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4) 제 3 부

지난 시간에는 전통문화에 속하는 덕행 중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는 말에 관해 교제하였다. 오늘은 이어서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에 관해 교제하도록 하겠다. 이 말은 방금 교제한 “사람 덕분에 일을 이루고, 사람 때문에 일을 그르친다.”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불신파의 관점이다. 불신파의 관점은 사람들 가운데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으며,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사람은 말을 하기 시작해서부터 사람에게서, 불신파에게서, 사탄에게서, 이 세상에서 비롯된 각종 말을 배웠다. 즉, 교육 계몽이 시작되면서 부모나 가정으로부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며, 어떤 도덕과 사상, 인격을 갖춰야 하는지 등을 교육받았다. 그러다가 사회에 진출한 후에는 모두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사탄에게서 온 각종 학설과 이론을 주입받는다.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은 모든 사람이 가정이나 사회에서 주입받은, 사람으로서 처신할 때 반드시 갖춰야 할 덕행이다. 이 덕행을 갖춘다면 사람들은 너를 가리켜 고상하고 존귀하고 인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사회에서 추앙받고 우러름을 받는 사람 말이다.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이 사람과 사탄에게서 온 이상, 그것은 우리가 해부하고 분별해야 할 대상이며, 나아가 저버려야 할 대상이다. 왜 이 말을 분별하고 저버려야겠느냐? 먼저 이 말이 옳은지,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맞는지를 보자.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을 실천하는 자, 이런 인품을 갖춘 자가 정말 고상한 사람이겠느냐? 이런 자가 진리 실제를 갖추었겠느냐? 하나님이 말씀한, 피조물이 지녀야 할 인성과 지켜야 할 처신의 원칙을 갖췄겠느냐? 너희는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이 이해가 되느냐? 먼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너희의 말로 해석해 보아라.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으면 힘을 다해 그 일을 잘 처리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럼 정말 그렇게 해야겠느냐? 다른 사람이 네게 어떤 일을 부탁했다는 것은 너를 존중한다는 의미 아니겠느냐? 그는 너를 존중하고 믿으며,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여긴다. 그래서 너는 그가 어떤 일을 부탁하든 승낙해야 하고, 상대의 요구대로 일을 적절하게 잘 처리해서 그를 기쁘고 만족스럽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럼 너는 좋은 사람인 것이다. 이 말의 뜻은 너에게 일을 부탁한 그 사람의 만족 여부가 네가 좋은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사회에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은 무척 쉬운 일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쉽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 기준이 너무 낮으며 고상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덕행 기준을 충족하면 너는 그 일에서 덕행을 갖춘 사람이 된다. 이 말은 네가 신뢰할 만하고 일을 맡길 만한 사람, 신용이 있는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곧 그런 의미이다. 그럼 너희도 이렇게 생각하느냐?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의 평판 기준, 판단 기준에 대해 다른 의견은 없느냐? 만약 너희가 예를 들어 이 말에 대해 반박하고, 이 말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점을 폭로한다면, 그러니까 실제 사례를 들어 이 말의 부정확성을 증명한다면 이 말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너희는 이론적으로 이 말이 분명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실로써 이 말을 무너뜨릴 수 있겠느냐? 예를 들어, 네가 오늘 일이 있어서 이웃에게 장 보는 일을 부탁했다고 해 보자. 너는 구체적으로 어떤 채소를 살지, 얼마나 살지, 언제 필요한지 등을 모두 그에게 설명했다. 얼마 후, 그가 네 부탁대로 장을 봐서 식자재를 제때 보내왔다면, 이를 ‘남에게 부탁을 받고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신용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이는 사소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심부름으로 물건을 사다 준 사람한테 인품이 고상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가 나쁜 짓을 저지를지, 인품은 과연 어떤지 등 이런 것이 ‘남에게 부탁을 받고 최선을 다하는 것’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겠느냐? 설마 ‘남에게 부탁을 받고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덕행의 기준에 이른 것이겠느냐? 고작 요만한 일을 했다고 해서 정말로 인성과 인품이 고상한 사람이라는 의미겠느냐? 어떤 이는 “그 사람은 신용을 중시합니다. 그에게 물건을 갖다 달라고 할 때마다 어떤 것을 얼마나 부탁하든 다 들어주죠. 그는 믿을 만하고 덕행이 훌륭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마음속으로 그를 이렇게 정의하고 평가한다. 