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28) 제 4 부
13) 배경이 복잡하다
다음으로 ‘배경이 복잡하다’에 대해 살펴보자. 너희가 말해 보아라,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복잡한 배경을 가졌겠느냐? (합법적인 세계와 불법적인 세계를 넘나들며 사회적 배경이 비교적 복잡한 사람들이 이런 부류에 속하지 않겠습니까?) ‘배경이 복잡하다’라고 한다면 분명히 다 사회인일 것이다. 사회인의 대표적인 작태는 무엇이겠느냐? 앉아서 다리를 꼰 채 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떠들어 대며, 천하의 온갖 일을 다 언급하고, 국내외 일도 한참을 이야기하지만 진실한 말은 한 마디도 없다. 전부 허풍이거나 제멋대로 꾸며 낸 말, 아니면 상상으로 지어낸 말이다. 허풍을 잘 떠는 부류가 반드시 복잡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허풍을 잘 떠는 사람 중 어떤 이는 단순히 한량이나 평범한 서민일 수도 있다. 이들은 어디서든 허풍을 떨며 거들먹거리고 큰소리쳐서 사람들을 미혹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평판이 나빠지는 자들이다. 어떤 부류가 복잡한 배경을 가졌겠느냐? 예를 들어, 어떤 자들은 사회에서 어떤 당파에 가입했다가 몇 년이 지나도 지위를 얻지 못하면 다시 다른 당파에 가입해서 마침내 작은 수장이나 하급 관리가 되는데, 이들은 사회적 관계가 매우 복잡하다. 그와 그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과연 친구인지 적인지 아무도 확실히 말하지 못하고, 그의 가족들조차 알지 못하며, 오직 그 자신만이 안다. 이런 사람은 복잡한 배경을 가진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치적 배경이 복잡한 자에 속한다. 오늘은 이 당파를 지지하다가 내일은 저 당파를 지지하고, 오늘은 이 사람의 당선을 지지하다가 내일은 저 사람의 당선을 지지한다. 요컨대, 그의 진정한 속내는 아무도 모른다. 도대체 누구를 지지하는지, 자신의 정치 노선이나 정치 목표가 무엇인지 그는 보통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매우 은밀하게 숨기는데, 보통 사람들은 물론, 그의 가족들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정치에 매우 열중하며, 정치권에 알고 지내거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다만 지금은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일 뿐이다. 이런 부류는 교회에 들어온 후 형제자매들이 모두 정치를 모르고 정치에 참여하지도 않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알고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속으로 멸시한다. 하지만 늘 교회가 종교계와 사회에서 가진 인지도와 교회 세력을 빌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하고, 자신의 야심을 충족하거나 정치적 포부를 펼치려 한다. 즉, 교회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거나 교회 단체를 이용하거나 교회의 특정 사람과 일, 사물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류는 복잡한 배경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속마음과 처신 원칙, 그리고 온갖 술수, 대화 전략, 방식과 방법은 일반 서민들이 간파하지 못한다. 특히 젊은이들이나 사회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전혀 간파하지 못한다. 정치적 배경이 복잡한 부류에게 정치적 사고방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 손아귀의 노리개일 뿐이며, 그들은 이런 사람들을 아예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적절하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 보자면, 동물 중 가장 교활한 것이 뱀과 여우, 호랑이 같은 동물인데, 그것들은 양, 토끼, 사슴, 개를 매우 바보 같다고 여긴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배경을 가진 이 부류는 마치 여우나 뱀 같은 교활한 동물이 양, 사슴, 개처럼 순박한 동물들을 보듯 대다수의 형제자매를 본다. 그들은 형제자매들을 간파할 수 있지만 형제자매들은 그들을 간파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정치적 배경이 복잡한 이런 부류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느냐? 정치를 하는 이 부류는 마음이 온통 정치와 권력에만 있다. 그가 권력을 좋아하고 정치에 참여하기를 좋아하는 한 언젠가는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될 것이며, 계속 그렇게 교회에 숨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드러날 때면 너는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보니 그가 하나님을 믿는 데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구나! 그에게는 이런 정치적 배경이 있었어.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거야!’ 교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이런 속내를 잘 숨긴 채 정상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본분도 이행하지만, 때가 무르익으면 교회를 이용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그의 야심과 민낯이 자연스레 드러나게 되고, 형제자매들은 그제야 그가 불신파임을 알아보게 된다. 그가 드러나면 무척 쉽게 분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늑대가 양의 탈을 쓰고 양 떼에 섞여 있을 때는 늑대인지 양인지 분별하지 못하지만, 놈이 양을 잡아먹을 때는 분별이 가능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정치를 하는 자들은 모두 교회에 섞여 들어온 불신파이다. 그가 형제자매들을 미혹하고 끌어들여 어떤 당파에 가입시키고 자신과 함께 정치에 참여시키려 할 때, 너는 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거짓이고 정치를 하는 것이 진짜 목적임을 알아챌 것이다. 그의 배경이 아무리 복잡해도 결국 수면 위로 떠올라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배경이 복잡한 사람 중에서 정치적 배경이 복잡한 부류이다.
