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 제 3 부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여 얻을 수 있는 성과이다. 오직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야만 스스로를 진실로 인식할 수 있다. 심판과 형벌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기껏해야 자기가 저지른 실수나 잘못을 인정할 뿐, 자신의 본성 본질에 대해서는 밝히 알기 힘들다. 은혜시대에 주를 믿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죄를 짓지 않고, 행위 면에서도 좋아졌지만 생명 성품에는 줄곧 변화가 없었다. 하나님을 믿는데도 하나님을 대적하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배반하기까지 했다. 왜 그랬겠느냐? 패괴된 인류는 이 문제의 근원을 깨닫기가 몹시 어렵다. 사람은 어째서 모두 사탄 성품을 갖고 있겠느냐?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켰으며, 사람은 모두 사탄의 헛소리와 철학을 받아들여 패괴 성품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의 성품은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이 되었다. 이는 사람이 가장 인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은 인류를 구원하여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가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사탄은 수천 년 동안 인류를 패괴시켰으며, 사탄의 본성은 이미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그래서 어떤 패괴 성품이든 한두 번 반성하고 인식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패괴 성품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드러나므로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사탄 성품과 오랫동안 싸워야 한다. 그리하여 사탄을 이기게 되면 패괴 성품을 철저히 벗어 버릴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며,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고, 또 진리를 실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패괴를 드러내지 않고 생명 성품에 변화가 생겨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각각의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과는 그리 눈에 띄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패괴 성품이 드러날 수 있다. 그러면 너는 소극적으로 변하거나 침울해질 것이다. 하지만 단념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며 하나님을 앙망하고 의지해라. 그렇게 2~3년 유지하면 진정으로 진리를 실행하게 되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찾아온다. 그때 너는 비로소 모든 실패와 노력, 성과가 성품 변화의 과정,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는 과정에서 나타난 좋은 신호였음을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비록 사람의 의식으로는 각각의 변화를 전혀 느낄 수 없겠지만, 돌이킬 때마다 생기는 성품 변화는 그 어떤 것, 그 어떤 행동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이는 사람이 성품 변화와 생명 진입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다. 성품 변화를 추구할 때는 반드시 이렇게 실행해야 한다. 물론, 사람이 성품 변화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성품 변화는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갑작스럽게 경천동지할 변화가 생겨 놀람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시나브로 생기는 변화이다. 진리를 실행하게 되면 수확이 생긴다. 이렇게 3년, 5년, 10년을 보낸 후 고개를 돌려 보면 10년 전과 후의 네 성품이 180도 다르다는 사실에 놀람을 금치 못할 것이다. 어쩌면 네 성격이나 성미, 생활 습관 등에는 변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드러내는 성품이나 상태, 태도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서 마치 다른 사람 같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 변화가 생기겠느냐? 그 10년 동안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을 거듭하여 겪고 수많은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먼저 일을 바라보는 네 관점과 인생관, 가치관에 변화가 생겼으며, 생명 성품도 따라서 변화되고, 생존을 지탱해 주는 모든 토대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렇게 변화가 생기는 과정에서 너는 조금씩 완전히 다른 사람, 새사람이 되었다. 비록 네 성격과 성미, 생활 방식, 나아가 언행에는 변화가 없지만, 생명 성품에 변화가 생겼다. 이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변화, 본질의 변화이다. 성품 변화의 신호는 무엇이겠느냐?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이겠느냐? 먼저,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긴다. 즉, 진리를 깨달음에 따라 내면에 갖고 있던 일을 바라보는 이방인의 수많은 관점에 변화가 생기고,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는 성품 변화의 시작이다. 이 밖에도 사람이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고 진리 실행에 집중하면서, 또 자기 마음속 각종 속셈과 동기, 생각, 뜻, 관념, 관점, 태도를 돌아보면서 문제를 발견하게 되고 후회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육을 버리고 진리를 실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고, 그리스도가 곧 진리요 길이요 생명임을 마음으로 인정하며,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리스도께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 또한, 하나님이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을 드러내고 심판하고 형벌하며,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이렇게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것은 더없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만약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인도가 없다면 사람은 하나님께 구원받지도, 이러한 수확을 얻지도 못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실생활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떠날 수 없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인도, 안내가 너무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 마음에 평안이 넘쳐나며, 어떤 일을 마주하든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 말씀을 찾아 근거로 삼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실행의 원칙과 실행의 길을 찾게 된다. 이는 자기 인식을 통해 얻는 한 가지 측면의 성과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자신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을 더는 예전처럼 그렇게 강퍅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된다. 마음을 평온히 하고 정직한 태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패괴 성품을 드러낸 후에도 더는 예전처럼 그렇게 강퍅하게 굴면서 순종하지 못하거나 난폭하게 날뛰거나 함부로 흉악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반성하고 자신의 실질적인 문제를 인식한다. 