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전파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제 2 부)
들리는 바에 따르면 사랑이 전혀 없는 복음 전파자들이 있다고 한다.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관념과 문제를 대할 때, 여러 차례 교제했는데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면 참지 못하고 훈계하기 시작한다. “여러분은 문제가 너무 많네요. 진리를 아무리 교제해도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자질이 너무 떨어지고 이해력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해요. 모두 힘쓰는 자일 거예요.”라고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견디기가 힘들어 한동안 소극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어떤 이들은 참도를 알아볼 때 하나님 말씀이 모두 진리임을 깨달으며, 관념이나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 말씀을 읽는 과정에서 해결된다. 그들은 이렇게 순수하고, 진리를 쉽게 받아들인다. 또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구하고 알아보며, 다른 사람이 교제까지 해 주면 참도를 받아들이고 교회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문제가 무척 많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다양한 측면으로 분명히 알아보아야 하며, 조금이라도 확실히 알아보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그들은 어떤 일을 하든 조심스럽다. 몇몇 복음 전파자는 이런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지 못한다. 그들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믿든 믿지 않든 마음대로 해! 하나님 집에 당신 하나쯤 있으나 없으나 전혀 상관없으니까. 그러니 못 믿겠으면 가 버리라고! 대체 질문이 왜 그렇게 많은 거야? 벌써 다 대답해 준 내용이잖아.’라는 태도를 보인다. 사실 그 복음 전파자는 복음 대상자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고, 진리도 분명히 교제하지 않았으며, 상대의 마음속 의혹을 철저히 해소해 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상대가 관념을 버리고 하루빨리 받아들이기를 바라니 이는 강요하는 것 아니겠느냐? 상대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말하면, 너는 그의 문제와 관념에 초점을 맞춰 하나님 말씀을 몇 단락 읽어 준 후 진리를 교제하여 이해하게 해 주어야 한다. 어떤 복음 대상자는 집요하게 따져 묻기를 좋아하며 모든 일을 확실히 알려고 한다. 그는 너를 괴롭히거나 생트집을 잡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대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진지하게 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옳은 대답을 해 주지 못하고 못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해 교제해 주지 않으려는 복음 전파자가 있다. 그는 “오랫동안 복음을 전했지만 이렇게 까다로운 사람은 처음 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그런 상대를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실, 그는 어떤 측면의 진리든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다. 대략적인 도리와 빈말을 늘어놓아 상대가 그것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게 하는데, 이는 사람을 난처하게 하는 것 아니겠느냐?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자세히 물어보면 그는 꺼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하나님의 세 단계 사역에 대해 분명히 다 말해 줬습니다. 이렇게 많은 말을 했는데도 이해하지 못하는군요.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관념을 해결하십시오. 하나님 말씀이 저쪽에 있으니 혼자 읽고 이해가 되면 믿고, 이해가 안 되면 믿지 마세요!” 복음 대상자는 그의 말을 듣고 생각한다. ‘더 물었다가는 구원받을 기회를 잃고 복을 받지 못할지도 모르겠어. 물어보지 말고, 얼른 따라서 믿자!’ 그 후, 그는 꾸준히 예배에 참석하고 열심히 설교를 듣다 보니 서서히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고, 관념도 조금씩 해결되었다. 지금 그가 어떻게 믿든, 이런 식의 복음 전파가 적절하냐? 이 복음 전파자가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우선 책임을 다해야 한다. 양심적이고 이성적으로 네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은 다 해야 한다.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어떤 관념을 갖고 있거나 어떤 질문을 하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답해 주어야 한다. 네가 정말 답할 수 없는 일이라면 관련된 하나님 말씀 몇 단락을 찾아 읽어 줘도 되고, 관련된 체험 간증 영상이나 복음 간증 영화를 찾아 보여 줘도 된다. 그러면 온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최소한 너 또한 책임을 다했기에 양심에 가책이 없다. 만약 대충 넘어가면 일을 그르치기 쉽고 사람을 얻기가 어렵다. 다른 이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책임’이라는 두 글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책임을 어떻게 실제 상황에 정확하게 적용해야 하겠느냐? 네가 주님을 영접했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체험한 이상 너는 하나님의 현현을 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 어떻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느냐? 온라인 전도든, 대면 전도든 사람을 얻을 수 있는 방식, 성과가 나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네가 전하고 싶을 때 전하는 것이 아니고, 네 기분이 좋을 때는 전하고 좋지 않을 때는 전하지 않는 것 역시 아니다. 또한, 네 기호에 따라 사람을 골라 가며 전하거나 네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전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 집의 원칙에 따라 전해야 한다. 피조물의 책임과 본분을 다하고,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네가 깨달은 진리, 하나님 말씀과 사역을 힘자라는 대로 증거해야 한다. 그러면 피조물의 책임과 본분을 다한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어떻게 해야겠느냐? 