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진실로 변화할 수 있다 (제 2 부)

어떤 사람이 그림을 한 폭 그리고는 스스로 매우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만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그에게 이 그림에 결함이 매우 많다고 말하자, 그는 상대방이 세부 사항을 말하기도 전에 그것이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 생각해 기분이 나빠 즉각적으로 상대방에게 반박했다. “내가 못 그렸다고요? 당신은 나보다 더 못 그리는걸요. 문제는 더 많고요. 보려는 사람도 없고요!” 그가 왜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이는 어떤 내적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겠느냐? 왜 이런 작은 일에 이렇게 화를 내고, 이렇게 크게 노여워하며, 보복과 공격 심리가 생기겠느냐? 어떻게 초래된 것이겠느냐? (그는 자신의 그림이 매우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 그의 그림에 결함이 있다고 말해 그를 거슬렀습니다.) 즉, 너는 그의 완벽한 이미지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그가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너는 절대 어떠한 하자도 골라내서는 안 되고, 어떤 질의도 해서는 안 된다. 너는 “이 그림은 정말 잘 그렸네요. 대작이라고 할 만해요. 제가 보기에는 대가들도 이 정도 수준이에요. 이 작품을 내놓으면 분명 업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대대손손 전해질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그가 기뻐한다. 기뻐하고 화내는 사람이 한사람이다. 어째서 두 종류의 다른 표출이 있을 수 있겠느냐? 어떤 것이 패괴 성품이겠느냐? (두 종류 모두 패괴 성품입니다.) 어떤 패괴 성품이 더 심각하겠느냐? (두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사람이 위선, 무지, 어리석음을 드러냈다. 다른 사람이 네가 잘 못 그렸다고 말했다고 해서 어째서 그렇게 괴로워하고 심지어 증오, 공격, 보복의 심리가 생기는 것이냐? 너에게 듣기 좋은 말 몇 마디 해 주면 어째서 그렇게 기쁜 것이냐? 어째서 더할 수 없이 좋은 것이냐? 이런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부끄러움을 모르고, 어리석고 가련하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이게 바로 사실이다. 사람의 무지, 어리석음, 추악한 모습은 무엇에서 나오겠느냐? 사람의 패괴 성품에서 나온다. 사람이 이런 일에 임하여 이런 태도가 나올 때 드러나는 것은 정상적인 인성에 갖춰야 할 이성과 양심이 아니며, 정상적인 인성이 살아 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느냐? 어떤 사람은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누가 칭찬하면 침묵하고 누가 나쁘다고 말해도 침묵하는 무반응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하면 옳고 그름과 관계가 없으며, 패괴 성품도 드러내지 않으니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어떠하냐? 이것이 패괴 성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겠느냐? 사람이 아무리 위장을 잘해도 잠시는 위장할 수 있지만, 평생 위장하기는 어렵다. 네가 아무리 위장을 잘하고 꽁꽁 포장해도, 너의 패괴 성품을 위장하거나 포장할 수는 없다. 네가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지,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으며, 너 자신 또한 속일 수 없다. 네가 드러내든 안 드러내든, 결국 사람의 마음속 생각과 마음속에 생기는 이것들은 그것이 강렬하든 아니든 혹은 명확하든 아니든, 모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대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패괴 성품은 매우 자연스럽게 언제 어디서나 드러나지 않겠느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잠시 부주의해 무심코 말을 뱉어 버려 자기 내면 깊은 곳의 것을 폭로시켰다고 생각해 후회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다음에는 말을 하지 말아야지. 말을 많이 하면 꼭 실수를 하게 되니, 말을 하지 않으면 패괴 성품이 드러나지 않을 것 아냐?’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일을 할 때 또 패괴 성품을 드러냈고 자신의 속셈을 드러냈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막으려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너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항상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것은 정상적인 법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해결 방법은 오직 하나이다. 즉, 네가 진리를 구해야 하고 공을 들여야 한다.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고 나서 패괴 성품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면, 사탄과 육을 증오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진리를 실행하기 수월해진다. 네가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을 때, 패괴 성품을 드러내지 않고 양심, 이성, 정상적인 인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진리를 구해야만 패괴 성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을 억제, 단속, 통제하는 것은 모두 좋은 방법이 아니며, 패괴 성품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다.

