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6)

그간 주요하게 덕행 측면의 다양한 말들이 지닌 본질을 교제하고 분석했다. 또한, 갖가지 말들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역시 분석했다. 이러한 덕행 측면의 갖가지 말들은 주로 중국 전통문화가 모두에게 끼친 크고 작은 영향을 보여 주는데, 그 영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번 예배에서 덕행 측면의 어떤 말들을 교제하고 폭로했느냐? (지난번에 하나님께서 “군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다.”라는 말을 교제하고 폭로하셨습니다.) 덕행 측면의 말을 교제할 때 전반적인 환경의 문제를 언급했었다. 시대와 사회의 전반적인 환경, 그리고 각국의 정치 판도가 얼마나 달라지든, 전통문화 속 덕행 측면의 온갖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이용해 인류를 패괴시키고, 사람의 사상과 덕행 면에서 패괴시키고, 마음 깊은 곳까지 패괴시키는 사탄의 행각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전통문화의 폐해가 인류에게 끼치는 영향은 결코 시대가 변하고 생활 환경이 변한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이 전통문화의 갖가지 말들을 인용하고 전파하며, 전통문화를 국학과 고전으로 떠받든다. 이를 통해 사탄이 이미 덕행 측면의 온갖 말들을 모두의 마음속에 깊숙이 심어 사람들을 깊이 패괴시켰음을 알 수 있다. 사탄은 왜 사람을 패괴시키느냐?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냐? 사람을 겨냥한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을 겨냥한 것이냐? (하나님을 겨냥한 것입니다.) 사탄의 본질을 인식하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근본적 이유와 그 과정을 인식하려면 이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사탄에 의해 패괴되느냐?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어째서 하나님을 적대하는 요소가 있는 것이냐? 진리에 어긋나는 그것들이 어째서 생긴 것이냐? 사람은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건만 어째서 사람은 도리어 사탄처럼 온갖 방면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것이냐?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이냐?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던 내용들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지난번에 교제했던 내용들을 돌이켜 보고 되새겨 보아라. (우선 하나님께서 저희의 현재 상황을 교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는 해도 저희는 사탄이 주입한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 사상 관점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기에 언제 어디서든 사탄의 출구나 사탄의 심부름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왜 그런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으로 사람을 현혹하고 패괴시키는지 그 이유도 교제해 주셨습니다. 사탄이 패괴시키고 괴롭히는 대상은 사람이지만 사탄이 진정으로 겨냥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경륜을 무너뜨리고 망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최종적으로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은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면서 온전케 되고 하나님께 얻어지는 것을 방해하고 가로막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시고도 저지하지 않고 사탄을 봉사하는 존재이자 부각물로 이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사탄의 계략 위에 세워진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들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통문화의 갖가지 말들을 폭로하고 분석하여 사탄이 바로 그런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으로 사람을 현혹하고 패괴시킨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셨고, 저희에게 분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도리상으로만 그러한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이 부정적인 사물임을 깨달으면 끝인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사탄의 계략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하고, 그런 다음에는 자신과 대조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사탄에게 속한 사상 관점 중 어떤 것들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지, 일을 처리할 때 자기 속셈 안에 사탄의 어떤 계략이 포함되어 있는지, 자기가 어떤 사탄 성품을 드러내는지를 하나님 말씀 안에서 반성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이러면 도리상의 인식과 단순한 분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의 사상과 마음을 패괴시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과 사상 속에 주입된 사탄의 갖가지 사상 관점과 그릇된 주장, 황당한 이론 중 덕행 측면의 여러 말들은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를 대표하는 것들인데, 이는 중국 전통문화의 대표적인 전형이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사상 관점은 기본적으로 사탄의 사상과 본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본성을 대변한다. 사탄이 이러한 것들로 사람을 패괴시키면 최종적으로 어떠한 결과에 이르느냐? (사람이 하나님과 대립하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대립하게 되는 결과에 이른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느냐? (사탄의 출구이자 심부름꾼이 되며, 살아 있는 사탄이 됩니다.) 사람이 사탄의 출구가 되고 사탄의 화신이 된다. 패괴된 인류는 곧 사탄의 대변인이 된다. 패괴된 인류가 하는 말에 포함된 속셈과 목적, 사상 관점, 그리고 드러내는 패괴 성품은 사탄의 출구이고 사탄의 표출인 것이다. 이는 인류의 생존 법칙과 처신, 처세에 관련된 각종 사상 관점이 모두 사탄에게서 왔고 사탄의 본성 본질을 대변한다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한다. 또, 패괴된 인류는 살아 있는 그 자체로 사탄의 화신이요, 사탄의 후예이자 사탄의 부류임을 완벽하게 증명한다. 패괴된 인류가 살아가는 것은 곧 사탄이 살아가는 것이고 마귀가 살아가는 것이다. 사탄의 화신이 된 인류는 사탄을 대변한다. 사탄의 후예든 사탄의 화신이든, 아무튼 인류는 모두 사탄의 부류이다. 하나님 입장에서 이러한 인류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반하는 인류이고, 하나님의 원수이자 적대 세력이다. 이러한 인류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이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처음에 창조된 그 인류가 아니다. 인류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며 사탄의 패괴 성품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내적 상태와 양상으로 살아가는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때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느냐? 사탄이 사람을 최고로 깊고 심각하게 패괴시켜 완전히 사탄의 화신이자 출구로 만들었고, 사람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하나님과 대립각을 세운 것이 그 배경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시작했다. 이것이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실제 상황이고, 하나님이 말세에 진리를 선포하여 심판 사역을 함으로써 사람을 구원하는 실제 배경이다. 사람이 이러한 사실의 진상을 알면 어떤 이점이 있겠느냐? 한편으로는 사람의 본질과 사탄의 본질,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법, 사탄의 사악함을 인식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경륜의 근본 취지를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하면서 나타내는 하나님의 전능, 권병, 지혜, 능력을 인식하게 된다. 사탄의 본질과 사악함, 그리고 패괴된 인류의 본성 본질이 어떠한지 인식하는 것 외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본질을 인식하는 데에는 크게 하나님의 전능, 권병, 지혜, 능력을 인식하는 것이 포함된다. 방금 말한 몇 가지 측면에서 하나님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나님이 사역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배경을 보면, 구원 대상인 인류는 이미 갓 창조되었을 때의 인류가 아니라 사탄에게 수천 년 동안 패괴된 인류이다.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은 더 이상 백지상태가 아니며, 생각과 성품도 백지상태가 아니다. 진작에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되었다. 하나님이 구원하는 것은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고, 유혹당하고, 통제당하고, 농락당하고, 유린당한 피조물이다. 이런 지음 받은 인류에게서 그들 안에 있는 사탄의 것, 사탄의 성품을 제거하거나 변화시키기란 사람의 눈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로 보일 것이며, 더 나아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보기에 사람의 사상 관점을 바꾸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사탄의 것들을 정결케 하고,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강산은 쉽게 변해도 본성은 바뀌기 어렵다.”라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러한 지음 받은 인류를 상대로 그들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사역하면서 그 어떤 이적과 기사도 나타내지 않고, 하나님의 진짜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도 않으며, 사람 눈에 권병과 위력이 있어 보이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즉, 말세에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을 구원할 때는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고, 실제와 현실에서 벗어난 일을 하거나 육신의 인성을 뛰어넘는 행사를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렇게 초자연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대신 말씀으로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말씀으로 사람을 폭로하며, 말씀으로 사람의 패괴를 정결케 한다. 오로지 말씀으로 이러한 사역을 하기 때문에 사람 눈에는 더욱더 성공할 수 없는 일로 보이고, 심지어 대다수 사람들의 눈에 이는 말장난으로 보인다. 사람은 하나님이 오로지 말씀으로, 방식과 각도 그리고 내용을 다양하게 한 말씀으로 사람에게 공급하여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탄은, 이는 하나님이라면 완전히 이룰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더더욱 믿지 않고, 하나님에게 그 일을 이루어 낼 능력, 권병, 지혜가 있음을 더더욱 믿지 않는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이 말씀하고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지음 받은 인류가 보기에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까지는 “하나님은 말씀하면 반드시 책임지고, 책임지는 이상 반드시 이루며,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영원까지 지속된다.”라는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서 이루어졌다. 즉,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사실을 미리 체험해 본 것이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방식을 보면 오로지 말씀으로 공급하고, 양육하고, 폭로하고, 형벌하고, 심판하고, 채찍질하고, 경고하고, 일깨우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말씀의 단순한 의미와는 다른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는 기본적인 말 이외에, 사람이 더욱 잘 볼 수 있고 사실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생명이 있고, 하나님 말씀이 곧 생명이며, 그것은 패괴된 인류의 생활을 위해 공급하고 패괴된 인류가 생명 측면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공급한다는 점이다. 능력과 권병 면에서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생존 현황, 사상 관점, 이미 사탄에게 깊이 패괴된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이 선택하는 길과 인생의 방향, 인간의 인생관과 가치관까지도 바꿀 수 있다. 네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네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만 있다면, 더 나아가 네가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네 자질이 어떻든, 네가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이고 추구하려는 의지가 강하든 약하든, 네 믿음의 크기가 어느 정도이든, 하나님 말씀이 반드시 너라는 사람을 바꾸고 네 인생관과 가치관, 네 사상,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네 관점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네 생명 성품을 변화시킬 것이다. 자질이 부족하고 진리를 추구할 의지가 없거나 심지어 진리를 추구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어쨌든 하나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면, 그의 잠재의식 속에는 사탄과 세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비롯되는 올바른 관점과 견해를 어느 정도 갖게 된다. 