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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3)

하나님은 역사하면 무슨 건축 같은 것을 하지도 않고, 무슨 운동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은 와서 직분을 하는 것이다. 성육신할 때마다 다만 한 단계의 사역을 완성하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나라시대에 들어섰고 하나님 나라의 훈련에 진입하였다. 이 단계에서 하는 것은 사람의 사역이 아니고 사람을 어느 정도로 만드는 것도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일부분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가 하는 것은 사람의 사역이 아니고 사람을 가지고 어떤 성과를 낸 다음 땅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직분을 끝내는 것이고 그가 해야 할 사역을 다 하면 되는 것이다. 즉, 그는 땅에서 해야 할 사역을 다 적절하게 안배하면 영광을 받는다.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과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는 것은 오로지 그의 직분을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직분과 무관한 그 밖의 일은 거의 간섭하지 않는데, 심지어 묻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한다. 특히 사람이 해야 할 사역에는 더더욱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가 하는 사역은 그 당시의 시대와 그가 해야 할 직분에 관련된 사역일 뿐, 그 외의 일은 그가 해야 할 일이 아닌 듯하다. 그는 사람됨의 상식을 더 많이 갖추지 않고, 사교술도 더 많이 배우지 않으며,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다른 일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직역: 장비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에게 있어야 할 그런 것에 대해 일절 관심을 두지 않고 그의 직분 내의 사역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에게 ‘결여된 것’이 너무나 많고, 심지어 사람에게 있어야 할 많은 것에 대해 관심도 없거니와 알지도 못한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생활 상식, 사람됨의 처세 원칙과 같은 그런 것은 그와 거의 무관하다. 하지만 너는 성육신 하나님에게서 비정상적인 표현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데, 그것은 그의 인성이 단지 그의 정상 인성 생활을 유지시키고 그의 정상 이지를 유지시켜 시비를 분별하는 능력이 있게 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는 그 이외의 것을 장비하지 않는데, 그런 것은 사람(피조물)에게만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자신의 직분을 하는 것일 뿐인데, 전체 시대를 상대로 사역하는 것이고 전 우주를 향하여 사역하는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이나 어느 한 지역을 상대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가 역사하는 방향이고, 역사하는 원칙이며, 또한 이것은 아무도 바꿀 수 없고 사람이 전혀 손댈 수 없다. 성육신할 때마다 다 시대의 사역을 가지고 오는 것이지 일부러 사람과 20년, 30년, 40년, 나아가 70~80년을 생활하면서 사람에게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고 파악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본래 성품에 대한 사람의 인식을 전혀 깊어지게 할 수 없고, 사람에게 관념만 증가시키고, 사람의 관념과 사상을 노화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 성육신의 사역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다 깨달아야 한다. 설마 너희에게 “내가 온 것은 정상 사람의 삶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 이 말을 너희는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너희는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정상 사람의 삶을 살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 이 말을 잊었느냐? 너희는 하나님이 성육신된 목적을 깨닫지도 못하는 데다가 “하나님이 어찌 일부러 땅에 와서 피조물의 삶을 체험하겠는가?”라는 말도 모르고 있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가 땅에서 하는 사역은 짧은 것이다. 그가 땅에 온 것은 일부러 하나님의 영이 그 육신을 출중한 교회 인솔자로 양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 자체가 본래 ‘말씀’이 ‘육신’ 된 것인데, 다만 사람이 그가 하는 사역을 몰라 그에게 강요하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하나님은 ‘성육신’된 것이지,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양성하여 잠시 ‘하나님’의 역할을 담당시킨 것이 아니며, 또한 하나님 자신은 양성해 낸 것이 아니라 ‘도’, ‘말씀’이 ‘육신’ 되어 오늘날 정식으로 너희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이 성육신한 사실도 알고 있고 시인도 하고 있지만 너희는 다 머릿수만 채우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하려는 사역, 나아가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와 실질도 전혀 모른 채 그저 타인을 따라 상투적인 말만 외우고 있을 뿐이다. 너는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이 네가 상상한 것처럼 그럴 것 같으냐?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다만 시대를 이끌고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점은 너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기능과 크게 다르기에, 너는 그 두 가지를 같이 놓고 논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역하려면 장기적인 양성과 온전함을 받아야 쓰임받을 수 있다. 