책임을 다해야 하며,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쩌면 너는 복음을 전한 기간이 짧고 경험이 부족하며 말재간이 그리 좋지 않고, 지식수준도 높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하나님 말씀을 선택했는가 하는 점이다. 네 진리 교제가 핵심을 관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네 태도가 진실하여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네가 어떻게 말하든 복음 대상자는 듣고 싶어 할 것이다. 특히 네 진실한 체험의 말, 마음속 말을 듣고자 할 것이다. 복음 대상자가 너를 좋아하게 하고, 너와 교류하고 교제하기를 원하게 하며, 네가 증거하는 내용을 듣고 싶어 하게 하면 성공한 것이다. 그는 너를 소울메이트로 대하며,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듣고 싶어 하고, 어떤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든 좋다고, 더없이 실제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다 받아들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를 얻기가 쉽다. 이는 복음을 전할 때 반드시 갖춰야 할 지혜이다. 만약 사랑으로 도와주지 못하고, 상대의 소울메이트가 되지 못한다면 복음을 전해 사람을 얻는 것이 무척 힘들 것이다. 어째서 단순하게 마음을 열어 말하고 비교적 직설적이며 열정적인 사람들의 복음 전파 성과가 뛰어나겠느냐? 누구나 그런 사람을 좋아하며 그런 사람을 접하고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 교제가 무척 실제적이고 명확하다면, 인내심을 갖고 진리를 교제해 상대의 갖가지 문제와 어려움, 고충을 해결해 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상대의 마음을 밝게 해 주고 상대에게 큰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상대는 마음속으로 그를 좋아하고 신뢰하며, 소울메이트로 여기고,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들으려고 할 것이다. 만약 늘 높은 곳에 서서 상대를 훈계하고, 어린아이나 학생 취급을 한다면 혐오감과 반감을 불러일으키기가 쉽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 갖춰야 할 지혜는 먼저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네 화법을 좋아하게 하고, 네 말을 들은 후에 무언가를 얻고 이점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복음 전파는 순조롭고 형통하며 성과가 생길 것이다. 혹자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지라도 네가 좋은 사람임을 알아보고 너와 교류하고자 할 것이다. 복음 전파자는 다른 사람과 교류할 줄 알아야 하며, 널리 친구를 사귀는 방법이 좋다. 이 밖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즉,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든 먼저 준비를 많이 하고, 진리를 갖추고, 원칙을 파악하여 사람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며, 지혜로운 방식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이렇게 사전 준비를 하는 훈련을 이어 나가야 한다. 먼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이 어떤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종파에 속하는지, 주로 어떤 관념들을 갖고 있는지, 성격이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 이해력은 어떤지, 인품은 어떤지 등을 알아 가고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복음 대상자의 상황을 여러 측면에서 파악해야만 복음 전파 성과가 좋아지며, 상대의 문제에 정확히 초점을 맞춰 관념과 문제점을 해결하는 법을 알게 된다. 그러면 악인이나 무신론자, 마귀의 시험에 부닥쳐도 알아차리고 분별하여 재빨리 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각 종류의 사람이 모두 드러난다. 악인이나 무신론자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반감을 가지며, 마귀는 하나님 말씀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직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만이 관심을 갖고 진리를 구하며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이는 전도 가능한 복음 대상자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이렇게 해야 체계적으로 진리를 교제할 수 있다. 진리를 교제할 때 복음 대상자의 자질이 어떤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어떤지, 인품은 어떤지 100% 파악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람들에게 공을 들여야 할지, 어떻게 진리를 교제해야 할지 알게 되며, 얼마나 공을 들이든 헛수고를 하지 않게 된다. 만약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내적 상태를 이해하거나 파악하지 못하고, 상대의 문제에 정확히 초점을 맞춰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복음 전파로 사람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설령 몇 명 얻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우연이다. 진리를 깨닫고 일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사람이 복음을 전하면 시행착오가 적거나 아예 없다.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에게 전하고, 전하면 안 될 사람에게는 전하지 않으며, 제대로 파악해서 전하고, 헛수고를 하지 않으니 이런 본분 이행은 효율이 높고 수포가 되는 일이 적으며 성과도 좋다. 그렇기에 복음 전파에 성과를 내고 싶다면 반드시 진리를 갖추고 충분한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성경 지식이 있는 종교인을 만났는데 너는 성경을 읽어 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제 와서 성경의 진리를 갖추기는 늦었다. 그러니 얼른 그에게 성경을 잘 아는 복음 전파자를 소개해야 한다. 성경을 잘 아는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 진리 원칙에 부합한다. 무리하게 억지로 복음을 전한다면 결국 상대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네 무책임한 태도로 초래된 결과이다. 이 밖에, 너는 여가 시간에 틈을 내서 성경 지식을 좀 갖추어야 한다. 복음을 전하면서 성경 지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이 제기하는 질문은 성경 내용과 관련된 것들도 적지 않다. 