또한 긍정적인 사물,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진리 원칙과 인생의 올바른 방향 및 목표에 대한 동경과 갈망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이 사람이 바란 것이든 아니든, 사람의 관념에 맞는 것이든 아니든, 하나님의 요구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든 아니든 사람을 대상으로 이룬 그 모든 성과와 그 모든 현상은 하나님 말씀이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점은 그 어떤 세력도 하나님 말씀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에는 권병이 있고, 게다가 하나님 말씀의 권병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이론, 철학, 지식, 논조, 사상 관점으로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에 권병이 있다는 것의 실제적 의미이다. 이 점은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이미 뚜렷이 드러났다. 하나님 말씀에는 권병이 있으며,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사탄이 사람 마음속 깊은 곳에 심어 놓은 패괴 성품을 정결케 하고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다. 물론, 또 한 가지는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 곳곳에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난다. 하나님 말씀의 행간에서만이 아니라 말씀의 방식, 내용, 말씀할 때 서는 각도, 심지어는 말씀의 어투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지혜는 어떤 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느냐? 우선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이 말씀하는 다양한 방식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갖가지 사역의 방식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타나는 한편, 하나님의 사역에서도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이 닥치는 각각의 환경과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깊이 느낄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은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알맞은 공급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너를 도와줄 수 있고 너를 붙들어 주고 너에게 공급해 줄 수 있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너를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네가 다시는 연약해지지 않도록 굳세지게 하고, 언제 어디서나 너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바꾸어 스스로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사탄에게 속한 것들을 내려놓게 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린 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요구와 말씀에 따라 행하고 실행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한 측면이다. 그 밖에,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사역하는 방식 또한 아주 다양하다. 때로는 은혜를 베풀고, 때로는 빛 비춤과 계시를 준다. 물론 채찍질과 징계라는 방식으로 사람을 뉘우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속 깊이 가책을 느끼게 하고, 진실로 하나님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통회하고 회개하게 함으로써 손으로 행하는 악을 내려놓게 만들고, 더 이상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자기 뜻과 사탄을 따르지 않고 대신 하나님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서 실행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에게서 이루어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령의 역사가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인데, 성령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역사한다. 물론 성령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든, 개개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두 다양한 방식의 성령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성령 역사, 하나님의 사역은 그 방식이 다양하든 아니면 여럿 중 한 가지 방식이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역이 언제 어디서나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그것을 필요로 함을 느끼게 한다. 성령은 언제 어디서나 역사할 수 있고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는데, 공간, 지리,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 규칙을 어지럽히지도 않고, 사람의 마음을 교란하지도 않는다. 더욱이 하나님이 인류에게 정해 준 그 어떤 법칙도 파괴하지 않는다. 이렇게 조용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역사하여 한편으로는 말씀으로 명확하게 알려 주고, 가르치고, 깨우쳐 주고, 인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에게 역사하여 사람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말씀의 공급하에 살게 한다. 당연히 하나님의 사역과 성령의 역사에 따라 사람의 성품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되고 생각이 바뀌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믿음도 점차 커진다. 사람에게서 이 모든 결실이 맺어지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자 하나님 사역의 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역하여 사람을 이끌고 공급하는데, 누구든 이를 누릴 권리와 기회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지금보다 열 배, 스무 배, 심지어 백 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더라도 하나님은 똑같이 그들을 돌볼 수 있고, 그러한 사역을 해낼 수 있으며, 얻게 되는 결실도 언제나 같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각 방면의 진리를 모두 선포하여 온 인류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준다. 하나님은 각기 다른 시기와 환경에 놓인 사람에게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사역 방식으로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인도하고, 개개인에게서 각기 다른 결실을 본다. 설령 네가 지금 ‘나는 하나님의 사역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아직도 연약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크지 않은걸.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지도 않았고. 지금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도 여전히 예전처럼 뜨뜻미지근한 것 같아. 난 별로 성장하지 못한 느낌이야.’라고 생각할지라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네가 얼마나 연약하든, 설사 너 스스로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하려면 한참 멀었다고 느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역이 이미 네 마음을 사로잡았다. 네가 진리 추구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구원받는 것의 의미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와 하나님 말씀의 내용이 네게 희망을 주었고, 네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사실에 대한 기대가 있다. 지금 네 믿음의 크기가 얼마나 되든, 지금 네 분량이 어떻든, 네가 기대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느냐? 인류에게는 하나님 말씀이 필요하고, 하나님 말씀은 인류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준다. 하나님 말씀이 이미 네 마음을 사로잡았고, 너는 부지불식간에 어느 정도는 하나님 말씀을 마음 깊숙이 받아들였다. 물론 이 사실은 진리에 크게 관심이 없고, 하나님이 하는 사역과 구원받는 일에 대해 아직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 얻는 결실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 혹은 징후로 볼 때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는 하나님의 능력, 권병, 지혜가 가득 담겨 있다. 이는 다른 하나의 일을 더더욱 실증한다. 즉,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에 햇빛, 물, 공기는 없어도 될지라도 하나님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공급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 공급, 목양, 그리고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진리만이 인간에게 희망과 광명을 가져다주고 살아갈 목표와 방향을 알려 줄 수 있다. 사람은 이를 모두 보았다. 사탄이 덕행 측면에서 인류를 패괴시키고 있는 실태를 폭로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역사하여 사람을 구원하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이루어지는지 그 실황과 실태를 아는 것 외에도,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인식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 권병, 지혜를 알아야 한다.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에 있어 하나님은 사탄이 인간을 패괴시키기 시작한 초기에 인류를 구원하고자 서두르지 않았다. 4천 년 전이나 6천 년 전에 인류를 구원하고자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순서대로 차근차근 행했다. 인간이 뱀에게 유혹당하고,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죄악이 심각해졌고, 세상이 홍수로 멸해졌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인류를 인도했다. 사탄이 사람을 점점 더 깊이 패괴시키는 과정에서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했다. 그리고 말세에 이르러 인류가 사탄에 의해 만신창이로 패괴되어 완전히 사탄을 대변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정식으로, 또 공개적으로 인류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그의 마음의 소리를 선포하고, 갖가지 사람, 일, 사물을 대하는 그의 관점과 태도를 선포하고, 인류가 필요로 하는 모든 진리를 선포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정식으로 인류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인류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모든 진리를 공급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바로 인류가 이미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사람의 눈에는 구제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왔다. 하나님은 와서 말씀하고 사역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다니고 그가 선포하고자 하는 말씀을 선포하는 동시에 오직 말씀의 공급만으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사실을 행한다. 창조된 인류 중에는 감히 이 일에 도전하려는 비교적 능력 있는 이가 없다. 사람이 보기에 이는 상당히 어려운 일, 실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의 6천 년 경륜 중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루는 사역을 펼쳤다. 이는 규모가 거대하고 유례가 없는 일이며, 더 나아가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이자 오래 걸리는 일이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말을 하든, 그 내용이 무엇이고 본질이 무엇이든, 자기가 말로 달성하겠다고 한 사실을 그대로 성취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이룰 수 있고,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이 생각으로 계획한 것에 따라 성취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권병이기도 하다. 이것이 사람이 응당 알아야 할 것이 맞지 않느냐? (맞습니다.) 이를 아는 것이 어떤 의의를 가지느냐? 누구든 말해 보아라. (우선은 하나님의 사역에 담긴 지혜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생각도 없고 사탄에게 패괴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사역을 하시는 게 아니라 사탄을 이용해 봉사하게 하면서 사탄에게 깊이 패괴된 사람들에게 구원 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역이 사람 눈에는 어려워 보이겠지만, 하나님 말씀은 사람에게서 확실히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그 밖에, 저희는 평소 체험 과정에서 자주 패괴 성품에 얽매이고, 어쩔 수 없이 패괴를 드러내고,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때로는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거나 심지어 믿음을 잃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제를 듣고 나니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패괴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패괴 성품은 변화될 수 없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본질적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의 패괴 성품은 변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완벽하게 적절하고 정확한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이루고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하나님 말씀의 결실이 하나 있다. 바로 만물은 전부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권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병과 지혜, 하나님 말씀에서 드러나는 능력을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 본질, 성품을 대변하기에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수 있다. 이 말이 사람에게 무엇을 알려 주느냐? 바로 하나님 말씀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준다. 