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하나님 경륜의 가장 큰 수혜자이다 (제 2 부)

어떤 사람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며 많은 설교를 들었고 많은 도리를 이해했으니, 참도와 하나님을 얻었고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평범한 일에도 명예와 이익을 위해 다투며, 심지어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배척하기까지 하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자신의 추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다. 그들은 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리를 조금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냐? 단지 글귀와 도리를 좀 말할 줄 안다고 자신이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가련한 모습 아니냐? 자신의 이익도 포기하지 못하고 이 정도의 고통도 견디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그가 무슨 고통을 견딜 수 있겠느냐? 그는 항상 자신의 이익과 사욕을 무엇보다 우선시한다. 그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할 때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이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 만족스럽게 느낀다. 이는 무엇 때문이냐? 그는 하나님을 오랜 기간 믿으면서 본분 이행을 지금까지 쭉 해 온 데다가 약간의 고통도 받았고 큰 공헌도 했으니, 여러 측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우세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들은 오랜 기간 설교를 들었으니 스스로 우월감을 느끼며 자신이 하나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처음 하나님을 믿을 때 말한 맹세와 결심은 한결같고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열정과 의지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들의 교만, 패역, 간사함, 강퍅함 등 패괴 성품으로, 이는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을 해 봤다. 이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매일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쏟았으니, 자신이 하나님과 참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하냐? 그들의 이런 생각이 하나님의 확증을 받았느냐? 하나님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이는 사람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 아니겠느냐? 만약 사람이 스스로 만족스럽게 느끼는 것과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가 분명히 상충된다면, 이는 도대체 누구의 문제겠느냐?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확실하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전혀 바뀐 적이 없지만, 사람은 끊임없이 잘못 해석하고,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이해한다. 어떤 사람은 ‘이 사람들이 반평생 하나님을 믿었는데, 하나님이 정말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너무 불쌍하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을 가련하게 여기고 동정할 가치가 있느냐? 가련하게 여기거나 동정할 가치가 없다고 한다면, 너무 잔인한 것이냐? 그렇지 않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람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셨는데, 사람이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결과는 스스로 초래한 것입니다.) 말이 좀 험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래도 싸고 동정할 가치가 없다. 만약 다른 사람 이야기라면 너희는 ‘쌤통이다! 자기가 잘못했으니 그렇게 된 거지. 누가 너보고 하나님 말씀 안 들으래! 만약 하나님께서 너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나도 너를 동정하거나 불쌍히 여기지 않을 거야. 너는 그래도 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일이 너희에게 닥친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겠느냐?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느냐? 어떻게 생각해야 이성적이고, 이성과 양심이 있는 것이며, 피조물이 마땅히 서야 하는 위치, 갖춰야 하는 생각, 태도이겠느냐?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공평한 설명이 되겠느냐? (하나님, 저의 느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을 믿고 있음에도 진리를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잘못하셨거나 하나님의 사역이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찍 포도원에 들어간 사람이나 늦게 들어간 사람이나 임금은 같다는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비유가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일찍 받아들이든 늦게 받아들이든, 하나님은 매우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사람에게 주십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이 진리들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충분한 시간을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매번 내버리고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짧아도 진리를 받아들이고 추구할 수 있기에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몇 년 겪은 후에 어느 정도 변화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 모든 일은 공의롭습니다. 이것이 방금 하나님의 교제를 듣고 개인적으로 느낀 점입니다.) 아주 좋다! 먼저 이 문제를 사람의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자. 만약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하겠느냐? 완전히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사악한 흐름 속에서, 패괴된 인류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패괴된 인류 속에서 산다는 것은 마귀 감옥, 악마의 소굴, 타락의 온상에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어 나쁜 짓을 저지르고 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더 깊이 패괴되고 점차 더 사악해지고 말이 안 통하게 되니 결국 산 귀신이 되어 버린다. 말과 행동을 보면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성품은 이미 산 귀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의 결말은 어떻게 되겠느냐? 