배경이 복잡한 사람에 속하는 또 다른 부류가 있다. 어떤 이들은 사회에서 분수를 지키며 착실하게 살아가지는 않고, 불량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위조하여 사기를 치는 사람이나 조직폭력배 같은 자들이 있다. 또 사회적으로 지위와 명예, 위신이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겉으로는 공직자나 사업가지만 뒤에서는 늘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일부 공직자나 조직폭력배와 결탁하여 몰래 총기나 마약, 또는 국가 금수품을 밀매한다. 또 어떤 이들은 과거 도굴이나 강간, 성폭행, 심지어 인신매매나 밀입국 알선 등의 악행을 저질러 여러 차례 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배경이 복잡한 부류는 이런 자들과 어울리는 데다가 관계가 매우 밀접하여 서로 형제라 부르며 서로 이용하고 일을 처리해 준다. 겉으로 보기에는 눈에 띄는 악행이 없고 도둑질이나 강도질, 살인이나 방화를 저지르지도 않지만, 그들이 어울리는 무리나 가까이 지내는 범위 내에는 전부 이런 불량한 이들뿐이다. 그러니 이런 부류도 꽤나 무섭지 않으냐? (무섭습니다.) 그는 이런 자들과 함께 투자하고 사업하고, 그들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를 때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기도 하니, 주범은 아니어도 공범이다. 이런 부류는 늘 법의 경계선을 넘나든다고 할 수 있다. 법의 경계선을 넘나든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느냐? (이 부류는 자주 법에 저촉될 수도 있는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한 가지 측면이다. 이 밖에, 그는 수시로 법의 허점을 노리는 데다가 하는 일도 모두 규모가 큰지라 잡히는 순간 공범으로 10년~20년 형을 선고받거나 거액의 벌금을 물게 된다. 말해 보아라, 이런 부류는 골칫거리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눈에 띄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살인이나 방화, 누구를 속이거나 모함하는 모습을 보인 적도 없지만, 불법적인 세계에서든, 합법적인 세계에서든 뇌물을 받아먹고 법을 어기는 자들이 법률을 위반해 폭리를 취할 때 그도 그 행위에 지분과 몫이 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 부류는 배경이 복잡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 집에 남아 있는 것이 좋은 일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불법적인 세계, 합법적인 세계 모두와 어울릴 뿐 아니라 불법 행위까지 저지르니, 이런 것을 가리켜 배경이 복잡하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의 공직자들과 정상적으로 어울리는 것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각종 불법 행위나 범죄 사건에 가담하는 부정적인 인물들과 어울린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되며, 언젠가 일이 터질 것이다. 그는 이런 자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게다가 이런 자들에게 빌붙어 그들의 세력을 업고 돈을 벌고 큰 부자가 되어 호의호식하려 한다. 그러니 이런 자가 좋은 사람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한다. 불법적인 세계든 합법적인 세계든, 그 모든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자가 분수를 지키는 올바른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절대 아니다. 그가 이런 자들과 어울리는 것은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그가 그들에게 이용 가치가 있고 그들을 위해 처리해 줄 수 있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는 그와 어울리는 불법적인 세계와 합법적인 세계의 사람들을 좋아하며, 그들이 가진 능력과 재능, 세력 그리고 그들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모두 그가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자는 과연 어떤 사람이겠느냐? (마찬가지로 올바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는 그런 자들과 한 부류이고, 서로 이용하는 관계이다. 이 세상에 너를 위해 일을 처리해 주고,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네 친구가 되어 줄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존재하긴 하니 굳이 그런 자들과 어울릴 필요는 없다. 그가 그런 자들과 어울리는 것은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서로 취향이 맞고 유유상종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는 이익을 위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사람을 사귈 때도, 어떤 일을 할 때도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은 “군자는 재물을 좋아하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얻는다.”