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

말세에 하나님은 성육신되어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자신의 말씀 직분을 한다. 그가 친히 사람들 가운데 와서 역사하는 목적은 그의 뜻에 맞는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는 말세에서만 이런 사역을 하고, 말씀이 육신 되어 이와 같이 대규모적인 사역을 한다. 비록 그가 세상 사람이 참기 어려운 고통을 참았을지라도, 그가 높고 큰 하나님에서 보통 사람으로 낮추었을지라도 그는 사역을 전혀 지체하지 않고, 그의 계획을 전혀 망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래 계획해 놓았던 사역을 하고 있다. 이번에 말씀이 육신 된 목적의 하나는 와서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와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온전케 한 사람을 직접 눈으로 보려고 하고, 자신이 온전케 한 사람이 자신을 증거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려고 한다. 온전케 될 사람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지만 손가락을 꼽을 정도의 한 무리 사람들이다. 이 한 무리 사람들은 세계 각국에서 오고, 세계 각 민족에게서 온다. 그가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하는 목적은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얻고, 이 한 무리 사람들이 그를 위해 하는 증거를 얻고, 그가 이 한 무리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의의 없고 가치 없는 사역은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하는 목적은 자신이 온전케 하려는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틈이 날 때 악인들을 도태시킨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그가 악인들 때문에 이렇게 큰 사역을 할 리가 없으며, 반대로 그에게 온전케 될 극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 그가 한 사역, 그가 한 말씀, 그가 밝힌 심오한 비밀, 그의 심판과 형벌은 다 이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는 악인들 때문에 성육신할 리가 없고, 더욱이 악인들 때문에 크게 노할 리도 없다. 그는 온전케 될 사람들 때문에 진리에 대해 말하고, 진입에 대해 말한다. 그는 온전케 될 사람들 때문에 성육신하였고, 온전케 될 사람들 때문에 그의 약속과 축복을 베풀었다. 그가 말한 진리, 그가 말한 진입, 그가 논한 인성 생활은 악인을 위해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악인을 피해 말씀하고, 모든 진리를 온전케 될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그러나 사역의 필요로 인해, 그는 잠시 악인에게 그의 풍부함을 조금 누리도록 한다.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않는 자,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는 다 악인이다. 그들은 다 온전케 될 수 없는 사람들이고, 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 자,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온전케 될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만들려는 사람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하는 사역도 바로 이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가 말씀하는 진리는 기꺼이 실행하려는 사람들에 비추어 말씀한 것이다. 그는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지 않는다. 식견이 늘어나고 분별이 늘어난다는 것은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사람들에 비추어 말한 것이고, 온전케 된다는 것도 이 사람들에 비추어 말한 것이다. 성령 역사는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사람에 비추어 말한 것이고, 지혜가 있고 인성이 있는 이런 것은 다 기꺼이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에 비추어 말한 것이다.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설사 많은 진리를 듣고 많은 진리를 깨달았을지라도 그들이 악인인 탓에 그들이 깨달은 진리는 다 도리가 되었고 글귀가 되었으며, 그들의 성정 변화와 그들의 삶에는 아무런 의의가 없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고, 모두 하나님을 보고서도 하나님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며, 모두 하나님께 정죄받는 사람이다.