이런 평가가 적합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는 이웃이고, 이웃 사이에는 보통 얼굴 붉힐 일도, 서로 피해를 주는 일도 만들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마주치기 때문이다. 만약 갈등이 생긴다면 앞으로 같이 지내기가 불편해질 것이다. 어쩌면 그는 이런 생각에서 너를 도와줬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겸사겸사 네 부탁을 들어줬을 수도 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닌 데다가 너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어 이는 그에게 이득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네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면 앞으로 너에게 부탁하기가 더 편해지지 않겠느냐? 어쩌면 앞으로 네게 뭔가 큰일을 부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너는 어쩔 수 없이 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이는 나중을 위한 대비가 아니겠느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돕고 왕래하고 사귀는 것은 다 목적이 있다. 만약 그가 너를 쓸모없다고, 앞으로 별로 부탁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면 네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네 가족 중에 의사나 변호사, 고위 공무원, 혹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 있어서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기에 나중을 위해 네 부탁을 들어준 것일 수도 있고, 이다음에 어디에 너를 이용할지도 모를 일이다. 최소한 너희 집에 가서 공구를 빌리는 것만 해도 수월해진다. 네가 그에게 어떤 부탁을 한다면 며칠 후 그가 뭔가를 빌려 갈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익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네가 무슨 부탁을 했는데 그가 싱글벙글 웃으며 흔쾌히 승낙했다고 해 보자. 언뜻 보기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아도 사실 그는 머릿속으로 치밀하게 계산을 마쳤다. 누구의 마음도 단순하지 않다. 한번은 내가 어떤 지역에서 옷을 수선하려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날은 수선집 여사장 딸이 본국으로 귀국하는 날이라 여사장은 차가 있는 이웃에게 딸을 공항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택시비를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웃이 수락하자 여사장은 무척 기뻐했다. 하지만 그 이웃도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공짜로 부탁을 들어주기가 싫었던 그는 느릿느릿 옷 한 벌을 꺼내 들며 말했다. “이 옷, 고칠 수 있겠어요?” 수선집 사장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의 표정은 ‘이 사람, 이렇게까지 자기 잇속을 챙기려고 하는 거야? 그렇게 흔쾌히 승낙하더니, 공짜로 데려다줄 생각이 없었구나.’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1, 2초 후에 바로 “그럼요. 거기 두고 가세요. 제가 잘 수선해 드릴게요.”라고 말하며 돈 얘기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보아라, 사람 한 번 데려다주는 대가로 옷 수선이 이루어졌다. 그러니 손해 보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제가 간단한 일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일도 간단하지가 않다. 이 인간 사회에서 사람은 누구나 거래 심리를 갖고 있고, 누구라도 거래하고 상대에게 요구하며, 이익만 취하고 손해는 보지 않으려 한다. 혹자는 “남에게 부탁을 받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중에는 아무 이득도 없이 그저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은 정말 그런 덕행을 갖추었습니다.”라고 하는데, 그 말은 옳지 않다. 그는 돈도 물질도 바라지 않고, 어떤 이익도 바라지 않았을지라도 평판은 고려한다. 이 ‘평판’이란 무엇이냐? 바로 ‘나는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어. 상대가 내 앞에 있든 없든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해 주면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겠지. 최소한 몇몇 사람들이라도 내가 좋은 사람, 인품이 고상한 사람,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사람들 사이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좋은 평판을 들을 수 있다면, 그래도 할 만하지!’라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이왕 우리에게 부탁한 일이니 당사자가 그 자리에 있든 없든 이 일은 끝까지 잘 처리해 주어야 합니다. 길이 이름을 남기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뒤에서 비난하는 말이나 신용이 없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죠. 우리 후손들이 억울하게 무시당하게 할 수는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역시 평판이다. 재물이 중요한 사람들도 있지만, 명예와 이익이 중요한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서 ‘평판’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평판’은 사람들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석되느냐?