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6) 제 1 부

그간 주요하게 덕행 측면의 다양한 말들이 지닌 본질을 교제하고 분석했다. 또한, 갖가지 말들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역시 분석했다. 이러한 덕행 측면의 갖가지 말들은 주로 중국 전통문화가 모두에게 끼친 크고 작은 영향을 보여 주는데, 그 영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번 예배에서 덕행 측면의 어떤 말들을 교제하고 폭로했느냐? (지난번에 하나님께서 “군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다.”라는 말을 교제하고 폭로하셨습니다.) 덕행 측면의 말을 교제할 때 전반적인 환경의 문제를 언급했었다. 시대와 사회의 전반적인 환경, 그리고 각국의 정치 판도가 얼마나 달라지든, 전통문화 속 덕행 측면의 온갖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이용해 인류를 패괴시키고, 사람의 사상과 덕행 면에서 패괴시키고, 마음 깊은 곳까지 패괴시키는 사탄의 행각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전통문화의 폐해가 인류에게 끼치는 영향은 결코 시대가 변하고 생활 환경이 변한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이 전통문화의 갖가지 말들을 인용하고 전파하며, 전통문화를 국학과 고전으로 떠받든다. 이를 통해 사탄이 이미 덕행 측면의 온갖 말들을 모두의 마음속에 깊숙이 심어 사람들을 깊이 패괴시켰음을 알 수 있다. 사탄은 왜 사람을 패괴시키느냐?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냐? 사람을 겨냥한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을 겨냥한 것이냐? (하나님을 겨냥한 것입니다.) 사탄의 본질을 인식하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근본적 이유와 그 과정을 인식하려면 이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사탄에 의해 패괴되느냐?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어째서 하나님을 적대하는 요소가 있는 것이냐? 진리에 어긋나는 그것들이 어째서 생긴 것이냐? 사람은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건만 어째서 사람은 도리어 사탄처럼 온갖 방면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것이냐?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이냐?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던 내용들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지난번에 교제했던 내용들을 돌이켜 보고 되새겨 보아라. (우선 하나님께서 저희의 현재 상황을 교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는 해도 저희는 사탄이 주입한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 사상 관점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기에 언제 어디서든 사탄의 출구나 사탄의 심부름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왜 그런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으로 사람을 현혹하고 패괴시키는지 그 이유도 교제해 주셨습니다. 사탄이 패괴시키고 괴롭히는 대상은 사람이지만 사탄이 진정으로 겨냥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경륜을 무너뜨리고 망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최종적으로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은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면서 온전케 되고 하나님께 얻어지는 것을 방해하고 가로막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시고도 저지하지 않고 사탄을 봉사만 하는 존재이자 부각물로 이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사탄의 계략 위에 세워진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들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통문화의 갖가지 말들을 폭로하고 분석하여 사탄이 바로 그런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으로 사람을 현혹하고 패괴시킨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셨고, 저희에게 분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도리상으로만 그러한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이 부정적인 사물임을 깨달으면 끝인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사탄의 계략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하고, 그런 다음에는 자신과 대조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사탄에게 속한 사상 관점 중 어떤 것들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지, 일을 처리할 때 자기 속셈 안에 사탄의 어떤 계략이 포함되어 있는지, 자기가 어떤 사탄 성품을 드러내는지를 하나님 말씀 안에서 반성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이러면 도리상의 인식과 단순한 분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의 사상과 마음을 패괴시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과 사상 속에 주입된 사탄의 갖가지 사상 관점과 그릇된 주장, 황당한 이론 중 덕행 측면의 여러 말들은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를 대표하는 것들인데, 이는 중국 전통문화의 대표적인 전형이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사상 관점은 기본적으로 사탄의 사상과 본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본성을 대변한다. 사탄이 이러한 것들로 사람을 패괴시키면 최종적으로 어떠한 결과에 이르느냐? (사람이 하나님과 대립하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대립하게 되는 결과에 이른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느냐? (사탄의 출구이자 심부름꾼이 되며, 살아 있는 사탄이 됩니다.) 사람이 사탄의 출구가 되고 사탄의 화신이 된다. 패괴된 인류는 곧 사탄의 대변인이 된다. 패괴된 인류가 하는 말에 포함된 속셈과 목적, 사상 관점, 그리고 드러내는 패괴 성품은 사탄의 출구이고 사탄의 표출인 것이다. 