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목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0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 (4)

1. 하나님은 영계를 어떻게 주재하고 관리하는가

(3)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생사윤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생사윤회를 계속 말해 보자. 이것은 너희와 관련되는 것이다. 너희는 정말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먼저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을 믿는 이 부류의 사람들은 크게 몇 가지 부류로 나뉠까? 바로 하나님의 선민과 효력자,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다. 우선 하나님의 선민, 그 부류를 말해 보자. 그 부류 사람의 수는 많지 않다. 이른바 ‘하나님의 선민’은 무엇을 가리킬까?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였을 때, 인류가 있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선정한,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는 일부분 민중을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약칭한다. 하나님은 그 일부분 사람들을 택하였을 때, 특별한 범위가 있었고, 특별한 의의도 있었다. 그 범위가 바로 그 일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이 매번 중요한 사역을 할 때마다 반드시 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 특수성이다. 그럼 그 의의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선정한 일부분 민중인 이상, 그 의의는 아주 중대하다. 즉, 하나님이 그 일부분 사람들을 만들고, 그 일부분 사람들을 온전케 하여 하나님의 경영 사역이 끝날 때, 그 일부분 사람들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 의의는 중대하지 않으냐?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일부분 선민들은 하나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효력자는 어떨까? 우리 우선 ‘명정(命定)’이란 일은 제쳐 두고, 먼저 효력자의 근원부터 말해 보자. ‘효력자’란 글자 표면의 뜻만 딱 봐도 효력을 하는 것이다. 효력하는 것은 임시적인 것이지, 장구(長久)한 것이 아니고 영원한 것도 아니며, 임시 고용한 것이고 임시 불러온 것이다. 그 일부분 사람들의 근원은 대부분 이방인 중에서 선출한 것이다. 그가 태어날 때, 즉 그 사람을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효력자가 되도록 정할 때, 아마 그는 전생에 어떤 동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또 그는 전생에 이방인 중의 한 사람었을 수도 있다. 이것이 효력자의 근원이다.

우리 다시 하나님의 선민을 말해 보자. 하나님의 선민도 죽은 후, 어떤 곳에 가야 하는데, 그곳은 이방인 그리고 각종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가야 할 곳과 완전히 다른 곳이다. 그곳은 천사가 있고 하나님의 사자가 동반하는 곳이고, 하나님이 친히 관리하는 곳이다. 비록 그곳에서 하나님의 선민들이 하나님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곳은 영계의 그 어떤 곳과 다르다. 거기는 그 일부분 사람들이 죽은 후에 가야 할 하나의 다른 곳이다. 그들도 죽은 후에, 하나님의 사자들의 엄격한 심사를 받는다. 무엇을 심사할까? 그들이 일생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간 길을 심사하고, 그 기간에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한 적이 있는지, 하나님께 악담을 한 적이 있는지, 어떤 엄중한 범죄나 악행이 있었는지를 심사한다. 그렇게 심사를 거친 후, 한 사람이 떠나거나 머무는 문제를 결정한다. ‘떠나다’는 무엇을 가리킬까? ‘머물다’는 무엇을 가리킬까? ‘떠나다’는 바로 그 사람의 행위에 근거해 그가 여전히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그 대오 범위에 머물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머물다’는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이 말세에 만들고자 하는 그 인류의 범위에 계속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머무는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특별한 안배를 한다. 하나님은 사역을 하는 각 시기마다 그런 사람들을 보내 사도가 되게 하거나, 교회를 부흥시키는 사역을 하게 하거나, 교회를 목양하는 사역을 하게 한다. 하지만 그런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방인처럼 아주 빈번하게 한 세대씩 그렇게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역의 필요와 하나님 사역의 절차에 따라 윤회한다. 그런 사람은 자주 환생하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럼 ‘온다’라고 하는 것에 법칙이 있지 않느냐? 몇 년에 한 번씩 오는 걸까? 그 정도의 빈도가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무엇에 근거하느냐? 하나님의 역사에 근거하고 하나님의 역사 절차에 근거하며 하나님의 필요에 근거하는데, 규정은 없다. 유일한 규정은 무엇일까? 