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1) 제 3 부
제2조 각 부류 사람의 내적 상태를 파악하여 그들이 현실 생활에서 부딪히는 생명 진입에 관련된 여러 어려움을 해결한다(1)
거짓 리더는 각 부류 사람의 내적 상태를 꿰뚫어 보지 못한다
리더 일꾼의 직책 제2조의 내용은 ‘각 부류 사람의 내적 상태를 파악하여 그들이 현실 생활에서 부딪히는 생명 진입에 관련된 여러 어려움을 해결한다’이다. 그렇다면 거짓 리더는 이 측면의 사역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이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이제 이 조항을 해부하도록 하겠다. ‘각 부류 사람의 내적 상태를 파악한다’라는 것은 어떤 기초 위에서 이루는 것이겠느냐? 바로 하나님이 각 부류 사람의 패괴 성품과 패괴된 본질을 폭로한 그런 하나님 말씀을 깨달은 기초 위에서 이루는 것이다. 각 부류 사람의 내적 상태를 파악하려면, 먼저 사람의 다양한 내적 상태, 패괴 성품, 패괴된 본질을 폭로한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야 하고, 동시에 대조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폭로한 이런 성품은 어떤 부류의 사람을 가리키는지, 그의 인성은 어떤지, 그가 어떤 모습과 표출을 지니고 있는지, 그가 하나님, 하나님 말씀, 본분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지, 이러한 내적 상태를 하나님 말씀과 대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각 부류 사람의 내적 상태를 파악하게 된다. 따라서 각 부류 사람의 내적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이해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거짓 리더는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에서 폭로한 각 부류 사람, 그리고 사람의 다양한 내적 상태와 패괴된 본질을 폭로한 그런 복잡한 진리를 거짓 리더가 깨달을 수 있겠느냐?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는 그 내면의 관계를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그 내면과 관련된 진리를 알지 못한다. 그가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각 부류 사람의 내적 상태를 파악하는 매우 핵심적이고 중요한 일이 거짓 리더에게는 매우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다.
거짓 리더는 각 부류 사람의 내적 상태를 어떻게 파악하겠느냐? 그들은 이 사람은 열정적이고, 저 사람은 옹졸하고, 이 사람은 꾸미기를 좋아하고, 저 사람은 믿음이 작다는 등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이런 모습만 볼 뿐,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이나 진리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그 사람의 본성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고 본분도 힘 있게 이행하지만, 가정에 어려움이 있고 얽매이는 바람에 본분 이행 성과에 지장을 줄 경우, 거짓 리더는 이를 보고 함부로 낙인을 찍으며 “이 사람은 불신파입니다. 가정을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늘 자녀를 걱정합니다. 집에 저축이 있어도 헌금하지 않아요. 따라서 이 사람은 골치 아프니 앞으로 중용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이 사람의 문제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그는 그저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 짧고 진리를 얕게 깨달아서 많은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가정과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재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여전히 기도하고 구하는 중이며, 아직 정확한 원칙과 실행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진리를 실행하려는 의지는 있지만, 단지 가정의 얽매임과 어려움에 직면해 일시적으로 나약해지고 본분 이행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것뿐이다. 하지만 그는 교회에서 그에게 안배한 사역은 열심히 완성할 수 있다. 이런 점은 일반인은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의 자질과 인성, 그리고 진리를 대하는 태도를 봤을 때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거짓 리더는 이렇게 보지 않는다. 이는 그가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본성 본질이 무엇인지, 사람에게 생긴 내적 상태가 대체 본성 본질의 문제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나약함인지, 그것도 아니면 분량의 문제인지를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가늠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것들을 가늠할 줄 모른다.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 생기는 어려움은 현실 생활에서 직면하는 생명 진입과 관련된 어려움인데 거짓 리더가 이런 문제를 처리할 줄 알겠느냐? 이런 부류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할 줄 알겠느냐? (그렇게 할 줄 모릅니다.) 거짓 리더는 각 부류 사람의 내적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그들의 본성 본질의 좋고 나쁨을 정확하게 분별할 줄 모르기 때문에 각 부류 사람의 어려움과 문제도 정확하게 해결하지 못한다. 반대로, 그는 오직 열정에 의지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헌신하며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기는 하지만 자질이 형편없고 이해 능력도 없는 사람들을 집중 양성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어려움에 직면하면 그는 교제해서 해결해 준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질이 있고 인성이 좋은 사람들일 경우, 그들이 어려움에 직면해 다소 나약해질 때 거짓 리더는 어떻게 이를 해결하고 처리하겠느냐? 사람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사실 조금은 나약해진다. 