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 하나님 알아 가기 | 발췌문 199
2020.08.19
하나님을 대하는 인류의 다양한 태도
한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처리 방법도 결정된다. 여기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일부 방식을 열거해 보겠다. 하나님을 대하는 이런 방식과 태도가 옳은지, 틀린지 들어 보거라. 다음 일곱 부류 사람의 태도를 보자.
1)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황당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상의 전설에서 들은 보살이나 성자(聖者)처럼 만나면 머리를 세 번 조아리고 식사 후 향 하나를 피우길 원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때, 하나님께 감사할 때 종종 이런 충동을 느낀다. 지금 믿고 있는 하나님이 자신들이 마음속으로 동경하는 그 성자처럼 ‘만나면 머리를 세 번 조아리고 식사 후 향 하나를 피우는’ 대우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2)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중생을 제도(濟度)하고 구제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부처’, 자신을 고해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부처’로 여긴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을 부처로 여기며 섬긴다. 향을 피우거나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거나 제물을 바치지는 않지만 이런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들의 하나님은 단지 선행하고, 베풀고, 살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욕하지 않고, 표면적으로 성실하게 살고,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하는 ‘부처’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 마음속의 하나님이다.
3)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이 숭상하는 위인이나 명사로 여긴다. 예를 들어, 위인이 즐기는 말하기 방식, 말할 때의 어조,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 단어 선택법, 말투, 제스처, 행동거지 등은 모두 그들이 따라 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완전히 닮고 싶어 하는 것이다.
4)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통치자로 여기며 그는 지고지상한 분이고, 누구도 감히 거스를 수 없으며, 거스르는 사람은 그의 제재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이런 통치자를 숭상하는 이유는 이런 통치자들이 그들 마음속에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치자의 사상, 행동 양식, 권세와 본성은 물론 통치자들의 취미와 사생활까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되고, 그들이 관심을 두는 문제이자 일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도 한 명의 통치자로 여기며 숭상한다. 이는 아주 황당한 믿음법이다.
5)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굳게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너무 얕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그리 많은 체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그들의 우상으로 여기며 경배한다. 이 우상이 바로 그들 마음속의 하나님이다. 바로 그들이 무릎 꿇고 절할 대상이자 경외할 대상이다. 또한 그들이 따르고, 본받을 대상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우상으로 삼고, 이 우상을 자신들이 평생 추종할 대상으로 삼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투를 따라 하고, 겉으로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을 본받는다. 늘 유치해 보이는 일을 하고, 순수하고 정직해 보이는 일을 한다. 심지어 이 우상을 자신과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반려나 친구로 여기며 추종한다. 그들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
6)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은 도를 들었음에도 속으로는 하나님을 대하는 유일한 방식(직역: 취지)이 아부와 아첨, 혹은 현실에 맞지 않는 자랑이나 찬미를 벗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이렇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렇게 대하지 않으면 언제든 하나님의 노여움과 미움을 살 수 있으며, ‘미움을 산 행동’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처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마음속의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다.
7) 그리고 대다수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정신적 의지처로 삼는다. 세상을 살다 보면 평안하지 않고 즐겁지 않은 데다 위안을 얻을 곳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찾은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게 된 후 속으로 은근히 기뻐하며 다행이라 여긴다. 그들은 드디어 정신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았고, 정신적 의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을 찾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따른 후부터 그들의 정신은 즐거워졌고 생활은 충실해졌다. 그들은 더 이상 이방인처럼 흐리멍덩하게 지내지도, 짐승처럼 살지도 않고, 자신의 인생에 희망이 생겼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하나님이 그들의 정신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고, 그들의 마음과 정신에 큰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이런 하나님을, 자신의 정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즐거움을 안겨 준 하나님을 떠나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정신적으로 의탁할 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상 하나님을 대하는 여러 부류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들이 너희 가운데 존재하느냐? (네.)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음속에 이런 태도 중 어느 하나라도 있다면 진실로 하나님 앞에 올 수 있겠느냐? 마음속에 이런 태도 중 어느 하나라도 있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겠느냐?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을 믿고 있는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네가 믿는 것이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면 네가 믿는 것은 누구겠느냐? 네가 믿는 것이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면 네가 믿는 것은 우상일 수도, 위인일 수도 있고, 보살일 수도 있다. 네가 섬기는 것이 마음속의 부처일 수도 있고, 네가 믿는 것이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일 가능성은 더 크다. 요컨대, 사람들의 여러 가지 믿음법과 태도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을 자기 마음속에 끌어다 놓고, 자신의 상상을 하나님께 갖다 붙이며,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상상을 유일무이한 하나님과 나란히 둔 다음 이를 모시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부당한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사람이 참하나님을 버리고 거짓 신을 모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동시에 하나님을 저버리고 대적하며, 참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속 이런 믿음법을 고수한다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느냐? 이런 믿음법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요구에 점점 가까워질 수 있겠느냐?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그 반대다. 사람이 자기 관념과 상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도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다. 그것은 네가 추구하는 방향이 하나님이 네게 요구하는 방향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남원북철(南轅北轍)’ 이야기를 들어 봤느냐? 바로 이렇게 수레의 끌채는 남을 향하고 바퀴는 북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황당하게 하나님을 믿는다면 네가 힘을 쓸수록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질 것이다. 그래서 너희에게 경고한다. 너희가 힘을 쓰기 전에 반드시 방향의 옳고 그름을 확인하거라. 함부로 힘을 쓰지 말고 자신에게 꼭 이렇게 묻거라. ‘내가 믿는 이 하나님이 만물의 주재자일까? 내가 믿는 이 하나님은 단지 내 정신적 의지처일까? 그가 내 우상일까? 내가 믿는 이 하나님이 내게 요구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한 모든 것을 하나님은 인정할까? 내가 행한 모든 것, 내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일까? 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맞추고 있는 것일까? 내가 걸어온 길은 하나님이 허락하고 인정하는 길일까? 하나님은 나의 이러한 믿음에 만족할 수 있을까?’ 이렇게 늘 자신에게 물어보아라. 반복적으로 물어보아라. 하나님을 아는 데에 있어 반드시 뚜렷한 의식과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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