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22) 제 1 부

지난번에는 리더 일꾼의 직책 제13조 ‘하나님의 선민이 적그리스도의 교란, 미혹, 통제, 그리고 심각한 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적그리스도에 대해 분별하고 마음속으로부터 내칠 수 있도록 한다’에 대해 교제했다. 지금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거라. 제13조에서 리더 일꾼의 직책에 관해 구체적으로 어떤 몇 가지 내용들을 교제했느냐? (폭로, 책망과 훈계, 해부, 제재, 감독 등 다섯 가지를 교제했습니다.) 그 다섯 가지가 바로 리더 일꾼이 이 직책에서 다루는 구체적인 사역이며, 이는 리더 일꾼이 적그리스도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몇 가지 사역이다. 그럼 이 몇 가지 사역에 대해 거짓 리더는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지난번에 세부 내용도 어느 정도 교제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거짓 리더 부류는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첫째, 사람에게 미움을 사는 것이 두려워서 감히 적그리스도를 제명하거나 출교시키지 못한다. 둘째,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모른다. 셋째, 적그리스도의 보호막 역할을 한다. 넷째, 하나님 선민에게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 적그리스도가 교란하고 미혹하는 일이 발생해도 거짓 리더는 형제자매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적그리스도의 악행이나 사탄의 계략을 폭로하지 못하며,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수 있도록 진리를 교제하지도 못한다. 그는 이런 사역을 하지 않는 동시에 분량이 작고 분별력이 없어서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된 일부 사람을 되찾아오는 사역도 전혀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래도 싸다”라는 비인간적인 말까지 내뱉는다. 이는 책임을 다하지 않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거짓 리더가 교회 사역에 부담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이 몇 가지 모습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교란할 때 거짓 리더가 취하는 일부 행위와 행동 방식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 사역을 대하는 구체적인 태도는 바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충성심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온갖 핑계를 대고 갖은 방식을 써서 적그리스도에게 길을 터 주고 적그리스도의 보호막 역할을 하면서 교회 사역도, 하나님 선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익도 지키지 않는다. 만약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교란하고 미혹하고 통제하고 심각하게 해치는 등의 문제를 거짓 리더가 제때 해결하여 적그리스도를 제재하고 격리하거나 제명하거나 출교시킨다면 하나님 선민은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겠지만, 그는 리더로서 이 사역을 능히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니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는 변형적으로 적그리스도를 보호하고 적그리스도에게 길을 닦아 주어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계속해서 미혹하고 통제하고 심각하게 해치며, 하나님 선민의 정상적인 교회 생활과 본분 이행을 교란하도록 한다고 할 수 있다. 거짓 리더는 이런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제14조 각종 악인과 적그리스도를 제때 분별하여 제명하거나 출교시킨다(1)

리더 일꾼의 직책 제13조에 대해서는 교제를 마쳤으니 오늘은 제14조를 교제하겠다. 제14조의 내용은 제13조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제14조에서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구체적인 사역은 적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각종 악인과 관계가 있으며, 그 범위는 제13조보다 좀 더 넓다. 제14조를 교제하기 전에 우선 이 조항의 내용을 읽어 보아라. (리더 일꾼의 직책 제14조 각종 악인과 적그리스도를 제때 분별하여 제명하거나 출교시킨다.) 이 말은 길지 않지만,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구체적인 사역을 논한다면 겉으로 보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이 말에서 언급하는 리더 일꾼의 직책은 대체 무엇이냐? 이 사역에서 리더 일꾼의 사역 대상은 누구냐? (각종 악인과 적그리스도입니다.) 해야 하는 구체적인 사역이 무엇이냐? (제때 분별한 다음 제명하거나 출교시키는 것입니다.) 지체하지 말고 제때 분별해야 하며, 일단 조짐을 발견하면 정확하게 판단하고 규정한 다음 제명 처리를 해야 한다. 사실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구체적인 사역은 두 가지로, 사람을 분별하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본다면 이렇게 간단하다. 먼저 분별한 다음, 제때 해결할 방안과 조치를 마련하면 된다. 여기서는 하나님 집에서 제명하거나 출교시키라고 요구하는 각종 악인과 적그리스도가 대상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리더 일꾼이 이 사역을 제대로 하고 이 책임을 다하는 것은 무척 쉬우며 난이도가 높지 않다. 예전에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를 분별하고 제명하는 사역의 세부 사항에 대해 많이 교제했고 많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제14조에서 다루는 사역은 겉보기에는 앞서 교제한 제12조, 제13조의 구체적인 내용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지만, 제14조에서 리더 일꾼의 사역 대상에는 적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각종 악인도 포함된다. 그 대상이 되는 각종 악인의 범위가 비교적 넓어서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교제할 필요가 있다. 또한, 특정 부류의 악인이 아닌 각종 악인의 모습이기 때문에 리더 일꾼의 직책 제14조를 교제할 때는 리더 일꾼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대상으로 이 사역을 하는지 중점적으로 교제해야 한다. 이런 측면 이외에도 이런 자들을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제재하고 격리해야 하는지, 아니면 제명하거나 출교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어서 구체적으로 교제하겠다.