이는 인류의 생존 법칙과 처신, 처세에 관련된 각종 사상 관점이 모두 사탄에게서 왔고 사탄의 본성 본질을 대변한다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한다. 또, 패괴된 인류는 살아 있는 그 자체로 사탄의 화신이요, 사탄의 후예이자 사탄의 부류임을 완벽하게 증명한다. 패괴된 인류가 살아가는 것은 곧 사탄이 살아가는 것이고 마귀가 살아가는 것이다. 사탄의 화신이 된 인류는 사탄을 대변한다. 사탄의 후예든 사탄의 화신이든, 아무튼 인류는 모두 사탄의 부류이다. 하나님 입장에서 이러한 인류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반하는 인류이고, 하나님의 원수이자 적대 세력이다. 이러한 인류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이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처음에 창조된 그 인류가 아니다. 인류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며 사탄의 패괴 성품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내적 상태와 양상으로 살아가는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때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느냐? 사탄이 사람을 최고로 깊고 심각하게 패괴시켜 완전히 사탄의 화신이자 출구로 만들었고, 사람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하나님과 대립각을 세운 것이 그 배경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시작했다. 이것이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실제 상황이고, 하나님이 말세에 진리를 선포하여 심판 사역을 함으로써 사람을 구원하는 실제 배경이다. 사람이 이러한 사실의 진상을 알면 어떤 이점이 있겠느냐? 한편으로는 사람의 본질과 사탄의 본질,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법, 사탄의 사악함을 인식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경륜의 근본 취지를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하면서 나타내는 하나님의 전능, 권병, 지혜, 능력을 인식하게 된다. 사탄의 본질과 사악함, 그리고 패괴된 인류의 본성 본질이 어떠한지 인식하는 것 외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본질을 인식하는 데에는 크게 하나님의 전능, 권병, 지혜, 능력을 인식하는 것이 포함된다. 방금 말한 몇 가지 측면에서 하나님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나님이 사역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배경을 보면, 구원 대상인 인류는 이미 갓 창조되었을 때의 인류가 아니라 사탄에게 수천 년 동안 패괴된 인류이다.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은 더 이상 백지상태가 아니며, 생각과 성품도 백지상태가 아니다. 진작에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되었다. 하나님이 구원하는 것은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고, 유혹당하고, 통제당하고, 농락당하고, 유린당한 피조물이다. 이런 지음 받은 인류에게서 그들 안에 있는 사탄의 것, 사탄의 성품을 제거하거나 변화시키기란 사람의 눈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로 보일 것이며, 더 나아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보기에 사람의 사상 관점을 바꾸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사탄의 것들을 정결케 하고,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강산은 쉽게 변해도 본성은 바뀌기 어렵다.”라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러한 지음 받은 인류를 상대로 그들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사역하면서 그 어떤 이적과 기사도 나타내지 않고, 하나님의 진짜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도 않으며, 사람 눈에 권병과 위력이 있어 보이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즉, 말세에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을 구원할 때는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고, 실제와 현실에서 벗어난 일을 하거나 육신의 인성을 뛰어넘는 행사를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렇게 초자연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대신 말씀으로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말씀으로 사람을 폭로하며, 말씀으로 사람의 패괴를 정결케 한다. 오로지 말씀으로 이러한 사역을 하기 때문에 사람 눈에는 더욱더 성공할 수 없는 일로 보인다. 심지어 이를 말장난으로 여기는 사람은 더 많다. 사람은 하나님이 오로지 말씀으로, 방식과 각도 그리고 내용을 다양하게 한 말씀으로 사람에게 공급하여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탄은, 이는 하나님이라면 완전히 이룰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더더욱 믿지 않고, 하나님에게 그 일을 이루어 낼 능력, 권병, 지혜가 있음을 더더욱 믿지 않는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이 말씀하고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지음 받은 인류가 보기에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까지는 “하나님은 말씀하면 반드시 책임지고, 책임지는 이상 반드시 이루며,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영원까지 지속된다.”라는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서 이루어졌다. 즉,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사실을 미리 체험해 본 것이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방식을 보면 오로지 말씀으로 공급하고, 양육하고, 폭로하고, 형벌하고, 심판하고, 채찍질하고, 경고하고, 일깨우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말씀의 단순한 의미와는 다른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는 기본적인 말 이외에, 사람이 더욱 잘 볼 수 있고 사실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생명이 있고, 하나님 말씀이 곧 생명이며, 그것은 패괴된 인류의 생활을 위해 공급하고 패괴된 인류가 생명 측면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공급한다는 점이다. 