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목차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

시초부터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인류뿐이다. 즉 모든 생물 중에서, 피조물 중에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인류밖에 없다. 사람에게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며 언어가 있고 생각이 있고 자유 의지가 있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구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소원을 모두 사람 몸에 기탁하였다. 그는 사람을 그와 합심할 수 있고 그와 동행할 수 있는 동반자로 만들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경영을 시작한 후 사람이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으로 하여금 정결케 하고 장비하게 하여 하나님이 만족해하는 사람,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게 하기를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줄곧 이런 하나의 결과를 바라고 있었고 기다리고 있었다. 성경의 기록에 도대체 이런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 즉 성경 중에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이런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 이 시대 이전에 이런 유례가 있었는가? 오늘 우리 성경의 기록에 따라 계속해서 읽어보자. 다음의 이 인물━욥의 모든 행위가 오늘 우리가 말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이 화제와 관련이 있는지를 보고, 욥이 하나님이 만족해하는 사람인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보자.

욥, 이 사람은 너희의 인상 속에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은 성경의 본래 말을 인용하여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욥에 대해 평가한 본래 말이다. 만일 너희들 자신의 말로 말한다면 너희는 어떻게 욥, 이 사람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겠는가? 어떤 사람은 욥이 좋은 사람이고 이지(理智)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욥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또 어떤 사람은 욥이 인성이 있는 의인이라고 말한다. 너희는 모두 욥의 믿음을 보았다. 즉 너희 마음속으로 욥의 믿음을 아주 중요시하고 아주 부러워하기도 하는데, 그럼 우리 오늘 욥이 도대체 어떤 것을 구비하였기에 하나님이 이토록 그를 열납하였는지를 보자. 계속해서 경문을 읽어보자.

(3) 욥

1. 성경 및 하나님이 욥에 대해 평가한 말씀

(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 1: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이 몇 단락 말에서 너희가 본 중점은 무엇인가? 이 세 단락의 간결한 경문은 다 욥, 이 사람과 관련되는데, 내용은 비록 적지만 욥,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주 분명히 말했다. 여기에서 욥의 평소의 행위와 그의 표현을 진술함을 통해 각 사람에게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고 이치와 근거가 있는 것임을 알려준다. 이 세 단락의 경문은 우리에게 욥에 대한 사람의 평가든지(욥 1:1) 아니면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든지(욥 1:8) 다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의 욥의 모든 행위(욥 1:5)로 말미암아 있게 된 것임을 알려준다.

먼저 첫 구절을 보자.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이 말은 성경에 기록된 욥에 대한 첫 번째 평가이다. 그것은 욥에 대한 <욥기> 저자의 평론인데, 물론 욥에 대한 사람의 평가를 대표하기도 한다. 이 평가는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이다. 계속해서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보자. (욥 1:8)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이 두 평가는 하나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그것은 내용이 같은 두 평가이다. 충분히 보다시피, 욥의 행위와 표현은 사람에게 알려져있고 동시에 하나님의 칭찬도 받았다. 다시 말해서 욥, 이 사람의 사람들 앞에서의 표현과 하나님 앞에서의 표현이 일치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위와 존심을 수시로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감찰하게 했고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도 해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중에 그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다.