라는 말을 하지 않더냐? 이방인들에게도 이렇게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이방인들이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든 없든, 어쨌든 이것은 인류 가운데서 비교적 고상한 생존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배경이 복잡한 이 부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득을 취하기 위해 사람을 사귈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가리지도 않으며, 이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어떤 사람과도 어울린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신의 수법에 매우 흡족해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부류를 어떻게 봐야겠느냐? 이런 자들은 합법적인 세계든 불법적인 세계든 가리지 않고 넘나드니, 이것이 바로 배경이 복잡한 것이다. 이런 부류는 너무나 무섭다! 이런 자가 드러내는 얼굴이 과연 진짜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는 언제나 가면을 쓰고 있으므로 너는 영원히 그를 간파할 수 없고, 그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그는 가면을 쓰고 너와 어울리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 이는 마귀가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간 것과 같고, 여우나 늑대가 양 떼에 섞여 들어간 것과 같은데, 너는 안전감을 느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왜 안전감이 없다고 하겠느냐? 그의 교활하고 흉악하고 사악한 본성 때문이다. 그는 시시각각 너를 음해하려 하는데, 마치 음흉하고 사악한 눈동자를 번쩍이며 항상 뒤에서 네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다가 기회를 틈타 너를 없애고 삼켜 버리려는 것 같다. 이것이 무섭지 않으냐? (무섭습니다.) 그가 주는 느낌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너는 그의 본성과 배경 때문에 늘 그가 위협이 된다고 느낄 것이다. 어떤 위협이겠느냐? 그가 네 곁에 있으면 너는 늘 그가 언제 어디서든 너를 음해하고 가지고 놀 수 있다고 느끼고, 언제 어디서든 너를 함정에 빠뜨릴 수 있다고, 네가 언제 그에게 이용당하고 해를 입어서 그의 손에 죽고 망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이런 자는 절대 곁에 둘 수 없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양 떼 속에 늑대 한 마리를 풀어놓는다면, 이것이 양 떼를 보호하는 것이겠느냐, 아니면 망치는 것이겠느냐? (망치는 것입니다.) 늑대의 본성에 따르면 늑대는 절대 양의 곁에서 양의 안전을 지켜 주지 않는다. 늑대의 머릿속에서 양은 먹잇감이기에 언제 어디서든 배가 고파지면 잡아먹으려 할 것이며, 양을 불쌍히 여기지도, 놓아주지도 않을 것이다. 늑대는 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개는 어릴 때부터 양과 함께 살면 양을 보호 대상으로 여겨서 늑대가 양을 공격하고 잡아먹으려 할 때 자발적으로 나가 맞서 싸우고 당연하게 양을 보호하는 책임을 맡는다. 개는 이런 천성을 가졌다. 하지만 늑대는 다르다. 늑대의 천성은 양을 잡아먹는 것이다. 배경이 복잡한 부류가 교회에 섞여 들어오는 것은 늑대가 양 떼에 섞여 드는 것과 같다. 늑대가 배고프지 않을 때는 양에게 해가 되지 않을지 몰라도, 배가 고파지면 양은 반드시 늑대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누구도 이 사실을 바꿀 수 없으며, 이는 본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늑대가 양을 잡아먹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얼른 늑대를 분별해 내야 한다.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누구인지 분별하는 순간, 곧바로 늑대를 처리해야지 망설이거나 사정을 봐주어서는 안 된다. 배경이 복잡한 이 부류는 반드시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 만약 그가 악을 행하여 교회를 교란하는 것을 발견했다면, 절대 봐주지 말고 이렇게 말해라. “당신은 사회인이니 하나님을 믿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하나님 집에 잘못 찾아온 거예요. 여기는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으니 사회에 나가 당신의 앞길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제하며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뿐, 음모와 계략을 꾸미거나 정치에 참여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여기에 있으면 승진하거나 돈을 벌 수도 없고, 남보다 좋은 삶을 살 수도 없으니, 아무리 오래 있어 봤자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를 권고하여 내보낼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사회관계가 복잡한 사람이라고 반드시 악인인 것은 아니며, 큰 악을 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야말로 불신파에 속한다. 