또한 매우 높은 인성이 요구되는데, 정상 인성의 이지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데다가 많은 처세 원칙과 법칙도 더 잘 알아야 하고, 사람의 지혜와 윤리 지식도 더 많이 배워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육신 하나님은 이런 것을 갖출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사역은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의 소시를 발표하고 직접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마구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시간에 하고 직분을 해야 할 때에 사역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생활에 참여하지 않고, 사람의 사역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그의 인성에는 이런 것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이런 것이 갖추어지지 않아도 그의 사역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는 다만 직분을 해야 할 시간에 따라 자신의 직분을 하는데, 지위가 어떠하든 한결같이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하고 있다. 사람이 그를 어떻게 알고 있든, 그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든, 그런 것은 그의 사역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치 예수가 사역했을 때, 그가 도대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지만 예수는 한결같이 자신의 사역을 했던 것과 같다. 그런 것은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지체시키지 못했다. 그러므로 처음에 예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표명하거나 선전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따르라고만 했었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낮추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육신에 와서 역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육안으로 알 수도 없거니와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그의 역사를 도와주지도 못하고, 게다가 그가 성육신한 것은 사람에게 그의 육신을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역을 하고 직분을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해야 할 사역을 다 끝마치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의 모든 신분과 지위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성육신 하나님은 침묵만 지킬 뿐, 무엇을 선전하는 것도 없이 사람이 어떠하든,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따라오든 그는 계속 자신의 직분만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하는데, 아무도 그의 사역을 가로막지 못한다. 그는 사역을 끝마칠 때가 되면 꼭 끝마치고 종결짓는데, 아무도 그것을 결정하지 못한다. 그가 사역을 끝마치고 사람을 떠난 후에야 사람은 그가 한 사역에 대해 알게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완전하고 뚜렷하게 알지는 못하는데, 사람은 그가 원래 역사할 때의 뜻을 완전히 알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할지 모른다. 말하자면, ‘성육신 하나님 시대의 역사’는 모두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한 부분은 성육신 하나님이 친히 사역하고 친히 말씀함으로써 육신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부분은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들에게 맡겨 사역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그때 사람은 자신의 기능을 다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이미 길을 개척해 주었으니 사람 스스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육신 하나님이 한 부분 사역을 한 다음, 그 사역을 이어 가는 이는 성령이고 또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이번 단계 사역에서 주로 어떤 사역을 하는지, 하나님이 성육신된 의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가 해야 하는 사역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사람에게 요구하는 대로 하나님께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람의 실수이자 사람의 관념이며 더욱이 사람의 패역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일부러 사람에게 자신의 육신을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과 사람의 육체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분별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며, 사람에게 분별력을 훈련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을 경배하게 하여 그것으로 크게 영광받으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이 성육신된 원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사람을 정죄하거나 일부러 사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혹은 일부러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원뜻이 아니다. 그가 매번 성육신하는 것은 모두 불가피한 사역인데, 그의 더 큰 사역과 더 큰 경영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모두 사역에 필요한 것이고, 모두 필수적인 것이며, 일부러 땅에서 돌아다니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인데, 그런 것이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이렇게 큰 위험을 무릅쓰면서 이 사역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다 부득이한 것이고, 다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이다. 