상황에 따라 붙들어 주고 도와주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 주어야 한다. 무조건 부정해서는 안 되며, 규정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하지만 거짓 리더는 어떻게 해결하겠느냐?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사역이 지금 어느 때인데 당신은 여전히 남편과 아이에게 연연하고 있군요. 게다가 아이를 대학에 진학시켜 미래를 추구하게까지 하고요. 지금 재난이 점점 더 커지는데 이 세상에 미래가 있겠습니까? 당신 목숨도 돌볼 겨를이 없는데 그런 걸 돌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역이 거의 끝나 가서 시간이 얼마나 촉박한데요. 당신이 자신을 온전히 바치지 않으면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들의 어려움이 이것이겠느냐? (아닙니다.) 이 부류 사람들이 어려움에 직면해 조금 나약해지는 것은 그저 분량이 작기 때문이지 결코 진리를 사랑하지 않거나 본분을 이행하기 싫어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거짓 리더가 한 그런 말들은 그의 내적 상태에 부합하지 않으며, 함부로 낙인을 찍은 것임이 분명하다. 거짓 리더는 그의 내적 상태의 핵심과 중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가 마음속으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그를 인도하고 도와주어 그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는지를 파악하지 못한다. 거짓 리더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런 일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느냐? 이렇게 말하면 된다. “당신이 직면한 이런 일은 많은 사람이 직면하는 문제입니다. 진정으로 가정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일시적인 충동이 아니라 오랜 시간 예비해 온 것입니다. 우선, 그들은 충분히 많은 진리를 깨달았으며, 진정으로 모든 것을 내걸고 가정을 떠나 하나님 집에서 몸과 마음을 다하여 헌신할 의지가 있고, 나중에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것들을 다 생각해 놓았습니다. 그 밖에 이 기간에 그들은 또 하나님께 기도하여 예비해 주시고 출로를 열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이와 동시에 자신이 더 많은 진리를 깨닫고 더 큰 믿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도록 끊임없이 진리를 갖춥니다. 이는 시간이 필요하고 기도도 필요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와 안배도 필요하죠. 만약 당신이 이런 의지가 있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조용히 기다리세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안배해 주실 겁니다. 만약 당신의 기도와 의지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다면, 또 당신이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당신이 후회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당신을 위해 출로를 열어 주실 겁니다. 이 기간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예비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진리를 갖추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자신의 분량을 점차적으로 키우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양한 환경을 마련하실 때 당신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전혀 원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분량이 생긴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고 안배하시든 당신이 다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을 인도하는 것은 어떠하냐? (좋습니다.) 사람의 책임을 다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사람들의 실제 상황에 맞춰 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아니겠느냐? 사람의 내적 상태에 따라 사람이 현실 생활에서 직면하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늘 건성으로 대충 하고 전혀 책임을 지지 않으며, 늘 관리라도 되는 듯 거드름을 피우며, 교만하고 독선적으로 굴며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하고, 교회 사역에 손해를 입혀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거짓 리더는 이런 상황을 보고 문제를 처리하고 해결하기 시작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은 이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의 사역을 대신할 딱 맞는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 교제를 통해 그의 어려움을 해결해 줘야 합니다.” 교제하는 과정에서 거짓 리더는 이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세상을 추구하고 싶어 하고,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어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고 싶어 하며, 자신에게 본분을 이행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바로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 매일매일 바쁘게 보내야 하는데, 그러면 개인의 가정생활이 망가질 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도 유지할 수 없으며, 본분을 이행하다가 원칙을 위배하기라도 하면 책망과 훈계도 받아야 하니 그런 삶은 너무나 고되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렇게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매우 명확하다. 그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면 그가 바로 불신파이다. 그렇다면 거짓 리더는 어떻게 처리하겠느냐? 거짓 리더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은 이방에서는 인재야. 