이런 부류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도록 하는 것은 마치 늑대를 양으로 바꾸려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늑대는 아무리 오랜 시간 양의 탈을 쓰고 있을지라도 늑대일 뿐, 양이 될 수는 없다. 바로 이런 이치다. 그러니 이 부류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야말로 웃음거리이며, 장소를 잘못 찾아온 것이다!
배경이 복잡한 사람에는 또 한 가지 부류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각 종파의 종교 지도자나 관리자, 또는 지위가 있는 인사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은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또 수시로 각 교파의 종교 활동에 참여하며, 이들과 인맥을 쌓고 친구가 되어 서로 이용하며 일을 처리해 준다. 심지어 때때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교회 내부의 사무나 인사 관련 일들을 이들에게 누설하는데, 이는 매우 골치 아픈 일이다. 네가 단순히 종교계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그런 종교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종교계의 각종 기념일 행사와 의식에 참여하기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서 교회 사역이나 형제자매들의 정보를 누설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누가 ‘동방번개’를 받아들였다든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이행하고 있다든가, 집이 어디에 있다든가, 평소 누구와 어울린다든가 등의 일들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들을 누설한다면 그것은 네가 매우 비도덕적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일단 누군가가 정부에 신고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네가 종교계의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뭔가 이해관계가 얽혀 있거나 친분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배경이 복잡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뒤에서 다른 짓을 저지른다면, 예를 들어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을 누설하고, 하나님 집의 내부 사무 혹은 형제자매들의 개인 정보 등을 누설한다면, 그것은 배반의 성질을 띠며 정죄받게 된다. 특히 일부 형제자매는 체포된 적이 있거나 현재 수배 중이라 자신의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을 원치 않고, 그것이 누설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런데 그는 이런 정보를 어떤 이익과 교환하거나 아니면 아예 이런 정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누설함으로써 형제자매들에게 골칫거리를 안겨 주었다면, 하나님 집에서는 이런 일을 발견하는 즉시 그를 정리해야지 절대 가볍게 용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믿으면 박해받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본분 이행 기회를 얻기가 어려우므로 모두가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아무도 다른 사람이나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본분 이행에 잠재적 위험이 초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누가 형제자매들의 본분 이행이나 개인의 안전에 잠재적 위험을 초래하거나,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길에 장애물을 놓는다면, 하나님 집에서는 절대 가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발견하는 즉시 제명하고 출교시킬 것이다. 절대 봐주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가 스스로를 변호하면서 “한순간의 부주의로 말실수를 했어요.”라고 핑계를 대고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절대 믿지 마라. 그런 변명은 성립하지 않는다. 네 집안일은 왜 밖에 말하지 않느냐? 왜 하필 형제자매들의 일을 말하느냐? 이는 분명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이다. 교회 사역과 형제자매들의 정보를 누설해서 형제자매들에게 골칫거리를 안겨 주었다면 저주받아 마땅하다! 