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제 1 부)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지 아닌지는 본분을 이행하는 데서 드러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본분 이행에 원칙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전혀 원칙 없이, 늘 자기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이행한다. 이는 건성으로 하는 게 아니냐?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아니냐?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너희는 생각해 보았느냐? 너희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고, 무얼 하든 효율이 없고, 마음과 힘을 전혀 쏟지 않는다. 그러고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마지못해 본분을 이행하고 오래가지도 못한다. 조금만 고생해도 견디지 못하고, 크게 손해를 본다고만 생각하고, 무슨 어려움이 있어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데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겠느냐? 무슨 일이든 건성으로 하면 되겠느냐? 양심적으로 볼 때 넘어갈 수 있겠느냐? 사람의 기준으로 평가해서도 불합격이라면 이것을 합격한 본분 이행으로 볼 수 있겠느냐?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너는 영원히 진리를 얻을 수 없고, 너의 봉사도 불합격인데, 어떻게 하나님께 인정받겠느냐?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때 고생을 두려워하고, 너무나 게으르고, 육적인 편안함만 탐하고 있다. 업무를 배우는 일에 대가를 치르지도 않고, 열심히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를 묵상해 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대충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수고를 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료를 찾을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 알아볼 필요도 없고, 머리를 쓰거나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육적으로 전혀 고생하지 않고도 아주 손쉽게 일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네가 그를 책망하면 그는 꼭 불복하고 따진다. “저는 꾀를 부리거나 한가하게 보낸 것도 아니고, 일도 다 마쳤는데, 왜 또 흠을 잡으려 하세요? 공연히 트집 잡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본분 이행한 것만으로도 잘했는데, 왜 아직도 불만이세요?” 너희가 볼 때 이런 사람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 늘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면서 핑계만 가득하고, 문제가 생겨도 지적도 못 하게 하는데, 이는 어떤 성품이냐? 사탄의 성품이 아니냐? 이런 성품으로 본분을 이행하면 합격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본분을 이렇게 이행하는 것이 아니냐? 겉으로는 바빠 보이고, 협력도 척척 하고, 다투지도 않지만, 본분 이행에 누구도 공을 들이지 않고, 누구도 마음을 쓰지 않고,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이도 없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리를 구하고 원칙을 지키는 이도 없다. 다들 건성으로 어영부영 지나는데, 진정 본분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너무도 적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같이 열심히 기도하지도 않고, 함께 문제를 대면하고 해결하지도 않는다. 아무도 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일만 마치면 그만이다. 결국에는 다시 해야 한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순전히 건성으로 하는 것으로, 이방인이 일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이 바로 봉사자의 마음가짐이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바꾸지 않으면 드러나 도태되는 수밖에 없다.

너희는 사역을 하거나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어떤 고통을 받았느냐?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거기에만 몰두했느냐? 본인의 어떤 어려움도 극복했느냐? 대가를 치렀느냐?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면 너무 힘들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왜 그럴까?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은데 자신이 진리가 부족하고 힘에 부쳐서 애가 타는 것이다. 만약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것은 본분을 다하지 못한 것이고 충성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에 양심에 참소를 받고, 마음이 편치 않다. 다른 사람들은 식사를 하는데, 혼자서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지난번 그 부분이 또 잘못됐는데, 내가 제대로 확인을 못 했어. 이걸 어쩌지? 이것은 책망을 받느냐 마느냐의 일이 아니라 내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거야.’ 남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봐도 먹고 싶은 생각도 없고, 오로지 어떡하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만 고민한다. 이것은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냐?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공을 들인 적이 있느냐? 만약 너희에게 책임감이 하나도 없고, 나쁜 짓을 저지르거나 건성으로 일하고도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거나 아무런 자각도 없다면, 무슨 충성을 논하겠느냐? 전혀 논할 수 없다. 