성경을 잘 안다면 성경의 진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복음 대상자에게 어떤 관념들이 있든 성경 속에서 상응하는 장절과 하나님 말씀을 찾아 그의 관념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성과가 난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는 성경 지식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구약에 어떤 예언이 있는지, 신약 중 어떤 장절들이 하나님의 재림과 말세 사역을 증거하고 있는지 많이 읽어 보고 묵상하여 마음속에 기억해 두어야 한다. 이 밖에, 종교인들은 이러한 성경 장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어떻게 교제해야 그들이 정확하고 순수하게 이해하도록 할 수 있을지 묵상한 후 관련된 성경 장절과 결부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이해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이는 사전 준비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사전 준비이다. 너는 참도를 알아보는 각 부류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야 하며, 그 후 상황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이는 네 책임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몇 번 훑어보면 그만이죠.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든 저는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면서 하는 말들은 변함없이 늘 똑같죠. 상대가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죠. 믿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하겠지만 저를 탓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어쨌든 저는 책임을 다했으니까요.” 이것이 책임을 다한 것이냐?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이 어떤 상황인지, 예를 들어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지식수준이 어떤지, 결혼은 했는지, 취미나 성격, 인성, 가정 형편은 어떤지 등등을 하나도 모른 채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무 준비도, 노력도 안 한 것이다. 이래 놓고 어찌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이는 사람을 건성으로 대하는 것 아니겠느냐? 이렇게 본분을 대하는 것은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태도,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태도이다. 너는 이런 태도로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결국 사람을 얻지 못하고는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는 영적인 이해력이 없으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진리를 얻지 못하고 구원받을 수도 없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무책임한 말이고 책임 회피의 말이다. 분명 네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고,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며, 본분에 충성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 놓고 갖가지 이유를 대며 모면하려 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말을 하니 이는 어떤 행위냐? 이를 기만이라고 한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람을 판단하고 규정하고 무책임하게 헛소리를 하는 것은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음험하고 악독한 것이다. 이 역시 기만이라고 한다. 그런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기만이다.
하나님이 네게 복음 전파의 본분을 맡겼으니 너는 마땅히 공경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참도를 알아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과 인내로 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괴로움과 고생을 참고 견디며, 책임감 있게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분명히 교제하여 하나님에게 보고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본분을 이행할 때 지녀야 할 태도이다. 참도를 알아보려는 사람이 네게 진리를 구하는데 네가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진리를 교제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며, 핑계를 대면서 “지금 저는 그럴 기분이 아닙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진리와 하나님의 현현 사역을 얼마나 갈망하든,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죠. 그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저에게 달린 게 아닙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신다면 제가 아무리 많이 준비해도 소용없을 테니, 저는 그런 공을 들이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아는 진리는 전부 이야기했으니 그가 받아들일지 말지는 하나님의 일이고, 저와는 무관합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어떤 태도겠느냐? 이는 무책임한 태도, 강퍅한 태도이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무척 많지 않으냐?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데 합격점에 이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할 수 있겠느냐? 전혀 불가능하다. 이런 식의 복음 전파는 힘을 쓰는 것일 뿐, 결코 본분 이행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합격점에 이를 수 있겠느냐? 누가 와서 참도를 알아보든, 먼저 준비를 하고 진리를 갖춘 다음 사랑과 인내, 포용, 책임감으로 그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하며, 다른 불순물 없이 성의를 다해 최대한의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격점에 이를 수 있다. 만약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혹은 그가 듣지 않고 떠나갔다면 그것은 네 책임이 아니다. 