교회란 무엇인가

이 사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교제하기 전에 먼저 상관없는 다른 주제 하나를 교제하겠다. 모두가 아는 주제일 수도 있고, 너희가 구체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주제일 수도 있다. 어떤 주제겠느냐?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이다. 이 주제가 어떠하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리더 일꾼의 직책에 대해 교제하려면 그 내용이나 구체적으로 교제하면 되잖아요. 굳이 ‘교회란 무엇인가’를 교제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이 주제와 관련이 있나요?” 겉보기에는 관련없는 것 같다. 심지어 “그건 전혀 동떨어진 주제인데 왜 교제하나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너희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 생각들을 내려놓고 우선 교회란 무엇인지 되새겨 보아라. ‘교회’라는 이 명사와 호칭의 정의에 대해 명확히 교제하고 나면 왜 이 주제를 교제하려고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1. 교회에 대한 몇 가지 이해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교제하는 것은 바로 ‘교회’라는 호칭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설명하여 ‘교회’라는 명칭의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의를 보급하려는 것이다. 우선 너희가 ‘교회’라는 명칭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는지 말해 보아라. 교회란 무엇이냐? 이론적인 부분부터 시작한 다음, 좀 더 구체적이고 상대적으로 실제적인 정의를 말해 보자. (제가 이해한 바로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형제자매가 함께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를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 정의는 교회가 어떤 장소인지에 대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교회는 유형의 물질적인 것으로, 이는 이론적인 정의이다. 이 정의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느냐? 정확하지 않은 부분은 없느냐? 이론적으로 보면 이 정의도 괜찮다. 누가 더 보충해 보아라. (한 가지 보충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 사역을 하시고 진리를 선포하심으로써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로 이루어진 그룹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 정의는 교회가 어떤 그룹인지 설명하는 것으로, 문자적으로나 이론상으로 교회를 정의한 것이다. (저도 한 가지 덧붙이겠습니다. 성령 역사가 있는 이 사람들은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성령의 깨우침을 얻고, 진리를 실행하여 생명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방금 덧붙인 정의는 교회가 어떤 모임인지를 말한다. 이 모임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성령 역사와 생명 성장이 있는 것이다. 이 또한 기본적으로 보면 문자적으로나 이론상으로 교회를 정의한 것이다. 더 추가할 내용이 있느냐? (하나님 말씀을 실행 원칙으로 삼고 진리와 그리스도가 권세를 잡는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수 있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생명이 성장하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공동체를 교회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공동체’란 방금 언급된 ‘그룹’과 비슷하다. 더 보충할 내용이 있느냐? 더 보충할 내용이 없다면 방금 언급된 네 가지 이해를 반복해서 설명하면 되겠구나. 네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어 오면서 생각한 교회의 정의는 무엇이냐? 이론적으로 정의하면 쉽지 않겠느냐? 예를 들어, 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경배하는 사람들의 그룹, 혹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기를 추구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의 무리, 혹은 성령 역사와 성령 인도가 있으며 하나님이 함께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모두 교회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이론적으로 내린 교회의 정의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교회의 정의 앞에 붙은 수식어의 내용을 너희는 다 이해하고, 알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말해 보아라. (교회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을 뜻합니다. 진정한 교회에는 성령 역사와 하나님의 인도가 있고, 그리스도와 진리가 권세를 잡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며 생명 진입이 있습니다. 그래야 진정한 교회입니다. 교회는 종교 단체와 다릅니다. 