만약 하나님 집에서 너에게 어떤 본분을 맡겼는데 빨리 완성해야 해서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실행해야 하느냐? 그저 시늉만 하면서 마음도 쓰지 않고, 고민도 하지 않고, 자료도 찾아보지 않고, 잘 아는 사람을 찾아가 교제하지도 않고, 거기서 시간만 보낸다면, 그런 본분 이행 태도는 어떤 것이냐? 바로 말만 번지르르하고, 진심은 동하지 않은 것이다. 말만 번지르르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겉으로는 듣기 좋게 말하지만, 그저 말만 그런 것이고, 남들이 착각하게 만들거나 혹은 네가 고생하고, 마음 쓰고, 애쓴다고 생각하도록 고의로 남들을 오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너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네가 신경을 쓰고, 정말로 네 마음을 다한다면, 정말 네 마음에 본분을 담고 있다면, 행동해야 한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 바빠져야 한다. 자료를 찾거나 하나님 집 원칙이 무엇인지 자주 들여다보거나 혹은 그 분야 업무를 잘 알고 잘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 어떤 때는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없겠지만, 바쁘더라도 잊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해야 한다. 대략적인 길을 찾고 원칙을 대부분 파악했으면 그때는 착수해야 한다. 3~5일 후에 제대로 된 작품이 만들어지면 이것이 바로 성과다. 네가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고 무성의한 태도로 임해도 3~5일 후면 작품 하나쯤은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작품의 질이 어떻겠느냐? 겉으로야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고 크게 흠잡을 데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제대로 된 작품도,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 결과물도 아니고, 그저 허접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대충 완성해서 제출하면 합격할 리가 있겠느냐? 결국 다시 작업해야 하는데, 그건 일을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냐?

어떤 사람들은 대강대강 일하고, 어떤 일에도 마음을 들이지 않고 그저 무성의한 태도로 임한다. 이런 사람은 마음씨가 좋지 않다. 마음씨가 좋지 않은 사람이 책임감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마음씨가 좋으냐, 좋지 않으냐? (좋지 않습니다.) 책임감이 없는 사람에게는 좋은 마음이 없다! 어떤 일에도 무성의한 태도로 임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고, 대가를 치러 성과를 내려는 마음도 없다. 그런 태도로 본분을 이행한다면, 이행하는 본분이 합격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합격한 본분 이행은 시간에 있어서 요구 기준이 있느냐, 없느냐? 본분 이행하는 태도에 요구 기준이 있느냐, 없느냐? 누군가는 말한다. “저는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 무리하지 않기, 둘째, 식사 거르지 않기, 셋째, 무모하게 나서지 않기’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나오지 않았는데 제가 미리 도착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나가지는 않으려고요. 또 다른 사람이 아직 본분을 이행하고 있어도 저는 마무리하고 쉴 생각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고생은 저도 하지 않고, 남들이 고생해야 저도 합니다. 다들 해야 저도 하고, 남들이 안 하면 저도 안 합니다.” 이런 기준은 어떠냐? (좋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다. “저는 기분이 안 좋으면 본분을 잠시 미루고, 작업 시간도 줄입니다. 그럴 때 저한테 협력하라고 하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요. 기분이 좀 괜찮아지면 그때는 적극적으로 하지요.” 이런 기준은 어떠냐? (좋지 않습니다. 그건 기분에 따라 일하는 것입니다.) 또 이런 사람도 있다. “본분을 이행하는데 다들 저한테 잘해 주고 제 뜻을 따라 주고, 설령 제가 좀 실수해도 저를 책망 훈계하지 않으면 그건 괜찮아요. 그러면 저는 70% 정도의 노력은 하죠. 그런데 누군가 저를 꾸짖고, 제 흠을 들추면 본분 이행하기가 싫어져서 그냥 피합니다.” 이런 태도는 어떠냐? (좋지 않습니다.) 또 이런 사람도 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할 때는 누구도 저한테 이래라저래라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하고 싶어야 합니다. 저는 체면이 중요하니, 누가 본분을 이행하라고 재촉하고, 효율을 요구하면 안 됩니다. 저더러 원칙을 어긴다고만 하는데, 그건 저한테 어려운 문제고, 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겁니다. 하나님 집의 진리 원칙을 저한테 요구한다면, 제 분량이 작아서 그렇게 못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하겠지만, 제 능력이 따라 주지 않는 일은 그걸로 저를 난처하게 하지 마십시오. 저를 난처하게 하면 그냥 때려치우고 갈 것입니다. 저를 난처하게 하지 않으면 그때 다시 오겠습니다.” 이런 태도는 어떠냐? (좋지 않습니다.) 이 태도들이 다 좋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고, 다들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는 어떻게 본분을 이행한 것이냐? 너희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느냐? 방만하고, 제멋대로이고,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누구 말도 듣지 않고, 무성의하고, 어떤 일도 진지한 태도로 임하지 않고, 잘하는 게 좀 있으면 거들먹거리고, 조금만 수틀리면 짜증 내고, 인상 찌푸리고, 하기 싫어하고, 바로 본분을 포기하려 한다. 이런 태도가 너희에게는 있느냐, 없느냐? (있습니다.) 이런 태도가 나타날 때, 너희는 같이 교제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시도해 본 적 있느냐? 이런 문제가 있으면 사람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느냐? 본분 이행에 합격해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느냐? 