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16) 제 4 부
3) 관념을 해결하는 원칙과 길
관념을 퍼뜨리는 것에 관한 항목에서 교제해야 할 것이 더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관념을 퍼뜨리는 일은 교회 생활에서 반드시 폭로하고 해부해야 해요. 제재도 해야 하고요.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믿다 보면 여러 가지 관념이 생기기 쉬워요.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렇다면 관념을 대할 때 사람이 어떤 실행의 길을 가지고 있어야 정확하게 실행할 수 있고, 교회 생활에 교란과 방해를 일으키지 않으며, 남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고, 남들의 생명에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적절할까요?” 사람이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냐? 불가피한 일 아니냐? (그렇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만 관념을 갖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게 맞는 말이겠느냐? 반만 맞는 말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특수한 일이 일어나면 간혹 하나님에게 관념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대해 어느 정도 관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념은 사람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생각이며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부 관념은 도덕과 철학에 부합하거나 전통문화와 인륜에 관한 이론 등에 부합할 수도 있다. 겉으로는 이런 생각도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진리에 부합하지 않고 진리와 충돌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기 전에 갖고 있는 수많은 관념은 선천적인 관념이고,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면서 환경과 여러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갖게 되는 많은 새로운 관념은 후천적인 관념이다. 이 두 가지 관념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직면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관념을 대할 때 해결 방안이나 실행의 길이 있느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어려울 것 없어요. 선천적인 관념은 저버리면 됩니다.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런 관념은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깨달음에 따라 차츰 해결되고 사라질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후천적으로 생긴 관념을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해 해결하며 그 관념에 속박받지도 않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께 반항하거나 하나님을 정죄하고 모독하는 등의 관념이 생기지 않은 거예요.” 이런 실행법이나 이렇게 관념을 대하고 처리하는 방식은 어떠냐? 관념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 폐해는 없겠느냐? 관념을 대하는 이런 태도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라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태도가 사람에게 그 어떤 긍정적인 역할이라도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소극적인 방법을 취해서 이런 관념들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속 가장 은밀한 곳에 담아 두었다가 튀어나오면 억누르고 기도하고는 그것으로 해결한 셈 친다면, 또 언제고 다시 관념이 튀어나와도 계속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고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러면 아무 일 없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어쨌든 내가 믿는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셔. 난 여전히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나의 창조주이시지. 이 점은 변하지 않았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법이겠느냐?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겠느냐? 이렇게 실행하면 관념을 근본적으로 완전하게 해결하겠느냐? 그럴 리 없다. 이런 관념들은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한 사람의 생명 진입이나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어느 정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교란을 일으킨다. 특히 사람이 연약할 때, 이겨 내기 힘든 환경에 놓일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실행의 길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흡족게 할지 모를 때, 자기가 구원받을 가망이 없어 보일 때 이런 관념들은 사람의 내면에서 불쑥 튀어나와 사람의 생각을 주도하고 사람의 온 마음을 차지하며 심지어 사람의 거취와 길에 대한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네가 개의치 않는 한 관념이 지금껏 네게 영향을 미친 적 없고, 너를 넘어뜨린 적도 없어서 너는 늘 네가 주재자로서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관념은 네가 실패, 혹은 교체나 도태를 한 번 체험하거나, 하나님의 매서운 징계와 채찍질을 한 차례 체험하고 나면, 심지어 스스로 무저갱에 떨어졌다고 생각할 때, 더 이상 네 부속품이 아니게 된다. 설사 네가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네 생각을 교란하고 미혹하는 것도 모자라 네 사상 관점, 하나님에 대한 네 태도와 믿음을 주도할 수도 있다. 이런 관념을 대할 적절한 실행 방식이나 원칙이 없거나 그것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관념들은 수시로 네 생명 진입이나 당장의 선택에 영향을 줄 것이고, 심지어 너와 하나님의 관계나 하나님을 대하는 네 태도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 생겨난 관념이든지 간에 그것을 마주할 때 사람이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관념을 대하고 처리해야 그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 이것이 우리가 명확히 교제해야 할 문제이다.
