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측면의 말씀 (발췌문 82)

(형제자매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아직도 정에 얽매입니다. 늘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본분 이행에 지장을 받습니다. 지금은 내적 상태가 조금 좋아졌지만, 아직도 가끔은 큰 붉은 용이 가족들을 잡아가서 저를 위협할까 봐 걱정되고, 제가 굳게 서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지금 네가 하는 걱정은 기우다. 그런 일이 생각날 때는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그것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임을 알아야 하며, 반드시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워 너에게 닥친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굳게 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람이 배워야 할 공과다. 너는 늘 생각해 봐야 한다. 그동안 하나님이 너를 양육하고 목양한 일을 너는 어떻게 체험했느냐? 네 실제 분량은 어떻게 되느냐? 어떻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하느냐? 이 문제들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큰 붉은 용이 너를 위협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면서 어째서 진리 방면에서 어떻게 진입할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냐? 어째서 진리 면으로 묵상하지 않는 것이냐? (그런 생각이 들면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언젠가 정말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죽어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제 분량이 작아서 이겨 내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너는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제 분량이 작아서 이겨 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죽을 만큼 두려우니 제발 그렇게 하지 마시고, 제가 분량이 생기면 그때 그렇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어떠냐? (좋지 않습니다.) 너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지금 분량도 작고 신심도 작아서 내심 일이 닥칠까 봐 두렵습니다. 사실 만사 만물이 모두 당신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아서 저 자신을 당신 손에 맡기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패역입니다! 이제는 당신 안배와 지배에 순종하겠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하시든 제 마음은 당신을 증거하기 원하고, 당신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굳게 서서 증거하기 원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뜻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네가 하려는 말, 네 의지를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면 참된 신심이 생길 것이다. 이런 기도마저 할 용기가 없다면 네 믿음이 얼마나 작다는 말이냐! 자주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꼭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네가 태도와 의지를 밝히면 하나님은 열납할 것이다. 하나님이 열납할 때 너는 속으로 이런 일에 교란되거나 얽매이지 않게 된다. ‘남편이고, 자녀이고, 가정이고, 재산이고, 다 하나님 손안에 있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우주 전체가 다 하나님 손안에 있는데,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 아니겠어? 내가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야? 나한테는 결정권이 없어. 그럴 능력도 없고, 가족을 지켜 줄 수도 없어. 가족의 운명, 가족의 모든 건 다 하나님 손안에 있는 거야!’ 너는 신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한편,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마음을 다잡아 하나님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네 내적 상태가 달라지고, 뒷일에 대한 염려가 사라져 걱정하지 않게 되고, 무슨 일을 하든 조심스럽고 우려가 앞서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남들은 다 적진으로 돌격하는데 너만 뒤에 숨어서 도망칠 궁리를 한다면, 그건 겁쟁이가 아니냐?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나라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피조물이 창조주 앞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약하게 벌벌 떨면서 이것저것 걱정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 내적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걱정하고, 또한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는다면, 너는 그런 내적 상태에 얽매이고 속박당해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마음과 뜻, 힘을 모두 기울여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는데, 그럴 수 있겠느냐? 너는 마음을 모두 기울이지 못한다. 그것은 네 마음이 본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10%만 마음을 기울여도 잘한 셈이다. 마음을 모두 기울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힘과 뜻을 모두 기울이겠느냐? 네 마음이 본분에 있지 않고, 본분을 이행하려는 바람이 조금밖에 없으니 마음과 뜻을 다하여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너에게 진리를 실행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필연적으로 가정과 정에 얽매여 손발이 묶이고 생각과 마음이 통제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진리와 하나님 요구에 이르지 못한다.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지만 힘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고, 둘째는 피조물이 서야 할 위치를 알아야 하고, 자신이 가져야 할 의지와 태도를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한다. 너에게 이런 태도가 없으면 안 된다. 왜 남들은 이런 걱정이 없느냐? 설마 남들은 가족이 없고 이런 어려움이 없는 것이냐? 사실 누구나 육과 가정에 얽매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할 수 있다. 한동안 진리를 구해 이런 육적인 감정을 확실히 간파하고 마음속으로부터 내려놓았으니, 이런 것들이 그에게는 더 이상 어려움이 아니다. 그는 더 이상 그것에 통제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본분 이행이 그 때문에 지장을 받지 않게 되면서 자유로워졌다. 성경에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막 14:33) 모든 걸 버린다는 것이 무엇이냐? ‘모든 것’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지위, 명예와 이익, 가족, 친구, 재산 등 이런 것이 다 ‘모든 것’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네 마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무엇이냐? 누군가는 자녀이고, 누군가는 부모이고, 누군가는 금전이고, 누군가는 지위나 명예, 이익이다. 네가 이런 것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것에 통제되지만,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철저히 내려놓는다면, 거기에 통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네가 그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는지,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달렸다.