이런 사람은 저주받아 마땅하지 않겠느냐?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교회에서 복음 사역을 확장할 때 이런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은 교회와 형제자매를 팔아넘기는 것을 서슴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뒤에서 온갖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그렇게 어울리는 목적도 순수하지 않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입단속을 하지 못하고 교회 내부 정보에 대해 아는 것을 빠짐없이 모두 말하다가 결국 형제자매들과 교회에 골칫거리를 가져다준다. 그러면 그 죄는 입단속을 하지 못한 사람의 몫이어야 한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안 된다. 고의가 아니었다면 왜 너 자신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느냐? 왜 남에게만 해를 끼치는 것이냐? 네가 교회와 형제자매들에게 골칫거리를 가져다준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으니 이 죄는 마땅히 네 몫이다. 만약 사람을 죽인 후에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를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제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고요.”라고 말한다면 그 말 때문에 법적으로 무죄가 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소용없다. 네가 실제로 사람을 죽였고, 법적으로 증거가 확실하니 너는 사실에 근거해 정죄되어야 한다. 네가 저지른 죄가 살인죄라면 너는 살인범이니, 아무리 변명해도 소용이 없다. 어떤 이는 일을 처리하면서 늘 교회에 골칫거리들을 가져다주고, 때로는 큰 문제를 일으키는데, 그로 인해 형제자매들이 체포되어 감옥에 갈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나님 집은 이런 사람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잡히는 족족 출교시킬 뿐만 아니라 저주할 것이며, 절대 봐주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율법시대에 일어났다면 악을 행한 자를 끌어내 몽둥이로 때려죽이거나 돌로 쳐 죽이는 식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지금 하나님 집의 행정 법령에는 이런 조항이 없으니 그를 출교시킨 후 형제자매들이 함께 그를 저주해야 한다. 그가 복을 받고 구원받고 싶어 한들 어림도 없다. 지옥에 떨어져 징벌받게 해라!
배경이 복잡한 자 중에는 또 한 부류가 있다. 바로 특수 임무를 띠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국가 정부에서 파견한 사람도 있고, 특정 종교 단체나 사회단체에서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형제자매들과 교회를 감시하거나 교회의 각종 사역, 각 시기별 사역지침을 정탐한다. 그들의 임무가 무엇이든, 어쨌든 이 부류는 우리가 보기에 배경이 복잡한 사람에 속한다. 배경이 복잡한 부류 중 대부분은 불신파에 속하고, 모두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믿음이 작거나 자질이 부족하거나 관념이 많은 사람들과는 다르다. 방금 말한 사람들은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배경이 복잡한 부류는 문제가 심각하다. 먼저 인성을 살펴보자. 이 부류의 인성이 어떻겠느냐? (그들은 사탄과 한패로, 인성이 좋지 않고 사악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마귀입니다.) 맞다. 핵심을 짚었다. 그들은 교회에 섞여 들어온 마귀로, 온갖 의도와 목적을 품고 교회에 섞여 들어 어두운 구석에서 살아가는 부류이다. 이런 부류는 마귀이다. 그들은 처음 교회에 들어올 때부터 좋은 뜻이 없었다. 누구의 부탁을 받았든, 정부나 어떤 단체의 부탁을 받았든, 아니면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섞여 들어왔든 상관없이 이 부류는 전형적인 사회인으로, 어울리는 사람의 범위가 넓고, 대인 관계나 사회관계도 복잡하여 배경이 복잡하다. 소위 배경이 복잡하다는 것은 그들의 사회관계나 대인 관계, 생활 환경이 특히 단순하지도, 간단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일반 서민들과 달리 그들의 목적은 단순히 돈을 벌어 잘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회의 다양한 무리와 단체에서 걸출한 인물이나 선두 주자, 혹은 비교적 출중한 인물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이방인들이 말하는 ‘능력자’나 ‘고수’ 같은 부류이다. 그들은 어디에 있든 분수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며, 올바른 사람도 아니다. 그들이 각종 단체와 무리에서 기회를 틈타 이득을 취하거나, 세력을 얻거나, 사람을 통제하는 것, 바로 이것이 그들의 목적이자 생존 목표이다. 어느 교회에 있든지 그들의 마음가짐은 마귀처럼 꿈틀거리며, 상황을 통제하고, 사람들을 통제하고, 재물을 통제하고, 세력을 통제하고, 권력을 통제하려 한다. 