육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자유 의지와 자유로운 생각이 있다. 교육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자질이 높든 낮든, 성별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사람에게 생각이 있으면 관념이 생기기 마련이다. 만약 이런 관념이 패괴 성품을 주도하게 되면 그 관념으로 인해 너는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관념을 퍼뜨리는 자에게만 관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관념을 퍼뜨리고, 뒷일은 생각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하나님에 대한 온갖 견해와 판단을 퍼뜨릴 뿐이다. 그렇다면 관념을 퍼뜨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설마 관념이 없겠느냐? 마찬가지로 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단, 의도적으로 관념을 퍼뜨리는 사람의 경우 본성 본질이 선천적으로 진리를 싫어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들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관념이 옳고 진리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념과 진리가 충돌할 경우 진리가 아닌 관념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실패하는 부분이자, 그들이 제재되고 정죄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은 어째서 관념이 생겨도 정죄되지 않겠느냐?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이성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속으로 사람의 관념이 진리에 어긋나고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곧바로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속으로 관념을 포기하고 싶어 한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쪽을 택할 때 내면의 관념이 진리로 대체되고 해결된다. 그들은 관념을 내려놓고 관념의 영향이나 제한,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관념이 있어도 퍼뜨리는 법이 없다. 게다가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하나님의 구원에 순종할 수 있다. 그들은 늘 자신이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마음에 어떤 관념이 있든 그들은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를 유지한다. 자신의 본분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념이 계속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을 파멸시키거나 망칠 수 있으니 어떻게 관념을 대하고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 교제해야 한다.
대답해 보아라, 하나님을 믿기 전부터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관념이 해결하기 쉽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난 후 특수한 환경과 상황에서 생긴 관념이 해결하기 쉽겠느냐? (선천적인 관념이 해결하기 쉽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할 때 생기는 하나님에 대한 상상과 관념은 해결하기 쉽지만 하나님을 믿은 후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생기는 관념은 해결하기 쉽지 않다.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주장일 뿐 사실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론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겠느냐? 사람이 철학과 논리학에 따라 그렇게 추론해 냈다는 뜻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해 이상(異象) 측면의 진리를 깨닫고 나면 일부 관념들이 내려놓아지고 해결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단지 도리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진다.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수많은 관념은 사람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던 관념과 관계가 있다. 이 두 가지 측면의 관념 중 이론적으로는 선천적으로 생긴 관념이 해결하기 좀 더 쉽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기만 하면, 그리고 진리를 깨닫기만 하면 이 두 가지 측면의 관념 모두 쉽게 해결된다. 예를 들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념이 쉽게 해결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결국에는 한쪽으로 치우쳐서 지엽적인 것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는 성경이나 영적 명저, 그리고 성경 해설가의 풀이를 파고들고는 그것을 네게 들이밀며 한바탕 떠든다. 네가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 주어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순수하고 올바른 도(道), 진리, 옳은 말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으며 귀담아듣지도 않는다. 이는 그의 이해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가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고 진리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지엽적인 것에만 매달리거나 말장난하는 것을 즐기고, 이론과 신학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가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 (내려놓지 못합니다.) 사실과 그런 사람들의 성품, 취향을 보면, 이런 부류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가장 처음에 생기는 관념은 사실 단순하고 표면적이어서 아주 쉽게 해결된다. 정상적으로 사고하고 정상적인 이해 능력이 있는 사람일 경우 이상 측면의 진리를 교제해 주었을 때 알아듣기만 하면 쉽게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부류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며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이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 (그러지 못합니다.) 그럼 이런 부류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관념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이성을 지니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믿은 후 하나님에 대해 어떤 관념이 생기든, 그리고 그것이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 생긴 관념이든 하나님에게 이치를 따지지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는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라 잘못 생각하고, 잘못 행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진리이시며 영원히 틀릴 리가 없으십니다. 