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사람은 반드시 이 점을 이해하고 꿰뚫어 보아야 한다. 깨달은 진리가 너무 적으면 실수하거나 잘못된 길을 가기 쉽다. 생명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매사에 진리를 구하고, 어떤 일에서든 어떻게 해야 진리에 부합하는지, 어떤 불순물들이 진리에 위배되는지를 구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을 반드시 꿰뚫어 보아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진리에 부합하는지, 가치와 의의가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진리에 부합하는 일이라면 해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라면 해서는 안 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은 포기할 수 있으면 포기하고, 혹은 어느 순간까지 하다가 포기해야 할 시점이 오면 결단을 내리고 빨리 내려놓아야 한다. 이는 일 처리를 할 때 지녀야 할 원칙이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는 것은 어째서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까? 마치 물을 거슬러 배를 모는 것과 같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바로 뒤로 밀려나게 됩니다. 그런데 악행과 무의미한 일을 하는 것은 꼭 바람을 타며 노를 젓는 것처럼 어째서 더없이 수월합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묻는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주된 자리를 차지했으며, 이는 반동 세력에 속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기에,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을 하는 것은 수월하고, 긍정적인 일을 하는 것은 어렵기 마련이다. 이는 전부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진리를 진실로 깨닫고, 마음속으로 진리를 사랑하기 시작한 후에 쉽게 진리에 부합하는 일을 하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정상적으로 진리를 실행할 수 있으며, 나아가 가볍고 기분 좋게 행할 수 있다. 그렇게 됐을 때 부정적인 일들을 하면 몹시 힘들게 느껴질 것이다. 이는 네 마음속에서 진리가 주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네가 인생의 진리를 진실로 깨닫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공명정대하고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증거하고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길이 생길 것이다. 이런 진리를 모두 깨닫는다면 더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고, 혹은 거짓 리더, 거짓 일꾼, 적그리스도의 역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사탄이 너를 미혹하고, 악인이 너를 꼬드긴다고 할지라도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며, 누가 어떻게 핍박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얻고 진리가 생명이 되면, 사악한 것을 증오하게 되고 부정적인 사물에 마음속으로 반감을 느끼게 되어 악행을 저지르기가 쉽지 않다. 생명 성품이 변화되었고, 이미 하나님께 온전케 되었기 때문이다.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으면 어떻게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지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네가 올바른 길을 가고 하나님 뜻에 부합하게 된다면 성령 역사도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진리가 없으면 쉽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예를 들어, 네게 교만한 성품이 있다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된다. 너 스스로도 억제할 수 없는데,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는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교만함은 네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하며, 너 자신을 추켜세우고 모든 일에서 스스로를 나타내게 한다. 교만함은 네가 다른 사람을 얕보게 하고, 너를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만든다. 교만함으로 인해 너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게 된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네게 순종하게 할 것이다. 자신의 뜻과 생각, 관념에서 나온 것들을 진리로 여겨 받들게 한다. 교만한 본성에 지배받아 사람이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되느냐! 사람의 악행을 저지르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먼저 사람의 본성을 해결해야 한다. 성품 변화 없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자신의 패괴를 알고, 교만함의 비열함과 추함을 알게 되면, 역겹고 메스꺼워지며 마음이 괴로워진다. 또한,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일을 하여 마음이 편안해지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여 마음에 기쁨을 느끼며, 의식적으로 자신을 폭로하고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밝혀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성품 변화를 추구하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고 진리에 진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진리를 깨달아야 분별력이 생기고, 분별력이 생겨야 일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해야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하여 점차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조금씩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다.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려는 사람의 의지가 어떠한지에 달려 있다. 정말 의지가 있다면, 반년이나 1년쯤 추구하면 정상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하고, 3년이나 5년이 지나면 성과를 볼 수 있으며, 스스로 생명이 성장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 실행을 계속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10년이나 20년을 믿어도 변화될 수 없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저 이런 것이라고, 지난날 세상에서 지내던 때와 다를 게 없다고, 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는 진리가 없으면 삶이 공허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글귀들을 말할 수는 있어도 마음에 위안을 얻지 못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인지 깨달으며,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일을 할 수 있다면 마음속으로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인생이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삶이라고,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께 보답할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느낄 것이다. 사람이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면, 자신을 저버리고 자기 뜻을 내려놓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이런 일들을 모두 의식적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확한 진리 실행이요, 진정한 진리 실행이다. 이는 지난날 상상에 의존하고 규례를 지키며 그것을 진리 실행이라고 여기던 것과는 다르다. 사실 상상에 의존하고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주 피곤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원칙이 없으면 일하는 것도 아주 피곤하고, 목표 없이 맹목적으로 일하는 것은 더욱 피곤하다. 진리를 깨달으면 그 어떤 사람이나 일, 사물의 속박을 받지 않고, 비로소 진정으로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또 일할 때 원칙이 있는 데다 마음까지 가볍고 즐겁다. 별로 힘든 것 같지도 않고 고생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런 내적 상태에 놓인 사람이 바로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고, 성품이 변화된 사람이다.
