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은 본분 이행에서부터 시작된다 (제 2 부)

본분 이행에 합격하려면 우선 마음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 패괴 성품을 드러낼 때 자신의 내적 상태도 조절해야 한다. 본분을 바르게 대하고, 온갖 사람과 일, 사물의 속박과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다. 그 비결은 바로 자나 깨나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최우선에 두는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성찰해야 한다. 자신이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고 있는지, 무엇에 교란을 받아 건성으로 본분에 임하는 건지, 본분에 마음과 힘을 다하고 있는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믿을 수 있을지, 본인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 순종했는지, 이렇게 본분 이행하는 것이 원칙에 부합하는지,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가장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등, 이런 몇 가지 질문을 늘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발견되면 적극적으로 진리를 구하고, 그와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그러면 본분을 잘 이행하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얻을 것이다. 만약 본분을 이행하는 중에 자꾸 문제가 생긴다면 대부분은 그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이는 모두 패괴 성품의 문제다. 사람이 패괴 성품을 드러내면 마음에 문제가 생기고 내적 상태가 비정상이 되어 본분 이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본분 이행에 영향을 주는 문제들은 대개 크고 심각한 문제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은 집에 재난이 닥치면 하나님에 대해 관념과 오해를 품고,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생을 좀 했는데 누가 못 보거나 칭찬해 주지 않으면 소극적으로 변한다. 또 어떤 사람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늘 건성으로 임하다가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불평을 터뜨리며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늘 자신의 퇴로만 생각하느라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것들은 다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에 지장을 주는 문제들로, 모두 패괴 성품 문제에 해당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고 늘 자신을 위해 도모하거나 고려하기 때문에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나님 안배에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온갖 부정적인 정서가 생겨난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문제가 조금만 생겨도 소극적이고 연약해져서 본분 이행에 화풀이를 하거나,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거나, 본분을 내팽개치고 하나님을 배반하려 한다. 이는 다 패괴 성품에 얽매여서 생긴 갖가지 결과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 자신의 미래와 운명을 한쪽으로 제쳐 놓고 오로지 진리를 추구하고 얻고자 한다.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온전케 되지 못할 것이 걱정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 오로지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마음의 자세를 지녔기에 그 어떤 어려움도 그를 쓰러뜨릴 수 없다. 소극적이고 연약할 때 하나님 말씀 몇 단락을 읽으면 자연스레 해결된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설령 일시적으로 이해하고 진리를 받아들였다 해도 조금 지나면 또 반복되어, 다루기가 무척이나 까다롭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라 속으로 진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자기 뜻과 이기심, 자신의 미래와 운명, 자신의 종착지를 끝까지 내려놓지 못하고, 늘 이런 것으로부터 교란을 받는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일단 진리를 깨닫게 되면 패괴 성품에 해당하는 그런 것들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생명 진입과 분량이 생길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어리석고 무지한 아이가 아닐 것이다. 분량이 생긴 사람은 갈수록 사물을 잘 파악하고,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분별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 어떤 사람이나 일, 사물에도 구애받지 않고, 그 누구의 어떤 말과 행동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악한 사탄 세력의 방해나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의 미혹, 교란에도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람의 분량이 차츰 자라지 않겠느냐? 사람은 깨달은 진리가 많을수록 생명이 빨리 자라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진리 실제에 들어가는 방법에 쉽게 이를 수 있다. 네가 생명 진입이 있어 생명이 점점 자라나면 네 내적 상태는 점점 정상적이 되고, 본디 너를 교란하고 얽매던 사람과 일, 사물들은 더 이상 너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네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도 어려움이 사라지고 너와 하나님의 관계도 점차 정상적이 될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하나님께 의지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지 알게 된다. 또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자신이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어떤 일에 관여할 책임이 있고 관여할 책임이 없는지도 알게 된다. 너의 내적 상태가 점점 정상적이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사는 것이 피곤하지 않은 것 아니냐? 피곤함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아주 홀가분하고 즐거워질 것이다. 그러면 마음속이 밝아지지 않겠느냐? 마음가짐이 정상적이고, 패괴 성품도 점점 덜 드러내고,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게 되고,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 내게 된다. 네 정신적인 면모를 지켜본 사람들은 네가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고 너와 교제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이 평온하고 기쁠 뿐 아니라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너의 분량이 자라고 너의 말과 행동에는 정도와 원칙이 생겨, 연약하고 소극적인 누군가를 보게 되면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사람을 속박하거나 훈계하는 게 아니라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남을 도와주고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너는 더 이상 하나님 집에서 오로지 힘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 책임을 질 수 있고 하나님 집에서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좋아하지 않겠느냐? (좋아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이런 사람을 보고 기뻐하느냐? 