네가 무엇을 얻든 그것은 보배가 아니다. 금덩이를 얻든, 세상의 드물고 기이한 보물을 얻든 전부 보배가 아니다. 네가 장생불로의 약을 얻는다 해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 네가 도를 닦는 데 성공하여 하늘을 날게 된다고 해도 영원히 산다는 법은 없다. 너는 피조물이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하에 있으며 누구도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만물은 전부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 사람이 이를 알면 무슨 쓸모가 있느냐?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평함과 공의로움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말에, 이 사실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의 공평함과 공의로움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한다면 이 말에 깊은 관심이 생겨서 이 사실을,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길 것이다. 어떤 말씀이었느냐? 만물은 전부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 너희는 이 말을 가슴에 품고 틈날 때마다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이는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이다. 너희는 이 말에서 무엇을 얻었느냐? 말해 보아라. (하나님, 저는 한 가지를 이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은 전부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사람이 변화한 외부 환경을 맞닥뜨리게 되면 사람의 내적 상태가 변하고 하나님을 따르려는 의지도 변하여 불가피하게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해 주신 이 말씀을 떠올리면, 하나님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이 되는 자들을 얻겠노라 저희에게 약속하신 것을 떠올리면, 마음에 힘과 믿음이 생겨나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따르며 본분을 이행할 자신이 생깁니다.) 이 말씀은 너희에게 실행 길을 알려 준다. 어떠한 실행 길이냐? 물질세계의 그 무엇도 추구하지도, 보배처럼 아끼지도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헛되다. 명리와 지위, 눈앞에 있는 물질적 향락, 여자의 예쁜 얼굴, 남자의 신분과 지위 등등, 이 모든 것은 잠깐일 뿐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것들을 보배처럼 아껴 봤자 아무 쓸모도 없다. 쓸모가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이러한 것들은 네 육의 일시적 필요, 기호, 욕망 혹은 기분, 감정 등등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뿐, 네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네 마음이 목마르고 공허할 때, 물질세계의 그 무엇도 네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며 네 마음 깊은 곳의 공허함을 채워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그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너를 만족시키고 네 마음 깊은 곳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깨달으면 네 마음 깊은 곳이 충실해지고,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만족스럽고 든든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쭉 추구해 나가 하나님 말씀이 네 생명이 되면 누구도 네 생명을 앗아 가거나 파괴하지 못한다. 생명을 누구도 앗아 가거나 파괴하지 못하면 너는 무엇을 느끼겠느냐? 더 이상 공허하지 않고,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는 막막하거나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네 안에 하나님 말씀이 내주하고 있으며, 하나님 말씀이 너를 인도하고, 너에게 공급하여 네가 목표와 방향성을 가지고 살게 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사는 데에 의의가 있고 가치가 있다. 이것이 사람이 실제로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실제로 느끼는 이 긍정적인 결실은 어떻게 거두어지는 것이냐?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여 하나님 말씀으로 사람에게서 결실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렇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이 되게 한 후 사람에게서 이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변화하고, 삶의 방식이 변화하고,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방식 및 방법이 달라지고, 따라서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달라진다. 더는 육적인 향락, 물질적 대우, 명리, 지위를 추구하지 않게 된다. 육체가 좋아하는 것들을 추구해 봤자 갈수록 흥미가 식고, 공허해지고, 불안해지고, 고통스러워질 따름이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이 사람의 마음을 점유한 뒤에는 사람 내면에 진리가 생명이 되고 사람 안의 본질과 생명이 바뀌어 사람이 받는 느낌이 달라진다. 사람의 감정, 기호, 희로애락, 인생 목표, 추구 방향, 생존 법칙이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바뀌고,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아 가기를 추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부패, 사망, 파멸에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을 얻는다. 이 생명은 부패하지 않는다.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이러한 생명이 사람 안에서 사라지지도, 물러나지도, 퇴색되지도, 변질되지도 않으며, 사람이 이전처럼 파멸에 직면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이러면 사람의 현재 생존 상태와 생존의 전망이 바뀌는 것 아니겠느냐? 아주 분명하게도 사람 생존의 전망에 변화가 생긴다. 사람의 생명이 퇴색되고, 시들고, 부패하고, 생명에 끝이 있고, 파멸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생명이 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100년을 살든 200년, 300년을 살든, 아니면 1,000년을 살든 사람의 생존 법칙과 생존관, 생존의 의의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이 이렇게 생존하는 것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냐? 전적으로 육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다. 사람의 육은 무엇을 추구하느냐? 금전, 명리, 물질적 향락과 같은 것을 추구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기에 이것들은 정확히 진리에 위배되는 것들이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사람이 이러한 것들 즐기기를 추구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해 주는 데에는 기한이 있다. 사람의 일생은 60~70년 혹은 80~90년이면 끝나고 끝에 다다를 때마다 새로이 윤회하는데, 그러면서 사람의 수명이 생기게 된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기한을 정해 두지 않았다면 사람은 너무 긴 시간을 살아가느라 자기도 지겨워지지 않겠느냐? 20대 때는 하루하루가 신선하고, 아름답고, 행복하다. 40대가 되면 매일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잠자리에 드는 삶이 지루해진다. 60대가 되면 무엇이나 간파한 것 같고, 누릴 것도 어느 정도 누려 보고 고생도 어느 정도 해 보아서 아무것도 재미가 없다. 매일 해가 뜨면 움직이고 해가 지면 쉰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지나간다. 신체의 각종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20대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쯤 되면 끝이 코앞이다. 그러나 사람의 끝이 다가온다고 해서 영혼이 끝날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 육체의 끝이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60~70살, 70~80살이면 수명이 다한다. 아무리 길어 봐야 100살 조금 넘게 사는 것이 고작이다. “장수한 노인이 목을 맨다. 사는 게 지겨운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나이를 너무 많이 먹으면 삶이 귀찮아지고 살기가 싫어진다. 재미가 없는 것이다. 왜 재미가 없겠느냐? 실상은 이렇다. 그러니까 사람은 육으로 살며 하루 세끼를 먹고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겪는다. 매일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이 생활한다. 사람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이러한 것을 간파하게 된다. 볼 것도 다 봤고, 해 볼 것도 다 해 봤고, 체험할 것도 다 체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생이란 게 그저 이렇고, 그 어떤 희망도 기대도 더는 없고, 사람이 산다는 건 공허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삶의 끝이 다가온다. 이렇지 않으냐? (맞습니다.) 바로 이러하다.

조금 전에 “만물은 전부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라는 말을 언급했다. 이 말이 사람에게 알려 주는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 말씀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에게 실행 목표와 방향을 알려 주고, 무엇을 추구하든 그것은 사람이 얻는 하나님 말씀 한마디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준다. 모든 것은 전부 없어지고, 무엇이든 시간이 가면서 퇴색되고, 시들고, 흐릿해지지만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약 네가 하나님 말씀을 얻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했다면,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했다면 너는 하나님 말씀으로 말미암아, 진리로 말미암아 가치를 지니게 되며 네 본질이 이전과 달라진다. “본질이 바뀐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그저 보통 다른 것이 아니라 아주 크게 다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됨으로써 너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없어지지 않게 되고,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을 가지며, 영원한 훗날, 미래, 종착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일을 볼 때 하나님 말씀이 사람에게 중요하냐, 중요하지 않으냐? (중요합니다.) 너무나도 중요하다! 하나님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에는 어떻게 추구해야겠느냐? 무엇을 추구해야 가치가 있고 의의가 있겠느냐? 본분을 이행할 때 힘을 많이 들이는 것, 많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 아니면 기술을 많이 배우는 것 혹은 도리를 많이 갖추고 설교를 많이 하는 것이냐? (전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유용하겠느냐? 너희는 마음으로 알고 있다. 거울처럼 선명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 얻기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다. “만물은 전부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라는 말을 가슴에 품어야 한다. 언제나 이 말을 잊지 말고 버리지 마라. 네가 소극적이 되거나 연약해질 때, 네게 희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 곤경을 맞닥뜨렸을 때, 네가 교체됐을 때, 네게 책망과 훈계가 임했을 때, 좌절과 실패를 마주했을 때, 지탄받고 정죄당할 때 혹은 네가 득의양양할 때, 모든 방면에서 사람들이 너를 우러러보고 떠받들 때 등등, 어떤 때에도, 어떤 배경 속에서도 너는 이 말을 떠올리고 이 말이 너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오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에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구하고, 하나님 말씀의 도움으로 곤경에서 벗어나고, 네 어려움과 네 마음 깊은 곳의 곤혹스러움을 해결하고,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고, 네 과오와 강퍅함, 패역 등등도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이 네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해야 한다. 이 말은 너희에게 너무나도 유용하다! 네가 자기 책임과 본분이 무엇인지 잊고, 자기가 준수해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잊고, 자기가 서야 할 입장과 각도, 자기 신분과 지위를 잊었을 때 이 말을 떠올려라. 이 말씀이 너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올 것이며, 너를 하나님 말씀에 진입시키고, 그 순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이끌어 주고, 네가 올바른 입장, 관점, 각도에서 자신과 타인, 눈앞에 닥친 일과 환경을 바라볼 수 있게 이끌어 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인도하에,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깨우침, 도움하에 그 어떤 문제도 너를 곤란하게 하지 못할 것이요, 그 어떤 문제도 네 진리 추구를 가로막거나 앞으로 향하는 네 발걸음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실행 길 아니겠느냐? (맞습니다.) 너희가 지금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공과는 일이 닥쳤을 때 투덜거리고, 불평하고, 규례를 지키거나 사람의 방식과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와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 말씀이 너에게 공급하게 하고 네 모든 곤란을 해결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가 배워야 할 공과이다. 사탄이 사람을 깊게 패괴시킨 배경 속에서 하나님이 경륜 중 가장 중요한 사역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주제는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결국 여전히 하나님 말씀으로 귀결된다. 무엇을 교제하든 결국 사람이 글귀와 도리를 읊을 수 있음에 만족하거나 매일 하는 신학 이론 공부 혹은 종교 의식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 진입에 있어 가장 시급한 공과이다.