단지 사람에게 보여 주고 사람의 시야를 넓혀 주기 위한 것뿐이라면, 그는 절대로 쉽사리 인간 세상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땅에 온 것은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고, 그의 더 큰 사역을 위한 것이고, 사람을 더 많이 얻기 위한 것이며, 와서 시대를 대표하고 와서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인데, 그것도 육신을 입고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이며, 더욱이 전 인류의 삶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것은 다 그의 경영에 관련되고, 전 우주의 사역에 관련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된 것이 사람에게 그의 육신을 알게 하고 시야를 넓혀 주기 위한 것뿐이라면, 그는 왜 각국을 다니며 일주하지 않겠느냐?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적합한 정착지를 택하여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시작하였다. 이 육신만으로도 상당히 의의가 있는데, 그는 시대 전체를 대표하고, 또 시대 전체의 사역을 전개하며, 그는 옛 시대를 끝마치는 분이자 새 시대를 전개하는 분이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에 관련되는 큰일이고, 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한 단계 사역의 의의이다. 예수가 왔을 당시에도 그는 어느 정도 말씀하기만 하고 어느 정도 사역하기만 했지, 사람의 생명이 어떠하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사역을 끝마친 다음에는 떠났다. 오늘날 내가 말을 다 하여 너희에게 알려 주고 너희가 다 깨닫게 되면 이 사역은 끝난다. 너희의 생명이 어떠하든, 이후에는 이 단계 사역을 이어 가고, 이 말씀에 근거하여 땅에서 사역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때는 사람의 사역을 시작하고 사람의 건축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 역사하여 직분을 다하는 것으로 한 단계 사역을 완성할 뿐이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것은 사람이 사역하는 것과 같지 않다. 사람은 모임과 좌담을 좋아하고 의식(儀式)을 중요시하지만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모임과 사람이 하는 회의(會議)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편하게 이야기하고, 편하게 대화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역인데, 매우 자유로우니 너희도 따라서 해방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예배하는 것을 가장 혐오하는데, 너희의 규례적인 그런 생활에 적응되지 않는다. 나는 규례를 가장 혐오하는데, 사람들이 그것에 제한받아 감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감히 못하고 노래도 감히 부르지 못하면서 뚫어지게 쳐다만 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의 그런 예배 방식을 가장 혐오한다. 가장 혐오하는 것은 대예배인데, 너희들과 그렇게 모이는 것을 전혀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생활은 사람을 구속받게 하기 때문이다. 너희에게는 의식과 규례가 너무 많아 사람들을 이끈다는 것이 다 규례에 빠지도록 이끌었다. 사람들은 너희의 인솔하에 규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교적 냄새가 갈수록 짙어지고 사람의 행실이 갈수록 많아질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예배하면 피곤한 줄 모르고 계속 강의만 한다. 어떤 사람은 강의를 하면 10여 일을 해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 대예배에 속하고 사람의 회의에 속하는데, 먹고 마시고 누리고 영이 해방받는 그런 생활에 속하지 않는다. 모두가 회의이다! 너희의 사역자 모임, 대예배, 소예배를 나는 다 혐오하고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내가 역사하는 원칙은 이러한 것인데, 바로 예배에서 ‘설교’하고 싶지 않고, 대중들 앞에서 무엇을 선전하고 싶지도 않고, 더욱이 너희를 불러 모아 며칠씩 ‘특별 회의’를 열고 싶지도 않다. 나는 너희가 모두 단정하게 앉아서 예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가 어떤 의식 속에서 사는 것을 보기 싫어하고, 더더욱 너희의 그런 의식에는 참여하고 싶지도 않다. 너희가 그렇게 할수록 나는 더 혐오감을 느낀다. 나는 너희의 그런 의식과 규례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는데, 너희가 아무리 잘해도 나는 혐오한다. 너희가 안배를 잘하지 못해서도, 너희가 너무 비천해서 그런 것도 아니라 내가 너희의 그런 생활을 싫어하고 더욱이 너희의 그런 생활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가 하려는 사역을 아예 모르고 있다. 예수가 사역했을 당시에 예수는 어떤 곳에서 한 번 가르치고 나면 제자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나 성 밖으로 나갔는데, 사람들을 떠나 제자들을 데리고 함께 이야기했었다. 예수는 흔히 그렇게 사역했었는데, 대중을 떠나 사랑하는 제자 몇몇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그들이 깨달아야 할 도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예수가 대중들 가운데서 했던 사역은 아주 적다. 너희의 요구대로라면 성육신 하나님에게는 정상 사람의 생활이 있으면 안 되고, 오직 사역만 해야 하는데, 앉아서도 말해야 하고 서서도 말해야 하고 걸으면서도 말하고 시시각각 역사하면서 ‘운행’을 정지하지 말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직책을 다하지 못한 것’이 된다. 사람의 이런 요구가 인간의 이지에 부합되느냐? 너희의 인격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너무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 내가 사역을 하는데 너희들의 검증까지 받아야 하느냐? 내가 내 직분을 하는데도 너희의 감독을 받아야 하느냐? 내가 어떤 사역을 해야 하는지, 어느 때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내가 다 잘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의 간섭이 필요 없다. 혹시 너에게는 내가 일을 얼마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 사역은 끝난 것이다. 4복음서에 예수가 했던 그런 말씀들을 보아라! 다 유한하지 않더냐? 그 당시 예수가 회당에 들어가 가르쳤을 때에도 걸린 시간은 기껏해야 몇 분밖에 되지 않았다. 