능력과 권병 면에서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생존 현황, 사상 관점, 이미 사탄에게 깊이 패괴된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이 선택하는 길과 인생의 방향, 인간의 인생관과 가치관까지도 바꿀 수 있다. 네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네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만 있다면, 더 나아가 네가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네 자질이 어떻든, 네가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이고 추구하려는 의지가 강하든 약하든, 네 믿음의 크기가 어느 정도이든, 하나님 말씀이 반드시 너라는 사람을 바꾸고 네 인생관과 가치관, 네 사상,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네 관점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네 생명 성품을 변화시킬 것이다. 자질이 부족하고 진리를 추구할 의지가 없거나 심지어 진리를 추구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어쨌든 하나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면, 그의 잠재의식 속에는 사탄과 세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비롯되는 올바른 관점과 견해를 어느 정도 갖게 된다. 또한 긍정적인 사물,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진리 원칙과 인생의 올바른 방향 및 목표에 대한 동경과 갈망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이 사람이 바란 것이든 아니든, 사람의 관념에 맞는 것이든 아니든, 하나님의 요구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든 아니든 사람을 대상으로 이룬 그 모든 성과와 그 모든 현상은 하나님 말씀이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점은 그 어떤 세력도 하나님 말씀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에는 권병이 있고, 게다가 하나님 말씀의 권병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이론, 철학, 지식, 논조, 사상 관점으로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에 권병이 있다는 것의 실제적 의미이다. 이 점은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이미 뚜렷이 드러났다. 하나님 말씀에는 권병이 있으며,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사탄이 사람 마음속 깊은 곳에 심어 놓은 패괴 성품을 정결케 하고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다. 물론, 또 한 가지는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 곳곳에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난다. 하나님 말씀의 행간에서만이 아니라 말씀의 방식, 내용, 말씀할 때 서는 각도, 심지어는 말씀의 어투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지혜는 어떤 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느냐? 우선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이 말씀하는 다양한 방식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갖가지 사역의 방식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타나는 한편, 하나님의 사역에서도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이 임하는 각각의 환경과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깊이 느낄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은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알맞은 공급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너를 도와줄 수 있고 너를 붙들어 주고 너에게 공급해 줄 수 있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너를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네가 다시는 연약해지지 않도록 굳세지게 하고, 언제 어디서나 너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바꾸어 스스로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사탄에게 속한 것들을 내려놓게 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린 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요구와 말씀에 따라 행하고 실행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한 측면이다. 그 밖에,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사역하는 방식 또한 아주 다양하다. 때로는 은혜를 베풀고, 때로는 빛 비춤과 계시를 준다. 물론 채찍질과 징계라는 방식으로 사람을 뉘우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속 깊이 가책을 느끼게 하고, 진실로 하나님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통회하고 회개하게 함으로써 손으로 행하는 악을 내려놓게 만들고, 더 이상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자기 뜻과 사탄을 따르지 않고 대신 하나님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서 실행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에게서 이루어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령의 역사가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인데, 성령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역사한다. 