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인품이 고상한 사람, 그리고 롤모델, 현자, 성인으로 불리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어떤 일에서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을 실천하고 이런 인품을 갖춘 덕에 영원히 칭송받으며 자손 대대로 그 덕을 누리게 된다. 보아라, 이것은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훨씬 크다. 그러므로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소위 덕행의 기준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출발점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저 사람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만도 아니고, 어떤 이익이나 평판을 위해서만도 아니고, 이번 생이나 다음 생을 위해서만도 아니다. 당연히 남들에게 비난을 듣거나 나쁜 평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그러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사람이 그런 일을 하는 출발점은 단순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인성의 관점이나 인류의 사회적 책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그런 일을 하는 속셈이나 출발점을 보면,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을 지키는 목적이 그리 단순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방금 사람이 일하는 속셈과 목적, 야심과 욕망의 관점에서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덕행에 관한 말을 해부하였다. 이는 한 가지 측면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겠다.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의 또 한 가지 잘못된 점은 무엇이냐? 사람은 ‘남에게 부탁을 받고 최선을 다하는’ 행동을 더없이 고상하게 여기는데, 자기가 부탁받은 그런 일이 정의로운 것인지 아닌지 분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어찌 모르느냐? 만약 누군가가 네게 부탁한 일이 매우 평범한 일, 겸사겸사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언급할 가치도 없다면, 최선을 다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사람과 사람 간에 왕래하고 함께 지내며 서로에게 부탁하는 것은 무척 정상적인 일이며,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기 때문에 무슨 인품이 고상하니 저열하니 하는 수준까지 갈 것도 없다. 하지만 네가 받은 부탁이 매우 중요하고, 생사나 운명, 미래와 관계가 있는 큰일인데도 평범한 일처럼 대하며 분별없이 최선을 다한다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 어떤 문제가 있겠느냐? 만약 네가 받은 부탁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정의롭고 긍정적인 일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어떤 피해나 손해도 주지 않고 혹은 인류에게 그 어떤 부정적인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면 그 부탁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도 괜찮다. 그것은 네가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이자 지켜야 할 원칙이다. 그러나 네가 받은 부탁이 정의롭지 못한 일, 다른 사람이나 인류에게 피해를 주고, 교란과 방해가 되고, 심지어는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는 일인데도 여전히 최선을 다한다면, 너의 인품은 과연 어떻다고 할 수 있느냐? 인품이 좋으냐, 좋지 않으냐? (좋지 않습니다.) 어떤 점에서 좋지 않으냐? 어떤 사람은 불의한 자를 따르거나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되어 서로를 지기로 여긴다. 또 그 친구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상관하지 않고 친구의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서 들어준다. 친구가 사람을 죽여 달라고 하면 죽이고, 누구를 해쳐 달라고 하면 해치고, 뭔가를 망쳐 달라고 해도 들어준다. 친구가 부탁하는 일이라면 분별없이, 또 생각 없이 가서 저지른다. 그러면서 그것 역시 ‘남에게 부탁을 받고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의 인성과 인품은 어떠냐? 좋으냐, 나쁘냐? (나쁩니다.) 나쁜 사람도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할’ 수 있지만, 그가 들어준 그 부탁들, 최선을 다한 그 일들은 모두 악행으로, 부정적인 사물에 속한다. 남의 부탁을 받아 다른 사람을 해치고, 죽이고, 재물을 빼앗고, 복수하고, 법을 어기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이는 전부 사람을 해치고 망치는 일로, 악행과 범죄에 속한다. 만약 나쁜 일을 부탁받았는데도 전통문화에 언급된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을 따르느라 “저를 믿고 존중해서, 또 저를 남이 아니라 친한 친구로 생각해서 저한테 맡기셨으니 저는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을 지켜서 목숨을 걸고 당신 부탁을 들어줄 것이고 절대 번복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그야말로 머저리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머저리 중의 머저리다. 