제 생각이 아무리 합리적이어도 사람의 생각일 뿐이고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니 진리가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어긋난다면 아무리 합리적이어도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그는 도대체 어디가 틀렸는지는 아직까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실행하겠느냐? 그는 순종하고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지 않으며 이 일을 내려놓고 언젠가 하나님이 밝혀 줄 거라 믿는다. 누군가 “하나님께서 밝혀 주지 않으시면 어떡하려고요?”라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면 영원히 순종하겠어요. 하나님께서는 틀릴 리가 없으시고, 하나님의 행사도 틀릴 리가 없어요. 하나님의 행사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행사가 틀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연구하거나 자기에게 생긴 관념 속에서 맴돌지 않고, 관념으로 하나님께 트집을 잡거나 관념을 자신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유나 핑계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관념을 이런 방식으로 대한다. 그렇다면 그의 이런 실행법은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관념이 생기면 관념으로 하나님을 비추어 보거나 연구해서 하나님의 진위,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내려놓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인식하려 노력한다. 온 힘을 다해 인식해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면 그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래도 순종한다. 그는 “하나님은 틀릴 리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며 진리를 선포하시는 분이고 진리의 원천이십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우선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고 자기는 피조물의 자리에 서서 관념을 대하기 때문에 설령 그가 관념을 내려놓지 않고 해결하지 않았다고 해도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가 그를 보호해 주어 그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피조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류가 갖는 관념은 쉽게 해결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결과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이냐? 일이 일어났을 때 그가 만약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하나님의 모든 행사는 진리이고 옳으며,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고 실수할 리가 없으시다는 말은 틀린 말 아닌가요? 하나님께서는 실수할 리가 없으시다지만 그건 그저 이론적으로 하는 말일 뿐, 사실 하나님의 행사 중엔 사람의 뜻이나 인지상정에 어긋나는 일도 있어요. 이 일은 그다지 옳은 것 같지 않아요. 그다지 옳지 않은 일에는 순종하거나 받아들일 필요도 없겠죠? 비록 하나님의 이름과 신분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제게 생긴 관념 덕분에 식견이 자라고 하나님을 더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도 일을 잘못하시거나 실수하실 때가 있는 거라고요. 잘됐어요.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고, 완벽하시며, 거룩하시다고 해도 못 믿겠어요. 그 말을 좀 의심하게 될 거예요. 비록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제가 그분의 주재를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앞으로는 흐리멍덩한 상태로 무턱대고 순종하지 말고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야겠어요. 만약 잘못 순종하면 어떡해요? 나만 손해 아닌가요? 무턱대고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순 없죠.” 이런 태도로 관념을 대하고 하나님을 대한다면 그가 관념을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 이런 실행법이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와 하나님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느냐? 그는 늘 하나님을 연구하고 있지 않느냐? 하나님은 그의 운명의 주재자가 아닌 연구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는 비록 자신이 창조주의 권세 아래 있는 피조물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행동은 피조물의 본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피조물 본연의 위치에서 창조주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반대편에 서서 창조주를 연구하고 창조주의 행사를 분석하여 이를 감안해 순종하고 받아들일지 여부를 선택한다. 그렇다면 그의 이런 태도와 실행법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마땅히 보여야 할 모습이겠느냐? 그의 관념이 해결될 수 있겠느냐?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그와 하나님의 관계가 왜곡되어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가 아닌 비정상적인 관계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시시각각 연구하며 그가 옳고 좋다고 여기는 것은 받아들이고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지 않거나 사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속으로 반발하고 하나님과 겨루니 하나님과의 관계에 간극이 생긴다. 이런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겠느냐? 겉으로 보면,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나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관념도 없는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하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관념이 생기면 순종은 감쪽같이 사라져 찾아볼 수 없고 그는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이냐? 분명한 것은 그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진리의 원천이나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언제 생긴 관념이든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쉽게 해결하지도 못한다.