바로 하나님 앞에서 실제적인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감언이설이 아닌 실제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참된 본인의 간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이끌어 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문제가 있으면 도와서 해결해 주고, 교회 사역에 어려움이 생기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본분에 충실하다는 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형제자매를 도와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그에게 생명 진입이 있다는 뜻이고, 실제적인 일을 그렇게 많이 했다는 것은 그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진리 실제가 있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도 진리 실제로 진입하도록 이끌 수 있다. 만약 네가 진리 실제를 갖추지 않고, 참된 체험이 없다면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올 수 있겠느냐? 너 자신이 하나님 앞에 살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에 데려올 수도 없다. 네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오로지 힘만 쓰면서 진리 원칙을 전혀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살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검증을 견딜 수 있겠느냐?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느냐? (증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이냐? 적어도 아직 하나님 말씀의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한 것으로, 여전히 하나님 말씀 바깥에 있는 사람이다. 다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생명 진입도 없고, 체험 간증도 얘기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증거할 줄도 모르고, 전도해서 사람을 얻지도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그래서 사람이 분량이 작고 생명 진입이 없으면 영원히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생명 진입이 없다면 너는 하나님의 증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너를 그를 따르는 자로 인정하겠느냐?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너에게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고, 너 역시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지만, 네 태도를 보면 그토록 오랜 시간 하나님을 믿고도 하나님을 증거할 줄 모른다. 참된 체험 간증도 없을뿐더러 관념과 상상에 기대 살아가고, 진리 실제도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시련을 주면 견뎌 내지 못하고, 책망 훈계하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판과 형벌을 주면 본분을 내팽개치고 침울해진다. 하나님은 그런 너를 이렇게 바라본다. “이 사람은 손댈 수가 없구나! 내가 어디서 사역하고 말하든 이런 사람은 따를 자격도 없고, 하나님과 함께할 자격도 없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런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올바르고 순수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다, 참된 체험도 없어서 하나님 뜻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 뜻을 깨닫지 못하는데 하나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 뜻을 깨닫지 못하는데 하나님 뜻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이것은 뭐라 말하기 어렵고, 그것들은 다 미지수다. 그러니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지낸다면 언제나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품고, 이해하지 못하고, 온갖 오해와 원망이 생겨 사사건건 하나님을 판단하고 결국에는 배반할 것이다.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겠느냐? 그에게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되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을 따르는 자로 인정받고 싶다면, 우선은 생명 진입에 신경을 써야 한다. 자신을 아는 것에서 시작해서 패괴 성품을 벗어버리고 자기 본분을 지키고 하나님 요구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생명 진입에 신경을 쓰는 것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함인데, 결국은 여전히 본분 이행으로 귀결된다. 본분 이행에서부터 생명 진입을 추구하고, 생명 진입 과정에서 진리를 조금씩 깨닫고 얻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분량이 생기고 점점 생명이 자라며 진리를 실제적으로 체험한 후에는 각종 실행 원칙을 파악하게 되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그 어떤 사람이나 일의 속박과 교란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그러면 너는 점점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네가 온갖 사람과 일에 방해받지 않고 진리를 체험한다면, 너의 체험이 풍부해질수록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고, 하나님을 증거할수록 점차 쓸모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네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 집에서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있고,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굳게 설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요,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베푼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관건은 무엇이냐? 반드시 진리를 실행하는 법을 배우고,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맹세만 하고 다짐만 하는 것이 소용 있느냐? 늘 맹세하고 다짐하면서도 정작 진리는 실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금 가장 중요하고도 현실적인 과제는,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진리를 구해 해결하고, 본분을 대하는 사람의 여러 가지 잘못된 태도를 바로잡아 생명 진입에 이르는 것이다. 생명 진입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진리에 대한 체험과 인식이 있고, 진리를 정확하게 실행해 내는 것을 가리켜 생명 진입이 있다고 한다. 너희는 지금 생명 진입이 있느냐?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느냐? 대부분의 경우 이론에서 맴돌고 있는 게 아니냐? 이론적 차원에만 그치고 진리에 대한 진정한 인식과 체험은 없는 것 아니냐? 진리를 진정으로 체험하고 인식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다. 대개의 경우, 감성적인 인식에 불과해서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은 것 같다. 