패괴 성품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우선 이런 패괴 성품의 출처를 인식하고 분석한 후, 상응하는 실행법을 찾아내야 한다. 방금 전 예를 든 것을 가지고 말해 보자. 이 사람은 자신의 그림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림을 아는 사람이 그의 그림에 결함이 있다고 말하자, 싫어하고 자존심이 상했다고 느꼈다. 자존심이 상했을 때, 패괴 성품이 드러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다른 사람이 다른 생각과 관점을 제시했는데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어떤 사람은 정확하게 대하지 못하고, 일이 닥치면 분석을 먼저 한다. ‘그의 이 말은 무슨 의미이지? 나를 겨냥한 건가? 어제 내가 좋은 낯빛으로 그를 대하지 않아서 오늘 내게 보복하려는 건가? 그가 나를 겨냥하면 나는 그와 그냥 좋게 끝내지 않겠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하겠어. 그가 나를 모질게 굴면 나는 불의로 대응하겠어. 나도 보복할 거야!’ 이는 무엇을 드러낸 것이냐? 역시나 패괴 성품을 드러낸 것이다. 방법적으로는 고의적인 보복과 의도적인 보복으로 이런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데, 이런 방법의 본질적인 성질은 무엇이겠느냐? 악독한 것 아니겠느냐? 악독한 본성이 내면에 있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악독한 본성이 없다면 보복할 수 있겠느냐? 보복이라는 생각조차 못 하게 된다. 그가 보복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이다. “내가 못 그렸다고요? 당신은 나보다 더 못 그리는걸요. 문제는 더 많고요. 보려는 사람도 없고요!” 이 말의 성질은 무엇이냐? 이는 일종의 공격이다. 이런 방법은 어떠하냐? 공격과 보복, 이는 긍정적인 것이냐, 아니면 부정적인 것이냐? 칭찬하는 것이냐, 아니면 폄하하는 것이냐? 부정적이고 폄하하는 것이 분명하다. 공격과 보복은 사탄의 악독한 본성에서 비롯된 행위와 표출이고, 또한 일종의 패괴 성품이기도 하다. 사람의 내면에는 ‘네가 나를 모질게 굴면 나는 불의로 대응하겠다. 네가 내 체면을 봐주지 않는데 내가 왜 네 체면을 세워 줘야 한단 말이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어떤 생각이냐? 보복하려는 생각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과 관점이 보통 사람이 보기에 성립되지 않느냐? 통하지 않느냐? “남이 나를 범하지 않으면 나도 남을 범하지 않으며, 만약 남이 나를 범하면 나도 반드시 남을 범한다.”, “그 사람의 방법으로 그 사람을 다스린다.”, 이런 것은 이방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고, 이방인들 사이에서 통하는 이치로, 사람의 관념에 완전히 부합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이런 사상과 관점이 맞느냐? (틀립니다.) 왜 틀리느냐? 어떻게 분별해야겠느냐? 이러한 것들은 어디서 왔느냐? (사탄에게서 왔습니다.) 사탄에게서 온 것은 의심의 여지 없다. 사탄의 어떤 성품에서 온 것이냐? 사탄의 악독한 본성에서 왔다. 그 속에는 독이 들어 있고, 사탄의 악독하고 추한 진면목이 들어 있다. 그런 본성 본질이 들어 있다. 그러한 본성 본질이 들어 있는 관점, 생각, 표출, 말, 나아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이런 것들의 성질은 무엇이냐? 바로 사람의 패괴 성품이자 사탄의 성품이다. 사탄에게 속한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겠느냐?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의 근거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해야 할 행동이고 지녀야 할 사상과 관점이겠느냐? 그런 생각과 행동이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인성의 양심과 이성에 부합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이것들이 진리와 정상적인 인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지만, 과거 너희는 이러한 방법과 생각이 매우 정당하고, 어디에 내놓을 수 있고,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사탄의 이런 사상과 이론이 사람 마음속에서 주도적 지위를 점유하여 사람의 사상, 관점, 행위, 방법 및 사람의 각종 내적 상태를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절대 깨달을 수 없다. 이와 반대로,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사람이 진리로 여겨 실행하고 지켜 오지 않았느냐? 만약 그것들이 진리라면, 네가 그것을 지켰는데 왜 자신의 실제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하였느냐? 네가 그것을 지켰는데 왜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었어도 진실한 변화가 없는 것이냐? 너는 왜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사탄에게서 나온 철학을 분별하지 못하느냐? 너는 지금도 여전히 사탄의 철학을 진리로 삼아 지키고 있느냐? 만약 네가 진정 분별력이 있다면,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은 것 아니겠느냐? 네가 원래 지키던 것이 결코 진리가 아닌 사탄의 사설과 철학이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너희가 이 방법에 따라 성찰하고 파헤쳐 너희 내면의 어떤 것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근거가 있는 것이고, 상식적인 도리와 세상 물정에 부합하며, 공개 석상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인지 살펴보아라. 이런 잘못된 사상과 관점, 방법을 너희 마음속에서 이미 진리로 삼았으니, 패괴 성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희가 좀 파헤쳐 보면 아직도 매우 많다. 만약 이런 패괴된 것과 부정적인 것을 모두 파헤치고 분석해 분별력이 생기고 버릴 수 있으면, 너희의 패괴 성품은 쉽게 해결되며, 정결함을 얻을 수 있다.