이어서 덕행에 관련된 여러 말들의 다른 측면의 실제적 문제를 교제하겠다. 앞서 덕행 측면의 여러 말들을 교제하면서 기본적으로 중국 전통문화를 대표로 삼아 패괴된 인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사탄에게 속한 각종 말들을 폭로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 덕행에 관한 말들이 중국 전통문화를 대표로 한 거라면 중국인이 아닌 저희는 하나님이 교제하시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요?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키는 갖가지 덕행 측면의 말들을 굳이 알 필요 없는 거 아니에요?” 이 말이 옳은 말이냐? (아닙니다.) 이는 명백히 틀린 말이다.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키는 데에는 인종이나 시기의 구분이 없다. 사탄은 인종과 시기, 종교적 배경을 나누지 않고 인류를 패괴시킨다. 그러므로 만약 네가 중국인 중 한 명이라면 한족이든 몽골족, 회족, 묘족, 이족 등의 소수민족이든, 예외 없이 사탄에게서 비롯된 각종 덕행에 관한 말을 주입받고 거기에 물들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너 역시 어김없이 생각 측면에서 사탄에게 패괴되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너의 생각과 영혼 깊은 곳, 마음 깊은 곳도 마찬가지로 사탄에 의해 깊게 패괴되고 가공된 것이다. 네가 중국인이 아니라 일본인, 한국인, 독일인 혹은 또 다른 나라 사람이어도, 네가 아시아 출신이든, 유럽 출신이든, 아프리카 출신이든, 아메리카 출신이든, 네 피부가 노랗든, 검든, 갈색이든, 하얀색이든, 네가 어느 민족과 인종에 속하든 창조된 인간이기만 하면 예외 없이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되었다. 너는 사탄의 패괴 성품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어김없이 사탄의 사상 관점을 주입받았을 것이며, 마음도 당연히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되었을 것이다. 사탄은 똑같은 것들을 사람에게 주입했는데, 국가와 인종에 따라 그 방식을 달리했을 뿐이다. 그것들을 표현하는 말이 다 똑같지는 않고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사람을 패괴시킨 결과는 모두 같다.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다. 하나같이 행위로 겉을 위장하게 만들고, 얼핏 그럴싸하지만 실제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는 부도덕하고 비인간적인 말로 사람에게 품성상 취해야 할 태도와 행동 방식을 요구하고, 처신과 특정 일 처리를 어떤 식으로 하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말들은 설사 서로 조금씩 다르고, 서로 다른 시기에 생겨났거나 다른 구석, 다른 지역, 다른 권역에서 유래되었고, 서로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을지라도 마지막에 도달하는 결과는 똑같다. 바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통제하고, 속박하고, 사람의 생각에 사탄 독소와 사탄의 본성 본질을 지닌 관점, 관념을 잔뜩 주입함으로써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 역시 사탄의 관점과 사탄의 사악한 본질 및 사악한 관념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인류는 어떤 민족, 인종, 부족이든 어느 시기의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두 똑같이 사탄에게 현혹되었고, 유린당했고, 생각과 마음 깊은 곳이 저마다 다른 정도로 패괴되었다. 결론적으로 사탄이 패괴시키는 대상이 어느 구석, 어느 인종, 어느 시기의 사람이든 도달한 결과는 하나같이 인류를 영락없는 사탄의 후예, 사탄의 출구, 사탄의 화신으로 만들고, 사탄임이 틀림없으며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살아 있는 크고 작은 사탄으로 만든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인류는 영락없는 하나님의 원수이자 대립 면이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 설교를 듣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그 수가 얼마나 되든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다. 전 인류가 악한 자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다. 이 말을 해석하자면 전 인류가 사탄에게 깊이 패괴된 동시에 모두의 생각과 마음 역시 완전히 사탄에게 통제되고, 속박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리 고귀한 민족이어도, 아무리 강대한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이어도 예외 없이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었고, 깊이 조종당했고 통제당했고 속박당했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인류 중 한 사람이기만 하면, 햇빛 아래에서 살고 있기만 하면, 공기와 물을 마시고 양식을 먹는 인간이기만 하면 불가피하게 사탄에게 패괴되었을 것이며, 생각, 마음, 성품, 본질도 어김없이 사탄에 의한 패괴를 겪었을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네가 창조된 인간이기만 하면, 사탄에게 패괴되기만 했으면 너는 하나님의 원수이다. 네가 사탄에게 패괴되기만 했으면, 네가 일찍이 혹은 이미 사탄에게 통제당하고 속박당했다면 너는 하나님의 구원 대상이다.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네가 사람이고 사탄에게 패괴되었으면 너는 어김없이 사탄의 성품과 생각을 가졌을 것이며, 사탄 독소로 가득 차고 사탄 독소에 점령당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에게서 비롯된 각종 사상 관점과 덕행 측면의 여러 말들을 인식하고 분별하는 것은 비단 중국인만의 임무나 전매특허가 아니라 하나님이 택한 모든 하나님 선민이 반드시 배워야 할 공과이자 진입해야 할 실제이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사탄에게서 비롯된 각종 그릇되고 터무니없으며 사악한 사상 관점을 인식하고 분별해야 한다. 네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거나 지위 높은 집안 출신이라고 해서 우월감을 느끼고 자기는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기는 신분이 존귀하기에 영혼도 고귀하다는 인식은 치우친 것이다. 혹시 네가 고귀한 혈통을 가졌고 자기 피부색이 존귀한 신분, 지위, 사회적 위치를 대변한다고 해서 자기 본질, 생각, 마음이 그 누구보다도 고귀하고 고상하다고 착각한다면, 나는 네 인식이 어리석고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하겠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인류에는 국적, 인종, 종교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네가 어떤 사회적 배경 혹은 종교적 배경 속에서 살고 있든, 네가 어떤 인종 가운데서 태어났든, 네 사회적 지위가 미천하든 고귀하든, 사람들 사이에서 네가 얼마나 명망이 있든, 이러한 것 등은 전부 네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핑계가 될 수 없고, 네가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핑계가 될 수도 없다. 네가 사람이기만 하면, 너라는 ‘사람’ 앞에는 반드시 ‘패괴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마땅하다. 인간인 이상 너는 틀림없이 패괴된 인간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 나아가 네가 패괴된 인간이라면 네 천연적인 생각과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것들은 전부 사탄에게서 왔으며, 전부 다 사탄에 의해 심각하게 가공되고 패괴된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너는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너라는 사람은 천성적으로 진리와 관련된 것, 하나님 말씀이나 하나님의 생명과 관련된 것을 무엇 하나 갖고 있지 않다. 반면 사탄에게 현혹되고 패괴되고 통제당했다. 네 마음은 사탄의 사상, 철학, 논리, 생존 법칙으로 가득하다. 네 마음에 있는 것들은 전부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이 사실은 사람에게 무엇을 알려 주느냐? 누구든 그 어떤 핑계로도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 말씀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너는 패괴된 인간이니 반드시 그 어떤 선택도 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너의 책임이자 네게 필요한 일이다. 만약 누군가가 부강한 나라에서 태어났다거나 우월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산다거나 명문가 출신이라거나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이유로 자기는 남들과 다르고 여타 하나님 선민보다 고귀하다는 생각에 빠져 모든 하나님 선민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면, 이러한 생각은 황당무계하며 어리석은 것이다. 심지어 어리석어도 보통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네 신분, 지위, 사회적 위치에 어떠한 특수성이 있든, 네 신분과 지위 그리고 사회적 배경이 보통 사람보다 얼마나 대단하든 하나님 앞에서 너는 언제까지나 하나의 피조물일 뿐이다. 하나님은 네가 어디에서 왔고 네 출생 배경이 어떤지 보지 않으며, 네 국적, 인종, 네가 사회와 세상에서 가진 위치, 명망 혹은 업적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저 네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지,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는지,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할 수 있는지 볼 뿐이다. 만약 네가 정말로 자신을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있는 평범한 피조물 중 하나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모든 사회적 배경, 인종적 배경, 국가적 배경 혹은 종교적 배경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으로 와서 평범한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그 어떤 이름표도 배경도 없이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네 신분과 지위가 올바르게 된다. 이렇게 올바른 신분과 지위를 지닌 채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려면 우선적으로 사람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또한 사람의 본질이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었고 사람의 생각과 마음 깊은 곳에 가득 차 그곳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 전부 사탄으로부터 온 것들이라는 점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왕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받아들여 생명으로 삼기로 했다면 사람은 우선 자기 생각과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과 진리와 적대되는 것들 전부를 파헤치고,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이것들을 똑똑히 인식하고, 명확히 알고, 완벽히 분석해야만 적당한 시기, 적당한 환경에서 이것을 버림으로써 자기 마음 깊은 곳을 철저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사탄에게 속한 것들을 모두 없애고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전부 받아들이면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각도, 관점, 입장이 철저히 바뀌어야만 진정으로, 정확하게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사람과 일을 바라볼 수 있다. 이러면 불순물이 없어지고 상대적으로 순결해진다. 아직은 사람이 여기에 이르지 못했다. 속으로 진리를 조금은 깨달았지만 여전히 각종 황당무계한 관점과 터무니없고 잘못된 것들이 섞여 있다.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절반만 받아들이고 절반은 거부한다. 선택적으로 약간만 받아들이고, 제각기 다른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탄의 사상과 논리, 그리고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겉만 그럴듯한 것들을 위해 항상 마음에 여지를 남겨 두고 항상 그것들을 마음에 간직해 둔다. 그것들은 사람의 내면에서 사람의 생각, 판단력,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각도와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면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정도에도 큰 영향이 있게 된다.