교회는 종교 의식을 치르지 않고 표면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형식을 취하지도 않습니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교회의 정의는 기본적으로 이렇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부른 사람들이 모인 장소를 교회라고 정의하거나, 혹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의 그룹을 교회라고 정의하거나, 또한 하나님이 부른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모임 등으로 교회를 정의한다면 이 호칭들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여러 무리가 교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인지와 정의이다. 교회에 대한 각 종파의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우리처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교회를 어떻게 정의할까? 그것은 다름 아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성령 역사와 하나님의 인도가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에게 순종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한 무리 사람들의 모임이다. 뒷부분은 장소라든가 그룹이라든가 혹은 모임, 공동체, 단체 등으로도 정의할 수 있지만 뒷부분의 명사가 무엇이든, 결국 앞부분의 수식어는 기본적으로 이러하다. 사람이 교회에 대해 갖는 이런 기본적인 인지나 너희가 ‘교회’라는 호칭을 정의할 때 앞에 붙이는 수식어를 보면,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은 다음에는 더 이상 교회를 일반적인 단체나 공동체로 인지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성령 역사가 있으며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혹은 생명 진입과 성품 변화,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는 것 등 이런 것들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이 사역한 이후 대다수 사람들은 ‘교회’라는 호칭에 대해 이미 마음속으로 더 깊이 있고, 구체적이며, 하나님의 마음에 더 부합하는 인지나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 단순한 건물이나 사회단체, 혹은 기관이나 조직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2. 교회의 존재 가치와 교회에서 하는 사역

교회의 구체적인 개념이나 정의에 대해서는 당장 성급히 결론을 내리지 말자. ‘교회’라는 호칭이나 정의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이 생기고 나니, 너희는 교회의 존재 가치나 교회가 존재함으로써 생겨나는 사역, 교회가 사람들 사이에서 하는 역할 등이 명확해지지 않았느냐? 이런 측면의 내용은 교회의 정의와도 관련 있지 않겠느냐? 간단히 말해, ‘교회는 대체 무엇을 하느냐’라는 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 가치이다. 예를 들어, 건물 한 채가 있다면 그 건물의 용도는 무엇이냐? 건물의 존재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이나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지느냐? 최소한 건물은 비바람을 막아 줘야 한다. 이것이 건물의 가치 중 하나이다. 두 번째 가치는 네가 힘들고 지쳐서 갈 곳이 없을 때 집은 네가 쉴 수 있고, 편히 지내며 즐겁게 지내도록 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런 건물의 표면적인 명칭이 바로 집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네게 어떤 역할을 하느냐? 비바람을 막아 주고 휴식할 공간이 되며 네가 마음의 긴장을 풀고 자유를 누리도록 해 준다. 이와 같은 역할들이 바로 이 건물이 네게 주는 가치이다. 그럼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교회가 생겨나고 존재하는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 계속 말해 보자. 간단히 말해,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너희는 명확히 알고 있느냐? 어떤 구체적인 사역들을 하는지, 혹은 어떤 성질의 사역을 하는지, 사역 범위에 어떤 것들이 포함되어야 교회라고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하는 사역인지 등이 교회의 정의에 대해 교제해야 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이다. 먼저 교회가 대체 어떤 사역을 하는지 말해 보아라. (주로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며, 복음을 확장하여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이는 한 항목의 구체적인 사역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교회가 존재하는 의미이자 교회가 해야 하는 구체적인 사역 중의 하나이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역도 구체적인 사역 중 하나인데, 이 사역은 누가 담당하느냐? 지금의 복음팀이 담당한다. 교회에서 하는 사역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느냐? (형제자매들을 모아 함께 예배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며, 끊임없이 진리를 깨달아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구체적인 사역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깨닫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교회가 하는 중요하고 주된 사역이다. 