설사 자신에게 있는 패괴 성품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할지라도 마음을 평온히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진리를 구한 후에 자신의 문제와 패괴 성품을 인정하여 하나님께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다. 이는 그야말로 순종하는 태도이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든, 사람에게 어떤 요구를 하든,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하고 사람에게 어떤 환경을 배치해 주든 쉽게 순종할 수 있고, 패괴 성품이 가로막는 일도 줄어들어 해결하고 이겨 내기가 쉽다. 그러면 수월하게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성품 변화의 신호이다.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할 때, 사람의 생명 성품은 이미 변화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진실한 변화로, 전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이다. 그 과정, 그 기간에 사람이 보이는 갖가지 태도는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정상 범주 안에 있는 소극적이고 연약한 것이든,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고, 이 또한 필연적인 법칙이다. 긍정적인 태도가 있으면 소극적이고 연약한 태도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소극적이고 연약한 태도는 일시적이다. 사람의 분량이 어느 정도 커지면 소극적이고 연약한 상태도 점점 줄어들 것이며, 긍정적인 태도, 긍정적인 진입이 많아지고, 일 처리에 점점 원칙이 생길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자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된 후에 생명 성품에 변화가 생긴 사람이다.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수많은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을 체험하여 얻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진리 추구의 구체적이고 정상적인 과정에 대해 모두 듣고 이해한 이상, 더 이상 진리에 혐오와 거부감을 느끼며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데 대해 각종 이유와 핑계를 지어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모두 깨닫고 이러한 측면의 문제들도 밝히 알았으니,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이유와 핑계를 분별할 수 있지 않겠느냐? 만약 어떤 노인이 “저는 나이가 많습니다. 젊은이들 같은 기력도, 열정도 없죠. 나이가 들어서 혈기 왕성은커녕 교만하게 굴 기운도 나지 않아요. 그러니 저한테 교만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헛소리입니다. 저는 교만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면 이 말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분명히 옳지 않다. 이제 모두 이런 말을 분별하고 그를 폭로하면서 “당신은 나이가 많지만 교만한 성품이 있습니다. 평생 교만하게 살았고, 그게 아직도 해결이 안 됐는데 계속 교만하게 굴 겁니까?”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어떤 젊은이들은 “저는 나이가 너무 어린 데다가 사회에서 복잡한 일을 많이 겪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하루하루 견뎌 본 적도 없고요. 풍파를 많이 겪은 사람들 같은 연륜이 없죠. 더 중요한 건, 당연히 그 늙은 너구리들처럼 그렇게 교활하거나 간사하지 않다는 겁니다. 젊은 세대이니만큼 제게 좀 교만한 성품이 있는 것은 정상입니다. 하지만 제가 나이 많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꿍꿍이가 많고 간사하거나 사악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이 적절하냐? (적절하지 않습니다.) 패괴 성품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것은 나이나 성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은 너에게도 있고, 너에게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있다. 그러니 누구도 남을 질책할 필요는 없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면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진리를 얻고 성품이 변화해야만 목적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것은 결국 진리를 받아들이고 이유와 핑계를 내려놓으며 자신의 패괴 성품을 올바르게 직면해야 가능한 일이다. 회피하거나 변명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거부해서도 안 된다.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이겠느냐? 한 가지 경우가 생각나는구나.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저를 보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하든, 제게 어떤 패괴 성품이 있다고 드러낼지라도 저는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무슨 일을 시키든 저는 할 것이고, 어떤 업무를 시키든 그것 역시 할 것입니다. 설교나 예배도 다 참석해 듣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도 따라서 읽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체험 간증 영상을 볼 때면 저도 앉아서 볼 거고요. 여러분이 밥을 먹으면 저도 따라서 먹을 겁니다. 저는 여러분과 보조를 맞출 겁니다. 여러분 중 누가 저를 보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제가 원하는 대로 믿을 겁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핑계나 이유를 대지 않는 것 같지만 진리를 추구할 생각이 없다. 마치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그와는 무관한 것처럼, 그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저는 인성이 좋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제가 가진 것들을 기꺼이 버리고자 합니다. 또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고요. 그런데 이런 제게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필요하겠습니까?”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또 진리에 어떤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도 않고, 겉으로도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지 않는다. 그럼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하겠느냐? 그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또 하나님의 말씀을 냉담하게 대하고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태도는 아주 분명하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6)라는 성경 구절처럼 말이다. 하나님이 원치 않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교회에 이런 사람이 있지 않더냐? (있습니다.) 그럼 이런 부류의 사람을 어떻게 분류해야겠느냐? 그를 어느 쪽으로 분류해야겠느냐? 분류할 필요가 없다. 딱 잘라 말하자면, 이 부류의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스스로를 반성하거나 인식하지도 않고, 회개하는 마음 역시 없다. 그저 되는대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집에서 시키는 일을 하고,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않을 뿐이다. 