바로 말세에 하나님이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을 할 때, 그 선민들은 다 인간 세상에 온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 온다’는 것은 마지막 한 번의 윤회를 가리킨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하나님이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을 하면서 이루려고 하는 효과에 근거해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이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그 선민들을 모두 완전히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일부분 사람들이 마지막 이 단계에서 만들어지고 온전케 된다면, 더 이상 이전처럼 윤회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람이 되는 그 과정이 철저히 끝난 것이고, 윤회의 과정도 철저히 끝난 것이다. 그것은 머물러 있게 된 사람이다. 그럼 머물 수 없는 사람은 어디로 갈까? 머물 수 없는 사람에게도 적합한 곳이 하나 있다. 우선, 마찬가지로 그 사람은 악행으로 인해,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과 죄악으로 인해 똑같이 징벌을 받아야 한다. 징벌을 받은 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이방인들 가운데 보내 적합한 상황에 근거해 그 사람을 이방인 중에 안배하거나 혹은 각종 신앙이 있는 사람들의 범위에 안배한다. 즉, 그 사람들에게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징벌을 받은 후, 아마 일부 교파에서 살아갈 수도 있고, 하나는 이방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이방인이 된다면 아무런 기회도 없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 사람이 된다면, 예를 들어, 기독교인 중의 일원이 된다면 하나님 선민의 대오에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거기에는 아주 복잡한 관계가 있다. 어쨌든, 하나님의 선민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을 했다면 마찬가지로 징벌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전에 언급했던 바울 같은 경우이다. 바울은 징벌을 받고 있는데, 그것이 한 가지 예이다. 그 일에서 너희는 갈피를 좀 잡을 수 있느냐? 하나님 선민의 범위는 고정된 것이냐? (대부분은 고정된 것입니다.) 대부분은 고정된 것이다. 소부분은 왜 고정되지 않았을까? 그 소부분은 악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급한 가장 뚜렷한 한 가지는 바로 악을 저지른 것이다.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은 받지 않는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면 그 사람을 각 인종, 각 부류의 사람들 속에 보낸다. 그럼 희망이 없고 다시 돌아오기 아주 어렵다. 이것은 하나님 선민의 생사윤회에 관한 것이다.

다음은 효력자의 생사윤회에 관한 것이다. 효력자에 대해서는 우리가 좀 전에 말했는데, 효력자는 어디에서 온 것이었지? (어떤 사람은 이방인이었고, 어떤 사람은 동물이었습니다.) 그 효력자를 말하자면, 그 사람의 전생의 몸은 이방인, 동물과 서로 전환하면서 환생했던 것이다. 마지막 이 단계에 이르러 하나님은 그 이방인들 중에서 그런 사람들을 일부분 선정하였는데, 그것은 특별한 무리이다. 그런 사람들을 일부분 선정한 목적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효력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효력’, 이 단어가 듣기에는 별로 우아하지 않고, 각 사람의 소망에도 별로 부합되지 않는다. 하지만 효력을 하는 대상이 누군지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효력자라면, 그 일부분 사람들의 존재 역시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맡은 역할은 그 어떤 사람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이 선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존은 의의가 있는 것이다. 효력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의 선민들을 위해 효력을 하는 것인데, 주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효력을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게 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선민들을 온전케 하는 데에 협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 사람들이 힘을 내든, 아니면 일부 사역을 하거나 일부 직무를 맡든, 그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일까? 아주 높은 요구가 있느냐? (충성된 효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효력자가 되어도 충성해야 한다. 너의 근원이 무엇이든, 하나님이 왜 너를 택했든, 너는 충성해야 하고,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너에게 부탁한, 네가 맡은 사역과 하는 본분에서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 효력자가 충성하여 하나님을 흡족케 한다면 어떤 결말을 바꿀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살아남는 효력자라면, 그것은 복이 아니냐? 살아남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 복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지위를 보면 하나님의 선민과 어느 정도 다르고 차별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효력자와 하나님의 선민이 금생에 누리는 것은 같지 않으냐? 