사탄은 전통문화가 사람에게 주입한 갖가지 덕행에 관한 말을 이용해 인류를 광범위하게 패괴시키고 현혹한다. 비단 중국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 세상 모든 구석구석, 모든 시기를 총망라한다. 대대로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을 통제하며, 서로 다른 인종, 국적,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을 통제하고 있다. 이 점을 인식하면 전통문화 앞에 붙는 수식어가 중국만이 아니게 된다. 어느 나라, 어느 인종의 전통문화든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며, 하나같이 사탄의 패괴로 인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전통문화, 한국 전통문화, 인도 전통문화, 필리핀 전통문화, 베트남 전통문화, 아프리카 전통문화, 백인 전통문화, 그리고 유대교 전통문화, 기독교 전통문화, 천주교 전통문화 등 종교에서 생겨난 전통문화까지, 이것들은 전부 진리에 위배되며,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관점, 입장, 각도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 깊은 곳에 낙인처럼 진하게 새겨져 있다. 그것은 사람의 생활과 생존 법칙을 좌우하고, 사람의 인생길과 처신 방향 및 목표를 좌우하며, 더 나아가 사람의 추구 목표마저 좌우한다. 그것은 사람이 긍정적인 사물, 하나님 말씀, 진리,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심각하게 교란하고 영향을 끼친다.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입장과 관점에도 심각하게 영향을 끼치고 교란하는 것은 물론이다.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데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어떠한 결과를 부르느냐? (사람이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됩니다.) 그렇다. 최종적으로는 사람의 구원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 이 결과가 심각하냐, 심각하지 않으냐? (심각합니다.) 너무나도 심각한 결과이다! 한 사람이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고, 어떤 관점으로 어떤 관념을 가지고 바라보는지는 사람의 패괴 성품, 그리고 생각 속에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따라서 정해진다. 사람의 생각 속에 긍정적인 것이 존재한다면 올바른 각도에서 사람과 일을 바라본다. 그러나 생각 속에 존재하는 것이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며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사람은 잘못되고 황당무계한 각도, 입장, 관점에서 사람과 일을 바라보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람이 걷는 길에도 영향을 미친다. 네가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입장, 관점, 각도가 잘못되었으면 네 추구 목표와 방향도 잘못되고, 네가 처신하며 걷는 길도 잘못된다. 이러한 잘못이 계속되다 보면 너는 구원받을 기회를 완전히 잃고 만다. 네가 잘못된 길을 걷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각도, 입장, 사상 관점이 올바르다면 거기에 따르는 결과 역시 올바를 것인데, 그것은 진리에 위배되지 않고 긍정적인 사물에 속한다. 사람이 진리에 부합하는 관점에서 사람과 일을 바라보면 올바른 길을 선택하게 되고 목표 방향 역시 올바르기에 결과적으로 구원받을 희망도 생긴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이 사탄에게 점령당하고 통제당한 탓에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각종 각도, 입장, 관점이 모조리 잘못되었고, 이에 따라 사람의 추구하는 바와 사람이 걷는 길도 잘못되었다. 예컨대 사람이 명리, 체면, 지위를 위해 사역하고 대가를 치른다면 이러한 길은 잘못된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겠느냐? 이러한 일을 대하는 각도, 관점, 출발점이 잘못되었기 때문 아니겠느냐? (맞습니다.) 바로 그래서 사람이 잘못된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쭉 잘못된 길을 걷는다면 최종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수 없다. 만약 네가 사탄에게서 주입받은 사상 관점 중 하나에 따라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한다면 네가 걷는 길은 반드시 멸망의 길일 것이며, 절대로 구원받는 길이 아닐 것이다. 그 길은 구원받는 길과는 정확히 반대되고 상충되기 때문이다. 잘못된 길을 계속 가다 보면 스스로 구원받을 기회를 망쳐 버린다. 기회가 완전히 없어져서 영영 구원받는 길을 가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네가 만약 올바른 관점으로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한다면 긍정적인 실행 원칙이 생겨나고 방법 또한 긍정적일 것이다. 출발점이 바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네가 걷는 길도 바를 것이다. 그러한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너는 반드시 구원받을 수 있다. 이 방면의 진리는 다소 깊어 너희 대부분이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방면으로는 체득한 것이 없고, 아직 이 방면의 진리 실제를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자기가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할 때 잘못된 관점을 근거로 하는지 올바른 관점을 근거로 하는지 아직 모르고, 여기까지는 아직 체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너희는 그저 일을 처리하고, 힘을 들이고, 공들이고, 대가를 치를 줄만 안다. 사람 마음 깊은 곳의 관점과 생각이 무엇의 영향을 받고 무엇에 의해 통제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성찰을 시작하기 전이다. 그래서 이 화제는 너희들에게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기에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조금 전에 덕행에 관한 말의 본질을 이야기했는데 그것이 관련되는 범위는 중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이른다. 인류 전체가 악한 자의 손아귀에 놓여 있고 사탄에게 깊게 패괴되었으며 사탄에게 통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사실 근거가 있다. 중국 사람들만 사탄에 의해 패괴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사탄에게 패괴되었고 모두가 악한 자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 인류가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었음은 사람의 눈에도 어느 정도 보이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동안 사탄이 덕행 측면의 갖가지 말들을 사람의 생각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현혹하고, 통제하고, 속박함으로써 사람을 패괴시키는 목적을 이루었으며, 이는 중국인에게만 국한된 사실이 아니라 인종, 국적, 민족이 서로 다른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내용을 교제했다. 인류는 누가 되었든 모두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었다. 어느 인종, 어느 민족에 속하는 사람이든 모두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되었다. 사탄이 전통문화를 통해 사람에게 주입한 갖가지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이나 분별하기 쉽지 않은 것들, 심지어 사람 눈에 비교적 긍정적이고 사람의 도덕관과 생각, 구미에 맞아 보이는 말들은 사실 전부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내용 중 하나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탄에 의해 이렇게 패괴되었다는 것이다. 민족, 인종,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지구상의 어느 곳, 어느 지역, 어느 대륙에서 태어났든 누구나 하나같이 생각과 마음이 사탄에게 깊이 현혹되었고, 사탄의 통제를 받으며, 패괴되었다. 네가 어디에서 어느 시기에 태어났든, 어느 민족 가운데서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든 어김없이 사탄에게서 주입받은 전통문화의 말들에 현혹되고 패괴된다. 그러니 중국 전통문화만을 분석한다고 해서 자기가 속한 나라와 민족은 사탄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거나 자기가 중국인보다 낫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자기가 중국인보다 존귀하고 고상하다는 우월감을 느껴서도 안 된다. 그러한 우월감은 네 착각이고 잘못된 것이자 황당무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어리석다고 할 수 있다. 패괴된 인류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을 거기에서 제외시키지 마라. 패괴된 인류 이야기가 나오면 네가 바로 그중 하나이다. 물론, 너를 패괴된 인간이라고 하는 한, 네 마음 깊은 곳은 사탄이 주입한, 전통문화가 주도하는 생각으로 가득할 것이다. 이는 논쟁의 여지 없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는다. 너희는 이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 의혹을 품지 마라. 이 화제에 대해서는 일단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지난번 교제의 주제는 “군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다.”였다. 이는 덕행 측면에서 사람을 패괴시키는 사탄의 말이다. 이러한 말을 제창하면 사람의 생각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 말은 다른 덕행 측면의 말들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그저 그 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그 사람의 품성이 고상하고 인격이 고귀하다고 여기는 것은 터무니없고 우스운 일이다. “군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다.”라는 말은 덕행 측면의 다른 말들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고 우스운,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이다. 하나같이 이렇게 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터무니없는 말, 검증을 이겨 내지 못하는 말들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오늘은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라는 덕행에 관한 말을 보겠다. 정식으로 교제하기에 앞서 너희는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이 말의 본질을 어떻게 분석해야 하겠느냐? 이 말 안에는 어떤 독소가 있느냐? 사탄이 이 말을 통해 사람에게 주입하려는 생각은 대체 무엇이겠느냐? 사탄의 음흉한 속셈은 무엇이겠느냐? 사탄은 이 말을 이용해 사람을 도대체 어떤 측면에서 패괴시키느냐? 너희는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라는 말을 간단히 해석하자면 악인과 어울리지 않고 순수함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다. 남들로부터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는다고 평가받든, 아니면 스스로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하든, 이들은 보통 어떤 사람들이냐? 본인은 청렴하고, 올곧고, 광명정대하며, 군자이자 품성이 고상하다고 뽐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시대, 이 세상, 이 인류, 더 나아가 이 나라와 이 정부, 이 관료 집단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하고 현실에 불만족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그들은 흔히 자기가 큰 뜻을 품었으나 때를 잘못 타고났으며, 재간은 있으나 펼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관료 단체에서든 사회에서든 소인배가 권력을 잡았고, 자기는 웅대한 계획을 가진 천리마이지만 자기 같은 인재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어서 늘 중용되지 못한다고 여긴다. 