너는 해야 할 일을 했으니 양심에 가책도 없을 것이고, 이미 책임을 다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복음 전파의 원칙에 부합하지만, 지금 당장 복음을 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면, 그럴 때는 잠깐 보류해 두어야 한다. 잠깐 보류해 둔다는 것이 복음을 전해 주지 않는다는 뜻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적당한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하라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겠느냐? 예를 들어, 방언을 한 적이 있는데, 하루 이틀, 혹은 1~2년 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그래 와서 언제 어디서든 방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런 자는 악령이니 복음을 전해서는 안 된다. 이 밖에도 겉으로 볼 때는 좋은 사람 같지만, 좀 알아보고 조사해 보면 많은 사람과 음란한 짓을 벌인 자도 있다. 이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교회로 데려온다면 문제가 심각해지고,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교란을 가져다주기 쉬우니 절대 전해서는 안 된다. 또 교계의 목사들은 진리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며, 설령 받아들인다고 해도 반드시 리더 일꾼 자리를 달라는 조건을 건다. 그런 자들은 대부분이 적그리스도이므로 원칙을 따른다면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들이 기꺼이 복음을 전하고 힘쓰려고 하며,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상황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 경우라면 복음을 전해도 된다. 하지만 인성이 몹시 악하고, 얼굴만 봐도 악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라면, 그런 부류는 절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영원히 회개하지도 못한다. 그런 사람은 교회로 데려온다고 해도 출교 대상이 될 테니, 절대 전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사탄 마귀를 교회로 데려오는 것과 같다. 또 한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하는 미성년자들의 경우 말이다. 하지만 일부 해외 민주 국가에서는 미성년자들이 교회 생활을 하고 본분을 이행하려면 반드시 후견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 점을 간과하지 말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며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부모 중 한 명이 미성년자 아이를 데리고 하나님을 믿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아이가 진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하지만 부모가 반대하고 제약할 경우, 아이가 가정을 버리고 부모의 통제와 방해에서 벗어나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완전히 정당한 일이다. 이는 베드로가 하나님을 믿을 때의 상황과 동일하다. 요컨대, 어떤 상황이든 객관적인 조건이 허락하고 법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복음 전파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는 진리 원칙과 지혜로 대해야 한다.
복음을 전할 때 어떻게 해야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있겠느냐? 먼저, 복음 전파 측면의 진리를 깨닫고 이해해야 한다. 진리를 깨달아야 올바른 관점이 생기고, 잘못된 관점과 그릇된 관점을 어떻게 해결할지 알게 되며, 어떻게 일을 하고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지 알 수 있고, 진리 원칙에 어긋난 각종 잘못된 행동과 적그리스도의 행동을 분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복음 전파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진리 원칙을 파악해야 할지도 알게 된다. 그럼 이 본분을 이행할 때 먼저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진리는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사역한다는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은 모든 하나님 선민의 책임이자 의무이며,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본분의 기원이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복음팀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에게는 그런 책임과 의무가 없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하는데, 그 책임과 의무는 누구에게나 있다. 이 측면의 본분과 관련된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유용하다. 너희가 주의를 기울였을지 모르겠지만, 교회에서 각 부류 인원을 배치할 때는 한 가지 현상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한때 리더 자리에 있었지만, 얼마 후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해 교체되었다. 교체된 후에는 특별한 기술도, 특기도 없어 특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관계로 결국 복음팀에 배치되어 복음을 전하거나 새 신자를 양육하거나 평범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다. 교회에서 어떤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이런 자는 폐물이니 도태시켜야 한다. 그렇기에 교회 리더로 있다가 직무를 감당하지 못해 교체되었는데 특별한 재능도 기술도 없다면 복음을 전하러 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복음을 전할 수 있어 복음팀에서 본분을 이행한다면, 합격한 본분 이행의 진리는 너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 전파의 본분조차 이행하지 못한다면, 합격한 본분 이행의 진리는 너와 무관할 것이며,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이 사역하는 기간에 본분 이행이라는 이 사역은 너와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다. 이 말의 함의가 무엇인지 너는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 것이다. 네가 아무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는데 하나님의 사역이 너와 어떤 관계가 있겠느냐? 