최소한 금생에 누리는 것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부인하지 않겠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공급, 하나님의 축복을 어느 누가 누리지 못했느냐? 누구나 다 아주 풍성하게 누렸다. 효력자의 신분은 효력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그 사람은 피조물 가운데의 일원이고, 단지 그가 맡은 역할이 효력자일 뿐이다. 그럼 피조물 가운데의 일원으로서 효력자와 하나님의 선민은 차별이 있을까? 사실상, 차별이 없다. 그것은 너희가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효력자, 그 일부분 사람들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온 것이다. 이방인들 가운데서 왔다고 하면, 그 일부분 사람들의 밑바탕이 좋지 않은 것이다. 그 일부분 사람들은 모두 무신론이다. 그들의 밑바탕은 무신론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그 일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 말해, 그 일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동물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왜 그렇게 요구하는지를 알아들을 수 없다. 즉, 알아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그런 원인들을 감안했을 때, 그 일부분 사람들에게는 전에 소위 말했던 생명이 없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생명이 없으면 사람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진리를 갖추었을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력과 인식을 갖추었을까? 틀림없이 갖추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효력자의 근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부분 사람들을 효력하게 한 만큼, 그 일부분 사람들에 대해서도 요구 기준이 있는 것이다. 결코 그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혹은 적당히 대하는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 아니다. 비록 그 일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생명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 일부분 사람들을 선대하고 그들에 대한 요구 기준이 있다. 그 요구 기준은 너희도 조금 전에 말했는데, 하나님에 대해 충성심이 있어야 하고, 순종해야 하며, 효력을 해도 효과적으로 해야 하고, 또한 끝까지 효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끝까지 효력을 할 수 있고, 충성된 효력자가 되어 마지막까지 효력을 하면서 하나님이 맡겨 준 부탁을 아주 훌륭하게 완성할 수 있다면, 너의 그 일생은 가치 있게 산 것이고, 너는 살아남을 수 있다. 만약 네 자신이 좀 더 힘을 내고, 좀 더 노력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서 좀 더 힘을 내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좀 말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좀 더 깨닫고,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더 헤아릴 수 있다면, 너같은 효력자에게는 전환점(원문: 轉機)이 있게 될 것이다. 그 전환점은 무엇일까? 더 이상 단순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너의 표현에 근거해, 네 개인의 소망과 추구에 근거해 너를 하나님의 선민 가운데 넣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환점이다. 그 전환점이 효력자에게 가져다주는 최대의 좋은 점은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의 선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이 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것은 그 사람이 더 이상 이방인들처럼 동물과 서로 윤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지 않느냐? 그것은 좋은 일이라 할 수 있고, 또한 기쁜 소식이다. 즉, 하나의 효력자로서 순응성이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효력자에게 효력을 하도록 정해 놓았다 하여 영원히 효력만 하는 것이 아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표현에 근거해 각기 다르게 처리를 할 것이고, 서로 다른 답변을 줄 것이다.

하지만 효력자로서 끝까지 효력을 할 수 없는 자, 즉 효력을 하는 기간에 어떤 사람은 중도에 포기하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떠났으며, 어떤 사람은 효력을 하는 기간에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효력을 하는 기간에 하나님의 사역에 엄청난 파괴를 초래했고 커다란 손실을 초래했다. 심지어 어떤 효력자는 효력을 하는 기간에 하나님을 욕한 적이 있는데, 등등 만회할 수 없는 그 모든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 모든 악행은 효력을 하는 그 사람의 효력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즉, 효력한 표현이 너무 부족하고, 선을 넘은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네가 효력한 것이 너무 불합격이기 때문에 효력 자격을 취소하여 효력을 하지 못하게 하고, 너를 하나님의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고, 하나님의 집에서 사라지게 한 것이다. 네가 효력을 하기 싫어하지 않았느냐? 네가 늘 나쁜 짓을 저지르고 싶어 하지 않았느냐? 너는 늘 충성심이 없지 않았느냐? 그럼 좋다. 그 일은 해결하기 쉽다. 