너희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어느 시기, 어느 단계에서 사역하든 모두 일부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들이 하나님 사역에 협력하거나 복음 전파에 협력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일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정해 놓은 모든 사람에게 부탁이 있지 않겠느냐? 누구에게나 사명이 있고, 책임이 있고, 부탁이 있다. 하나님이 너에게 부탁을 맡기면 그것은 곧 네 책임이 된다. 너는 이 책임을 짊어져야 하며, 그것이 곧 네 본분이다. 본분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이 너에게 준 사명이다. 사명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부탁이 곧 사람의 사명입니다. 사람은 평생 하나님의 부탁을 위해 살아야 하고, 마음속에는 그 부탁만 있어야 합니다. 다른 것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부탁이 바로 사람의 사명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인간 세상에 온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서이다. 네가 이번 생에서 출세하고 돈 벌고 잘사는 데만 열중하고, 화목한 가정, 명예와 이익, 지위만 누리길 추구하고, 사회적으로 지위도 생기고, 집안도 잘되고, 가족들도 편안하게 지낸다고 해 보자. 그런데 정작 하나님이 너에게 준 사명은 거들떠보지 않는다면, 네 일생은 살 가치가 있느냐? 죽어서 하나님께 뭐라고 보고할 것이냐? 제대로 보고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가장 큰 패역이고, 가장 큰 죄과다! 지금 너희 중 누가 하나님 집에서 우연히 본분을 이행한 것이냐? 어떤 배경에서 나와 본분을 이행하든 모두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아무나 몇 명 찾는다고 해서 그들이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정해 놓은 것이다. 정해 놓았다는 것은 어떤 뜻이냐? 자세한 내용은 어떻게 되느냐?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전체 경륜 안에서 일찍부터 계획해 놓았다는 뜻이다. 네가 몇 번 인간 세상에 올지, 말세에 네가 어느 집안, 어느 가정에서 태어날지, 네 가정이 어떤 조건일지, 네가 남자일지 아니면 여자일지, 어떤 특기가 있고 교육 수준이 어떨지, 네 말주변이 어떻고 자질과 외모가 어떨지, 네가 몇 살에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 이행을 시작할지, 언제 어떤 본분을 이행할지, 하나님은 일찍부터 하나하나 정해 놓았다. 네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네가 전생에 여러 번 인간 세상에 왔을 때 하나님은 네가 마지막 단계 사역에서 이행해야 할 본분을 모두 안배해 놓았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네가 지금 여기서 설교를 듣는 것도 하나님이 정한 일이다. 그건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 밖에도 네 키가 얼마이고, 생긴 건 어떻고, 눈은 어떤 모양이고, 몸집은 어떻고, 건강 상태는 어떻고, 나이는 몇이고 어떤 경력이 있고, 어느 방면 본분을 감당할 수 있고, 어느 방면에 자질과 재주가 있는지 등은 하나님이 일찍부터 너에게 정해 놓은 것이지 지금 안배한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일찍부터 네게 정해 놓았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너를 쓰려고, 너에게 이 부탁과 사명을 맡기기 전부터 너란 사람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네가 도망치려 해서야 되겠느냐? 딴마음을 품어서야 되겠느냐? 그래서는 안 된다. 그건 하나님에게 죄송한 일이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가장 큰 패역이고, 극악무도한 일이다. 하나님은 심혈을 기울이며 만세 전부터 네가 오늘날까지 오도록, 너에게 이 사명을 주기로 예정해 놓았다. 그렇다면 이 사명은 네 책임이 아니냐? 네가 일생을 살아가는 가치가 아니냐? 만약 하나님이 너에게 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네 삶은 가치와 의미를 잃게 될 것이고, 너는 헛되이 산 것과 다름없다. 하나님은 너에게 적합한 조건과 환경, 배경을 안배하고, 너에게 지금의 자질과 재주를 베풀어 주었고, 네가 지금까지 살도록 예비하고, 네가 이 방면의 본분을 이행할 때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예비해 놓았다. 하나님은 모두 안배해 놓았다. 하지만 네가 이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하고 시험을 견디지 못해서 도망치는 쪽을 택한다면, 늘 좋은 날만 보내려 하고 세상만 추구하려 한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준 은사와 재주를 이용해 사탄을 섬기고 사탄을 위해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느냐? 너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물거품이 되면, 하나님이 너를 혐오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너를 증오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너를 향해 크게 노한다면, 이 일은 끝난 셈이냐?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겠느냐? 네가 이번 생에 네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아느냐? 그건 끝이 아니다. 