그들은 이러한 현실에 불만이어서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하며 자기는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한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함을 지키며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게 살겠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사람들은 툭 터놓고 말해 스스로 고결하다고 여기고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정말로 능력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고, 그들이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관점이 과연 올바르고 실제적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들이 과연 어떠한 실제적인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 역시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서 수시로 “혼탁한 세상에서 나 홀로 깨끗하고, 취한 이들 사이에서 나만 깨어 있구나.”라고 개탄한다. 흡사 속세에 달관한 것처럼 늘 인간 세상의 사악함과 어두운 면을 발견해 낸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하면서 정계, 상업계는 물론 문예계, 교육계 역시 못마땅하게 여기고, 지식인들의 추구 관점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농민이나 종교 신앙을 가진 이들을 깔본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별종이 아니냐? 다소 비정상이 아니냐? 그런 부류는 참다운 재능과 견실한 학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네가 정말로 실제적인 일을 맡길 경우 그는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그저 불평하기를 좋아해서 틈만 나면 정치, 정부, 사회,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집단의 사람을 폭로하는 글이나 시집을 내기 좋아할 뿐이다. 오늘은 이것을 규탄하고 내일은 저것을 비평한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일은 엉망진창으로 한다. 결국에는 어디서도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일을 해내지 못하며 자기 본업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나는 너무 대단한 재간을 가졌어. 보통 사람들은 내 생각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해!’라고 착각한다. 그는 울적하고, 번뇌가 많고, 억압당하는 기분이어서 괜히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유명한 산이나 유적이 있는 곳에 이를라치면 이렇게 부르짖는다. “하늘이 내 뛰어난 재능을 질투하는구나! 나는 천리마이건만 백락이 흔치 않은 것이 안타깝구나! 내게는 포부가 있으나 아쉽게도 때를 잘못 타고나 시운이 나쁘구나!” 그는 자기가 큰 포부와 뛰어난 재능과 학문을 갖추었는데도 두각을 나타내거나 통치자에게 중용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하고 가슴 가득 불평불만을 쌓아 둔다. 모든 사람을 깔보다가 결국에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가엾지 않으냐? 이러한 부류는 솔직히 말해 자기가 비범한 줄 알고, 혼자만 고결하다고 착각하고, 현실에 불만을 갖고, 자기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광인일 뿐이다. 이러한 부류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며,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공부를 조금 하면 끝없이 떠들어댄다. 옛날에는 이런 부류가 시나 짓고 글재주를 뽐내며 궁상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이러한 부류가 얼굴을 내밀 기회가 많아졌다. 1인 미디어도 있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등의 방법도 있다. 사회 제도가 비교적 자유로운 나라에서 이들은 걸핏하면 이런저런 업계의 어두운 면을 폭로한다. 예를 들자면 문예계, 상업계, 정계, 문화계의 그늘과 사악함 등등이 있다. 종일 이걸 비판했다가 저걸 깎아내렸다가 하면서 자기한테 대단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의 출발점은 자기는 무조건 뛰어나고, 무조건 옳고, 위대하며, 영예롭고, 정확하다는 생각이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자기는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함을 지켰으며,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무엇이든 간파하고 무엇이든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일을 처리하든 그는 불만이 많으며,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하든 깔보고, 얕보고, 할 말이 많고, 꼭 비판하고, 깎아내린다. 그는 자기가 사실 어떤 인간인지 알지 못한다. 어느 각도와 입장에서 말을 하는 것이 올바르고 정당한지 전혀 모른다. 그저 함부로 지껄이면서 말로 남을 이기려 들 줄이나 안다. 사회에 이러한 부류가 많지 않으냐? (많습니다.) 이들은 어떤 인간이냐?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기가 비범한 줄 알고 고결하다고 착각하는 광인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부류가 많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이러한 부류를 어떻게 형용하고 정의 내려야 하겠느냐? 이러한 부류는 이상주의자가 아니겠느냐? 정확히 말해서 그들은 이상주의자이다. 지금 이 현실의 생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머릿속은 온통 불확실하고, 허무하고,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뜬구름 잡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실체 없는 세계에서 산다. 이러한 부류를 이상주의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각도에서 남을 평가하는 것이겠느냐? 도덕적 우월성에 입각해서 평가한다. ‘나는 당신들의 사악하고 어두운 일면을 간파하고 폭로할 수 있어. 당신들이 저지른 나쁜 짓과 악한 짓을 폭로하면 나는 똑같은 부류가 아님이 증명돼.’ 이것이 바로 그들이 남을 평가하는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 속뜻은 ‘나는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은’ 사람이야. 사악한 풍조에 오염된 당신들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라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고결하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주제도 모르고 자기가 비범한 줄 아는 것이 아니겠느냐? 현실을 규탄하고,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고, 현실에 불만이 있다는 명목으로 은근슬쩍 자기를 높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류의 성질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겠느냐? 흔히들 이런 말을 한다. “뻔뻔한 인간은 많이 봤지만 이런 철면피는 처음이네.” 그들이 바로 이렇지 않으냐? (맞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철면피다. 입으로는 오로지 이러쿵저러쿵 잘잘못만 따지고, 눈으로는 오로지 남의 부족함과 허물만 살핀다. 교묘한 말재주로 남의 부족함과 허물을 전부 세상에 공표함으로써 자기 관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자기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얼마나 순수하며 얼마나 남다르고 고상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 준다. 사실상 그가 고상한 것이냐? 그가 남다르냐? 그는 남들과 다르지 않다. 남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놓고 명리를 추구한다면, 그는 허울 좋은 명목을 내세우면서 남을 폭로하고 규탄하는 것을 화제이자 발판으로 삼아 자기를 높이고 선전한다. 그리고 그 수법으로 이름을 알리고 한자리한다. 이 또한 명리 추구가 아니겠느냐? 목표는 다 같지 않으냐? 결과도 다 같지 않으냐? 단지 수법과 방식만 다를 뿐이다. 저속한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람을 욕하는 것이나 상스러운 표현을 쓰면서 욕하는 것이나 그 성질은 매한가지인 것처럼 말이다. 남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이름을 알리고 그는 자기 방식으로 이름을 알릴 뿐, 최종 결과나 속셈, 목적, 동기는 다 똑같으므로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사회에서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라며 자기 자랑을 하는 부류를 우리는 이상주의자로 정의했다. 이러한 부류의 특징은 자기가 대단히 고결한 줄 알고, 남들은 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며, 모두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당신들은 전부 진흙 구덩이에 빠져 있어. 전부 사악한 풍조에 빠져 있다고. 당신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는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은’ 존재야.’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는 자기가 비범한 줄 아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꼭 자기는 대단히 성결하고 깨끗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 같다. 사실 그는 남들 같은 기량과 수법이 없는 까닭에 항상 두각을 나타내기를 추구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고, 항상 이상적이고 허무맹랑한 것들을 추구하지만 만족을 얻거나 실현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현실을 직시하거나 자기 이상을 포기하는 것은 원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형식적으로 관료 집단, 정치권, 문예 영역, 문화계를 멀리하는 것이다. 그런 영역에서 자기는 먹히지 않고, 받아들여지지도 않으며, 뜻을 이룰 수 없고, 자기 이상과 포부를 펼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라며 허풍을 떤다. 자기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이고 품성이 고상한 사람이라는 말로 자기를 위로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제하면 너희도 그 부류의 사람들을 분별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 부류의 본질은 대체 무엇이냐?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자기가 비범한 줄 아는 자들이다. 이 평가가 정확하냐, 아니냐? (정확합니다.) 그 부류는 이상을 잔뜩 가지고 있지만 그중 실현할 수 있거나 현실에 부합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일들은 전부 공허하고 실제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종일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시를 짓거나 글을 써서 이것저것 비판하고 깎아내릴 줄이나 안다. 이는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 부류의 모습을 보면 그들의 본질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는 참다운 재능과 견실한 학식이 없고, 현실과 인생에 대한 그들의 사상 관점은 전부 다 공허하고, 막연하며, 실제적이지 않다. 그래서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라는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신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 말과 같은 사람이 되려고 경쟁하고, 이 말과 같은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이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다. 만약 이런 사람이 된다면 무슨 일을 해낼 수 있겠느냐? 정확히 말해서 이러한 부류에게는 진정한 인생 목표와 방향이 없고 진정한 신앙, 진정한 인생의 선택, 올바른 실행 길도 없다. 종일 실제와 동떨어져서 허튼 생각이나 한다. 뒤죽박죽이고 공허하며 실제와 맞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찬 머릿속에 실제적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이러한 부류는 사실 인간 중의 별종이다. 그들의 생각은 공허한 동시에 유난히 황당무계하고 극단적이다. 어느 집단에서든, 사회 상류층에서든 중류층에서든 아니면 하류층에서든, 그들은 항상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이유가 무엇이냐? 