욥이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구체적 표현

계속해서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구체적 표현을 보자. 위와 아래 이 두 단락 외에 1장 5절을 보자. 이것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그중 하나의 구체적 표현이다. 이 표현은 그가 평소의 생활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는지와 관련된다. 그의 두드러진 표현은 바로 욥이 스스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기 위해 그 자신이 해야 할 바를 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을 위해서도 항상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번제를 드린 것이다. 그는 자기 아들들이 늘 연회 때에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할까” 걱정했다. 그럼 욥은 이 일에서 어떻게 표현했는가? 원문에는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욥의 이런 표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는 그의 마음속에서 비롯된 것이지 겉면의 행위가 아님을 보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는 그의 평소의 생활에서 시시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악에서 떠났을 뿐만 아니라 항상 그의 아들들을 위해 번제를 드렸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아들들도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할까 걱정했던 것이다. 여기서 보다시피,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의 진실성은 어떻게 고찰하고 알아봐도 감당할 수 있는 것이고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는 우연히 이렇게 했는가 아니면 항상 이렇게 했는가? 원문의 마지막 말은 “욥은 항상 이렇게 행하였더라”고 했다. 이 말에 기술된 뜻은 욥이 우연히 혹은 일시적으로 기쁘면 가서 돌아보는 것이 아니고 또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는 것도 아니라 항상 그들에게 스스로 성결케 하라고 하고 그들을 위해 번제를 드렸다는 것이다. 여기의 ‘항상’은 일조일석이 아니고 한순간도 아니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의 표현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인식에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고 입에만 달고 있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가 그의 마음을 주도하고 있고 또 그의 행위를 지배하는 것이며 그의 마음속에서 그가 생존하는 근본임을 가리킨다. 그에게 항상 이런 행위가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마음속으로 항상 자신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하고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까 걱정했다는 것을 뜻하며, 그의 마음속에서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이 도의 가치가 얼마나 컸는지도 뜻한다. 그가 항상 이렇게 행한 원인은 그가 마음속으로 걱정하고 마음속으로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하고 또 자신이 하나님의 도에서 빗나가 하나님을 만족케 하지 못할까 두려워한 동시에 자녀들을 위해서도 걱정하고 자녀들이 하나님을 거스를까 두려워했는데, 이런 것이 바로 욥의 일상생활에서의 정상적인 표현이다. 바로 이런 정상적인 표현이 욥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이 빈말이 아님을 실증했으며 욥이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실제를 살아냈음을 실증했다. “욥은 항상 이렇게 행하였더라”는 이런 한마디 말은 하나님 앞에서의 욥, 이 사람의 평소의 모든 행위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가 항상 이렇게 하였는데, 그의 행위와 그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상달된 것이 아닌가? 바꾸어 말해서, 하나님이 항상 그의 마음과 행위를 열납한 것이 아닌가? 즉 욥은 어떤 정형과 배경 하에 항상 이렇게 행할 수 있었는가?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항상 그에게 나타났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가 악에서 떠나기를 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항상 이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마 그가 그의 가산이 쉽게 얻은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하나님이 베풀어준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고 하나님을 거스름으로 인해 가산을 잃을까 두려워했을 거라고 말한다. 이런 여러 가지 논법이 사실인가? 분명히 아니다. 왜냐하면 욥, 이 사람이 하나님 안중에 열납된 부분과 그의 가장 귀한 부분은 단지 그가 ‘항상 이렇게 행함’으로 말미암은 것만이 아니라 더욱이 욥이 사탄에게 넘겨져 시험을 받을 때 욥의 하나님 앞에서의 표현과 사람 앞에서와 사탄 앞에서의 표현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이런 장절이 바로 가장 설득력있는 증거이다. 이런 증거는 우리로 하여금 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진실한 것임을 보게 한다. 계속해서 다음의 경문을 보자.

2. 사탄이 처음으로 욥을 시험함(짐승이 노략당하고 자녀가 화를 입음)

1) 하나님이 한 말씀

(욥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욥 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2) 사탄의 대답

(욥 1:9~11)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한 것은 욥의 믿음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이다