이런 사람 찾기 어려워. 그의 내적 상태에 문제가 생겼으니 내가 어서 급한 일을 잠시 내려놓고 그와 교제해서 해결하도록 도와줘야 해. 어떻게 해결하지? 하나님 말씀이 가장 힘이 있으니, 우선 그에게 하나님 말씀을 몇 단락 읽어 주어 본분을 이행하기 싫어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다.’ 그래서 거짓 리더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재난이 닥쳐서 사람들이 편안한 일상을 보내지 못하게 되었는데 당신은 직장 생활을 해서 돈을 벌고 또 자기 가족만의 삶을 살려 하네요. 앞으로 온 세상이 혼란해져 가정도 없어질 겁니다. 이런 일들을 아직도 꿰뚫어 보지 못하나요? 하나님께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믿음이 생겨요.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셔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몇 번 먹고 마시면 당신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러고는 하나님 말씀을 5~10단락 찾아 그에게 읽어 주며 교제한다. 그러면 이 사람은 “교제하지 마세요. 이 하나님 말씀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당신보다 학력이 높으니 과시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하루 종일 교제해도 어떠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거짓 리더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교회 사역을 했는데, 당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저녁에 서둘러 교제를 이어 간다.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당신은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될 희망이 있어요. 이 본분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해요. 이번에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어요. 당신의 자질과 조건이 이렇게 좋은데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아깝지 않습니까? 당신 같은 인재는 하나님 집에서 발탁되어 쓰여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 집에서 큰 희망이 있어요!” 그러면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만하세요. 저에게 본분을 이행하라고 해도 제 태도는 변하지 않아요.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하면 당장 떠나겠어요. 저는 이곳에 미련 없어요!” 거짓 리더가 입이 닳도록 설득해도 이 사람을 설득하지 못했고, 그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이는 어찌 된 일이겠느냐? 바로 이 사람의 본질 문제가 무엇인지를 꿰뚫어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자기 생각대로 건성으로 하고, 대충대충 하며, 속여 넘기고, 형식적으로 하여 어떤 사역을 하든 책임을 지는 법이 없다. 어떤 문제들은 조금만 더 공을 들이거나 말을 몇 마디 더 해야 하는데, 그는 그것도 하기 싫어 귀찮아하고 번거로워한다. 그는 어떻게 본분을 이행해야 기준에 맞는지, 어떻게 해야 적합한지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실행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니, 이는 어떤 성질이겠느냐? 무슨 문제이겠느냐? (그는 복받고 거래하려는 마음을 품고 온 것입니다.) 그는 이런 희망을 안고 온 것이다. 이런 자는 투기파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이 곧 멸망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세계 종말이 다가왔으니 더 이상 직장에 다닐 필요도 없어요. 돈도 이미 충분히 벌었으니, 일단 하나님 집에서 밥벌이 좀 하면서 이름을 올려놓으면 나중에 복받을 희망이 생기는 거죠.” 본분을 이행하는 그의 이런 태도와 저의를 보면 그는 투기하기 위해, 하나님 집에 와서 밥벌이를 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진정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그의 본분 이행 태도는 특히나 거만해서 교회에서 그를 쓸 때에는 어르고 달래며 그와 상의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열심히 하지 않는다. 양심도 없는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이런 자가 바로 투기와 밥벌이를 하러 온 불신파이다. 그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 문제의 성질로 보면, 이 거짓 리더는 문제를 해결할 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였느냐?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라고, 단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분량이 작아서 일시적으로 나약해진 것이니 누군가 붙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부터 교제하고 도와주지만, 결국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만하세요. 당신이 말하는 그런 도리는 소용없습니다. 이미 알고 있고, 제가 당신보다 더 잘 알아요. 그래 봤자 당신이 도리를 얼마나 알겠어요? 당신 학력이 그래 봤자 얼마나 된다고요? 제가 읽은 책이 당신이 먹은 밥보다 많습니다!” 본성이 드러나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거짓 리더는 자신이 사역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실 이 사람이 불신파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불신파가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더라도 힘쓰는 것조차 불합격이다. 이런 사람을 남겨 둬야 하겠느냐? (남겨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사람에 대한 하나님 집의 처리 원칙은 다음과 같다. ‘그가 힘을 쓸 수 있으면 힘을 쓰게 한다. 힘쓰기를 원하면 남겨 두지만, 힘쓰기를 원하지 않으면 빨리 정리한다. 그들을 붙잡지도 않고 권면하지도 않는다.’ 거짓 리더가 이 원칙을 알겠느냐? 모른다. 죽은 사람을 산 사람인 양 돌보고, 또 그에게 음식과 물을 먹이는데, 이는 어리석은 것 아니겠느냐? 거짓 리더는 바로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한다.