한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깨닫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도록 인도하는 사역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으로, 교회 내부를 대상으로 한다. 이 두 가지 사역 중 하나는 외부를 대상으로 하고, 다른 하나는 내부를 대상으로 하는데, 모두 교회가 존재함으로써 생겨난 사역이고, 교회가 해야 하는 사역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역이라고 할 수도 있다. 더 있느냐?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체험하고 정결함을 얻어 성품 변화를 이루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 내부에서 하는 구체적인 사역이다. 너희가 말한 모든 사역은 기본적으로 다 대표성을 띤다.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는 것, 예를 들어 여러 환경,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등을 체험하여 최종적으로 성품 변화를 얻고 구원에 이르는 것은 한 항목의 구체적인 사역이고, 교회의 출현과 존재가 사람에게 미치는 효과이자 사람에게서 이루는 성과이다. 복음팀이 하고 있는,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역 외에, 여러 체험 간증문, 찬양 그리고 각종 영상, 영화 등도 하나님 말씀 전파 사역에 포함되는 구체적인 내용이자 항목이다. 그다음은 교회 생활 측면이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셔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며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리고 본분 이행 기간에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이 마련한 여러 환경을 체험하여 성품 변화를 얻고 구원에 이르는 것 말이다. 이는 교회가 생긴 이래 교회의 존재를 토대로 생겨난 몇 가지 사역이다. 이 몇 가지 주요 사역 이외에 일부 부수적인 사역도 있지 않으냐? 부수적인 사역에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부수적인 사역은 일부 중요하지 않은 사역이나 일부 사무적인 사역을 뜻하지만, 하나님 선민이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는 다 어느 정도 도움이 되고, 사람의 생명 성장과 일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럼 특수한 상황에서 교회 사역으로 인해 생겨난, 사람의 육적인 생존과 관련된 일부 사무 사역은 교회의 범주 안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역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예를 들어, 농사나 양식(養殖) 등은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음식들을 제공하는데, 이런 것들을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에게 컴퓨터나 일부 설비를 배치해 주는 것 등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은 무엇을 뜻하느냐? 이는 교회의 정의와 관련이 있다. 너희가 방금 교회에 대해 내린 정의가 상당히 훌륭했기에, 나는 꽤 흡족하다. 교회의 정의에서 앞부분에 붙는 수식어는 모두 사람의 생명 진입,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 나아가 사람의 성품 변화와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등 더 높은 진리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교회는 결코 사람의 먹고 입는 문제, 건강, 앞길 등 육적인 생활이나 육적인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또 교회는 사람의 육적인 생존이나 더 좋은 육적인 삶을 위해 생겨난 것도 아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 말은 틀렸어요. 하나님 말씀에는 저희의 육적인 생활과 생존 같은 일도 언급되어 있다고요. 저희에게 현대 예술을 좀 배우고 보건 상식과 같은 지식도 알라고 하셨죠. 이건 저희의 생존과 관련 있지 않나요?” 그런 것들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의 생활은 분명 의식주나 이동, 일상적인 지출과도 관련이 있으니 교회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일들도 겸사겸사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해결되면 사람은 ‘교회에서 우리의 일상적인 지출까지 책임지는구나. 이건 교회의 일상적인 사역이자 본질적인 사역이야.’라고 생각한다. 이는 오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왜 오해했겠느냐?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아직도 알지 못하겠느냐? 이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왜 이해에 문제가 있겠느냐? 이것이 바로 자질의 문제이다. 결국은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에 관해 방금 세 가지를 언급했다. 하나는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고 전파하는 것, 다른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 줄 알며 본분을 더 잘 이행하도록 인도하는 것, 마지막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깨달은 것을 토대로 하나님의 사역과 주재를 체험하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 성품 변화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다 사람이 구원받는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다. 