생명 체험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임하든 진리를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해 그 일을 잘 생각해 어떻게 해야 하나님 뜻에 완전히 부합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면 자신의 뜻에서 나온 것들을 버리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는지 알면 그렇게 행하게 된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듯 매우 수월하고 쉬워진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바로 이렇게 일을 처리한다. 사람들에게 정말로 네 본분 이행에 성과가 있음을 보여 줄 수 있고, 일 처리에 원칙이 있으며 확실히 생명 성품에 변화가 있고 하나님의 선민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으로, 이런 사람에게는 확실히 사람다운 모습이 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 정말 효과를 낸 것이다.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깨닫게 되면 자신의 다양한 내적 상태를 전부 분별할 수 있고, 복잡한 일들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며, 자신이 어떻게 실행해야 적절한지 알게 된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자신의 내적 상태를 분별할 수 없다. 너는 자신을 저버리려고 해도 무엇을 어떻게 저버려야 할지 알지 못하며, 자신의 뜻을 내려놓으려고 해도 자신의 뜻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자신의 뜻이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그것을 성령의 깨우침으로 생각하는데, 어떻게 자신의 뜻을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육을 저버린다는 것도 운운할 여지가 없다. 그렇기에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는 자신의 뜻에서 비롯된 것,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는 것, 호의, 사랑, 고난을 받고 대가를 치르는 것 등을 옳은 것으로 보고 진리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니 그것들을 어떻게 저버릴 수 있겠느냐?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 실행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 갈피를 잡지도 못해 그저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어떤 일들을 치우치고 그릇되게 행하게 된다. 어떤 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고 어떤 것은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어떤 것은 바로 사탄에게서 나온 교란이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일을 할 때 바로 이러하다. 일할 때 좌우로 치우치고, 늘 오차가 생기는데 정확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도 없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이방인처럼 일을 바라보는 것도 그릇되다. 그런데 어떻게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깨닫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의 자질이 어떠하든 설령 한평생 체험한다고 해도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 진리 또한 한계가 있고 인식할 수 있는 하나님 말씀도 한정적이다. 어느 정도 체험이 있는 사람은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고, 명백한 악행을 하지 않는 데 그칠 뿐이다. 자신의 뜻이 전혀 섞여 있지 않은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에게는 정상적인 사유가 있고 사람의 생각이 꼭 하나님 말씀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어서 개인의 뜻이 뒤섞일 수 있다. 핵심은, 하나님 말씀과 진리, 성령의 깨우침에 위배되는, 자신의 뜻에서 비롯된 것들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진리를 깨달아야만 분별력을 갖출 수 있고, 악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성품 변화를 추구하려면 반드시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 공을 들여야 한다. 깊이 인식하여 자신의 본성 안에 어떤 사탄의 독소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무엇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것인지, 매사에 어떻게 실행해야 진리에 부합할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과 이성을 갖춰 허풍을 떨지 않고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떤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면 성품이 변화된 것이다. 성품이 변화된 사람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부분이 점점 줄어들며, 본분 이행에 있어서도 남을 걱정시키지 않는다. 성령 또한 늘 그 사람을 징계할 필요가 없다. 그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줄 알며,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진리에 부합한다. 이러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네게 사역을 하나 맡긴다고 하자. 아무도 너를 관리하고 감독할 필요가 없이도 네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기도로써 이 사역을 잘 해낼 수 있다면, 사역하는 동안 절대 얼렁뚱땅 넘어가거나 교만하고 독선적으로 자기가 결정권을 가지거나 사람을 구속하지 않는다면, 게다가 모든 사람이 공급받고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울 수 있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도록 이끌 수 있다면, 그 외에 사역하는 동안 자신의 지위와 이익을 꾀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잇속을 차린다거나 자신을 위한 말을 하지 않고,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대하든 네가 올바르게 대할 수 있다면, 너는 상대적으로 분량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사람이 사역을 맡고 하나님 선민을 하나님 말씀의 실제로 이끄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진리의 실제가 없으면 안 된다. 