네가 그에게 “당신에게는 뭔가 관념이 없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네가 “당신에게는 패괴 성품이 없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네가 “당신에게는 구원받고자 하는 소망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한다. 또 네가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인정합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한다. 전부 모르겠다는 대답뿐인데, 이 부류의 사람에게 문제가 없겠느냐?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 다만 그가 자신의 문제는 문제가 아니며, 해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성경에는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라는 기록이 있다.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라는 말은 바로 이런 사람을 처리하는 원칙이다. 이것이 바로 그 결과이다. 더웁지도 차지도 아니하다는 것은 아무 관점도 없다는 것이다. 네가 성품 변화나 구원받는 일에 대해 어떻게 교제하든 그는 무심하다. 무심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그러한 일에 관심이 없고, 듣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관점이 없고 패괴를 드러내지 않는 것도 잘못이란 말입니까?”라고 말하는데, 그건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런 자는 영혼이 없는 죽은 사람이다. 그는 더웁지도 차지도 아니하니, 하나님이 그에게 역사할 방법이 없다.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은 토하여 내치면 그만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 우리는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는다. 그저 무시하면 그만이다. 교회에 이런 사람이 있을 경우, 교란하지 않는다면 남겨 두고, 교란한다면 정리해서 내보내면 되니, 해결하기 쉽다. 나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명확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 자신에게 패괴 성품이 있음을 인정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챌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양을 대상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대상이다. 하나님을 더웁지도 차지도 아니하게 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더웁지도 차지도 아니한 태도를 보인다. 그들에 대한 처분 방법은 “떠나가라. 너는 아무래도 나와 상관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들을 신경 쓰지도, 그들에게 공을 들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방금 진리 추구라는 주제에 대해 부정적인 사례를 교제했다. 사람은 늘 무의식중에 갖가지 이유나 핑계, 구실을 대며 자신이 패괴 성품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물론,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면서 자신에게 패괴 성품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이는 전부 바보 같고 어리석은 행동이다. 사람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진리임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존재하는 패괴 성품과 진리에 어긋난 잘못된 행위를 부정한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뚜렷한 모습이다. 네가 자신에게 패괴 성품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든, 아니면 네가 드러낸 패괴 행위에 핑계와 이유를 대며 궤변을 늘어놓든, 결국 너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에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한 사실이다.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몇 년을 믿든 결국엔 드러나 도태되게 되어 있다. 이는 몹시 두려운 결과이다. 그런 자는 얼마 안 가 재난이 임하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재난이 임할 때 너는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네게 수많은 이유가 있고 핑계가 충분할지라도, 혹은 빈틈없이 위장하고 포장했을지라도, 한 가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바로 네 패괴 성품은 조금의 변화도 없이 그대로라는 것이다. 너는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진실한 회개를 하지도 못했으니 마지막에 진실로 돌아설 수 없을 것이며,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할 수도 없을 것이고, 하나님이 너에게 마음을 돌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건 큰일 아니겠느냐? 너는 도태될 위험에 처할 것이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그 아둔한 핑계와 어리석은 이유를 버리고 자기 위장과 포장에서 벗어나 자신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을 올바로 직면하는 한편, 그것을 옳은 방식으로 처리하고 해결할 것이다. 또 자신의 모든 행동이 선행이 되도록 노력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고자 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네게 마음을 돌린다면, 이는 여태까지의 네 거역과 대적을 진정으로 사면해 주었다는 의미이다. 그럼 너는 심적 압박감이 사라지고 무거운 짐에서 벗어난 듯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깃들 것이다. 네가 이런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은 영적인 인증으로, 구원받을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 희망은 진리 추구의 대가와 선행으로 얻은 것이며, 진리를 추구하고 선행을 예비하여 얻은 성과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너는 자신이 꽤나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패괴를 드러낼 때마다 합당한 이유를 찾아 해명하고 몸을 빼려고 하면서 패괴 성품을 덮고 포장한다. 마치 자신은 패괴를 드러낸 적이 없는 것처럼 교묘하게 패괴 성품에 대한 반성과 인식을 피하는 것이다. 너는 스스로 무척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한번 또 한번 하나님이 배치한 갖가지 환경에서 폭로되는 것을 피한다. 너는 스스로를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않고, 진리를 얻지도 못했으며,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를 몇 번이나 놓쳤다. 그러니 어떤 결과를 맞이하겠느냐? 네가 회개하여 구원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차치하고, 하나님이 몇 번이나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시종일관 마음을 돌리지 못한 네 태도를 보면, 네 상황은 무척 심각하다. 또다시 변명하면서 스스로를 포장하고 꾸미며 이유와 핑계를 대는 것 말고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거듭 기회를 주었지만 너는 마음조차 돌리지 않으니, 너무도 위험하다. 무엇이 위험한지 알겠느냐? 너는 시종일관 네 패괴 성품에 대해 핑계를 대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데 대해 변명과 이유를 늘어놓았다. 또 하나님의 심판과 사역에 맞서고 거부하면서도 스스로 나쁘지 않다며 흡족해했다. 너는 하나님 집의 감독과 책망 훈계를 거부하고 한번 또 한번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구원에서 도망쳤다. 네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거역으로 점철되었고, 너는 이미 하나님께 혐오받고 버림받았다. 