그럼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이런 일을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만약 네가 부탁받은 일이 간단한 일, 남과 교제하면서 있을 법한 흔한 일이라면 그 부탁을 들어줬다고 해서 덕행이 고상한지 여부를 논할 수는 없다. 그런데 만약 네가 받은 부탁이 무척 중요한 일, 무척 큰 일이라면 그것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네 자질로 해낼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한다. 네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네 능력에 맞춰 행동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 일이 부정적인 일, 법에 저촉되는 일, 남의 이익이나 목숨, 나아가 미래와 앞날에 해가 되는 일인데도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덕행의 기준을 지킨다면 너는 머저리다. 이러한 면에 비추어 본다면,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은 사람이 남에게 부탁을 받았을 때 지키는 원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정확하지 않으며, 허점과 문제점이 너무 큰 데다가 사람을 심각하게 미혹한다. 많은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인 다음 가감 없이 이 말로 타인의 덕행을 평가한다. 물론 이 말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자신의 덕행을 제약한다. 인간 세상에서 남에게 부탁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으며, 또 정의롭고 긍정적인 부탁, 남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부탁,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부탁을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어찌 모른단 말이냐? 그런 사람은 전혀 없다. 그러므로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기준으로 사람의 덕행이 좋은지 나쁜지를 가늠한다면, 의문점이 너무 많고 문제가 너무 커서 헤아리기 힘들 것이다. 또한, 그것이 사람에게 잘못된 이념을 주입하고, 이런 일을 대하는 잘못된 원칙, 방향을 주입해서 사람의 사상을 미혹하고 마비시키고 오도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어떻게 분석하고 해부하든 존재 가치가 없고, 실행해서도 안 된다. 이 말은 사람에게 이로운 점이 단 하나도 없다.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에는 또 한 가지 잘못된 점이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남을 이용하고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악인들, 기득권층, 사회에서 지위와 권력을 지닌 사람들 입장에서 이 말은 그들에게 틈탈 기회가 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지배하고 조종하는 핑계가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정확한 타깃이 되는 사람을 이용해서 그들을 위해 일하게 만든다. 반면, 그들을 위해 일하지 않고 충성을 바치지 않는 사람들은 남이 부탁한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 덕행이 낮은 사람, 신뢰할 수 없는 사람, 우러름과 존중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 사회에서 비천한 사람으로 정의되어 미움받는다. 예를 들어, 네 상사가 어떤 일을 부탁했을 때, 네가 ‘상사가 부탁을 한 이상 어떤 일이든 수락해야 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칼 위에서 춤을 추고 불 속에 뛰어드는 일이라도 해야만 한다고.’라는 생각에서 수락했다고 해 보자.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그가 상사이기에 네가 감히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그는 수시로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야말로 좋은 동료지.” 하면서 너를 자극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네게 그런 이념을 주입했고, 미리 예방 주사를 놓아 네가 마음의 준비를 하게 했다. 그가 어떤 요구든 꺼내는 순간 거절하지 말고 선뜻 대답해야지 안 그랬다가는 뒤끝이 안 좋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너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그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인맥을 이용하고 뒷거래를 하며 뇌물을 주는 등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그렇게 결국 일을 성사시켰지만, 돈을 쓴 일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고 어떤 요구도 할 수 없다. 또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지요. 상사가 저를 존중하고 높이 평가해 주었으니 저는 최선을 다해 그 일을 잘 처리해야 하는 겁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사실 네가 얼마나 고생하고 힘들었는지 아는 사람은 너 자신뿐이다. 일을 해내면 사람들은 너를 덕행이 고상한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일을 해내지 못하면 사람들은 너를 무시하고 멸시하며 미워할 것이다. 사회의 어떤 계층, 어떤 집단에서든 누군가가 너에게 부탁을 하면 반드시 힘닿는 데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들어주어야지 거부해서는 안 된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처럼, 다른 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이상 끝까지 최선을 다해 그 일을 원만히 성사시키고 상대가 만족할 만큼 해내서 보고할 수 있어야 한다. 