은사로 사역하는 사람 중 넘어지고 실패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사람에게 진리가 없다면 절대 신뢰할 수 없고 성품에 변화가 없다면 더더욱 신뢰할 수 없다. 너의 분량은 지금 어느 정도이냐? 누군가가 네게 아첨한다면 어떻게 대할 것이냐? 또 누군가 네게 부정적인 의견과 감정이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공평하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요구대로 사람을 발탁하고 선택할 수 있느냐? 지금의 분량으로 이러한 것들을 진정 해낼 수 있느냐? 한 곳에서 수년간 사역을 한 뒤에 너에 대한 다수의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다면, 그것은 네가 본분 이행에 합격하지 못했고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네가 행한 것을 보고 다수가 좋다고 여기고 적합하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일단 쓰기에 합당한 것이다.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하려면, 진리가 없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진리를 얻어야만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한 것이다.
생명을 추구할 때는 다음 두 가지를 중시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신을 아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제일 근본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생명도 없고, 진리도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으면 어디서 진리를 찾을 것이냐? 세상 어디에 진리가 있느냐? 세상 신문과 매체에서 어느 누가 하나님 말씀을 보도하느냐? 세상의 정당 중 하나님을 증거하는 정당이 있더냐? 세계 각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개적으로 전파하는 게 통하느냐? 분명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진리가 없고 세상은 여전히 사탄이 권력 잡고 마귀가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이다. 온 세상이 어둡고 사악한데, 어디 진리가 조금이라도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에는 가장 중요하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알아 가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생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 등 각 측면의 진리가 포함된다. 이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으니 진리로의 진입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해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게 되면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제일 근본적인 한 가지다. 어떤 이들은 사역하고 설교할 때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 말씀의 표면적 의미만을 이야기할 뿐, 실제적인 것들은 조금도 말하지 않는다. 마치 국어를 가르치는 것처럼 조목조목, 한 부분 한 부분 정리하여 설교한다. 설교가 끝나고 나면 모두가 치켜세우며 “이 사람에게는 실제가 있어요. 정말 훌륭하고 구체적인 설교네요.”라고 말한다. 그는 설교가 끝나면 설교 내용을 정리하여 교회에 나눠 주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행동은 사람을 미혹하는 짓이다. 그는 설교할 때 하나님의 말씀도 인용하고 있어 진리에 부합하는 것처럼 들릴지 몰라도, 전부 하나님의 말씀 중 일부만을 취해 억지로 갖다 붙인 것이기에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부 글귀나 도리, 사람의 관념과 상상, 나아가 하나님을 규정하는 부분도 있다. 이런 설교는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 아니냐? 이는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이성을 갖춘 사람은 말할 때 반드시 말의 범위와 선을 지켜야 한다. 어느 방면의 말이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고 이행해야 할 본분에 속하는지, 어느 방면의 말이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는지, 사람은 아무도 측량할 수 없는데 어찌 하나님을 규정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하나님을 규정할 자격이 없다. 이런 모든 일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비이성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말이다. 이성을 갖춘 사람은 스스로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적절한지 알아야 한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면 꺼내지 마라. 설령 하나님이 네게 얘기했다 하더라도 말하지 마라. 네가 자신이 있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바로 실행해야 한다. 늘 입에만 달고 산다 해도 소용없다.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그 말에 따르고, 순종하게 하려 한다면, 이는 교만한 것 아니냐? 하나님에 대한 일은 모르면 모르는 것이다. 절대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말고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 행하지 마라. 너무 역겹다. 언제나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면, 마치 모든 것을 통달한 것처럼, 앞에 나서려고만 한다면, 또한 하나님을 내세워 이 일 저 일을 하려 든다면, 이게 정상인의 이성이냐? 이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냐? 네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느냐? 네게 하나님의 지혜가 있느냐? 자신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더욱 진리를 갖추지 못했으며 하나님을 증거할 줄도 모르고, 심지어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하나님을 내세워 말하고 일하려 한다. 사람이라면 이러한 야심을 품기 마련인데, 이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고 비이성적인 일이다.