당연히 그럴 수 없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내든 그것은 모두 실제적인 문제이며, 본분 성과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그 즉시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실제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저절로 사라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악화될 것이다. 악화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이런 패괴 성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것은 네 내적 상태에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문제는 네 본분 이행을 가로막고, 네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네가 하나님 앞에 오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이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문제이다. 시간이 갈수록 네 마음속 불평과 원망,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 사람에 대한 편견, 사람 사이의 벽과 같은 것이 점점 마음에 많이 쌓여서 틀림없이 너를 잘못된 길로 이끌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교란하여 사람을 부정적으로 만들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바로 사람의 관념, 오해 등은 모두 부정적 사물이자 사탄 독소로, 이런 것들이 사람 마음속에 축적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믿음을 부식시키고, 사람의 열정, 사람의 진심을 전부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믿음이 없고, 열정이 없다면 본분을 이행하려는 의욕이 갈수록 작아지지 않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서 오는 평안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본분을 이행해도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를 느끼지 못한다면 사람은 내면이 굳건해질 수 없고, 관념과 오해, 불평, 소극성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에 의해 통제될 것이다. 사람이 이런 내적 상태 속에서 살다 보면 본분을 이행할 때도 힘만 쓸 수밖에 없다. 억지로 버티고, 대충 처리하고, 무슨 일을 해도 의지력으로 억제할 뿐,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는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없다. 그 뒤로 따라오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아무리 본분을 이행해도 원칙을 찾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만 하고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본분 이행할 의욕도 점점 사라질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처음에 본분을 이행했을 때는 감동도 있고, 깨우침도 있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같았어요. 마음에 기쁨도 있고, 어떤 일도 꿰뚫어 볼 수 있고, 어떤 일을 해도 마음이 홀가분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너무 멀어져서 기도도 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아요.” 이건 어찌 된 일이냐? 사람의 마음이 병든 것이다. 무슨 병일까? 바로 사람 내면의 패괴 성품이 늘 못된 짓을 해 교란하는 것이다. 이런 패괴 성품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본분에 늘 문제가 생기고, 심하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할 것이다. 본분 이행에 합격하고 싶다면 항상 진리를 구하여 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한다.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고,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게 해서 패괴 성품이 해결되면 본분 이행도 수월하고 순조로워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구해 패괴 성품을 해결할 생각은 않고, 그저 좋은 마음, 열정, 사람의 의지로만 극복하려고 한다. 그러면 패괴 성품이 흘러나오는 것을 일시적으로는 피할 수 있겠지만, 패괴 성품의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이 되겠느냐? 진리를 구하지 않으면 패괴 성품은 해결할 수 없고, 사람이 패괴 성품 안에서 살아간다면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없고, 이행하는 본분이 합격일 수 없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무골호인이 정말 좋은 사람이겠느냐? 어떤 사람이 하나님 눈에 진정으로 좋은 사람, 진리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겠느냐? 먼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다음으로 진리를 깨달은 기초에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관념과 상상, 사람에 대한 편견, 사람에 대한 오해와 하나님에 대한 오해 등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이런 것들을 언제든 발견하고 언제든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좋지 않은 내적 상태나 소극적인 상태로 살아갈 때 즉시 이를 바로잡고, 이런 패괴된 것들을 고수하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언제든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구하고 해결하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비록 연약함과 패역이 있고 교만, 독선, 교활함, 간사함 등 갖가지 패괴 성품을 드러낼지라도 성찰하여 문제를 발견한 후에는 제때 해결하고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런 사람이 바로 진리를 사랑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눈에 어떻게 보이겠느냐?