성령은 각 사람에게서 가야 할 길이 있게 하고, 온전케 될 기회가 있게 한다. 소극적인 것을 통해 너 자신의 패괴를 알게 하고, 또 소극적인 것을 벗어 버리는 것을 통해 실행의 길을 찾아내게 한다. 이런 것은 너에게 있어 다 온전케 하는 것이다. 또 일부 적극적인 것을 통해 네 속에서 계속 인도하고 빛 비춰 주어 적극적으로 기능을 하게 하고, 식견과 분별이 늘게 한다. 네가 상태가 좋을 때는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 원하고, 특별히 하나님께 기도하기 원하며, 설교를 들어도 자신의 정형에 결부시킬 수 있다. 그때에는 하나님이 네 안에서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주어 적극적인 방면에서 어느 정도 인식하게 하는데, 이것은 적극적인 방면에서 너를 온전케 하는 것이다. 소극적인 정형에서는 네가 연약하고 소극적이 되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은 또 너에게 빛 비춰 주어 실행의 길을 찾아내게 한다. 거기에서 나오면 소극적인 방면에서 온전케 된 것이다. 하나님은 적극적인 방면에서든 소극적인 방면에서든 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데, 그것은 네가 체험할 줄 아는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달렸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진정으로 추구한다면, 소극적인 방면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실제적인 것들을 얻을 수 있고, 더욱이 자신의 부족함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실제 정형도 파악할 수 있으며, 사람이 일무소유이고 아무것도 아님을 볼 수 있다. 시련을 겪지 않으면 모르고, 시련을 겪지 않으면 늘 자신이 남보다 대단하고 누구보다도 좋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 너는 이전에는 다 하나님이 하였고, 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련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랑도 없어지고 믿음도 없어지며, 기도도 부족하고 찬양도 할 수 없게 되는데, 부지중에 너는 그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여러 가지 환경을 통해 사람의 패괴 성정을 다루고, 또 여러 가지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책망하고,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드러내며,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폭로하는데,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비밀’을 다 파헤치고 다 폭로한다. 많은 정형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 사람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폭로와 훈계와 연단을 통해, 또 형벌을 통해 온전케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이런 것들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실제적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너희가 지금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하나님을 얻는 것, 또는 90년대(역주: 1990년대)의 베드로 풍격, 욥보다 높은 믿음인데, 추구하는 것이 매우 많다. 또는 하나님께 의로 칭함받기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는 것, 또는 땅에서 하나님을 선명하게 나타낼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굳세고 드높은 증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어쨌든 그것은 다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위한 것이다. 네가 추구하는 것이 의인이 되는 것이든, 베드로의 풍격이든, 욥의 믿음이든 또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이든, 어떤 것을 추구하든, 어쨌든 그것은 다 하나님의 사역이다. 다시 말해, 네가 어떻게 추구하든 그것은 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 위한 것이고, 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 위한 것이며, 다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점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고, 다 자신의 패역 성정을 벗어 버릴 수 있고, 자기 안의 정형이 정상에 이르러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부합되고, 옳은 사람이 되고, 매사에 모두 옳은 동기가 있을 수 있도록 실제 체험 중에서 실행의 길을 찾기 위한 것이다. 네가 이런 것을 체험하는 것은 다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고, 생명이 자라는 데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비록 네가 체험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실제적인 일이고, 주위에 임하는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이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의인의 길 가기를 추구하거나 하나님의 말씀 실행하기를 추구하는 것은 트랙을 달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은 종점에 도착하는 것이다. 지금 네가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이든,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는 것이든, 어쨌든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알기 위한 것이고, 너에게 행한 하나님의 사역이 헛되지 않게 하고, 너로 하여금 마지막에 하나님의 실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위대함을 인식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비미은장을 인식하고 너에게 행한 하나님의 많은 사역을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지극히 낮추어 이 더럽고 패괴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역을 함으로 이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사람과 함께 먹고 함께 거하면서 사람을 목양하여 사람의 필요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극도로 패괴된 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극히 큰 구원 사역, 지극히 큰 정복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는 큰 붉은 용의 심장부에 와서 가장 패괴된 이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데, 모두 변화되고 새로워지게 한다. 