그렇기에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자기 본분을 끝까지 제대로 이행한다면 이는 당연히 가장 좋은 일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복음을 전하고 싶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늘 낯선 사람을 접해야 하잖습니까. 온갖 나쁜 사람들이 다 있을 테고, 그들은 어떤 악행이든 다 저지르겠죠. 특히 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원수처럼 대하고, 사탄 정권에 넘깁니다. 이방인보다 더 악독한 자들이죠. 저는 그런 고초를 치를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그들이 저를 구타해 죽이거나 장애를 안겨 주거나 큰 붉은 용에게 넘긴다면 저는 완전히 끝장일 테니까요.” 네가 고초를 치르지 못하겠고, 또 네 분량이 그렇게 작다면 지금 네 본직 사역을 잘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물론, 여러 본분을 이행하고 복음도 전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복음팀 인원들뿐만 아니라 모두의 직책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이 새 사역을 한다는 이 복음과 기쁜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이 복음을 전해 더 많은 사람이 이 기쁜 소식을 듣고 하나님 집으로,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게 하고, 하나님의 사역이 하루빨리 끝나게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는 하나님의 부탁이자 뜻이다.
어떤 복음 전파자는 매일 바쁘게 복음을 전하지만, 그렇게 몇 년이 지나도 한 명을 얻지 못한다. 이는 어찌 된 일이겠느냐? 그의 바쁜 모습을 보면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사람을 얻지 못하겠느냐? 사실 복음 전파의 본분에서 깨달아야 할 진리는 다른 본분과 비슷하다. 그런데 몇 년간 복음을 전하면서 한 명도 얻지 못한다면, 이는 그에게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무슨 문제이겠느냐? 가장 주된 문제는 복음 전파의 이상(異象) 측면 진리를 분명히 교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째서 분명히 교제하지 못하겠느냐? 자질이 너무 떨어져서 미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온종일 정신없이 바빠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묵상할 시간이 없어 어떤 진리도 깨닫지 못하고, 어떤 관념이나 사설, 궤변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이 두 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한다면, 복음 전파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아마 사람을 얻기가 무척 힘들 것이며, 몇 년 동안 복음을 전해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는 먼저 반드시 이상 측면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상대가 어떤 질문을 하든, 진리를 밝히 교제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 측면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리 교제해도 명확히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진리를 구하고 교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설교를 많이 듣고 복음 전파 측면의 진리를 많이 교제하며, 늘 이상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는 데에 노력하고 훈련하여 정말 이상 측면의 진리를 깨닫고, 종교인들에게서 가장 흔히 보이는 관념과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것이며, 성과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 사역에 관한 이상 측면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복음 전파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한 가지 원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의 질문을 파악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마음속 가장 큰 의문이 어디에 있는지, 주로 어떤 문제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가로막히는지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분명히 하지 못한다면 상대에게 복음을 전해 하나님을 증거할 수가 없다. 복음 전파와 관련해 실속 없는 이론만 늘어놓는 것을 훈련해서는 안 된다.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이 질문했을 때 답을 주지 못한 채 대충 도리를 늘어놓아 상황을 모면한다면, 그런 식의 복음 전파로 사람을 얻을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네가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의 질문에 분명한 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상대가 선뜻 참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네가 그렇게 오랜 기간 하나님을 믿었는데도 그런 질문에 똑바로 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것이 정말 참도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래서 감히 믿지 못하고 받아들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실상은 이렇지 않겠느냐? 이것이 복음 전파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두 번째 원인이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지만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상대에게 복음을 전할 수가 없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복음을 전해 성과를 내고 싶다면 반드시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이 제기하는 모든 질문에 관해 열심히 진리를 구하고 완벽하게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진리를 교제하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몇몇 복음 전파자는 늘 객관적인 이유를 찾으며 “저 사람들은 무척 까다롭습니다. 하나같이 치우친 자들이라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죠. 또 패역하고 강퍅하며 늘 종교 관념을 고집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상대의 어려움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노력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명에게 전하든, 두 명에게 전하든 모두 실패하는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끈기를 갖고 지속할 수 없다. 