이 몇 가지를 상당히 훌륭하게 정리했다. 이것들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하는 사역이자 교회의 존재가 인류와 교회 구성원, 하나님 선민에게 가지는 가치와 의미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라. 이 몇 가지 본질적인 사역 외에, 사람이 교회가 하는 이 사역들을 체험하는 것 외에 또 어떤 본질적인 이득을 얻겠느냐?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분별하는 것도 어느 정도 근접하다. 이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과 관련 있다. 본질적인 사역이라고 하면 대표적인 사역을 말한다. 방금 교제한 것들은 다 사람이 긍정적으로 얻는 수확이나 사람이 종사하고 체험하는 교회의 일부 사역이다. 이 몇 가지 본질적인 사역 외에 교회의 또 다른 존재 가치는 바로 사람이 인류와 세상, 흑암 권세를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너희가 교제한, 교회의 세 가지 사역 이외의 또 다른 본질적인 사역 아니겠느냐? 구체적인 사역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사역은 앞서 말한 세 가지 사역에 비하면 부수적인 사역에 해당한다. 왜 부수적인 사역이라고 하겠느냐? 이는 사람이 앞의 세 가지 사역을 체험한 뒤 이루게 되는 한 측면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패괴 성품과 하나님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이루게 되는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 성과는 바로 사람이 이 사악한 인류와 어두운 세상, 흑암 권세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성과를 어느 정도 이루지 않았느냐? (어느 정도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가치 아니겠느냐? 교회의 존재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서 해야 할 기능이자 작용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객관적으로 이러한 작용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가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이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러면 어떤 항목들이 이 사역의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 있겠느냐? 예를 들어, 하나님 선민이 체포되어 고문받는 일을 겪은 그런 류의 영화는 한 편으로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사탄의 잔혹한 박해를 겪을 때 보인 증거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악한 인류와 어두운 세계, 흑암 권세가 하나님이나 진리를 대적하고 정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여러 방식으로 잔혹하게 박해한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다. 폭로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그런 관점으로 인류와 세상, 흑암 권세를 인식하게 한다. “인류와 세상의 무엇을 인식하죠?”라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너희 생각에는 무엇을 인식하겠느냐? (이 인류와 세상의 어두움, 사악함, 나아가 하나님을 적대하는 인류 전체의 본질을 인식합니다.) 그렇다. 인류의 사악함과 어두움, 하나님을 적대하는 인류 전체의 추악한 몰골과 진짜 모습을 인식한다. 고문에 관한 영상 작품이나 개인의 체험 간증은 교회가 이 사역을 하는 구체적인 예시이다. 이 밖에도, 전통문화와 인류의 도덕관, 혹은 특정 민족이나 인종의 일부 사상, 나아가 중국의 도교나 유교와 같은 전통 학설, 그리고 진리를 위장한 일부 주장, 사람을 속박하며 사람의 생각을 옭아매는 일부 가풍과 가정 교육을 폭로한다. 이런 것들을 폭로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이는 어느 범주 안의 사역이냐? 내가 예전에 ‘와신상담’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분석한 내용은 세상과 인류, 흑암 권세를 인식하는 사역 중의 한 가지에 해당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사역의 구체적인 내용 중 한 가지 예시이다. 따라서 이 사역 또한 교회가 해야 하는 한 항목의 구체적인 사역이다. 어쨌든 교회가 하는 사역은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진리를 통해 사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도록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탄의 어두운 세상, 진리나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사탄의 온갖 행태를 폭로할 뿐 아니라 인류 사회의 사악한 흐름, 그리고 이 패괴된 인류의 여러 사상 관점과 그릇된 주장, 황당한 논리 등을 폭로함으로써 사람들이 이 사악한 시대의 실상과 본질을 인식하게 한다. 이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실상 너희는 이미 교회 사역에서 많은 수확을 거두었고 실질적인 유익도 얻었다. 교회에 있는 사람은 진리에 관심이 있든 없든 하나님을 3년, 5년 따르면서 예배 시간에 진리를 교제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는다. 또한, 이방인의 핍박과 비방, 그리고 악인이나 적그리스도의 교란 등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겪으며, 그 과정에서 부지중에 이 어두운 세상과 사악한 인류, 집권 세력, 나아가 온 세상의 흑암 권세를 어느 정도 분별하고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수확이다. 