그들의 생각과 추구, 그들이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 유별나고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점잖게 말하자면 그들은 이상주의자이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머리가 정상이 아닌 정신병자이다. 한번 말해 보아라. 정신병자가 정상인과 어울릴 수 있겠느냐? 친구나 동료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과도 안 맞을 것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관점과 말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거북하고 싫다는 느낌을 받으며,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말들은 현실 생활에서 성립되지도 않고 통하지도 않는다. 현실 생활 속에서 사람이 맞닥뜨리는 각종 어려움에는 자신의 문제도 있고, 객관적 환경으로 인한 것도 있고, 그밖에 생활필수품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이러한 일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처리하고, 해결해야 하겠느냐? 작게는 생활필수품 마련과 같은 현실 생활 속의 어려움이고, 크게는 인생관, 사람의 생존 법칙, 사람이 걷는 길, 사람의 신앙에 관련된 것이다.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이상주의자들은 언제나 이러한 문제들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현실 생활 환경 속에서 살지 않으려고 한다. 그가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관점, 각도, 출발점은 이러한 현실적 문제에 근거하지 않으며 실제와 동떨어져 있다. 너는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것이다. 지구상의 사람은 들어 본 적도 없는, 외계인이나 할 법한 생각이라서 듣자마자 비정상이라는 느낌이 온다. 비정상적인 소리를 듣고 싶어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처음 들었을 때는 말을 꽤 신선하게 하는 사람인 것 같고 보통 사람보다 식견 있고 훌륭하다고 여겨질지 몰라도 계속 듣다 보면 전부 다 허튼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를 상대하지 않게 되고 본체만체하게 된다. 그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이러한 태도를 그가 느끼지 못하겠느냐? 시간이 흐르면서 그도 알게 되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다들 나를 싫어하잖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나를 싫어하는 거야? 하아, 천리마는 많지만 백락은 흔치 않지!’ 보아라. 그는 항상 자기가 비범한 줄 알고, 자기가 재간과 능력이 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느 집단에서든 최종적으로 그가 맞이하는 결과, 그의 말로는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것이다. 이는 그가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라는 말을 신봉하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만약 네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한 적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 주겠다. 당장 그만두어라. 그 부류의 인간들은 정상인이 아니다. 네 사고가 정상이고 네 인성과 이성이 정상이라면 네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을 추구하지 마라. 그러한 부류는 인간 말종이고 별종이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은’ 부류의 본질을 분석한 데 이어서 이 부류를 폭로할 때 언급했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세상의 불합리함에 대한 분노 문제를 다루어 보겠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사회의 어두운 면과 사악한 풍조를 간파하고 그것들을 따르지 말아야 해. 또, 정치, 인류의 사악함, 인류의 각종 기풍을 간파해야 하고 시기별로, 구석진 곳마다, 각각의 집단과 단체에 존재하는 어둡고 사악한 일들을 간파해야 해. 그래야 분별력이 생기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냐? 이 화제를 교제하기 전에는 너희 중 일부가 이런 것을 추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너에게 명확하게 알려 주겠다. 이는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니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도 아니다. 이 세상, 사회, 인류, 혹은 정계, 상업계, 문학계, 종교계, 또는 그 어떤 사회상의 기풍이나 어떤 사회단체와 세력의 활동 방식 등등, 이것들은 전부 네가 알 필요가 없는 것이고 네가 반드시 배워야 할 공과도 아니다. 너는 현실에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고 세속에 물들지 않은 채 순수함을 지킬 필요도 없다. 그것은 네가 견지해야 할 입장과 각도가 아니며 네가 가져야 할 관점도 아니다. 하나님은 너를 택하여 네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도록 했다. 네가 인류, 사회, 정치, 국가에 반대하거나 어떤 단체, 인종, 종교에 반대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단순하게 하나님을 따르고, 사탄을 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도를 준행함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네게 인류, 사회, 국가에 반대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네게 어떤 정부, 어떤 사회 제도 혹은 정치 제도, 어떤 구체적 정치 정책에 반대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너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류 전체가 우리를 버렸고 우리에게 반대하고 우리를 박해하는데 우리가 일어나 그들에게 반대하고 그들과 싸우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요? 그들은 우리와 대립하는데 왜 우리는 그들과 대립하면 안 되나요?” 네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든, 네가 개인적으로 이 사회, 이 세계, 국가의 정치 제도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든, 그것은 너의 개인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네게 준행하라고 한 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하나님의 가르침 및 요구와도 관계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가르침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하나님의 요구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시킨 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어째서 사탄을 폭로하고 사회 풍조와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시는 데다가 심지어 종교까지 폭로하시는 거죠?”라고 말한다. 그것들을 폭로하는 것은 단지 네게 인식시키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폭로하는 일들은 사람의 패괴 성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의 관점 및 관념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배경 속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화제를 교제하고 이러한 예를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패괴된 인류가 드러내는 사탄 성품을 더 정확하고 실제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각종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관념을 분별하게 하는 것이다. 단지 그뿐이다. 하지만 이는 사람이 직접 나서서 정치, 사회, 인류에게 반대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현실에 불만을 느끼고,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은 채 순수함을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제게 그런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지는 않으셨지만, 저는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하고 현실에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공평과 공의가 있고 진리가 권세를 잡은 하나님 집에서라면 저를 공평하게 대해 줄 거라고 생각해서 하나님을 믿으러 왔는걸요.” 그것은 너 자신의 문제이지 하나님의 요구와는 무관하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취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복받으려고, 어떤 사람은 재난을 피하려고, 어떤 사람은 병을 고치려고, 어떤 사람은 훗날 좋은 종착지를 얻으려고 하나님을 믿는다. 또, 현실과 세상 및 이 사회에 불만이 있거나 사회에서 불공평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어서 위로와 비호를 구하고자 하나님 집에 온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다르고, 하나님을 믿는 취지나 출발점 역시 다르다. 이런 마음은 전혀 없이 그저 하나님을 믿고 싶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튼,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하고 현실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러 와 봤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약간의 은사와 재간이 있다고 해서 그들을 칭찬하고 은총을 베풀지는 않는다. 그들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같이 대단히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안하무인인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에게 그 어떤 희망도 품지 말고, 너희 또한 이런 부류가 되지 마라. 나는 너희에게 오직 정직한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그러니 너는 자기가 사회에 불만이 있고 사회를 간파했다거나 네가 과거에 어떤 특수 업계에 종사하며 그 업계의 어두운 면을 더 깊게 알았다고 해서 자기한테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자격과 분량이 있고, 자기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 이른 사람이자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마라. 만약 네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네게 틀렸다고 할 것이다. 네 판단 관점이 틀렸고, 일을 바라보는 각도가 틀렸고, 네가 견지하는 입장이 틀렸다고 할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겠느냐? 네 입장, 그리고 네가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각도 및 관점이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지 않은 까닭이다. 만약 네가 언제나 세인의 각도에서 현실에 불만을 느끼고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한다면 너는 그들을 미워하게 되고 그들과 다투고, 싸우고, 논쟁하고, 시비를 가리고 싶어질 것이며, 인류와 사회를 바꾸려 들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어떠한 국가의 정치 체계를 바꾸려 하고, 심지어 국가 정계 상층부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사탄을 버리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전부 틀렸다. 정계 상층부 내, 상업계 내, 문예계 내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지든 네 진리 추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네가 아무리 많은 것을 알아 봤자 소용이 없으며, 그것이 네가 사탄의 본질을 알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사탄을 버릴 수 있다는 뜻이 되지도 않는다. 