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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경영은 모두에게 매우 낯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이 사람과는 무관하며 하나님만의 사역이고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 때문에 인류가 구원받는다는 것이 모호한 일이자 공허한 말이 되었다. 사람은 구원을 받고 훗날 아름다운 곳으로 가기 위해 하나님을 따르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는지, 사람이 어떻게 협조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참 슬픈 일이다. 사람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경영과 무관할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경영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졌고, 더 나아가 창조된다는 것이란 무엇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이며,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 등등 사람이 구원받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를 모르는 사람들까지 하나님을 따르기 시작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나님의 경영에 관해 얘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단지 복을 받고 재앙을 피하고 출세하기 위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고 믿는 것이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더 나아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더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경영이 사람에게 심오하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과 관련되어 있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과 관련되어 있으며, 인류의 생명과 삶, 인류가 마지막에 돌아갈 곳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 가운데서 행하고 사람들에게 행하는 사역은 모두 현실적이고 의미가 있으며, 사람이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이 사람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사역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경영이 또 어떻게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로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재앙을 피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역과 경영을 언급하면 그들은 묵묵부답이며,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지루한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이 더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경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렇게나 대할 뿐 보배로 여기지 않을뿐더러 생명의 일부로는 더더욱 여기지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복을 받는 것이다. 그 외에 자신의 목표와 무관한 일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정당한 목적이며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상황이 이렇다. 그들의 목적과 생각은 얼핏 들으면 정당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한편, 헌신하고 봉헌하고, 자기 본분을 다하고 있으며,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업을 버리고, 심지어 오랫동안 먼 곳에 나가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바꾸고 인생관도 바꾸고, 심지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도 바꾸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바꾸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달릴 때는 길이 얼마나 멀든,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토록 끊임없이 헌신하게 하는 걸까? 그들의 양심일까?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일까?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겠다는 결심일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려는 그들의 믿음일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충성심일까? 아니면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는 그들의 희생 정신일까?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피나게 노력하고 수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헌신했는지는 차치하고, 그들의 행위만 놓고 보아도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 사람과 밀접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일 뿐이다. 즉,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다. 솔직히 말하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이 노력하는 것은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혈육의 정은 없고 거래만 있고,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베풀고 가엾게 여기는 것밖에 없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은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사이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 누가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까? 또 이런 관계가 위험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확신컨대, 사람들이 복을 받고 즐거움에 도취된 나머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난감하고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인류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자기 사업을 경영하면서도 하나님의 경영을 등한시한다는 사실이고, 가장 실패한 일은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꿈꾸는 처소를 구상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 가장 큰 복을 받고 훗날 가장 좋은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계산한다는 점이다. 설령 모든 사람이 스스로 비참하고 가증스럽고 가련하다는 것을 안다 해도, 자신의 꿈과 소망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 이익을 계산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곁에서 협조하며 하나님의 경영을 완성해 주는 사람과 하나님에게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몸과 마음을 쏟아 붓는 사람이다. 날마다 하나님께 두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 조금 바치고 빚을 받아내려는 사람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조금 봉헌한 뒤 그것을 밑천으로 원하는 걸 얻어내려는 사람을 증오하고,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늘에 올라가 복받는 일에만 관심 있는 냉혈인간을 증오하며,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기회를 틈타 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은 더더욱 증오한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이 경영 사역을 통해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역사하는 틈에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자기 앞날과 운명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반감을 품고 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 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무관심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 사역 밖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기억해 주지 않고 칭찬하지 않으며, 더욱이 좋아하지도 않는다.