그런데도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네가 그릇된 길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가고 있으며, 이제는 더 이상 만회할 도리가 없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하나님 집은 하나님이 권세를 잡는 곳이다. 네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온갖 악행을 행하는데, 설마 하나님이 너 하나쯤 어쩌지 못하겠느냐? 너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 생명을 얻지 못했으며, 조금의 체험 간증도 없다. 이는 하나님께 정죄될 일이다. 너는 멸망의 화를 자초했으니, 이는 똑똑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 그것도 몹시 어리석은 것이다! 이는 멸망의 화이다! 이 한마디를 여기에 남겨 두겠다. 믿지 못하겠다면 지켜보아라. 너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고, 너는 말주변이 뛰어나고 간계를 잘 꾸며 누구도 너를 말로 이기지 못한다고, 형제자매들은 너를 폭로하지 못할 것이고 교회에서도 너를 제명할 명분이 없다고, 하나님 집에서 너를 어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렇게 생각한다면 틀린 것이다. 너는 항상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하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보겠다! 하나님이 사역을 끝마치고 상선벌악하는 날까지 네가 버틸 수 있겠느냐? 재난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겠느냐? 너는 정말 네 운명을 주재할 수 있느냐? 어쩌면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일시적으로 하나님 집의 추궁을 피하고 구차하게 남아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계속 교회에서 머릿수를 채우며 위장하고 기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검증과 감찰을 피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를 보고 그 사람의 결말을 정한다. 하나님은 친히 사역하며, 또한 친히 키질한다. 네가 어떤 부류의 사람이든, 혹은 어떤 마귀든,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선민이 진리를 깨닫고 분별력을 갖추게 되면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그때가 되면 너는 교회에서 제명될 것이다. 어쩌면 마음속으로 인정하지 않고 원망을 쏟아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수없이 뛰어다녔고, 하나님을 위해 적잖은 사역을 했습니다. 또 많은 대가를 치렀으며, 집을 버리고 결혼도 포기하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청춘을 바치고, 사업을 버리고, 반평생의 정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진리를 추구하거나 실행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저를 도태시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이다. 하나님 집은 진리가 권세를 잡는 곳임을 몰랐더냐?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상을 주고 어떤 사람을 축복하는지 마음속으로 깨달은 바가 없더냐? 만약 네가 버리고 헌신한 것에 참된 체험 간증이 있다면, 또 그것이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한 것이라면 하나님은 네게 상을 주고 축복해 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버리고 헌신한 것이 참된 체험 간증이 아니고, 나아가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공을 가로채는 것이라면, 너는 바울의 길을 걸어온 것과 같다. 그것은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네게 “악을 행하는 자여,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할 것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이겠느냐? 네가 화를 입을 것이고, 반드시 재난 속에 떨어져 징벌받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멸망의 화가 임할 것이다. 지난날 바울의 지위와 그가 행한 사역, 사역 능력, 은사를 보면 모두 평범한 사람보다 뛰어났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했느냐?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조건을 내밀었으며, 하나님께 상과 면류관을 얻어 내려 했다. 또 마지막까지도 진실한 회개를 하지 않았고, 이렇다 할 선행을 예비하지도 않았다. 진실한 체험 간증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진실한 회개조차 하지 않은 그가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바울은 주를 위해 평생 헌신했지만,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으며 죽어도 회개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을 받기는커녕 하나님께 징벌받았다. 그가 맞이해야 했던 결과가 멸망의 화였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지금 너에게 분명히 말하건대, 만약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일말의 이성이라도 갖춰야 한다.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지 말고, 도박하듯 자신의 결말과 종착지를 걸지 마라. 이는 하나님과 거래하는 행위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에게 좋은 결말이 있겠느냐? 사람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솔직해진다. 사리 분별이 되지 않는 사람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구원받고 싶은 자에게 가장 쉽고 현명한 최고의 방법은 바로 모든 핑계와 이유, 조건을 내려놓고 착실히 진리를 받아들이고 추구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마음을 돌릴 때, 구원받을 희망이 생긴다. 구원받을 희망은 하나님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주는 그 희망의 선결 조건은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고, 네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리며,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나이나 성별, 지식 수준, 출생지 등과는 무관하다.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일절 보지 않는다. 너는 “저는 성미가 좋고 인내하며 포용할 줄 압니다. 또 마음에 사랑이 있고요. 끝까지 인내하면 언젠가는 저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겠죠?”라고 말하는데, 그런 것들은 아무 쓸모없다. 하나님은 네 성미가 어떤지, 성격이 어떤지, 지식 수준이 어떤지, 나이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지 않으며, 네가 얼마나 고생하고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했는지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저 “하나님을 믿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네 성품은 변화했느냐? 너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너는 진리를 추구했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느냐?”라고 물을 뿐이다. 네가 “저는 들었고, 또 받아들였습니다.”라고 대답하면 하나님은 다시 물을 것이다. “너는 들었고, 또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네 패괴 성품은 해결되었느냐? 너는 진실로 회개했느냐? 너는 하나님 말씀에 진실로 순종하고 그것을 받아들였느냐?” 이에 너는 “저는 고생하고 대가를 치렀으며 헌신하고 버렸습니다. 또 봉헌했고요. 저는 제 자녀들까지 하나님께 바쳤습니다.”라고 말하지만, 네가 무엇을 바쳤든 소용없다. 그런 것으로는 천국의 복을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의 마음을 돌릴 수도 없다. 