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 눈에는 좋은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낡은 관념을 부여잡고, 자신의 편견과 오해를 완고하게 고수하고, 늘 소극적인 정서로 본분을 이행한다. 자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관점을 고집하고, 책망을 받으면 반감을 품고 이치를 따진다. “저는 그냥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 자신을 내려놓지 않으렵니다. 하나님 집에서 그렇게 처리하는 것은 불공평한 것 같군요.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공평하다고 해도 저는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당신 말은 진리가 아닙니다! 당신은 제 본분 태도가 바르지 않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제가 악을 행한 것도 아닙니다.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한다고 하는데,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건성으로 이행하는 것이 아닌 겁니까? 제가 이렇게 본분 이행하는 것도 충분히 괜찮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렇게 이행했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도 불공평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공의도 거짓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냐?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는 것이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이방인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하나님이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혐오하십니다.) 이런 자는 강퍅하고 패역한 자가 아니냐? 너에게 비록 패괴가 있지만 하나님은 이를 기억하지 않고, 네가 패괴된 사람이라는 이유로 너를 버리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네가 진리를 깨닫고도 고의로 대적하고 고의로 거역하기 때문에, 네 이런 태도 때문에 하나님이 상심하고, 혐오하고, 반감을 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태도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보기에 좋은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보기에도 좋은 사람이 아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고 싶다면 반드시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 우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눈에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만약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아무리 패괴 성품이 드러나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진리를 구해서 해결할 수만 있다면, 또 책망과 훈계를 받고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면, 이것은 완전 구원받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줘야 하는데, 이 요구가 너무 높아서 도달하기 어렵고, 너에게 그런 의지와 분량도 없고, 네 믿음도 너무 작다면 우선은 주변의 형제자매들에게 네가 좋은 사람, 옳은 사람,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고, 공평과 공의를 좋아하는 사람임을 보여 줘라. 네가 비교적 정직한 사람이라서 잘못이 있으면 고칠 줄 알고, 자신의 패역한 상태를 발견하면 얼른 바로잡을 줄 알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발견하면 얼른 진리를 구하고, 사람들과 교제하고, 또 인식한 뒤에는 회개할 줄 안다는 사실을 보여 줘라. 이렇게 추구하면 발전이 있을 것이다. 우선 형제자매들에게 네가 좋은 사람, 옳은 사람, 생명 진입이 있는 사람임을 보여 주고, 그런 다음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라. 이렇게 실행하면 쉽게 진입할 수 있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 비교적 실제적이다. 먼저 형제자매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냐? 우선 본분 이행에서부터 보자면, 본분 이행은 몇 가지 요구 기준에 도달해야 하느냐?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기꺼이 고생하고,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 일을 진지하게 대하고, 건성으로 일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좀 더 기준을 높이자면, 일 하나하나 거기에 해당하는 원칙을 찾은 다음, 그 원칙에 맞게 처리해야 한다. 누가 한 말이든 관계없다. 설령 네가 가장 우습게 여기는 형제가 얘기한 원칙일지라도, 그게 옳은 말이고, 진리에 부합한다면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여 보고, 자신의 생각, 자신의 관념을 저버려 보려는 이런 태도는 어떠냐? (좋습니다.) 입으로만 본분을 잘하겠다고 하는 건 쉽다. 입만 열면 된다. 하지만 합격된 본분 이행에 이르기는 어렵다. 그러려면 일정 부분 대가를 치르고, 버려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 가장 기본적으로 시간을 들이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하루에 남들보다 시간과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하고, 더 오래 지속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책임감을 가지고 본분을 잘하고 싶다면 속으로 항상 어떻게 해야 본분을 잘할지, 본분 이행할 때 어떤 진리를 갖추고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잘 생각해야 한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 기도로 진리를 구하고, 자신의 소망을 표현하고, 하나님께 깨우치고 인도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저녁에 남들이 쉴 때도, 너는 따로 시간을 내서 잘 생각해 보아라. 