네 영혼에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 네가 네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도망친다면, 그건 문제가 심각하다. 네가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느냐? 하나님 손에서 도망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을 하나님은 어떻게 규정하느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도망친 사람을 하나님은 어떻게 규정하느냐? 침륜에 빠지고 멸망하는 것이다. 너는 더 이상 다음 생도 없고, 내세도 없다. 하나님은 다시는 너에게 어떤 일도 부탁하지 않을 것이다. 네게 사명이 없으면 구원받을 기회도 없다. 이것은 큰일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자는 내 눈에서 한 번 도망친 적이 있다. 내 심판대 앞에서, 내 앞에서 도망쳤었다. 그는 사명을 이행하지 않고 부탁을 완수하지 못했다. 이 자의 생명은 여기서 끝났고, 마침표를 찍었다.” 이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너희가 오늘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데, 그 본분이 크든 작든, 힘을 쓰는 것이든 머리를 쓰는 것이든, 외부 일을 하는 것이든 내부 일을 하는 것이든 그 누구의 본분 이행도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어디가 너의 선택이냐? 이는 하나님이 이끈 것이다. 하나님이 부탁을 해서야 너는 이런 감동과 사명감,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방인 중에는 외모가 뛰어난 자, 유식한 자, 재능 있는 자가 너무 많은데, 하나님이 그들을 눈에 들어 했느냐?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바로 너희를 눈에 들어 했고, 너희가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하고 다양한 본분을 이행하고 다양한 책임을 짊어지도록 했다. 최후에 하나님의 경륜이 끝을 맺고 성취되면, 이 얼마나 영예롭고 영광스러운 일이냐! 그러니 사람이 오늘날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생도 좀 하고, 버리고 헌신하기도 하고, 대가도 좀 치르고, 세상에서 지위를 잃고, 명예와 이익을 잃기도 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는 것이 마치 하나님이 모두 앗아간 듯하지만,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얻었느냐? 본분을 이행함으로써 진리 생명을 얻었다. 네가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한다면, 평생 네 사명과 하나님이 맡긴 부탁을 위해 살며 아름답게 증거했다면, 네 인생은 가치 있는 삶이고, 네가 바로 진정한 사람이다! 네가 진정한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경영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도록 하나님이 너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네 삶에서 가장 커다란 가치이자 의미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요구는 높지 않다. 하나님이 너에게 부탁을 맡기고 책임을 주었는데 네가 믿음이 작아서 이만큼만 힘을 쏟고, 이만큼만 헌신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만한 일만 맡을 수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강요하지 않는다. 너에게 100%를 요구했는데 95%만 달성했다고 해서 못마땅해하며 용서하지 않고, 계속해서 네 마음을 움직이고 재촉해서 하나님이 요구한 100%를 달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 분량과 에너지에 따라, 네가 이를 수 있는 것에 따라 순차적으로 천천히 도달하게 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합리적이며, 사람에게 조금도 강요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에게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할 것이며, 하나님이 너에게 하는 모든 일이 너를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는 것임을 느끼게 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고심을 알아야 하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관용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협력해야 하겠느냐? 이런 식으로 협력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해 노력해야 해. 하나님은 100%를 요구하시는데 내가 60%를 달성할 수 있다면 30%에서 그치지 않을 거야. 온 힘을 다하고, 꾀부리거나 교활한 짓 하지 말고, 요행을 바라지 말자.’ 이렇게 하면 된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본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천편일률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가정과 자녀를 버리고 직장을 포기했다고 해서 너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획일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너의 분량, 네가 도달할 수 있는 것에 따라 요구한다. 그러니 근심이나 압박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저 네가 도달할 수 있는 것에 따라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어떤 어려움을 만나거나 어떤 속박을 받더라도 위축되지 말고, 그런 일에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된다. 