방금 전의 그 예로 다시 돌아가 보자.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평론할 때 부정적인 것과 듣기 좋은 것 두 가지 다른 논리를 들으면, 이를 마땅히 어떻게 대해야 정확하고, 인성과 이성을 갖춘 모습과 표출이겠느냐? 방금 사람 내면의 그런 생각들에 대해 언급했듯이, 사람이 옳다고 여기든 그르다고 여기든 이는 모두 사탄에게서 나오고 패괴 성품에서 나온 것으로, 모두 정확하지 않고 진리가 아니다. 네가 아무리 옳다고 생각해도, 네가 아무리 다른 사람이 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그것 역시 진리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진리 실제를 표출하고 살아 내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 일을 대해야 이성과 인성이 있는 것이겠느냐? 우선, 너를 칭찬하는 말에 대해 우쭐한 느낌이 없어야 한다. 이는 일종의 내적 상태이다. 또한, 네가 나쁘다는 말에도 반감과 미움, 더 나아가 악독하고 보복하는 심리를 갖지 말아야 한다. 너를 칭찬하든 아니든 혹은 네가 나쁘다고 말하든 아니든, 네 마음속에 정확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 그런 태도는 무엇이겠느냐? 우선 냉정해야 한다. 그 후 그에게 이렇게 말해라. “제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저 취미일 뿐이고, 제 수준은 제가 알아요. 당신이 어떻게 얘기하든 저는 모두 정확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림 이야기는 그만 하죠. 저는 이 일에는 흥미가 없어요. 만약 당신이 제가 어느 방면에 패괴 성품을 드러낸다고 말했는데, 제가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면 여기에 저는 흥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일들을 교제하고 토론해야 해요. 생명 진입에서 우리 둘 다 성장하고 더 깊이 진입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바깥의 일을 토론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없어요. 당신이 저의 그림이 좋다고 하든 안 좋다고 하든, 저는 개의치 않아요. 당신이 저의 그림이 좋다고 칭찬하는 것은 무슨 목적이 있는 것 아닌가요? 당신을 도와 무슨 일을 하도록 저를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가요? 만약 제 도움을 바란다면,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상으로 도와드릴게요. 만약 도와드리지 못하면 제가 당신에게 제안을 드릴 수도 있으니, 이런 방식으로 저와 사귈 필요는 없어요. 위선적으로 보여 구역질이 나고 오글거려요! 당신이 제 그림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저를 시험하고자 하는 것이죠? 저를 시험에 들게 하고 혈기를 드러내게 하여, 당신에게 보복하고 공격하게 하려는 것이죠? 저는 절대 그렇게 안 해요. 저는 그 정도로 어리석지 않아요. 저는 사탄의 계략에 빠지지 않아요.” 이런 태도는 어떠하냐? (좋습니다.) 이런 방법을 무엇이라고 부르겠느냐? 이를 사탄에 대한 반격이라고 한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일부 사람은 걸핏하면 쓸데없는 말만 한다. “어머! 네가 예전에 세상에서 사업을 얼마나 불티나게 잘했는데. 정말 부러워!”, “어머! 너는 정말 예쁘게 생겼구나. 정말 복스럽다.” 누가 세력이 좀 있고, 외모가 좀 좋고, 이용 가치가 좀 있으면 바로 끈덕지게 접근하고, 아첨하고, 칭찬하고, 아부한다. 각종 비열하고 파렴치한 수단으로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충족시키니, 구역질 나지 않느냐? (구역질이 납니다.) 그렇다면 이 유형의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으면 맞겠느냐? (맞지 않습니다.) 만약 시간이 없다면 몇 마디 심한 말로 반격해 그에게 창피를 주어라. “당신은 어쩌면 이렇게 무료해요? 할 일도 없어요? 그것들을 떠들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고 말해라. 만약 그의 아첨하는 그 말들이 너무나 허황되고 닭살이 돋아 듣기 싫은데 자세히 이야기할 시간마저 없다면, 그냥 이 말 몇 마디로 응수하고 끝내라. 만약 시간이 있다면 그와 교제를 좀 하여라. 교제에 관해 말하자면, 여기에는 패괴 성품, 혈기와 천성, 공격과 보복, 증오도 없고, 사람의 미움을 사는 어떠한 것도 없다. 그래서 네가 드러내는 것은 정상적인 인성, 양심, 이성에 부합해야 하며, 진리 실제가 있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도움과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것은 모두 긍정적인 표출이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표출은 모두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정리해 보아라. (보복과 공격, 이에는 이로 갚는 것입니다.) 