사탄과 같은 결말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이 완전히 사탄에게 사로잡히면 사탄과 한패가 되어 사탄의 공범이자 앞잡이가 되고, 사탄처럼 하나님에게 대항한다. 이렇게 되면 되돌릴 여지가 전혀 없고, 결국은 징벌과 파멸이라는 결말을 맞게 된다. 이것은 사람의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도 너를 구원하지 않는다면, 너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양심과 이성의 제약을 받을 필요도 없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지 않아도 되며, 책망, 훈계, 징계를 받아들일 필요는 더더욱 없다. 네가 그저 자신의 기호에 따라 살고 이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살면, 완전히 비이성적이고 양심 지각이 없게 되어 버린다. 바로 철저하고 완전히 타락해 산 귀신이 되는 것이다. 안팎 모두 살아 있는 사탄이자 살아 있는 마귀로 변해 버리니, 분장이나 포장이 필요 없다. 영락없이 사탄, 마귀가 된다. 이것이 사탄의 권력 아래 사는 이방인들의 최종 결말이니, 결국 모두 재난으로 멸망하게 된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시종일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며,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고, 오랜 시간 믿었음에도 변화가 전혀 없다면, 양심과 이성도 회복되지 않고, 생활 방식도 이방인과 같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든,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진리를 교제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이 바로 불신파이자 하나님 집에 섞여 들어온 악한 자이다. 하나님이 진리를 얻고 구원받을 기회를 그렇게 많이 주었지만, 사람이 그렇게 오래 믿었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여전히 육적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사이에 사람의 양심을 잃고 인성의 긍정적인 것을 모두 잃어버려 이미 구제 불능이고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하나님은 포기하고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의 최종 결말이 무엇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것으로 하나님을 믿은 사람의 생애는 끝이 난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여정은 끝났으며, 최종 결말이 확정되어 이런 결말을 얻는다. 이런 결말을 맞이한 사람은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마음이 저릿저릿 아프고, 매우 괴롭고 크게 상심할 것이다. 하나님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며,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구명줄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매우 불쌍하고 막막하다고 느낄 것이다. 네가 그 정도로 타락하지 않았을 때는 이런 고통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일단 그 지경에 이르면 돌이킬 수 없다.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으면, 사람은 최종적으로 이런 운명과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볼 때, 사람이 그런 운명과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고 해서 하나님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하나님의 구원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파멸의 길로 갔다고 해서 하나님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피조물 중 하나가 파멸된다고 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의 신분, 지위, 본질을 잃게 되겠느냐? 그것이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바꾸기라도 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이냐?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든 않든, 구원을 받을 수 있든 없든, 하나님은 어떤 손해도 입지 않는다. 이것이 한 가지 측면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에게는 어떠한 손해도 없다. 사탄은 여전히 사탄이고,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다.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고, 만물을 창조하고 주관하는 그분도 역시 하나님이다. 인류의 운명, 사탄의 운명, 모든 만물의 운명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지위, 유일무이함, 성품, 본질은 어떠한 변화도 없으며, 하나님의 거룩함은 더럽혀지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은 손해를 입지 않는다.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다. 이로써 사람은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인류가 아무리 많더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어떤 세력도 아닌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이며, 하나님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디로 가든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인류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든,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의 존재와 주재를 인정하든 안 하든, 모두 하나님의 본래 신분과 지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하나님의 본질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아무도 바꿀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이 아직 간파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것 같은 점이 하나 있다. 만약 하나님이 인류 중 어떤 한 사람을 버리고 구원하지 않는다면, 최종 결말은 바로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이라는 점이다. 전체 우주 만물이 규모가 아무리 크고 수없이 많은 천체와 생명체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모두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체 우주 만물의 운명은 오직 그 한 분의 손에 달려 있다. 어떠한 생물이나 행성도 하나님의 존재와 주재에 영향을 주지 못하며, 더욱이 하나님의 생각을 좌우하지는 못한다. 이것이 사실이다. 일부 사람들은 ‘내가 당신을 믿지 않으면, 당신은 하나님이 아니야!’, ‘당신을 믿는 사람이 적으면, 당신은 하나님이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이게 말이 되느냐? (말이 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 몇몇만 당신을 믿으니, 만물과 인간을 주재하는 당신의 능력이 그냥 이만큼인 거죠. 이 정도의 능력밖에 안 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이러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은 너무도 무지하고 어리석다!