오늘날 각 나라 각 지역의 사람들이 모두 참도를 찾으러 오는데,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느냐? 만약 사람이 비이성적이고 교만하고 방자하며 제멋대로 행동하고 나쁜 짓을 저지른다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욕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는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요 더욱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바로 자신의 사탄 몰골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정으로 정복된 사람은 진실한 말을 하는 법을 배우고 참된 간증을 해야 한다. 개인의 생명 체험을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큰소리치고 큰 이론을 얘기하고 싶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몇 년 동안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했다 하더라도 사람은 여전히 성실하지 못하다. 사람의 신분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없음에도 비이성적이고 교만한 인간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증거하려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모욕하고 모독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고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성품인 네가 하나님을 증거한다는 것이 역겨운 일이 아니냐?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중국 대륙에서 하신 사역을 증거해 주세요.”라는 누군가의 말에 네가 “우리가 수년간 하나님 사역을 체험했는데, 이제 하나님을 증거할 때가 되었죠.”라고 대답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 또 비이성적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없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죠. 이에 우리는 어느 정도 은혜를 얻었고 하나님 사역에 대해 약간의 체험을 했으니, 교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증거하진 못하고 그저 개인의 체험만은 말할 수 있어요.” 너는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께 정복되었는지, 당시에 어떤 패괴를 드러냈는지, 어떻게 교만했는지, 결국 정복되고 나서는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와 어떤 의지를 가지게 되었는지 교제하면 된다. 사실 참된 체험을 얘기함으로써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자 하나님의 요구이다. 여전히 위치에 서서 하나님을 증거하려 한다면 이것은 큰 잘못이자 비이성적이며 교만한 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는 저의 체험을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하나님을 증거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왜 성육신으로 중국에 오셨는지를 주제로 교제를 나누겠습니다. 여러분은 어쩌면 이에 대해 잘 모르실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우리 중국인은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에서 태어났고, 더러운 곳에서 성장했으며 사탄에 의해 가장 깊이 패괴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인은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고, 인성도 제일 나쁘며 인격 또한 갖추지 못해 사람다운 모습이 조금도 없습니다. 우린 각 나라 각 지역의 하나님 선민에 비해 가장 저급하고 가장 더러우며 가장 깊이 패괴된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이토록 큰 구원과 사랑을 받았으니, 개인의 체험 간증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말살할 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면 상대적으로 이성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께 정복된 후 최소한 갖춰야 할 이성은 절대 교만하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분토의 위치에 서서 솔직한 말을 해야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제일 좋다. 특히 하나님을 증거할 때 큰소리, 빈말, 거짓과 기만의 말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온 참된 말을 할 수 있다면, 네 성품에 진짜 조금 변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복된 후 마땅히 있어야 할 변화이다. 이 정도의 이성도 없다면, 사람다운 모습이 너무나 없는 것이다. 나중에 각국 각지의 하나님 선민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정복됐을 때, 대예배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때 네가 또 교만하기 시작하여 계속 자신을 자랑하고 드러내면, 너는 철저히 버려지고 도태된다. 사람은 늘 점잖게 행동하고, 자기 신분과 지위를 확실히 알고, 옛 병이 도지지 않도록 보증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교만하고 잘난 체하는 것은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이다. 이 부분에서 변화가 없으면, 그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여전히 사탄의 모습이다. 교만함을 해결하기가 가장 어렵다. 이 부분을 인식했다 해도 완전히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많은 연단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없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아무래도 위험하다. 앞으로 각국 각지의 하나님의 선민이 하나님 사역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중국에서 이긴 자들을 얻었다고 진작 계시를 받았습니다.”라고 하면, 너희는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조금도 큰소리칠 거 없어. 모두 하나님의 은총인걸. 우리는 이긴 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자신이 뭔가 좀 얘기할 줄 알고, 실제가 조금 생긴 것을 보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성령의 계시를 받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다들 하나님이 중국에서 이긴 자들을 만드셨다고 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바로 그 이긴 자들이지.’ 그러면서 묵인하고 인정하다가 결국에는 공개적으로 인정할 것이다. 사람은 칭찬과 지위의 시련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이 늘 너를 칭찬하면, 너는 위험해진다. 성품에 변화가 없는 사람은 결국 굳게 서지 못한다.