하나님이 받은 엄청난 고통은 하나님의 육신이 받은 고통만이 아니다. 가장 주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엄청난 굴욕을 받은 것인데, 그는 비미은장(卑微隱藏)하여 보통 사람이 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성육신되어 육신의 형상을 취함으로 그에게 정상 인성 생활이 있고, 정상 인성의 필요가 있음을 보게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지극히 낮추었음을 충분히 증명한다. 하나님의 영은 육신에 실제화되었다. 그의 영이 지극히 높고 위대하지만, 그는 오히려 보통 사람, 작디작은 사람이 되어 그의 영의 사역을 한다. 너희 각 사람의 소질, 식견, 이지, 인성 방면, 생활 방면을 놓고 말하면, 너희는 전혀 하나님의 이런 사역을 받아들일 자격이 없고,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이렇게 큰 고통을 받게 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너무나 높고 크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고 사람은 아주 비천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에게 역사하는데, 성육신하여 사람에게 공급하고 사람에게 말씀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함께 생활하기까지 한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신을 낮추었고 참으로 사랑스럽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언급할 때마다 네가 눈물을 흘리면서 크게 찬미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면, 너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추구함에 있어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만 추구할 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고, 성령의 내적 깨우침과 빛 비춤을 소홀히 하며,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토대로 하지 않는데, 이렇게 체험하다 보면 힘이 없어진다.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이전에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걸핏하면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지고 눈물을 흘리고 낙심하고 실망했어도, 지금은 체험할수록 상태가 더욱 좋아진다. 한차례 훈계받고 깨지고, 한차례 연단을 겪고 거기서 나오면 크게 진보하게 된다. 이후에 다시는 그에게 그런 정형이 존재하지 않고, 성정에 변화가 생기고, 하나님 사랑의 살아냄이 있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에는 법칙이 있다. 즉, 너에게서 취할 만한 부분을 통해 너를 깨우쳐 주어 실행의 길이 있게 하고, 모든 소극적인 정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며, 너의 영이 해방받고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게 한다. 네가 단순하게 마음을 터놓고 자신을 인식하려고 하고 진리를 실행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네가 그렇게 하려는 것을 보고는 네가 연약해지고 소극적이 될 때 갑절로 깨우쳐 주어 자신을 더 잘 인식할 수 있게 하고, 자신을 통회하는 마음이 더 있게 하며, 자신이 실행해야 할 것을 더 잘 실행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마음이 평안해지고 든든해진다. 평소에 하나님 알기를 중요시하고, 자신 인식하기를 중요시하고, 실행하기를 중요시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역사를 얻을 수 있고, 항상 하나님의 인도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 설사 소극적인 정형이 있더라도 양심의 역할로 말미암아, 또는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으로 말미암아 즉시 돌려세울 수 있다. 사람의 성정은 모두 자신의 실제 정형과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를 인식함과 동시에 변화되는 것이다. 자신을 인식하려는 사람, 자신을 털어놓으려는 사람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깊든 얕든, 많든 적든 모두 인식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이자 사람이 얻은 것이고 사람 자신의 수확이다.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사람은 토대가 있고 이상(異象)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육신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확신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고 말씀하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방해하든 자기의 입장을 세울 수 있고, 하나님의 증거를 굳게 설 수 있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기가 깨달은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다. 그가 늘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면,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인식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영원히 간증을 굳게 서려는 심지(心志)가 있게 될 것이다.

