거리를 두어라. 이런 사람은 바른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사악한 사람과 왕래하거나 접촉해서 네게 득 될 게 무엇이 있겠느냐? 득이 되진 않지만 너에게 그의 사악함에 저항할 수 있는 ‘항체’가 있다면 왕래해도 괜찮다. 그럴 자신이 있느냐? (없습니다.) 어째서 그럴 자신이 없으면 이런 사람과 접촉하지 말아야 하겠느냐? 사악함의 이면에 음험함과 간사함이라는 이 두 가지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체험이나 식견도 없으면 미혹되기 쉬워서 그에게 굴복하고 결국 그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 포로가 되면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하나는 네가 졌다는 사실을 속으로는 승복하지 못하지만 말로는 어쩔 수 없이 승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히 굴복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성에는 한 가지 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그가 온갖 방식과 주장, 술수, 계책, 방법, 궤변으로 네가 그의 말을 따르도록 설득하여 그가 옳고 바르며 긍정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설사 그가 악을 저질러 진리 원칙을 어기고 패괴 성품을 표출했더라도 결국엔 그것을 뒤집어 자신이 옳은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에게는 이런 능력이 있다. 이것이 어떤 능력이냐? 바로 사람을 미혹하는 대단한 능력이다. 사람을 미혹하는 대단한 능력, 이것이 그의 사악함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 사랑하지 않는 것, 싫어하는 것, 숭상하는 것, 숭배하는 것들은 그들 마음속의 치우친 편견에 의해 생긴 것이다. 이 관점들이 그들에게 형성하는 일련의 이론들은 죄다 그럴듯한 궤변인데, 보통 사람은 반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잘못을 위해 궤변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네게 진리 실제가 없으면 그와 진리를 교제해도 그를 설득할 수 없으니 결과는 하나뿐이다. 그가 그의 공허한 이론으로 너를 반박해서 할 말을 잃게 만드니 너는 조금씩 그에게 넘어가게 된다. 이런 사람의 사악함은 사람을 미혹시키는 능력이 대단한 데에 있다. 본인이 아무것도 아닌 게 분명한데도 어떤 본분이든 엉망으로 이행해 놓고 결국에는 일부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기를 숭배하게 하고, 자기 발 앞에 ‘무릎 꿇고’ 고분고분 따르도록 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잘못된 것을 옳다고 하고, 검은 것을 희다고 하면서 시비를 전도시킨다. 그러면서 자기가 저지른 나쁜 짓은 남에게 뒤집어씌우고 남이 한 좋은 일은 자기 공으로 돌리니 시간이 지나면 너도 헛갈려서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너는 그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의 겉모습을 보고 ‘이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네. 우리가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미혹된 게 아니겠느냐? 미혹되는 순간 너는 위험해진다. 이렇게 사람을 미혹하는 사람은 너무 사악하지 않으냐? 누구든 그의 말을 들으면 미혹되고 교란당해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한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그에게 분별이 생겨서 그가 사람을 미혹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그를 폭로하고 저버릴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미혹되어 그를 싸고 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 집이 그를 차별한다면 제가 그를 지키겠어요.” 이것은 무슨 문제이냐? 그에게 미혹된 게 분명한데도 그를 변호하며 감싸고 있으니 이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사람을 따르는 자가 아니겠느냐?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째서 그를 숭배하고 특별히 그를 변호하기까지 하느냐? 이렇게 명확한 일조차 간파하지 못한다면 어느 정도 미혹된 것이 아니겠느냐? 그는 사람을 미혹하여 사람답지 않게 만들고, 하나님을 따를 마음이 없게 만들며, 자신을 숭배하고 따르게 만드니 이는 하나님을 배반한 자가 아니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으나 하나님이 너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적그리스도가 네 마음을 얻어 네가 한결같이 그를 따른다면 이는 그가 이미 너를 하나님 집에서 가로채 갔음을 의미한다. 네가 일단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에서 벗어나고, 하나님 집에서 떠나면 그가 너를 마음대로 우롱하고 희롱할 것이다. 어느 날엔가 실컷 희롱한 다음에는 너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네가 계속 그의 말을 따르고 그에게 이용 가치가 있다면 한동안 너를 곁에 둘 수도 있지만 네가 그에게 아무런 이용 가치도 없다면 너 같은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걷어차 버릴 것이다. 그러면 네가 돌아와 하나님을 계속 믿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왜 믿을 수 없겠느냐? 네 처음 믿음이 사라졌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사람을 미혹하고 해친다. 그들은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미혹한 것처럼 사람이 숭배하는 지식과 학문,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통해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한다.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 무엇이든, 그리고 그들의 본성 본질 속에서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혐오하고, 무엇을 숭상하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과 그들이 사람을 미혹하는 수단이 모두 진리에 위배되고 진리와 무관하며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적그리스도는 영원히 하나님과 합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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