물론 성령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든, 개개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두 다양한 방식의 성령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성령 역사, 하나님의 사역은 그 방식이 다양하든 아니면 여럿 중 한 가지 방식이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역이 언제 어디서나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그것을 필요로 함을 느끼게 한다. 성령은 언제 어디서나 역사할 수 있고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는데, 공간, 지리,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 규칙을 어지럽히지도 않고, 사람의 마음을 교란하지도 않는다. 더욱이 하나님이 인류에게 정해 준 그 어떤 법칙도 파괴하지 않는다. 이렇게 조용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역사하여 한편으로는 말씀으로 명확하게 알려 주고, 가르치고, 깨우쳐 주고, 인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에게 역사하여 사람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말씀의 공급하에 살게 한다. 당연히 하나님의 사역과 성령의 역사에 따라 사람의 성품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되고 생각이 바뀌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믿음도 점차 커진다. 사람에게서 이 모든 결실이 맺어지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자 하나님 사역의 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역하여 사람을 이끌고 공급하는데, 누구든 이를 누릴 권리와 기회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지금보다 열 배, 스무 배, 심지어 백 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더라도 하나님은 똑같이 그들을 돌볼 수 있고, 그러한 사역을 해낼 수 있으며, 얻게 되는 결실도 언제나 같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각 방면의 진리를 모두 선포하여 온 인류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준다. 하나님은 각기 다른 시기와 환경에 놓인 사람에게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사역 방식으로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인도하고, 개개인에게서 각기 다른 결실을 본다. 설령 네가 지금 ‘나는 하나님의 사역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아직도 연약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크지 않은걸.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지도 않았고. 지금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도 여전히 예전처럼 뜨뜻미지근한 것 같아. 난 별로 성장하지 못한 느낌이야.’라고 생각할지라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네가 얼마나 연약하든, 설사 너 스스로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하려면 한참 멀었다고 느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역이 이미 네 마음을 사로잡았다. 네가 진리 추구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구원받는 것의 의미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와 하나님 말씀의 내용이 네게 희망을 주었고, 네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사실에 대한 기대가 있다. 지금 네 믿음의 크기가 얼마나 되든, 지금 네 분량이 어떻든, 네가 기대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느냐? 인류에게는 하나님 말씀이 필요하고, 하나님 말씀은 인류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준다. 하나님 말씀이 이미 네 마음을 사로잡았고, 너는 부지불식간에 어느 정도는 하나님 말씀을 마음 깊숙이 받아들였다. 물론 이 사실은 진리에 크게 관심이 없고,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과 구원받는 일에 대해 아직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 얻는 결실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 혹은 징후로 볼 때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는 하나님의 능력, 권병, 지혜가 가득 담겨 있다. 이는 다른 하나의 일을 더더욱 실증한다. 즉,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에 햇빛, 물, 공기는 없어도 될지라도 하나님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공급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 공급, 목양, 그리고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진리만이 인간에게 희망과 광명을 가져다주고 살아갈 목표와 방향을 알려 줄 수 있다. 사람은 이를 모두 보았다. 사탄이 덕행 측면에서 인류를 패괴시키고 있는 실태를 폭로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역사하여 사람을 구원하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이루어지는지 그 실황과 실태를 아는 것 외에도,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인식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 권병, 지혜를 알아야 한다.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에 있어 하나님은 사탄이 인간을 패괴시키기 시작한 초기에 인류를 구원하고자 서두르지 않았다. 4천 년 전이나 6천 년 전에 인류를 구원하고자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순서대로 차근차근 행했다. 인간이 뱀에게 유혹당하고,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죄악이 심각해졌고, 세상이 홍수로 멸해졌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인류를 인도했다. 사탄이 사람을 점점 더 깊이 패괴시키는 과정에서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했다. 