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 성육신 | 발췌문 104

2020.07.01

어째서 예수의 그 단계 사역은 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지 못했다고 하겠느냐? 말씀이 완전히 육신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 중 일부일 뿐이다. 그는 구속 사역만 했을 뿐, 사람을 완전히 얻는 사역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세에 또다시 성육신한 것이다. 이번 사역도 평범한 육신으로 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한다. 그에게는 비범한 인성이 전혀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사역하고, 완전한 사람으로 사역하며, 완전한 육신으로 사역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비범한 면이 조금도 없는 육신이자, 하늘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표적을 나타내지도, 기적을 행하지도 않으며, 예배당에서 종교의 실상을 폭로하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두 번째 성육신이 하는 사역은 첫 번째 성육신이 한 사역과 완전히 다르며, 심지어는 똑같은 점이 하나도 없고, 첫 단계의 사역을 이번 단계에서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사역은 첫 번째에 한 사역과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근원이 다르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의 근원이 하나인지에 대한 판단은 육신이 하는 사역의 성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육신의 외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3단계의 사역에는 총 두 번 성육신하였는데, 이 두 번의 성육신 사역은 모두 시대를 여는 것이며 새 사역을 하는 것이다. 두 번의 성육신은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 사람의 육안으로는 이 두 육신의 근원이 하나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다. 물론, 이는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이고, 사람의 사유로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경지이다. 그들의 사역은 하나의 영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 본질은 처음부터 하나다. 두 번의 성육신의 근원이 하나인지를 알아보려면 육신의 출생 연대나 출생지, 혹은 육신의 다른 조건들을 볼 것이 아니라 육신이 나타낸 신성 사역을 봐야 한다. 두 번째로 성육신한 하나님은 예수가 행한 사역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역할 때마다 이전의 방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길을 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이유는 첫 번째 육신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긴 인상을 더 깊게 하거나 공고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첫 번째 육신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긴 형상을 보완하고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에 깊이를 더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모든 규례를 깨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잘못된 형상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행한 어느 한 단계의 사역만 보고서는 하나님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일부만 알 수 있을 뿐, 완전히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성품을 다 나타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깨닫는 능력에 한계가 있기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사람의 언어로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표현할 수 없을진대, 단 한 단계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밝힐 수 있겠느냐? 육신의 사역은 정상 인성에 가려져 있기에 사람은 신성의 말씀을 통해 그를 알 수 있을 뿐, 육신의 외형을 보고서는 그를 알 수 없다. 육신을 입고 온 그는 서로 다른 사역을 통해 사람에게 그의 사역이 단계마다 다르다는 점을 알게 한다. 그래야 육신을 통해 하는 그의 사역을 사람들이 일정 범위에 국한하지 않고 전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두 번에 걸친 성육신의 사역이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육신의 본질과 사역의 근원은 동일하다. 다만 두 차례의 성육신은 서로 다른 두 단계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두 시대에 나타났을 뿐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본질과 근원은 서로 같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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