하나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진리 추구의 길을 걷는 것이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구원받는 일에 있어서는 사람이 잔꾀를 부릴 수 없고 뒷문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이해했느냐? 이 일을 밝히 알아야지, 흐리멍덩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너는 흐리멍덩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흐리멍덩하지 않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겠느냐? 태도를 바로잡고 관점을 바꾸며,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 인위적인 선함과 사람의 핑계, 철학, 지식, 도덕, 윤리, 나아가 양심이나 소위 인격, 존엄까지도 진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것들을 버리고 마음을 평온히 한 후 하나님 말씀 속에서 사람으로서 처신하고 행동하는 근거를 찾아라. 이와 동시에,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폭로한 인류의 다양한 패괴 성품을 찾아 스스로에게 대조해 보고, 패괴 성품을 해결해라. 한시바삐 자신을 인식하고 패괴를 벗어 버리며, 회개하고 돌아서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 손으로 행하는 악을 내려놓고 사람으로서 처신하고 행동할 때 진리의 원칙을 구하며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삼아야지, 절대 사람의 관념과 상상을 근거로 삼거나 하나님과 거래를 하거나 무의미한 고생을 대가로 하나님께 상과 축복을 얻어 내려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네게 노하고 너를 저주하고 끊어 내는 일을 피하고 싶다면 더는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마라. 이 정도면 분명하지 않으냐? 너희는 알아들었느냐?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가만히 묵상해 보거라.
방금 교제한 것들은 다 진리 추구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진리 추구가 무엇인지, 이 개념적인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진리 추구에 대한 사람의 갖가지 오해와 그릇된 인식, 그리고 진리 추구에 존재하는 각종 어려움과 문제들을 교제하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진리 추구란 무엇인지, 진리를 추구하는 모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진리를 추구하는 실행의 길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정리하도록 하겠다. 진리 추구란 무엇이냐? 진리 추구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여 진실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여 최종적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과이다. 물론, 진리 추구에도 과정과 절차가 있으며, 그것은 몇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네가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 말씀이 진리이자 실제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기 시작하며, 너에게는 패역도, 패괴도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기를 갈망하여 진리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여 얻는 성과이다. 이때부터 네 생명 체험이 시작된다. 즉, 네 패괴 성품에서 비롯된 상태와 문제점을 파고들며 성찰하기 시작했다면, 이는 네가 진리를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너는 어떤 문제가 나타나든 어떤 패괴를 드러내든, 주동적으로 반성하고 성찰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패괴이고 패괴 성품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연스럽게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할 것이다. 생명 진입은 스스로를 반성하는 데서 시작되며, 이는 진리 추구의 첫 번째 단계이다. 이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며, 하나님이 폭로한 말씀들이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마음으로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진리 추구의 두 번째 단계이다. 많은 이가 사람의 패괴 행위를 폭로하는 하나님 말씀은 받아들여도 사람의 패괴된 본질을 폭로하는 말씀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난 후에도 자신의 패괴가 몹시 심각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못하고, 오직 사람의 패괴 행위를 폭로하는 하나님 말씀만 인정한다. 하지만 이래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그것을 등한시하게 된다. “저한테는 그저 패괴 행위가 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좋은 일도 하죠. 저는 좋은 사람입니다. 사탄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저는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일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소리 아니겠느냐? 너는 세상에 태어나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고 전통문화의 교육을 받는다. 네가 갖고 태어난 유전과 네가 배운 지식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며, 네가 숭상하는 명인이며 위인들 또한 전부 사탄에 속한다. 말해 보아라. 네가 사탄에 속하지 않는다면, 사탄의 패괴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몇 살 먹은 어린아이가 입만 열면 거짓말에 욕설이라면, 이는 누가 가르친 것이겠느냐?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이는 사탄에 의해 패괴된 결과 아니겠느냐? 사실이 이러하다. 영계의 사탄과 악령을 사람은 보지 못하지만, 인간 세상에는 도처에 산 귀신과 마왕이 존재한다. 그들은 전부 사탄의 화신이다. 이는 사실이니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이러한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고, 하나님이 폭로하는 말씀이 모두 사실임을 인정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인식했다고 하지만, 하나님 말씀이 폭로한 패괴가 사실임을 시종일관 부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자신에게 패괴 성품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실로 회개할 수 없다. 물론, 누구에게나 패괴 성품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면 하나님의 사역을 한동안 체험해야 한다. 사람은 수많은 패괴 성품을 드러낸 후, 사실 앞에서 자연히 고개를 숙이고 인정하게 될 것이며, 폭로와 심판의 하나님 말씀, 또 정죄의 말씀이 모두 사실이자 진리임을 깨닫고 진심으로 승복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에 정복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신의 패괴 성품과 패괴 본질을 인식하고, 자신에게 사탄의 성품이 있으며 자신은 심각하게 패괴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종할 수 있다. 또 인류를 폭로하고 심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엄하고 날카롭더라도 기꺼이 순종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패괴된 인류를 어떻게 정의하고 규정하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폭로했는지 이해하고 얼마간 인식하게 되면,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진실로 받아들여 자신의 패괴 성품과 패괴 본질을 인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 마음속으로 패괴 성품과 사탄을 증오하고, 자신의 육을 증오하면서 진리를 얻고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 내기를,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성품 변화를 추구하는 데에 집중하게 된다. 이것이 진리 추구의 세 번째 단계이다.