이 부류는 바로 이런 모습을 보인다. 그러니 임무를 받았든 받지 않았든, 정부나 어떤 사회단체로부터 부탁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이 부류는 교회에 와서 분수를 지킬 리 없다. 설령 아무런 임무가 없고, 교회나 형제자매들을 이용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으려는 사람이 아니며, 더욱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도 아니다. 그들이 교회에 들어온 목적은 단순하지 않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매우 현실적인 목적이 하나 있는데 바로 거목 밑이 시원하듯 기회를 기다렸다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일단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욕망이 좌절되면 그들은 언제든 교회를 떠날 수 있다. 그들이 기회를 찾는다는 것은 행동할 기회를 노린다는 것이다. 이용할 대상이 있고 때가 무르익어 자신의 목적이나 포부, 혹은 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기회를 찾지 못한다면 낙심하여 교회를 떠나려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부류는 교회 내에서도 위험인물이니 분별하고 멀리해야 한다. 이 밖에도 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 만약 그 사람의 배경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그 사람의 배경이 복잡하다고 어렴풋이 느꼈다면, 리더 일꾼으로서 적어도 그를 중용해서는 안 되고, 그에게 지위나 권력을 주어서도 안 되며, 교회의 어떤 중요한 사역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를 간파하지 못한다면 관찰해도 되지만, 절대로 경솔하고 무모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를 간파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에게 지위를 주고, 심지어 중요한 사역까지 맡긴다면 너는 너무나 어리석은 것이다! 그를 간파하지 못할수록 중요한 사역을 맡겨서는 안 되고, 더욱 신중해야 하며, 보다 면밀히 주시하고 관찰해야 한다. 사실 배경이 복잡한 이 부류는 임무가 있든 없든 결국 교회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이 불신파들은 마음속으로 신앙에 관한 일에 반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진리 선포와 관련된 것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는 늘 ‘하나님을 믿어서 얻을 이익이 있을까? 큰돈을 벌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세상에 있을 때처럼 자기 음모와 간계를 꾸밀 수 있을까?’와 같은 것들만 연구한다. 그러면서 하나님 집이 이런 것을 언급하지 않고 늘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만 하는 것을 보면서, 또 딴마음을 품고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이 항상 책망받는 것을 보면서 반감을 느낀다. 하나님 집에 있으면 즐겁지도 자유롭지도 않다고 느끼며 늘 기회를 찾아 떠나려고만 한다. 만약 정말 하나님의 양이고 하나님이 택한 대상이라면, 하나님을 믿을 때 늘 언급되는 이런 진리를 20년, 30년 동안 들어도 싫증 내지 않고, 평생 들어도 새롭게 느낄 것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더 분명해지고, 마음이 풍족해지며, 마음속으로 더욱 진리를 갈망하게 되어 날마다 이런 말씀을 들어도 기꺼이 들을 것이다. 특히 자신에게 유익한 체험 간증을 들으면 마치 푸짐한 식사를 즐긴 것처럼 행복해하고 만족스러워하며, 황금을 주운 것보다 더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불신파, 마귀, 특히 배경이 복잡한 부류는 진리 교제를 들으면 들을수록 지겨워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며, 반감을 갖는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재미없고 따분하다고 생각하며, 앉아서 설교를 듣게 하면 고문을 받는 것처럼 여긴다. 그는 “여러분은 어떻게 이런 말씀을 들으면 푸짐한 식사를 즐긴 것처럼 행복해하시나요? 저는 왜 반감이 들까요?”라고 말하며, 좀 오래 들으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만약 리더가 되지 못하면 본분을 이행하려 하지 않고, 그런 고생도 하려 하지 않으며, 시간이 길어지면 재미없다고 느끼고, 불신의 마음이 드러난다. 불신파는 바로 이렇게 드러난다. 배경이 복잡한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찰하는 동안 그의 내력이 불량하고 배경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면, 어떻게든 기회를 찾아서 떠나도록 권고해야 한다.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이런 사람에게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당신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관직에 오르려는 꿈이 있는데, 이번 생에 관직에 오르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쉽겠습니까! 