아득한 우주에서 수많은 생령이 번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생명의 규율을 따라 순환하며, 불변의 법칙을 지키고 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이야기를 가지고 떠나고, 산 사람은 또 죽은 사람의 역사적 비극을 재연하며 살아간다. 사람은 이런 의문을 품고 있다. 우리는 왜 사는가? 우리는 왜 죽는가? 이 세상을 누가 움직이고 있는가? 누가 사람을 창조했는가? 이것이 정녕 대자연의 조화일까? 사람이 진정으로 자기 운명을 지배할 수 있을까? …사람은 수천 년간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지만 불행하게도 이 문제에 집착할수록 과학에 대한 갈망이 점점 더 커졌다. 과학으로 사람의 육체는 일시적인 만족과 짧은 행복을 얻었지만 영혼 깊은 곳의 고독과 적막, 감출 수 없는 공포, 무력감에서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인류는 눈으로 볼 수 있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과학 지식으로 심령을 마비시켜 보지만, 심오한 비밀을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인류는 누가 우주 만물을 주관하고 있는지 모르고, 인류의 시초와 미래는 더더욱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릴없이 이 법칙에 따라 살아가기만 할 뿐, 그 누구도 벗어나거나 변화시킬 수 없다. 만물 사이에, 또 하늘 위에 태초부터 영원까지 계신 이가 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류가 목도한 적이 없는 분이요, 인류가 안 적도 없는 분이며, 인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 분이다. 하지만 그는 인류의 선조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인류에게 생명을 부여한 분이요, 인류가 살 수 있도록 공급해 주고 자양분을 공급해 주는 분이고, 오늘날까지 인류를 인도한 분이며, 더더욱 인류가 유일하게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분이다. 그는 만물을 주재하고 있다. 세상 만물을 주재하고 있고, 사계절을 관장하며 풍상설우 (風霜雪雨)의 변화를 조절한다. 그는 인류에게 햇빛을 선사하고, 밤의 장막을 베풀어 주었다. 그는 하늘과 땅을 펴고, 인류를 위해 산과 강과 호수, 그리고 그 속의 생물까지 준비하였다. 온 세상 그 어디에도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그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그의 지혜가 깃들지 않은 곳이 없고, 그의 권능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 모든 규율과 법칙은 그의 행사를 구현하고 있고, 그의 지혜와 권세를 나타내고 있다. 누가 그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누가 그의 섭리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만물은 다 그의 눈앞에서 살아가고, 그의 주재하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의 행사와 능력 앞에서 사람은 그가 분명히 존재하며 그가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는 그 누구도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없고, 더욱이 인류에게 이토록 무한히 많은 것을 제공해 줄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행사를 알든 모르든, 하나님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너의 운명이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만물을 주재하는 분도 영원히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권세는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고,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네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이 모든 것은 머지않은 장래에 사람이 직접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이 역시 하나님이 곧 이룩할 사실이다. 인류는 하나님이 보는 가운데 살고 또 하나님이 보는 가운데 죽는다.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으로 인해 살고 또 하나님의 경영으로 인해 두 눈을 감는다. 이렇게 끊임없이 순환하며 왔다 가고 갔다가 또 온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주재와 섭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경영은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그의 존재를 알게 하고, 그의 주재를 믿게 하며, 그의 역사를 보게 하고, 또 그의 나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고, 수천 년 동안 경영해 온 사역이다.

하나님은 창세부터 경영 사역을 해 왔는데 그 경영 사역의 핵심이 바로 ‘사람’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다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이 1분1초나 눈 깜빡할 사이, 또는 1~2년이 아니라 수천 년이 걸려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해와 달, 각종 생물, 인류의 양식과 생활 환경 같은 사람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더 많은 것들을 창조해야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영의 시작이었다.

이어서 하나님은 인류를 사탄에게 내주었다. 그리하여 인류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점차 하나님의 첫 번째 시대의 사역, 즉 율법시대의 이야기가 생겨나게 되었다… 율법시대가 이어진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율법시대의 인도에 익숙해지고 무심해져 차츰 하나님의 보살핌에서 멀어졌다. 그 때문에 사람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상을 숭배하고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여호와의 보호를 잃게 되었으며, 그들의 삶은 성전에서 제단을 지키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 하나님의 사역은 그들을 떠난 지 오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율법을 고수하며 입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심지어 자신들만이 여호와의 백성이고 선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겼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은 조용히 그들을 버리고 떠났다…

하나님은 사역할 때 항상 한 곳에서 조용히 떠나 또 다른 곳에서 소리 없이 새로 개척한 사역을 하는데 둔감한 사람이 보기에는 천일야화와도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사람은 항상 낡은 것을 소중한 보물로 여기고 낯설고 새로운 것을 보면 원수처럼 적대시하거나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새로운 사역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만물 가운데서 제일 마지막에 그 사실을 아는 존재는 사람뿐이다.