그리고 말세에 이르러 인류가 사탄에 의해 만신창이로 패괴되어 완전히 사탄을 대변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정식으로, 또 공개적으로 인류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그의 마음의 소리를 선포하고, 갖가지 사람, 일, 사물을 대하는 그의 관점과 태도를 선포하고, 인류가 필요로 하는 모든 진리를 선포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정식으로 인류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인류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모든 진리를 공급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바로 인류가 이미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사람의 눈에는 구제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왔다. 하나님은 와서 말씀하고 사역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다니고 그가 선포하고자 하는 말씀을 선포하는 동시에 오직 말씀의 공급만으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사실을 행한다. 창조된 인류 중에는 감히 이 일에 도전하려는 비교적 능력 있는 이가 없다. 사람이 보기에 이는 상당히 어려운 일, 실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의 6천 년 경륜 중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루는 사역을 펼쳤다. 이는 규모가 거대하고 유례가 없는 일이며, 더 나아가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이자 오래 걸리는 일이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말을 하든, 그 내용이 무엇이고 본질이 무엇이든, 자기가 말로 달성하겠다고 한 사실을 그대로 성취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이룰 수 있고,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이 생각으로 계획한 것에 따라 성취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권병이기도 하다. 이것이 사람이 응당 알아야 할 것이 맞지 않느냐? (맞습니다.) 이를 아는 것이 어떤 의의를 가지느냐? 누구든 말해 보아라. (우선은 하나님의 사역에 담긴 지혜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생각도 없고 사탄에게 패괴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사역을 행하시는 게 아니라 사탄의 봉사를 이용하면서 사탄에게 깊이 패괴된 사람들에게 구원 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역이 사람 눈에는 어려워 보이겠지만, 하나님 말씀은 사람에게서 확실히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그 밖에, 저희는 평소 체험 과정에서 자주 패괴 성품에 얽매이고, 어쩔 수 없이 패괴를 드러내고,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때로는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거나 심지어 믿음을 잃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제를 듣고 나니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패괴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패괴 성품은 변화될 수 없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본질적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의 패괴 성품은 변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완벽하게 적절하고 정확한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이루고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하나님 말씀의 결실이 하나 있다. 바로 만물은 전부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권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병과 지혜, 하나님 말씀에서 드러나는 능력을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 본질, 성품을 대변하기에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수 있다. 이 말이 사람에게 무엇을 알려 주느냐? 바로 하나님 말씀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준다. 네가 무엇을 얻든 그것은 보배가 아니다. 금덩이를 얻든, 세상의 드물고 기이한 보물을 얻든 전부 보배가 아니다. 네가 장생불로의 약을 얻는다 해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 네가 도를 닦는 데 성공하여 하늘을 날게 된다고 해도 영원히 산다는 법은 없다. 너는 피조물이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하에 있으며 누구도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만물은 전부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 사람이 이를 알면 무슨 쓸모가 있느냐?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평함과 공의로움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말에, 이 사실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의 공평함과 공의로움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한다면 이 말에 깊은 관심이 생겨서 이 사실을,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길 것이다. 어떤 말씀이었느냐? 만물은 전부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 너희는 이 말을 가슴에 품고 틈날 때마다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이는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이다. 너희는 이 말에서 무엇을 얻었느냐? 말해 보아라. (하나님, 저는 한 가지를 이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은 전부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사람이 변화한 외부 환경을 맞닥뜨리게 되면 사람의 내적 상태가 변하고 하나님을 따르려는 의지도 변하여 불가피하게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해 주신 이 말씀을 떠올리면, 하나님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이 되는 자들을 얻겠노라 저희에게 약속하신 것을 떠올리면, 마음에 힘과 믿음이 생겨나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따르며 본분을 이행할 자신이 생깁니다.) 