애매모호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도 진리 같고, 저렇게 말씀해도 진리 같고, 왠지 하나님 말씀은 모두 진리 같아서 무조건 아멘 하고 찬성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대입해 보지 못한 탓에 일을 할 때는 어떤 진리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지 몰라 여전히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너희 대부분이 이런 내적 상태에 있지 않으냐? 이해하고 얘기할 수 있는 이치는 많지만 실생활에서 소용이 없다. 여전히 진리를 실행할 줄 모르고, 실생활에서 하나님 말씀을 적용할 줄도 모르고, 어떤 일이 생겨도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 줄 모른다. 이것은 사람의 분량이 너무나도 작기 때문이다. 언젠가 너희가 실생활에서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하고, 적용할 줄 알게 되면, 그래서 일이 생겼을 때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너희의 생명은 성장하게 된다. 진리를 실행할 줄 아는 것은 바로 생명이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언젠가 네가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에 대해 생겨난 진실한 인식을 이야기함으로써 하나님 사역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증거하게 되는 날, 너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만약 네가 아는 게 많아서 도리에 관한 얘기를 한참 늘어놓는다 해도 정작 자기 문제에 관한 일은 해결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결하는지도 모른다면, 그건 네가 아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글귀와 도리라는 뜻이다. 설령 일부 도리는 실제적으로 얘기한다 해도 사실 그건 감성적인 인식일 뿐, 아직 이성적인 인식으로 승화되지 않았다. 네 교제가 남들에게 도움이 되고, 공감을 받기도 하고, 어느 정도 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소 불분명하게 얘기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네가 말한 그 도리들이 감성적 인식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진리 실제라고도 할 수 없고, 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한 것이라고는 더더욱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글귀와 도리를 교제하는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바로 본분을 이행할 때 자신이 드러낸 각종 패괴를 돌아보고,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네가 드러낸 패괴 성품을 철저히 해결해야 한다. 네가 드러낸 성품이 교만하고 독선적인 성품이든, 교활하고 간사한 성품이든, 이기적이고 비열한 성품이든, 무성의한 태도로 하나님을 기만하는 성품이든, 이런 패괴 성품을 분명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러면 본인의 본분 이행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구원받으려면 아직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패괴 성품을 분명히 알아야만 자신이 본분을 이행하는 중에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느 부분에서 가로막혔는지 알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네가 본분을 무책임하게 건성으로 이행해서 사역에 손해를 입혔다고 하자. 그런데 체면 때문에 자신의 내적 상태와 어려운 점을 솔직히 털어놓은 뒤 그것을 해부하고 인식하는 일이 내키지가 않는다. 그래서 계속 핑계만 대면서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하나님께 기도하며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 ‘하나님, 제가 그렇게 말한다면 체면을 지키려는 것으로, 그것은 패괴 성품입니다. 그렇게 말할 게 아니라, 스스로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제 추한 모습을 드러내서, 제 내면의 진짜 생각을 얘기해야 합니다. 차라리 치욕을 당하고 체면이 상하더라도, 제 허영심을 채우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만 바랄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너는 자신을 저버리고 내면 깊은 곳의 진짜 생각을 이야기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정직한 사람으로 살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 뜻대로 행동하거나 자기 체면을 지키지 않게 된다. 너는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 뜻에 따라 진리를 실행하고, 열심히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자신의 책임을 완전히 다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너는 스스로도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집 이익도 지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것이다. 이렇게 살면 사람들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떳떳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이렇게 실행하는 것이 조금 어렵긴 해도, 네가 이 방향으로 실행하고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래도 한두 번 실패는 할 수 있으나,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성공은 너에게 있어 무엇을 의미하느냐? 네가 진리를 실행함으로써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또 자신을 저버리기 위한 한 발을 내딛게 되었음을 의미하고, 허영과 체면을 내려놓고 자신을 위해 이익을 도모하거나, 이기적이고 비열한 일을 저지르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실행하면 사람들은 네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동경하는 사람, 정의를 동경하고 빛을 동경하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여 이루게 되는 효과다. 또한 사탄 역시 수치를 당할 것이다. 사탄은 너를 패괴시켜 네가 자신을 지키고, 이기적으로 굴고, 체면을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이제 사탄에 속하는 그런 것들은 너를 옭아맬 수 없게 되었다. 네가 그런 것에서 벗어나 허영과 체면, 개인적인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진리를 실행함으로써 사탄이 철저하게 수치당하고,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된 것이니 네가 이긴 것 아니냐? 네가 이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선 것이 아니냐? 그것은 아름다운 전쟁을 치른 것이 아니냐? 아름다운 전쟁을 치른 너의 마음에는 평화와 기쁨이 찾아오고, 너는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네가 살면서 자주 참소를 받아 마음이 편치 않고, 기쁨과 평화도 없고, 늘 여러모로 근심하고 고뇌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네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탄 성품으로 살면서 항상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진리를 배반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살고, 자기 체면, 자기 명예와 지위, 자기 이익만 지키고, 자기만을 위해 산다면, 그런 삶은 매우 고통스럽다. 네 사욕이 너무 많고, 네 굴레가 너무 많고, 네 올가미가 너무 많고, 네 우려가 너무 많고, 네 고뇌가 너무 많아 평온함과 기쁨이 전혀 없다. 패괴된 육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다르다. 진리를 깨달을수록 자유로워지고, 진리를 실행할수록 평온하고 기쁘다. 그렇게 해서 진리를 얻으면 완전하게 빛 가운데서 살며 하나님 축복을 누리게 되고, 고통은 말끔히 사라진다.