예수는 말씀을 마친 다음에는 아무런 해석도 없이 제자들을 데리고 배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 기껏해야 회당의 사람끼리 의논했을 뿐 예수와는 상관이 없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면서 그 이외의 사역은 하지 않는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야기를 좀 더 많이 하라고 하면서 하루에 몇 시간씩은 해야 한다고 한다. 너희들은 말씀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고 말씀해야만 하나님이라고 보는데, 너희는 다 눈이 멀었다! 다 짐승의 부류들이다! 다 사리를 모르는 것들이다! 너희에게는 관념이 너무나도 많다! 너희의 요구는 선을 넘었다! 인성이 없다! 너희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 너희는 ‘강의자’, ‘설교자’이면 모두 하나님이고, 너희에게 ‘말씀’을 공급해 주려고 하는 자이면 너희의 ‘친아비’라고 생각하는데, ‘오관이 단정’하고 ‘비범’한 외모를 소유한 너희에게 이지가 조금이라도 있기나 한 것이냐? 하늘을 알고 있는 것이냐! 너희는 하나하나 탐관오리 같은데, 어찌 사리를 분별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어찌 시비를 분명히 가릴 수 있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베풀어 준 것은 적지 않다. 그러나 너희 중에 중시한 자가 몇이나 되느냐? 완전히 얻은 자가 누가 있느냐? 너희는 오늘날 너희가 가고 있는 길이 도대체 누가 이끌어 준 것인지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리한 요구들로 나에게 끊임없이 요구만 하고 있는데, 너희는 낯 뜨겁지도 않으냐? 내가 말을 적게 했느냐? 내가 사역을 적게 했느냐? 너희 중에 누가 내 말을 진정 보배처럼 여기며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느냐? 모두가 앞에서는 아부하고 뒤에서는 기만한다! 너희의 행실은 너무 비열하여 역겹다! 너희들은 내가 너희에게 말을 해 주고 사역해 주기를 원하는데, 나는 그것이 삶의 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눈 호강을 하고 시야를 넓히려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했던 그 많은 말로 너희의 삶은 벌써 변화되었어야 하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오늘에 와서도 고질병이 도지는 것이냐? 설마 누군가 내 말을 가로채기라도 하여 너희가 얻지 못했단 말이냐? 솔직히, 너희 같은 인간쓰레기들에게 나는 많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부질없다! 나는 그렇게 많은 부질없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너희는 그저 시야를 넓히거나 눈 호강이나 하려 하지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너희는 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내가 너희와 대면하여 한 말을 너희는 얼마나 실행하였느냐? 너희가 한 짓은 다 사람을 속이는 수작이다! 나는 너희들 중에 구경하기 좋아하는 자들을 혐오하며, 너희의 호기심에 매우 혐오감을 느낀다. 너희가 만일 참 도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고 진리를 갈급해하는 자가 아니라면 모두 나의 혐오 대상이다! 나는 너희가 내 말을 듣는 것은 너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거나 어떤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일 뿐, 진리의 존재를 찾거나 생명의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를 탐구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이런 요구가 너희들 가운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너희는 그저 ‘하나님’을 노리개처럼 삼아 연구하고 감상할 뿐이다. 너희에게 생명을 추구하는 마음은 아주 작으나 호기심을 만족시키려는 욕망은 전혀 작지 않다! 그런 자들에게 생명의 도를 말하는 것은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아 말을 안 하기만도 못하다! 너희에게 알린다! 너희가 단지 너희 마음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면 나를 찾아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너희는 너희의 목숨을 중시해야 한다! 스스로를 희롱하지 말라! 너희는 자신의 호기심을 생명을 추구하는 근본으로 삼지도 말고, 그것을 나에게 말씀해 달라고 요구하는 너희의 핑계로도 삼지 말라. 그런 것은 다 너희가 가장 잘하는 수작이다! 내가 다시 한 번 묻겠다. 내가 너에게 진입하라고 요구한 것을 너는 얼마나 진입하였느냐?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너는 다 인식하였느냐?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너는 다 실행해 냈느냐?

매 시대의 사역은 모두 하나님이 친히 시작을 뗀다. 하지만 너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 다 운동을 펼치려고 온 것이 아니고, 너희에게 특별 회의를 열어 주러 온 것이 아니며, 너희에게 어떤 단체를 설립해 주러 온 것도 아니라, 단지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러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는 사역함에 있어 어떤 사람에게도 제한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람이 어떻게 보든, 사람이 어떻게 인식하든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사역만 한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이미 3단계 사역을 하였는데, 여호와부터 예수까지, 율법시대부터 은혜시대까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특별 회의’를 열어 준 적이 없고, 모든 인류를 한곳에 소집하여 ‘세계 사역 특별 회의’를 열어 자신의 사역을 확장한 적도 없다. 그는 다만 적절한 시간에 합당한 지점에서 자신의 전체 시대의 시작 사역으로 시대를 전개하고 인류의 삶을 인도할 뿐이다. ‘특별 회의’는 사람의 모임이며, 사람을 소집하여 명절을 지키는 것은 사람의 사역이다. 하나님은 절기를 지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절기를 혐오하며, 특별 회의를 소집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를 혐오한다. 너는 이제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알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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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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