그는 겉보기에 무척 바쁜 것 같지만, 사실 참도를 알아보는 모든 사람에게 공을 들이지 않는다. 또 상대가 제기하는 질문을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대하거나 진리를 구해 해결하여 그 문제들을 조금씩 해결해 줌으로써 그 사람을 얻지도 못한다. 그저 적당히 건성으로 대하면서 몇 명을 놓치든 여전히 똑같은 방식을 고수하고, 일을 하다 말다 할 뿐이다. 그는 복음 전파를 뭐라고 생각하느냐? 오락거리나 사교 활동으로 생각한다. 그는 오늘은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게 신나고, 내일은 저런 사람을 만나는 게 새롭다고 여기기에 항상 사람을 얻지 못한다. 항상 사람을 얻지 못하는데도 자책하거나 부담을 느끼지 못하니 이런 식의 복음 전파로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겠느냐? 이는 대충 건성으로 하며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 아니겠느냐? 언제나 이런 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진실로 본분을 이행하는 게 아니다. 그는 전혀 책임을 다하지 않고 늘 건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복음 전파로 사람을 얻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너희가 말해 보아라. (원칙대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도 있다. 복음을 전할 때 복음 대상자의 수에만 신경 쓸 뿐 원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도 대부분 사람을 얻지 못한다. 이 밖에도 한 가지 경우가 더 있다. 즉, 복음팀 내부에서 몇 명이 복음 대상자를 두고 경쟁하면서 많은 사람한테 복음을 전하면 큰 공을 세운 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복음 대상자는 이렇게 경쟁하는 그들을 보고 도움을 받기는커녕 관념을 갖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질투하고 싸우는구나.’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는 사람을 쓰러뜨리는 일이다. 이 또한 복음 전파에서 사람을 얻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복음 대상자는 사회에 오래 있다 보니 각 부류의 사람을 경계한다. 특히 낯선 사람의 경우, 중간에 소개해 주는 이가 없으면 처음에는 다 경계할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낯선 이를 처음 접했다면 네 이름이나 주소, 전화번호를 함부로 알려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와 친해지고 서로 어느 정도 가까워져서 그에게 어떤 악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친구가 된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알려 줘도 된다. 하지만 어떤 복음 전파자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해 상대가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면 간사하고 사악하다고 말하며 상대의 그런 경계심을 정죄하고, 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너도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 않느냐? 왜 너 자신은 정죄하지 않고 반대로 그런 행동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어떤 복음 전파자는 복음 대상자와 처음 만났을 때 상대의 개인정보를 물어보는데, 만약 상대가 대답해 주지 않으면 복음을 전해 주기 싫어한다. 이는 어떤 성품이냐? 악독한 성품이다. 사소한 일에서 자기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심사가 뒤틀려 복음을 전하지 않다니, 이 얼마나 비열하냐! 그럼 너는 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하느냐? 그것은 본분 이행 아니더냐? 네 취향대로 한다면, 그것이 본분 이행이겠느냐? 그것은 순전히 힘만 쓰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에게 어떻게 보고할 것이냐? 그대로 계속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게 정죄되고 내쳐질 것이다. 이는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일을 들은 적이 있다. 두 복음팀의 사람이 동일한 복음 대상자를 접하게 되자 자기가 먼저 그 복음 대상자를 만났다며 서로 실랑이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실랑이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는 무지한 것 아니겠느냐? 이 일은 그렇게 처리해선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하겠느냐? 모두 함께 상의해야 한다. 누가 먼저 접했는지는 따지지 마라.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같이 복음을 전하면 된다. 업무를 분담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원래는 두 달에 걸쳐 그를 얻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복음 전파자가 많아졌으니 한 달 안에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모두 함께 복음 대상자에게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측면의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하는지, 두 팀이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 등을 교제해라. 이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그 사람을 얻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함이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같이 교제하고, 힘을 한데 모으면 성령이 깨우치고 인도해 줄 것이다.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된 상황에서 일을 하는 건 쉽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가 함께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 늘 다른 사람에게 삐딱하게 굴면서 자신만의 경영을 하고 남들과 분명히 나누려 한다면, 복음을 전하면서 자기가 사람을 얻는 것만 신경 쓰며 ‘너는 네 복음 대상자한테나 전해라. 나는 내 복음 대상자를 얻으련다.’라고 생각한다면 한마음 한뜻으로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겠느냐? 가끔은 혼자 본분을 이행해도 되지만, 또 가끔은 모두가 조화롭게 협력해야 교회 사역을 잘해 낼 수 있다. 