오늘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스스로가 어떤 패괴를 드러냈는지 반성하고 길을 찾은 뒤 비로소 휴식에 든다면 그날 하루는 수확이 있고, 헛되이 보내지 않은 것이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해 내지 못하면 밥도 넘어가지 않고, 잠도 오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수고요, 이것이 바로 대가다. 네가 남들보다 더 많은 수고와 대가를 치르고,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가며 진리를 향해 노력한다면, 이것이 실제적인 대가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이런 대가를 치러 본 적이 있느냐? 자매들 중에는 꾸미기를 좋아해서 매일 화장하고 머리를 만지는 데 최소 한두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이 있다. 육이 누리는 일에서는 아무것도 포기한 적 없고, 늘 자신을 예쁘게 꾸미고 옷차림도 늘 맵시 있다. 하지만 본분은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열심히 해 본 적도 없다. 열심히 하지 않는 모습은 어디서 드러나느냐? 본분 이행할 때 진심을 들이는 법이 없고, 결코 마음을 쓰지 않는다. 가끔 늦게 자는 것도 남들이 늦게 자니까 그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거나, 일이 끝나지 않아 마무리를 못하니까 자리를 뜨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개인을 놓고 볼 때, 본분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더 쏟은 적도 없고, 대가를 더 치른 적도 없고, 고생도 전혀 하지 않았다. 비록 사람들과 같이 본분을 하느라 똑같이 시간을 쓰더라도 전혀 효과가 없고, 대충 일하는 시늉만 하면서도 속으로는 본인이 무척 고생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는 어떠냐? 이런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하느냐? 결코 아니다. 너희는 평소에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느냐? 진지하게 대했느냐? 본인에게 그런 의지도 없고, 그렇게 대가를 치러 본 적도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본인의 본분 이행이 전적으로 억지로 겨우 버티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 것이다. 이런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를 고쳐 본 적이 있느냐?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이냐? 우선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때로는 늦게 자고 때로는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이는 육적인 수고다. 이것 말고도 마음을 더 쓰고, 에너지를 더 쏟고, 머리를 더 쓰고, 더 묵상하고, 하나님 앞에 더 많이 기도하고 구해야 한다. 네 시간과 에너지를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모든 것을 본분을 이행하는 데 쏟고, 하나님 부탁을 완수하는 데 쏟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 쏟는 것, 이것이 본분 이행에서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너희가 본분을 이행할 때 가장 부족한 점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 너희는 힘을 다했을 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지는 않았다. 이 세 가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너희가 본분을 이행할 때 그저 힘만 다할 줄 안다면, 하나님 눈에는 어떤 사람으로 보이겠느냐? (봉사자입니다.) 너희는 봉사자가 되기를 바라느냐? (아닙니다.) 너희는 봉사자가 되기를 원치 않으면서도 봉사만 하고 있다. 게다가 즐거이 봉사하고 있다. 너희가 가는 길은 바로 이런 길이다. 봉사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냐? 바로 사람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네가 어떤 길을 가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는 바로 어떤 꽃을 피워서 어떤 열매를 맺는가 하는 것과 같다. 네가 봉사하는 길을 택했다면 최종적인 결과는 봉사자가 되는 것이다. 네가 힘쓰는 것을 빌미로 복을 얻으려는 생각만 할 뿐, 본분에서는 진리를 구하고 원칙대로 일해서 합격된 본분 이행에 이르기를 원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그저 힘을 다하는 것에 만족하는데, 그러면 결국 봉사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모순이 아니다. 하지만 봉사자라는 사실에 속으로 갈등을 겪는데, 이는 어디가 모순이냐? 사람은 그 누구도 봉사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진리를 추구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복은 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본인이 봉사자라는 말을 들으면 싫어한다. ‘이건 나를 모욕하고 멸시하는 거잖아? 사람 차별하는 거 아냐?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이렇게 힘을 쓰는데 어째서 봉사자라는 거지?’ 맞는 말이다. 진리는 하나도 실행하지 않고, 그저 힘쓰는 것으로 만족했으니 너는 바로 봉사자이다. 본분 이행을 힘만 조금 쓰면 되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라. 마음을 쓰지 않으면 본분을 잘할 수 없다. 마음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것이고, 너는 이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말을 지금 본분 이행에 적용하면 꼭 알맞다. 네가 만약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그러면 네가 바로 하나님 눈에 좋은 사람이다. 하나님 눈에 좋은 사람은 어떻게 판단하느냐? 어떤 면을 봐야 하느냐? (본분 이행을 봐야 합니다.) 