패괴된 인류에게 있어 옛 병이 도지는 것은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옛 병이 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람은 먼저 자신이 아직 진리를 얻지 못했고 생명 성품에도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긴 하지만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 사는 사람은 결코 구원받은 게 아니어서 언제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날 수 있다.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한다는 말처럼 마음에 이런 위기감이 있다면 어느 정도 자제가 가능하고,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해 옛 병이 도지는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자신의 성품이 변화되지 못했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이 아직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제거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이 여전히 존재하며 언제든 침륜되고 멸망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이는 진실이니 너희는 반드시 신중을 기해야 한다. 명심해야 할 세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다. 첫째,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둘째, 성품에 변화도 없다. 셋째, 아직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내지 못했다. 이 세 가지는 다 사실에 부합하고, 또한 진실이니 스스로 명확히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정말 의지가 있다면 좌우명을 하나 준비해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분토다.”, “원래 마귀다.” 혹은 “옛 병이 도진다.”,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등과 같은 문구들 말이다. 어떤 문구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하든 다 적합하고 수시로 상기시키면 도움이 된다. 여러 번 되뇌고 반성하다 보면 잘못을 줄이거나 저지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진리를 깨달아 자신의 본성을 알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위험이 없다. 그리고 또 다른 사항은 절대로 ‘하나님의 증인’이라는 위치에 서서는 안 되고, 자신을 하나님의 증인이라고 일컬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오로지 개인적인 체험만 얘기할 수 있다.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너희가 어떻게 정복되었는지와 너희가 받은 은혜를 얘기할 수 있다. 너희는 가장 깊이 패괴된 사람들이자 쓰레기이며 분토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높여 줌이다. 너희가 가장 패괴되고 더럽기에, 성육신한 하나님의 구원과 이토록 큰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조금도 자랑할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너희가 구원받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총이다. 왜 너희를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겠느냐? 너희가 운이 좋다는 것은 결코 너희가 어떠한 강점이 있어서나 좋은 조건을 가져서가 아니다. 단지 너희가 중국에서 태어나 사탄에 의해 가장 깊이 패괴되었고 가장 더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경륜에 따라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의 가장 더럽고 패괴된 인류를 우선 구원하여 먼저 모델과 표본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너희를 선택한 것이다. 너희가 바로 하나님이 예정하고 선택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계획하지 않았더라면, 너희는 영원히 침륜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너희는 조금도 자랑할 것이 없으니 절대로 허풍을 떨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하면서 모두 어느 정도 수확을 거뒀으며, 진실한 체험이 생겼으니 하나님을 위해 증거해야 한다. 하나님을 증거할 때에는 주로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지, 어떤 시련으로 사람을 연단하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지, 너희가 체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패괴를 드러내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결국 어떻게 정복되었는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얼마나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말해야 한다. 너희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할 때 공허한 이론을 말하지 말고 사실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말하며, 마음속 말을 솔직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체험하면 된다. 심오하고 공허한 이론으로 자신을 뽐내려 하지 마라. 그러면 너무 교만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실제적인 말, 마음에 있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이는 사람에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되고 사람들 보기에도 가장 적절하다. 지난날, 너희는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한 사람들이었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정복되었다. 이 점을 영원히 잊어선 안 된다. 이 방면의 일을 많이 묵상하고 생각해서 이해한다면 어떻게 증거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뻔뻔스럽고 비이성적인 일을 저지르기 쉬운데, 그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참된 체험이 없고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한다.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한다.
약 1999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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