너희는 지금 어떤 상태로 살 때가 많으냐? 긍정적인 상태로 살 때가 많으냐, 아니면 부정적인 상태로 살 때가 많으냐? (부정적인 상태로 살 때가 많습니다.) 늘 부정적인 상태로 산다면 본분을 끝까지 이행하며 내팽개치지 않기란 쉽지 않다! 너희는 늘 소극적으로 살면서 해결할 줄 모른다. 소극적 상태를 겨우 해결할 때도 있지만, 또다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결국 다시 소극적 상태로 빠져든다. 언제나 소극적인 상태에서 나뒹굴면서 일어나고 싶어도 못 일어나고, 어떤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 뭘 해도 역부족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피곤하지 않으냐? (피곤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소극적인 문제를 철저히 해결할 수 있겠느냐? 이를 위해서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도리를 아무리 많이 얘기할 줄 알아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정말로 진리를 깨닫고 난 뒤, 그 어떤 소극적 상태나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본분을 이행해도 더 이상 피곤하지 않다. 진리를 얻어야만 사람은 자유로워진다. 지금, 너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바로 진리이지만, 진리는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 사역을 진실로 인식하고, 사람의 패괴 성품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반드시 진리를 구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너희는 패괴 성품으로 사는 고통을 모두 느낄 수 있고,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너희는 진리를 깨닫고 난 뒤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 원칙을 지킬 수 있게 되어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찾아온 체험을 한 적이 있느냐? 이러한 체험이 많으냐, 적으냐? 만약 그런 일을 정말 많이 겪었다면 완전히 진리 실제를 갖춘 것이고, 빛 속에 살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가끔씩 하나님의 깨우침을 받으면 정말 기쁘고, 가끔씩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의지해서 하나님의 빛 비춤을 받고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얻어 일이 해결되면 정말 기쁠 것이다. 이런 사소한 체험을 자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계속해서 진리를 향해 노력해야 한다. 우선 너희는 이상(異象) 방면의 진리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 사역을 명확히 인식하고 하나님 성품을 참으로 인식한다면, 본분을 이행하는 중에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최소한 관념을 갖지 않고, 거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한 가지다. 또 하나는 생명 진입에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꼭 실행하고 진입해야 하는 진리는 어떤 것들인지 반드시 요약해 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어떻게 자신을 인식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직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의지하는지, 어떻게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지, 여러 부류의 사람을 어떻게 분별하는지, 사탄을 어떻게 대하는지, 어떤 지혜를 갖춰야 하는지 등 여러 방면의 진리를 모두 겪고 진입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너희는 지금 몇 가지 측면의 진리 실제에 진입했느냐? 또, 진입하지 못한 측면의 진리 실제는 어떤 것이냐? 이런 것들을 속으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실행 측면의 수많은 진리에 모두 진입하고 나면 너희의 생명은 어느새 크게 자라고 실제 분량이 생겨난다. 너희 분량이 어느 정도까지 자라나면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길로 들어설 수 있고, 실제 분량이 생겨난다. 이것은 서두를 일이 아니다. 밥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지금 가장 중요하고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본인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본분 이행하는 동안 생명 진입을 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힘만 쓰지 말고 마음을 써야 한다. 하나님이 너에게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라고 한 것은 노동력을 팔라는 것이 아니라 네 진심을 바치라는 뜻이다. 본분 이행 과정에서 너는 생명 진입을 해야 한다. 생명 진입이 있어야 생명을 얻고, 생명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생명이 있는 사람만이 진리가 있는 것이다.

2015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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