일단 영향을 받았다 하면 너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하는 게 영 신통치 않아서 하나님이 만족하지 못하시겠지? 좀 조심하고 너무 앞서 나가지 말자. 여지를 좀 남겨 둬야지.’ 이런 생각은 옳지 않다. 그건 하나님에 대한 오해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차츰 겪다 보면 갈수록 자신의 신심이 너무 작다고 여기고, 심지어 관념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오해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마음을 가늠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만 감히 하나님에게 의지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만 감히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한다. 사람은 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 “만물은 모두 하나님 손안에 있다.”라고 말하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이런 생각을 한다. ‘하나님이 주재할 수 있나? 하나님을 믿을 만할까? 그러지 말고 사람한테 의지하자. 안 되면 내가 방법을 생각하지 뭐.’ 그런 다음 자신이 아주 유치하고 가소롭고 분량이 너무 작다는 사실을 의식하고는 다시 뉘우치며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지만 역시 길이 없다. 그런데 속으로는 하나님은 신실하고 믿을 만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단지 사람의 신심이 작아서 언제나 의심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사람이 체험해야 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진실한 신심이 생겨난다. 네가 체험할수록, 하나님에게 의지할수록 하나님이 믿을 만하다고 더욱 느끼게 된다. 많은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매번 어떻게 네가 난관을 헤쳐 나가고 위험을 넘기도록 지켜 주는지 알고 나면, 너는 어느새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의지하게 되며, 하나님이 신실하고 믿을 만하다고 느끼게 된다. 사람은 우선 마음속에 이런 신심이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운명이 있다. 그 운명은 모두 하나님이 정한 것으로, 누구도 다른 사람의 운명을 관장할 수 없다. 가족을 대할 때 너는 마음을 크게 가지고, 손을 놓을 줄도 알고, 모든 것을 내려놓도록 해라. 어떻게 놓아야 하느냐? 우선은 하나님께 기도해라. 또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이 세상을 추구하고 금전과 물질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점에 대해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사탄에 속한 자들이고, 너와는 다른 부류이다. 네가 만약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생활한다면, 평생 고통스러울 것이다.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과 잘 어울릴 수도 없고, 오히려 괴로움에 시달리게 된다. 행복은 없고 고통만 따를 것이다. 정이 너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겠느냐? 육을 돌보는 일은 너에게 고통과 공허만을 가져다주고, 평생의 한만 남긴다는 점을 너는 알아야 한다. 그러니 네가 가족을 그리는 것은 일방적인 사랑에 불과하고, 혼자 좋아서 정을 베푸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네가 가는 길과 그들이 가는 길은 다르다. 인생관, 세계관, 인생의 길, 추구 목표가 모두 다르다. 지금 너는 가족과 함께하지 않아도, 혈연관계 때문에 늘 그들과 가깝게 느끼고 한가족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막상 가족들과 같이 생활한다면 며칠만 지나도 지겨워질 것이다. 그들은 거짓말을 달고 살기에 입만 열면 허울 좋고 듣기 좋은 말, 상대를 속이는 말뿐이다. 그들이 처신하고 처세하는 방식은 하나같이 사탄 철학과 사탄의 인생 격언을 따르고, 그들은 사상 관점도 죄다 그릇되고 황당해서 듣고 있으면 민망하기 짝이 없다. 너는 생각할 것이다. ‘전에는 그래도 늘 가족들을 생각하고 힘들게 생활할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 이렇게 같이 생활하니까, 이건 하루하루가 고역이구나!’ 이렇게 반감이 생긴다. 지금도 너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기에 아직도 혈연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진실하다고 생각하며 여전히 정에 얽매인다. 정이란 것은 놓을 수 있는 한 놓아 버려야 한다. 만약 놓지 못하겠으면, 본분을 위주로 살도록 해라. 하나님의 부탁, 자신의 사명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낫다. 육과 가족에 관계된 일은 우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부탁과 본분을 잘 이행하면 사람은 진리에 대해 점점 밝히 알게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에 가까워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커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점점 크고 뚜렷해진다. 그러면 내적 상태도 달라질 것이다. 