거짓 리더는 사람의 생명 진입에서의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거짓 리더는 각 부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드러내는 다양한 내적 상태와 모습에 대해 늘 그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거기에서 생성되는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에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식으로 제멋대로 행동한다. 그는 한순간의 연약함과 가끔씩 소극적으로 변하는 사람을 불신파,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반면 겉으로 보기에 약간의 은사가 있어 간단한 사역을 할 수 있고 조금 힘을 들일 수 있는 불신파는 붙들어 줄 중요한 대상으로 삼고, 상대방이 본분을 이행하기 싫어도 직접적으로 말하기 곤란해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끈덕지게 붙잡는다. 그는 어리석은 일만 하면서 악인이 교회를 교란해도 이를 보지 못하고 처리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아니겠느냐? 거짓 리더의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런 면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겠느냐?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각종 일이 닥쳤을 때 자신이 이해한 그 가장 얕은 도리의 틀에 맞춘다. 그렇게 틀에 맞추다 보니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만 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사람들이 생명 진입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하고, 연약해질 때 강해질 수 있도록 붙들어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를 갖게 한다. 교회가 자신들을 회유해 힘쓰게 만들어 등을 쳐 먹는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 집에 인재가 없어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거짓 리더의 사역으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영향이다. 이 모든 것들은 어떻게 초래되는 것이겠느냐? (거짓 리더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 일에 직면하면 규례에 끼워 맞출 뿐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죽은 글자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참된 체험적 인식과 깨달음이 없어서 결국에는 문제에 직면할 때 “하나님을 사랑해야죠.”, “정직한 사람이 돼야죠.”, “일이 닥치면 말을 듣고 순종해야죠.”, “열심히 본분을 이행해야죠.”, “충성심이 있어야 해요.”, “육을 저버려야 해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해요.”와 같은 무미건조한 말들만 할 뿐이다. 그들은 이런 공허한 도리, 구호, 말로 자신을 꾸미는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치며 그것이 그들에게 영향을 주어 좋은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거짓 리더는 어떤 사역도 할 수 없다.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서의 어려움조차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교회를 이끄는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현실 생활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고 또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할지 모른다. 이때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해 해결할 필요가 있다. 만약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할 줄 모르고, 또 상응하는 하나님 말씀을 찾을 줄 모른다면, 이렇게 분량이 지나치게 작은 사람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찾아 교제하고 해결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상응하는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찾는지, 진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도 훈련해야 한다. 즉,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의 요구 기준과 원칙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요구하는지,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설명이 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만약 하나님 말씀이 간단하여 원칙만 설명하고 세부 사항의 예가 없다면, 곰곰이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만약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도 밝히 알 수 없다면, 더 많은 사람을 찾아 교제하고, 예배를 통해 교제하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모색하고 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어 점차적으로 이 문제의 본질이 대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면, 결국에는 하나님 말씀의 원칙에 따라 진입하여 이 측면의 어려움을 해결하게 된다. 예를 들어, 게을러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늘 기운이 없다가도 먹고 마시며 노는 이야기만 나오면 기뻐하고 뽕이라도 맞은 듯이 온몸에 힘이 솟아나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거짓 리더는 이런 일에 직면하면 어떻게 해결하겠느냐? 그에게도 방법은 있다. 상대방에게 더 많은 일을 안배해서 쉴 틈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어떤 사람은 일을 조금만 안배해 주어도 하기 싫어한다. 그는 ‘공짜 밥을 먹고 일을 전혀 안 해야 좋지!’라고 생각한다. 너무 게으른 사람은 무엇이 문제이겠느냐? 이는 사람의 본성 본질과 관계가 있으며, 사람이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는지와도 관계가 있다. 또한, 사람의 취향과 추구와도 관계가 있다. 또 어떤 사람이 자질이 약간 있는 경우, 만약 그가 평범하게 따르는 자라서 별다른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면 사역할 때 힘이 나지 않고 흥미가 생기지 않게 된다. 그런데 만약 그의 자질과 그가 이행할 수 있는 본분에 근거하여 그에게 책임자의 책임을 지워 직함을 갖고 직무를 담당하게 한다면, 흥이 나서 사역하게 된다. 때로는 그가 무책임하거나 나태하게 사역하면 책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에게 격려와 칭찬을 하기도 하면, 체면과 지위를 좋아하고 남들이 치켜세워 주는 것을 좋아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힘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 이렇게 고민하게 된다. ‘지위를 위해, 그리고 내가 맡은 책임을 위해 열심히 해야 해.’ 이렇게 하면 이런 부류 사람의 게으름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거짓 리더는 이런 인성 측면과 관련된 문제나 본분 이행 중 발생하는, 생명 진입과 관련된 이런 내적 상태에 직면하게 되면 해결하기 매우 힘들고 쉽지 않다. 그는 사람의 이런 내적 상태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어떤 하나님 말씀으로 정확하게 겨냥해서 해결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는 사역할 때 대부분은 사람을 설득하거나 달래서 열심히 하라고만 한다. 만약 설득이나 달래는 것이 효과가 없다면 화를 내고 책망하며, 책망도 통하지 않으면 엄한 하나님 말씀 몇 구절을 읽어 경고하여 자숙하게 한다. 만약 이래도 효과가 없다면, 그에게는 최후의 수단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안배해 지켜보고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몇 가지 방법으로 사역한다. 이 몇 가지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그에게는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