보복과 공격,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사람의 전통 사상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의 방법으로 그 사람을 다스리다.”, “나는 대인군자가 되고, 비열한 소인배나 위선자는 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런 것들이 진리에 부합하느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파헤칠 가치가 있다. 간단하고 명확하며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은 분별하기 좀 수월하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이 알아볼 수 없는 것과 많은 사람이 옳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분별하지 않는다. 다들 쉽게 그것을 진리로 대하고 지키며, 지키고 나서는 또 자신이 진리 실제와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 냈다고, 자신이 매우 완벽하고 선량하며 광명정대하고 정정당당하다고 생각한다. 혈기, 천성, 육체, 윤리와 강상(綱常), 도덕에 속하는 이것들을 진리 실제로 삼아 살아 내고, 이로써 진리를 대체한다. 이는 대다수 사람이 가장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다. 심지어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은 사람도 분별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는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이 단계를 체험해야 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이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혈기와 천성에서 나온 이것들을 인식하고 깊이 파헤쳐야 한다. 이것들을 꿰뚫어 보고 해결하면, 네가 평소 드러내는 것이 어느 정도 진리 실제에 부합하게 된다. 정상적인 인성이라면 모두 진리를 실행할 수 있으며, 진리 실행이야말로 사람에게 양심과 이성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준이다. 진리를 얼마나 많이 실행하든, 이는 모두 긍정적인 사물로, 결코 패괴 성품이 아니며, 혈기대로 하는 행동은 더욱 아니다. 만약 누가 너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는데 너도 이를 되받아 같은 수법으로 그를 대하면, 이는 진리의 원칙에 부합하겠느냐? 만약 그가 너를 너무 비참하게 해친 적이 있어 네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에게 복수와 응징을 한다면, 이는 이방인이 보기에는 모두 합리적이고 비난할 것이 없지만, 이런 방법은 무엇에 속하느냐? 이는 혈기에 속한다. 그가 너를 해친 것, 그런 방법은 사탄의 패괴 본성이 드러난 것에 속한다. 하지만 네가 그에게 보복을 한다면, 너와 그의 방법이 같은 것 아니겠느냐? 그에게 보복하는 너의 심리, 출발점, 근원이 그와 동일하고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네 행위의 성질 또한 혈기, 천성, 사탄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다. 사탄과 혈기에 속하는 것이라면, 너의 이런 방법을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일을 하는 근원, 의도, 동기를 마땅히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 (바꿔야 합니다.) 어떻게 바꾸겠느냐? 만약 너에게 닥친 일이 사소한 일이어서, 너의 마음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너의 이익과 관련이 없고 너를 비참할 정도로 해치지 않아 네가 미워할 정도, 목숨을 바쳐서라도 보복할 정도는 아닐 경우, 원한을 내려놓고 혈기대로 하지 않으며, 이성과 인성에 따라 정당하고 냉정하게 그 일을 처리하고, 솔직하게 상대방과 그 일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면, 원한을 풀 수 있다. 하지만 이 원한이 너무 깊어 보복하고 싶고 치 떨리게 미워하는 정도가 되어도 네가 여전히 참을 수 있겠느냐? 혈기대로 하지 않고 담담하게 “나는 이성을 갖고 양심적으로, 이성적으로 살아야 해. 또한, 진리의 원칙에 따라 살아야 해.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되고, 굳게 서서 사탄을 부끄럽게 해야 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이는 다른 내적 상태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어떤 내적 상태를 가진 적이 있느냐? 만약 다른 사람이 너의 물건을 좀 훔치거나 너의 음식을 좀 많이 먹었다면, 이는 뼈에 사무치는 깊은 원한이라고 할 수 없으니, 네가 이 일 때문에 격 떨어지게 다른 사람과 얼굴 붉힐 필요와 가치가 없다고 여기면, 이런 상황에서 너는 이성적으로 이 일을 대할 수 있다. 네가 이성적으로 이 일을 대하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겠느냐? 네가 이 일에서 진리 실제가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겠느냐? 절대 아니다. 이성과 진리 실행은 별개의 일이다. 