방금 만약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멸망을 향해 걸어가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신분, 지위, 본질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교제하였다. 이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였느냐? (분명히 이해했습니다.) 인류가 진리를 받아들이든 않든, 구원을 받을 수 있든 없든,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지위, 신분, 본질은 바뀌지 않지만, 인류의 운명은 큰 변수가 생긴다. 이러한 변수를 누가 다스리고 있느냐? 사람 자신이겠느냐? 특정 국가이겠느냐? 특정 통치자이겠느냐? 특정 세력이겠느냐? 아니다. 너의 운명과 인류의 운명 모두 다 하나님이 다스리고 있으며, 모두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니 너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고 너를 구원하는 것은 너에게 베푸는 은총이자 엄청난 구원이며 가장 큰 은혜이다. 왜 가장 큰 은혜라고 하겠느냐? 바로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필연적인 법칙도 필연적인 추세도 아니기 때문이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 설마 꼭 너를 구원해야만 하는 것이냐? 하나님이 처음에 너를 예정했더라도 지금은 너를 택하기 싫어 구원하지 않으면, 너는 이 은혜를 얻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네가 잘해야 한다. 너의 행동, 마음, 진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은혜를 받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한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당초 예수가 전도하던 도중, 한 가나안 여자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그녀의 딸이 귀신 들려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주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시자, 여자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대답하시고는 그녀의 소원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는 그녀의 무엇을 칭찬하였느냐? (믿음입니다.) 그녀의 믿음은 도대체 무엇이었느냐? 그 믿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느냐? (그녀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그녀를 개라고 했는데, 그녀는 왜 괴로워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이 일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데, 사실은 이렇다. 예수가 왜 그 사람의 믿음을 칭찬했겠느냐? 그녀가 개가 되기를 원하거나 떡 부스러기를 먹길 원해서 칭찬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예수는 무엇을 칭찬하였느냐? 바로 그녀는 예수가 자신을 개로 여기든 사람으로 여기든, 또는 마귀와 사탄으로 여기든, 그 무엇으로 여기든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녀가 예수를 하나님이라 여기고, 예수가 주님이자 하나님이라고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자 사실이다. 예수가 하나님이자 주님이며, 그녀가 마음에서 인정한 그분이니, 이것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예수가 그녀를 구원하든 안 하든, 예수와 함께 식사하는 사람, 제자, 따르는 자, 아니면 개로 여기든 않든,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예수가 자기 마음속의 주님임을 그녀가 마음으로 인정한 것으로 충분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의 가장 큰 믿음이다. 너희는 이러한 믿음을 갖고 있느냐? 만약 어느 날 너희가 하나님 집의 경비견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겠느냐? 만약 네가 하나님 집의 귀염둥이, 백성, 천사라고 한다면, 너는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네가 개라고 한다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왜 기분이 나쁘겠느냐? 그것은 네가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너는 ‘저는 당신을 하나님으로 인정했는데, 당신은 어째서 저를 개라고 하시나요? 제가 당신을 하나님으로 인정했으니, 당신은 적어도 공평하고 합리적이어야 해요. 우리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구예요! 제가 당신을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 큰 사랑, 큰 믿음인데요. 그런데 어떻게 저를 개라고 할 수 있나요? 당신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군요! 우리 둘은 친구이니 동등해야죠. 저는 당신을 존중하고, 경외하고, 경모해요. 그러니 당신도 저를 존중하고 사람으로 대해 줘야죠. 저는 사람이라고요!’라고 생각한다. 이 태도가 어떠냐? (비이성적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친구처럼 지내려 한다면, 문제 되지 않겠느냐? “당신은 외모도 평범해 제가 당신보다 잘 생겼어요. 키도 당신보다 크고요. 당신은 감기에 걸리면 기침을 하고 말을 많이 하면 피곤해하는데, 저는 당신보다 건강해요. 당신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저보다 낫기는 하지만, 만약 저도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을 믿어 진리를 많이 깨닫게 되면, 우리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을 거예요. 게다가 저는 특기도 하나 있지만, 당신은 아직 없잖아요! 이렇게 비교해 보면 제가 당신에게 많이 뒤지지 않아요.”라고 너는 말한다. 이런 관점이 어떠냐? (잘못된 관점입니다.) 이러한 비교 방법이 어떠냐? 사람과 하나님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이런 비교 방법은 어떤 실수를 범한 것이냐? (사람이 올바른 자기 위치에 서 있지 않으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으로 대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인성만을 보았을 뿐, 하나님의 신성은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는 양심과 이성이 없는 것이고 인성이 없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체를 보지 못해 성육신 하나님을 사람으로 대하며, 키도 크지 않고 대단하지도 않은 이 평범한 사람을 괴롭히고 속이기 쉽다고 생각한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인 것이다. 