이 말씀은 너희에게 실행 길을 알려 준다. 어떠한 실행 길이냐? 물질세계의 그 무엇도 추구하지도, 보배처럼 아끼지도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헛되다. 명리와 지위, 눈앞에 있는 물질적 향락, 여자의 예쁜 얼굴, 남자의 신분과 지위 등등, 이 모든 것은 잠깐일 뿐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것들을 보배처럼 아껴 봤자 아무 쓸모도 없다. 쓸모가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이러한 것들은 네 육의 일시적 필요, 기호, 욕망 혹은 기분, 감정 등등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뿐, 네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네 마음이 목마르고 공허할 때, 물질세계의 그 무엇도 네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며 네 마음 깊은 곳의 공허함을 채워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그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너를 만족시키고 네 마음 깊은 곳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깨달으면 네 마음 깊은 곳이 충실해지고,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만족스럽고 든든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쭉 추구해 나가 하나님 말씀이 네 생명이 되면 누구도 네 생명을 앗아 가거나 파괴하지 못한다. 생명을 누구도 앗아 가거나 파괴하지 못하면 너는 무엇을 느끼겠느냐? 더 이상 공허하지 않고,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는 막막하거나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네 안에 하나님 말씀이 내주하고 있으며, 하나님 말씀이 너를 인도하고, 너에게 공급하여 네가 목표와 방향성을 가지고 살게 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사는 데에 의의가 있고 가치가 있다. 이것이 사람이 실제로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실제로 느끼는 이 긍정적인 결실은 어떻게 거두어지는 것이냐?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여 하나님 말씀으로 사람에게서 결실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렇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이 되게 한 후 사람에게서 이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변화하고, 삶의 방식이 변화하고,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방식 및 방법이 달라지고, 따라서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달라진다. 더는 육적인 향락, 물질적 대우, 명리, 지위를 추구하지 않게 된다. 육체가 좋아하는 것들을 추구해 봤자 갈수록 흥미가 식고, 공허해지고, 불안해지고, 고통스러워질 따름이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이 사람의 마음을 점유한 뒤에는 사람 내면에 진리가 생명이 되고 사람 안의 본질과 생명이 바뀌어 사람이 받는 느낌이 달라진다. 사람의 감정, 기호, 희로애락, 인생 목표, 추구 방향, 생존 법칙이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바뀌고,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아 가기를 추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부패, 사망, 파멸에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을 얻는다. 이 생명은 부패하지 않는다.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이러한 생명이 사람 안에서 사라지지도, 물러나지도, 퇴색되지도, 변질되지도 않으며, 사람이 이전처럼 파멸에 직면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이러면 사람의 현재 생존 상태와 생존의 전망이 바뀌는 것 아니겠느냐? 아주 분명하게도 사람 생존의 전망에 변화가 생긴다. 사람의 생명이 퇴색되고, 시들고, 부패하고, 생명에 끝이 있고, 파멸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생명이 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100년을 살든 200년, 300년을 살든, 아니면 1,000년을 살든 사람의 생존 법칙과 생존관, 생존의 의의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이 이렇게 생존하는 것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냐? 전적으로 육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다. 사람의 육은 무엇을 추구하느냐? 금전, 명리, 물질적 향락과 같은 것을 추구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기에 이것들은 정확히 진리에 위배되는 것들이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사람이 이러한 것들 즐기기를 추구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해 주는 데에는 기한이 있다. 사람의 일생은 60~70년 혹은 80~90년이면 끝나고 끝에 다다를 때마다 새로이 윤회하는데, 그러면서 사람의 수명이 생기게 된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기한을 정해 두지 않았다면 사람은 너무 긴 시간을 살아가느라 자기도 지겨워지지 않겠느냐? 20대 때는 하루하루가 신선하고, 아름답고, 행복하다. 40대가 되면 매일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잠자리에 드는 삶이 지루해진다. 60대가 되면 무엇이나 간파한 것 같고, 누릴 것도 어느 정도 누려 보고 고생도 어느 정도 해 보아서 아무것도 재미가 없다. 매일 해가 뜨면 움직이고 해가 지면 쉰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지나간다. 신체의 각종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20대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쯤 되면 끝이 코앞이다. 그러나 사람의 끝이 다가온다고 해서 영혼이 끝날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 육체의 끝이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60~70살, 70~80살이면 수명이 다한다. 아무리 길어 봐야 100살 조금 넘게 사는 것이 고작이다. “장수한 노인이 목을 맨다. 사는 게 지겨운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나이를 너무 많이 먹으면 삶이 귀찮아지고 살기가 싫어진다. 재미가 없는 것이다. 왜 재미가 없겠느냐? 실상은 이렇다. 그러니까 사람은 육으로 살며 하루 세끼를 먹고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겪는다. 매일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이 생활한다. 사람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이러한 것을 간파하게 된다. 볼 것도 다 봤고, 해 볼 것도 다 해 봤고, 체험할 것도 다 체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생이란 게 그저 이렇고, 그 어떤 희망도 기대도 더는 없고, 사람이 산다는 건 공허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삶의 끝이 다가온다. 이렇지 않으냐? (맞습니다.) 바로 이러하다.