만약 네가 굉장히 화가 나는 일이 닥쳤는데도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처리하고 혈기와 패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으려면, 진리의 원칙을 알아야 하고 지혜롭게 처리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혈기가 생기기 쉽고, 심지어 폭력이 생긴다. 만약 진리를 구하지 않고 사람의 방법만을 사용해 자신의 기호에 따라 처리하면, 이는 사람이 소소한 도리를 좀 이야기하거나 혹은 앉아서 마음을 터놓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교제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패괴 성품 및 패괴 본성과 관련이 있는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성격이 무던해 다른 사람이 그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거나 듣기 거북한 말을 해도 그냥 웃어 넘긴다. 반면 어떤 사람은 옹졸해서 도저히 넘어가지 못하고 평생 앙심을 품는다. 이 두 부류 중 어떤 부류의 사람이 패괴 성품이 있는 것이냐? 사실 두 부류가 다 있다. 단지 사람의 천성적인 성격이 다를 뿐이다. 성격은 사람의 패괴 성품에 영향을 주지 못하며, 패괴 성품의 깊이를 결정하지 못한다. 사람의 교양, 교육, 가정 환경 또한 패괴 성품의 깊이를 결정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패괴 성품의 깊이는 사람이 습득한 것과 관계가 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저는 문과라 책을 많이 읽어 품위와 교양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내심이 좀 강하고, 남을 좀 더 잘 이해하고, 마음이 좀 넓습니다. 일이 닥치면 스스로 해결할 방법이 있으니, 저의 패괴 성품은 아마 그렇게 심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저는 음악을 배운 사람이라 특별한 인재입니다. 음악은 사람의 영혼을 감화시키고 정화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음표가 사람의 영혼에 부딪힐 때, 사람의 영혼이 정화되고 변화됩니다. 각기 다른 음악을 들을 때, 사람은 각기 다른 기분을 갖게 되고 다른 정서가 생기게 됩니다. 부정적인 정서가 있을 때, 저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 해결합니다. 그러니 저의 패괴 성품이 음악을 들으면서 점차적으로 가벼워질 것이고, 패괴 본성 또한 음악에 대한 저의 조예가 깊어질수록 점차적으로 해결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어떤 가수들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어요. 제가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저의 노랫소리는 더 아름다워지고, 제 노래 기교도 점점 좋아지죠. 업무 수준이 높아질수록, 제 내적 상태도 점점 좋아져요. 내적 상태가 점점 좋아지는 것은 패괴 성품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 아닐까요?” 너희가 말해 보아라. 그런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패괴 성품에 대한 많은 사람의 인식과 이해에 모두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교육을 좀 받으면 자신에게 패괴 성품이 적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부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한다. “제가 젊었을 때는 고생을 많이 했어요. 늘 소박하게 생활하며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는 것을 중시했죠. 무슨 일을 하든 깔끔하게 하고, 말도 단정하고 예의 바르죠. 정직한 말을 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에, 패괴 성품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일부 젊은이는 사회 환경의 영향을 받아 마약을 하기도 하고 사악한 흐름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사회 풍조에 너무 심하게 전염되어 심하게 패괴되었어요!” 이와 같은 패괴 성품에 대한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이해와 인식으로 인해, 사람이 자신의 패괴 본질에 대해, 자신의 사탄 본성에 대해 다른 느낌과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느낌과 편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비록 패괴 성품을 갖고 있지만, 비록 교만과 독선, 패역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행동은 양호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신이 규율을 잘 지킬 수 있으며, 정상적이고 규칙적인 영 생활이 있고, 게다가 영적 도리를 좀 말할 수 있을 때, 사람은 더욱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길에서 성과를 얻었으며, 패괴 성품이 매우 많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내적 상태가 괜찮을 때, 자신의 본분 이행에 성과와 성취가 있을 때, 자신은 이미 매우 영적이며, 이미 온전케 되고 정결케 된 성결한 사람이고, 이미 패괴 성품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패괴 성품과 사탄의 성품을 진실하게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생긴 각종 착각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착각들은 사람이 패괴 성품과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 아니겠느냐? 이는 가장 큰 장애물이자, 가장 다루기 어려운 부분이다.