먼저 본분 이행을 봐야 한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와 관점은 어떤 것인지, 의도와 목적은 무엇인지, 본분 이행할 때 진리 원칙이 있었는지, 일을 해서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등, 이런 부분에서 그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인지, 하나님 보기에 정직한 사람인지,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직관적인 원칙과 기준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이해가 되느냐? 너희는 진리를 추구하여 백성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 힘을 써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진리를 향해 노력하고, 하나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마음에 합할 수 있다. 힘을 쓰는 것으로만 만족한다면, 그 요구 기준이 너무 낮다. 본분을 이행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을 하면서 힘만 조금 쓰면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업무 기술에 관계된 일은 기술이 없으면 제대로 할 수가 없다. 특히 하나님 집 본분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과 관계가 있기에 진리가 없으면 안 된다.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증거하는 성과를 낼 수 없다. 따라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반드시 진리를 이해하고 원칙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진리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힘만 조금 써서 하나님 축복과 맞바꾸려 했다면, 그 생각은 틀렸다. 하나님은 본분 이행이 불합격인 너 같은 사람은 쓰지 않고 도태시킨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준은 사람이 본분 이행에 합격하는 것이지,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는 봉사자가 된 사실이 못마땅하겠지만, 사실 하나님도 그 일로 상심하고 슬퍼한다. 너는 하나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하나님이 봉사자들을 구원하려고 그렇게 큰 대가를 치르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을 온전케 하려는 것이다. 봉사자에게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봉사자를 구원하는 일이 가치가 있느냐? 그것이 하나님이 영광을 얻었다는 표시냐? 단순히 힘쓰는 것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냐? 봉사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가야 할 길도 아니다. 누군가는 말한다. “저는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저더러 어떻게 힘을 쓰라고 해도 좋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 이미 전력을 다했습니다. 다만 자질이 좀 부족하고, 진리를 모를 뿐이죠. 하나님은 제 마음을 아실 테니 저를 칭찬해 주시겠죠!” 이 말이 하나님 요구에 부합하느냐?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은 본분 이행에 합격한 사람, 그러니까 본분을 이행할 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사람이다. 만약 네가 힘만 쓰고 마음을 쓰지 않았다면, 그렇게 본분을 이행한 것은 마음을 다한 것이 아니다. 마음을 다하지 않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느냐?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느냐? 힘만 쓰고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봉사자밖에는 될 수가 없는데, 봉사자가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느냐? 그것은 불가능하다. 본분을 이행하는 데 있어 하나님 말씀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것입니다.) 이는 진리에 관계되고, 진리 원칙에 관계되고, 실행 원칙에 관계된다. 실행 원칙이란 어떤 것이냐? 바로 네가 살아가면서, 또 본분을 이행하면서 해내야 하는 것이고, 네가 실행해야 할 길이고, 네 인생의 방향이자 목표이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이 말씀을 가슴에 좌우명으로 새기고, 일을 할 때 이 말씀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판단해야 한다. 본인이 어느 부분은 도달했고 어느 부분은 아직 부족한지, 본인의 내적 상태는 어땠는지, 패역은 없고 사심은 없었는지, 하나님께 조건을 들먹이며 거래하려 들지는 않았는지, 강퍅함은 없었는지, 태만하게 일한 부분은 없었는지, 무성의한 부분은 없었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겨라. 즉 하나님의 이 말씀, 이 진리를 마음속으로 기억해야 한다. 마음속에 새기는 목적은 무엇이냐? 다른 사람이 들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바로잡고, 자신의 행위를 단속하여, 자신이 일을 할 때마다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 있다고 하자. 너는 하나님 말씀에서 뭐라고 했는지 얼른 떠올릴 것이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는 게 마음을 다하는 걸까?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사람한테 물어보고 교제해 봐야겠다.’ 교제를 마친 다음 기도를 하고, 자신에게 잘못된 속셈은 없는지 돌아봐라. 개인의 사심과 목적이 없다면 완전히 진리에 부합한 것으로 단정하고, 그 진리를 실행해 내면 마음은 평온해진다. 즉 너는 마음을 쏟았고, 마음을 완전히 다한 것이다. 이것이 최선이다. 네가 마음을 다하고 싶다면, 마음속으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 이것은 마음의 일이다. 네 마음이 하나님에게 가까워지고, 마음이 늘 진리를 생각하고, 진리를 향해 노력한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된 것이다. 마음을 다하는 것만 가능해지면,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도 저절로 가능해진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이 말은 너에게서 실제가 된다.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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