조금 전에 “만물은 전부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라는 말을 언급했다. 이 말이 사람에게 알려 주는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 말씀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에게 실행 목표와 방향을 알려 주고, 무엇을 추구하든 그것은 사람이 얻는 하나님 말씀 한마디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준다. 모든 것은 전부 없어지고, 무엇이든 시간이 가면서 퇴색되고, 시들고, 흐릿해지지만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약 네가 하나님 말씀을 얻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했다면,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했다면 너는 하나님 말씀으로 말미암아, 진리로 말미암아 가치를 지니게 되며 네 본질이 이전과 달라진다. “본질이 바뀐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그저 보통 다른 것이 아니라 아주 크게 다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됨으로써 너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없어지지 않게 되고,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을 가지며, 영원한 훗날, 미래, 종착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일을 볼 때 하나님 말씀이 사람에게 중요하냐, 중요하지 않으냐? (중요합니다.) 너무나도 중요하다! 하나님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에는 어떻게 추구해야겠느냐? 무엇을 추구해야 가치가 있고 의의가 있겠느냐? 본분을 이행할 때 힘을 많이 쓰는 것, 많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 아니면 기술을 많이 배우는 것 혹은 도리를 많이 갖추고 설교를 많이 하는 것이냐? (전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유용하겠느냐? 너희는 마음으로 알고 있다. 거울처럼 선명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 얻기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다. “만물은 전부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라는 말을 가슴에 품어야 한다. 언제나 이 말을 잊지 말고 버리지 마라. 네가 소극적이 되거나 연약해질 때, 네게 희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 곤경을 맞닥뜨렸을 때, 네가 교체됐을 때, 네게 책망과 훈계가 임했을 때, 좌절과 실패를 마주했을 때, 지탄받고 정죄당할 때 혹은 네가 득의양양할 때, 모든 방면에서 사람들이 너를 우러러보고 떠받들 때 등등, 어떤 때에도, 어떤 배경 속에서도 너는 이 말을 떠올리고 이 말이 너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오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에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구하고, 하나님 말씀의 도움으로 곤경에서 벗어나고, 네 어려움과 네 마음 깊은 곳의 곤혹스러움을 해결하고,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고, 네 과오와 강퍅함, 패역 등등도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이 네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해야 한다. 이 말은 너희에게 너무나도 유용하다! 네가 자기 책임과 본분이 무엇인지 잊고, 자기가 준수해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잊고, 자기가 서야 할 입장과 각도, 자기 신분과 지위를 잊었을 때 이 말을 떠올려라. 이 말씀이 너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올 것이며, 너를 하나님 말씀에 진입시키고, 그 순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이끌어 주고, 네가 올바른 입장, 관점, 각도에서 자신과 타인, 눈앞에 임한 일과 환경을 바라볼 수 있게 이끌어 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인도하에,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깨우침, 도움하에 그 어떤 문제도 너를 곤란하게 하지 못할 것이요, 그 어떤 문제도 네 진리 추구를 가로막거나 앞으로 향하는 네 발걸음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실행 길 아니겠느냐? (맞습니다.) 너희가 지금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공과는 일이 임했을 때 투덜거리고, 불평하고, 규례를 지키거나 사람의 방식과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와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 말씀이 너에게 공급하게 하고 네 모든 곤란을 해결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가 배워야 할 공과이다. 사탄이 사람을 깊게 패괴시킨 배경 속에서 하나님이 경륜 중 가장 중요한 사역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주제는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결국 여전히 하나님 말씀으로 귀결된다. 무엇을 교제하든 결국 사람이 글귀와 도리를 읊을 수 있음에 만족하거나 매일 하는 신학 이론 공부 혹은 종교 의식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 진입에 있어 가장 시급한 공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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