네가 얼마나 많이 알고 이해하든, 그 이해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진실하고 정확하든 네가 진리를 실행하고,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이 가진 사탄에게 속한 사상 관점을 분석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며, 네가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사랑한다는 뜻 역시 아닌 것은 물론, 네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조금 깨달았다고, 어떤 업계 내부의 규칙 혹은 일반인이 모르는 항간의 소문을 조금 안다고, 자기가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하고, 사회에 불만이 있다고,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폭로할 용기를 가졌다고 해서 자기가 고귀하고 고상하며 속되지 않고 뛰어난 사람이자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몸을 사리느라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감히 폭로하지 못하고 폭로할 용기도 없다가 이제 하나님을 믿게 되자 용기를 북돋아 주고 의지가 되어 줄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에 그러한 일들을 폭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해외 민주 국가에 가서 중국 공산당이라는 악마의 악행을 폭로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그러고는 자기가 진리를 깨닫고 분량이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는 전부 다 잘못된 사상 관점이고 이런 것들을 추구해 봤자 아무 쓸모가 없다. 네가 현실에 불만이 있든 없든,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사회에서 네가 속되지 않고 뛰어난 사람이든 아니든,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은’ 사람이든 아니든, 하나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며,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는 것은 무엇이냐? 우선, 하나님은 네가 자기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사탄에게서 비롯된 사상 관점을 인식하고 있는지, 인식한 후에 그것을 폭로하고 사람들에게 털어놓았는지, 명확히 알게 된 후에 그것을 버렸는지를 본다. 그 밖에 하나님은 네가 현실 생활 속에서 의식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지,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할 때 의식적으로 진리 원칙을 구하는지, 진리를 대하는 네 태도가 도대체 어떠한지를 본다. 사람은 마음속으로 이 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과거와 현재의 일을 논하는 것을 즐기는데 역사 속 조정의 내분에 대해 이야기할라치면 말이 아주 장황하게 쏟아져 나오고, 어느 시기의 정치권 내부에 무슨 큰일이 있었으며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등등을 명확하게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분량이 있고, 올곧고, 정의감이 넘친다고 착각한다. 게다가 이런 말도 한다. “내가 사회에 얼마나 불만이 많고, 관료 집단의 그늘을 얼마나 확실히 간파했으며 얼마나 깊고 철저하게 아는지 봐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너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 하느냐? 하나님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냐? 네가 교육을 많이 받고 아는 것이 많음을 드러내는 것이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 일이다. 나는 웹상의 무가치한 일들을 살펴본 적이 없고 각종 뉴스나 정보에도 흥미를 느낀 적이 없다. 어째서 안 보겠느냐? 보면 짜증 나고 역겹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정의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수시로 유명인, 스타, 정치인들을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면서 너스레를 떤다. 사람들이 눈뜨도록 그들의 숨겨진 사생활을 전부 끄집어내는데, 자기가 만물박사이자 소식통이고 무슨 비밀이든 다 안다고 생각한다. 또, 자기가 아주 훌륭하고, 식견 있고, 올곧다고 여긴다. 그런 것들을 아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느냐? 그것이 네가 진리를 실행한다는 뜻이 되느냐? 네가 진리를 깨달았다는 뜻이 되느냐? 네게 분량이 생겼다는 뜻이 되느냐? (아닙니다.) 사회상의 일들은 술술 읊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눈앞의 일과 자기가 응당 이행해야 할 본분을 어떻게 진리 원칙에 맞게 할지 네가 말할 수 있겠느냐? 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침묵할 것이다. 사회의 일들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그것이 네가 진리를 깨달았고, 실제 분량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가짜 뉴스며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보고 안다고 해서 네가 분량이 있고, 세상과 사탄을 버렸고, 사탄과 한패가 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충성심이 생겼다고 착각하지 마라. 전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이다. 그것들은 생명을 조금도 대변하지 않는다. ‘내가 현실에 불만을 가질수록, 큰 붉은 용을 폭로하고 증오할수록, 이 세상을 증오할수록,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할수록,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고 나를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는 틀렸다. 네가 그것들을 추구할수록, 네가 그 길을 걸을수록, 하나님은 점점 더 너를 좋아하지 않게 되고 싫어하게 된다. 어째서 네가 세상의 그러한 것들을 추구할수록 하나님이 너를 좋아하지 않게 되느냐? 바른길을 걷는 것이 아니고 본연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간이 난다면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찬양과 형제자매의 생명 체험 간증을 듣고, 모두 함께 하나님 말씀을 많이 묵상하고 교제하여라. 네 생명 진입이나 네가 구원받기를 추구하는 것과 무관한 항간의 소문을 캐지 마라. 그것은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든, 이 세상이 어느 길로 가든, 인류가 얼마나 더럽고 사악하든, 정치의 그늘이 얼마나 짙든, 너와 상관이 있느냐? 이 사회와 이 세상이 어둡지 않고, 사악하지 않고, 더럽지 않으면 네가 구원받을 수 있느냐? (아닙니다.) 그러한 일들은 너와 털끝만큼도 관계가 없다. 네가 구원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오직 진리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깨달았는지, 진리 실제에 얼마나 진입했는지, 본분을 어떻게 이행했는지, 이 몇 가지와 관계가 있다. 공연히 유명인과 스타를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고, 스타의 스캔들과 지저분한 일들을 폭로하며 시간을 허비하면서 자신이 훌륭하고 속되지 않으며 뛰어나다는 것을 드러내려 하지 마라. 그것들은 전부 어리석은 행동 방식이다. 그런 부류가 되지 마라. 그들은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자들이다.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라는 덕행에 관한 말의 본질에 대해서는 거의 다 교제하고 분석하였다. 그 밖에 이 말에서 언급된 처신 태도와 관점, 그리고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태도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교제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은 어떠한 길을 걸어야 하는지도 깨닫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세상의 불합리함에 대한 분개가 긍정적인 사물이냐? 현실에 대한 불만이 긍정적인 사물이냐?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 긍정적인 사물이냐? (아닙니다.) 이것들은 전부 긍정적인 사물이 아니다. 단언하건대 이것들은 네가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근거가 아니며, 네가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되고, 네가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원칙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네가 반드시 내려놓고 버려야 할 것들이다. 너희는 전통문화에서 온 이러한 말과 이론을 확실하게 분별하고 철저하게 포기해야 한다.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아닌 이것들을 진리로 삼거나 진리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이것들이 사람들 가운데서 얼마나 오랫동안 퍼졌든, 사람들 가운데서 얼마나 깊게 뿌리내렸든, 진리 앞에서는 일격에 허물어지기 때문에 이것은 긍정적인 사물이 전혀 아니고, 진리와 함께 거론될 자격이 전혀 없다. 이것들은 사람에게서 조금의 긍정적인 성과도 끌어내지 못한다.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이끌고 데려가기는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잘못된 길로 데려감으로써 더욱더 자기가 고결하다고 착각하게 하고, 수치를 모르게 하고, 자신을 정확히 아는 능력과 이성을 잃게 하여 하나님이 그 사람을 혐오하고 역겨워하게 만든다. 만약 사람이 이것들을 내려놓고, 이러한 관념을 내려놓고, 사탄에게서 온,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이 사상 관점, 방식, 근거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한다면 이러한 것들이 사람에게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하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은 네가 이 사회에 어떠한 어두운 면들이 있는지 애써 인식하고 알아보기를 바라지 않는다. 너는 그저 전체적으로, 본질적으로 이 세상과 인류가 사탄에게 패괴되었으며, 악한 자의 손아귀에 놓여 있고, 사회 풍조, 풍속, 전통문화, 지식, 교육 할 것 없이 어느 층면, 방면, 업계든 모두 사탄의 사상 관점 및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으로 가득 차 있고, 어느 나라와 민족이든, 사회상의 어떤 집단과 단체이든 전부 진리와 하나님 말씀이 권세를 잡은 것이 아니고, 당연하게도 그들 사이에서 공평과 공의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음을 알면 된다. 이 점은 확실하다. 너는 이것만 간단하게 알면 된다. 그 외에 가장 중요한 일은 차분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많이 갖추고, 자기에게 존재하는, 사탄에게서 비롯된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 및 사상 관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들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생겨야만 진정으로 명확히 알 수 있고, 진정으로 명확히 알아야만 진정으로 버리고 포기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포기해야만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다. 이러면 네가 걷는 길이 올바르게 되고 환해지며, 목표도 올바르게 된다. 결국 구원받게 되는 것 역시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이 된다. 그러니 절대로 사탄이 주입한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 및 사상 관점이 사고를 흐리게 하거나 눈을 가리게 하지 마라.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하고 현실에 불만이 있는 사람이 됨으로써 자신을 무감각하게 만들거나 남을 속이고 자신을 기만하지 마라. 그러는 대신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얻어 생명이 되게 하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자기 본분을 잘 이행해라. 이것이 너의 본연의 일이고 네가 지금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다. 사회가 어떻고 국가가 어떻든, 어느 한 업계가 어떻든, 그것들은 모두 너와 무관하다. 어째서 너와 무관하겠느냐? 그것들은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하고, 너의 진리 추구와 관계가 없으며, 네 결말과도 관계가 없고, 네가 구원받는 것과도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해했느냐? (이해했습니다.) 이해했으면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을 얻어야 할지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2022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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