지금까지 교제한 내용으로 봤을 때, 너희는 어떤 관념이 해결하기 쉽다고 생각하느냐? 이는 상황을 구분해 봐야 한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경우, 그는 이성적이고, 옳은 사람이라 언제 생긴 관념이든 쉽게 해결한다. 반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언제 생긴 관념이든 해결하기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20~30년 동안 믿었는데도 지금껏 하는 말이라고는 죄다 글귀와 도리, 사람의 관념뿐이며, 진리에 부합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그가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하는데 관념이 생길 때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 장담하기 어렵다.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관념을 내려놓지 못한다. 사람에게 관념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언제든 여러 관념이 생길 수 있다. 하나님을 얼마나 믿었든 사람의 마음속에 관념이 일부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것이 설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겠느냐? 해결할 수 있다.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이 몇 가지 원칙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너는 이 원칙대로 실행하여라. 한동안 실행하면 결실을 보게 될 것이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관념이 생기면 그것이 어떤 관념이든 일단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이 옳은지 묵상해 보고 분석해 보아라. 만약 그것이 그릇되고 치우친 생각이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느껴진다면 서둘러 기도하며 네가 이 문제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도록 깨우치고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구하여라. 그런 다음 예배 시간에 자기의 인식을 이야기하여라. 인식하고 체험하는 동시에 자기 관념의 해결을 중시하여라. 만약 이렇게 실행해도 뚜렷한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과 이런 측면의 진리에 관해 교제하여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과 체험 속에서 너는 하나님이 그렇게 한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차츰 확인하고, 자신의 관념을 해결하는 문제에 있어 큰 성과를 보게 될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과 사역을 받아들이고 체험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성품을 어느 정도 인식하며, 네 관념을 내려놓고 해결하게 된다. 너는 더 이상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경계하지 않으며, 무리한 요구를 하지도 않게 된다. 이것은 쉽게 해결되는 관념이다. 또 한 측면의 관념은 사람이 인식하기도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해결하기 어려운 관념의 경우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분출하지 말고, 퍼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의 관념을 분출하면 사람에게 득 될 것이 없고,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네가 만약 관념을 퍼뜨리는 것의 성질과 결과가 무엇인지를 이해한다면 너 혼자 분명하게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좋다. 네가 만약 “교회에서 말하지 않으면 답답해 견딜 수가 없어요. 이러다 죽겠어요.”라고 말한다면 이런 관념을 퍼뜨려서 하나님의 선민에게 과연 득 될 게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득 되기는커녕 남들이 하나님에게 관념을 가지고 심지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판단하게 만든다면 네가 하나님의 선민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니겠느냐? 이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니 역병을 퍼뜨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약 정말 네게 이성이 있다면 자기가 고통을 감내할지언정 관념을 퍼뜨려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말을 안 하려니 답답해 견딜 수 없다면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한다. 만약 문제가 해결되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만약 네가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도 관념을 품고 하나님을 판단하고 오해한다면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에게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저를 징계해 주시고 여러 환경을 통해 저를 드러내 주셔서 제 관념이 틀렸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 주세요. 저를 어떻게 징계하시든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옳은 것이다. 네가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나면 그렇게 답답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지 않겠느냐? 만약 계속 기도하고 구하여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마음이 환해지면 답답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 네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 반발, 패역도 거의 사라지고, 적어도 꼭 분출하겠다는 생각은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안 된다면, 문제가 여전히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체험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 그의 도움으로 관념을 해결하여라. 네 관념을 해결할 수 있는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달라고 해서 수십 번, 수백 번이고 읽으면 네 관념이 완전히 해결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제가 예배 시간에 형제자매에게 분출하면 관념을 퍼뜨리는 것이니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답답해서 힘들 때 가족에게 말하는 건 괜찮을까요?”라고 말한다. 네 가족이 모두 형제자매일 경우, 네가 이 관념들을 분출하고 나면 그들을 교란하게 될 텐데 이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겠느냐? (합당하지 않습니다.) 너의 말이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미혹하는 등의 악영향을 미친다면, 절대 말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기도하여 해결해야 한다. 네가 경건한 마음과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기만 하면 관념이 해결될 것이다. 하나님 말씀 속에는 모든 진리가 담겨 있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 그저 네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려 하는지,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을 뿐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 말씀 속에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네게 문제가 닥쳤을 때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만약 한동안 기도하고 나서도 하나님이 네게 아무것도 깨우쳐 주지 않은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말씀해 주지 않은 것 같은데도 그 관념이 너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네 생활을 교란하지 않는다면, 또 네 관념이 점차 희미해져서 너와 하나님의 정상적인 관계는 물론 네 본분 이행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이 관념이 거의 해결된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행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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