하나님은 율법시대 사역에 이어 예외 없이 두 번째 새로운 ― 육신을 입는 ― 사역을 시작하였다. 즉, 성육신하여 인간으로 10년, 20년 이란 오랜 시간을 보내며, 신자들 가운데서 사역하고 말씀했음에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뒤에야 매우 적은 사람들만 그를 하나님의 성육신이라 인정하였다. 하지만 난감하게도 바울이라는 자가 나타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했으며, 결국 죽임을 당해 사도가 된 뒤에도 예전 본성을 버리지 못했고, 많은 서신까지 썼다. 불행하게도 후세 사람들이 그의 서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며 받아들이고, 심지어 신약성경에 포함시켜 하나님 말씀과 똑같이 대했다. 이것은 인간에게 성경이 생긴 후 가장 부끄러운 사건이다. 이는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저지른 잘못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시대 사역 기록에는 인간의 서신이나 인간의 영적 깨달음을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으로 둔갑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그만두고 주제로 돌아오도록 하겠다. 하나님의 두 번째 사역이 완성되었을 때, 즉 십자가에 못 박힌 뒤 하나님은 이미 인간을 죄에서(사탄의 손아귀에서) 되찾아 오는 사역을 이루었다. 따라서 그때부터는 인간이 주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았다. 말하자면, 인간의 죄가 더 이상 인간이 구원받아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을 가로막지 못하고, 더 이상 사탄이 인간을 참소하는 빌미가 되지 못했다. 하나님 스스로 실질적인 사역을 하고,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어 미리 겪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속죄제였다. 그렇게 해서 인간은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육신, 즉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인해 속량되어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사탄에게 잡혀갔던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 하나님에게 구원받게 되었다. 당연히 이 사역은 율법시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한층 더 깊어진 하나님의 경영이었다.

하나님의 경영이란 이런 것이다. 무엇이 하나님이고, 무엇이 창조주인지,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하고, 어째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이런 인류를 사탄에게 내어 주어 사탄이 제멋대로 타락시키게 한 뒤, 다시 사탄의 손아귀에서 인류를 조금씩 조금씩 빼앗아 옴으로써 인간이 완전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탄을 버릴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영이다. 이런 이야기는 어쩌면 신화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어쩌면 이해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인간이 이것을 신화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또 이 광활한 우주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생겨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간의 육안으로는 이 물질 세계 뒤에 숨어 있는 더 기묘하고 무서운 세계를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의의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의 의의를 전혀 모르고, 하나님이 어떤 인류를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인류란 사탄에 의해 타락되지 않은 아담과 하와 같은 인류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경영은 바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순종하는 인류를 얻기 위함이다. 그런 인류는 사탄에 의해 타락되었으나 더 이상 사탄을 아비로 삼지 않고 사탄의 추악한 몰골을 간파하여 내칠 수 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추악함과 거룩함의 차이를 알고, 하나님의 위대함과 사탄의 사악함도 알게 되었다. 그런 인류는 더 이상 사탄을 위해 힘쓰지 않고, 사탄에게 절하지도 사탄을 섬기지도 않는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얻어진 인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의 의의이다. 이 경영 사역에서 인류는 사탄이 타락시킨 대상인 동시에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이며, 또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가지려고 다투는 산물이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면서 인간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조금씩 되찾아 오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졌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는 더 현실적이지만 인간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사역이다. 인간이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하나님의 형벌 막대기가 인간과 더 가까워지고, 인간이 하나님의 면모를 더 뚜렷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속죄 받은 뒤 정식으로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편하게 누리며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인간들이 하나님에게 호된 공격을 받았다. 이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이와 같은 세례를 ‘누려야’ 했다. 이런 대우를 받자 인간은 마음을 차분이 가라앉히고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하나님이 오래전에 잃어버렸다가 비싼 대가로 되찾아 온 양인데 하나님은 어째서 나를 이렇게 대하시는 걸까? 설마 하나님이 자기 방식으로 나를 조롱하고 본성을 똑똑히 드러내게 하시려는 걸까?’ … 그렇게 수년을 겪으며 보냈다. 인류는 연단과 형벌의 고난을 통해 풍상고초를 다 겪어 본 사람으로 거듭났다. 비록 과거의 ‘광채’와 ‘낭만’은 잃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됨의 이치를 깨닫고, 하나님이 오랫동안 인간을 구원한 그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차츰 자신의 야만성을 증오하고, 길들이기 어렵고 하나님을 수없이 오해하며 분에 넘치는 것을 바랐던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지나간 일은 인간이 참회하는 기억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은 인간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간의 상처가 날마다 조금씩 아물고 몸이 건강해지면서 우뚝 일어나 전능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줄곧 내 곁에 있었다. 그의 미소와 아름다운 얼굴은 여전히 감동적이고, 그는 여전히 자신이 만든 인류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며, 그의 두 손은 여전히 처음과 똑같이 따뜻하고 힘이 있었다. 인간은 마치 에덴동산에 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인간은 더 이상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더 이상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의 웃는 얼굴을 향해 가장 귀한 제물 ―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 을 바친다.

하나님의 모든 경영 사역에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스며들어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든 없든, 그는 쉬지 않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사역을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경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인간이 받는 도움과 이익은 인간 스스로 느낄 수 있다. 네가 지금은 하나님이 주는 사랑과 생명의 공급을 전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결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웃는 얼굴이 네 앞에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은 사탄에 의해 타락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을 포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는 인간을 되찾아오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2005년 9월 23일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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