참된 자기 인식이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패괴 성품을 반성하고 인식하여, 자신의 패괴 본질과 본모습을 깨닫는 것이다. 이때, 사람은 인류가 너무도 심하게 패괴되었으며, 전혀 사람답지 못한 모습으로 산다는 것을, 전부 패괴 성품일 뿐, 최소한의 양심과 이성마저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온전히 알게 된다. 또 사람이 일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사탄에게 속해 있으며, 올바르거나 진리에 부합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사람의 기호와 추구, 사람이 선택한 길에는 모두 사탄의 독소와 불순물, 그리고 사람의 사치스러운 욕망과 복받으려는 속셈이 들어 있다는 것을, 사람이 드러내는 성품 또한 사탄의 성품이자 사탄의 본성, 본질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여기까지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야만 가능하다. 만약 전통문화의 도덕적 이론이나 가르침, 사상에 근거한다면, 진실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네 패괴 성품은 사탄의 그런 철학과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사탄의 그러한 것들에 근거하여 자신을 인식한다면 이는 황당한 일 아니겠느냐? 헛수고 아니겠느냐? 그렇기에, 자신을 인식하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진리이며,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판단하는 준칙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진리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판단해야 정확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실행의 길을 얻을 것이고 광명 속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자신의 패괴 본질에 대해 진실로 인식한 후에는 어떤 태도를 갖추고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다. 사람이 자신의 본성 본질을 인식하게 되면 자연히 후회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회개하기 시작한다.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기를 추구하고, 더는 사탄 성품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고 처신하며,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에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실한 회개이다. 이는 진리 추구의 네 번째 단계이다. 이제 너희는 진실한 회개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돌아서야 한다. 돌아선다는 것은 자신이 고집하고 옳다고 여기던 모든 것을 버리고 사탄 성품으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진리를 실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돌아선다는 것의 의미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먼저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패괴 성품에 속하며, 사탄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정죄하고 저주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러면 육을 버리고 사탄을 저버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어떤 행동이겠느냐? 패괴 성품을 부정하고 버리고 끊어내고 저버리는 것 아니겠느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부정하고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으며 자신의 그릇된 속셈을 버려야 바로잡을 수 있다. 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있다. 네가 마음속으로 회개하고자 하지만 입으로 말하는 데 그칠 뿐, 패괴 성품을 부정하거나 버리거나 끊어내거나 저버리지 않는다면, 이는 회개하는 모습이 아니며, 아직 실제로 회개에 진입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한 회개는 어떤 모습이 있겠느냐? 먼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예컨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나 요구, 그리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문제 처리 방식이나 방법, 사람의 경험 등을 부정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실행이다. 잘못된 것을 마음으로 꿰뚫어 보고 부정해야 내려놓을 수 있다. 만약 네가 이러한 것들을 부정하지 않은 채 좋은 것, 옳은 것이라고 여기면서 다른 사람이 내려놓으라고 해도 내려놓지 못하며 “저는 지식 수준이 이렇게 높고 연륜도 깊습니다. 또 이러한 것들이 옳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왜 내려놓아야 합니까?”라고 말한다면, 자신에게 있는 것들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고집한다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이 옳고 긍정적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부정해야 한다. 그 후 그런 것들의 본질이 부정적인 사물이며 사탄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언뜻 옳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궤변임을, 사탄에게서 온 것을 고집해 봤자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어 마지막에 징벌받고 멸망하게 될 뿐임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그 사상과 독소들이 결국 사람의 멸망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면 그것을 철저히 버리게 된다. 물론, 부정하고 버리고 끊어내고 저버리는 것 등은 다 사탄 세력과 사탄 본성, 사람을 미혹하는 사탄의 철학, 논리, 사상, 관점에 대해 취하는 태도이자 행동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육적인 이익과 기호, 추구를 내려놓고 사탄의 철학과 사상, 사설과 궤변을 끊어내며, 사탄의 권세와 사악한 세력을 저버리는 것 등 일련의 실행은 회개의 방식이자 길이다. 진실한 회개에 진입하려면 반드시 수많은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철저히 자신을 부정하고 육을 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너는 스스로 지식이 있고 연륜이 깊으며, 하나님 집에서 크게 쓰일 인재라고 생각하지만, 진리의 도를 몇 년간 듣고 어느 정도 진리를 깨닫게 되면 자신의 그 지식과 학문이 무가치하고 하나님 집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 진리와 하나님 말씀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고, 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음을, 사람에게 지식과 경험이 아무리 많아 봤자 진리가 있다는 의미는 아님을 느끼게 된다. 이 밖에도 사람이 지닌 것들이 아무리 사람의 관념에 부합해도 진리는 아니고, 전부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 부정적인 사물에 속하며 진리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네 지식 수준이 아무리 높고 네 연륜이 아무리 깊어도, 영이 통하지 않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 네게 리더를 시키면 진리 실제가 없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고, 네게 체험 간증 문장을 쓰라고 하면 써 내지 못할 것이며, 네게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하면 너는 하나님에 대해 아무 인식이 없을 것이다. 