오늘 이렇게 교제한 것을 너희는 이해하였느냐? 핵심을 좀 파악하였느냐? 사람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다. 사람이 자신이 어떤 패괴 성품을 갖고 있는지 모르고 자신의 사탄 본성 본질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면, 자신이 패괴된 인간이라는 것을 진실로 인정할 수 있겠느냐? (인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자신이 사탄에 속하며 패괴된 인류 중의 일원임을 진실로 인정하지 못하면, 진실로 회개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진실로 회개하지 못하면, 사람은 여전히 늘 자신이 괜찮다고, 자신이 매우 존엄하고 몸값이 높으며, 신분이 높고 존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느냐? 여전히 늘 이런 생각과 내적 상태를 갖고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내적 상태가 나타나겠느냐?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이 늘 교란되어 정상적인 내적 상태를 갖기 매우 어렵다. 즉, 네가 어느 한 방면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너는 부정적인 내적 상태의 영향을 떨쳐 버리기 힘들며, 부정적인 내적 상태에서 벗어나기 매우 어렵다. 심지어 너는 또 자신의 이러한 내적 상태가 매우 올바르고, 정확하며,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기까지 하게 된다. 네가 고수하고 꾸준히 지키니 자연히 더 깊이 그 안으로 빠지게 되어 거기에서 벗어나기 매우 힘들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 네가 진리를 깨닫게 되면, 문득 이런 내적 상태는 네가 하나님을 오해하고 대적하게 할 수 있으며, 네가 하나님께 반항하고 하나님을 판단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하나님 말씀이 진리인지 의심하고, 하나님 사역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는 것을 의심하고, 하나님이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이고 원천이라는 것을 의심하게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내적 상태가 너무나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사탄의 철학과 사상이론을 진실로 인식하지 못해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때서야 너는 비로소 사탄이 너무도 음험하고 악독하다는 것을, 사탄이 정말 사람을 잘 미혹시키고 패괴시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길을 걷도록 한다는 것을,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결과가 너무나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네가 이런 인식과 각성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네가 진리를 깨달아 이룬 성과이며, 또한 하나님 말씀이 너를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주어 이룬 성과이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패괴시키는지, 어떻게 사람을 미혹시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지 꿰뚫어 보지 못하는데, 그 결과는 너무 위험하다. 하나님 사역을 체험할 때 만약 자신을 반성할 줄 모르고, 부정적인 사물을 분별할 줄 모르고, 사탄의 철학을 분별할 줄 모르면, 사탄의 미혹과 패괴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하나님이 왜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으라고 요구하겠느냐?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자신을 인식하여, 자신의 패괴된 내적 상태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자신의 그러한 사상과 관점, 말, 처세법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분명히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네가 고수해 온 그 관점들이 진리에 부합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말한 것과 서로 저촉되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했을 때, 하나님이 너에게 요구하거나 하나님 말씀이 너에게 임할 때, 너의 이런 내적 상태와 마음가짐은 네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며, 네가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없게 한다. 이는 네가 고수해 온 그 내적 상태가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너는 이런 상황에 처한 적이 있느냐? 