그럼 사람은 어떻게 이런 수확을 얻겠느냐? 교회가 존재하기에 얻는 것 아니겠느냐? 교회가 하는 사역으로 얻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 하나님의 성품을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는 한편, 세상과 인류, 흑암 권세에 대해서도 상응하는 이해와 분별력이 생긴다. 이 두 가지 수확이 사람에게서 이루는 성과와 긍정적인 작용은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 마땅히 얻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하는 사역을 요약하자면, 하나님 말씀과 사역을 전파하고 증거하며, 나아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도록 인도하여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 줄 알게 하며 본분을 더 잘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진리를 깨달은 것을 토대로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여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성품 변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외에 사람에게 사악한 인류와 어두운 세상을 알게 하고 흑암 권세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 있다. 교회가 하는 사역은 항목이 많지 않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몹시 많다. 다루는 내용은 모두 하나님 말씀, 진리와 관련 있고, 사람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는 것, 사람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과 관련 있다. 물론 사람이 구원받는 것과는 더욱 관련이 깊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역할이자 존재 가치이다. 교회가 하는 사역은 그것이 어느 항목이든 전부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교회 사역은 모두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 사람이 구원받는 것, 세상과 인류, 흑암 권세를 대하는 사람의 관점 및 태도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교회의 존재는 모든 사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교회가 하는 사역, 교회 존재의 가치와 의미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교회가 해야 하는 구체적인 사역에 대해 교제를 마쳤으니 이제 사람이 교회라는 호칭과 교회의 존재 의미에 대해 어떤 부적절한 정의와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말해 보자. 우선, 사람은 교회를 비교적 아늑하고 따뜻한, 햇빛으로 가득한 곳이자 싸움, 전쟁, 살육, 피비린내가 없는 비교적 우호적인 곳이며, 사람이 마음속으로 동경하고 행복이 가득한 이상적인 장소라고 생각한다. 교회에는 질투나 분쟁, 암투, 사악한 흐름 등 이방 세계에 존재하는 현상이 없다고, 교회는 사람의 마음이 정박할 수 있는 이상적인 항구라고 말이다. 사람이 ‘교회’라는 호칭에 대해 어떤 아름다운 상상을 품든, 결국 사람은 교회에 어느 정도 마음을 의지한다. 이렇게 마음을 의지하는 것은 사람에게 더욱 실리적인 작용을 하는데, 사람은 고충이 있을 때 교회에 가서 모조리 털어놓을 수 있고, 교회는 사람의 근심을 덜어 주고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이나 생활에서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아이가 말을 듣지 않고, 남편이나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고부갈등이 생기고, 동료나 이웃 간에 분쟁이 발생하고,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고, 농지가 악한 자에게 점유되는 것 등의 일이 발생했을 때 사람은 곤경에서 벗어나 그런 일을 해결하고 수습할 수 있도록 교회의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주길 바란다. 교회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이런 장소이다. 그러니 의심의 여지 없이 교회는 사람의 마음속 피난처이자 이상적인 천국이며, 근심을 덜어 주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며 악인을 제거해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정의를 실현하는 곳이다. 생계가 어려워지면 교회에서 구제해 주어야 하고, 먹을 반찬과 안칠 쌀이 없으면 교회에서 배급해 주어야 한다. 입을 옷이 없으면 교회에서 사 줘야 하고 병에 걸리면 교회에서 돈을 대 치료해 줘야 한다. 일적으로 어려움에 부딪히면 교회의 형제자매가 당연히 도움의 손길을 뻗어 뒤를 봐주거나 연줄을 대 주거나 혹은 방향을 제시해 줘야 한다. 아이가 대입 시험을 볼 때는 교회에 가서 아이가 순조롭게 대학에 합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든 교회에 오기만 하면 그 모든 어려움이 다 해결되고 처리된다. 설사 악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교회는 사람이 많고 세력이 크니 처리해 줄 수 있고, 많은 사람이 격려하고 지지해 주기 때문에 더 이상 겁내지 않아도 되고, 악한 자가 괴롭힐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사회에서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당하고 여기저기에서 난관에 부딪혀 살길이 없을 때도 교회에 와서 도움을 구하고 좋은 제안을 얻어 적절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사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교회가 해야 하는 역할과 사역이다. 