만약 단독 행동만 하면서 조화롭게 협력하지 않는다면 교회 사역을 망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그럼 누가 그 책임을 지겠느냐?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주요 책임자의 책임이 더 크다. 사역을 망치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뿐더러 큰 악을 저질러 하나님의 혐오와 반감을 사게 된다. 이러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만약 하나님에게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사역을 교란한 것으로 정죄된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그러면 분명 드러나 도태될 것이며, 심지어는 징벌받게 될 것이다. 네가 네 본분을 버린다면 이는 무슨 의미겠느냐?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분깃이 없으며,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방인에 속해 살아가는 의미를 잃게 된다. 오늘 네가 살아가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복음팀에서 네 가치는 무엇이냐? 어떻게 해야 너라는 사람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겠느냐? 너는 착실하게 네 책임을 다하고, 네 본분을 잘 이행하며, 하나님에게 이렇게 다짐해야 한다. “저는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들을 얻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록 자질이 떨어지고 진리 실제를 많이 얻지는 못했지만, 온 힘을 다했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책임을 내팽개치지 않았고, 불만을 품지도 않았으며, 소극적으로 변해 사역을 게을리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본분 이행을 빌미로 명리를 추구하지도 않았고요. 저는 복음을 전하면서 적잖은 수모를 당했으며, 종교계로부터 욕설을 듣고 내쫓겨 길거리에서 노숙해야 했습니다.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질 때도 있었지만 본분을 저버리지는 않았고, 한결같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진실로 책임을 다한 것이다. 언젠가 너는 가슴에 손을 얹고 한 점 부끄럼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보고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네가 만난 복음 대상자가 무척 많은데도 얻은 사람은 얼마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네 자질과 행동에 비춰 봤을 때, 최선을 다했는데도 그 정도의 사람밖에 얻을 수 없었다면, 하나님은 너를 어떻게 평가하겠느냐? 네 본분 이행은 합격했다. 너는 힘을 다했고 마음을 다했다. 너는 한 명의 복음 대상자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최선을 다해 이상 측면의 진리를 갖췄으며, 성경의 관련 장절을 정독했다. 외워야 하는 건 외우고 외우지 못하는 건 노트에 적어 두었다가 복음을 전할 때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질문을 듣든 해결해 주었다. 이렇게 하니 복음 전파의 성과가 점점 좋아졌고, 더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었다. 복음을 전해 더 많은 사람을 얻고 네 본분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너는 네 결점과 연약함, 소극적인 정서 등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했으며, 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반드시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밖에, 참도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역을 이해하고 인식하며, 참도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너는 더 많은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역을 더 잘 증거할 수 있다. 네 진리 교제에 깊이가 있든 없든 마땅히 사랑과 인내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복음을 듣는 사람이 너를 비웃거나 욕하든, 거부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든 네가 올바르게 대하고 인내심 있게 진리를 교제하며,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많은 대가를 치렀다면 그것은 책임을 다한 것이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합격점에 이를 수 있다.
어떤 복음 전파자가 만난 복음 대상자는 무척 거만했다. 집이 잘살고 사회적 지위도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 전파자는 그에게 다가갈 때마다 아랫사람이 된 것처럼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이럴 때, 이 불편함이 네 본분 이행에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 만약 영향을 주어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지도, 책임을 다하지도 못했다면, 너는 본분을 이행한 게 아니다. 반면, 네 마음에만 영향을 주어 불쾌하고 불편한 기분이 들었지만 네 본분을 내려놓지도 책임과 의무를 잊지도 않았으며, 마지막에 그 사역을 완수하고 잘해 냈다면 이것이야말로 참된 본분 이행이다. 이는 진리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진리이니 사람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과 같은 상황도 마주할 수 있지 않겠느냐? 예를 들어, 어떤 복음 대상자가 너를 농촌에서 상경한 사람이라 여겨 무시하고 비하한다면 너는 어떻게 대하겠느냐? “저는 생활 환경이 열악한 농촌에서 태어났고, 당신은 환경이 좋은 도시에서 태어났죠. 이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일입니다. 하지만 어디에서 태어났든 전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따르게 되었으니 복받은 거죠.”라고 말한다면, 이 말은 과분하지 않고 참된 것이다. 그가 “그래도 당신들은 우리만큼 복이 있지는 않네요. 우리는 이번 생과 다음 생을 누리겠지만, 당신들은 다음 생만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누리는 것이 당신들보다 훨씬 많은 거죠.”라고 말한다면 너는 “그 또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라고 말해라. 그가 하나님의 사역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그와 논쟁을 벌일 필요가 있겠느냐? 이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와 논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너는 마음속에 생각이 있어야 한다. ‘내 마음속에는 본분이 있고, 내 어깨 위에는 부담이 있어. 