분별하기를 중요시하고, 순복하기를 중요시하고,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기를 중요시하여 영적으로 민감하게 된다는 것은 일이 닥치면 곧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빛 비춤과 깨우침을 얻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민감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는 모든 것은 사람의 영을 소생시키기 위한 것이다. 왜 하나님은 늘 사람이 마비되고 멍청하다고 말씀할까? 그것은 사람의 영이 이미 죽었고 이미 어느 지경까지 마비되어 영의 일에 대해 지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역사는 사람의 생명이 자라게 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사람의 영이 살아나게 하여 영 안의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늘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정도에 이르면 사람의 영이 이미 소생되었음을 설명한다. 그러면 다시 어떤 일이 임하게 될 때 바로 반응이 생길 수 있는데, 설교를 들어도 반응이 빠르고 일이 임해도 반응이 빨라진다. 이러면 영적으로 민감하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겉면의 일을 들으면 반응이 매우 빠르지만, 실제에 진입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영 안의 세부적인 것에 대해 말하기만 하면 마비되고 멍청하여 콕 찍어 지적해 줘야 깨닫게 되는데, 이것은 다 영 안이 마비되고 멍청하며 영 안의 일을 적게 체험한 표현이다. 어떤 사람은 영이 민감하고 분별이 있어 자신의 정형에 맞는 말을 듣게 되면 얼른 적어 두었다가 나중에 체험할 때 그것에 따라 체험하고 자신을 변화시킨다. 이런 사람은 영이 민감한 사람이다. 왜 그의 반응이 그렇게 빠를 수 있을까? 그것은 그가 일상생활에서 그런 방면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 방면을 언급할 때 마침 그의 내면과 대조되면 즉시 받아들이는데, 그것은 사람이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면 즉시 받아먹는 것과 같다. 사람이 배고프지 않으면 주어도 반응이 그렇게 빠르지 않다. 네가 늘 하나님께 기도하면 일이 닥칠 때 즉시 반응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 일에서 어떻게 요구하는지,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반응이 바로 있게 된다. 지난번에 그 일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했었는지 보았기 때문에, 네가 오늘 또 같은 일이 임하게 되면 어떻게 그 정형에 진입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네가 늘 이렇게 실행하고 늘 이렇게 체험하면서 어느 정도에 이르게 되면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네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말한 것인지, 영 안의 어떤 정형들에 대해 말한 것인지를 알고, 핵심적인 것을 잡아 실행할 수 있다면, 너는 체험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이 방면이 부족할까? 그것은 실행 방면에 공을 들일 때가 적기 때문이다. 비록 진리를 실행하기 원할지라도 섬기는 방면의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 삶 속의 세부적인 부분의 진리에 대해 아직 꿰뚫어 보지 못하여 일이 닥치면 멍해진다. 그러면 거짓 선지자나 거짓 사도가 와서 너를 꾀어 갈 수 있다. 분별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늘 영 안의 일, 즉 하나님은 어떻게 하는지,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는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어떤 것인지, 어떤 사람과 접촉해야 하고 어떤 사람과 단절해야 하는지에 신경 써야 한다. 이런 것은 다 먹고 마시고 체험하는 가운데서 중시해야 한다. 늘 이렇게 체험하면 많은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고 분별도 생긴다. 어떤 것이 성령의 징계인지, 어떤 것이 사람의 뜻에서 나온 책망인지, 어떤 것이 성령의 인도인지, 어떤 것이 환경의 지배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안에서 깨우쳐 준 것인지 하는 이런 것에 대해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면 분별이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성령으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알고, 어떤 것이 패역 성정인지를 알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신의 패역을 벗어 버려야 하는지, 이런 진리의 세부적인 부분도 알아야 일이 닥치면 적합한 진리로 대조해 볼 수 있고, 적합한 이상(異象)을 토대로 할 수 있으며, 매사에 원칙이 있게 되고, 진리에 따라 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너의 삶에 하나님의 깨우침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할 것이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그를 추구하는 그 어떤 사람도 섭섭하게 대할 리가 없고, 그를 살아내고 그를 증거하는 그 어떤 사람도 섭섭하게 대할 리가 없으며, 진심으로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을 저주할 리가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자신의 실제 정형 인식하기를 중요시하고, 자신의 실행과 자신의 인식을 중요시하면, 일이 닥칠 때 깨우침을 받고 실제적인 인식을 얻게 될 것이며, 매사에서 실행 길이 있고 분별이 있게 될 것이다. 진리가 있는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방해하는 일이나 지나친 일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런 사람은 진리로 말미암아 보호를 받게 되었고, 더 많은 인식과 더 많은 실행 길을 얻게 되었으며, 성령이 역사할 기회와 온전케 되는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되었다.

─────────

① 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 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 비미은장(卑微隱藏): 낮추고 드러내지 않다.

④ 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이전 말씀: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게 된다

다음 말씀:성령의 역사와 사탄의 역사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