너의 효력 자격을 취소시키면 된다. 한 사람의 효력 자격을 취소시키는 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그 효력자의 결말은 이미 선포되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하나님을 위해 효력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사람이 효력하게 두지 않는다. 그 어떤 듣기 좋은 말을 해도 소용없다. 그런 정도에 이르게 될 때는 국면을 이미 만회할 수가 없으며, 그런 효력자에게는 되돌아올 길이 없다. 그럼 하나님은 그런 효력자를 어떻게 처리하겠느냐? 단지 효력하지 못하게 하는 것뿐이겠느냐? 아니다. 혹은 그저 그 사람을 살아남지 못하게 할 뿐이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한쪽에 내버려 두고 되돌아오기를 기다리겠느냐? 그렇게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효력자에게 그렇게 큰 사랑이 없는데, 그것은 사실이다. 그럼 하나님을 위해 효력하는 일에서 한 사람의 태도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태도로 인해 하나님은 그 사람의 효력 자격을 취소시키고, 계속하여 그 효력자를 이방인들 가운데로 보내 버릴 것이다. 이방인들 가운데 보내지면 그 효력자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느냐?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동물과 서로 윤회하면서 이방인이 영계에서 받는 처벌을 받게 된다. 어떻게 처벌할지에 관해서는 하나님이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사람이 이미 하나님의 역사와 아무런 관련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생애가 끝난 것만이 아니라, 또한 그 사람의 운명도 끝난 것이고, 운명이 판결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효력자를 잘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를 사람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만약 효력자가 끝까지 효력을 할 수 없거나 도중에 효력 자격이 취소되었다면, 그 효력자는 이방인들 가운데로 보내질 것이다. 이방인들 가운데로 보내지면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고, 생각과 이성(理性)이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확실히 알았겠지?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민들과 효력자의 생사윤회에 대해 처리하는 것이다. 듣고 나서 너희들은 어떤 소감이 드느냐? 내가 방금 말한 이런 화제들, 하나님의 선민 그리고 효력자에 관한 이 화제를 이전에 말한 적이 있느냐? 사실, 이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너희가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민에 대해, 효력자에 대해 다 공의롭다. 어느 방면에서 말하든 다 공의롭다. 이것은 틀림없다. 아마 어떤 사람은 “그럼 하나님께서 선민들에게는 왜 그렇게 큰 관용을 베푸십니까? 효력자에게는 왜 고만한 인내만 주십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효력자를 위해 하소연하려는 사람이 있느냐? “효력자에게 시간을 좀 더 주실 수 없나요? 효력자에게 인내와 관용을 좀 더 베풀어 주실 수 없나요?”라는 그 말이 맞느냐? (틀립니다.) 왜 틀리느냐? (사실 효력자가 되는 것도 우리가 운 좋게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효력자는 사실 운 좋게 얻은 것이다! 만약 효력자란 그 호칭이 없다면, 만약 효력자의 사역이 없다면, 그 일부분 효력자들은 어디에 있겠느냐? 이방인들 가운데서 짐승들과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 지금 그 일부분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오게 하고, 하나님의 집에 오게 하였는데, 사람은 얼마나 큰 은혜를 누리고 있느냐! 그건 정말 엄청난 은혜이다! 만약 하나님이 효력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 앞에 올 그런 기회가 없다. 한 걸음 물러서서 말하자면, 설령 네가 불교 신자 가운데의 수행하여 성과를 얻은 그 부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너는 영계에서 기껏해야 잔심부름꾼이다. 너는 영원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너에게 주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느낄 수 없으며, 하나님과 직접 대면할 수가 없다. 그 사람들이 직면하는 것은 단지 간단한 직무일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 수가 없고, 그저 무작정 따르고 순복할 뿐이다. 하지만 효력자는 이 단계 사역에서 얻는 것이 너무나 많다! 우선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느낄 수 있으며,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더더욱 누릴 수 있다. 그것은 정말 얻는 것이 너무 많다! 얻는 것이 너무도 많다! 그러므로 네가 만일 효력자로서 효력조차도 잘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남겨 두겠느냐? 너에 대한 요구도 높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너를 남겨 둘 수 없다. 너에게 뭘 시켜도 네가 잘하지 못하고 자신의 본직 사역을 지키지 못했다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너를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다. 하나님은 너를 총애하지 않지만 차별 대우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일을 하는 원칙이다. 그 어떤 사람이나 피조물을 대하든 하나님은 다 이렇게 한다.