사람이 이처럼 패괴된 존재이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렇게 되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없어진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든, 어떤 방식으로 네게 말씀하든, 네 마음속 하나님의 지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네 마음속 하나님의 본질과 지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네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매우 적절하고 이성적으로 잘 처리하고, 기준과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를 달성하기 어렵고 쉽게 이루지 못한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본질과 신성을 영원히 볼 수 없다. 또한, 어떤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고 진정한 표출인지를 알 수 없고, 보지 못한다. 너에게 알려 준다 한들 너 역시 보지 못하고 맞춰 보지도 못한다.

방금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지 않을 경우를 이야기했다. 이 경우 사람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느냐? (멸망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어떤 영향도 받지 않으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 관점에서 이야기한 것으로, 하나님은 어떤 영향도 받지 않지만 사람의 운명과 결말은 매우 비참해진다. 욥이나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의 결말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완전히 하나님의 적대 세력과 원수 편에 서게 될 것이고, 그 결말은 분명 매우 좋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기로 하고 어떤 사람에게 역사한다면, 그 사람은 무엇을 얻는지 다시 이야기해 보자. 사람은 왜 하나님을 믿느냐? 사람은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느냐?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믿는 것이냐?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냐? 사탄을 부끄럽게 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냐? 이러한 이유는 모두 다소 허울 좋고 억지스러워 보인다. 만약 지금 너에게 애초에 하나님을 믿은 속셈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너는 약간 켕기고 부끄러워 제대로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은 과연 무엇이냐?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좋은 종착지를 위해 또는 정신적인 의지처를 찾기 위해서 믿은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런 속셈은 그다지 떳떳하지 못하고 내세울 만하지 못하다. 하지만 만약 처음에 그런 목적도 없다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느냐? 분명 하나님을 믿을 계획도 없고, 또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익이 없는데 누가 하나님을 믿겠느냐?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적어도 약속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슨 약속이겠느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현세에 백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영생은 영원히 살며 더는 죽지 않는 것을 의미하죠. 그것은 역사상 아무도 누리지 못하고 얻지 못한 복이에요. 게다가 현생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축복을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라고 말한다. 요컨대 사람이 처음 하나님을 믿을 때는 모두 마음속에 불순물이 섞여 있고 깨끗하지 않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사람답게 살아 마침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의 형상을 살아 내고, 살아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영화롭게 하며, 죽어서도 하나님을 증거하고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함도 아니다. 사람은 복을 받을 생각만 한다. 현세에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고 싶어 하며, 내세가 있다면 더 많은 축복을 얻고 싶어 한다. 사람은 애초에 모두 이런 염원, 속셈,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다. 모두 천국의 복과 하나님의 약속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패괴된 인류에게 이는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하나님도 이를 따지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할 때 모두 무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깨우침을 통해 조금씩 하나님을 믿는 진리와 의의, 그리고 하나님의 요구를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와 돌봄을 누린다. 일부 사람들은 질병이 치유되고, 건강한 신체를 가지며, 가정이 평안하고,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는 등 하나님의 각기 다른 은혜와 축복을 생활 곳곳에서 누리게 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다. 하나님에게 있어 이런 것은 하나님이 가장 크게 지불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가장 크게 지불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에게 건 기대와 기울인 심혈과 대가입니다.) ‘심혈과 대가’는 실제적인 내용이 있지만, ‘기대’는 좀 내용 없이 공허하다.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가장 실속 있고 귀중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진리의 공급입니다.) (어느 정도 진리를 깨닫고 일들을 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은혜와 축복은 결코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것 중 가장 귀중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말씀, 진리,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준 피조물로서 사람이 가야 할 길 아니겠느냐? 결론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것은 진리, 길, 생명이다. 