<욥기> 1장 8절, 이 말씀은 우리가 본, 성경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과 사탄과의 첫 대화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였는가? 원문은 이렇게 기록되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이것은 사탄 앞에서의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이다. 하나님은 그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말씀하였다. 하나님과 사탄과의 이 대화가 있기 전에 하나님은 사탄을 이용하여 욥을 시험하게 하려고 작정했는데, 즉 욥을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이었다. 이러면 한 방면으로는 욥에 대한 하나님의 감찰과 평가가 정확하여 틀림없음을 실증하고 사탄으로 하여금 욥의 간증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하며, 다른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욥의 믿음과 경외를 온전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탄이 하나님 앞에 왔을 때 하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직설적으로 사탄에게 물었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하나님의 물음에 이런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은 사탄이 이리저리 빈둥거리며 늘 하나님의 종 욥을 엿보고 또 항상 그를 시험하고 그를 공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한가지 방식으로 욥을 무너뜨려 욥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는 서지 못하는 것임을 실증하려고 시도하였으며, 그것이 또 제멋대로 욥을 해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욕하게 함으로써 하나님 손에서 욥을 빼앗아가려고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의 마음을 감찰하기에 그의 온전함과 정직함을 보았고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도 보았다.’ 하나님은 묻는 방식으로 사탄에게 욥이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니 그가 영원히 하나님을 욕하고 사탄을 따를 리가 없다고 알려주었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듣고 사탄은 더욱 악에 받쳐 잠시도 늦추지 않고 욥을 빼앗아가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사탄은 사람이 ‘온전하고 정직함’을 해낼 수 있음을 아예 믿지 않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음’도 믿지 않으며 동시에 또 사람의 온전함과 정직함을 혐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 사람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욥기> 1장 9~11절과 같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하나님은 사탄의 악랄한 본성을 잘 알고 있고 또한 사탄이 욥을 해할 방도를 궁리하고 음모를 꾸민 지 이미 오래된 것을 깊이 알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은 재차 사탄에게 욥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알려줌으로써 사탄으로 하여금 고분고분 복종하게━그것의 정체를 드러내게━욥을 공격하고 시험하게 하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의식적으로 욥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강조하는 이런 방식으로써 사탄으로 하여금 욥의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을 혐오하고 분노함으로 인해 욥을 공격하게 하는 데에 달하였고 따라서 욥의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으로 사탄을 욕되게 하고 사탄으로 하여금 철저히 부끄러움을 당하고 실패하게 하고 이로부터 더는 욥의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을 의심하거나 참소하지 못하게 하는 데에 달하였다. 이리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한차례의 시련과 사탄에게서 오는 한차례의 시험을 피하기 어려웠는데, 하나님의 시련을 감당할 수 있고 사탄의 시험을 견뎌낼 수 있는 인선은 오직 욥뿐이었다. 이런 대화가 있고 나서 사탄은 허가받고 욥을 시험하러 갔는데, 이것은 사탄이 일으킨 첫 공격이었다. 이번의 공격 목표는 욥의 가산이었다. 사탄이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라고 이렇게 욥을 참소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탄이 욥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도록 허락하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탄과 대화한 목적인데, 단지 하나님이 사탄에 대해 한가지 요구가 있었을 뿐이다. 즉, <욥기> 1장 12절,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고 욥을 사탄의 손에 넘겨준 후 제기한 조건이다. 즉 하나님이 사탄에게 준 최저선인데, 그것에게 욥을 해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이다. 하나님은 욥의 온전함과 정직함에 대해 인가하였고 그의 앞에서의 욥의 정직함과 온전함이 검증을 견딜 수 있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임을 믿었기 때문에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탄에게 하나의 범위를 주었는데, 욥의 그 어떤 재산도 다 빼앗아가도 되지만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즉 그때 하나님이 욥을 완전히 사탄에게 넘겨주지는 않았고, 그것이 어떻게 욥을 시험하고 어떤 방식을 써도 되지만 욥 본인을 해쳐서는 안 되고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관하고 사람이 죽든 살든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지 사탄에게는 이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이 말씀을 하자마자 사탄이 잠시도 늦추지 않고 가서 여러 가지 수단으로 욥을 시험하는 바람에 욥은 즉시 온 산의 우양을 잃게 되었고 하나님이 그에게 베풀어준 모든 가산을 잃게 되었다…… 하나님의 시련이 이렇게 욥에게 임한 것이다.

비록 우리는 성경에서 욥이 겪은 시험의 유래를 알게 되었지만 ‘당사자’ 욥은 이 일을 알고 있었겠는가? 욥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니 그의 배후에서 발생한 이야기를 그는 당연히 몰랐다. 단지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와 그의 온전함과 정직함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시련이 그에게 임한 것임을 의식하게 했을 뿐이다. 그는 영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고 또 이번 시련의 배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일이 닥치든지 그의 온전함과 정직함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일을 대하는 욥의 태도와 반응을 하나님이 분명히 보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본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본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의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욥이 시련을 받기까지 그의 마음은 줄곧 하나님께 열려진 것이고 하나님 앞에 놓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온전함과 정직함을 포기하지 않았고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버리지도 않고 등지지도 않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고 위로가 되는 부분이다. 이어서 욥이 어떤 시험을 겪었는지, 욥이 어떻게 시련을 대했는지를 보자. 계속해서 경문을 읽어보자.