영계에 관해서는 영계 중의 각종 생령들도 일을 그르치고 일을 잘못 처리했다면, 하나님은 거기에 상응한 천상의 계율과 법령에 따라 그들을 처벌한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몇 천 년의 경영 사역 중에서 이전에 일을 그르친 심부름꾼들 중에, 어떤 자는 그 과정에서 바로 멸망되고, 어떤 자는 지금도 갇혀 징벌을 받고 있다. 그것은 각 생령마다 반드시 직면해야 할 것이다. 일을 그르치고 악을 행하면 모두 징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민과 효력자를 대하는 것과 절대적으로 똑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영계에 있든 아니면 물질세계에 있든, 하나님이 일을 하는 원칙은 불변한 것이다. 네가 볼 수 있든, 볼 수 없든 하나님이 일을 하는 원칙은 불변한 것이다. 하나님은 시종일관 하나님의 원칙대로 만물을 대하고 만물을 처리하는데, 그것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방 중에서 비교적 착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선대할 것이고, 또한 각 종교 중에서 좋은 행위가 있고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 하나님이 경영하는 만물 가운데서 그들의 역할을 발휘하게 하고, 그들 스스로 해야 할 것들을 하게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민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그런 원칙에 따라 그 어떤 사람이든 차별 대우 하지 않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을 선대하며, 또한 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을 사랑한다. 단지 하나님이 이 몇 부류의 사람, 즉 이방인에서부터 각종 신앙이 있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하나님의 선민에 이르기까지, 각 부류의 사람에게 베풀어 준 것만 다를 뿐이다. 이방인을 보아라,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 하나님은 그들을 짐승으로 간주하지만, 만물 가운데서 그들 각자마다 먹을 것이 있고, 다 자기 자리가 있으며, 다 정상적인 생사윤회가 있다. 악을 행한 자는 징벌을 받고, 선을 행한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하고 선대한다. 바로 그런 것이다.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만일 엄격히 종교의 규율에 따라 대대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들의 윤회에 대해서도 나중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결론을 하나 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너희들, 하나님의 선민이든 아니면 효력자든, 하나님은 자신이 제정한 행정과 규칙에 따라 이 사람들을 규범화하고, 이 사람들의 결말을 정할 것이다. 보라, 이 몇 가지 부류 사람들 가운데 신앙이 있는 각 부류의 인류, 즉 각 종교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은 생존 공간을 주지 않았느냐? 유대교는 어디에 머물러 있느냐?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을 방해하느냐? 조금도 방해하지 않는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어떠하냐? 역시 조금도 방해하지 않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질서대로 그렇게 지키게 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지도 않고, 아무런 계시도 하지 않으며, 더욱이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는다. “스스로 그렇게 맞다고 여기면 그렇게 믿으라!”는 것이다. 천주교의 사람들은 마리아를 믿는다. 마리아를 통해 메시지를 예수에게 전달하는데,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믿는다. 그럼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을 바로잡아 준 적이 있느냐?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서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고 상관하지 않으며, 그들에게도 일정한 생존 공간을 주었다. 그럼 이슬람교와 불교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떠하냐? 역시 그렇게 하지 않느냐?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범위를 정해 주어 그들의 생존 공간에서 살게 해 주었고, 또한 그들 각자의 신앙도 방해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다 아주 질서 있다. 이 모든 일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에게 권병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 권병을 남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만물을 다 조리 정연하고 또한 문란하지 않고 질서 있게 안배했는데, 거기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깃들어 있고, 또한 하나님의 전능이 깃들어 있다.

오늘 특별하고 신선한 화제를 가지고 말했는데, 즉 영계에 관한 일들이고, 하나님이 영계에서 관리하고 주재하는 한 방면의 내용들이다. 너희가 그 방면의 내용을 모를 때는 아마 “그 방면은 다 심오한 비밀이니, 우리의 생명 진입과 무관합니다. 그 방면은 다 사람의 현실적인 생활을 벗어나는 것이니, 우리는 알아볼 필요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지금 너희는 그런 생각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느냐? 그런 생각은 맞는 것이냐? 그런 생각은 맞지 않고,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이 어떻게 만물을 주재하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면, 단순하게 네가 볼 수 있는 것과 너의 생각이 미칠 수 있는 것만 알아서는 안 되고, 네가 볼 수는 없지만 네가 볼 수 있는 이 세상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다른 세계의 일들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재에 관련되고,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그런 화제와 관련되는데, 이것은 그 가운데에 있는 내용이다. 만일 이 일부분의 내용이 빠진다면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방면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결여되고 부족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말한 이 부분의 내용은 우리가 전에 말한 모든 내용을 완전하게 하였고,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이 내용도 완전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너희는 알고 난 후, 지금 이런 내용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느냐?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오늘 너희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는데, 바로 효력자에 관한 비밀이다. 나는 너희가 이런 화제에 대해 듣기 좋아하고, 이런 일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 오늘 말한 이런 것에 대해 너희는 만족하느냐? (만족합니다.) 아마 너희는 다른 것에 대해 인상이 깊지 않겠지만 효력자의 결론에 대해서는 아주 인상이 깊을 것이다. 그것은 이 화제가 각 사람의 영혼을 촉동(觸動)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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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명정(命定): 명하여 정함.

② 촉동(觸動): 자극을 받아 움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