나한테는 사명과 의무가 있으니 그와 이런 것을 두고 논쟁하지 않을 거야. 언젠가 그가 하나님을 믿게 되어 하나님 집으로 돌아온다면, 설교를 많이 듣고 어느 정도 진리를 깨닫는다면 오늘 이 행위와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겠지.’라고 말이다. 네가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넓어진다. 그리고 사실이 그러하다. 만약 네가 정말 그를 얻어서 그가 진리를 추구하게 된다면, 3~5년 정도 하나님을 믿은 후 지난날 그렇게 남을 대한 건 부적절하고 비인성적이며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너를 만났을 때 사과할 것이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런 상황을 적잖이 마주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 나는 어떻게 대할 것 같으냐? 나는 이런 일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것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긴다면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분량이다. 만약 네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를 갖춘다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수많은 말이나 행동을 간파할 수 있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간파하지 못한다면 평생 기억할 것이며, 상대의 눈빛 하나, 말 한마디, 동작 하나까지 네게 상처를 줄 것이다. 어느 정도로 상처를 주겠느냐? 네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겨 부자나 너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 한때 너를 무시하고 공격한 부류를 보면 두려워하고 위축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위축되지 않겠느냐? 그의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든, 어떤 신분과 지위를 지니고 있든 그는 패괴된 사람일 뿐, 특별할 것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속박되지 않는다. 복음 전파 사역을 하다 보면 분명 이런 문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다 흔히 발생하는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너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차별하고, 심지어는 듣기 힘든 말로 빙빙 돌려 비웃을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은 네가 돈을 벌고 이득을 얻으며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해서 복음을 전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일을 마주할 때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와 논쟁을 벌이면 되겠느냐? 특히 집에 돈이 좀 있는 복음 대상자의 경우, 그의 집에서 식사라도 한다면 그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만약 네가 체면 때문에 그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지 않는다면, 배를 굶주린 채로 계속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느냐? 이럴 때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오늘 이 집에서 밥을 먹게 되어 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그는 복음 전파자를 접대할 수 있게 됐어. 이는 그의 복이야.’ 사실 그렇다. 이는 그의 복이다. 그가 스스로 깨닫지 못해도 너는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아야 한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렇게 비웃음이나 조롱, 조소, 비방의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심지어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일례로, 어떤 형제자매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악인에게 고발당하거나 납치되고, 또 어떤 이는 경찰에 신고되어 정부에 넘겨진다. 붙잡혀 감옥에 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심지어는 맞아 죽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복음 전파 사역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겠느냐? (그래선 안 됩니다.) 복음 전파는 모든 사람의 직책이자 의무이다. 어느 때든, 우리가 무엇을 듣든, 무엇을 보든, 어떤 대우를 받든 복음 전파에 대한 책임감을 굳게 지켜야 한다. 절대 소극적이 되거나 연약해져 이 본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복음 전파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 않고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복음을 전할 때 만나는 대상은 천사도, 외계인도, 로봇도 아니다. 너희가 마주하는 대상은 사악하고 패괴된 인류, 살아 있는 귀신, 짐승들이자 이 사악한 공간, 사악한 세상에서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이다. 그렇기에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는 틀림없이 갖가지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소한 비방이나 조롱, 몰이해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다. 만약 네가 정말 복음 전파를 네 책임이자 의무, 그리고 네 본분으로 여긴다면, 그런 일을 올바르게 대하고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로 인해 너의 책임과 의무를 포기하거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겠다던 초심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이 책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네 본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본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느냐? 이는 사람이 이번 생을 살아가는 가치이자 첫 번째로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세에 사역한다는 기쁜 소식을 널리 알리고 하나님 사역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로, 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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