3) 욥의 반응

(욥 1:20~21)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이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주동적으로 돌려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고 말씀한 후 사탄은 물러갔다. 뒤이어 욥에게 갑작스러운 맹렬한 공격이 들이닥쳤다. 먼저 소와 나귀가 빼앗기고 종이 살해되었으며, 이어 양떼와 종들 이 불에 타죽었고, 그다음 낙타가 빼앗기고 종들이 살해되었으며, 나중에 그의 자녀들도 목숨을 빼앗겼다. 이 일련의 공격은 욥이 처음으로 시험을 겪으면서 받은 고통이다. 이번 공격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분부대로 단지 욥의 가산과 자녀만 겨냥하고 욥 본인은 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욥은 거액의 가산을 소유한 부자에서 순식간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청천벽력같은 이 타격은 그 어떤 사람도 감당할 수 없고 정확히 대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욥은 오히려 그의 비범한 면을 보여주었다. 경문에는 이렇게 묘사되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것은 욥이 여러 가지 가산과 자녀들을 잃은 것을 들은 후의 첫 반응이다. 우선 그는 결코 놀라움을 표하지 않았고 당황스러움도 표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분노나 혐오도 표하지 않았다. 보다시피, 그의 마음속에서 이미 이 모든 재앙은 우연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더욱이 보응이나 징벌이 임한 것도 아니라 여호와의 시련이 그에게 임한 것이고 여호와께서 그의 재산과 자녀들을 거두어가려 한 것임을 확신했다. 그때의 욥은 마음이 아주 평온했고 또한 아주 맑았다. 그의 온전하고 정직한 인성은 그로 하여금 이성적으로, 자연적으로 그에게 임한 재앙에 대해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게 했다. 그러므로 그는 보통 때와 달리 냉정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겉옷을 찢고’는 그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고, ‘머리털을 밀고’는 그가 신생아처럼 하나님 앞에 돌아왔음을 뜻하며,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는 그가 알몸으로 세상에 왔다가 지금 여전히 아무것도 없어 신생아처럼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것을 뜻한다. 그에게 임한 이 모든 일을 대하는 욥의 이와 같은 태도는 그 어떤 피조물도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여호와에 대한 그의 믿음은 신뢰의 범위를 벗어났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와 그의 순복이다. 그는 그에 대한 하나님의 베풂에 감사를 드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하나님의 거둠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릴 수 있었고 더욱이 그의 목숨을 포함해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주동적으로 돌려드릴 수도 있었다.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와 순복은 인류 중에서의 본보기이고, 그의 온전함과 정직함은 사람이 구비해야 할 인성의 최고봉에 이르렀다. 그는 비록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진실한 존재를 체험했다. 그는 자신의 체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외했고 또 하나님에 대한 경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이 임의로 그의 모든 것을 거두어가도 어떤 원망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설령 그 시각 그의 육체를 거두어가도 기꺼이 원하고 아무런 원망도 없다고 고할 수 있었다. 그의 이 모든 표현은 다 그의 온전하고 정직한 인성으로 인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욥, 이 사람이 단순하고 성실하고 착하기 때문에 그가 체험하고 느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굳게 믿고 동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기초상에서 그는 하나님이 그를 인도한 것이나 그가 만물 중에서 본 하나님의 행사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마음과 행위, 표현과 일 처리하는 원칙을 규범화했다. 오랜 시일이 지나 그는 그의 경력(역주: 체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해 진실하고 실제적인 경외가 생긴 동시에 악에서 떠나는 데에도 달했다. 이것이 바로 욥이 지킨 ‘온전함’의 유래이다. 욥은 성실하고 단순하고 착한 인성을 구비했으며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며 악에서 떠나는 실제 경력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라는 인식도 구비했다. 그리하여 그는 사탄의 이처럼 악랄한 공격에서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었고 또한 하나님의 시련이 임할 때에 하나님을 실망케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만족스러운 답변을 드릴 수 있었다. 비록 첫 번째 시험에서 욥은 아주 ‘간단’하게 표현했지만 후세 사람들이 일생 동안의 심혈을 기울여도 욥의 ‘간단’함을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욥의 이상의 표현을 구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늘 욥의 이 ‘간단’한 표현을 마주하고 또 오늘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른다고 칭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표명한 ‘절대적으로 순복하고 죽기까지 충성하자’라는 구호와 결심을 대조하면 너희는 온 얼굴에 땀이 흐를 정도로 부끄럽지 않은가?