또 네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면 진리를 교제하여 사람들의 관념을 해결해 주지 못할 것이고, 네게 새 신자를 양육해 주라고 하면 이상(異象)에 관한 진리를 알지 못해 글귀와 도리만을 늘어놓을 것이다. 자신의 관념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새 신자의 관념을 해결해 줄 수 있겠느냐? 이러한 사역을 하나도 하지 못하는 네가 또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네게 힘을 쓰라고 하면 너는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쓴다고 생각한다. 너는 스스로 소 잡는 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떤 일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고, 어떤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 말해 보아라. 네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 집에서 너를 쓰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네가 이행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교회를 탓할 수 없다. 어쩌면 너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요구가 너무 높은 것 아냐?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할 수가 없잖아. 나한테 왜 이렇게 큰 요구를 하시는 거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이렇게 크게 오해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며,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만약 네가 스스로의 관점이 옳으며 바로잡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론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인정하지만 자신이 고집하는 낡아 빠진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이는 네가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마땅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리를 많이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설교 교제를 많이 들어야 한다. 그러면 조금씩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진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으로서, 진리와 하나님을 대할 때는 무엇보다도 먼저 순종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는 사람의 당연한 직책이다. 이러한 것들을 인식했다면, 바로잡히고 있는 것이다. 바로잡는 것은 회개를 실행하는 길이며, 예전에 옳다고 여겼던 것, 사탄에게서 온 것들을 철저히 버리고 새롭게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와 진리의 원칙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진리 추구의 길을 걷는 것, 이것이 바로 바로잡는다는 것의 의미이다. 이는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며 회개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때, 진리 실제에 진입하며, 진실한 회개를 하게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사실이다. 사람은 진실로 회개해야 구원받는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진리 추구의 네 번째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사람이 진실로 회개했을 때는 진리 추구의 길에 들어선 것이니 하나님의 사역에 기본적으로 관념과 오해가 사라지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 기꺼이 순종하고,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심판과 형벌을 체험할 때까지, 그 사이에는 기나긴 과도기가 존재한다. 이 과도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부터 진실로 회개할 때까지의 기간이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시종일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도태된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말씀을 읽든 설교를 듣든 참된 수확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임을 깨닫고, 자신이 깨달은 진리로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할 것이다. 또 자신의 패괴 성품을 점점 더 증오하게 되고, 진리에 점점 더 관심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고, 진실한 후회와 회개를 하게 된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으면 자연히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고, 점차 자신을 인식하여 진실한 회개를 할 수 있다. 진실한 회개를 한 후에는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매사에 진리를 구하고, 어떤 일이 임하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실행의 원칙과 길을 찾은 후 진리를 실행해야 한다. 이것이 진리 추구의 다섯 번째 단계이다. 진리를 구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함이다. 진리를 실행할 때는 반드시 진리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것이 정확한 진리 실행이고, 그래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진리의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진리 추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성과로, 이 단계에 도달했다면 진리 실행의 실제에 진입한 것이다. 진리를 구하는 것은 사람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을 때, 사람은 자연스럽게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으며,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이 요구하는 성과를 낼 수 있다. 진실한 회개에서 진리 실행까지의 과정은 이러하다. 예전에 패괴 성품 속에서 살아온 것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온 것이다. 모든 행동은 하나님께 정죄되고 혐오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실한 회개를 하며,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이는 당연히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수시로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 자신의 패괴 본질을 진실로 인식하여 뉘우치는 마음을 갖고, 회개한 후에는 매사에 진리를 구하며 진리의 원칙대로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생명 진입에서 진리 추구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성과이다.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 순종할 수 없고, 진실로 회개할 수도 없다. 사람이 진실로 회개하지 못한다면, 언제까지나 사탄의 성품으로 살아갈 것이며, 몇 년을 믿든 진실한 변화를 얻지 못한 채 행위만 좀 개선될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여 생명으로 삼을 수 없다. 그러면 사람의 모든 행위는 계속 패괴 성품을 드러낼 것이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여 생명으로 삼을 수 있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으며,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진리를 구하며, 더 이상 스스로를 위해 계획을 세우지 않고, 모든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다. 