설령 상대가 관여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온 힘을 다해 처리해야 한다. 사돈의 팔촌처럼 너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네가 사회적으로 좋은 직업을 갖고 있거나 유명하거나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이런저런 일을 부탁한다면, 그럴 때는 들어주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 사실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복잡한 사회관계 때문에, 또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사상의 여론적 압박 때문에 너와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들이 요구한 일을 너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물론,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한 사람에게 원망을 사거나 사회적 관계 하나가 줄어들 뿐이다. 어쩌면 어떤 사회 집단에서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뭐가 어떻단 말이냐? 사실 뭐가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 네가 그들과 함께 사는 것도 아니고, 네 운명이 그들 손에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왜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단 말이냐? 거기에는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여론이 너를 결박하고 속박하고 압박하고 있으며, 너는 어떤 사회 집단에 있든 늘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도덕 기준과 사회 여론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네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거나 피조물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도덕 기준에 관한 말과 사회적 여론이라는 무형의 족쇄에 얽매인 것이다. 너는 왜 그것에 얽매이겠느냐? 먼저, 조상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덕행에 관한 말이 옳은지 그른지, 그것을 지켜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너는 전통문화가 가져오는 그 사회적 압박이나 사회적 여론을 뿌리칠 힘도, 용기도 없으므로 그것의 속박과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바로 사람은 어떤 사회 집단이나 단체 속에 있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품이 고상한 사람, 좋은 사람, 신용이 있는 사람, 신뢰하고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고,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 남들에게 존경받고, 모두가 자신을 냉혈한이나 별종이 아닌 존엄성과 인간미, 의리를 갖춘 사람으로 봐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네가 사회에 녹아 들어가고, 또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기를 바란다면, 먼저 그들에게 도덕과 품성이 고상한 사람, 인격과 신용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그들이 어떤 요구를 하든 너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만족시키고 기분 좋게 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 입에서 너라는 사람은 신용이 있고 인품이 고상하다는 좋은 평가를 얻고, 누구나 너와 사귀기를 원하게 되면, 너는 자신이 존재감 있게 살고 있다고, 사회와 사람들, 주변의 동료며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있어서 삶이 무척 풍요롭고 만족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네가 그들과 다르게 살아간다면, 네 사상 관점, 걸어가는 인생길이 그들과 다르다면 아무도 네가 도덕과 품성이 고상하고, 신용이 있고, 일을 맡길 만하고, 존엄성을 갖춘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너를 버리고 따돌릴 것이며, 너는 압박감과 슬픔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어째서 압박감과 슬픔을 느끼겠느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네 자존심은 어디에서 오느냐? 너에 대한 사회와 사람들의 인정과 수용 정도에서 온다. 만약 그들이 너를 전혀 수용하지 않고, 인정도 하지 않으며, 아무런 칭찬도, 높은 평가도 하지 않는다면, 네게 어떤 부러움이나 호감, 감탄의 시선도 보내지 않는다면 너는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무능하게 살고 있다고, 너무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하며, 네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답답함과 괴로움에 빠져 살게 될 것이며,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그 사람들 사이에, 사회에 녹아 들어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도덕적 기준은 이런 사회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몹시 중요한 일이다. 이 또한 어떤 사람의 도덕 품성과 그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럼 이 판단 기준이 정말 옳으냐? 결코 옳지 않다. 심지어는 황당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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