네가 경에 기록된 욥의 집에 닥친 이 모든 것을 볼 때 어떤 반응이 있겠는가? 많은 생각들이 연이어 떠오르지 않는가? 아주 놀랍지 않은가? 욥에게 닥친 시련을 ‘보기만 해도 끔찍하다’라는 이 단어로 묘사할 수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욥에게 시련이 임했을 때 그 정경이 문자적 묘사를 통해 이미 사람으로 하여금 참혹하여 차마 볼 수 없게 했는데, 하물며 진실한 장면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보다시피, 욥에게 임한 것은 한차례 ‘연습(演習)’이 아니라 ‘실탄 무기를 소지한 정규적인 싸움’이었다. 그에게 임한 이 시련은 도대체 누가 직접 조작한 것인가? 당연히 사탄이 한 것이고 사탄이 직접 손을 써서 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어떤 방식으로 욥을 시험하라고 말씀했는가?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단지 그것에게 하나의 조건을 주었는데, 이 시험이 곧 욥에게 임한 것이다. 이 시험이 욥에게 임했을 때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사악함과 추함, 사탄의 악랄함과 사람에 대한 혐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적대시함을 느끼게 했다. 이로부터 보다시피, 그때 시험의 잔인한 정도는 글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히 말해서 사탄이 사람을 해하는 악랄한 본성과 사탄의 추한 몰골은 그때 여지없이 폭로된 것이다! 그것이 이런 기회를 빌어, 하나님이 그것에게 허락한 기회를 빌어 욥에 대해 조금도 사정 두지 않고 미친 듯이 해쳤는데, 해친 수단과 잔인한 정도는 현재의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자 현재의 사람들이 전혀 견뎌낼 수 없는 것이다. 욥이 사탄의 시험을 겪고 시험 속에서 간증을 굳게 섰다고 말하기보다는 욥이 하나님이 준 시련 속에서 사탄과 한차례 그의 온전함과 정직함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키는 대결을 펼쳤다고 말하는 것이 낫다. 이번의 대결에서 욥은 온 산의 우양을 잃고 모든 가산을 잃었으며 그의 자녀들도 잃었지만 그의 온전함과 정직함,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를 포기하지 않았다. 즉 그는 사탄과의 대결에서 그의 가산과 그의 자녀들을 잃을지언정 그의 온전함과 정직함,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를 지키고 그의 사람됨의 근본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경문에 욥이 가산을 잃은 전 과정이 간결하게 기술되었고 또한 욥의 표현과 태도도 기술되었다. 간명하게 핵심을 찌른 문자 기술은 사람으로 하여금 욥이 마치 아주 ‘가볍게’ 이 시험을 대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정말 사실의 진실한 장면을 원상복귀하고 또 사탄의 악랄한 본성에 결부시키면 이 몇 마디 말로 묘사한 것처럼 이렇게 간단하고 이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며, 진실한 장면은 이보다 훨씬 더 참혹하다. 이것이 바로 인류를 대하고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을 대하는 사탄의 참해와 혐오 정도이다. 만약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해하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틀림없이 조금도 사정 두지 않고 욥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바라지 않고 또한 하나님 안중의 의인,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계속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사탄을 멀리하고 사탄을 배반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사탄은 하나님이 그것에게 허락한 이 기회를 빌어 조금도 사정 두지 않고 모든 분노와 혐오를 다 욥에게 가한 것이다. 보다시피, 욥이 몸과 마음에서 육체까지, 외부에서 마음속에까지 받은 고통은 그토록 그토록 심각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당시의 장면을 볼 수 없기에 성경의 기록에서 당시 욥이 고통받을 때의 심정을 약간이나마 체험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