이 몇 가지가 가장 귀중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이를 얻었느냐? (아직 진정으로 얻지 못했습니다.) 너희는 가난할 때 100위안을 받는 것이나 배고플 때 떡 두 개를 받는 것처럼 실속 있고 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실제로 진리, 길, 생명을 베풀어 주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냐? (사실입니다.) 이것은 사실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들었든, 얼마나 많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든, 얼마나 많은 진리를 깨달았든, 얼마나 많은 실제를 살아 냈든, 그리고 얼마나 많은 성과를 얻었든 상관없이, 네가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은 모든 사람에게 대가 없이 공평하게 베풀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나 겪은 고통의 양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절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오래 믿었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고 해서 우대하거나 축복하지 않는다. 또 나이, 외모, 성별, 가문 등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동일한 것을 받으며,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도 적게 주거나 많이 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대한다. 하나님은 제때에 적당량을 공급해 사람이 굶주림, 추위, 갈증에 시달리지 않게 하며, 사람의 마음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준다.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할 때, 사람에게 어떤 요구를 하느냐? 하나님이 이것들을 사람에게 베풀 때, 하나님에게 약간이라도 사심이 있느냐? (사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사심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은 모두 인류를 위한 것이며, 인류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이로써 인류가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생명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너희는 이 일을 사실로 증명할 수 있겠느냐? 만약 너희가 사실을 가지고 이 일을 증명할 수 없다면, 너희가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은 위선적이고 겉치레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예를 들어 보자. 하나님은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직한 말과 행동을 하며, 간사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는 의의는 바로 사람이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갖도록 하는 것에 있다. 사탄처럼,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말을 빙빙 돌려 해서 다른 사람이 실제 상황을 알 수 없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말할 때든, 행동할 때든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내야 하고, 정정당당하며 단정하고 올발라야 하며, 어두운 면이나 남 부끄러운 것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고 겉과 속이 같아야 하며, 마음속에 생각하는 그대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과 사람을 속이지 않고 감추는 것이 없이 마음이 청정 지역처럼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는 이런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목적이다. 사람이 무엇을 얻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겠느냐? 사람이 어떤 모습을 살아 내게 하는 것이겠느냐?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겠느냐? (사람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의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나님께 순수하게 마음을 털어놓으라고 하시는데, 이는 우리 속사정을 캐낸 후 우리를 쉽게 통제하고 지배하여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도록 하려는 거야.’라고 한다. 이러한 생각이 옳으냐? 이는 너무 음험하고 부끄러운 생각이다. 마귀만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추측하고 의심할 수 있다. 하나님이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마음속에 어떠한 사심, 속셈, 자기 뜻, 불순물도 없으며 어두운 면이 전혀 없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느냐? 사람의 패괴 성품이 정결함을 얻어 점차적으로 성결해지고, 빛 속에서 더욱 자유롭고 해방되며, 맘껏 누리고, 즐거움과 평안이 가득한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을 온전케 하여 가장 큰 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네가 이런 사람이 되면, 하나님은 너에게서 어떤 득이라도 보는 것이 있느냐? 하나님이 무슨 의도라도 가지고 있느냐? 무슨 이익이라도 얻는 것이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 되었을 때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겠느냐? (그 사람 자신입니다.) 사람이 어떤 이익과 이점을 얻겠느냐? (마음이 해방과 자유를 얻고, 삶이 점점 홀가분해집니다. 갈수록 다른 사람의 신임을 얻게 되고 남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게 됩니다.) 또 무엇이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따라 처신할 때, 사람은 더는 고통스럽지 않고 홀가분하고 평안하고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이는 매우 진실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을 변화시키고 정결케 하여 결국에는 하나님께 얻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얻어지는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아름다운 종착지를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겠느냐? (사람 자신입니다.) 최대 수혜자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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