이 밖에도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점점 더 순종하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게 되고, 점점 더 사람답게 살아가게 된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추구하겠느냐? 그는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고 복과 상 받기를 추구한다. 그는 올바른 인생 목표 없이 야심과 욕망만 점점 커진다. 그가 무엇을 추구하기를 좋아하든,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한 포기하지 않으며, 마음을 돌리는 일은 더더욱 없다. 일단 적절한 배경이 갖춰지고 환경이 허락되면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독립 왕국을 세운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숱한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배반해 하나님께 파멸당한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모두 사악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가 영혼과 피, 뼛속 깊이 숭상하는 것은 명리와 지위, 권세이다. 그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사탄 성품으로 살아가면서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고 사람들과 싸운다. 그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즐겁다고 생각하며, 살아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고 죽어서는 백귀 가운데 웅걸이 되기를 바란다. 이는 분명 사탄의 멸망의 길을 걷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달을수록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진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해 기꺼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인다. 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든 진리를 추구하고 얻고자 한다. 이는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선 것으로, 하나님과 마음이 합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며, 정정당당하게 하나님의 인도와 안내, 축복을 얻으면,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마음이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며, 진리를 싫어하고 거부하기 때문에 갈수록 더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하나님에게 반하는 길을 걷게 된다. 바울처럼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상을 요구하고, 상을 얻지 못하면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고 대항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적그리스도가 됨으로 사탄의 추악한 몰골을 오롯이 드러내 하나님께 저주받고 파멸당할 것이다. 반면,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는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종할 수 있으며,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고,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다. 또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이 기꺼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절대적인 순종을 바칠 수 있으면, 온전히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람다운 모습을 갖춘 것이다.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란 무엇이더냐? 욥이나 베드로처럼 창조주께 순종하고 창조주를 경외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축복받는 사람이다.
오늘 교제한 진리 추구의 몇 단계는 이렇게 간단하다. 너희가 그 몇 단계에 대해 다시 말해 보아라.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폭로한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셋째, 자신의 패괴 성품과 패괴 본질을 인식하고 마음속으로 패괴 성품과 사탄을 증오하는 것입니다. 넷째, 회개하고 손으로 행하는 모든 악을 버리는 것입니다. 다섯째, 진리의 원칙을 구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섯 단계이다. 패괴 성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 각각의 단계를 실행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매번 수많은 장애물과 난관에 부딪힐 것이며, 고심하며 실행하고 이루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을 겪게 되겠지만, 나는 낙담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다. 설령 누군가 너를 정죄하면서 “당신은 끝났습니다.”, “당신은 좋은 놈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 정도군요. 변화하지 못할 거예요.”라며 듣기 힘든 말을 할지라도, 너는 포기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곰곰이 생각하면서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이 길만이, 이 몇 단계의 진입과 실행만이 진정으로 멸망의 화를 피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사람은 모든 어려움을 내려놓기를 택하고, 실패와 좌절을 피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계속 걸어간다. 3년, 5년 동안 스스로를 성찰하고 인식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혹은 8년, 10년이 지나도 자신에게 어떤 패괴 성품이 있는지만 알 뿐 여전히 진리를 깨달아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이 한마디를 해 주고 싶다. 낙담하지 마라. 비록 네가 진정으로 뉘우치지는 못했지만, 세 단계에 이미 진입했는데, 뒤의 두 단계에 진입하지 못할까 봐 걱정할쏘냐? 걱정할 필요 없다. 더 노력하고 힘을 내면 그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단계까지 간 후 진리의 원칙을 찾는 데 충분히 공을 들이지 않아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래도 낙담하지 마라. 네게 의지가 있는 한, 지속적으로 추구하며 매사에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께 많이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언제나 수확이 있을 것이다. 네 자질과 조건에 따라 최선을 다해 추구하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열심히 노력해라. 최선을 다하여 가슴에 손을 얹고 부끄럽지 않을 정도가 된다면 분명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진리라도 더 깨닫게 된다면 좋은 일이며, 삶이 더욱 행복하고 즐거워진다. 요컨대, 진리를 추구하는 일은 공허하지 않다. 각 단계에는 모두 구체적인 실행의 길이 있으며, 사람이 얼마간 고통을 받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진리는 학술도 이론도 구호도 논조도 아니다. 그것은 공허하지 않다. 모든 진리는 사람이 몇 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체험하고 실행해야 어느 정도 깨닫고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네가 어떤 대가를 치르든, 어떤 노력을 하든, 방식과 방법, 길, 방향이 옳다면 언젠가는 큰 수확을 얻을 것이며, 진리를 얻고 하나님을 인식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어 마음도 매우 흡족해질 것이다.
2022년 1월 8일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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