관직에 오르고, 부자가 되고, 세상을 추구해야 실속 있는 거죠. 당신은 사업 수완도 있고, 관직에 오를 재목이니, 세상을 추구하면 틀림없이 부자가 되고 관직에도 오를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는 이 말을 듣자마자 지음(知音)을 만난 것처럼 말할 것이다. “당신 말씀이 지극히 옳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는 게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신 말씀이 마음속 깊이 와닿네요. 신앙이란 사실 정신적인 작용이니,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죠. 인생은 짧디짧아서 몇십 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계속 여기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세월을 보내 봤자 얻은 것도 없고, 마음은 늘 불만스러우니, 이건 저 자신을 괴롭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가서 큰돈을 버는 게 중요하죠!” 그는 네 말에 동의할 것이다. 일단 동의하면 어느 날 교회에 있는 게 따분하다고 느낄 때, 게다가 약간의 역경에 부딪치거나 실패와 좌절을 겪거나 책망과 훈계를 받을 때 스스로 물러날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좋으냐? (네,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마귀를 교회에서 떠나보내기는 쉽다. 그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을 추구하라고 권하면 그를 떠나보낼 수 있고, 순리대로 그를 내보낼 수 있다. 이런 불신파는 이렇게 처리해라.
교회에서 배경이 복잡한 이런 부류를 발견하면 제때 떠나도록 권고하거나 제명해야지, 붙잡아서는 안 된다. 왜 붙잡지 말아야겠느냐?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그들은 교회에서 좋은 역할을 하지 않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들은 절대 하나님이 택한 대상이 아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들은 교회에 남아 있을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구원받을 수 없다. 그들이 교회에 남아 있으면 교회 사역에 이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분량이 작은 일부 형제자매들을 미혹하고 형제자매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나님 집의 사람들은 그들을 못마땅해할 것이며, 그들도 하나님 집의 형제자매들을 마땅찮아하고 마음속으로 늘 하나님 집과 교회, 형제자매들을 적대시할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교회에 이런 원수, 숙적이 있으면 너희 마음이 교란되지 않겠느냐? (교란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은 붙잡지 않는 것이 좋으며, 발견하는 즉시 떠나도록 권고하거나 제명하고 출교시켜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즉시 멀리하고, 상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복음을 전해서는 안 된다. 그는 두루뭉술하게 말해 말솜씨가 좋아 보이지만, 사실 별로 대단한 인재가 아니다. 하나님 집에는 배경이 복잡한 이런 부류가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이 택한 대상이 아니다. 지금은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이런 부류를 발견하면 바로 포기해야 한다. 하나님 집은 그런 사람을 원하지 않고, 환영하지도 않는다. 배경이 복잡한 이런 부류는 이렇게 처리해야 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물론 이런 문제를 처리할 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으며, 상대가 배경이 복잡한 부류인지 확실히 파악해야 한다. 그가 보이는 모습이 이 부류와 일치한다면 이 부류로 귀속시키면 되겠지만, 가끔 허풍을 떨고 허튼소리를 했을 뿐인데, 도가 지나쳐서 배경이 복잡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런 자는 배경이 복잡한 부류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이런 상황은 구별해서 대해야지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해서는 안 된다.
3. 본분 이행 태도에 근거한다
인성에 근거하여 사람을 분별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교제를 마치겠다. 또한, 본분 이행 태도에 근거해서 사람을 분별하는 것은 이전 설교에서 많이 이야기했으니 굳이 더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안녕!
2024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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