내적 상태가 달라지면, 네 세속적인 관점과 정이 점차 희미해지고,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네 마음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만족할 모습을 살아 내고 진리가 있는 삶을 사는지를 추구하고 싶어질 것이다. 마음으로 이 방면에 힘쓰다 보면 육의 정과 관계된 일은 점점 희미해져 더 이상 거기에 얽매이고 통제되지 않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는 정에 얽매이지 않는데, 한가해지면 가족이 생각납니다.” 그렇다면 가족을 그리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느냐? 만약 그것 때문에 네가 소극적으로 변하고 본분을 이행하기가 싫어진다면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한가할 때도 오로지 가족 생각만 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고, 무슨 나쁜 결과도 낳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가족이 생각나는 것은 겁낼 일이 아니다. 관건은 네가 집 생각만 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너는 이렇게 고민해야 한다. ‘내 이런 내적 상태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어째서 속으로 가족들 생각만 날까? 내가 밝히 알지 못한 진리가 어떤 것일까? 내가 어떤 진리에 진입해야 할까?’ 이런 식으로 실행하면 진리에 금방 진입할 수 있다. 사람은 속으로 언제나 진리를 묵상해야 한다. 묵상할수록 진리를 밝히 알 수 있고, 마음속에 실행의 길이 생긴다. 그러면 수박 겉핥기식이 아니라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이때 너는 누군가를 찾아 교제하고 싶어질 것이다. 교제의 목적이 무엇이냐? 검증을 통해 진리를 오류 없이 더 정확히 알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너는 어려움이 없어지고 마음은 해방감과 자유를 얻고,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게 된다. 그러면 늘 가족을 그리는 일은 없어지고, 세속적인 짐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네 내적 상태는 점점 정상에 가까워질 것이다. 너희는 진리를 묵상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묵상하느냐? 예를 들어, 오늘 네가 어떤 일을 했는데, 그게 옳지 않고 원칙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어디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야 한다. ‘이 일은 어떤 진리와 관련될까? 어떤 원칙과 관련될까?’ 다른 사람을 찾아가 진리를 교제하고, 되돌아보고, 반성해서 결국 문제의 근원을 발견하고, 진리를 구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면, 너는 하나님에게 더욱 신심이 생기고, 진리에서 더 성장했음을 느끼고, 일부 일들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영적인 말을 일부 이해할 수 있다. 혹은 자주 입버릇처럼 내뱉는 도리나 말이 실제로 가리키는 바나 실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진리를 조금 깨닫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다른 사람과 교제하도록 해라. 습관처럼 뱉는 이 말을 명백하게 교제하고 실행의 길로 바꾼다면, 이건 좋은 일이 아니냐? 이것도 역시 하나의 길이다. 가끔 누군가에게서 어떤 내적 상태를 발견할 때 너는 생각에 잠긴다. ‘이 사람이 어쩌다 이런 내적 상태를 갖게 되었을까? 이런 내적 상태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나는 왜 이런 내적 상태가 없을까? 그가 한 그 말은 일종의 내적 상태, 심리를 뜻하는 건데, 그의 그런 심리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어디서 문제가 생겼을까? 이건 어느 방면의 진리와 관련되는 것일까? 내가 진리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교제하고 구하다 보니 문제를 발견했다. 그의 그런 내적 상태가 너에게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과 맞춰진 것 아니냐? 이만한 노력은 기울일 만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나서 또 다른 사람과 교제하여 드디어 답을 찾았다. 무슨 문제인지 알고 나서 문제가 해결되었다.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만약 발견하지 못하면 문제는 끝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때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바로 진리를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좋은 기회다. 절대 이 기회를 감정적으로 얽히는 일에 쓰지 마라. 언제나 가족과 한자리에 모일 생각만 한다면, 그건 골치 아픈 일이다. 너는 속으로 늘 가족들을 생각하며, 기회만 생겼다 하면 가족들과 감정적으로 얽힌다. 언제나 속으로 정에 연연하면서 내려놓지 못한다. 너는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형제자매들과 자주 교제해야 한다. 진리를 깨달으면 최소한 가정, 육, 정에 얽매이지 않게 되고, 이런 것들을 내려놓기가 쉬워진다. 이것이 길이다. 사실, 많은 사람의 체험이 다 이런 식이다. 정과 관계된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한동안 체험해야 하며, 진리를 깨달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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