요컨대, 거짓 리더는 사역할 때 어떤 문제에 직면하든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며, 다양한 사람의 실제 내적 상태와 배경을 파악하기 어렵다. 문제의 근원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서 해결해야 가장 적절할지는 더더욱 꿰뚫어 보지 못한다. 거짓 리더는 문제를 처리하는 이러한 원칙과 방식을 모두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역해도 다양한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저 도리나 좀 이야기하고, 구호나 좀 외치고, 규례를 좀 지키며, 형식만 거칠 뿐이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교회 리더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들이 아무리 훈련하고, 아무리 오래 믿는다 해도 교회 리더의 사역을 감당할 수는 없다. 너희는 이런 측면의 사례를 본 적이 있느냐? (우리 교회에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늘 남을 판단하고 공격하는 말을 해서 저희의 본분 이행에 영향을 주었고, 방해와 교란을 일으켰습니다. 저희가 리더에게 이를 보고했지만, 리더는 계속해서 저희에게 자신을 인식하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이 환경에 순종하라고만 했을 뿐 실제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아 교회 사역이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리더가 바뀌고 나서야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것이 거짓 리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매우 흔하다. 그들은 악인이나 적그리스도를 만나도 분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내하고 포용하고 공과를 배워야 한다고만 말한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에게 순종하고 악인에게 순종하게 만든다. 그는 적그리스도와 악인을 분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와 악인을 처리하지도 않는다. 적그리스도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많이 교제했으니,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다들 조금은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해 보아라, 거짓 리더 부류의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의 모습에 근거하여 자신을 대조할 줄 알겠느냐?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알겠느냐? (그럴 줄 모릅니다.) 그가 적그리스도를 분별하지 못한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적그리스도에게 권력을 빼앗겨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통제하고, 결국에는 적그리스도가 마음대로 독립 왕국을 세우게 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가 적그리스도를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는 적그리스도를 적으로 대하여 폭로하고 분별하고 버릴 수 없다. 만약 그가 적그리스도를 분별하지 못한다면, 적그리스도를 형제자매로 대하여 인내하고 포용하다가 결국에는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고 교회를 통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를 분별하지 못하는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거짓 리더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다양한 사람의 본질을 분별하지 못하며, 그저 글귀와 도리를 이야기하고 규례에 끼워 맞추는 것만 할 줄 안다.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저 사랑하는 마음을 말하고, 회개를 말하며,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다. 이는 교계 목사의 행동 방식 아니겠느냐? 바리새인의 행동 방식 아니겠느냐?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를 만나면 대부분 타협하고 양보하고는 이것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이유와 핑곗거리를 찾는다. 그 사람이 문제가 있으며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용감히 직면하지 못하고 용감하게 분별하거나 폭로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 리더이다. 어떤 형제자매가 이미 그 사람이 악인이라고, 혹은 적그리스도라고 분별해도 거짓 리더는 여전히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열심히 헌신하고 대가를 치르는데, 그는 적그리스도도 아니고 악인도 아닙니다. 모진 말 좀 했다고 어찌 악인이겠습니까?”라고 말한다. 거짓 리더는 사람의 본질을 볼 줄 모르며, 적그리스도가 한 일의 결과도 보지 못한다. 오히려 적그리스도에게 사랑과 포용, 인내를 이야기하고, 또한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여 참된 회개를 하라고 권면한다. 적그리스도가 아무리 자신을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본성이 변할 수 있겠느냐? 그가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적그리스도는 겉으로는 약간 버리고 헌신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야심과 큰 계책이 있다. 거짓 리더가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양한 부류 사람의 본성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처리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것을 보고도 감히 참여하지 못하며, 적그리스도를 처리할 엄두는 더더욱 내지 못한다. 적그리스도에게 밉보여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그리스도에게 도리를 이야기하고 권면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거짓 리더는 악인과 적그리스도를 분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선민에게 존재하는 다양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이는 거짓 리더가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그들은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하나님 선민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할 수도 없다. 거짓 리더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든, 성령의 깨우침에서 나온 빛 비춤이 있는 말을 네가 전혀 들을 수 없으며, 그들에게 무슨 진리 실제가 있는지는 더더욱 보기 어렵다. 그래서 거짓 리더는 사람들의 생명 진입 측면에 아무런 이익과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한 그런 사역은 그저 글귀와 도리를 이야기하고, 구호를 좀 외치고, 형식적인 절차를 따르는 것일 뿐, 리더가 해야 하는 역할은 전혀 하지 못한다.
오늘 교제는 여기에서 마치겠다. 다음에 보자!
2021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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