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모압의 후손을 구원하는 의의>(발췌문 186)

하나님은 땅에 왔지만 본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누리기 위해 성육신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사역하여 자신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는 곳, 또 가장 의의 있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곳에 강생한다. 거룩한 곳이든 더러운 곳이든, 어떤 곳에서 사역하든 그는 거룩하다. 세상 만물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그저 만물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만물은 여전히 그에게 속하고 모두 그의 손안에 있다. 그가 더러운 곳에 와서 사역하는 것은 그의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더러운 곳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극도의 굴욕을 참으며 이렇게 사역하는 것이다. 이는 증거를 위한 것이자, 전 인류를 위한 것이다. 이런 사역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지고지상한 존재임을 더 확실히 증명해 준다. 그의 위대함과 정직함은 모두가 업신여기는 비천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서 드러난다. 그가 더러운 곳에 강생했다고 해서 비천한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모든 피조물에게 그의 위대함과 인류를 향한 참된 사랑을 보여 줄 뿐이다. 그가 이렇게 할수록 인류에 대한 그의 흠 없이 깨끗한 사랑을 더 잘 보여 줄 수 있다. 더러운 곳에 강생했더라도, 더러움이 가득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더라도 하나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운 분이다. 은혜시대에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생활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가 행한 그 모든 사역은 전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 아니었더냐? 인류가 크나큰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아니었더냐? 2천 년 전에 그가 죄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생활한 것은 구속을 위해서였다. 오늘날 그가 또다시 더럽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도 구원을 위해서이다. 그의 모든 사역은 다 너희, 이 인류를 위한 것 아니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어찌 말구유에서 탄생했으며, 오랫동안 죄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함께 고난을 받았겠느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어찌 두 번째로 육신을 입고 마귀들이 무리 지어 사는 곳에 강생하여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신실하지 않더냐? 그가 한 사역 중에 인류를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너희의 운명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하나님은 거룩하다. 이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 더러운 곳에 왔다고 해도 그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보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일말의 사심도 없고, 그가 너무나 큰 고통과 굴욕을 참아 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너희를 위해, 너희 운명을 위해 그가 얼마나 큰 굴욕을 참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냐? 그는 높고 대단한 사람들과 돈 많고 세력 있는 자들을 구원하지 않고, 비천하고 남들에게 멸시당하는 사람들만 구원한다. 이 모든 것이 그의 거룩함 아니겠느냐? 그의 공의로움 아니겠느냐? 전 인류의 생존을 위해 그는 기꺼이 더러운 곳에서 태어나 모든 굴욕을 참고 있다. 하나님은 참으로 진실하기에 거짓된 일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어느 단계의 사역이든 모두 이렇게 실제적으로 이뤄지지 않더냐? 비록 모든 사람이 그가 죄인과 함께 식사한다고 비방하고, 그가 더러운 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가장 비천한 자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조롱해도, 그는 계속해서 이처럼 사심 없이 자신을 바치고 이렇게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있다. 그가 참아 낸 고통이 너희보다 크지 않겠느냐? 그가 행한 사역이 너희가 치른 대가보다 많지 않겠느냐? 너희는 더러운 곳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얻었고, 마귀들이 무리 지어 사는 곳에서 태어났지만 커다란 보호를 받았다. 너희에게 또 무슨 선택이 있겠느냐? 또 무슨 불평할 것이 있겠느냐? 그가 받은 고통이 너희보다 더 크지 않겠느냐? 그는 땅에 와서 한 번도 인간 세상의 복락을 누린 적이 없으며, 도리어 그런 것들을 혐오한다. 땅에 온 하나님은 사람의 물질적인 대우를 누리지 않고, 사람이 즐기는 호의호식을 누리지도 않는다. 그는 그런 것들을 전혀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가 땅에 온 것은 인간 세상의 복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고난받기 위함이다. 그는 고통받기 위해, 사역하기 위해, 또 그의 경륜을 완성하기 위해 왔다. 그는 대사관이나 고급 호텔 같은 좋은 곳에서 살지도 않고 많은 종을 거느리며 시중들게 하지도 않는다. 너희가 본 것으로도 그가 사역하기 위해 왔는지, 누리려고 왔는지 알 수 있지 않으냐? 너희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느냐? 그가 너희에게 베풀어 준 것이 아직도 부족하단 말이냐? 그가 편한 곳에 태어났다면 영광을 얻을 수 있겠느냐? 사역을 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하면 의의 있겠느냐? 사람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겠느냐? 사람을 더러운 곳에서 구원해 낼 수 있겠느냐? 관념에 따른다면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사는 이 더러운 곳에 태어나셨습니까? 당신은 더러운 저희를 증오하고 혐오하시며, 또 저희의 대적과 패역을 혐오하시면서 어째서 저희와 함께 생활하십니까? 당신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시니 어디에서든 태어날 수 있는데, 어째서 굳이 더러운 땅에 태어나셨습니까? 당신은 매일 저희를 형벌하고 심판하십니다. 저희가 모압의 후손임을 분명히 아시면서 어째서 저희 가운데서 생활하십니까? 어째서 모압 후손의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까? 당신은 어째서 이렇게 하십니까?” 너희의 이런 인식은 너무도 비이성적이다! 이런 사역만이 사람에게 그의 위대함과 낮춤과 감춤을 알게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자 했고, 자신의 사역을 위해 모든 고통을 받았다. 이는 인류를 위한 것이고, 더욱이 사탄을 정복하기 위한 것이며, 모든 피조물이 그의 권세 아래 순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의의 있고 가치 있는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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