그 사상 관점이나 교회에 대한 요구로 보아 사람은 교회를 복지관이나 자선 기구, 결혼과 취업 알선소나 적십자사로 여기는 게 틀림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사회나 이 인류 가운데서 자신이 얼마나 능력 있든,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힘 있는 사람에게 기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강한 권력을 마주했을 때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일을 처리해 주며 자신의 권익을 챙겨 줄 강력한 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는 교회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고 그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어 줄 수 있기 때문에, 그에게 교회는 둘도 없는 선택지이다. 그는 교회를 사회의 노동조합이나 협회, 예를 들어 교사 노조, 교통 노조, 농민 협회, 부녀 협회, 노인 협회 등과 같은 사회 단체나 조직으로 여기는 게 분명하다. 사람이 생각하는 교회의 정의가 무엇이든, 교회가 하는 사역과 교회의 정확한 정의로 보면 교회를 대하는 사람의 이런 태도와 요구는 모두 옳지 않고 성립하지 않으며 존재해서도 안 된다. 교회는 부자를 털어서 빈민을 구제하거나 악인을 제거해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곳이 아니고 정의를 실현하는 곳도 아니다. 더욱이 세상을 구하거나 사람의 근심을 덜어 주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곳도 아니며, 자선 기구나 복지관도, 사회의 친목 모임도 아니다. 교회는 사회에서 어떤 단체나 조직의 역할을 하기 위해 성립되고 출현한 게 아니다. 교회는 짊어져야 하는 그 몇 가지 본질적인 사역 이외에는, 즉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고 전파하며,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 사역을 체험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것 외에는 이 사회나 그 어떤 집단에게도 어떤 역할이나 도움을 제공할 의무가 전혀 없다. 이 밖에도 교회는 사람의 권익을 챙겨 주는 곳이 아니고, 사람의 육적인 생활, 사회적 지위, 직무상의 호칭, 임금과 소득, 사회 복지 등을 보장할 의무도 없다. 사람이 관념 속에서 생각하는 교회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악인을 제거해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 정의를 실현하는 것, 사람의 근심을 덜어 주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 세상을 구하는 것, 권익을 챙겨 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교회가 언제든 도움을 주고 어떤 어려움이든 해결해 주며 처리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사람은 교회를 사회의 한 기관이나 조직, 단체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정말로 그런 기관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교회가 존재함으로써 갖는 기능과 하는 역할이 악인을 제거해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 정의를 실현하는 것, 사람의 근심을 덜어 주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 세상을 구하는 것, 권익을 챙겨 주는 것 등과 같은 일이라면 그 교회는 교회라고 불릴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나 성령 역사,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하나의 단체나 조직은 단지 단체 혹은 조직으로 불릴 뿐, 교회나 교회의 그 어떤 사역과도 아무 관련이 없다. 만약 어떤 조직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으로 예배를 지키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찬미하는 활동에 종사하고, 심지어 정식 모임과 경배도 있으며, 소위 성경 연구회, 기도회, 사역자 모임, 교류회 등도 있다고 해도, 그 구성원이나 구조가 어떻든 진정한 교회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교회란 과연 무엇이겠느냐? 어떻게 생겨나겠느냐?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이 현현 사역을 하고 진리를 선포하고 인류를 구원함으로써,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에게 돌아오며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함으로써 생겨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회이다. 교회는 사람이 조직하고 창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설립한 것이자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고 목양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는 교회에 대한 부탁이 있다. 교회의 사명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 사역을 증거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토록 간단하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 가치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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