네가 마음속으로 긍정적인 것이고 너에게 가장 유용한 것이라 여겨 이에 따라 살고 있었는데, 의외로 네가 많은 일에 직면했을 때 네가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긍정적인 역할을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고, 갈 길을 잃게 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게 하고, 하나님께 반항하게 하는 이런 상황이 있었느냐? (있었습니다.) 물론 네가 틀리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너는 분명 고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줄곧 고수하고 지킨 것이며, 줄곧 그런 내적 상태에서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네가 진리를 깨닫고 나서야 자신이 고수해 온 것이 긍정적인 사물도 아닌 완전히 틀린 것으로, 사람의 눈에 좋은 것이지 결코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너희는 자신이 고수하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얼마나 자주 발견하고 의식할 수 있느냐? 만약 너희가 많은 경우 틀린 것을 의식하였음에도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여전히 거부하며,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올바로 마주하지 못하며, 여전히 자신의 이치를 따진다면, 이런 잘못된 내적 상태를 돌이키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다. 늘 이렇게 자신을 고수하면 고꾸라지기 쉽고, 넘어져 실패하기 쉽다. 또한,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도 못한다. 사람은 늘 자신의 이치를 따지는데, 이는 패역이고 이성이 없는 것이다. 설령 겉으로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여전히 존재한다면, 근본적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언제 하나님께 반발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너의 이런 내적 상태를 돌이켜야 하고, 너의 이 방면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야 한다. 즉, 네가 고수한 그 관점이 도대체 어디가 틀렸는지를 명확히 알고 이를 파헤쳐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네가 올바른 내적 상태에서 살 수 있다. 네가 올바른 내적 상태에서 살 때,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으니 반발심도 있을 리가 없고, 관념은 더더욱 생길 리가 없다. 이때 너의 이 방면의 패역이 해결되는 것이다. 이 방면의 패역이 해결되면, 네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지 알게 되니, 이때 네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겠느냐? 이 일에서 네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니, 네가 한 것이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 방법과 실행법이 진리에 부합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가 이 일에서 굳게 서면, 이때 네가 올바른 내적 상태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네가 올바른 내적 상태에서 살 때, 네가 드러내고 살아 내는 것은 패괴 성품이 아니다.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 낼 수 있고 진리를 쉽게 실행해 낼 수 있으니 진실하게 순종하게 된다. 지금 너희 대다수가 여기까지는 체험하지 못해 아마 잘 이해하지 못하고 모호할 수도 있다. 도리상으로는 이해했다. 알아들은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다지 알아듣지 못한 것 같기도 할 것이다. 알아들은 것은 도리 부분이고, 알아듣지 못한 것은 내적 상태와 실제 부분이다. 너희가 더 깊이 체험하고 나면, 이 말들이 이해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도 알게 된다. 지금 네가 어느 정도까지 체험했든, 네가 직면한 여러 일에서 분명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느냐? 우선 너는 자신이 파헤쳐야 하는 패괴된 내적 상태가 어느 방면들을 포함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상, 관점, 상태, 정서, 입장, 이 다섯 가지 방면을 포함합니다.) 도리적으로는 이해했는데, 일이 임했을 때 어떻게 실행하고 체험해야 하겠느냐? (일이 임했을 때 자신이 드러낸 태도와 사상이 어떤 성품과 본성에 속하는지 성찰하고, 자신이 드러낸 마음가짐과 사상 관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 방면에서부터 착수해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다. 자신의 진실한 내적 상태, 태도, 사상 관점을 모두 철저히 인식하면, 이 문제의 반은 해결된 것이다. 그런 다음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면 어려움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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